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수사가 결합된 정통 무협 영화 <무협 武俠>(2011)


'첨밀밀' 과 '명장'을 연출했던 진가신 감독이 견자단, 금성무, 탕웨이와 함께 만든 영화 '무협'은, 일단 제목 자체가 무협이었기 때문에 주로 드라마타이즈에서 장점을 보여주었던 진가신 감독이 어떻게 연출할지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다. 물론 이연걸, 유덕화, 금성무 등과 함께한 2007년 작 '명장'은 괜찮은 작품이었고 인상적으로 보았지만 리메이크 작품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리고 다시 얘기하지만 '무협'이라는 본격적인 제목 탓에 '과연~' 이라는 궁금증을 더욱 갖게 했던 것이다. 거기에 견자단, 금성무, 탕웨이는 물론이요 무엇보다 왕년에 쇼브라더스 영화를 이끌었던 왕우가 출연한다는 점도 예전 쇼브라더스 영화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큰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진가신 감독은 '무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있어 정통 무협 영화의 구조와 설정들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동시에 일명 'CSI'식 과학수사가 가미된 수사/추리물을 접목하였다. 이는 노골적인 인트로 영상에서도 재차 확인할 수 있는데, 영화 초중반까지는 극중 수사관인 '바이쥬 (금성무)'를 중심으로 한 과학수사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같이 수사가 중심이 된 중화권 영화로는 유덕화가 출연했었던 '적인걸 : 측전무후의 비밀'을 들 수 있을 텐데, '무협'의 수사과정은 좀 더 CSI스러운 과학수사의 장점과 과정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그린 다는 점이 특이할 만한 점이었다. 초 중반까지 영화는 바이쥬를 중심으로 한 과학수사물의 흐름을 유지하다가 포커스가 좀 더 견자단이 연기한 '진시 (견자단)'로 옮겨가면서 정통적인 무협물에 가까워진다.




진시가 본격적으로 중심에 서게 되는 이야기는 정통적인 무협 영화의 틀 안에서 진행되는데, 요 몇 년간 중화권 무협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자주 하는 이야기이지만, '무협 영화의 틀 안에' 있다는 것은 결코 부정적 의미의 한계로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무협 영화가 지녀야 할 정통적인 가치관들을 훼손하지 않고 그려내고 있다는 긍정적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진가신의 '무협'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과학수사라는 최신의 트랜드(영상미를 최대한 활용한)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무협 영화가 가져야 할 정통성은 고수하려는 노력이 엿보인 작품이다. 진시가 중심이 된 시퀀스야 말할 것도 없지만, 바이쥬가 중심이 된 시퀀스의 경우도 따지고 보면 '협'과 '의' 같은 정통적 가치관들 때문에 고뇌하는 메시지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세를 갖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후반 부 정통적인 방식의 이야기가 진행되더라도 지루하기 보다는 전개와 결말에 있어 좀 더 힘을 얻게 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무협'이 무엇보다, 특히 무협 영화 팬들에게 큰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아마도 전설의 스타, '외팔이 (독비도)' 시리즈의 주인공 '왕우'가 출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오랜 세월 영화계를 떠났던 그이기도 한데, 자신이 예전 출연했던 영화의 깊은 오마주를 담고 있기도 한 이 작품에 캐스팅 제의를 받고서는, 감독이 진가신이라는 얘기를 듣고 주저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보았던 쇼브라더스 영화 속 그 날카롭고 생기 넘치는 왕우는 없지만, 많지 않은 장면의 출연 임에도 그야말로 화면에서조차 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는 현재의 왕우를 확인할 수 있다. 왕우가 연기한 캐릭터의 경우, 정말 그가 아니면 누가 과연 이 정도의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역시 명불허전. 강호의 고수가 돌아온 셈이다.


Menu Design




제작사의 마니아적 마인드가 돋보이는 DP컬렉션에 특화된 기획력


DP시리즈 008번으로 선보이는 진가신 감독의 ‘무협’ 블루레이는 KD미디어, 블루키노, 컨텐츠게이트 등 국내 주요 출시사의 블루레이 제작을 담당해왔던 오소링 전문업체 LIFE LABS MEDIA의 자체 레이블 출시 001호 타이틀이기도 한데, 기존 출시되었던 7편의 DP컬렉션 타이틀 가운데 퀄리티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었을 뿐 아니라, 오탈자 등 인쇄 오류 같은 실수가 전혀 없었던 보기 드문(?) DP컬렉션이었던 002호 이창동 감독의 ‘시’ 블루레이 오소링을 맡았던 제작사이기도 하다.




이번 ‘무협’ 블루레이의 전체 제작과정을 지인을 통해 처음부터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최초 기획부터 티저와 예고편의 활용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마케팅, W님과의 콜라보레이션 기획, 진가신 감독의 친필 메시지, 디스크 디자인, 블루레이 메뉴 구성, 이스터 에그 등 여러 측면에서 DP컬렉션이라는 브랜드에 걸맞은 마니아적인 마인드를 기반으로 일관성 있고 집요할 정도의 사전 기획과 노력이 더해진 과정이었다. 특히 상업성이 전면에 드러나는 것을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티저에서 예고편, 발표 등으로 이어지는 점층적인 정보 공개 방식을 취한 일련의 마케팅 과정은 그 세련됨과 효과 면에서 디피 컬렉션은 물론이고 기존 블루레이 시장에서도 전례가 없는 수준이 아니었다 싶다.



