Kero One _ Kinetic World
질감이 느껴지는 비트


케로원 (Kero One)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한참 언더그라운드 힙합, 인스트루멘탈, 재즈 힙합에 관심이 많아 Madlib이나 Nujabes의 음반을 구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때였다. 아마도 처음 케로원의 음악을 들었던 이들이라면 그의 국적은 오히려 나중에 알게 되어 인식하게 된 경우가 많았을텐데, 나 역시 조금 나중에야 그가 한국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음악에 있어서 국적이라는 것이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특히나 케로원의 경우처럼 사실상 가요의 영역에 한 번도 속하지 않은 뮤지션이라면 더욱) 어쨋든 본토의 힙합과 전혀 공기가 다르지 않은 비트에 살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케로원의 음악은 그냥 본토의 힙합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에게 '한국계'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 조차 그의 음악에 또 다른 선입견을 주는 것이 아닐가 싶기도 하다. 

그의 데뷔작 'Windmills of The Soul'은 당시 즐겨듣던 다른 유명 뮤지션들의 음반과 비교해도 크게 감흥이 떨어지지 않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재즈힙합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따듯함과 아날로그의 공기가 느껴졌으며, 역시 랩핑이나 피처링보다는 비트가 더욱 돋보이는 앨범이었다.




그리고나서는 한 동안 케로원의 음악을 잊고 지냈었는데, Nujabes가 떠난 올해 그의 새 앨범 'Kinetic World'를 만나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피처링한 것으로 더 화제가 되고 있는데, 에픽하이의 최근 앨범을 리뷰하면서 Nujabes를 언급했던 것처럼,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런 음악적 교류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사실 앨범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가장 많이 좌우하는 순간은 처음 CD를 플레이어에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을 때 흘러나오는 그 첫 경험의 순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Kinetic World를 플레이어에 넣고 처음 흘러나오는 'Let Me Clarify'를 들었을 때 저절로 '와!'하는 짧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처음 재즈힙합을 듣게 되었던 그 때보다는 훨씬 경쾌해진 분위기였지만, 심플하면서도 따듯한 '그 느낌'이 단번에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느낌은 앨범 전반에 걸쳐 드리워져 있어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다. 앨범과 동명 타이틀곡인 'Kinetic World'는 후렴구의 브라스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이다. 요 몇년 사이 들었던 힙합 곡 가운데 인상적인 곡에는 거의 모두 브라스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다는 기억을 되짚어 볼 때, 이번 케로원이 사용한 브라스 파트도 매우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따듯함 하면 이 곡을 떠올려야 할 것 같은데 바로 'On Bended Knee'이다. 재즈 기타의 선율은 '따.듯.함' 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절로 그루브를 타게 하는 (담 넘는 듯한) 이 잘게 나눈 비트는 세련됨을 더한다. 언제 어떤 기분에서 들어도 청자를 위로해줄 그런 곡이 아닐까.




'My Devotion'은 일렉트로닉한 감성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이 곡 역시 기타리프가 곡을 이끌고 있는데, 기존 케로원 하면 떠오르던 따듯함은 조금 사라진 느낌이지만, 새로운 케로원을 만나게 된다는 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이라 하겠다. 'Missing You'는 간결한 피아노 선율과 역시 간결한 드럼 비트가 인상적이며, 'Time Moves Slowly'는 케로원의 곡이라기 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힙합 뮤지션의 앨범 그 어디에선가 들어봤음직한 인상을 풍긴다. 왜 힙합 앨범을 여럿 들어본 이들이라면 쉽게 알 수 있지만, 5~9번쯤 사이에 이런 분위기의 꼭 한 곡이 수록되곤 한다 ㅎ 

'Asian Kids'는 굉장히 의식적으로 만든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목부터가!) 타블로를 비롯해 케로원 처럼 한국계 미국인 힙합 아티스트들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곡이다. 한 가지 이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 있었다면, 어차피 'Asian Kids'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곡이었다면 전체는 아니더라도 우리말로 된 플로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The Fast Life'는 아날로그한 느낌의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끈적한 여성 보컬과 어우러져 있는 곡인데, 확실히 이 곡은 미래적이라기 보단, 미래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음에도 결국은 아날로그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신디사이저를 사용해도 아날로그를 살려내는 것이 케로원의 장점이 아닐까. 




한국판에는 11곡 외에 'Goodbye Forever'의 리믹스 곡이 보너스트랙으로 수록되었는데, 전작을 인상 깊게 들은 팬이라면 좀 더 특별했을 보너스 트랙이 아니었나 싶다. 

마치 앨범 커버의 그 따듯한 질감과 색감처럼 전체적으로 따듯함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케로원의 음악을 만나볼 수 있는 앨범이었다. 해설지에 있는 것처럼 확실히 기존 앨범들보다는 보컬이 추가된 부분이 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다시 금 예전의 재즈힙합의 전성기를 떠올릴 수 있도록 인스트루멘탈로만 꽉 차여진 케로원의 새 앨범도 기대해본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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