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올해의 영화 10편 그리고 올해의 한국영화 5편


2015년도 어느 덧 며칠 남지가 않았네요. 올해는 개인적으로 참 다사다난한 한해였는데, 그 만큼 영화도 더 간절해져서 더 많은 영화를 찾았던 것 같네요. 매해 이 쯤이 되면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영화들을 정리하는 글을 쓰곤 했었는데, 올해도 기록의 의미로 남겨보고자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야 알게 되었는데 지난 해에는 정리를 하지 못했네요. 지금 알았음;;;) 

올해의 영화 10편과 한국영화 5편을 별도로 선정하였으며, 각각 순위는 없습니다.



* 2015 올해의 영화 10편 (무순)




1. 내일을 위한 시간 / 다르덴 형제 (Deux jours, une nuit, 2014)


다르덴 형제가 객관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풀어낸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딜레마.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2040




2.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 조지 밀러 (Mad Max : Fury Road, 2015)


완벽한 성평등 영화이자 액션으로 내러티브를 완성해 내는, 아름답게 끝내주는 영화.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2015



3. 버드맨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Birdman, 2014)


가끔 영화와 현실이 혼동되는 것으로 놀라움을 만들어 내는 영화들이 있는데, 올해는 이냐리투의 '버드맨'이 그랬다. 




4. 폭스캐쳐 / 베넷 밀러 (Foxcatcher, 2014)


올해의 영화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연기를 만나볼 수 있었던. 아주 무겁고 스산한 분위기를 담아낸 걸작. 한참을 고생해서 레스링 라운드셔츠를 구한 노력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던.




5. 더 비지트 / M.나이트 샤말란 (The Visit, 2015)


진작 이런 작품으로 샤말란은 돌아왔어야 했다. 장르적 쾌감이 절정에 다다른 작품. 공포와 재미의 전환속도가 몹시 빨라 두눈 질끈 감는 동시에 킥킥 거리게 만들었던 작품. 반갑다!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2029





6. 투모로우 랜드 / 브래드 버드 (Tomorrowland, 2014)


투모로우 랜드는 분명 범적으로 올해의 영화 리스트에 들만한 작품은 못되겠지만, 취향저격이라고 해야할까. 순진에 가까운 순수함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왔던 영화. 아테나 역의 라피 캐시디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7. 마션 / 리들리 스콧 (The Martian, 2015)


영화 장인 리들리 스콧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까 싶은 화성을 배경으로 한 우주영화를 또 한 번 완성도 높게 그려냈다. 오락적으로는 물론이고 작품성 측면에서도 간과되어서는 안 될 수작.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2017




8. 택시 / 자파르 파나히 (Taxi, 2015)


자파르 파나히의 '택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처한 현실의 이야기를 꼭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와 그의 나라가 어떤 현실에 놓여 있는지 현실을 알게 되는 순간, 이 영화는 올해 최고의 걸작이 된다.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2053




9.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 드니 빌뇌브 (Sicario, 2015)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는 '제로다크서티'와 '카운슬러'를 하나의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끝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놓지 않는 긴장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2049





10. 바닷마을 다이어리 / 고레에다 히로카즈 (海街diary, 2015)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번에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평범하게 그리고 동화처럼 그려냈다. 언제 꺼내보아도 따듯해질 수 있는 코타츠 같은 영화랄까.



* 2015 올해의 한국영화 5편 (무순)






1. 한여름의 판타지아 / 장건재 (A Midsummer's Fantasia, 2014)


장건재 감독의 이 영화는 제목이 참 좋다. 내용을 포장하고자 한 제목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더도 덜도 없이 표현해낸 제목. 그것이 '판타지아'라는 점이 놀라울 뿐.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1978




2. 극비수사 / 곽경택 (The Classified File, 2015)


사실 기대가 크지 않았던 작품이었는데 보고나서 곽경택 감독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감명 받았던 영화. 유해진이 최근 출연한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았던 영화이기도 한. 실화의 감동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진심이 묻어나는 수작.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1977




3. 베테랑 / 류승완 (Veteran, 2014)


류승완의 '베테랑'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작가가 무언가 현실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 할 때 그 방식을 어떻게 가져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가에 관한 대답을 발견할 수 있었던 점이었다. 액션과 오락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현실의 메시지를 많은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영화.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1994




4. 검은 사제들 / 장재현 (The Priests, 2015)


엑소시즘을 다룬 한국영화가 이 정도의 재미와 퀄리티를 가질 수 있다면 더 무엇을 바라랴. 강동원의 캐스팅은 영화와 배우 모두에게 효과적인 선택이었으며, 속편이 가장 기다려지는 한국영화다.


리뷰 : http://www.realfolkblues.co.kr/2042




5. 나쁜 나라 / 김진열 (Cruel State, 2015)


'위로공단'은 올해의 한국영화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세월호 유가족들과 이 나라의 현실을 다룬 '나쁜 나라'를 선택했다. 조금이나마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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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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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 (大虎, 2015)

모노노케 히메의 향기를 느낀 조선 호랑이 설화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의 각본을 쓰고 '신세계'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박훈정 감독의 신작 '대호'를 보았다.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지리산 산군으로 불리는 호랑이를 잡으려는 일본 군과 한 때 조선 최고의 포수로 불리웠던 천만덕(최민식)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대호'는 무엇보다 호랑이라는 존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영화가 호랑이를 다루는 방식은 마치 배우, 그것도 최민식에 버금가는 비중의 캐릭터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같은 점은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 지점이다. 왜냐하면 극중 천만덕과 일본군들이 대표하는 세계와 산군 호랑이가 대표하는 세계가 서로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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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의 핍박 받는 삶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 3국의 관객들이 본다면 공생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이 시대 배경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즉,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들처럼 이 시대적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이 구도를 써먹지 않는 다고 보기도 어렵다. 영화는 오히려 이 호랑이와 명포수였던 천만덕의 캐릭터에 집중하여 스토리를 천천히 전개해 간다. 다시 말해 호랑이가 등장한다고 했을 때 중후반부에 가서야 제대로 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했으나, 천만덕의 등장이 그랬던 것처럼 초반부터 등장하여 캐릭터 소개와 자신 만의 이야기를 이어가게 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최민식이 연기한 천만덕 만큼이나 공감대를 형성이 가능한 구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박훈정 감독의 '대호'가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호랑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배경 혹은 상대로서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에 가까운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흔치 않은 구도로서 호불호와 상관없이 일단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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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천만득의 세계과 호랑이의 세계가 다르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것의 장점이라면 바로 그 다른 두 세계가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호랑이가 인간 캐릭터 못지 않은 성격을 갖게 되면서 마치 동물농장에나 나올 법한 (이건 결코 비하하는 표현이 아니다)감동적인 스토리가 가능해졌는데, 개인적으로도 고양이를 오래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동물과의 교감이 판타지가 아니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같은 극적인 상황 속 인간과 호랑이의 교감을 묘사하는 방식이 너무 판타지 같이, 그러니까 유치하지 않게 묘사된 건 분명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다. 이런 시도는 흔히 너무 순진하게 묘사한 나머지 유치하고 설득력을 얻지 못하게 되는, 그래서 갑자기 너무 심한 판타지로 빠져버리게 되는 경우가 잦은데 '대호'는 그렇지 않고 그 다른 세계 간의 조우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 같은 경우는 호랑이에게 더 깊은 공감대를 느꼈을 정도로 이 캐릭터의 묘사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고 CG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부 액션 장면에서 살짝 이질감이 느껴지는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전혀 극의 몰입에 방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퀄리티였다. 호랑이가 배경으로 살짝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주연급으로 다양한 액션과 표정을 연기하고 있는 것은 물론, 다수의 늑대 때가 등장하는 장면까지 여러 CG가 동원 되었는데, 그간 한국 영화의 CG에 비교하자면 괄목할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종병기 활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하지만 반대로 이 호랑이가 중심이 된 내러티브가 꽤 괜찮았기 때문에 일본군과 포수대의 이야기, 그리고 천만덕의 이야기까지, 인간 세계의 내러티브가 상대적으로 아쉽게 느껴졌고 그렇다보니 조금은 부수적으로, 특히 엔딩에 가서는 차라리 하나의 이야기로 빠르게 집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단순히 긴 러닝 타임 때문이 아니라 중후반부의 전개는 각각의 다른 이야기를 빠르게 하나로 만들기 보다는 아직도 각각의 이야기를 한참 더 하는 식이여서 오히려 몰입도가 조금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한참을 호랑이 중심으로 전환 없이 전개하다가 다시 천만덕의 이야기가 등장하니, 마치 영화가 끝날 시점을 지나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후반부의 선택과 집중이 더 효율적으로 이뤄졌더라면 좀 더 오래 남는 영화가 되었을 것 같은데, 호랑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기에 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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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덕의 캐릭터와 포수대의 이야기가 나쁜 것은 아닌데, 호랑이의 이야기에 흠뻑 빠지다보니 차라리 더 호랑이 중심의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랬다면 지금보다 10배는 더 슬픈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도 호랑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플 정도지만.


1.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던 영화는 다름 아닌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였어요. 그런 느낌이 적지 않은데, 아예 진짜 그렇게 가버렸더라면 초명작이 되거나 망작이 되긴 했을듯. 천만덕의 아들을 산군 호랑이가 어렸을 때 부터 키워서 나중에 명포수인 천만덕과 호랑이 손에 자란 아들이 만나게 되는. 호랑이가 말도 하고. 으하하;;;


2. 천만덕과 아들의 대화 시퀀스가 의외로 재미있었어요. 구수한 사투리와 유치하지 않은 대화와 유머가 재밌었다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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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Inside Men, 2015)

뜨거운 연기로 살려낸 암울한 현실



아마 '부당거래'를 본 관객이라면 '내부자들'을 보고 난 뒤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은 조폭, 검찰, 언론, 정부, 기업 등이 연루 된 이른바 권력 범죄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뭐 아시다시피 이 이야기는 결코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 가운데 누구 하나 마음껏 응원하거나 공감할 만한 캐릭터는 찾아 보기 어려우며, 권선징악을 무작정 바라는 것보다는 오히려 씁쓸한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현실 같은 영화, 영화 같은 현실을 담고 있다. 또 다른 영화로는 역시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을 들 수 있을 텐데, '베테랑'이 똑같이 암울한 현실을 유쾌한 방식으로 그려냈다면 '내부자들'은 그 암울한 현실의 커넥션과 세기의 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 (유)내부자들 문화전문회사 . All rights reserved


이미 이런 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의 관계와 범죄를 다룬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익숙한 시점에서 이 같은 영화가 인상적이려면 일반인들은 쉽게 예상하거나 상상하기 어려운 커넥션의 디테일과 판세를 뒤집을 만한 카드를 영화가 얼마나 잘 숨기고 또 잘 꺼내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내부자들'은 그런 측면에서는 완성도가 조금 아쉬웠다. 이 꼬인 현실 만큼이나 영화가 다루고 있는 권력 범죄의 구도는 복잡하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데, 그렇다보니 이 각각의 관계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는데에 조금은 버거움이 느껴졌다. 액션이나 감동이 아니라 전적으로 이야기가 주는 반전이나 전개 과정의 긴장으로 영화를 이끌어 가는 이 같은 장르의 경우, 끝까지 그 짜임새를 유지하지 못하면 관객들 입장에서 쉽게 이탈할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되는데 '내부자들'은 중후반부로 갈 수록 조금은 완성도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내부자들'은 짜임새 측면에서 깊은 인상을 받거나 호평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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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내부자들'을 볼 만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많지는 않지만 적어도 확실하다. 이미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등의 배우들이 그 확실한 이유다. 올해 한국 영화에서 연기 측면으로만 보았을 때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이 대단한 배우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대단한 연기를 펼친다. 앞서 권력 범죄를 다룬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 익숙하다는 점과 마찬가지로, 조폭, 언론, 정부 관계자, 검찰 등 전문직 인물의 생활 연기 역시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한 편인데, 아주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한 것이 아님에도 '내부자들'의 배우들은 연기력만으로 그 인물들을 효과적으로 살려낸다. 조연들의 연기들도 마찬가지다. 흔히 이런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의 경우도 어느 정도 관성화 된 연기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조연들의 연기도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아서 보는 맛이 있었다. 특히 새삼스럽지만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참 연기를 잘 한다는 생각을 또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뭐,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 점도 있고 (이번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안상구라는 캐릭터는 묘하게 배우 이병헌을 겹쳐지게 하는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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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부자들'을 제 2의 '부당거래' 혹은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기대했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조금 기대치를 낮추다면 배우들의 뜨거운 연기 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겠다.



1. 참고로 CGV에서 관람하였는데 상영 전 나오는 '자랑스러운 나라' 광고와 이 영화가 보여준, 실제와 좀 더 가까운 현실의 괴리감은, 다시 한 번 이 광고를 하는 것이 홍보 측면에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을 또 하게 만들었음.


2.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권력자들의 접대 장면의 수위가 조금 센데, 예전 같으면 '영화가 좀 심하네'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으나 언제부턴가 '현실은 더하겠지'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씁쓸한 현실이랄까.


