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진리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쿠보즈카 요스케, 시바사키 코우 주연의 일본영화 'GO'는 그저 그런 반항하는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쯤 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는 영화이다. 2000년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한 이효진(가네시로 가츠키)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일이 공동 제작한 작품인 'GO'는 가장 무겁다면 무거울 수 있는 재일 한국인, 혹은 조선인, 그리고 일본인에 관한 이야기를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나 이즈음에는 재일 조선인 여학생에 대한 일본인들에 폭력 사태가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일본과 북조선, 대한민국 사회 모두에 재일 조선인에 대한 정체성에 관심이 커졌을 때이기도 하다.
이 정체성에 대한 영화에 주장은 영화 속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는 것처럼,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인용구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영화의 주인공인 일본 이름 스기하라는 북조선 인민공화국 국적으로 재일 조선인이었으며, 한국 국적을 선택하면서 재일 조선인 학교가 아닌 일본인 학교에 다니며 이정호라는 대한민국 이름을 갖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스기하라는 재일 조선인이라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국적과 상태 때문에 한국 국적을 선택한 뒤에도 재일 조선인 사회에서는 배신자로, 일본 사회 내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으로 차별 받았으며, 여자 친구와의 연애 관계에 있어서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걸림돌 아닌 걸림돌이 되어 또 한 번 상처를 받게 된다. 이러한 스기하라가 일본 사회 내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은 폭력이라는 수단이다. 권투 선수인 아버지 아래서 강하게 자란 스기하라는,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누가 뭐라 든 자신은 자기 자신으로서 나아가는(GO) 방식을 택한다.



재일 조선인이라는 애매한 신분은 스기하라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이 굴레 아닌 굴레는 애초부터 차별에 조건이 되어 어느 곳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영화 속에서 스기하라가 아버지와 몇 번 대립하게 되는 장면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스기하라로서는 부모가 물려준 차별에 굴레에 대한 본능적인 반항이며,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자유행동이기도 하다. 결국 몇 번의 결투(?)에서 스기하라는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이기지 못하지만, 강하게만 보이는 모습 뒤엔 자기 자신도 재일 조선인으로서 온갖 차별을 겪어왔기에 자신에 자식에게는 이 같은 현실을 되 물림시키지 않고자 노력해왔던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시선은 여자 친구인 사쿠라이와 길가에서 만난 한 경찰관과의 대화에서 엿 볼 수 있다. 사쿠라이는 스기하라가 한국 국적이라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놀란 기색을 표하지만 결국에는 스기하라가 생각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여기게 되었고, 자신을 공격하고 달아났던 스기하라와 짧지만 진솔한 대화를 나눈 경찰은 ‘힘내’라는 말로 그를 위로한다. 이 같은 시각은 일본 내에서도 재일 조선인, 한국인에 대한 차별에 대해 반성하는 분위기가 있으며, 적어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따뜻하게 감싸 앉아야 한다는 정서를 전하고 있다.



'GO' DVD는 최근 출시되는 일본 영화들과는 다르게, 비교적 초기에 출시된 타이틀이라 스펙이나 서플 수록에 아쉬운 점이 많은 타이틀이다. 1.85:1 와이드스크린의 영상이나 돌비디지털 2.0만을 지원하는 사운드는 사실 영화의 분위기를 봤을 때 크게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지만, 1장에 디스크에 실린 형식적인 서플먼트들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메이킹과 인터뷰 영상도 분량이나 내용이 알차다고 볼 수는 없으며, 그야말로 형식적인 줄거리와 인물 소개 등은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스펙이나 서플 등을 대폭 추가한 스페셜 에디션 버전 등으로 재 출시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봤을 때, 만원이 채 안 되는 금액으로 좋은 영화를 소장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다시 봐도 단순한 진리다. 이 같은 진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전혀 동 떨어져있는 이야기가 아닌 만큼 이 영화 'GO'가 이야기하는 현실은 새삼스럽지만 단순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2006.04.25
글 / 아시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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