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기>를 리뷰하면서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이 영화가 표면적으로 너무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단 ‘박치기’라는 제목 자체가 그러하다. 물론 이 제목은 국내에서 번안하거나 새로 지은 제목이 아니라 원작자가 의도한 제목 그대로가 맞다(맞는 것은 물론 오프닝 크레딧에도 정확하게 한글로 ‘박치기’라고 표기했을 정도). 하지만 국내에서 ‘박치기’하면 일단 액션과 코믹에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또한 여기에 고등학생들의 폭력과 코믹적인 요소만 강조한 홍보 또한), 이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갖기가 쉬운 것이 사실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이 영화에 끌리게 되었던 것은 앞서 언급했던 코믹 요소들이 걸림돌이 되긴 하였으나 오다기리 죠나 사와지리 에리카 같은 배우들의 이름 때문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처음에 예상했던 바는 우려로 끝났고, 배우들의 이름 만에 끌렸던 때가 부끄러울 만큼 더한 의미가 있는 영화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치기 하면 레슬링의 기술, 단순히 머리로 머리를 받는 일 정도를 떠올리지만, 이 영화와 관련된 일본인 배우, 스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본에서는 단순한 액션 적인 의미 외에 경계를 뛰어넘는, 즉 초월(超越)의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는 넓게 보았을 때 초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초월에 사건이고 소재가 되는 것이 바로 일본 내에 재일조선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의 이야기이다. 재일조선인들에 관한 이야기는 뉴스나 TV는 물론 예전에 소개했었던 쿠보즈카 요스케, 시바사키 코우 주연의 영화 <고 (Go)>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박치기>는 여기에 코믹적인 요소와 액션적인 요소(코믹과 액션은 그야말로 양념일 뿐이다)를 적절히 배치하고,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로 이전에 재일조선인을 소재로 했던 다른 영화들보다 더 큰 감동을 끌어낸다.



일단 일본인인 코스케와 재일조선인인 경자 사이의 로맨스는 누가 봐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형식을 빌고 있다. 여기에 경자의 오빠이자 무리의 우두머리 격으로 등장하는 인성의 구성은 마치,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에 빗대어 그려냈던 뮤지컬 영화 <웨스트사이드스토리>와도 닮아있다(개인적으로는 특히 ‘웨스트사이트스토리’와의 유사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인성의 캐릭터는 물론이고(붉은 복대와 붉은 셔츠까지 이미지가 흡사하다), 클라이맥스에서 음악(노래)을 배경으로 각각의 인물들의 사건들을 동시에 그려내는 구성 방법에서도 그 유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 고스케와 경자 사이에 경계를 허물기 위해 등장한 매개체가 바로 ‘임진강’이라는 곡이다. 이 곡의 원곡은 북한 곡으로 한반도를 가로지른 임진강에 빗대어 한민족 분단의 슬픔을 담은 노래인데, 1968년 일본의 포크 밴드 ‘더 포크 크루세더스’가 번안하여 발표하였으나 바로 발매중지와 함께 금지곡이 되었던 곡이다(영화 속에 등장하기도 했던 ‘더 포크 크루세더스’의 멤버인 카토 카즈히코는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일본인 고스케는 호감을 느낀 경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녀가 연주하고 있던 곡 ‘임진강’을 연습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한반도 분단의 슬픔과 전쟁의 무의미, 그리고 재일조선인으로서 일본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특히 어쩌면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도 없고 그저 여자아이들에게 잘 보일 궁리만 하던 두 친구가, 분단 상황에 대해 ‘우리도 이 강을 중심으로 반으로 나뉜다면 어떻게 될까?’하고 가볍게 얘기를 꺼내게 되고,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깊진 않아도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다는 자체가 의미를 갖는 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분단의 역사와 재일조선인의 슬픔이 담긴 임진강이라는 곡이, 단순 폭력과 로맨스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며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영화에 출연한 20대 초반의 어린 배우들조차 처음에는 자신들의 캐릭터나 시대상황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흔히 말하는 ‘요즘 애들’은 전혀 알지조차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 처럼 이러한 역사와 상황이 있었고 이것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것이, 더 깊은 주제로 가는 첫 걸음으로서 좋은 스타트였다고 생각된다.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에 눈길이 갔던 것은 배우들이었는데, 시오야 슌, 타카오카 소우스케, 사와지리 에리카 등 어린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가 돋보인다. 한국 사람인 우리가 보았을 때는 재일조선인 역을 맡은 배우들의 한국어 연기가 어색하게 들리긴 하지만, 배우 자신들은 교토 사투리를 배우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이야기할 만큼, 그 이상의 어려움이 있었던 캐릭터들을 결과적으로 무리 없이 소화해내고 있다. 오다기리 죠는 프리섹스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로 당시의 시대상황을 그대로 몸소 보여주는 사카자키 역할을 맡고 있는데, 진지하면서도 코믹스런 설정이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 짓게 한다.

1.85:1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신작임을 감안한다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닌, 평범한 수준이다. 특히 콘트라스트 비가 높지 않고 채도 또한 그리 높지 않은 화질인데, 감상에 불편을 주거나 할 정도는 아니지만, 높은 콘트라스트 비와 채도를 선호하는 이들에겐 조금 아쉬운 화질이 될 것 같다. 사운드는 돌비디지털 2.0채널만을 지원하고 있는데, 5.1채널을 수록하지 않은 것이 표면적으로는 아쉬움을 갖게 하지만, 그리 멀티채널을 널리 활용하는 작품도 아닌 터라 감상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본편에는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과 사카모토 준지, 씨네콰논의 이봉우 프로듀서가 참여하였는데, 젊은 주연 배우들이 참여하지 않은 것은 재미적인 요소로서는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봉우 프로듀서를 비롯한 스텝들의 음성해설은 좀 더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서플먼트가 수록되었는데, 먼저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이 눈에 띤다. 인터뷰의 경우 대부분 주연배우 2~3명 정도에 국한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박치기>DVD에서는 이전에 소개했던 <스윙걸즈 SE>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배우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인터뷰 외에 3개의 메이킹 필름이 수록되었는데, 첫 번째 메이킹 영상에는 감독과 이봉우 프로듀서 등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가 만들어지기 까지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번째 메이킹에서는 주로 촬영장에서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데, 계속 NG를 내는 젊은 연기자에게 ‘니 돈 주고 필름 사와’라고 무섭게 다그치는 모습이 이채롭다(특히 촬영 첫 날부터 초반에는 단 한 번에 OK되는 영상들을 보고 난 뒤라 더욱 재미있었다). 3번째 메이킹 필름은 영화에 주요 소재가 되는 곡인 ‘임진강’에 대한 깊고 자세한 이야기가 수록되었다. 이 밖에 제작 발표회 영상과 예고편 등이 추가로 수록되었다.

2006.11.16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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