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루

블루레이에 제 글이 수록되었습니다



먼저 이윤기 감독, 전도연, 하정우 주연의 한국영화 '멋진 하루'가 블루레이로 국내 출시되었습니다. 영화도 너무 멋진 영화지만 블루레이 패키지 자체가 워낙에 멋지게 나온 터라 소장 가치를 한 껏 업그레이드 시켜주더군요.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제작사 LIFE LABS MEDIA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멋진 하루' 블루레이에 대한 본격적인 리뷰는 아래 DP에 올린 리뷰를 확인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이 리뷰는 추후 제 블로그에도 다시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BD 리뷰] 제대로 멋진 블루레이 '멋진 하루'

http://dvdprime.donga.com/dvdmovie/DVDDetail_Sub.asp?dvd_id=2009&master_id=0






블루레이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리뷰를 통해 이미 다 풀기도 했고,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자랑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멋진 패키지에 제 글이 수록되었기 때문입니다 ^^;; 저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국내에 출시된 블루레이 제품에 제 글이 수록된 것이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 '북촌방향'에 이어 세 번째 인데, 이번에도 너무 좋아하는 작품에 숟가락을 얹을 수 있게 되어 무한한 영광일 뿐입니다.



홍상수의 북촌방향과 옥희의 영화 블루레이에 제 글이 실렸습니다!

http://realfolkblues.co.kr/1647







이렇게 알차고 멋진 Collector's Book 의 내용 가운데는 감독님의 인터뷰와 스틸컷, 스텝들의 인터뷰 등이 빼곡하게 담겨 있고,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의 멋진 글 '마음을 건드리는 작은 이야기'도 수록이 되어 있는데, 몹시도 비교되게 바로 그 다음에 제 글이 아래와 같이...





두둥. 무려 4page에 걸쳐서 제 글 '완벽하게 멋진하루'가 실렸는데, 이동진씨의 글과 함께 실리게 되어 부담스럽기도 하면서 영광스럽기도 하고 그렇네요 ^^;





그리고 무엇보다 제 소개에 있어서 '영화애호가'라고 쓴 점이 생각하면 할 수록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 저야 뭐 평론을 쓰지도 않고 직업적으로 하고 있지도 않으니 평론가라고는 절대 부를 수 없고, 그렇다고 기자도 아닌데 리뷰어라는 말로는 좀 애매해서 어떤 이름이 좋을 까 생각하다가 '애호가'라는 단어가 떠올랐는데, 영화 글 쓰기에 있어서 좋아하는 감정을 최대한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 제 글의 포인트라고 봤을 때, 이 '애호가'라는 호칭은 제법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 ㅎㅎ 앞으로도 또 기회가 있다면 계속 '영화애호가'라고 불리고 싶네요.






요새 일은 너무 정신 없이 바쁘고 삶은 지치고 고닮픔의 연속이었는데, 이 '멋진 하루' 블루레이가 저에게도 또 다른 멋진 하루를 선사해주네요 ^^


평소 부족한 제 글을 기다려주시고 정독해주신 블로그 독자 여러분들과 DP에서 제 글을 응원해주시는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

우린 어떤 왕을 뽑아야할까



'마파도 (2005)'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0)'를 연출했던 추창민 감독의 신작, 이병헌 주연의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익숙한 '왕자와 거지'의 설정을 조선의 15대왕 '광해'의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이다. 처음 이 작품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는 이병헌의 심각하고도 멋진 이미지와 포스터에, 광해를 둘러싼 음모와 미스테리가 담긴 작품일 줄로만 알았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심각함 보다는 웃음이 시종일관 함께하는 오락영화였다. 이병헌이라는 걸출한 배우와 '왕'이라는 설정의 만남은 사뭇 기대되는 조합이었는데, 그 가능성과 아쉬움을 모두 보여준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 리얼라이즈 픽쳐스.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한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있던 광해군 8년, 안전을 위해 자신과 꼭 닮은 이를 찾아 가끔씩 대역을 세우던 광해는, 어느날 반대파의 음모로 인해 목숨이 위태롭게 되고 이에 허균은 가끔 왕의 대역을 하던 '하선'을 왕의 대역으로 세우게 된다. 하선은 처음에는 그저 왕이라는 자리에 신기해하기도 불편해하기도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고 주변 상황(조선이 처한 상황까지)을 알게 되면서 점차 그저 대역이 아닌 자신의 '의지'를 갖게 된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이 영화의 그 다음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단순한 대역이었던 하선을 통해 진정한 왕과 정치, 나라에 대해서 생각해보게끔 하는 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시기적절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이 '시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가볍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본래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심각함 보다는 시종일관 유머가 섞여 있는 무겁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그 유머가 겉돌지는 않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아직도 한국영화에서는 극과 너무 무관한, 누가 봐도 저 캐릭터는 웃길려고 나왔구나 하는 캐릭터가 그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서 극에 녹아들지 못한 채 혼자 개그를 해서 관객을 민망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적어도 '광해'의 유머는 극의 분위기와는 잘 녹아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결국 영화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었기에 그 균형이 중요하다 하겠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균형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 리얼라이즈 픽쳐스. All rights reserved


바로 그 이유가 앞서 얘기한 '시기' 때문인 듯 한데, 평소 같으면 너무 진부한 하선의 정의로운 울부짖음에 '그래,  말을 다 좋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라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웠겠지만, 대한민국의 중요한 선거를 앞 둔 시점에서는 이 순진무구라고 해도 좋을 누구나 다 아는 정의의 메시지가 그냥 들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어느 누가 정의를 모르겠는가. 하지만 최근의 대한민국은 그른 것이 옳은 것으로 둔갑하는 것은 물론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잘못을 당당하게 '이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또 용인되는 (혹은 설득되는) 세상이다보니, 보통 때 같으면 손발이 오그라들었을 아주 기본적인 정의 구현이 울컥할 정도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왕이 되고자 한 하선의 사자후는 결국 '백성을 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 하겠는데, 그것이 왕과 정치의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런데 워낙 백성을 위해주는 왕과 정치를 최근 접하지 못하다보니, 이 뻔하디 뻔한 진리가 감동적일 만큼 팍팍 뇌리에 꽂혔다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현재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문제이지만, 이런 시대를 잘 겨냥한 영화의 촉이라면 촉이겠다. 



ⓒ 리얼라이즈 픽쳐스. All rights reserved


우리는 오는 12월 어떤 왕을 뽑아야 할까? 아니 과연 누가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자일까.



1. 여기서 '왕 = 대통령'은 당연히 비유입니다. 대통령이 무슨 왕 같은 자리냐고 하시면 얘기가 산으로 가요. 그런데 더 씁쓸한 건 영화 속 광해는 왕이면서도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것에 비해, 우리가 겪었던 대통령은 영화 속 광해를 넘어서는 권력을 휘둘렀죠. 참.


2. 이 영화의 포인트는 누가 뭐래도 이병헌이라는 배우입니다. '왜 그랬어요?'라는 대사들을 땐 소름이;;;;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리얼라이즈 픽쳐스 에 있습니다.