특히 기존 DP시리즈에도 프리오더에 참여한 DP회원들의 이름과 닉네임을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크레딧은 제공이 되었었지만, 이번 DP008 ‘무협’ 블루레이에는 유명한 일렉트로닉 밴드 W&Whale의 멤버이자 DP회원이기도 한 한재원 님 (DP닉네임 W님)의 참여로 특별하고 소장가치 높은 디자인의 DP독점 아웃케이스를 포함하고 있으며, 메이킹 크레딧 수록은 물론이고 여기에 W님이 백그라운드 뮤직을 직접 작곡하여 수록함으로써, 정말로 특별한 콜라보레이션이자 DP컬렉션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서비스는 물론 회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블루레이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동안 DP컬렉션의 진행과정에 있어서 제작사의 역할이란 것이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면, 이번에 LIFE LABS MEDIA가 보여준 -심지어는 디피 구성원이 실제 제작진의 일부가 되기도 하는- 일련의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마케팅은 '디피人들의 축제'와도 같은 DP컬렉션의 정체성과 브랜드 가치를 한층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옴으로써, 향후 디피 컬렉션에 참여하는 업체들로 하여금 두고두고 참고할만한 인상적인 포트폴리오를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이는 LIFE LABS MEDIA가 제작사이면서 출시사이기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지라, 앞선 다른 DP컬렉션 참여 회사들과는 경우가 좀 다를 수 있음을 언급해둔다.


찾아라, 이스터 에그!


본편 퀄리티를 살펴보기 이전에 본 타이틀을 보는 재미를 높여주는 두 개의 이스터 에그를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자막 설정 메뉴의 한국어 자막이 선택된 상태에서 특정 리모컨 방향키를 누르게 되면 DP008이라는 아이콘과 함께 숨겨져 있는 히든 메뉴가 나타나는데, 이 것의 정체는 본편의 한글자막을 보편적인 굴림체가 아닌 영화의 고전적 컨셉과 잘 어울리는 추가 제공 한글 폰트를 선택할 수 있는 메뉴다.




하나는 마치 극장에서 필름으로 상영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필기체의 자막이고, 다른 하나는 무협 영화에 어울리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폰트이다. 십여년 전만 해도 극장에서의 필름 상영에는 필기체 스타일의 한글자막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과거 무협 영화를 극장에서 많이 본 사람이라면 보너스 폰트 중 필기체를 선택하고 감상하는 느낌이 남다를 것이다.





제작사인 LIFE LABS MEDIA에 따르면, 새로운 폰트를 수록하기 위해 별도의 폰트 사용 라이센스도 정식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했다고 한다. 사실 폰트의 경우 타이틀의 소장 가치나 본편 감상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부분은 아니기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인데, 이렇듯 꼼꼼하게 작품에 어울리는 폰트를 두 개씩이나 추가로 수록했다는 점과 분명 칭찬하고 넘어갈 만한 점이라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이스터 에그는 DP컬렉션 타이틀에서 익숙한 것으로 프리오더 참여자들의 이름과 닉네임을 수록한 'BD 메이킹 크레딧'이다. 역시 DP008이라는 아이콘을 찾으면 볼 수 있는데, '부가영상' 메뉴의 '예고편' 항목이 선택된 상태에서 한 번의 리모컨 조작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리뷰용 QC 디스크를 받은 시점에서 W님이 백그라운드 뮤직을 작업하고 계셨기 때문에 메이킹 크레딧 영상에는 '무협'의 오리지널 테마가 BGM으로 입혀져 있었지만, 출시 후에 타이틀을 받아보게 된다면 과연 어떤 스타일의 음악이 새로 입혀져 있을지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기존 메이킹 크레딧 영상이 왼쪽의 영화 화면을 스틸로 처리한 것과 달리, 이번 '무협'의 경우 동영상으로 삽입하여 보는 재미를 높였다. (위 스크린샷의 닉네임 리스트는 아직 '무협' 프리오더가 종료되지 않은 시점이라, 임시로 DP002 '시' 당시의 프리오더 리스트를 사용했음을 알려둔다.)


Video


DP008 ‘무협’이 기존 DP시리즈에 비해 갖는 차이점이라면, 기존 타이틀들이 비교적 작품성 위주의 선정이라 AV적으로는 조금씩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무협’ 블루레이는 좀 더 대중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인 동시에 화질과 사운드 측면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질의 경우 촬영 분의 따라 조금씩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블루레이만의 날카로움을 확인할 수 있으며, 장면 장면의 날씨와 톤에 따라 최적의 결과를 구현해 내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진가신 감독이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팬텀 카메라로(1초에 500프레임을 촬영할 수 있는) 촬영한 장면들은 블루레이의 화질로 더욱 디테일하게 표현된다.