3. 엔딩과 관련해서도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더군요. 우장훈 (조승우)이 과연 강 건너로 가지 않을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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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 (The Priests, 2015)

강동원이어서 가능한 매력적인 엑소시즘 영화



'검은 사제들', 무엇보다 '검은' 그리고 김윤석과 강동원이라는 조합 만으로도 이미 보통의 영화가 갖고 싶어하는 매력은 충분히 가진 채로 출발한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 (The Priests, 2015)'은 그 매력을 끝까지 잘 활용해 낸 영리하고 매력적인 영화다. 엑소시즘이라는 우리나라 영화에서 흔히 찾아보기 힘든 소재와 신부복을 입은 강동원이라는 설정은, 안먹어도 배부른 반찬 같은 재료였는데, 하나 우려했던 건 그냥 재료로만 소비하고 마는 겉만 화려한 그런 영화가 아닐까 했던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무언가 특별한 설정이나 배우의 이미지를 가져오는 것이 너무 분명한 영화들의 경우, 그것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해 그냥 그런 영화가 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검은 사제들'은 기대 이상으로 영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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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놀랐던(?)건 이 영화가 엑소시즘을 다루는 방식과 비중이었다. 국내 상업영화에서 엑소시즘을 다룬다면 그저 커다란 설정이나 배경 정도로 활용하고 다른 갈등을 불러와 전개하는 경우가 예상되었으나, '검은 사제들'은 그야말로 엑소시즘이 중심이 된 그 자체의 영화였다. 물론 그 악의 기원이나 성장 등에 대한 과정과 설명을 역사적으로 풀어내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가 택한 구성이 상업영화로서 거의 최적이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보여줄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의 정수를 이끌어 낸 편이다. 다시 말해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았다. 김윤석이 연기한 김신부 캐릭터의 과거나 트라우마 등을 드라마 적으로 길게 소개한다거나, 강동원이 연기한 최부제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딱 그 정도로만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쓸데없이 감동을 일으키기 위한 설정이나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바로 엑소시즘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이 작품을 끝까지 몰입도에 있게 즐길 수 있었던 요소였다.


부마자로 부터 사령을 끌어내기 위한 구마예식은 이 영화의 전부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구마예식을 이 정도 비중으로 전부로 만든 선택이 무엇보다 탁월했다. 그리고 이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구마예식을 관객들이 끝까지 몰입할 수 있도록 한 디테일들과 영화적 구성은 국내 영화에서 이런 수준의 엑소시즘 영화를 본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흥분되기까지했다. 이 작품을 보는 내내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콘스탄틴'이 떠올랐는데, 커다란 액션 없이 기도문 위주의 구마예식으로 '콘스탄틴'과 비슷한 재미를 이끌어 낸 것은 다시 생각해도 '검은 사제들'이 이뤄낸 최고의 성과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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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매력적인 큰 이유 중 하나는 강동원이라는 배우라는 걸 부정할 수 없을 텐데, 영화 역시 그걸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니까 영화가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의식해 일부러 캐릭터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 자체의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여 이 캐릭터를 완성하고, 또 카메라도 최대한 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마예식 중 최부제가 기도문과 외국어로 통역을 하는 장면의 경우, 이 긴장감과 몰입감에 적지 않은 이유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만들어낸 비주얼 그 자체였다. 키아누 리브스의 '콘스탄틴'이 그랬던 것처럼, 강동원의 '검은 사제들'도 강동원이어서 성립 가능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했고 영화가 그걸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소담 배우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웰메이드 특수분장과 특수효과에 힘입은 그녀의 연기는 '검은 사제들'을 기억에 남는 엑소시즘 영화로 만든 포인트 중 하나였다. 관객을 그저 눈을 감았다 뜨거나, 갑자기 눈을 뜨거나 하는 것으로 놀래키는 수준이 아니라, 엑소시즘 영화답게 사령에 사로잡힌 (영화 내용상으로 보았을 땐 사로잡고 있는) 캐릭터를 이 보다 더 잘 연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연기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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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적으로 보았을 땐 이 영화의 배경을 서울 명동 한복판으로 설정한 것이 인상적이었고, 영화는 반복적으로 이 사실을 인지시키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디 인적드문 시골의 폐가나 외국의 오래 된 성당 등이 아니라, 사람들로 북적이는 명동 한 가운데. 고몇 걸음만 나오면 바로 북적이는 상점들로 연결되는 이 골목과 건물에서 벌어지는 구마예식이라는 설정은, 이 엑소시즘 영화를 더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포인트였다. 더 나아가 영화 속 대사로도 등장하는 것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일에 자의로 몸을 담게 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적지 않게 생각할 만한 거리를 주고 있어 이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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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속편의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두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이 이야기가 국내 시장에서 속편까지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검은 사제들'은 시리즈로 연결되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첫 번째 영화였다.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강동원이 출연했던 영화 중에 속편이 나왔으면 하는 작품이 하나 있었더랬다. '초능력자'라고. '검은 사제들'도 속편이 가능할까? 아마 안되겠지.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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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다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영화를 평균 이상으로 좋아하다보니 가끔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들을 보면 최대한 그 장소를 직접 찾아가서 다시 한 번 영화의 기운과 여운을 느껴보고자 하는 편이다. 바로 지난 주에 본 홍상수 감독의 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도 보는 즉시 그곳에 가고 픈 욕구가 발동하는 영화였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은 워낙 저예산이기도 하고 짧은 시간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아 실제 존재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것은 물론, 특별한 장소를 일부러 찾아 촬영하기 보다는 그냥 어떤 동네의 평범한 장소들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그의 영화를 보면 꼭 한 번 그 동네를 찾아보고픈 생각이 들곤 한다. 이번 작품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수원화성 근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영화를 본 바로 다음 날 가벼운 마음으로 수원을 찾았다.





영화의 첫 장면에 화성행궁 앞에서 극 중 함춘수 (정재영)가 담배를 피는 장면은 바로 저 큰 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영화를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늦여름 찾아간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 입김이 나는 계절에 찾아왔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화성행궁에 입장하기 위해 입장권을 구매하는 장면. 참고로 내가 간 날은 행사 기간이라서 무료 입장이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곳. 바로 복래당 (福內堂)이다. 이 곳에서 함춘수는 윤희정 (김민희)을 처음 만나게 되어 어색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정재영이 앉아있던 자리는 볕이 몹시 잘 들었다. 정말 솔솔 잠이 올 것 만 같은 햇살.





이 쪽은 극 중 김민희가 앉아서 요구르트를 먹던 자리. 특별할 것은 없지만 영화 속에서 워낙 그의 내레이션을 통해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소개를 듣다보니 달리 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참고로 화성행궁은 정조가 머물던 임시처소였고 복내당은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렀던 곳이였다고 한다.





이 곳은 바로 화성행궁 옆에 위치한 수원호스텔 건물인데, 영화 속에서는 거의 첫 장면 쯤에 정재영이 저 외쪽 창문을 열고 바로 사진을 찍은 이 아래 쪽의 고아성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이곳은 행궁 옆의 골목을 조금만 걷다보면 왼편에 나오는 가게인데, 바로 극 중 정재영과 김민희가 술을 마시며 오랜 대화를 나누던 바로 그 스시집이다. 이 곳은 보시다시피 가게 앞에 영화 포스터도 전시해 놓으며 촬영지라는 걸 알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리얼리티를 위해 직접 들어가서 스시에 소주 한 잔을 할까도 했지만 너무 낮시간이라 이번엔 패스.




그리고 여긴 극 중 김민희가 사는 집으로 등장하는 곳인데, 이 곳 역시 바로 행궁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참고로 영화를 보면 이 집 바로 뒤에서 절이 있어서 종 치는 소리가 들리곤 하는데, 실제로 뒤 편에 큰 불상이 위치해 있었고 종소리도 가깝게 들려왔다.


이 곳 말고도 가보려고 했는데 깜빡하고 못 갔던 곳이 '시인과 농부'라는 찻집인데, 극 중 인물들이 술을 마시는 장면의 배경이 된 카페다. 이 곳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긴 영화 촬영과 상관없이도 독특한 분위기로 제법 소문이 난 찻집이다. 참고로 이 곳은 개인적으로도 아는 지인들이 다녀온 후기로 먼저 알게 된 곳으로, 영화 속에서 다시 보니 더 반가운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짧게나마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배경이 된 수원 화성행궁 근처를 둘러보았다.

찬바람이 부는 한 겨울 즈음에 다시 한 번 찾아, 입김 호호 불며 또 한 번 영화를 느껴보고 싶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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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Right Now, Wrong Then, 2015)

무릅쓰고 편안하게



홍상수 감독의 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제목을 붙여 쓴 것이 감독의 의도인 듯 하여 그대로)는 감독의 최근작들의 경향과 마찬가지로 같은 인물들의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북촌방향'이나 '옥희의 영화'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등과 이 영화가 다른 점이라면 두 가지의 다른 이야기의 구분이 더 명확한 동시에 특별한 시공간적 (혹은 차원적) 변화로 인한 이야기의 갈래가 아닌 아주 미세한 말과 행동으로 인한 변화의 줄기를 따르는 영화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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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이렇게 저렇게 분석해 보고 픈 마음이 가득 들었던 '북촌방향'과 같은 영화와는 다르게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얼핏 또 같지만 다른 이야기를 영화적 구성을 곁들여 펼쳐 놓은 영화가 아닐까 싶지만, 사실은 훨씬 더 직관적이고 가벼우며 편안한 작품이다. 1부의 이야기는 극 중 영화감독인 함춘수 (정재영)의 주관적인 기억 혹은 조작된 과거, 아니 이런 구성적 가능성은 다 재쳐두고, 그저 솔직함 보다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계산하고 절제하고 고민한 결과물을 만나게 된다. 함춘수는 우연히 만나게 된 윤희정 (김민희)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에게도 호감을 얻기 위해, 쉽게 말해 되지도 않는 말로 그녀를 칭찬하고 환심을 사기 위해 많은 말과 행동을 하며 이른바 그녀에게 많은 공을 드린다. 하지만 어찌보면 처음부터 잘 될리 없었던 이 불안한 관계는 결국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함춘수는 다음날 그 화를 고스란히 떠안으며 쓸쓸히 수원을 떠난다.


그에 반해 2부의 이야기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 2부의 함춘수 역시 윤희정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드러낸다. 2부의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그녀의 그림에 대해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관계가 어긋나는 듯 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특히 그녀의 지인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추태를 부렸지만 관계가 깨어지기 보다는 오히려 '그럴 수도 있지'하는 정도로 지나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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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이 이야기는 아주 작은 말들로 인해 관계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도 되지만, 그보다는 바로 그 순간 순간의 말과 행동에 너무 집중하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그렇게 솔직하게 다 보여줘도 아주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영화 속 대사를 빌리자면 이 루틴이 깨진다고 세상이 망하는 건 아니라는 걸 유쾌하게 전하고 있달까. 지금은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 때는 틀렸다고 생각되었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아무 소용없다는 허무한 감정보다는, 그러니까 너무 일희일비하며 자신을 옥죄일 필요는 없다는 말로 느껴졌다. 그래서인가, 근래 본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가운데 가장 소소하고, 부담 없고, 좋은 의미에서 머리 쓸 일 조차 거의 없는 편안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묘하게 또 보고 싶은, 그래서 그 순간의 찰나를 발견하고 픈 영화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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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영화는 수원화성 근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영화를 본 다음 날 바로 다녀왔어요 (이건 곧 별도로 쓸 예정). 영화 속 처럼 추운 겨울에 한 번 더 다녀왔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더군요.

2. 김민희의 연기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연기와 실제가 구분이 안되는 차원이더군요. 이 영화의 유일한 성립필요 조건은 극중 김민희가 연기한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이냐 라는 것 정도였을텐데, 완벽 그 자체.

3. 최화정의 '감독님 왜 그러세요!' 이 대사 잊지 못할 것 같아요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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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The Throne, 2014)

이야기를 완성하는 배우들의 압도적 연기력



아마 많은 이들이 사도세자 이야기가 또 한 번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이미 너무 잘 아는 이야기인데 더 할 이야기가 있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사도세자 이야기는 조선왕조의 수 많은 이야기 가운데서도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자주 만나볼 수 있었던 역사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준익 감독은 이 익숙한 이야기를 최대한 다른 시각으로, 즉 역사적 의미나 더 정확한 역사 구현이 아닌 철저하게 개인적인 사연으로 사도세자 이야기를 풀어냈다. 왕이 되지 못한 사도세자와 당시 왕이었던 영조의 역사를 되짚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영조 그리고 아버지가 조선의 왕이었던 아들 세자의 이야기에 깊게 파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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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이야기가 여러 번 영화나 드라마로 소개되었다고는 하나 이전에 관객이 알고 있는 정보를 감안하지 않는다 해도 '사도'의 이야기는 충분히 성립한다. 이준익의 전작 '왕의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 영화 '사도'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비극과 깊은 슬픔이다. 영화는 이 비극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플래시백 형태로 보여준다. 즉, 영화의 첫 장면에서 후반부에 등장하는 비극적 사건을 미리 보여주고, 그 일이 일어나기 이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 지를 보여줌으로서 관객들로 하여금 시작부터 비극적 시각으로 이 이야기를 바라보도록 만든다. 이것은 영화가 이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에 대한 성격을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의 기운이 감도는 작품이다. 또한 그 비극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는 걸 (굳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이 느끼게 함으로서, 인물들의 슬픔이 더 깊게 느껴지도록 한다. 영화가 영조와 세자, 특히 세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애처로움 그 자체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운명에 처한 것도 애처로운데, 그가 바랐던 것이 어쩌면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 뿐이었다는 이야기로 세자를 비극적 운명을 자처했다기 보다는 선택권 없이 놓여 버린 가여운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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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가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바로 그 영화의 애처로운 시각에 관한 것인데, 세자와 그를 지지하는 인물들은 물론, 그를 시기하고 반대의 편에 서 있는 인물들조차 날이 서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보통 극 중 인물을 관객이 애처롭게 여기도록 만드는 방식으로는 주인공과 다른 편에 서 있는 인물들이 더 가혹하게 주인공을 밀어 붙임으로서 그 효과가 더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의 경우는 대표적인 대립 구도에 서 있는 영조의 묘사 방법은 물론이고, 반대의 편에 서 있는 여러 가신들과 인물들에게서도 그러한 가혹함 혹은 날 섬이 느껴지지 않는 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즉, '사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자에 대한 안쓰러워 하는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모든 인물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유지하게 함으로서, 관객들이 세자에게 더 큰 감정적 몰입과 동정의 마음을 갖도록 했고, 그것은 정확히 통했다.


