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브레이커블 (Unbreakable, Blu-ray Review)
코믹스 세계 속 선과 악의 탄생


'언브레이커블'은 '식스센스'로 영화 팬들의 주목을 한 껏 받았던 M.나이트 샤말란에게 바로 연이어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었던 수작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샤말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차라리 식스센스가 없었더라면'하는 입장인데, 그래서 그의 작품 중에 '식스센스'를 가장 안좋아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이 평가는 최근 결국 보고야만 '라스트 에어벤더' 덕에 이제는 더이상 쓸 수 없는 표현이 되고 말았다. 어쨋든 개인적으로 샤말란의 작품에 개인적으로 흥미를 보이게 된 작품은 '식스센스'의 다음 작품인 2000년작 '언브레이커블 (Unbreakable)' 이었다. 지금이야 '다크 나이트'부터 '킥애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와 방법론의 히어로 물들을 만나볼 수 있지만, 2000년 당시 '언브레이커블'을 처음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굉장히 흥미롭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당연히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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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브레이커블'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 노골적으로 이 작품이 영웅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만화(Comics)에 관한 이야기임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언브레이커블'은 오래 볼 것도 없이 굉장히 코믹스 히어로물의 기본 세계관에 몹시 충실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야기 자체는 이미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로 대표되는 만화책에서 수없이 보아온 영웅담에 근거, 아니 이 영웅담을 현재로 가져와 그대로 새로운 신화를 다시 써내려간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평소 코믹스에 관심이 있던 이들이라면 이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 수 있게 된다. 동어반복이라 지루하게 느껴진다기 보다는, 처음 히어로물을 접하게 될 때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 이야기는 우리의 주인공이 어떻게 탄생되게 되고, 주적은 어떻게 등장하게 되나'를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샤말란의 '언브레이커블'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충실한 작품이다. 즉, 이런 기대를 한치도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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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웅과 주적의 탄생부터 천천히 그려간다. 물론 주적으로 나중에 밝혀지는 '일라이저 (사무엘 L.잭슨)'의 경우, 처음부터 적임을 알리지 않을 뿐이다. 또한 영화는 서로 정반대에 있지만 같은 과정을 겪은 영웅과 악당의 성장과정을 짧지만 의미깊게 전달한다.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뒤늦게 받아들인 한 남자의 이야기와, 반대로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각각 회상과 시간 흐름의 방식으로 그려낸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이가 처음 주인공 만큼이나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일라이저'의 이야기다. 그가 주적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히어로물이 그러하듯 주인공 히어로의 정반대에 선 주적은 태초에 그럴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을 타고 난 경우가 많은데, '언브레이커블'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이런 탄생과 성장과정을 가진 캐릭터가 간혹 영웅으로 변모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렇듯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극복하려고 최선을 다하다가 큰 사고나 상처를 받고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곤 하는데, 영화는 전자의 경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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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저'가 탄생부터 특별함을 타고 난 탄생 과정을 그린다면, 히어로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빗 던 (브루스 윌리스)'의 이야기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깨닫게 되는 것을 통해 탄생의 과정을 그려낸다. 샤말란은 이 작품을 써내려가는데에 있어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로 재탄생 시키는 것에 큰 공을 들이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다른 히어로물 들에 비해 주인공의 초능력이 과장되게 그려지는 것보다는 설득력있는 수준으로 묘사되고 있는 동시에, 데이빗이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되고 시험하게 되는 과정 역시, 일반인은 쉽게 들기 어려운 무게의 역기를 드는 것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 참고로 M.