 










피에타 (Pieta, 2012)

헤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굴레



김기덕 감독의 열여덟 번째 영화 '피에타'를 보았다. 평소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아무래도 그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방식에 있어서 호불호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영화는 항상 '날 것'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었는데, 그 날 것을 요리하는 방식의 정도에 따라 그의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달랐던 것 같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 '피에타'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보아온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여전히 그의 방식은 날 것에 가깝고 불편함을 숨기지 않는 방식은 그대로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요리의 방식과 메시지를 비교적 은유 없이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 김기덕필름. All rights reserved


잔인한 방법으로 돈을 빌린 사람들을 찾아가 보험금을 뜯어내는 강도 (이정진)에게, 어느 날 자신이 엄마라고 말하는 여자 (조민수)가 나타난다. 처음 자신의 엄마라는 것을 믿지 못하던 강도는 끈질기게 자신의 곁을 지키는 여자를 점점 엄마로 인정하며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된다.


김기덕 감독은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이렇듯 불편한 진실을 영화화 하는 것에 대해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여러 감독들이 이미 이야기하고 있으니 다른 감독들이 잘 다루지 않는 어두운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겠다는 생각에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고 했는데, '피에타' 역시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앞서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되었다는 소감처럼, '피에타'가 담고 있는 삶 혹은 대한민국에서의 삶의 이면이 전작들에 비해 가장 쓰라리게 느껴졌다. '피에타'의 메시지는 상당히 직접적이다. 종교적인 구원의 색채를 담고는 있지만 영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도시와 이야기는 에둘러 은유하려고 들지 않는다. 


청계천에 위치한 작은 공업 상가들을 배경으로 그들이 직면한 현실의 삶의 문제, 이자가 원금의 10배 넘는 걸 알면서도 당장의 생활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빚을 질 수 밖에는 없는 현실, 그리고 이들을 이렇게 사지로 몰아넣은 자본주의와 대한민국의 현실은, 얼핏보기에 마치 우리 삶과 전혀 동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인냥 진행되지만 바로 서울하고도 청계천, 즉 현실에서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 일임을 지속적으로 관객에게 인지시킨다. 청계천이 훤히 바라다보이는 건물의 높은 곳에 올라 평생을 해온 삶의 터전이 곧 사라질 것을 비관하는 장면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기 보다는 그냥 '현실'이다.


(이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김기덕필름. All rights reserved


'피에타'라는 제목과 조민수와 이정진이 함께한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모습을 한 포스터를 보았을 때 눈치챌 수 있었듯, 이 영화는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구원에 관한 영화였다. 그런데 이런 구도로 가던 영화는 작은 반전을 내어 놓는다. 바로 조민수가 연기한 여자가 강도의 엄마가 아니라 그로 인해 고통받고 죽어간 이의 어머니였다는 것. 영화 내내 강도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에게 '이 악마의 자식'이라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바로 이 악마의 자식을 잔인한 방식으로 처단하는 또 다른 잔인한 복수를 여자는 거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피에타'는 이것이 반전으로 읽히지 않는다. 즉, 여자가 강도에게 잔인한 복수를 하는 이야기도 물론 있지만, 여자가 속이려고 했던 강도의 어머니로서의 이야기로도 읽힌다는 얘기다.



ⓒ 김기덕필름. All rights reserved



결국 여자는 마지막에가서 자신의 아들에게 '강도도 너무 불쌍해'하며 연민을 느끼게 된다. 영화 속 사실만을 근거로 하자면 이 연민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자신의 아들을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한 복수로 더 잔인한 방식을 택했을 만큼 독한 마음을 먹었던 여자가, 그 복수의 상대에게 '너무 불쌍해'라며 연민을 갖는 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피에타'는 강도와 여자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간청한다. 강도를 묘사함에 있어서 동정심을 유발시킬 만한 장면과 설정들을 담기는 했지만, 그것이 강도를 단순히 사회가 만든 악마로서만 봐달라는 방식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여자가 강도를 아들로 대하며 겪는 이야기들은 이 영화에 작은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설령 복수를 위한 거짓된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처음부터 연민 같은 건 없었고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그 복수의 날이 강도에게 향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 이들에게 (여자 스스로를 포함하여)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간곡한 바램의 틈을 작게나마 엿볼 수 있었다. 



ⓒ 김기덕필름. All rights reserved


'피에타'가 종교적인 구원의 메시지로 느껴진 것은 영화가 선택한 마지막 때문이었다. 목숨을 담보로 빚을 질 수 밖에는 없는 서민들의 삶. 내 아이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스스로 두 손을 내어놓은 삶. 악마같은 잔인한 방법으로 다른 삶을 죽음으로 내몰지만 그 자신도 구원받지는 못하는 삶. 복수로 자신과 아들의 삶을 구원하고자 하지만 결국 더 큰 슬픔만을 간직하게 된 삶.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 어느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 채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영화가 유난히도 아픈 것은 헤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굴레를 결국 누구도 이겨내지 못하고 모두 본인이 선택한 방법으로 스스로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결국 여자는 마지막에 더 큰 아픔의 눈물을 흘리기는 했찌만 본래 계획했던 그대로 스스로 몸을 던졌고, 강도 역시 자신의 악마와도 같은 행동으로 더 힘든 삶에 놓인 이들을 빌려 스스로 잔인한 죽음의 길을 택했다. 이것은 순교는 절대 아닐 뿐더러 구원에 이른 죽음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아마도 이 영화가 영화 속 인물들에게 허한 유일한 자비라면 마지막 여자를 뒤에서 밀어 버리려고 했던 할머니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여자와 마찬가지로 아들을 잃은 복수를 행하려던, 이 굴레에서 더 헤어나올 수 없게 될 수 있었던 할머니에게는 여자와 같은 지옥같은 삶을 주지 않은 것이 이 영화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자비가 아니었나 싶다.


다시 문장의 처음으로 돌아가, 이 영화에서 종교적 구원의 메시지를 느끼게 된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헤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굴레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이러한 아픔과 죽음이 일어나지만 그 깊이는 보려하지 않는 고층 빌딩 숲과도 같은 사회에 대한 환멸이 결국 종교적인 구원을 바라는 간절함으로 빚어지지 않았을까.



ⓒ 김기덕필름. All rights reserved


(스포일러 끝)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새삼스럽지만 아니 혹은 잘 몰랐거나 알고자 하지 않았던 현실의 아픔을 보게 해 준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 집으로 오는 내내 '아프다'라는 말만 되뇌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이 아픔이 더 많은 관객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며.



1. 스포일러가 될까봐 더 자세하게 적지는 못하지만 여자와 강도가 처음만나 엄마임을 확인하려는 그 장면에서 출산의 고통, 순간이 느껴졌어요. 양면성이 담긴 이 장면 참 인상적이었어요.


2. 오랜만에 만나는 아주 강렬한, 아픈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3. 글 초반에 이야기한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김기덕 감독 작품 가운데는 가장 제 취향에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김기덕필름 에 있습니다.


 








도둑들 (The Thieves, 2012)

최동훈 세계의 집대성 그 장점과 단점



언제부턴가 국내에서 영화를 소개할 때 '웰 메이드 (well­ made)'라는 표현을 유독 자주보게 되었는데, 어쨋든 전반적으로 잘 만든 영화라는 의미라면 국내에서 '웰 메이드'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독 중 하나가 바로 최동훈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범죄의 재구성 (2004)' '타짜 (2006)' '전우치 (2009)' 까지,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은 개인마다 호불호는 나뉠 수 있지만 영화적 완성도로 보았을 때는 전반적으로 평균적인 완성도가 높은, 배우, 연출, 액션, 시나리오, 대중성 등 다방면에서 준수함을 보여주었기에 이 작품 '도둑들' 역시 적지 않은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다.