‘무협’은 전반적으로 브라운 계열의 톤을 갖고 있는 장면들이 많은데 브라운 특유의 따듯함은 물론, 그 가운데서도 명암의 표현력을 놓치지 않고 있다. 견자단의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그의 변발이 자라면서 솜털처럼 조금씩 올라온 머리 결(?)도 확인할 수 있다.




Audio


화질도 만족스러운 편이었지만 그보다 만족스러운 건 DTS-HD MA 7.1채널의 사운드였는데, 일부 확실히 체감할 수 있는 스펙터클한 장면들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 장면이나 자연의 미세한 소리들이 세심하게 믹싱된 장면 역시 전반적으로 우수한 퀄리티의 사운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운드 적으로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장면에서도 ‘엇, 무협 사운드가 이 정도로 좋았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후반부 왕우가 등장하여 호통치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사자후’를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비좁은 가옥에서의 공간, 그리고 장대비와 번개가 내리치는 실내외를 오가는 왕우와의 마지막 결투 장면은 DTS-HD MA 7.1채널이라는 사운드 포맷의 온갖 화려한 서라운드 효과를 종합적으로 만끽할 수 있는 챕터다.



그 외에도 다이내믹한 대전 액션에서 검과 주먹의 궤적음과 주변의 사물들이 부서지는 등 세밀한 이펙트를 표현한 사운드가 인상적이며, 금성무의 내레이션을 표현하는 공간감도 이질적이기 보다는 효과적이었다.


Special Features


최신작인만큼 홍콩 영화로는 드물게 모든 부가영상이 HD 영상으로 제공될 뿐만 아니라 메이킹 영상의 촬영 퀄리티나 편집 효과 등도 상당히 세련된 모습이다. 물론 모두 한글자막을 지원한다.




‘제작영상’은 각 배우의 이름 별로 나뉘어서 수록되었는데, ‘견자단’에서는 배우로서는 물론 무술 감독으로서의 견자단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한 스턴트 장면들에 대한 위험성과 더불어 아찔했던 사고 에피소드와 팬텀 카메라로 촬영한 장면을 위해 더 세심하게 신경 써서 촬영해야 했던 액션 장면들의 연출에 대한 진가신 감독의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다.





‘금성무’에서는 진가신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금성무라는 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해 끊임 없이 질문하는 금성무로 인해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또한 사투리 연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연습을 거듭하는 금성무의 소탈한 촬영장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탕웨이’에서는 두 아이의 부모를 연기하게 된 탕웨이의 소감과 이 작품에서 자신이 연기한 ‘아유’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전해주고 있는데, 인터뷰 내내 귀여운 웃는 얼굴로 임하는 그녀의 모습 탓에, 짧은 부가영상임에도 그녀의 묘한 매력에 또 한 번 흠뻑 빠지게 된다. (아래 영상은 제작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맛뵈기로 올라왔던 '탕웨이' 스페셜 메이킹 영상)


마지막으로 ‘왕우’와 ‘혜영홍’에서는 ‘무협’을 통해 근 10년 만에 영화 계에 복귀한 전설의 배우 왕우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워낙 극중 맡은 배역의 인상이 강했던 터인지, 인터뷰도 왕우가 아니라 72파의 두목으로서 임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직도 매일 1시간 넘게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왕우 형님, 아니 선생님의 인터뷰를 들으니 ‘무협’ 이후 다른 작품들에서도 또 만나볼 수 있기를 더 간절히 기대해 본다.



'혜영홍' 편에서는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단 한 번의 견자단과의 액션 장면에서만으로 대단한 존재감과 내공의 고난도 무술 연기를 보여준 배우 혜영홍의 촬영 장면과 인터뷰를 볼 수 있다. 그녀 스스로 자신이 촬영한 액션 장면 중 '무협'의 액션이 최고였음을 스스로 뿌듯해하며 이에 도움을 준 무술감독 견자단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총평] 작품, AV퀄리티, DP컬렉션으로서의 가치 모두 뛰어난 타이틀


견자단과 금성무 그리고 탕웨이가 호흡을 맞춘 진가신의 ‘무협’은 CSI식 과학수사를 감각적으로 가미하고 있으면서도, 정통 무협 영화로서의 가치를 지키는 데에도 소홀히 하지 않은 만족스런 작품이었다. 여기에 쇼브라더스 시대를 이끌었던 왕우의 출연은 그 것만으로도 팬들을 끌어 당기는 엄청난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DP008 타이틀로 출시되게 된 블루레이는, 국내의 열악한 BD시장 속에서도 DP컬렉션라는 브랜드의 수준을 만들어가기 위한 제작사 LIFE LABS MEDIA의 많은 노력과 마니아적인 감각이 더해져, 화질, 사운드와 패키지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만족할 만한 타이틀을 선보이게 되었다.