나이트 샤말란의 특기라면 아주 공상과학적이고 미스테리한 이야기를 그릴 때에, 과한 SF적 묘사보다는 스릴러와 서스펜스에 포커스를 두고 현실감있게 그려낸다는 점인데(그래서 태초부터 판타지인 '라스트 에어벤더'는 실패했는지도 모르겠다),  '언브레이커블'은 그런 면에서 친근한 이웃인 '스파이더 맨'보다도 훨씬 현실적인 히어로 물인 동시에, 코믹스의 세계가 갖고 있는 기본 설정은 모두 갖고 있는 또 다른 영웅신화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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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극중 코믹스에 정통한 '일라이저'라는 캐릭터를 통해 직접적으로 만화의 세계관 속 영웅과 악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의 마지막에 데이빗이 일라이저와 접촉하기 전까지는 그저 일라이저가 코믹스 세계에 빠진 인물로서, 초능력을 가진 데이빗을 영웅으로 만들려는 일종의 팬 혹은 조력자로 그려지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면 자신과 다르지만 같은 데이빗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려 했다는 것 (그럴 수 밖에는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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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브레이커블'이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바로 데이빗이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시험하고 활용하게 되는 첫 경험에 있다. 우리가 적어도 극장용 히어로물을 통해 보아온 영웅의 자각 순간들은, 어린 시절이나 사춘기에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게 되 좌충우돌하고 호기심 가득한 장면으로 묘사되거나, 혹은 자신의 초능력에 대해 놀라움을 느끼고는 곧 쉽게 적응하게 되는 것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이 작품 속 이 순간의 묘사는 조금 달랐다. 데이빗은 처음 자신이 아직까지 한 번도 다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기억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이것이 사실임을 점차 알게 되었을 때에도, 그리고 자신이 영웅임을 확신하는 일라이저를 만났을 때에도, 도저히 들 수 없는 무게의 역기를 들고 난 이후에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계속 의심한다. 즉, 데이빗은 이미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온 세월이 훨씬 많고 이미 아이가 있는 어른이기 때문에, 이 같은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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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데이빗은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원활하지 못한 부부관계를 이제 막 다시 맞추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더더욱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와! 나에게 이런 초능력이!!'하며 기뻐 날 뛰기 보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동시에 그로 인해 변하게 될지도 모를 현실 (가족)에 대한 고민이 그 누구보다 컸던 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처음으로 기차역에가서 자신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 초능력을 사용하는 장면은, 그 어떤 히어로의 첫 경험보다 경건하게 그려진다. 또한 이것이 마냥 신나는 일이기 보다는 상당히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이라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나서 데이빗이 실제로 악당을 무찌르고 아이를 구하는 장면에서도 역시, 사건 해결으로 인한 성취감이나 영웅의 탄생에 어울리는 두근거림 보다는, 무언가 슬프고 쓸쓸한 감정이 짙게 깔려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히어로로서 첫 임무를 마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아들에게 신문을 보여주며, 작은 목소리로 '네 말이 맞았어'라고 이야기하며 울먹이는 장면은, 다른 히어로 영화에서는 보지 못한 특별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신문을 보여주며 '봐! 아빠가 해냈어!'라는 뉘앙스가 아니라, 데이빗도 아들도 서로 눈물 흘리며 그야말로 운명을 숙연히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 하나 만으로도 '언브레이커블'은 특별한 히어로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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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나이트 샤말란은 본 블루레이에 수록된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은 다른 영화로 치자면 서막에 해당되는 것이며 이런 방식일 경우 2편에서는 선과 악이 대결을 펼치고, 3편에서는 최후의 악당과 싸우게 되는 이야기로 발전된다고 하며, 자신은 이런 전개보다는 오로지 서막에 해당되는, 그러니까 한 인물이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어 이것만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샤말란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겠지만서도 '언브레이커블'의 이야기가 워낙 흥미로웠기 때문에 이 캐릭터들을 가지고 더 전개할 수 있는 속편이 나오지 않은 것은 분명 아쉬운 점이다. 서막의 이야기로만 보자면 분명 뻔한 히어로물의 전개대로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물론 아닐 뿐더러, '언브레이커블'이라면 당연히 이 공식대로 흘러가야만 한다) 다른 영화들과는 또 다른 감동이 기대되는 바인데, 여기서 멈춘 것 같아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언브레이커블'의 속편을 기대한다면 역시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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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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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워 (Secret War)
어벤저스와 쉴드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