ⓒ 케이퍼필름. All rights reserved


'도둑들'은 전반적으로 최동훈의 세계관을 집대성 해놓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두 명이 극을 이끄는 것이 아닌 여러 명의 캐릭터가 집단으로 등장해 유기적으로 얽히는 설정은 물론, 범죄의 세계에 대한 디테일 (주로 대사에서 오는)을 챙기는 한 편, 액션에도 볼거리를 선사하고 반전을 거듭하는 동시에 드라마까지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도둑들'은 이미 장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양날의 검이라는 것이 확연한 작품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조금만 더 간결했더라면 훨씬 더 매력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최동훈 감독은 언제나 영화의 배경을 묘사할 때 단순 묘사나 한 두 가지의 디테일로 승부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그 세계를 그려내는 데에 공을 들였던 감독이었다. '범죄의 재구성'은 전문 사기꾼들이 쓰는 찰진 대사들을 통해 실제 그 세계를 러닝 타임 동안만이라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타짜' 역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박꾼들을 넘어서 그들 만의 세계를 엿볼 수 있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도둑들' 역시 최동훈 감독은 현실과 거리가 있는 듯 하면서도 한 편으론 우리가 사는 이 곳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를 현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가끔 이런 이면의 세계를 그릴 때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경우들이 있는데, '도둑들'은 현실성과 영화적인 부분이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단편적으로 정리하자면, 부산을 배경으로 건물 외벽을 와이어에 매달려 벌이는 총격전이 한편으론 판타지스럽기도 하지만 만족스럽기도 하다는 얘기.




ⓒ 케이퍼필름. All rights reserved


그 세계관을 구현하는데에 있어 '도둑들'이 갖고 있는 장점들은 캐릭터와 로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일단 집단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경우 장점과 단점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10명에 가깝게 주요 캐릭터가 등장하는 경우 각각 캐릭터의 이야기를 살리기는 불가능하다기보다 안하는 편이 맞다고 생각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절반의 만족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몇몇 캐릭터의 경우 딱 그 캐릭터의 비중에 맞게 설정되어 그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앤드류-오달수, 예니콜-전지현 등), 몇몇 캐릭터에게는 범위 이상의 이야기가 할애된 듯한 느낌 역시 받았다. 김수현이 연기한 '잠파노'의 경우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예니콜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조금은 모호함이 없지 않았던 것 같고, 임달화 형님이 연기한 '첸'과 김해숙이 연기한 '씹던껌'의 이야기의 경우는 무언가 전체적인 이 영화의 흐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니 어울리지 않다기보다 모호하게 위치한 느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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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도둑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역시, 임달화 형님의 출연 때문 ㅠ)


참고로 첸과 씹던껌의 이야기를 통해 최동훈 감독이 말하고자 한 '도둑들'의 정서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이 이렇게 중간에 흩어져 버리는 것이 좀 아쉬울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그 둘이 남긴 대사들이 주는 범죄 영화의 감성적인 정서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 정서가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에서 한 켠에 머무르지 않고 차라리 중심에 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렇다면 현재의 '도둑들'에서 어울리지 않는 정서들도 여럿 있을 테니 총체적인 정리가 필요했겠지만... 아무래도 이 정서의 중심에 임달화 형님이 있다보니 이렇게 사이드로 마무리 되는 것이 아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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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최동훈 감독의 야심이 집대성 되다보니 발생된 단점이라면, 일단 안그래도 집단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때문에 이야기가 집중되지 못할 확률이 높은데 그 각각의 인물들에게 비교적 더 많은 이야기를 주려고 하다보니 전반적으로 힘을 잃은 경향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도둑들'의 메인 스토리라면 마카오박을 중심으로 태양의 눈물을 두고 벌이는 이른바 '꾼'들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여기에 팹시(김혜수)와 뽀빠이(이정재)가 연관된 과거사가 포함된 것까지는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첸과 씹던껌의 독립적인 이야기는 물론, 무언가 더 할 것처럼 하다가 애매하게 남겨져 버린 잠파노 그리고 추후 비중있게 등장하는 웨이 홍의 이야기까지, 모두 하나의 줄기에 엮여있기는 하지만 각자의 열매가 조금은 무거웠던 탓에 전반적으로 복잡해져 버린 느낌이었다.


사실 이렇게 복잡한 관계 설정을 가지고 노는 것이 최동훈 감독의 이야기에 장점 중 하나이긴 한데, 이번에는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았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 처럼 시리즈로 계획되었다면 조금은 부담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워낙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하다보니 각각의 비중을 설정하는 데에 조금은 애를 먹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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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역시 후반부 부산에서 펼쳐지는 건물 외벽 와이어 액션을 들 수 있을 텐데, 어떤 영화와 비슷하다 아니다를 떠나서 시퀀스만 봐도 액션 콘티를 얼마나 신경써서 작업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장면이었다. 사실 그 동안 마카오박에 대해 영화가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았기에 갑자기 이던 헌트처럼 와이어를 타고 자유자재로 날라다니는(?)가 하면 홍콩 조직원들과도 1:1로 결투까지 벌이는 마카오박의 모습에 조금 갑작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어쨋든 그 갑작스러움만 제외한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리듬감을 만나볼 수 있는 시퀀스였다. 두기봉 영화와 성룡 영화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는데, 전반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었던 부산 로케이션을 배경으로 (이 장면의 또 다른 승자는 바로 그 건물이다), 와이어를 최대한 적절하게 활용한 이 액션 시퀀스는 '도둑들'이 단순히 머리쓰고 뒤통수 치는 영화가 아니라 볼거리로도 만족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된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나중에 블루레이가 나온다면 한 번 본편을 감상한 경우 바로 이 장면을 선택해 다시 볼 것만 같다.



ⓒ 케이퍼필름. All rights reserved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그의 영화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요소들이 총출동하는 작품으로서,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관객들이라면 그 각각의 매력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다채로운 작품이 될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그 매력적인 요소들이 조금은 과하게 담긴 탓에 넘쳐 아쉬움으로 남게 된 점도 없지 않지만, 우리가 흥분했던 홍콩 범죄 영화의 장점을 우리 것으로 잘 소화해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으로 아마 어렵겠지만 '오션스 일레븐' 처럼 시리즈로 제작되어 다음 편에는 정말 조지 클루니가 일원으로 출연한다던지 아니면 양자경 누님 정도가 출연해주신다면 더 멋진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비현실적인 바램도 가져본다.



1. 오랜만에 극장에서 여자 분들의 함성소리를 들었어요. 확실히 김수현이 대세이긴 한 것 같아요 ㅎ 그의 등장과 대사 하나하나에 반응하시더라는 ^^;


2. 그동안 자신의 이미지를 비튼 전지현의 '예니콜' 캐릭터는 확실히 인상적이더군요. 염정아나 김혜수가 내뱉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같은 대사들이었어요 ㅎ 이름부터가 '예니콜'이라는 것에서 피식하기도 했고요 ㅋ


3. 오히려 등장인물들이 많다보니 메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마카오박(김윤석)의 비중이나 깊이는 조금 덜해진 느낌이더군요. 이건 김윤석 씨가 연기를 못했다기 보다는 상대적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 나중에 부산 가면 그 건물과 그 골목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정말 홍콩 영화에서나 보던 장소 활용이랄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케이퍼필름 에 있습니다.