그간의 DP컬렉션이 아무래도 대중성보다는 작은 영화로서의 희소적 가치와 작품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선뜻 선택이 어려웠던 이들에게는 대중성과 타이틀의 완성도를 함께 수록한 ‘무협’ 블루레이를 추천하고 싶다. 물론작품에 한해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역대 DP컬렉션 중 가장 'DP컬렉션'다운 타이틀임이 틀림없기에 계속 기존의 컬렉션을 유지해왔다면 이번 DP008의 소장가치는 두번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 주의 : 본 컨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재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무협 (武俠 Swordsmen, 2011)

두 가지 토끼를 잡으려 든 진가신의 모험



'첨밀밀'과 '명장'을 연출했던 진가신 감독이 견자단, 금성무, 탕웨이와 함께 만든 영화 '무협'은, 일단 제목 자체가 무협이었기 때문에 주로 드라마타이즈에서 장점을 보여주었던 진가신 감독이 어떻게 연출할지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다. 물론 '명장'은 괜찮은 작품이었고 인상적으로 보았지만 리메이크 작품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리고 다시 얘기하지만 '무협'이라는 본격적인 제목 탓에 '과연~' 이라는 궁금증을 더욱 갖게 했던 것이다. 거기에 견자단, 금성무, 탕웨이라는 배우들의 면면도 한층 기대를 돋구게 했으며, 무엇보다 왕년에 쇼브라더스 영화를 이끌었던 왕우가 출연한다는 점도 예전 쇼브라더스 영화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부분이었다.



ⓒ NEW. All rights reserved


진가신 감독은 정통 무협 영화를 그리는 대신에 일명 'CSI'식 과학수사가 곁들인 수사/추리물을 접목하였다. 이는 노골적인 인트로 영상에서도 재차 확인할 수 있는데, 영화 초중반까지는 극중 형사로 나오는 금성무의 주도하에 이런 과학수사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같이 수사가 중심이 된 홍콩 영화로는 유덕화가 출연했었던 '적인걸 : 측전무후의 비밀, 2010'을 들 수 있을 텐데, '무협'의 수사과정은 좀 더 CSI스러운 과학수사 측면에 이 과정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그린 다는 점이 특이할 만한 점이었다. 초중반까지 영화는 이런 흐름을 유지하다가 포커스가 좀 더 견자단이 연기한 '진시'로 옮겨가면서 정통적인 무협물에 가까워진다. 정통적인 무협물이라는 얘기를 반대로 하자면, 매우 익숙한 패턴으로 이어진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런 흐름에 있어서 초반 부의 과학수사 장르가 신선한 장점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큰 매력보다는 흐름에 집중할 수 없는 곁가지가 될지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를 듯 하다.



ⓒ NEW. All rights reserved


사실 스포일러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영화도 이 자체를 크게 중요한 반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 하다), 영화 제목이 '무협'이고 견자단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그가 맡은 역할이 정말로 아무런 힘도 무공도 없는 평범한 남자라고 생각하는 관객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진시'가 실제 고수인가 아닌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요소가 되는데, 반대로 고수가 아닌 평범한 '진시'의 삶을 묘사하는 데에도 무언가 부족함이 느껴졌으며, 나중에 커밍아웃 하는 장면에서도 카타르시스보다는 밋밋함이 느껴졌다. 차라리 좀 더 '진시'의 입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갈등과 심리를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숨기지 않고) 좀 더 풍부한 텍스트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 NEW.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무협'에는 전설의 스타 '왕우'가 출연하고 있는데, 일단 왕우와 견자단의 결투 시퀀스라니 이것만으로도 무협 팬들에게는 기대하기 충분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사실 이것도 왕우가 주연한 쇼브라더스 영화를 즐겨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바이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그 장면과 설정이 있어서 좀 더 이 영화가 왕우 팬들에게는 인상적인 영화가 될 듯 하다.



1. 아래 스틸컷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확실히 예전의 그 눈매와 얼굴이 남아있더군요. 전설의 스타로서 앞으로도 계속 작품들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NEW. All rights reserved

2. 영화와는 별개로 '류씨'들이 사는 이 마을의 설정이 흥미로웠어요. 특히 마을 사람들이 주로 노래로 감정이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풍습(방법?)은 영화의 색다른 리듬을 주더군요.

3. 탕웨이는 아름다운데 생각보다는 비중이 많지 않더군요. 그녀의 매력을 발산하기에는 좀 한정된 캐릭터였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NEW 에 있습니다.




만추 (Late Autumn, 2011)
유령과도 같은 하루


이만희 감독의 동명작품을 리메이크한 김태용 감독의 '만추'는 한국인 훈(현빈)과 중국인 애나(탕웨이)가 미국 시애틀에서 만난 하루를 담은 작품이다. 사실 리메이크라고는 하지만 이만희 감독의 원작이 현재는 필름 프린트가 존재하지 않아 본 사람들 보다는 보지 못한 사람들이 더욱 많기 때문에 조금은 자유롭지 않았을까도 싶지만, 영화 감독들 및 영화인들 사이에서 이만희 감독의 원작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김태용 감독에게는 오히려 더 힘든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 역시 원작을 본 적은 없고 단지 이 작품이 갖고 있다던 이미지와 정서만 전해 들은 것이 고작이라, 오히려 오롯이 김태용 감독의 작품으로 보게 되었는데, 그래서였을까. '만추'는 탕웨이와 현빈이라는 배우의 옷을 입은 김태용 감독의 또 다른 하루로 느껴졌다.