일찍이 그래픽 노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접하게 된 작품들은 프랭크 밀러의 '씬 시티'나 DC코믹스에서 출간된 '배트맨 허쉬' '다크 나이트 리턴즈' 등이었는데, 최근 '아이언 맨 2'를 보고 아니 정확히는 '아이언 맨'시리즈에 떡밥으로 계속 등장하는 어벤저스의 이야기를 좀 더 파악하기 위해 저절로 마블사의 그래픽 노블에 서서히 손을 대게 되었다. 정말 '아이언 맨 2'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전에도 서점에서 혹은 커뮤니티에서 마블사의 그래픽 노블에 관련된 글들을 보았을 때 매번 흔들리기는 했었지만 바로 지름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는데, '아이언 맨 2'를 보고 나니 이제는 더이상 미룰 때가 아님을 깨닫게 되더라(이것은 '아이언 맨 2'의 장점이자 단점). 여튼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마블의 그래픽 노블 '시크릿 워'는 마블 코믹스의 여러 곳에서 자주 등장하는 쉴드(S.H.I.E.L.D)와 어벤저스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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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시크릿 워'를 비롯한 마블의 코믹스/그래픽 노블을 봐야 겠다고 마음 먹게 된 이유는 '재미'보다는 '정보' 적인 측면 때문이었다. 마블의 캐릭터를 영화화한 작품을 볼 때 마다 느껴지는 허전함. 그러니까 북미에서는 워낙에 인기가 많고 저변이 넓은 마블 코믹스인 탓에 이런 세계관을 배경에 깔고 시작되는 영화들을, 나처럼 코믹스의 세계관에 대한 지식이 얕은 관객들이 본다면 100%는 어찌어찌 이해할 지언정, 120%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터라, 일종의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시크릿 워'는 좋은 자료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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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 맨이 등장한다고 '오옷! 주인공이다!'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시크릿 워'에서 스파이더 맨은 수많은 캐릭터 중 하나일 뿐이다)

좋은 자료라고 한 가장 큰 이유는 '시크릿 워'의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상당부분이 닉 퓨리가 작성한(아니 검수한) 쉴드의 보고서 형식으로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 형식의 자료가 소중한 이유는, 영화화된 캐릭터만 어렴풋이 알고 있는 미약한 코믹스 팬들에게 마블사의 수많은 캐릭터들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본정보란 무엇인고 하니, 각 캐릭터의 본명과 닉네임은 물론, 기본 신상정보와 주적 그리고 소속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파워/무기, 그리고 닉 퓨리가 정리한 코멘트를 통해 캐릭터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소속 같은 경우는 그 캐릭터가 어떤 단체에 소속되었는지(쉴드 혹은 어벤저스 혹은 엑스맨 등등) 그리고 주적이 누구인지를 통해, 캐릭터들간에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보고서 만으로도 '시크릿 워'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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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몇몇 캐릭터의 비중이 작다고 불평했던 것은 '시크릿 워'에 비하면 양반이더라. 영화화된 캐릭터들만 해도, 스파이더맨, 데어 데블, 판타스틱 4, 엑스맨, 블랙 위도우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 외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바람에, 대사 한 꼭지 부여 받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자주 펼쳐진다. 각 캐릭터 하나하나의 스토리를 확인하기에 '시크릿 워'는 그리 적절한 작품이 아니지만, 이런 점은 미리 인지한채 그 세계관을 화끈하게 즐기기에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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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같으면 이런 보고서 형식이 중간 중간 포함된 것은 전체적인 스토리를 끊는 듯한 느낌이 있어 별로 달갑지 않게 느껴졌을 수도 있는데, '시크릿 워'를 접한 나의 배경과 상태는 서두와 같다보니 이런 자료로서의 의미가 더욱 반갑게 다가왔다. 닉 퓨리의 이 보고서만 꼼꼼히 읽어보아도 나중에 마블사의 어떤 캐릭터나 작품이 영화화되어도 어렵지 않게 세계관과 캐릭터 간의 이해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 그 반대로 이미 보았던 작품들 역시도 이 보고서를 읽은 후에 다시 보게 된다면 몰랐던 관계들 (그러니까 '왜 그 장면에서 이 캐릭터가 그리도 화를 냈었지?' 라던가, '저런 행동은 굳이 왜 넣은 거지?'라는 점들)이 보이는 것도 경험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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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스와 그래픽 노블에 조금만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너무도 잘 알겠지만, 이 세계는 알면 알 수록 더 많은 정보와 궁금증을 요하는 세계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시크릿 워' 하나로 만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시빌 워', '아이언 맨 : 익스트리미스', '하우스 오브 엠', '헐크' 등을 두루두루 독파해야 어느 정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국내에는 시공사에서 정식 출간을 꾸준히 해주고 있는 터라 그래도 다행이다. 올컬러의 빠른 전개로 진행되는 작품 답게 하루 만에 금새 소화할 수 있었는데, 바로 다음에는 일단 '시빌 워'를 마스터 해야 겠다. 그리고는 마블의 남은 정발 작품들을 마스터하고 DC코믹스로 넘어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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