 






다른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 2012)

가지 않았던 길 앞에 서다



홍상수의 신작 '다른나라에서'를 보았다. 이자벨 위뻬르의 출연으로 더욱 화제가 되었던 '다른나라에서'는 전작인'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과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한 편으론 또 다른 가능성으로 나아간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그냥 하는 말로 '재미있다'가 아니라 극장을 나오며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아, 정말 영화 재미있게 만들었네!'라는 생각이 드는 아기자기함과 그 속에 묘한 감정선이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홍상수는 전작들을 통해 같은 인물들을 두고 시공간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거나 (북촌방향), 하나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이야기로 풀어내 모호함 속의 논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옥희의 영화), '다른나라에서'는 모호함은 덜하고 좀 더 명확해졌으며 시공간은 같지만 같거나 다른 인물들의 또 다른 이야기 (가지 않은 길)를 통해 홍상수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인 인물들 간의 관계에서 오는 재미를 한가득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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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엄마와 함께 빚에 쫓겨 모항에 내려온 딸 (정유미)이 심심해서 써 본 세 편의 작은 이야기(시나리오)에 등장하는 각기 다른 안느 (이자벨 위뻬르)에 관한 이야기다. 모항이라는 동일한 공간, 여름이라는 같은 시간대 그리고 그 시공간에 존재하는 같은 사람들. 하지만 세 명의 다른 안느가 만나는 이 시공간과 사람들은 조금씩 다른 상황을 만들어 낸다.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는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물론 이자벨 위뻬르가 모항을 배경으로 유준상, 정유미 등 우리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그 자체로 신선함과 매력을 준다) 이 세 가지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으로 묶여 있을 때는 얘기가 다르다. 개인적으로 '다른나라에서'는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의 어느 한 접점이라고 생각되는데, 좀 더 명확해진 '옥희의 영화'이자 대놓고 챕터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정유미가 시나리오를 쓰는 장면을 매번 삽입하면서 챕터화를 한 '북촌방향' 말이다. 이렇게 관계나 구성에서 좀 더 명확해지면서 영화는 좀 더 이해하기 쉬운 편안한 작품이 되었고, 그의 다른 여름 영화들처럼 (해변의 여인, 하하하) 좀 더 유쾌함과 살랑거림을 담은 가능성의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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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과의 접점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른나라에서'의 가장 큰 매력은 세 명의 안느의 이야기가 모두 밀접한 점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블록버스터 영화였거나 반전을 핵심으로 내세운 영화였다면 영화 속 다양한 복선과 연결고리들을 굉장한 무기로 활용했겠지만, 홍상수는 마치 이 모든 것들이 또 다른 우연의 가능성인냥, 그냥 자연스레 흘러버린 물줄기인냥 손 가는대로 그려냈다. 세 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으로 묶여 있을 때의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 그들은 모르지만 관객들은 이들의 또 다른 모습 (그들이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일 텐데, 아마도 블록버스터 영화였다면 시간 여행을 통해 그 인물의 과거나 미래의 모습을 만나보게 될 때와 유사한 흥미로움과 영화 속 인물들은 처음 겪는, 처음 하는 일이지만 이를 본 관객들 입장에서는 반복을 보게 되는 것에서 오는 다른 재미와 다른 포인트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물론 홍상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배열해 놓고 관객에게 반복과 가능성의 재미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안느에게도 일부 관객과 같은 능력(?)을 부여하고 있다. 즉, 정말 각기 다른 이야기 속 다른 안느라면 (이럴 경우 같은 안느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지만)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들을 주었는데, 이 장치를 묘사하는 방식이 관객으로 하여금 '엇, 이상한데?'라고 단순히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애잔함을 남기고 있어 특히 더 인상적이었다. 바로 안느의 뒷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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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에서'가 인상적이었던 건 단순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가능성을 마치 인생극장처럼 펼쳐놓은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 앞에 선 안느의 모습 때문이었다. 한 쪽으로 가면 안전요원을 만나게 되고 다른 한 쪽으로 가면 등대로 가는 길인데, 안전요원과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등대에 가게 되면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어서의 중요함 보다는, 이 길 앞에 잠시 멈춰선 안느의 뒷 모습이 무언가 다른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안느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대사가 영어로 이루어진 짧고 응축된 대화들을 통해 단순히 프랑스 여인 안느 만이 '다른나라에서'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인물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다른나라'를 경험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세트 하나 없이 실존 하는 장소들만 가지고 촬영한 이 영화가 마치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모항'이라는 가공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모항의 자연적 아름다움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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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작들의 비하자면 정서적인 메시지는 좀 덜하고 유쾌한 편안함이 더 가미된 작품이기는 하지만, 몇몇 장면들은 정말 홍상수 영화의 다른 명장면들이 그러하듯이, 아무것도 아닌데 정말 눈물겹게 아름다운 장면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예고편에서도 등장했던 유준상이 연기한 안전요원이 텐트 안에서 안느에게 노래를 불러 주는 그 장면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런 맥락이 없는 장면이라고 해도 무방한 순간이었는데, 그 장면이 주는 임팩트가 어떠하였는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유준상이 너무 아름답게 노래해서도 아니고, 곡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만도 아닌데 그 장면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ANNE, THIS IS A SONG FOR YOU.
ANNE, YOU HAVE A BEAUTIFUL NAME.
IT'S RAINING. BUT IT'S RAINING.
ANNE WANT TO GO TO… GO TO LIGHTHOUSE.
BUT IT'S RAINING, ANNE IS COLD.
DO YOU WANT TO GO LIGHTHOUSE?
BUT, WE DON'T KNOW. WE DON'T KNOW.
ANNE, ANNE, ANNE.





1. 전 개인적으로 안전요원의 텐트 안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은 것이 가장 훌륭한 선택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하긴 홍상수 영화에서 텐트 안을 잡아냈다면 그것도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네요 ㅎ


2. '하하하'를 보고 가장 크게 발견한 건 역시 유준상이었는데, '다른나라에서' 드디어 터져나왔어요! 주옥 같은 영어 명대사를 여럿 만드셨습니다 ㅋ


3. 홍상수 투어의 장소가 또 추가되었군요. 이제는 모항도 가봐야할 곳!


4. 이 작품에서 새롭게 발견한 이자벨 위뻬르의 모습이라면 '귀여움' 이었어요. 빨간 원피스를 차려입고 나선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귀엽더군요.