'사도'가 슬픔을 전하는 방식은 주인공을 사면초가로 밀어 넣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사면초가에 운명적으로 놓여버린 인물을 애처롭게 바라볼 수 밖에는 없는 주변을 드러내는 방식에 가깝다. 이러한 방식을 극대화 한 인물이자 이 영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인 영조의 묘사를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는데, 영조라는 캐릭터를 철저하게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리려 한 것이 그것이다. 즉, 겉으로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진심이 아니었던, 혹은 진심으로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한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송강호라는 배우를 통해 120%로 표현해 낸다. 예전에 '색, 계' 같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는데,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배우의 영화 외적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겨우가 있는데, '사도' 역시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송강호라는 배우의 인상이 영조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잘 모르는 배우이거나 악당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가 이 역할을 연기했더라면 아마 영조의 깊은 진심이 미처 다 전달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송강호라는 호소력 짙은 배우가 이를 연기함으로서, 관객은 최소한 좀 더 영조의 진심을 듣고자 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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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 역시 영조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배우의 선한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연기력 그 자체로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인데, 유아인이 최근 작 '베테랑'에서 악역을 연기했음에도 워낙 잘 한 덕에 그 초점이 연기력으로 집중되었던 것은, '사도'를 만나게 되는 관객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갖게 하였는데, 놀랍게도 유아인이 연기한 세자는 그러한 기대를 넘어서서 이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비극의 주인공으로서의 사도 세자를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거의 연달아서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진데, 조태오가 아직도 생생한 관객들로 하여금 아주 짧은 시간에 완벽히 사도 세자의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을 만큼 유아인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만약 올해 지금까지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연기력 만으로 꼽자면 이 영화 '사도'를 주저 없이 꼽을 만큼, 유아인과 송강호의 연기는 이 영화의 설득력 그 자체였다. 그렇게 영화가 설득력을 갖게 되면서 결국 이 비극적 운명에 놓여야만 했던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이야기에 다시 한 번 흠뻑 빠질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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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영화 속 이야기가 너무 슬픔과 비극을 강조할 땐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빠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분명 비극을 감정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이 설사 강요라 해도 넘어가고 싶을 만큼의 힘을 가진 비극이었다. 그리고 '왕의 남자' 와 마찬가지로 영화가 거의 끝나 갈 때 한 명의 인물을 깊이 그리워 하게 되는 경험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유아인은 지금이 전성기다. 그가 만든 사도 세자를 만나는 것 만으로도 '사도'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1. 전 워낙 사전 정보를 얻지 않은 터라 문근영이 나오는 줄도 몰랐어요;;; 후반부의 분장은 좀 충격;;;

2. 소지섭이 깜짝 등장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사실을 몰랐더라도 영화를 보게 되면 그가 분명 나오게 될 것이라는 걸 알게 될 정도로 닮은 아역이 나옵니다 ㅎ

3. 좀 가벼운 얘기로 영화 속 영조와 사도 세자의 이야기는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에 딱 어울리는 주제라는 생각이 ㅋ

예법과 공부를 엄하게 가리켜 훌륭한 왕으로 자라길 바랐던 아버지와 그저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간절했던 아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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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타카의 레드필]

베테랑의 진짜 이야기는 배기사와 최상무에게 있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 연일 화제다. 류승완 감독의 첫 여름 시즌 작품이자 한층 성숙한 오락 영화였던 '베테랑'은 이미 수 많은 매체에서 평가하고 언급했던 것처럼 일종의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대한 대리 만족으로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많은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미 '베테랑'에 대한 리뷰는 마쳤으나 (베테랑 _ 울분에 가득찬 현실 세계의 활극) 조금 더 하고 싶은,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또 한 번 글을 쓰게 되었다. '베테랑'이 화제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의 주된 갈등 관계에 있는 두 주인공인 서도철 (황정민)과 조태오 (유아인)의 캐릭터와 관계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는데, 내가 또 한 번의 글을 통해 꼭 한 번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정웅인이 연기한 배기사와 유해진이 연기한 최상무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다. 이 두 명의 캐릭터는 그 간 다른 영화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캐릭터들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하거나, 하기 힘들었던 행동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베테랑'의 메시지를 전면에서 소리 내어 외치고 있는 캐릭터가 서도철과 조태오라면, 배기사와 최상무의 캐릭터는 더 현실적이거나 더 판타지적인 면모로 진정한 이 작품의 메시지를 담아 내고 있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조태오라는 캐릭터가 워낙 괴물 같은 인물이라 여러가지 뜯어보고 연구하는 맛이 있기는 하지만, 더 다각적으로 흥미롭고 뜯어볼 필요가 있는 캐릭터는 바로 최상무다. 최상무는 조태오로 대표되는 재벌가, 즉 권력자들 가운데서도 조금 미묘한 위치에 놓이는데, 어쩌면 배기사와 정반대에 놓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최상무에 대해 얘기할 때 권력욕 혹은 야망 이라는 단어들이 등장하는데 조금은 달리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상무는 권력욕은 있으나 현재 사실상의 권력은 없고, 어찌보면 그가 진짜 부나 권력을 쥐게 될 시기는 결국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스스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망나니처럼 행동하는 조태오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캐릭터들과는 달리 그는 조태오의 범위를 벗어났을 때에도 그를 나무라거나 못 마땅해 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난 이 영화에서 가장 불쌍한 캐릭터가 최상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스스로도 언제부터 잘못되었고, 무엇이 잘 못 되어가고 있는지 이제는 더 이상 분간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버린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마 보통의 2인자 혹은 나쁜 주인을 모시는 이들의 성향을 보았을 때, 막나가는 주인의 행동이 사실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어쩌겠어'라는 식으로 뒤치닥거리는 해내거나 혹은 자신 만의 야망을 위해 그 시간들을 견뎌낸 뒤 기회가 왔을 때 상황을 전복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상무의 경우는 이 둘 다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의 충성은 100% 진심에서 우러난 것인가 하면 또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최상무도 처음엔 '태오야'하며 적어도 업무 시간이 아닐 땐 편한 관계 였을지 모르고 조태오가 너무 심한 행동들을 저지를 땐 어른답게 충고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최상무는 조태오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점점 괴물이 되어 갔고, 나중엔 (영화 속 시점) 조태오가 괜찮다고 해도 이젠 그래도 아니야 라고 말할 정도로 자기 생각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여기에 정점을 찍는 것이 바로 조태오의 잘못을 최상무가 뒤집어 쓰도록 권유 받게 되는 장면이다. 사실 이 장면을 볼 때 '아, 이쯤에서 최상무가 큰 결심을 하겠구나' 싶었었다. 왜냐하면 영화 초반부터 보여주었던 최상무의 모습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시종일관 불안하고 무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하지만 그 강도는 더 강해져만 가는 상황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강도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하지 않을까 했었던 것인데, 최상무는 그러지 못했다. 이 과정 속에서 잠시 고민을 하는 듯 보였으나 결국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 서도철과 대면하는 장면에서 최상무의 모습은 자기 최면에 빠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뭐랄까, 잡혀와서 억울하게 노예가 된 경우가 아니라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자청하다 보니 나중엔 나기 자신조차 본래 자신이 노예였다고 생각될 정도로 이 현실에 사로잡혀 버린 것처럼 보였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최상무와 배기사는 전혀 다른 인물이지만 정확히 반대에 놓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둘 모두 자의든 타의든 이 정의롭지 못한 현실 속에 놓여버린 상황에서, 한 명은 목숨을 위협하는 더 큰 시련이 왔을 때 조차 용기를 잃지 않았지만 다른 한 명은 오히려 탈출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스스로 그 상황에 갖혀 버리기를 선택하였으니 말이다. 영화 속 최상무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배기사의 캐릭터보다 더 씁쓸함이 느껴졌다. 누구나 그 크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부나 명예 혹은 권력을 갖게 되었을 때, 그로 인해 가치관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결정의 유혹을 받고, 더 나아가 작은 크기일 수록 그 유혹을 스스로 정당화 하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최상무는 그렇게 단 한 번의 용기를 내지 못한 채 스스로 가해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자, 이제 정웅인이 연기한 배기사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전 글에도 썼지만 나는 왜인지 배기사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불안불안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의도 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다른 많은 영화들에서 얻은 경험으로 인한 선입견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배기사가 등장하는 모든 씬은 운전을 하거나 어두운 밤에 홀로 있거나 등 마치 곧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은 직전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교통 사고는 나지 않고, 밤 장면에서도 폭력이 있기는 했지만 불안하게 했던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만약 이것이 의도된 연출이라면 하루하루 살얼음 판을 걷는 듯 불안 불안한 인물의 심리를 캐릭터의 대사나 상황이 아니라 간접적인 연출로서 그려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즉, 여기서 무슨 일이 차라리 일어 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기사가 등장하는 모든 씬은 마치 공포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떨리는 순간이었다.


어떤 권력이나 물리적 힘으로 인해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들은 다른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배기사의 경우는 그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는데, 아마 보통 같았으면 일을 하고 제대로 된 돈을 받지 못하고 영화 속 장면으로 유추해 보았을 때 대부분의 기사들이 결국 전소장 (정만식)에게 이야기해 보았자 의미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몇 번 따지고 항의하는 것에서 그 불만을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이 항의하는 과정을 보아도 배기사는 강렬하게 항의하는 쪽이기는 커녕 오히려 뒷 쪽에서 그냥 지켜보는 성격이었다는 점도 그가 여기까지는 그다지 큰 차이점이 없는 캐릭터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 배기사는 홀로 늦게 까지 남아 전소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렸고, 전소장에게 작지만 용감하게 끝까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소장이 폭력을 행사할 때도 배기사는 전혀 맞대응하지 않으며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것에만 신경쓴다.


그리고 그 다음 조태오의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것 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은 행동이라 하겠으나, 그 이후 조태오의 사무실로 불려가 아들이 보는 앞에서 전소장과 결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는 분명 달랐다. 이미 이 상황은 여러가지 상식이 무너진 상황으로 그가 여기서 전소장과 힘껏 결투를 벌이더라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라 하겠는데, 배기사는 이 미친 상황에 끝까지 빨려들어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용기있는 행동을 보여준다. 전소장도 이 상황이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는 것은 잘 안다. 그 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권력의 기에 눌리지 않은 이는 오로지 배기사 한 명 뿐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다음이 더 놀라웠다. 난 처음 배기사의 추락에 대한 반전 아닌 반전이 밝혀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자신의 현실을 비관해 스스로 뛰어내린 것이 훨씬 설득력 있다고 여겼었다. 무엇이 더 현실적으로 설득력 있는 가에 대한 답은 여전히 같지만, 무엇이 더 의미 있는 가에 대한 답은 분명 영화 속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배기사는 그렇게 아들이 보는 앞에서 두드려 맞고 그 값으로 보상 이상의 돈을 받았지만 현실을 비관해 자살하려고 다시 건물로 향한 것이 아니라 조태오에게 다시 따지려고 건물을 찾는다. 난 배기사의 이 행동이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영화 속 캐릭터들의 여러 상황 속에 나를 대입해 보았을 때 가장 하기 힘든 행동을 꼽으라면 바로 배기사의 이 행동일 것이다. 가깝게는 서도철, 멀게는 다른 액션 영웅들처럼 이런 악당들을 제대로 응징해 주어야겠다는 심정으로 다시 올라간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 굴욕적인 일을 당할 것이라는 것도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배기사는 다시 건물을 올라 조태오를 만났다.


이것은 '베테랑'의 여러 판타지 가운데 가장 큰 판타지에 가깝다. 현실에서 이런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베테랑'이 인상적인 건 이미 많이 논의 되었지만 판타지를 그리 되 허무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적이자 용기를 북돋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그러한 용기를 갖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가져야 하지 않겠냐고. 거기서 부터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 아니겠냐고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더 의미가 크다. 아마 이 역시 다른 영화였다면 말그대로 건물에서 떨어져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것으로 전개했을 텐데, '베테랑'은 배기사가 절대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영화였기에 그가 살아있고, 앞으로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암시를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그래서 이 마지막 장면은 너무 의도적일지언정 결코 빠져서는 안 될 장면이라 하겠다.