 보람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어머니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 교도소에서 특별히 하루 외출을 허가받은 애나는 시애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훈을 만나게 된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그리고 그녀가 처한 현실 때문에 애나는 누군가와의 새로운 만남이나 인연을 굳이 만들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우연히 다시 만난 훈의 적극적인 행동에 아주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게 되고, 훈 역시 자신이 현재 처한 도망자 신세와 직업적인 면에서 접근했던 것과는 달리 점점 애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결국 훈과 애나가 함께 보내게 되는 하루라는 시간 동안의 이야기는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마음의 동요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 '만추'의 주인공은 탕웨이가 연기한 애나라고 할 수 있을텐데, 대부분의 심리 묘사가 그녀 위주로 진행되며 현빈이 연기한 훈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애나의 하루를 함께하는 외부 작용으로서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결국 애나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작품이었기 때문에 (남녀의 사랑이 담긴 멜로였음에도), 오히려 후반부 훈의 개인적인 이야기 부분은 조금은 불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차라리 훈의 이야기를 좀 더 쳐냈더라면 더 인상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너무 친절한 편이다).  



 보람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애나에게 있어 특별할 수 밖에는 없는 이 하루는, 예상치 않았던 훈의 등장으로 인해 판타지스러운 혹은 유령 같은 하루를 보내게 된다. 서로 자신의 말이 아닌 영어로 대화하는 이 둘의 관계는, 각자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점에서 제 3의 매개체로 이어진 관계라고 볼 수 있겠다. 애나에게 있어 돌아가신 어머니와 그녀의 과거는 중국어가 지배하는 세계고, 훈에게 있어 누님들을 만나 유흥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일들은 한국어가 지배하는 세계다. 애나와 훈은 하루라는 짧은 시간 탓도 있지만 상대의 세계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 3의 영역에서 서로의 세계는 잊은 채 조우하려고 한다. 그래서 제 3의 언어와 공간이라는 조건은 이들에게 미묘하지만 마음이 움직일 수 있겠다 싶은(특히 애나의 입장에서) 가능성을 보여준다. 훈이라면 이미 많은 것이 어긋나기 시작한 삶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미약한 가능성, 혹시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아주 조금의 기대. 이런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을 영화는 느리게 담아낸다. 


 보람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이런 감성과 더불어 김태용 감독스러움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은 역시 놀이공원에서 벌어진 판타지 시퀀스다. 이미 전작 '가족의 탄생'을 통해 이런 공중부양 판타지를 보여주었던 김태용 감독은, 이 시퀀스에서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하여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감성을, 즉 두 주인공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감성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이 시퀀스는 단순히 보여지는 것의 판타지가 아니라 그 안에 외국인 두 남녀의 몸짓과 거리 (서로가 다른 속도와 보폭으로 걷기에 쉽게 만나기 어려운)의 묘사 등을 통해 애나와 훈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시퀀스를 역시나 좋아하지만 한편으론 약간 길게 느껴지는 분량을 떠나서, 조금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까 빗대어 말하고자 하는 연극 시퀀스의 감정이 오히려 주인공들의 감정보다 더 과잉이 되어 있어, 시작은 주인공들의 감성에서 시작했지만 시퀀스가 끝날 때에는 그냥 연극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이 내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 아주 천천히 접근했다는 점에서 이 시퀀스는 아주 마음에 드는 부분인 동시에 아쉬운 부분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보람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 탕웨이라는 배우의 얼굴은 여러가지 표정을 지을 때보다 절제하고 있을 때 훨씬 진면목이 드러나는 얼굴이라고 생각하는데, '만추'에서는 특히 이런 탕웨이 만의 매력이 흠뻑 담겨있어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특히 화장을 했을 때보다 거의 안했을 때가 훨씬 매력적인 그녀의 얼굴의 오목조목함이 잘 담겨 있고,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한 안개와 잘 어울려 하나의 그림같은 미장센을 만들어내고 있다. 현빈의 경우 무엇보다 '훈'이라는 캐릭터가 어색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시크릿가든을 보지 않아서 몰입하는데에 아무 걸림돌이 없었다는 것도 이유가 될지 모르겠다).

김태용 감독의 '만추'는 유령같은 하루를 담아낸 것에 만족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이상의 것을 끌어내려고 했던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그 역시도 그 정도에서 그쳤기에 전반적으로 인상 깊은 작품이 되지 않았나 싶다.


1. 이 작품에 일등공신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현빈이 입고 나온 극중 코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묘한 주머니 위치가 만들어낸 미장센이란! 만약 보통 코트를 입고 나와서 일반적인 모양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훈이었다면, 분명 이 정도로 각인 시키지는 못했을 것 같네요.