5. 도올 선생님은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서 이미 첫 등장의 뒷모습부터 웃음이...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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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2012)

전형적이어도 괜찮아



'코리아'는 1991년 제 41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북이 최초로 단일 팀으로 출전해 최강의 상대였던 중국 팀을 꺾고 기적 같은 금메달을 거두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1991년 이면 겨우 초등학생 일 때였음에도 이 날의 기억은 제법 생생했다. 태극기나 인공기가 아닌 한반도 기를 들고 우리의 소원을 부르던 그 때의 기억은 어린 나이 임에도 무언가 찡한 것이 있었나 보다. 여튼 그 날의 이야기가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생각보다 큰 기대는 갖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남북이라는 관계와 단일팀이라는 특수상황 그리고 세계선수권 대회 등의 재료로 미뤄보아 너무나 방향이 뻔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화의 감동이 워낙에 대단했기 때문에 아무리 극적 장치를 추가해 영화화를 한들 실화의 감동을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예상은 대부분 들어 맞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괜찮은 방향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나 통일 이라는 테마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 에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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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쉬운 점들 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영화가 흔히 범하는 실수인 완급조절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감정은 강요하고 (은은함과 우러나옴의 미덕이 아쉬운 부분이다) 극의 전개를 돕기보다는 집중력을 흐리는 조연과 부가 에피소드 들의 비중이 크고, 너무 극적 요소를 과장되게 표현한 점이 그것이다. 실제로 '코리아'는 앞서 이야기했던 재료들을 모두 비슷한 비중으로 담아내려 한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 아니었나 싶다. 남북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오는 긴장감을 배제할 수는 없었겠지만 역시나 이를 다루는 방식이 91년 당시의 것 같았고, 스포츠 영화로서 탁구 경기와 그 주변을 묘사하는 것 역시 어정쩡한 느낌이었다 (그 예로 마지막 시합의 경우 그 장면이 마지막 금메달을 결정하는 포인트 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던 것 처럼 - 다시 듀스가 되는 포인트인 줄로만 알았음). 특히 하지원을 비롯한 배우들이 촬영 후 인터뷰 등을 통해 역대 가장 힘든 촬영이었다고 얘기했던 것에 비하면 그 훈련의 효과가 스크린에서 100% 발휘될 만한 장면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스포츠 영화로서의 매력을 살릴 수 있었음에도 놓쳐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하지원과 배두나를 비롯한 배우들이 실제 선수들처럼 훈련한 덕에, 실제 현정화 선수와 거의 일치하는 폼도 나왔고, 금메달을 따로 나서 오열하는 장면에서 연기가 아닌 것만 같은 얼굴 표정이 나왔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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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게 전형적이고 완급조절에 사실상 실패했음에도 '코리아'가 괜찮게 느껴졌던 것은 원칙적인 방향성과 이 영화가 지금의 대한민국에게 줄 수 있는 작은 영향 때문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랬던 것처럼 '코리아'는 남북, 북남이라는 특수상황 속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딱딱한 이데올로기로 그리기 보다는, 마치 현정화와 리분희의 로맨스 영화 같은 방식으로 그린 것이 마음에 들었다. 서로 남북이라는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냥 서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두 주인공이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가는 과정으로서 묘사한 것이, 배두나와 하지원이라는 두 배우의 연기로 잘 표현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커다란 테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직접적으로 파고 드는 방식보다는 관객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은히 배치하고 나중에 극장을 나오면서야 '아, 이 영화가 사실 그것에 관한 영화였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영화들을 좋아하는데 (5.18 광주를 다룬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가 임창정 주연의 '스카우트'인 것 처럼), '코리아'에도 역시 그런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물론 여기에 100% 집중하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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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코리아'는 '1991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 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지난 기적같은 일을 통해 2012년의 한반도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중요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정화와 리분희의 관계를 마치 로맨스 영화인 것처럼 묘사한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극장 내 분위기를 보니 어린 나이의 관객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관객들도 1991년의 이 경기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위기였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관객들이 배두나와 배우들이 연기한 북한 사람들을 북한 사람들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이전에 그냥 각 캐릭터가 갖고 있는 성격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이 중요했다고 본다.


'북한선수'가 아니라 리분희, 유순복 으로 느껴지도록 했기에 영화가 이데올로기에 관련한 텍스트를 들고 나왔을 때야 비로소 관객들은 '아, 그랬지' 하며 이 안타까운 상황을 좀 더 생각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배우가 이데올로기에 대해 대화하는 그 장면은 직접적이어도 좋았다. 그리고 맨 마지막 둘이 헤어질 때 나눈 안타까운 인사말에서도 어쩔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뻔히 알고 뻔히 예상된 순간이었고 울겠지 라는 예상 역시도 했던 장면이었지만, 울어버린 것이 나쁘지 않았다. '코리아'가 2012년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통일과는 멀어져 버린 세대들에게 단순히 분단의 현실을 잠시나마 환기시켜주는 기능은 해주지 않았나 싶다.



1. 실제와 영화 속 줄거리와는 다른 부분이 많더군요. 혹시나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역시나 기억이 대부분 맞더라구요. 영화는 극적인 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부분을 가공하였는데, 워낙에 실제가 드라마틱한 이야기라 그대로 갔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2. 배두나의 존재감은 대단했습니다. 원래도 팬이었지만 (참고로 제가 이 영화를 보기로 한 첫 번째 이유가 바로 그녀!) 더 반했어요!!!




3. 북한팀 감독으로 나오신 김응수 씨는 이 작품에서는 전혀 웃긴 인물이 아니었는데, 최근 본 '라디오스타'에서의 진진바리 춤 때문에 몰입이 잘 안되긔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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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멸망보고서 (Doomsday Book, 2001)

대한민국 사회 풍자 3부작



김지운 감독과 임필성 감독이 함께 옴니버스 형식으로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영화 팬으로서 당연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인류멸망보고서'라는 제목 역시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는데, 로봇이 등장하는 포스터와 더불어 이 두 감독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무척이나 기대도 되었다. 개인적으로 제목과 포스터 등에서 미뤄 짐작한 이 영화의 분위기는 '인류멸망'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맞게 굉장히 어두운 스릴러나 드라마였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유머의 비중이 상당히 큰 풍자 성격이 짙은 작품이었다. 특히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천상의 피조물'을 제외한 임필성 감독의 나머지 두 편 '멋진 신세계'와 '해피 버스데이'는 풍자 성격이 아주 강한 작품이라 조금 의외스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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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는 제목에서 부터 이미 풍자의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는데, 좀비물의 아이디어를 가져와 현대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강도 높은 풍자와 조롱을, 공포 섞인 분위기로 그리고 있다. '멋진 신세계'는 개인적으로 풍자와 공포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선택한 작품이라고 생각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게임 '데드 라이징'처럼 좀 더 좀비물의 특성을 극대화했다면 오히려 좀 더 효과적인 풍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머의 강도나 풍자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방식이 조금 직접적이다보니 오히려, 이 풍자물과 좀비물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 같아 보였다. 사실 메시지로만 보자면 세 개의 작품 가운데 가장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실제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전개라), 그 섬뜩함을 좀비물이라는 영화적 특성과 더불어 더 가혹하게 그렸다면 (유머를 조금 덜하고), 영화를 보는 이들이 '그래, 우리도 저 좀비들과 다를게 뭔가' 하는 섬뜩한 풍자와 공포를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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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은 로봇의 자각이라는 SF의 흔한 설정을 좀 더 구체화하고 확대하여, 로봇이 '열반(Nirvana)'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미래 사회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이런 소재는 이미 여러번 있어 왔기 때문에 신선함을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짧은 러닝 타임 동안 비교적 효과적으로 그 분위기를 잘 전달했다고 생각된다. 김지운 감독의 작품답게 메탈릭한 로봇의 디자인과 나무로 이뤄진 절 내의 디자인이 절묘한 미장센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미래 사회를 표현한 심플한 디자인들도 과하지 않아 효과적이었다. 사실 '천상의 피조물'의 이야기는 장편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오히려 단편으로 만든 것이 장편에서 범할 수 있는 위험들을 잘 빗겨간 선택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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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작품인 '해피 버스데이'는 상당히 모험적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인류멸망보고서'가 전체적으로 조금 모호해 진데에는 '해피 버스데이'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데, 노골적인 풍자와 과감한 메시지 전달 방법은 조금 당황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볼 수록 참 과감했다는 생각이 남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이야기가 비슷한 아이디어들을 여러번 생각해보았었는데, 그 아이디어를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영화화로 옮긴 감독의 과감한 모험은 대단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여기에도 풍자를 생각한 나머지, 좀 과하다 싶게 적용된 웃음 코드와 포인트가 전반적으로 애매해지는 결과를 만든 것 같다. 즉,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영화들 처럼 대놓고 낄낄 거리며 웃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디스트릭트 9'처럼 실감나지도 않는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정말 다시 생각해도 과감한 시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과감하다는 것은 유치한 것을 거대하게 포장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굉장히 노골적인 풍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인데, 이 메시지를 더 많은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면 좀 더 웃음의 강도를 조절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 아무래도 제작비 문제로 처음 기획했던 대로 완성되지 못한 것이 더 완벽한 구조를 갖추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나 싶네요.