자신이 처한 각자의 험한 현실 속에서도 배기사 처럼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래도 용기를 낼 수 있기를 응원하는 영화가 바로 '베테랑'이다.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협녀, 칼의 기억 (Memories of the Sword, 2014)

내면의 소용돌이는 표현 못한 반쪽의 무협영화



처음 전도연과 김고은이 긴 옷자락을 휘날리며 검을 휘두르고 있는 스틸컷을 보았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 '협녀'라는 제목 때문이라도 박흥식 감독의 신작 '협녀, 칼의 기억'은 무협 영화의 팬으로서 몹시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국내에서 제대로 된 무협 영화를 찾아보기란 흔치 않은 현실에서 '협녀'라는 제목으로 개봉하는 작품이라면, '협녀'라는 제목의 무게를 스스로 견딜 준비가 될 작품이 아닐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미 연기력으로보나 1차원적인 이미지로보나 이병헌과 전도연의 캐스팅은 이보다 더 좋은 캐스팅이 쉽게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는 점도 기대에 큰 몫을 했다. 하지만 개봉일 챙겨보게 된 '협녀, 칼의 기억'은 우려했던 대로 무협의 정수를 제대로 담아내지는 못한 채 드라마와 이미지에 기댄 반쪽의 무협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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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영화가 꼭 이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정통 무협 영화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이 작품은 많은 한국 혹은 한국형 영화가 그러하듯이 드라마의 비중이 몹시 강한데, 무협이라는 장르와 세계관을 묘사하려는 영화하면 드라마를 중심에 두더라도 이 경우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영리하지 못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지금까지 인상 깊게 보았던 무협 영화들을 돌이켜 보자면 그 안에도 물론 드라마가 모두 존재했으나, 그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확실히 다른 장르 영화의 드라마와는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인물들 간의 갈등이나 그 갈등이 깊어지고 해소되는 과정을 그리 되, 구구절절 설명하기 보다는 아주 함축적이고 담백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영화적 감동과 멋을 느낄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협녀, 칼의 기억'은 이미지 측면의 무협 요소를 모두 제외하면 과연 이 영화를 무협 영화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 핵심의 요소가 빠진 듯한 느낌이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극 중 인물들의 행동들은 무협 영화의 인물들이라고 보기엔 조금은 사사롭고, 사사로운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문제가 없을 때에도 그 감정을 스스로 격하 시키는 듯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복수와 복수. 야망과 사랑이라는 감정들의 구도는 나쁘지 않았는데, 무언가 그 이음새가 그 감정의 무게를 견디기엔 너무 가벼운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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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배우들의 연기 자체는 모두 인상적이었다. 특히 유백 역을 맡은 이병헌의 연기는 마치 장예모의 '영웅'에 등장하는 한 인물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무협 영화의 캐릭터로서 강렬한 인상을 전달했다 ('영웅'에 대한 영화적 평가와는 별개로 그 만큼의 무게감을 줄 정도였다는 것). 사실상 악당이 등장하지 않고 세 인물 (유백, 월소, 홍이)이 서로 얽히는 구조에서, 악당이 등장하는 영화와 큰 차이 없이 끝까지 긴장감을 줄 수 있었던 건 이병헌의 연기가 만들어 낸 유백이라는 인물의 무게감 때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캐릭터를 로맨스 드라마 중심의 이야기에 놓는 것 보다는 강력한 악당 성격의 캐릭터와 대립하는 구조의 드라마에 두었다면 더 강렬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또한 전도연이 연기한 월소라는 캐릭터 역시 이 독특한 삼자 구도에서 빛을 발하는 캐릭터라기 보다는 둘 중 한 명과 1:1 구도를 가졌을 때 더 돋보일 만한 캐릭터라는 점도 비슷한 아쉬움이었다. 전도연의 연기는 이번에도 나쁘지 않았으나 이병헌과는 다르게 월소라는 캐릭터의 한계가 분명해 연기로 살려내기엔 어려워 보였다. 김고은이 연기한 홍이의 경우, 그녀의 연기를 제대로 본 건 처음이라 감정을 폭발하는 장면에서의 임팩트는 나쁘지 않았는데, 역시 몇몇 대사에 있어서 시대를 넘나드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 것은 장점이라기 보다는 단점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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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는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을지라도 또 한 번 슬픈 감정을 전하기엔 충분한 이야기였으나, 이 복합적인 3자 구조와 드라마가 강조된 연출 방식은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던 것 같다. 사실 박흥식 감독의 전작들의 면면을 보자면 어느 정도 예상된 영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래도) 무협 영화라는 점에서 매혹될 수 밖에 없는 장면들은 존재했다. 만약 이 기구한 인생에 놓인 인물들이 겪는 내면의 소용돌이를 표현하는 것에 성공했더라면 더 좋은, 더 매력적인 무협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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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런데 제목이 '칼의 기억' 보다는 '검의 기억'으로 해야 맞는 것 아닌가 싶은...

2.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가 선택되지 않는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배우 이전의 사람 이병헌 때문일 수 있겠는데,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고 잘한 배우는 이병헌이라는 사실.

3. 이경영씨가 또! 나옵니다. 저번에 누가 그랬죠. '어벤져스 2' 보는데 이경영이 여기도 나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ㅋ

4. 김고은의 전작은 아직 보질 못했는데, 예고편이나 스틸컷 들만 봐도 어느 정도 이미지의 중복이 아니었나 싶어요. 다음 작품 선택이 중요할듯 (치즈 인더 트랩에서의 연기가 그래서 더 중요하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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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Veteran, 2014)

울분에 가득찬 현실세계의 활극



2010년 류승완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했던 '부당거래'와 2012년, 어쩌면 대한민국에서만 가능했을 스파이 영화인 '베를린' 이후 그가 선택한 새로운 이야기는 또 한 번의 형사이야기 '베테랑' 이었다. '베테랑'에 대한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면서 영화가 자신을 홍보하는 방식은 철저히 '오락영화'라는 것이었다. 범죄오락액션 에서 분명 오락에 초점이 맞춰진 방식은 특히 이 영화가 개봉하는 시기가 여름 그리고 휴가철이었기에 마케팅을 오래 해왔던 입장에서 봐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마케팅 방식이었다. 하지만 개봉에 앞서 '베테랑'이 더 오락액션영화 임을 강조해 갈 수록, 류승완 감독의 오랜 팬의 한 사람으로서는 조금씩 걱정스러운 점들도 있었다. 여름 극장가에 걸맞는 영화도 좋지만, 최근 좀 더 알게 된 류승완 감독이라면 더 진일보한 영화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이 같은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베테랑'은 영화가 자신을 홍보해 온 것처럼 범죄오락액션 영화가 맞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근본에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그에 따른 울분과 씁쓸함이 담겨있는, 결코 간단히 볼 수 없는 입체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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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룡 영화 그리고 메시지가 담긴 분노의 날라차기


먼저 액션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미 전작 '베를린'에서 또 한 번 액션 연출에 있어서 진일보한 시퀀스를 만들어 냈던 류승완+정두홍 콤비는 이번 '베테랑'에서도 뻔한 액션 시퀀스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애썼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눈여겨 볼 만한 액션 시퀀스는 영화 초반 주인공 서도철 (황정민)이 불법 자동차 공장에서 일당들과 벌이는 장면과 그 이후 이어지는 컨테이너 박스들을 배경으로 한 항구에서의 장면인데, 일단 첫 시퀀스에서는 성룡 영화의 느낌이 강하게 묻어난다. 류승완 감독이 성룡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점인데, 액션 연출에 있어서 이 시퀀스 처럼 직접적으로 그 장점을 활용하고자 했던 시퀀스는 의외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액션 연출을 보면 철저하게 도구를 활용하고, 그 도구 및 주변 물건들이 갖는 특성을 100% 액션 연출에 가미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로 인해 코믹한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잘 싸우는 사람이 주도 하는 액션을 보는 것 이상의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이후 다시 한 번 이야기하겠지만 '베테랑'에는 유독 날라차기, 그것도 두발 날라차기가 자주 등장한다. 주로 미스봉 (장윤주)이 마치 필살기처럼 사용하는 이 날라차기는 단순히 캐릭터의 시그니쳐 무브로 활용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겠다. 일단 날라차기 (그것도 두발 날라차기)라는 기술의 특성을 보았을 때 어쩌면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정도로, 실패했을 경우 타격이 크고 (실제로 실패했을 경우의 타격에 대한 장면이 영화에도 등장한다) 무언가 모든 걸 다 던져 버린다는 감정이 실린 기술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았을 때 이 분노의 날라차기는 설령 실패하거나 한 방에 보내지 못해 더 맞게 될 지언정, 한 번 시원하게 때려줘야겠다는 심정이 느껴지는 선택이었다. 이것은 이 영화의 주된 모티브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날라차기는 결코 흘려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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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혹자는, 특히 전작 '부당거래'를 좋아하는 이들 가운데는 '베테랑'을 보며 그저 오락 영화이기만 하다고 아쉬워 하는 경우도 있는데, 내 생각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베테랑'을 보며 든 생각은 '어? 이거 부당거래 보다도 더 직접적인데?'라는 생각이었다. 아마 뉴스를 관심 있게 보는 이들이라면 영화 속 이야기를 본 기억들이 있을 텐데 (워낙 세상이 떠들석한 뉴스였으니), 극 중 유아인이 연기한 조태오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이 재벌가들이 벌이는 행동들은 그저 혀를 차며 '저런 나쁜 놈들...'하기에는 너무 직접적인 묘사였다 (오히려 부당거래의 묘사보다 베테랑의 묘사가 훨씬 더 직접적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까지 직접적인 묘사를 한 이유는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느끼게 끔, 혹은 당장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문득 '아, 이게 그냥 영화가 아니었네'라고 생각될 만한 여지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오락영화 임을 강조하고 그렇게 만들고자 했다는 느낌도 있었고.


그리고 '베테랑'에서 돋보이는 대사들은 전작들과는 다르게 형사나 재벌, 혹은 범죄자들이 현장에서 쓰는 진짜 단어나 대사들이 아니라 서도철의 아내인 주연 (진경)의 대사나, 화물차 운전사로 등장했던 배기사 (정웅인)의 대사들이었다. 이 대사들이 와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전자로 언급한 대사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 였는데 전자의 경우, 진짜 형사나 범죄자들이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들이 포함된 대사들을 듣게 되면 잘은 몰라도 전문적이고 실감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면, 후자의 경우는 잘은 몰라도가 아니라 너무 잘 알 수 밖에는 없는, 감정이 동요하는 대사들이었기 때문에 와닿을 수 밖에는 없었다. 즉, 대부분의 관객은 형사도 아닐 뿐더러 형사 가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벌이나 셀러브리티도 아니지만, 그들과 엮여 있는 이 세계에서 나오는 대사들은 너무도 현실 접근성이 높았던 터라 일부분 영화적으로 묘사된 부분들 마저도 자연스럽게 읽히는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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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 맞아주고 때려주고 욕해주는, 선배의 영화


솔직히 개인적으로 '베테랑'이 통쾌하다고는 말 못하겠다. 너무 현실에 찌든 탓인지 극 중 서도철 처럼 조태오 같은 인물에 맞설 자신도 없고, 그의 아내처럼 흔들리는 와중에 끝까지 거절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영화 속 인물들이 과연 이후에 행복해졌을까 혹은 조태오는 제대로 된 심판을 받게 될까 라는 질문에 부정적인 답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도 이 같은 점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먼저 말하자면 '베테랑'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같은 일종의 허무맹랑할 수도 있는 맹목적 메시지 보다는, 현실에 근거하여 '야, 그래도 해보는데 까지는 해봐야지, 이건 아니잖아. 형이 먼저 해볼께'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영화는 유독 그런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쪽팔리게 살진 말아야지'

이를테면 이런거다. 누구나 거대한 권력이나 무력 앞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주장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런 것을 강요하는 것조차 일종의 폭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끝까지 소신을 지키라는 것 보다는,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갖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잘못된 것과 끝까지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마저 버려서는 안되며,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지만 그 양심마저 버리게 되었을 때 과연 무엇이 남는지를 되물으며, 그렇게까지 살지는 말자 라고 이야기하는. 최대한과 최선의 노력을 강요하는 영화가 아닌, 최소한 지켜내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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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영화 후반부 서도철과 조태오의 대립과 결투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것은 분명 권선징악의 성격을 띄고 있지만 악을 선이 완전히 물리쳐서 대리만족을 얻게 되는 이야기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누군 가가 악에 대신 맞서서 싸워주고 아니 피 흘리고 멍들고 부러지도록 맞아주고,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 마디 해줌으로서 그런 용기를 갖지 못했던 이들의 마음 속에 작은 불꽃이라도 꺼지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도심에서의 액션 장면에서 서도철이 주변의 CCTV를 인지하고 전과는 다르게 미란다 원칙을 먼저 말하고 시작하는 장면 역시, 단순히 정당방위를 성립시키기 위해 참아낸 과정이라고 보기 보단 오히려 그 주변을 둘러싸고 휴대폰 카메라도 지켜보고 있던 수 많은 보통 사람들이, 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을 때까지 육체적으로 견디며 기다려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류승완 감독의 액션 연출에서 거의 대부분 발견되는 점은 바로 피로감 그리고 고통인데, '베테랑' 역시 그 점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하지만 전작들과는 다르게 그 고통과 고단함이 기술적으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뒷 받침하는 기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베테랑'의 액션은 더 매력적이고 인상적이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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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며 든 가장 깊숙한 곳의 느낌은, 영화가 끌어 오르는 울분을 꾹꾹 눌러 담으며 이를 아주 세련되게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저 울분을 토해내는 것에만 집중해서 결국 아무도 그 울분이 왜 일어났는지, 왜 그렇게까지 분노하는지를 공감할 수 없게 되는 것에서 영리하게 빠져나와, 결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 해 낸 그런 오락영화였다.