2. 참고로 극중 훈과 식당에서 설전을 벌였던 남자배우는 한국인 배우 김준성 씨네요. 반응들을 보니 이 분 밉다는 분들 많던데, 그 만큼 연기를 잘했다는 반증일듯;

3. 시애틀 관광코스에 있던 오리버스(?)는 한 번 타보고 싶더군요 ㅎ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보람엔터테인먼트 에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안이 만든 또 한 편의 치명적 러브 스토리

개봉 당시 안무에 가까운 아크로바틱한 정사 장면을 두고 선정성 논란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이안 감독의 <색, 계>는,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노출 수위나 묘사의 정도보다도 내용적인 면에서 더욱 논란이 되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일단 이안 감독의 장점을 들자면 그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인간 본연의 섬세한 내면과 심리, 갈등 관계를 묘사하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대만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결혼 피로연> <음식남녀>로부터 헐리우드 출세작이었던 <센스 앤 센서빌리티> <와호장룡>, 그리고 '거장'으로의 묵직한 발걸음이었던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홀 주연의 <브로크백 마운틴>에 이르기까지, 동서양과 시대를 가리지 않고 인간 본연과 관계에 대해 깊은 시선을 갖고 있는 그의 능력은, 영화 속에서 고스란히 표현되어 많은 영화팬들의 박수와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언급되었듯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라는 표현은 다재다능함으로 적용될 수도 있지만, 약점이자 애매모호함으로 적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안 감독이 마블 코믹스 전통의 인기 작품인 <헐크>를 연출한다고 했을 때 많은 미국인들은 적지 않은 우려를 나타냈었다. 미국 내에서 코믹스라는 문화가 갖는 남다른 의미는 타 국가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를 갖는 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미국적인 수퍼 히어로 영화의 감독을 맡은 사람이 동양인이라는 점은 그들에게 적지 않은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헐크> (2003)

반면 <브로크백 마운틴>의 경우는 이런 논란을 거의 완벽하게 잠식시켰을 정도로 가장 잘 만들어진 동양 감독의 서양 영화 중 한 편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가장 미국적인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카우보이라는 극 중 인물들의 설정과 배경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조율해내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러브 스토리를 성별에 상관없이 아름답게 그려내었을 뿐만 아니라 고인이 된 히스 레저 등 주연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이끌어내어 더 없이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브로크백 마운틴> (2005)


이안 감독의 정체성에는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작품

그렇다면 헐리우드에서의 찬란한 성공과 화려한 필모그래피에도 불구하고 항상 서양에서 동양인으로 인식되며, 그 선입관과 맞서 싸우던 이안 감독이 실로 오랜만에 본토로 돌아와 만든 영화인 <색, 계>의 시선은 어떠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역사를 다음 세대에게 제대로 보여주어야겠다는 의지가 포함된 이 작품은, 당사자 스스로가 들려주는 ‘자신’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들’의 이야기로 비춰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건 그가 이번에 다루고 있는 문제가 상당히 민감한 주제인 '중국의 독립'에 관련된 민족적인 차원이라는 점에 있다.


(※ 아래 단락에 영화 <색, 계>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스크롤하여 블루레이 분석 항목으로 넘어가시길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색,계> (2007)

독립운동을 벌이는 왕치아즈(탕웨이 분)와 그 친구들의 모습이, 약간의 민족 의식을 지닌 연극 부 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벌이는 풋내기적인 활동으로 그려진 것이나("이제 방학도 끝나가잖아"라는 대사는 압권이었다), '색'과 '계' 사이에서 고민하던 왕치아즈가 결국 어이없게도 다이아반지의 황홀함에 매혹되어 계를 버리고 색을 택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인간의 양 측면에 대한 심리 묘사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안 감독이 택한 마무리치고는 다소 의아한 것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안 감독은 캐스팅을 고려할 때 양조위를 생각하면서, 그가 그 동안 선한 역할만 맡아왔었기 때문에 부담이 되었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이 부담이 결과적으로 왕치아즈의 선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점도 분명 있는 듯하다. 사실 양조위가 맡은 캐릭터는 그 행위만을 놓고 봤을 때 재론의 여지가 없는 악역이라고 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양조위라는 호감형의 배우가 친일 장군을 연기하게 되면서 관객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캐릭터의 내면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었고(무언가 사연이 있겠지 하는 식의...),  "난 오랜 시간 동안 누구도 믿지 못했어." 등의 대사를 통해 살펴볼 때 양조위의  캐릭터가 갖는 고뇌를 애써 보여주려고 하는 의도마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편 이와 같은 설정을 우리의 사정에 대입해보면 (+그것도 한국 감독이 만든 영화에서) 같은 민족임에도 독립운동을 하는 운동가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들이고 고문하는 친일파 장군을 다룰 때, 그 역시 한국인들은 물론 일본인들에게도 견제를 받는 나름 인간적인 고뇌와 상처가 많은 인물로 묘사될 수 있다. 이것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그 행위의 옳고 그름을 다 버리고 인간의 내면적인 측면에서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를 고민해본다면, <색, 계>에서 이안 감독이 보여준 시각에도 역시 의아함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이안 감독의 야심작 <색, 계>는 그 스스로 중국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를 제대로 들려주고 싶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역사를 완벽히 꿰뚫지 못하고 있는 서양인의 눈으로 바라본 타국의 아픈 현실과 그 현실 때문에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 정도로 머물러버린 영화가 된 듯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개인적으로 한 가지 첨언하자면 같은 전범국인 독일의 경우 전후에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기 때문에 독일군들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의 영화들도 어느 정도 용인이 가능하고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의 경우는 자신들의 잘못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때문에 아직까지는 이 정도로 역사 의식을 다소 초월한 사랑 이야기가 상처 입은 당사자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물론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표정과 몸짓에까지 묘한 감정과 의미를 담아내는 이안 감독 본연의 섬세한 연출력과 유려한 만듦새는 서양인들을 매혹시켜, 6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과 촬영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지만 실제로 일제 억압의 역사를 기억하는 우리 입장에서 <색, 계>라는 작품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 지는 결국 본인 판단의 몫이다.