2. 임필성 감독의 신작을 어서 극장에서 보고 싶습니다!


3. 봉준호 감독이 감독 출신으로서는 까메오 연기에 수준이 매번 가장 높은 것 같아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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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2012)

나의 첫사랑과 90년대에게 바침



'건축학개론'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린 남자주인공을 맡은 이제훈 때문이었다. '파수꾼'을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 그였기에 신작이 기대되었던 것인데, 그래도 볼까말까를 고민하던 차에 들려온 시사회 평들은 더 큰 호기심을 갖게 했다. 그 가운데는 '시라노 : 연애조작단'을 떠올리게 한다 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시라노..'역시 처음에는 이민정만 믿고 갔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던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건축학개론' 역시 눈물을 이끌어낼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빼먹을 뻔 했는데 이제훈 만큼이나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한 것은 바로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었다. 나의 90년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전람회를 떠올렸을 때, 만약 이 작품 역시 전람회를 그런 추억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면 분명히 감동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건축학개론'은 '기억의 습작'만으로도 소름 돋게 만든 것은 물론, 나중에 가서는 안경이 뿌옇게 변할 정도로 눈물을 주르륵 주르륵 흘리도록 만든 '감동의 걸작'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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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사랑


'건축학개론'을 정의하는 첫 번째 단어는 아마도 '첫 사랑' 일 것이다. 첫 사랑을 담아낸 영화들은 대부분 애틋하고 간절하며 그립기 마련인데, '건축학개론'은 그 가운데서도 굉장히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누구나 자신의 첫 사랑을 떠올려 보았을 때 미묘하지만 잘 나타나지 않았던 행동이나 감정들까지 이 영화는 정말 깨알같이 담고 있었다는 얘기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하나하나 다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 지난 첫 사랑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을 때 '맞아, 나도 저랬어' 하는 부분이 정말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디테일은 자연스럽게 공감대로 연결되었다.


너무나 내 추억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극중 어린 승민에게 감정이입이 되었고, 어린 서연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내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런데 이 영화가 첫 사랑을 그린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더 좋았던 점은, 첫 사랑의 상대에 대한 애정을 추억하는 것 보다는 누군가를 처음 사랑했던 '나'를 추억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나'의 행동과 감정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깨알 같았기에 영화 속 승민에게 100% 감정이입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전 누군가를 첫 사랑했던 나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졌다. 그래서 쓸쓸한 동시에 행복함이 들었다. 이런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 '건축학개론'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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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90년대


첫 사랑의 추억과 더불어 '건축학개론'이 이끌어낸 또 다른 추억은 90년대에 관한 것이었다.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많은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1970년대 생인 이용주 감독은 1980년대 생들까지 공감할 수 있는 90년대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당시의 패션이나 유행하던 브랜드의 활용은 물론이고 유행하던 가요들까지 적절히 배치하고 있어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 때를 떠올리게 만든다. 아마도 영화가 어린 승민의 입장에서 진행된다는 점 때문에 같은 남자로서 더욱 공감할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브랜드 티셔츠와 청바지 하나에 집착하던 모습이나 잘보이고 싶은 이성을 만날 때는 매번 갖고 있는 옷중에 가장 좋은 옷을 입으려고 했었던 추억이 떠올라 애잔한 감정마저 들었다.


그런데 단순히 '나는 별 것도 아닌 것을 그 때는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아니라, '그래, 그 때는 그것이 내게 무엇보다 중요했었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말 못할 무언가가 뭉클하며 끓어올랐달까. 내게 있어 첫 사랑 그 이상으로 중요한 시기였던, 어쩌면 지금까지 짧게나마 살아온 시절 가운데 가장 소중했던 시절이었던 90년대를, 가감없이 그대로 추억할 수 있어서 행복함과 동시에 말 못할 감정에 울컥했던 것 같다. CDP와 독서실, GUESS와 힙합 바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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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집'이라는 것


영화 제목이 '건축학개론'이기도 하지만, 제목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상당히 자주 '집'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반문하고 있다. 어린 서연이 제주도에서 홀로 서울에와서 독립해 살게 되는 공간으로서의 '집', 서연과 승민이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 공간으로서의 '집', '압서방'으로 불리는 이른바 강남이라는 상대적 우월감의 지역적 표현으로서의 '집', 어른이 된 서연이 아버지를 위해 고향 제주에 지으려고 하는 '집', 서연에게 고백하려는 승민이 그녀에게 선물해주고 싶어 직접 디자인 한 '집', 어른이 된 승민이 결혼을 위해 준비해야만 하는 '집', 그리고 승민의 어머니가 재개발되어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오래된 정릉의 '집' 등 '건축학개론'은 다양한 의미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 사회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집'이라는 존재에 대해 영화는 소소한 것부터 현실적인 것까지, 영화는 '건축학개론'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첫 사랑의 추억이라는 주제와 병행하여 은연 중에 '집'에 관한 이야기를 슬며시 들려주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좀 더 풀어서 자세하게 해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워낙에 앞선 주제들의 추억에 흠뻑 빠지다보니 분석적으로 달려들 동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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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건축학개론' 속 승민의 이야기에는 나의 90년대가 너무 많이 녹여져있었다. 완전히 영화 속 이야기라고 받아들였더라면 그냥 슬프거나 그냥 즐겁거나 했을 텐데, 이것이 내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다보니 이렇게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야말로 오만가지 감정이 돋아나는 느낌이었다. 울고, 웃고, 후회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와중에 어느 덧 영화는 또 한 번 '기억의 습작'과 함께 젖어들고 있었다. 아.....나의 첫 사랑과 90년대를 심하게 떠올리게 했던 애틋하고 아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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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이런 한국영화에서 재미를 위해 등장하는 캐릭터는 너무 동떨어져 있거나 너무 오버하는 경향이 있어서 오히려 낯뜨거워질 때가 많았는데, '납뜩이'는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납득되는 매력적인 캐릭터였어요 ㅋ 그 깨알 같은 대사들과 연기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소리내어 웃게 만들었네요 ㅎ