아, 진짜 베테랑이다!



1. 아트박스 사장님이 좀 더 활약하는 확장판 없나요? ㅎㅎ

2. 초반 정웅인 씨가 등장하는 장면은 왜 죄다 그렇게 불안하고 가슴 졸이게 되는지. 차는 사고가 날 것만 같고, 컨테이너가 어디서 떨어질 것만 같고.

3. 극 중 인물 가운데 제일 불쌍한 사람은 최상무 (유해진) 같아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스템 속에 갇혀버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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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Assassination, 2015)

아직 작전은 끝나지 않았다



최동훈 감독의 신작 '암살'을 보았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항일운동을 벌이던 임시정부 독립투사들이 일본사령관과 친일파를 암살하고자 했던 작전을 그린 작품은, 예상외로 몹시 진지한 작품이었다. 최동훈 감독의 전작들을 떠올려 봤을 때 그가 다른 감독들에 비해 가장 잘하는 점 중 하나라면 찰진 대사와 빠른 호흡 그리고 앙상블이 만들어 내는 재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암살' 역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기는 하지만 좀 더 오락적인 요소가 강조된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물론 '암살'은 오락 영화이지만 이 이야기가 다뤄지는 방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새삼스럽지만 이 결과를 보고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일본에 맞서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의 이야기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오락 영화로만 풀어낼 수는 없는 주제였다. 어쩌면 아직도 진행중인 이 현실에 비춰보았을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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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암살'의 스틸컷들을 보게 되었을 때, 이정재, 하정우, 전지현 등 보기만해도 근사한 비주얼의 배우들이 펼치는 시대극 그리고 암살 작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비주얼 적인 요소가 먼저 기대되었었다. 이미 '놈놈놈'을 통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주는 한국영화의 비주얼 발전을 눈으로 확인했었기 때문에,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점이 기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으니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배경. 즉 항일운동과 그 중심에 서 있었던 독립투사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었다. 이걸 뒤늦게 깨달은 다음 들었던 걱정은, 많은 잘못된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애국심 만을 강조한 나머지 영화적으로 촌스러운 것은 물론이요, 좋은 의미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목적 달성에도 실패하는 비슷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암살'은 무엇보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한 목적 달성에 성공하고, 여기에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와 긴장감을 적절히 버무린 (과하지 않음이 어쩌면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었다) 만족스런 작품이었다. 즉,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전달함에 있어서 '우리 선조들이 이런 고생을 해서 세운 나라입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은 이런 소중한 나라에요'라고 가르치거나 일방적 전달 방식이 아니라, 관객들로 하여금 왜 친일 행위가 용서 못할 행동인지, 독립운동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함께 한 행동이었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지금의 대한민국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작게 나마 관객 스스로가 느껴보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암살'은 충분한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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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잘 몰랐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알게 된 김원봉 이라는 실존 인물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겠다. 아마 나처럼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 중요성을 잘 몰랐겠지만 독립운동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암살'을 보고 가장 놀란 점은 김원봉이라는 인물의 등장과 영화가 그를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김구 선생이나 윤봉길 의사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김원봉 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를 찾아보니 그가 나중에 월북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즉, 현재 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김원봉이라는 인물은 지우고 싶은 역사인 동시에, 적대해야 할 인물이었기에 그 동안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는 알게 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은 여러가지 다른 면에서도 발견이 되는데, 최근 정치적인 이슈와도 결부되어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 혹은 진정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인정 여부 등 이 영화에는 현재의 정치,사회적 현실/이슈와 결부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후반부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고 생각된다. 만약 이 영화가 다른 주제 혹은 현실의 상황이 지금 같지 않았더라면 이 후반부의 반민특위 시퀀스는 그야말로 사족이었을 것이다. 즉, 영화 완성도 적인 측면으로만 보자면 이 시퀀스 전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더 완벽하고 여운을 주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최동훈 감독의 '암살'은 이 이야기를 하고자 만든 영화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항일운동의 한 가운데에 들어가 그 안에 인물들이 어떠한 갈등과 고통,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가 중요하기 보다는, 그 이후 친일파들이 어떤 처우를 받게 되었고, 그들이 어떠한 논리로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했는지를 보여주면서, 이 이야기가 과연 과거에 머무는 이야기인지를 되묻고자 하는 것이다.


(아래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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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 반민특위 장면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염석진 캐릭터가 무죄를 받는 것은 물론, 죽음에도 이르지 않는 것도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렇다면 이 글의 제목은 '친일파는 살아있다'라고 써야지 했었다 ㅎ). 하지만 그건 너무 직접적인 방식이자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오락 영화로서 너무 위험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는 예전 염석진을 동생처럼 따르던 부하가 다시 김구 선생의 지령을 안옥윤과 함께 수행하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나는 이 결말을 지지 한다. 왜냐하면 이 마지막 암살 작전 성공에는 성공의 뉘앙스가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즉, 당시 암살 작전을 통해 친일파 강인국은 제거되었고, 이후 반민특위를 통해 죄를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뒤늦게 나마 염석진을 암살하게 되었지만, 여기에는 하나도 통쾌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이야기에서 진정한 승자는 염석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반민특위 재판장에서 청중들을 바라보며 자랑스럽게 (어쩌면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진짜 믿고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주장을 외치는 것이나, 그의 죽음 뒤에도 남는 씁쓸함은 슬픈 감정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접하게 될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전후 독일과는 다르게 한국전쟁 이후 제대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우리 역사의 가장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그로 인해 친일파 청산은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친일파들이 독립유공자로 칭송 받거나 그들이 권력을 쥐고 아주 조금씩 조금씩 (요즘은 대놓고 하다보니 황당하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친일 역사를 바꿔가고 있는 것을 볼 때, '암살' 같은 영화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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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본래 이런 주제를 다룬 영화에 있어서 직접적인 방식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암살'은 그 흔치 않은 예외가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어떤 의미로 그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싸워야 하는, 일종의 '진행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은 더 직접적이어도 괜찮다. 아니 직접적일 필요가 있다.


'우리 잊으면 안돼' '사람들한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등의 대사가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 것은 그 때문이었다. 결코 잊으면 안되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아직 작전은 끝나지 않았다.



1.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본문에 언급한 김원봉에 대한 얘기처럼, 영화를 보고 나서 실제 역사에 대해 찾아보게 만드는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한 시점에서, 제대로 된 역사를 찾아보게 만드는 힘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2. 이 역사 속 이야기에 최동훈 감독이 추가한 허구의 이야기는 어쩌면 전체적으로 집중도를 흐리게 만들 수도 있는 장치였는데, 결과적으로 괜찮은 시도였다고 생각되네요. 이 설정으로 인해 많은 관객들이 더 긴장감 넘치는 후반부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3. 개인적으론 <암살> 보는 내내 <베를린> 생각이 ㅋ 마지막에 하정우가 전지현에게 이름 물어봤을 때 '련정희 입네다' 라고 말할 것만 같았던 ㅎ (이번에도(?) 부부로 나옵니다 ㅎ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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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의견 (2013)

피고 대한민국에게 진실을 묻다



용산 참사와 관련된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소식은 이전에 들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의 개봉도 그리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나 보다. 2013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2015년 6월이 되어 서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는데, 어쩌면 영화의 제목인 '소수 의견'과 같은 대우 혹은 처분을 영화 스스로가 받았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소수 의견'이 용산 참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좀 더 실화 자체에 바탕을 둔 영화인지 아니면 배경으로 픽션을 그려낸 것인지 하는 점이었는데, 김성제 감독의 '소수 의견'은 후자의 방식을 택한 작품이었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방식은 영화가 본래 말하고자 했던 바를 관객에게 전달 하는 것에 있어서 더 영리하고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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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용산 참사를 배경으로 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영화는 정치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작품이었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응원을 받든, 질타를 받든 간에 말이다. 물론 지금의 결과물을 가지고도 충분히 이런 논란을 벌일 수는 있겠지만, 느끼기에 '소수 의견'은 최대한 이를 직접적인 방식 보다는 간접적이고 은유 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한 영화로 느껴졌다. 일단 아직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굳이 '이 작품은 실화입니다'라는 방식의 영화를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이 영화의 경우처럼 '영화 속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입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결과적 효과를 만들 수 밖에는 없었다. 왜냐하면 실화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이 사건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실제 인물과 사건에 빗대어 생각할 수 밖에는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제 실화 임을 강조하는 방식은 오히려 사실을 늘어 놓는 것 이상의 효과는 없었을 텐데 (물론 제대로 된 사실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 시대다. 김일란, 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이 그랬던 것처럼), 이보다는 관객들이 영화로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이 사건의 진짜 문제와 이로 인해 알게 된 진실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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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의 어두운 면, 혹은 누군 가가 숨기고 싶어하는 진실에 대한 영화들을 요 근래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소수 의견'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들 만이 서로 원망하고 다투고, 결국 용서하고 눈물 흘리게 되는 잘못된 사회와 진짜 가해자에 대한 추적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이 영화는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법정 공방 과정 관련하여 기술적으로 보았을 때 아주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물론 그랬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주고자 했던 것은 법정 공방에서 오는 서스펜스와 통쾌함은 아니라는 점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작품의 법정 드라마는 진짜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추적하는 과정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다른 법정 드라마와 다른 점이라면 진짜 가해자는 원고 측에도 피고 측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한 소년과 한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간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농성자와 용역 깡패, 더 나아가 작전을 수행한 전경과의 대립 구도는 이 사건의 진정한 프레임이 아니다. 법정 공방은 이들 사이에서 이뤄지지만 진짜 주목해야 할 구도는, 작게는 이런 사건에 큰 관심이 없었던 두 변호사 윤진원과 장대석 같은 사람들과 앞선 프레임 대로 흘러가길 원하는 권력과의 구도, 크게는 이 사건을 그저 남의 이야기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국민들과 그랬으면 하는 권력과의 구도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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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도로 이 영화를 바라보게 되면 사실 영화는 더 답답해 진다. 왜냐하면 영화 내내 매달렸던 사건과 법정 공방의 결과 얻게 되는 건 결국 진실이 아직은 소수 의견일 수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뿐이다'라고 썼지만, 그리고 이 영화는 스스로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소수 의견이자 '뿐'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럴 '뿐'인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되는 것 만으로도 정말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영화가 끝나는 동시에 알 수 있었다.


소수 의견을 내는 것은 여러 모로 부담스럽다. 특히 그것이 어떤 불안과 공포를 담보로 해야 할 땐 더더욱 주저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래도 영화는 묻는다. 피고 대한민국에게 진실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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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판타지아 (A Midsummer's Fantasia, 2014)