성적 긴장감이 물씬 묻어나는 치명적인 Full HD 화질!

7월 30일, 세계 최초로 출시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색, 계> 블루레이의  영상은 일단 화질 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 하다. 초반 부인들간의 마작 게임 신에서 다소 흐릿한 선예도의 영상으로 잠시나마 불안감을 안겨주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는 1080P Full HD 스펙의 영상은 여러 장면에서 영화의 연출 의도를 적절히 강조하는 훌륭한 화질을 보여주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난히 클로즈업이 많이 쓰이기도 한 영화답게 일단 각 인물의 얼굴을 화면 가득 보여주는 감정 신에서 블루레이 특유의 섬세한 피부 질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탕웨이가 왕치아즈 역할로 등장할 때 화장기 없는 풋풋한 얼굴과 막부인 으로 등장할 때 진한 화장으로 치장한 얼굴을 비교해보면, 달라진 피부의 톤이나 색감을 통해 DVD와는 다른 블루레이 화질의 정밀함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실감나는 캐릭터 묘사를 위해 일부러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게 분장을 했다는 양조위의 갈색 피부도 같은 맥락에서 유감없이 고화질 영상의 위력을 드러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불규칙한 곡면이 많은 얼굴과 피부의 질감을 잘 보여주는 클로즈업 장면에서 대강의 화질을 평가해볼 수 있지만, 화면에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거리 장면처럼, 세밀함을 요구하는 장면에서 좀 더 디테일한 화질 여부를 살펴볼 수 있다.

영화 초반 왕치아즈가 카페로 들어가기 전 어두운 회색  빛이 감도는 거리의 디테일과 양산을 써야할 정도로 쨍한 낮 시간의 거리 장면 모두 각 건물 사이과 거리를 오가는 인물들의 움직임, 복장 등 다양한 디테일이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다. 또한 극중 ‘이’가 막부인을 밤 시간에 데려다 줄 때 가로등과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조명만이 있는 어두운 장면에서도 바닥의 굴곡과 자동차 광택 등 거리 곳곳의 디테일이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몇몇 장면에서 노이즈가 평균 보다 조금 더 섞인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평균적인 TV화질 세팅으로 관람하였을 때 노이즈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수한 화질이라고 볼 수 있겠다. 비교적 어두운 조명 하에서 촬영된 실내 신과 밝은 실외 장면을 오갈 때 노이즈 수준의 미세한 차이가 있으며, 일부 장면에서는 애써 눈을 부릅뜨고 보았을 때 배경 쪽으로 지글거리는 필름 그레인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영화의 특성상 아주 칼 같고 매끈한 영상을 의도했다기 보다는 시대극을 그리면서 좀 더 당시의 느낌이 나도록 의도한 쪽에 가깝기 때문에 약간의 노이즈 부분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엇보다 Full HD급 고화질 영상으로 인한 극중 정사 신의 몰입감(?)은 DVD와는 그 격을 달리한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두 배우의 헐벗은 살색 피부와 흥분이 고조됨에 따라 발갛게 홍조가 달아오르는 탕웨이의 미묘한 얼굴색 변화,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 등의 섬세한 표현 등은 <색, 계> 블루레이를 누군가와 같이 감상하는 것을 참으로 민망하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중후한 음색의 스코어가 돋보이는 7.1채널 HD 사운드

사용자 삽입 이미지

PCM 7.1ch, DTS-HD : MA 7.1ch, Dolby Digital EX 6.1ch 등 화려한 스펙으로 점철된 <색, 계> 블루레이의 사운드는 다른 무엇보다도 장중하고 유려한 음색의 스코어 재생이 일품이다. 우선 스코어 트랙 재생에 대한 칭찬 이전에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한가지. 아마도 <색,계>블루레이를 기다렸던 많은 팬들이 엄청난(?) 기대를 품고 있을 것이 분명한 '7.1채널의 입체 사운드로 감상하는 정사 장면'의 감흥은 생각보다는 효과가 덜한 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피커의 존재 자체를 잊어 버리게 하는 뜨거운 두 남녀의 숨소리는 분명 DVD의 압축된 사운드와는 다른 느낌의 성적 긴장감을 조성하지만, 워낙에 센 묘사의 정사 신 때문인지 귀보다는 눈이 먼저 자극받는 측면도 크다. 시각이냐, 청각이냐라는 개인의 성적 기호(?)에 따른 취향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이 부분은 직접 BD를 통해 체험을 해봐야 할 듯.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의 특성상 액션 장면이나 특별히 사운드가 돋보이는 장면이 많지 않은 것도 작은 이유가 되었겠지만, 무엇보다도 <페인티드 베일>로 골든 글로브 작곡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영화음악계의 떠오르는 거장 알렉상드르 데스플라(Alexandre Desplat)가 만든 영화 음악이 더욱 돋보인다. 특히 차분하면서도 깊고 중후한 음색의 현과 목관악기로 연주되는 스코어는 블루레이의 차세대 사운드로서 매혹적인 영상과 함께 그 감흥이 더욱 가슴 깊이 전달되며,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엔딩 크래딧을 쉽게 스킵하지 못하도록 하는 깊은 떨림의 여운과 매력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