2. 처음 옥상에서 '기억의 습작'이 나왔을 때 정말로 거짓말 안보태고 온몸에 다 소름이 돋았어요 ㅠ 정말 '버틸 수 없더'군요 ㅠㅠ

3. GUESS 티셔츠에 관한 에피소드는 정말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막 터져나오더군요. 어쩔 수 없이요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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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火車, 2012)

삭막한 사회 속 잊혀져 가는 존재에 대한 연민



변영주 감독의 신작 '화차'를 보았다. 이 작품은 버블 경제 붕괴라는 사회적 문제를 겪고 있던 일본의 1990년대를 배경으로 신조 교코라는 여성의 삶을 미스테리한 방식으로 풀어낸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미야베 미유키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그 원인을 주로 사회로부터 찾는 작가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그런 측면에서 변영주 감독의 작품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느낀 변영주 감독의 '화차'는 미스테리와 그 속의 인간성 그리고 이를 만든 사회의 문제에 대한 직간접 은유까지 적절한 조화를 이룬 무게감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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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결혼은 앞둔 문호(이선균)와 선영(김민희)이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집으로 내려가던 중 들린 휴게소에서 선영이 갑작스레 실종되면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실종의 미스테리를 풀어가기 위해 전직 형사인 사촌 형 종근(조성하)까지 합류하면서 조금씩 실마리가 잡혀가지만, 알아가면 갈 수록 미스테리의 깊이도 마음의 상처도 더 깊어만 간다.


단순히 형식적으로만 보자면 갑작스레 사라진 선영을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선영의 존재에 대한 미스테리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화차'를 본격적인 미스테리 스릴러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화차'는 미스테리가 포인트인 작품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풀어가는 일종의 도구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원작에서는 형사인 사촌 형이 사건을 풀어가는 시점에서, 문호와 선영, 종근의 삼자 구도로 각색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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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종일관 차갑고 어두운 색감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거의 웃을 겨를이 없을 정도로 상처가 깊어만 가는 얼굴을 하고 있다. 문호가 선영을 쫓는 과정 속에는 기본적으로 선영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있다. 자신이 결혼을 결심했을 정도로 사랑했던 연인으로서의 애정은 물론이고, 점점 미스테리가 풀릴 때마다 인간적인 실망과 분노가 일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더 나아가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인간적 연민의 마음까지 도달한다 (특히 마지막 용산역 에스컬레이터 에서의 그 대사는, 애정으로 기인했을지 몰라도 분명 인간적 연민이 나타난 대사였다). 이렇듯 단순한 로맨스의 감정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적 연민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좋았다.


이렇게만 보면 김민희가 연기한 극중 선영이라는 캐릭터가 이 사회가 만든 어쩔 수 없는 피해자임만을 강조하여 연민이 들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만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꼭 그렇지 만은 않다. 관객이 선영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을 수 있도록 한 것은 맞지만, 그녀로 인해 또 다른 피해를 받은 인물들 (여기에는 문호도 포함)과 혹은 선영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는 중에 간과될 수 있었던 인물들에 대한 묘사들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관객에게 선영에 대한 연민 외에도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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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감독은 '화차'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삭막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직접적으로는 김민희가 연기한 선영이 자신으로 살아오지 못한 현실을 묘사하면서, 사람하나 죽거나 어찌되어도 아무도 관심조차 없는, 무관심과 단숨에 무너져 버리기 쉬운 낱알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즉, 더이상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도록 내몰린 사람과 내몰고 있는 사회, 또 그 사람이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각박한 사회와 어쩌면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 살기에 바뻐서 역시 내가 당하기 전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이들로 구성된 사회에 대한 씁쓸한 자화상이자, 그 사회를 살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연민을 담으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용산역, 용산 이라는 장소를 선택한 것은 더욱 의미 깊게 느껴졌다. 하루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용산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세 주인공들의 교차는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했고, 마지막 용산역 옥상 위에 선 선영의 모습에서는 자연스럽게 같은 장소인 용산에서 철거민으로 내몰려 망루 위에 올라야만 했던 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변영주 감독의 작품이라 더더욱 연관 지을 수 밖에는 없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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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를 보면 누구나 발견하게 되는 동물병원 간호사 역할의 배우 김별 님. 좋았습니다.

2. 누가 이 영화가 16억 예산의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가격대비 매우 훌륭한 때깔이었습니다.

3. 영화 음악도 은근히 좋았어요.

4. 이 영화를 용산 CGV에서 봤으면 어쩔 뻔 했는지;;;;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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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2)

아버지 세대의 생존에 대한 씁쓸한 연민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자 (2005)'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윤종빈 감독의 신작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보았다. 이 작품은 윤종빈 감독의 신작이어서 기대가 되었던 점도 있지만, 최민식, 하정우, 조진중, 마동석, 곽도원 등 한꺼번에 이름을 늘어 놓으니 뭔가 일을 벌려도 확실히 벌일 것 같은 배우들 때문에 더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다. 개봉전 시사를 통해 들려오는 평들도 한국판 '대부'다, '좋은 친구들'이다 라는 얘기 등 더욱 기대를 갖게 하는 것들이었기에, 오랜만에 걸죽한 한국영화 한 편을 볼 생각으로 극장을 찾았더랬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지면 '대부'보다는 '좋은 친구들'에 더 가까운 작품이었다). '범죄와의 전쟁'은 제목이나 풍기는 뉘앙스에서 알 수 있듯이 흔히 말하는 폭력 조직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보게 된 영화는 조직 폭력과 남자들의 세계 그 자체보다는, 영화의 부제처럼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살아 남아야만 했던 아버지 세대들에 대한 풍자와 연민이 담긴 '생존'에 관한 영화였다. 즉, 겨우 2~30년 전이었던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조명하는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가 결국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고 있다는 씁쓸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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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최민식이 연기한 '최익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적당히 뇌물도 먹고 뒷돈도 챙기던 부산 세관 직원으로 시작해 우연한 기회에 마약을 손에 쥐게 되면서 만나게 된 조직 폭력배 두목 '최형배 (하정우)'가 먼 친척이라는 것을 이용해, 급속하게 조직 폭력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고 이후 정치사회의 시류를 이용하고 또 이용 당하며 이 세계에서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았던 최익현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하정우가 연기한 최형배나 조진웅이 연기한 '김판호'로 대표되는 부산 조직폭력의 세계는 말그대로 '세계'로서 존재한다. 최익현이 생존해야할 세계 말이다.