이 우주 어디가 존재 할 너에게



그 제목과 (제목이 너무 좋다) 아련한 수채화 풍의 포스터 이미지들 만으로도 몹시 보고 싶었던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그저 좋기만 한 작품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가득 채워진 세상 (그리고 영화)에서 최소한의 것들 만을 남기고 비우는 것 만으로도 최근은 치유 받는 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최소한의 것들 만으로 여백의 여유와 긴 여운으로 좋은 느낌의 가득 참을 선사하는 동시에, 형식이나 디테일 측면에서도 영화적 흥미를 이끌어 내는 흔치 않은 작품이었다. 어쩌면 그저 쉬고자 했던 입장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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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판타지아'는 크게 두 개의 섹션으로 나눠져 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는 한국에서 온 영화 감독 태훈이 일본의 소도시인 고조시를 방문해 이 곳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이틀 남짓의 여정이 담겨 있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는 역시 동일한 고조시를 배경으로 한국에서 여행 온 혜정이 우연히 만나게 된 청년 유스케와의 짧은 여정을 담고 있다. 일단 이 두 개의 에피소드가 서로 작용하는 방식이 흥미로운데, 여러 가지 측면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치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 같은 작품이 연상 되기도 하는데, 단순하게 보면 두 에피소드의 관계를 1편에서 조사를 마친 영화 감독 태훈이 만들어 낸 결과물로서 두 번째 에피소드를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한 편으론 고조시라는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르는 평행우주 저 편의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첫 번째 감상 방식을 단순하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단순하지 만은 않은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한데,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태훈이 보고 듣게 된 사람과 사실, 풍경 들이 어떤 식으로 받아 들여 졌는 지를 두 번째 에피소드의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여러가지의 접촉들 가운데 무엇이 더 인상적이었고, 어떤 대화가 더 중요하다고 느껴 졌는지가 작품을 통해 표현 된다는 점에서, 이 방식의 접근 방법도 생각보다는 단순하지 않고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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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접근 방식보다는 오히려 두 번째 평행 우주의 접근 방식으로 이 영화가 더 받아 들여 졌는데, 얼핏 들으면 그냥 두 가지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불과(?)한 것에 과한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마치 '족구왕'을 진짜 SF영화로 느꼈던 것처럼), 이 영화에는 이러한 접근 법을 수긍하게 할 만한 묘한 분위기 들이 여럿 존재하고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마지막 태훈이 오래 된 학교 건물에서, 동네 어른에게 전해 들었던 인물의 환영을 본다 거나 (보는 꿈을 꾼다 거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혜정과 유스케가 걷다가 만나게 된 벚꽃 우물의 전설을 한 참이나 들려 주는 것도 그렇고, 이 영화에는 마치 '판타지아'라는 제목처럼 지극히 현실적이고 소박한 단편적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환상적이고 우주 적인 감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것 때문 만은 아니지만, 두 명의 배우가 각 에피소드에서 서로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형식도 이러한 묘한 분위기에 한 몫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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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가, 어쩌면 전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었던 혜정과 유스케의 관계와 감정 들이 더욱 간절하게 느껴졌다. '더 같이 있고 싶어요'라는 말이 그 어떤 전쟁 같은 사랑을 하는 연인들 보다 도 더 절실 하게 느껴졌던 건 비단 유스케 역할을 맡은 배우 이와세 료의 그 눈빛 때문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1차원적인 시간의 계산으로는 비록 이틀이 조금 안되는 시간을 함께 했을 뿐이지만, 영화는 마치 이 둘을 오랜 시간, 다른 차원으로 부터 이어진 애틋한 관계라고 느껴질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영화 속에 등장한 혜정과 유스케의 관계와 그들이 서로 느끼게 되는 감정이 보통 같았으면, 마치 우리가 헐리웃 액션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남녀 주인공이 모든 것을 재쳐 두고 키스할 때 그 어떤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저 하룻밤의 불장난으로 생각되었을 텐데, 어쩌면 비유로 든 헐리웃 영화 속 남녀 주인공 들 보다도 표면적 유대 관계가 없었음에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던 것은 바로 앞서 이야기했던 것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이 바로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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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두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제목이 참 좋다. 내용을 포장하고자 한 제목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더도 덜도 없이 표현해낸 제목. 그것이 '판타지아'라는 점이 놀라울 뿐. 



1. 영화를 봤던 지난 일요일 낮 시간은 정말 몹시 더웠었는데, 이 영화를 보기엔 더 없이 적절한 날씨가 아니었나 싶네요.

2. 영화 속 실제 장소가 존재하는 경우, 그 장소에 꼭 한 번 가보려고 하는 편인데 고조시도 가야 하나요. 다른 경우와 달리, 이 작품은 영화 홍보 자체가 지도까지 나눠주면서 가보기를 부추기고 있어서 더 고민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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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비수사 (The Classified File, 2015)

그래도 소신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극비수사'를 보기 전 이 영화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적었다 (극비도 아니었는데...). 곽경택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도 뒤늦게 알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는 것 조차 몰랐다. 그저 김윤석과 유해진이라는 배우의 출연만 알고 있었을 뿐인데, 사실 최근 김윤석의 작품들을 보면 비슷한 이미지를 계속 이어가며 특별함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에, 이 영화 역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특히 이 포스터 이미지만 보면 또 다른 코미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해서). 그런데 결과는 근래 본 영화 가운데, 특히 기대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한다면 가장 재미있고, 인상적인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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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택의 '극비수사'는 한 편으론 순진하리 만큼 인간적인 작품이다. 아마도 이 작품을 선택하는 많은 관객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유괴 사건'이라는 점에서 스릴러 적인 요소를 기대하는 것일 텐데, 이 유괴 사건 자체에만 집중한다면 이 영화는 다소 심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직접적인 대사로 여러 번 등장하지만, 이 영화의 주된 관심사는 유괴 사건의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유괴 된 아이가 무사히 살아 부모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 차이는 영화 자체의 성격을 규정 짓는 가장 큰 기준인데, 사건을 풀어가는 두 주인공 공길용 (김윤석)과 김중산 (유해진)은 물론, 유괴 된 아이의 가족과 사건을 맡은 경찰 권력 모두 이 영화 속에서는 이 기준 안에서 묘사되고 있다. 즉, 영화의 이러한 기준과 정확히 부합하는 공길용과 김중산을 중심으로, 이 기준에 반대되는 경찰 권력과 시대 배경이 등장하고, 아이의 가족 묘사 역시 다른 부잣집 아이 유괴 사건 속에 등장하는 부모들과는 차별 되게 그려진다. 다시 말해 자연스럽고, 과장 됨이 없다. 그런 측면이 스릴러를 기대한 관객들 입장에서는 영화의 긴장감이나 몰입도를 떨어트리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극비수사'는 그 보다 더 중요한 의무 같은 것을 수행하려는 영화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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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비수사'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극 중 도사로 등장하는 김중산이 유괴범에게 전화 올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순간이나 공길용이 용의자를 근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순간이 아니라, 이 수사가 마무리 된 다음 부터다. 관객은 스크린을 통해서 직접 본 이 사건 해결의 전말과 이 두 명의 행동이, 그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부정 되는 순간, 비로소 영화가 왜 이 두 인물을 현재로 끌어 왔는 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영웅담인데, 기존 영웅담과 다른 점이라면 숨겨진 영웅은 맞지만 보통의 숨겨진 영웅담도 영화 속에서는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비해, 이 작품은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남겨지도록 둔다. 이것은 어쩌면 영화가 직접 숨겨진 영웅임을 이제라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고, 그들에 대한 진심의 예의가 담겨 있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가 영웅이 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령 그것이 백 번 옳다 하더라도 제 3자가 이를 자신의 방식대로 노출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화 자체가 그러한 부담을 갖고 있는 작업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 감독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갖췄다는 진정성은 충분히 엿볼 수 있었던 방식이라는 점에서 '극비수사'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에필로그로서 존재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 시퀀스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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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그래서 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참기 힘들 정도로 울컥이게 했다. 스스로 세상에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으면 그걸로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할 말을 집어 삼키는 걸 보았을 땐, 난 뭐가 그리 억울한 일들을 살면서 겪어 왔었는지, 공감과 동시에 미안하고 애잔한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똑같이 삼킬 수가 없었다.


이 영화가 단지 유괴 사건 자체에 집중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또 다른 곳에서 등장한다. 1978년 당시 대한민국의 상황과 어쩌면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재를 떠올려 봤을 때, 이 영화는 과거 소신을 담고 행동했던 어떤 이의 영화가 아닌 소신을 지키며 살기 쉽지 않은 현재의 영화가 된다. 그 소신이 용기와 존경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어리석고 이기적인 것으로 비춰지기 쉬운 요즈음. 그래도 소신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좋은 영화였다.



1. 실화라는 걸 영화 시작할 때야 알았는데, 영화가 끝나고 실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소름이. 실화가 더 믿기 힘들 정도로 영화 같은. 두 분의 우정과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2. 개인적으로 유해진씨가 출연한 영화 중에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이 역할을 다른 마스크의 배우가 했다면 아마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설득력이 아주 많이 떨어졌을 거에요.


3. 정말 곽경택 감독이 달리 보입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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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운다 _ 10주년 기념 특별상영회 

10년 전과는 달랐던 영화, 아니 관객



지난 5월 30일 토요일.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류승완 감독의 2005년 작 '주먹이 운다' 10주년 기념 특별상영회가 있었다. 평소 류승완 감독님과의 인연도 있고, 더군다나 감독님과 더불어 주연을 맡았던 두 배우인 최민식, 류승범 님이 참여하는 GV도 예정되었던터라 이 날의 상영과 GV는 몹시 기다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역시 가장 기대되었던 것은 실제로 최민식과 류승범이라는 배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흔치 않은 기회였지만, 그 못지 않게 궁금했던 것은 10년 전 20대 때 극장에서 보았던 '주먹이 운다'와 지금 30대가 되어 다시 보게 되는 '주먹이 운다'는 어떤 영화일까 하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궁금함과 설레임을 담고 비가 조금씩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던 토요일, 상암동으로 향했다.





당일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10년 만에 다시 보게 된 '주먹이 운다'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해야겠다. 감독님이 GV때 언급했던 내용과 마찬가지로, 당시 내게도 이 영화는 너무 신파스러워 아쉽다는 느낌으로 남은 영화였다 (그래서 아마 DVD도 구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요 근래야 그런 일이 없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 되돌아 보니 예전에 나는 단지 '신파'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영화가 별로다 아니다를 어느 정도 평가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이런 평가 기준을 버린 지는 오래되었다. 최근 신파스러웠던 영화 가운데서 아쉬움이 남는 영화의 경우 읽는 이들이 '신파라서 아쉽다'로 오해하지 않도록 반드시 추가 설명을 덧붙일 정도로, 단순히 신파라서 재미없거나 별로라는 평가는 이제 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신파'라는 것은 일종의 스타일로, 굳이 따지자면 흔히 지루하거나 재미없음, 관객을 향한 감정의 강요 등의 실수를 할 확률이 다른 스타일에 비해 높은 경우라 하겠는데,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신파여도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면서 강요 받는다는 느낌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는데, 10년 만에 '주먹이 운다'를 다시 보게 되며 가장 궁금했던 건 아직도 내게 이 영화가 그냥 신파여서 아쉽기만한 작품일까 하는 점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나 내가 변한 탓인지 아쉬웠던 영화는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순간과 이야기들이 보여 또 다른 영화가 되어 있었다.


(다음 단락에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말 자체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다시 보게 된 '주먹이 운다'에서 내가 발견한 가장 큰 두 가지 포인트 중 첫 째는, 결말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 한 명의 주인공을 따라가게 되는 영화가 아니라 2명 이상의 이야기를, 그것도 똑같은 비중으로 관객에게 소개했을 때, 더군다나 그 결말에 가서 그 둘 가운데 누군가는 패배해야만 하는 룰의 경기가 등장한다면 결국 관객은 둘 가운데 누가 마지막에 승리하게 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먹이 운다'의 이야기는 10년 전에도 알고 있었듯이 승패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다. 이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두 인물의 삶이 중요할 뿐. 하지만 10년 전에는,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에 있어서 명백한 승패를 나누는 것 보다는 관객이 승패를 명확하게 알 수 없도록 놔두는 것이 두 인물 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 보면서 바뀐 생각은, 오히려 이렇게 명확한 현실의 승패를 보여주는 것이 이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해주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강태식 (최민식)과 유상환 (류승범)의 결투 혹은 도전은 이미 심판 판정이 나오기 전에 6라운드가 마무리 되는 순간 끝이 난다. 두 사람 모두 신인왕이 되어야만 할 구체적인 이유들이 있지만, 영화는 두 주인공이 승패가 나오기 전에 이미 스스로 각자의 도전을 이뤄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10년 전에는 약간은 부수적일 수 있는 실제 승패 판정 장면이 없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그 간 나이를 먹은 탓인지, 현실은 영화 속 처럼 그들 스스로의 승리와는 상관 없이 승패를 끊임 없이 선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인지, 영화의 결말이 달리 보였다.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GV에서 이후 강태식의 삶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라는 관객의 질문에,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최민식 배우의 대답과 이를 동조하던 감독님의 눈빛은 이런 결말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두 번째 포인트 역시 첫 번째 포인트와 연결되는 부분인데,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영화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던 점이었다. 아주 단순하게 얘기해서 '주먹이 운다'의 강태식과 유상환의 이야기를 빌려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저 이들이 마음껏 울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들과 실패, 잘못, 실수 그리고 나 혼자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현실, 하지만 그럼에도 나 혹은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이들에게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나 위로를 주기 보다는, 그저 그들이 다른 사람 눈치보지 않고 마음 껏 한 번 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긴 시간을 들여 끝까지 달려온 원동력이라는 걸 이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극 중 천호진씨가 연기한 배역의 대사처럼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그 사연들로 인해 쉽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마음껏 울 기회조차 없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주먹이 운다'는 그들에게 어설픈 위로를 전하기 보다는 그저 그들이 한 번 펑펑 울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렇듯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는 10년 사이에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어 있었다. 물론 영화가 아닌 내가 변한 것일테지만.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GV에서는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되는 것은 역시 '주먹이 운다'의 블루레이 정식 발매 소식이었다. 물론 오프 더 레코드로 조금 더 먼저 알고 있기는 했지만, (감독님의 코멘트를 빌려 보자면) 한국의 크라이테리언을 꿈꾸는 플레인아카이브를 통해 발매 될 예정이라 무엇보다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4K리마스터링은 물론, 10주년을 맞는 작품의 블루레이 타이틀답게 새로운 부가영상 등 제작에 벌써 부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날 있었던 GV 사진 몇 장을 더 추가하며 글을 마친다.

어서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길!


1.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준 한국영상자료원에 무한한 감사를!

2. 플레인에서 출시될 블루레이 정말 기대됩니다.