아쉬움이 남는 부가영상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편의 AV 퀄리티는 무척 만족할만하나 부가영상은 이 타이틀이 블루레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했을 때에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기 발매된 DVD에 수록되었던 ‘내한 기자회견 영상'이 빠진 것은 그 비중이 크지 않은 특성상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되지만, 유일한 서플먼트라고 봐도 좋을 메이킹 필름이 SD급 화질로 수록된 점은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최신작의 경우 영화 제작 단계부터 블루레이의 발매를 염두에 두고 메이킹 필름의 HD 촬영을 기획하는 시스템이 점차 늘고 있어, 블루레이에 수록될 부가영상들도 HD급 화질로 수록되는 경우가 보편화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비교적 최신작이라 할 수 있는 <색, 계>의 블루레이는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을 비롯한 촬영현장의 모습을 선명한 HD급 화질로 만나볼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아무래도 국내 자체 제작으로 인한 소스 확보의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도 슬라이드 방식으로 구성된 포토 갤러리는 고화질 HD 이미지로 수록되어 있으며, 이 외에 한국 및 홍콩 예고편이 각각 수록되어 있다.


[총평]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는 영화의 내용적인 면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블루레이의 선택 여부도 결정이 될 타이틀이라 생각된다. 특히 AV적인 면에서는 화질과 음질 모두 블루레이에 걸맞는 우수한 스펙의 퀄리티를 자랑한다. HD 매체만의 차별성이 부족한 서플먼트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해외영화 타이틀과는 달리 국내 제작사인 아트서비스가 홍콩 Edko Video와 공동 제작한 판본이 수록된 타이틀로서 무삭제 영상, 세계 최초 출시 등 나름 중요한 의미를 갖는 타이틀이기도 하다.

또한 양조위라는 최고 수준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배우와 이에 반해 신인으로서 매우 인상적인 모습를 보여준 탕웨이의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묘미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 이러한 화제성을 종합해볼 때 <다크나이트> 개봉과 맞물려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배트맨 비긴즈> 블루레이에 이어, 최근 블루레이 시장에 다크호스로 등장할 타이틀이 <색,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주의 : 본 리뷰 컨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습니다. 리뷰 중 모든 캡춰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아트서비스'의 소유이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DVD프라임 리뷰를 위해 작성된 글입니다.

출처 - www.dvdprime.com
         http://dvdprime.connect.kr/dvdmovie/DVDDetail_Sub.asp?dvd_id=1738&master_id=11




색, 계 (色, 戒: Lust, Caution, 2007)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조금은 기대이하였다.

이안 감독의 전작 <브로크백 마운틴>을 감명 깊게 보았기 때문에
양조위가 나온다던, 칸 영화제에서 수상했다던 것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되었었으나
막상 보고나니 그냥 평범한 정도였다고나 할까.

영화는 내용과 스토리가 그러하다보니 분위기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정치적인 내용보다는 남,녀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얼핏보면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속에 놓여진 두 남녀의 우여곡절 러브 스토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따지고보면 그냥 러브스토리(더 따지면, 러브 스토리라고 보기도 조금 어려울듯)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두 남녀가 정말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는지는 영화를 통해서 확실히 전달 받을 수 없었다.
양조위 역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인지, 아니면 자신이 처한 역할과 상황에 대한
돌파구나 해방 그 이상이었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탕웨이 역시 마지막 다이아반지에 결국 넘어간 것인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디 놓아주기로 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정말 누구 말만 따라, 마지막 다이아반지를 전해주는 시퀀스는 일종의 코미디였다.
그 한 장면으로인해 많은 의미들이 퇴색되었다고 생각한다.

양조위가 맡은 역할은 분명 악역이지만, 양조위가 맡았기 때문에 의미를 갖게 되는 캐릭터였다.
악당이지만 어딘가 슬픔이나 사연이있을듯한 눈빛을 갖고 있는 양조위.
양조위의 매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캐릭터였지만, 기존의 이미지를 소모한 것일뿐,
더 나아가진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몇몇 장면과 전체적으로 이른바 아우라를 진하게 풍기는 그의 이미지는
동,서양을 통틀어 그만이 갖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신인이라고는 믿기힘든 탕웨이의 연기는 굳이 20분의 무삭제된 배드씬을 제외하더라도
화장하고 안하고가 다른 사람이 되듯, 충분히 인상적인 연기였다.

이안 감독은 확실히 중국 감독이라기보다는 미국감독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이번 작품은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몇몇 장면에서 대사 없이 느껴지는
 예술적인 순간순간들은 가볍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글 / ashitaka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