3. 초대해주신 DP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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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언덕 (Hill of freedom, 2014)

홍상수의 시간



홍상수 감독이 최근 작품들에서 관심을 가졌던 형식적인 측면은 '시간'이었고, 내용적인 측면은 '착함' 그리고 '관계' 그 자체에 대한 것들이었다.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우주를 발견해 내는 그의 영화 답게, 이번 신작 '자유의 언덕'은 더 직접적인 시간에 대한 묘사를 통해 시간이라는 것을 형식 그 이상의 주제로 이끌어 내며, 이를 영화 안에 머물지 않고 영화 밖 현실로까지 끌어내는 야심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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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최근 작들에서 홍상수 감독은 의도적으로 시간의 재배열, 그리고 꿈과 현실의 모호함과 관계에서 오는 각자의 기억을 통해 매번 같은 이야기 같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었는데, '자유의 언덕'은 '생활의 발견' '극장전' 등 김상경이 주연을 맡았던 작품들이 담고 있었던 남녀간의 이야기까지 결합한 버전의 또 다른 시간의 관한 작품이었다. 이전 작품들에서 홍상수 감독은 가끔은 무심한 듯 이것이 꿈이어도 상관없고 현실이어도 상관 없으며, 또한 누구의 이야기가 맞고 틀려도 상관 없다는 식으로 화자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했었는데, 이번 작품은 이런 모호함 보다는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시간의 재배열에 대해 형식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각 장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중간 중간 화자가 등장하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다시 시작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극중 서영화가 연기한 '권'이 '모리 (카세 료)'가 남긴 편지를 읽는 장면들을 중간 중간 삽입하여 그 때마다 이야기가 새롭게 전개된다는 것을 영화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거의 첫 장면에서 '권'이 모리가 남긴 편지를 가지고 어학원 계단을 내려오다가 떨어트려 그 편지의 순서가 바뀌게 된 것은 이 영화가 갖게 된 형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자유의 언덕'은 상당히 친절한 방식으로 이 시간의 재배열, 아니 각각의 시간에 대해 시작과 끝을 분명히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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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 뒤 섞여 버린 편지 속 일기 같은 이야기의 순서를 제대로 맞춰보려는 노력도 해보았으나, 사실 이렇게 시간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재조합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다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는 홍상수의 세계 속에서 또 다른 자연스러운 영화가 되었겠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시간의 뒤 섞임을 설명하고 있는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감독의 의도는 물론 보는 이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일종의 인과관계의 무상함에 대한 이야기로 느꼈다. 처음 이 이야기가 뒤섞인 줄 모르고 어떤 에피소드를 보게 되면 저 인물들이 왜 저런 대화를 하는 지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 다음 이 이야기가 본래는 이 에피소드 이전 시점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 저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었구나'하고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이 영화를 보게 되는 첫 번째 방법인데, 이건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처럼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읽게 되면 너무 심심한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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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라는 설정.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대사가 영어로 진행되는 설정은 구성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그 전달 되는 어감 때문에 다른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 홍상수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아마도) 말하고자 했던 것 중 하나인 일상 속에서 번번히 벌어지는 '무례함'에 대한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일본인으로서 북촌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게 된 모리는 처음 만나는 한국 사람들로 부터 매번 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 일명 호구조사 라고도 하는 이 일반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사람들의 자세는 친해지기 위한 선의인 경우도 있고, 무언가 의심스러움으로 인한 경계심도 있으며, 정말 별다른 감정 없이 의례 던지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무덤덤히 다루고 있는 모리의 에피소드를 보고 있다보면 별다른 동기 없이도 모리의 입장에서서 약간의 불쾌함이나 피곤함이 느껴진다.


모두들 각자의 방식이 있고 바라는 바가 있을 텐데, 외국인인 모리의 상황을 빌려 보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은 상대의 대한 배려보다는, 혹은 배려하려는 마음으로 그러했다 하더라도 결국 온전히 홀로 의지에 따라 있고 싶은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 무례를 범한다. 여기서 '무례함'이란 단순히 극 중 이민우가 연기한 캐릭터의 경우처럼 직접적인 불쾌함을 주는 경우 외에도, 불쾌함을 주지 않았을지라도 극 중 '상원 (이의성)'이 연기한 캐릭터가 모리를 대하는 경우처럼 그것이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을 지라도 100% 내 의지로 행해진 결과는 아니었다는 것까지 포함된 의미로 봐야 할 것이다. 뭐랄까. 우리는 언제부턴가 (특히 영화에서) 우연과 운명에 대한 기대감에 고취되어 있는데, 한 편으론 그저 스스로가 처음 원했던 계획대로만 끝까지 (그것의 성공여부와는 상관없이) 진행하기 어려운 사회와 관계라는 존재의 피로감을 '자유의 언덕'은 홍상수 식으로 표출하고 있는 듯 했다. 그것과 연결지어 이번 작품에서 특히 많이 등장한 '행복해요?'라는 질문은 이렇듯 나 자신을 오롯이 제어하지 못하는 사회 속 인물들에게 던지는 질문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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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야기를 처음 꺼냈던 '인과관계의 무상함'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이 뒤섞인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면서 극 중에 펼쳐진 일종의 에피소드들의 인과관계를 맞춰보고 논리를 완성하게 되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홍상수 감독이 전달하려는 바는 물론 이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만약 이 이야기들이 정상적인 시간의 순서대로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뒤섞여 있을 때 불쾌하거나 무례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과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관객이 이 인과관계의 퍼즐을 맞춰가고 있을 때 쯤 몇 가지는 맞추었다는 착각을 하도록 힌트나 (관객 스스로가 생각하는) 답을 던지고 있지만, 일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에 무관심한 채 그냥 내버려둔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모리가 누군 가와 싸웠다는 것만 알 수 있도록 하고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처럼).


즉, 홍상수 감독은 관객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이용해 관객들이 오해하고 착각하도록 만들고, 너희 들이 틀렸어 라는 답을 짠~ 하고 내어 놓으며 반전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영화를 끝내고는 관객들이 스스로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공간을 남겨두고 있다. 만약 '자유의 언덕'이 더 재기발랄하고 형식을 강조하는 작품이었다면 아마도 편지에 쓴 거의 모든 이야기가 끝난 마지막 게스트 하우스 장면에서 영화가 끝났을 것이다 (사실 여기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편지의 이야기가 다 끝난 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남겨둠으로서, 이 이야기를 영화 안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던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이런 이야기가 있어'라고 마무리 지었었다면, '자유의 언덕'에서는 '자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직접적으로 묻고 있는 듯 했다.


홍상수의 영화는 이번에도 참 놀랍다. 그리고 더 놀랍게도 계속 더 발전하고 있다.



1. 영화 속에 등장한 북촌 코스는 한 번 쭈욱 돌아봐야 겠네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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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구왕 (The King of Jokgu, 2014)

이토록 진지한 SF영화



장안의 화제인 '명량' 아니 '족구왕'을 보았다. 처음 '족구왕'이라는 영화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땐 그 제목과 더불어 코믹함이 연상되는 포스터와 스틸컷들로 인해, 아주 유쾌하고 코믹한 청춘 영화일 것으로 예상했다. 대부분 많은 이들이 그렇게 본 듯 하나, 내가 본 '족구왕'은 조금 달랐다. 극장에서 막이 오를 때까지만 해도, 아니 영화 중반 까지만 해도 이미 알려진 것과 같은 코믹, 청춘 영화인 줄로 알았는데 중반 이후 부터는 점점 이상한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더니 결국 엔딩에 가서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족구왕'은 완벽한 SF영화다. 너무 진지하고 영화 스스로도 별로 이를 설득하려 하지 않을 뿐이지, 따지고 보면 이처럼 자연스러운 SF영화가 또 어딨나 싶다. 마치 극 중 소재로 등장하는 '백 투 더 퓨처'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시간 여행을 다룬 하지만 그 여행을 바라보는 입장이 주인공이 아닌 그 외의 인물들이라 미처 깨닫지 못하는 그런 SF영화가.


(굳이 따지자면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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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주인공 홍만섭 (안재홍)이 '난 사실 미래에서 왔어'라는 대사를 할 때만 해도 이것이 단순히 코믹 요소로 활용된 그저 지나가는 대사로만 여겼었다. 실제로 영화는 그 이후 현재의 만섭에게만 집중하지 이 '유머'와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후반부 나도 모르게 울컥하게 만드는 그 영어 수업 발표를 보면 조금 의아한 생각도 들었는데, 초반에 등장해서 별로 (다른 유머에 비해) 먹히지 않았던 이 시간 여행 유머를 진지하게 다시 꺼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확신하지 못했었는데 영화의 마지막, 체육 대회 이후 주인공 들의 에필로그를 다룬 장면에서 영화가 만섭을 그리는 방식을 보고서는 확신하게 되었다.

'아, 이건 진짜 백 투 더 퓨처 같은 SF영화였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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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진지하게 이 영화를 SF영화, 그러니까 만섭이 극 중 했던 말 대로 그가 미래에서 온 것이라고 가정 한다면 영화의 부족한 몇 몇 부분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사실 영화 초반 가장 설득력이 떨어졌던 부분은, 군대에서 탁월한 실력으로 족구를 했다곤 해도 제대 이후 복학한 만섭이 그렇게 족구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조금은 부족해 보였었다. 뭐랄까, 그냥 '우린 영환 족구왕이니까 족구는 그냥 필연적인거야'라는 정도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는데, 앞서 이 영화를 만섭의 말 그대로 따르자면 이 부분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죽음을 앞둔 노인 만섭은 다시 청춘으로 돌아와 그 당시 맘 껏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해보게 되는데, 그 후회를 만회하기 위해 돌아왔다면 군대에서도 그리고 복학해서도 족구는 물론 모든 생활에 저리도 열심인 것이 모두 한 번에 납득이 된다. 처음엔 그냥 족구도 이유 없이 좋아하고, 아르바이트와 생활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한)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는 만섭의 모습이 그냥 그의 타고난 성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역시 성품이라기 보단 20대에 맘껏 해보지 못했던 후회로 인한 '열씸'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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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성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무슨 일을 겪어도 단 한 번도 남에게 화를 내지 않는 만섭의 모습 역시, 억척스럽게 일하는 모습과 겹쳐서, '에이, 요새 저런 청년이 어딨어'라고 생각할 정도의 착한 성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보다는 이미 다 겪은 자로서의 여유와 편안함에서 나오는 배려라고 생각하니, 만섭의 표정 하나 하나가 다르게 느껴졌다. 즉, 정말 힘든 상황과 열악한 멤버들과 함께 하는 족구 대회여도 그가 화를 내거나 포기하지 않는 건, 그에겐 영화 속 지금이 그 토록 바라던 제 2의 기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흔히 '청춘'을 이야기할 때 청춘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되는데, 대부분 그 청춘을 보내고 있는 당사자들은 이를 모르기 마련이다. '족구왕'은 분명 청춘 영화이지만 조금 다른 점이라면 그 '청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뒤 늦게 알아채고는 뼈저리게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주인공이 다시 그 때로 돌아가 다른 청춘들과 함께 하는 영화라는 점이다. 자신의 청춘을 구하는 동시에 과거의 청춘들도 구해내는 이야기랄까. 만섭에게는 이렇듯 시간을 헤아릴 수 없는 표정이 담겨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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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극 중 등장한 윤준경의 '나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면'이라는 싯구도 아주 직접적이었다. 만약 돌아가고 싶은 청춘의 그 때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것이 족구든 아니든 간에 홍만섭처럼 정말 열정적이면서도 평온한 마음을 갖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게 '족구왕'은 정말로 의외의 감동을 느낀 영화였다.

청춘을 그렸지만 정말 진지한 가운데 티내지 않으면서 시간 여행을 다룬 SF영화. 아마도 프리퀄이 있다면 만섭이 20대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을 볼 수 있을지도.



1. 저는 진지합니다.

2. 전 영화가 진지하게 이런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증거를 아주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었어요. 본문에 언급한 내용 말고도 판타지에서나 가능한 만섭의 필살기를 영화가 남용하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 딱 두 번만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엔딩 에필로그 부분에 다른 인물들과 떨어트려 만섭의 이야기를 홀로 정리했다는 것. 즉, 코믹 요소를 지우고 드라마와 감동적인 부분을 더 추가했다면 (그래서 CG로 활용된 부분도 덜어냈다면) 아마 이 영환 일반적인 SF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 하지만 이렇게 관객 대부분이 오해하도록 만든 방식이 더 좋았어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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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 (海霧, 2014)

내 몰린 이들의 잔혹극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각본을 썼던 심성보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고 봉준호 감독이 기획과 제작을 담당한 영화 '해무'를 보았다. 국내 영화 계는 특히나 어떤 스타일의 영화가 갑자기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오곤 하는데, 이번 여름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두 글자 제목의 영화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미 엄청난 기세로 기록을 모조리 갈아 치우고 있는 '명량'과 헐리우드 스타일을 가져온 여름 오락 영화 '해적', 그리고 이 작품 '해무'가 그렇다. 개인적으로 조금 다른 분류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던 '군도'를 제외한다면 세 작품 중에 가장 기대한 영화는 바로 '해무'였다. 봉준호 라는 이름을 빼더라도 영화의 시놉시스나 장르를 보았을 때 가장 흥미를 끄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심성보 감독의 '해무'는 어쩔 수 없이 벼랑 끝으로 몰린 이들이 서로 뒤엉켜 벌이는 잔혹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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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는 기본적으로 한정된 공간 (바다 위 고기잡이 배)을 배경으로 한정된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배경으로는 IMF시기를 다루고 있어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한 선장과 선원들의 이야기와 역시 경제적인 이유로 목숨을 걸고 밀항을 시도하는 조선족의 이야기를 겹쳐 놓는다. 이렇게 '그럴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의 이유를 배경으로 가볍게 설명한 영화는 바로 먼 바다로 나가 중심 사건을 진행한다.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모두 설명되기에는 조금 부족한 시간일 수 밖에는 없었는데, 그래도 비교적 각자의 배경을 짧게 소개한 탓에 큰 무리 없이 녹아드는 편이고 무엇보다 이들이 처하게 되는 상황의 특성 상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그 상황에 빗대어 각각을 바라보는 편이 흥미로웠다.


여기저기 녹이 쓸고 비린내가 진동하며 기능적으로도 수리할 곳이 많은 이 배(전진호)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확실히 이미지 적인 측면에서는 영화의 분위기에 딱 걸 맞는 도구였다고 생각된다. 특히 기관실의 미장센은 갑판 위와 확실히 구별되는 이미지로 공포스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 효과적으로 활용된다.계단과 계단 아래, 쇠와 철로 된 파이프들로 인해 보이지 않는 공간이 생겨남으로서 관객에게 긴장감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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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해무'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선장을 포함해 여섯 명의 선원들이 가끔은 하나의 공동체처럼도 보이지만 사실은 다 각자의 욕망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쉽게 생각하면 김윤석이 연기한 선장 혼자 사이코 처럼 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도 그렇게 된 데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보긴 힘들고 (그가 전진호를 마치 사람처럼 대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래서 이상하다기 보다는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김상호가 연기한 갑판장 캐릭터 역시 조직과 대의라는 것에 함몰된 인물을 엿볼 수 있었으며, 이 사고 속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에만 몰두하는 이희준이 연기한 캐릭터 역시 전체적으로 이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보면 박유천이 연기한 주인공 캐릭터가 영화적으로 보았을 때는 가장 설득력이 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한 편으론 그가 홍매 (한예리)에게 가졌던 감정이 인간 애인지 사랑인지 조금은 모호한 것이 이 작품에는 더 어울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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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가 더 깊은 몰입도를 전달하는 데에는 영화 음악의 공도 빼놓을 수 없겠다. '해무'의 영화 음악은 정재일이 담당했는데 긱스 출신으로 천재 소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그 정재일이 맞다. 정재일의 음악 스펙트럼이야 워낙 넓다 보니 영화 음악도 나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기대보다도 더 멋진 영화 음악을 만들어 낸 것 같다. 바다라는 배경과 그 위에 홀로 떠 있는 배라는 한정적 공간의 분위기를 공포스러우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만드는 데에는 음악의 힘이 컸고, 전체적으로 영화가 담고 있는 슬픔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의 표현 범위 내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해 낸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근래 나온 한국 영화의 사운드 트랙 (스코어) 가운데 단연 인상적인 음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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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말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해무'는 끝까지 다 보여준 영화는 맞는데 기분은 뭔가 더 갈 때까지 가 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뒷맛이 남는 영화이기도 했다. 이야기 자체는 더 공포나 스릴러로 갈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구조라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해무'의 이야기는 본래 장르적이기 보다는 그 가운데 시대의 고통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사지로 내 몰릴 수 밖에는 없었던 각자의 이야기를 하나로 담는 데에 더 주목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잔혹극은 더 슬프게 다가왔다.



1. 이제야 관객들이 한예리 라는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되겠네요!

2. 트위터에도 썼지만 이희준과 한예리가 함께 출연하다 보니 '환상속의 그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래서 극 중 이희준의 집착이 왠지 이유 있게 느껴졌다는 ㅎ

3. 본래는 극단 연우무대의 작품이 원작으로 알고 있는데, 연극 무대에서는 이 작품이 어땠을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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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2014)

영화, 그리고 영화 밖 이야기


'최종병기 활'을 연출했던 김한민 감독의 신작 '명량'을 지난 주말 보았다. 이미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명량해전을 영화 화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부터 이 영화엔 기대되는 바가 있었다. 더불어 흥행 관련해서도 어지간해서는 흥행 실패하기 힘든 소재라는 생각도 당연히 들었다. 여기에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작용해서 마치 '레 미제라블'이 그랬던 것처럼 '명량'은 최단 기간 천만 관객 영화가 되었고 (여기서 굳이 독과점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어쩌면 최대 관객 기록을 세울지도 모를 기세로 달려가고 있다. 흥행과 관련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일단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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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에 대한 중론을 모아보자면 초반 부는 지루하고,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내용 자체보다도 관객들이 더 많은 감동을 얻게 된 다는 점일 텐데, 후자는 확실히 그런 편이다. 이순신이라는 우리 역사상 가장 영웅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 만으로도, 그리고 이 이순신을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연기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없을 수가 없다. 즉 충무공 이순신은 어떻게 그려도 역사적 인물 자체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호기심과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이 있고, 최민식이라는 배우 역시 이를 오버하지 않고 최대한 내면의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 것이 더 큰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던 것 같다. 물론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표현해 내기에 '명량'이라는 작품의 틀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것 같다. 이건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순신 외에 다른 캐릭터들은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하다. 특히 일본 장수 캐릭터들을 비롯해 이순신이 휘하 장수들은 각자의 이름 소개 외에는 별다른 임팩트를 만들지 못할 정도로,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기 보다는 그저 소품으로 존재하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이 영화엔 이미 출연한다고 널리 알려진 배우들 외에도 까메오나 조연 형식으로 상당한 수의 이름 있는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활용에는 고개를 갸우뚱 하게 했다. 특히 진구가 연기한 임준영 캐릭터와 그의 아내를 연기한 이정현이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는 여러 가지로 이상했다. 한국 영화가 자주 범하는 실수인데, 관객에게 '이 장면은 감동적인 장면이야, 감동을 받아야 돼'라고 강요하는 경향이 강해 오히려 이질감이 드는 장면이 많았다 ('명량'이 갖고 있는 정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이런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다수의 관객에게 실제로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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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이야기를 한 김에 조금 더 해보자면, 이 영화는 각각 부분 부분은 그리 나쁘지 않은데 작품 전체로 놓고 보면 여러 가지로 어색하고 맞지 않은 구성이었다. 많은 이들이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한 초반 부도 개인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다지 큰 기대가 없어서였는지 몰라도 왜군의 규모나 분위기를 보여주는 초반 장면들은 음악의 힘에 기대고 있는 부분이 크긴 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내용과는 별개로 한국 배우들이 왜군과 그 장수들을 연기하는 상황과 제법 괜찮은 이미지가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고증의 문제는 별개다. 참고로 명량의 고증 수준은 그리 높지는 않은 듯 하다). 초반의 시퀀스들도 영화 전체와 마찬가지로 각각 별개로 놓여있고 유기적으로 엮여 있지 않은 부분이 분명 있지만,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순신의 이야기의 비중을 줄이고 왜군들의 이야기의 비중을 높인 것은 오히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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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 적인 이야기로 '왜 지금 이순신인가?'라는 담론은 쉽게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들의 정부를 향한 불만 들이 가득 찬 시점에서 이순신이라는 리더의 모습은 국민들이 바라는 이상향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극 중 김태훈 씨가 연기한 캐릭터의 대사 중에 '왜 대장선이 맨 앞에 있어'라는 식의 대사가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이 집약적으로 이순신의 리더쉽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보통 리더는 뒤에서 빠져 있고 지시를 하게 마련인데, 명량의 이순신은 부하들이 모두 뒤에 빠져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자신의 목숨을 걸고 홀로 맨 앞에서 맞서 싸우는 리더쉽을 보여준다. 물론 리더라면 응당 이러한 모습을 손수 보여주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있는 우리들로서는 일종의 대리 만족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어 버려서 더 씁쓸한) 을 느낄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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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명량의 초반 부는 감정적으로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영화가 지루해서, 이순신 장군이 겪는 고초가 공감 되어서가 아니다. 바로 명량 해전이 벌어진 장소가 얼마 전 참혹했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던 그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물살을 바라보며 전략을 떠올릴 때 검고 빠른 바다가 스크린 한 가득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어찌 세월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우리가 세월호 뉴스를 들을 때 수 없이 많이 듣던 조류와 물 때의 이야기가 나올 땐, 그리고 검은 바다의 이미지는 세월호 사고와 정부의 무능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가 생각나 몹시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인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클라이맥스 부분을 지나쳐 엔딩을 맞게 되어도 별다른 카타르시스는 느껴지지 않았다.

'명량'을 온전히 감상하기엔 세월호 사고의 상처가 너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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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 : 민란의 시대

차라리 더 조윤의 영화였더라면



'범죄와의 전쟁'을 연출했던 윤종빈 감독이 다시 한 번 배우/스텝들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만든 사극 '군도 : 민란의 시대'는 그의 신작이라는 점과 하정우, 강동원의 대결 구도 등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다. 화려한 캐스팅은 물론이고 예고편에서 뿜어나오는 타란티노스러운 리듬감과 스타일은, 강동원이라는 보증되어 있는 비주얼과 함께 어떤 스타일리쉬한 액션 활극이 될지 큰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군도'는 위의 기대를 대부분 충족시킨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윤종빈 감독에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균형감이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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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의 스토리는 대략 히어로물과 유사하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능력도 없고 평범한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에 이미 대의를 위해 오랜 시간을 준비해 오던 무리에 일원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그들에게 훈련을 받아 그들이 오래 계획했던 대업을 결국 마무리하게 되는 중책을 맡게 되는 그런 구조인데, '군도'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조금씩 흔들렸다고 하겠다. 저런 스토리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 스토리가 관객에게 더 큰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는 초반 평범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관객에게 공감을 얻어야 하고, 무리로 등장하는 선의의 그룹의 이야기 역시 진정성이라는 이름의 이유가 필요한데, '군도'의 경우는 이 두 가지가 조금은 부족했다. 돌무치는 불운한 사건을 겪으며 도치가 되지만 이 성장 아닌 성장 과정에서 관객은 별다른 동요를 느끼지 못하고,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백성을 위하고자 하는 도적떼의 이야기 역시 더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시간도 깊이도 부족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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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은 이 부족한 부분을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하려 하는데, 아쉽게 느껴졌던 것은 이 부분에서 필요했던 건 설명이 아니라 공감대였다는 점이다. 역사적인 내용은 설명으로 해결이 될 수 있었지만 이 설명 만으로는 지리산 도적떼가 이루려고 하는 진짜 세상과 주인공 돌무치의 울분이 생각보다 와닿지 않았다. 써놓고 보니 특히 돌무치의 경우 그 울분이 더 강렬하게 표현되어도 좋았을 법 했는데 너무 쉽게 대의에 섞여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즉, 개인적인 사정과 시대적인 사정이 결합하는 구조에서 둘 모두가 조금은 미지근하게 표현되다 보니, 전반 부는 조금 지루하고 후반 부는 빠르게 진행되나 감정적으로 공감되기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인가.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강동원이 연기한 조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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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이 설정한 이 영화의 대립 구도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도가 아니라 둘 다 갖지 못한 자들의 싸움 구도였다. 재산은 물론 먹을 것 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백성들과 처음 부터 서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했던 이의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앞선 군도들의 이야기는 진정성이 미처 다 어필되지 못했지만, 그 반대 편에 서 있는 조윤의 이야기는 비교적 절제된 방식으로도 충분히 설명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후반 부의 클라이맥스에서도 도치가 아니라 오히려 조윤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결과까지 낳게 되었다. 솔직히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100% 이를 가능케 했다기 보다는 조윤이라는 캐릭터와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비주얼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다. 긴 도포를 휘날리며 신선처럼 걷고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무를 겸비한 조윤은, 강동원이라는 배우를 통해 곱지만 강렬한 선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조윤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돌무치와 군도들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갖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었기에, 말미에 가서도 그 반대 편에 서 있는 '적'이라기 보다는 또 다른 주인공 (사실상 주인공)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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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보니 차라리 더 조윤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캐스팅은 어려웠을 지도 모르지만, 조윤의 캐릭터가 워낙 강렬하다보니 조금 더 많은 비중을 조윤에게 할애하고 지금과 같은 구도가 아닌 조윤에게 더 포커스를 맞춘 구도였다면, 혹은 돌무치의 비중과 공감대를 조윤에게 버금가도록 끌어냈다면 (사실은 조윤을 넘어서야 하지만) 더 흥미로운 구도의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도'는 한 편으로 감독의 전작 '범죄와의 전쟁'과 닮아 있는데, 여럿을 등장시키면서도 그 균형점을 잘 잡아내었던 전작에 비해 이번 작품은 조금은 그 균형이 흔들렸던 것 같다. 하지만 조윤 때문이가. 극장을 나온 뒤로도 계속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영화이기도 하다.



1. 타란티노 스타일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텐데 (실제로 '장고'에 수록된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고), 그런 면에서 통쾌함을 주지 못했다는 건 아쉬운 점이었네요.


2.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극 중 캐릭터들의 나이였죠. 나중엔 이성민씨가 연기한 대호역시 25정도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요. 그 땐 정말 힘든 시기였나보네요;;;;


3. 처음 김성균씨가 등장했을 땐 까메오 정도인 줄 알았었는데 쭈욱 나오더라는. 결국 또 하정우의 오른팔인겁니까?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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