최익현이 생존해야할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세계에는 이들 조직 폭력배들의 세계 말고도 이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 그리고 최익현이 부양해야 할 가족이라는 세계가 더 있다. 영화 속 최익현의 행동을 보면 단순히 본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움직인다기보다는 그것이 그릇된 방법이었을지언정 가족,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다음에 자신의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서 더 좋았는데, 중간중간 이를 암시하는 장면들과 마지막에 등장한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최익현(아버지 세대)의 삶이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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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이 처한 시대가 의롭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주인공 역시 의롭지 않다는 것에 있다. 즉, 조직폭력배를 그리지만 미화할 만한 구석을 거의 만들지 않고 있고 (그럼에도 매력적인 건 관객의 심리를 이용한 것일까;;) 범죄와의 전쟁에 앞장 선 검사 역시 정의로운 듯 하지만 그 방식이나 결과에 있어서 결국 이 시대에 편승한 인물 그 이상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 최익현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쉽게 말해 '어지러운 시대에 휘말려 버린 주인공'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 시대를 철저하게 이용해 살아 남은 존재로 그리면서도 묘한 연민이 들도록 남겨두었는데, 이것이 바로 '범죄와의 전쟁'이 일반적인 범죄 영화나 갱스터 영화와는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완전히 신파로 끌고 가서 가족과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해 뭐든지 하는 인물로 그리지도 않았고, 반대로 난세의 영웅의 성공과 몰락으로 끌고 가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생존해야 했다는 이유가 보여 좋았고,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그의 행보가 '살아있어'서 좋았다. 누군가는 취향에 따라 차라리 더 갱스터 영화이길 바랬을 수도 있고, 반대로 최익현에게 더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바랬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미묘한 지점을 줄타는 윤종빈의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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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최익현을 그리는 방식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권총' 아니 '빈총'의 이미지였다. 야쿠자와의 거래를 통해 최익현은 선물로 권총 한 자루를 선물 받게 되는데, 최형배로 대표되는 조직 세계와 태생적으로 완전히 같은 편이 될 수는 없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최익현은 이 권총을 자신 만의 무기(자신감)로 항상 몸에 지니게 된다. 그리고 이 권총을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중요한 순간에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중요한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이 총이 빈총임을 몇 번씩 중요하게 확인시켜준다. 사실 최익현에게 연민이 들었던 가장 큰 지점은 바로 이 빈총의 이미지였다. 대사에서는 장난처럼 '제발 총알 좀 구해달라고'라는 말도 나오지만, 어쩌면 그런 위치에 있었음에도 총알 하나 구할 수 없었던 그의 존재와 허울만 그럴싸하고 속은 텅 빈 빈총을 무기로 삼아 생존해야 했던 그에게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겹쳐보이는 순간 연민이 느껴졌던 것이다. 아마도 윤종빈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정서는 바로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빈총으로 살아남았던 아버지들의 관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을 옹호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그저 연민의 시선이 느껴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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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했던 흐름을 흥미로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이를 배경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아직까지도 관통하고 있는 정서에 대해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던져놓은 작품이라 더 마음 들었던 경우였다. 배우들의 열연은 말할 것도 없고, 조연들의 연기가 특히 하나 하나 '살아있는' 것이 느껴져 그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드는 작품이었고.



1. 미리 무대인사 시간을 확인한 뒤 예매해서 감독과 배우분들이 함께한 무대인사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잠원동에서 온 하정우씨도 재미있었지만, 최민식씨가 인사를 할 땐 극장에서 모두 '최민식! 최민식'을 열호하기도!!


2. 조범석(검사) 역할을 맡은 곽도원씨의 연기와 캐릭터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더 풍성해지는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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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Unbowed, 2011)

현재 진행형의 투쟁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대한민국을 떠들석 하게 했던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이른바 '석궁사건'이라고 불린 사건이 그것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불합리함을 느낀 피고였던 한 교수가 재판의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을 했다는 사건이었는데, 다른 사건들과는 달리 '석궁'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도구 때문에 더 세간에 주목을 끌었던 사건이기도 했다. 정지영 감독의 영화 '부러진 화살'은 바로 이 석궁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영화의 어디까지가 실화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도 물론 얘기거리이지만, 어쨋든 실제 일어났던 사건과 별개로 생각할 수는 없는 작품이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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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이 주목하고 있는 지점은 사법부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권력을 갖고 있는 조직 사회의 문제, 그리고 이와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 수 있겠다. 정지영 감독은 완전히 이 사건 자체에만 집중하면서도 중간 중간 대사와 장면들을 통해 이 이야기를 단순히 법정 내의 이야기로만 가두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김경호(안성기)가 불합리한 정치적 이유로 인해 겪게 되는 투쟁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대한민국 사회가 관례라는 이름으로 집행하는, 혹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안면몰수하고 진행되는 시스템적인 불합리에 대한 투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바로 이 거대한 부당함과 외로운 합리의 싸움을 디테일하게 그려낸다. 보통 같았으면 '정의'라는 표현을 썼겠지만 '부러진 화살'이 담고 있는 내용은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정의'보다는 '합리'에 가깝다. 즉, 영화 속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의롭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아니라, 합리적인가 그렇지 않은 가에 더 가깝다는 얘기다. 이 얘기를 바꿔서하면 대한민국 사회가 처한 문제는 정의를 논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합리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할 정도의 쉽게 말해 '황당한' 상황이라는 말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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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김경호의 싸움을 살펴보면 그는 자신이 옳다 라는 것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는 상대에게 '너희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먼저 입증해봐라'의 연속이다. 만약 이 싸움이 조금 더 정의로운 것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으려면, 김경호가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할 수 밖에는 없었던 상황에 대해, 정상참작할 만한 여지가 있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할텐데, 영화 속 싸움은 이보다 한참 전 상황에서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결국 이 싸움에서 분노가 드는 것은 바로 이 답답함 때문임이 크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누구의 생각 혹은 주장이 맞는 가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도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는 커녕 너무나 당당하게 '내 주장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말은 틀렸어요'라고 말하는 상대와 논리적으로 싸워야 하는 피곤함에 있다.


하지만 영화 속 김경호는 이런 무지한 상대를 두고도 끝까지 법적으로 밀어 붙인다. 김경호가 법적인 논리를 치밀하게 펴서 상대를 아무말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면 만들 수록 관객의 분노와 피로함은 더해간다. 이것이 '부러진 화살'이 다른 법정영화와 전혀 다른 점이다. 주인공이나 변호사가 판사나 검사를 아무말도 못하도록 만들 때 승리감이나 시원함이 들기 보단, 그저 씁쓸함과 허탈함 만이 드는 건, 결정적 단서라고 생각한 동영상이 나와도 주어가 없다 라고 부정해 버리는 현실 사회의 피로함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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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지영 감독은 이 답답하고 분노만 끓어 넘치는 사건에 다른 공기를 불어 넣었다. 그냥 이 사건을 몰랐던 관객들에게 '이런 사건들이 있었습니다'라고 고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이 특별히 마음에 들었다. 분노를 분노에 가두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투쟁의 에너지가 되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끝나도 이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씁쓸하게도 하지만, 한 편으론 바로 이 사실을 알려준 것이야말로 이 작품에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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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 (The Day He Arrives, 2011)

시공간 속 가능성을 얘기하는 홍상수



홍상수 감독의 열 두 번째 장편영화 '북촌방향'을 보았다.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항상 '영화'라는 것 자체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는데, 언제부턴가는 여기에 '마법'과도 같은 '순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 곧 영화로 직결된다고 볼 수 있겠지만. '북촌방향'은 그의 전작 '옥희의 영화'와 짝을 이루는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인데, 개인적으로는 굳이 두 작품의 연결고리를 찾지 않더라도 '북촌방향'은 정말 묘한 가운데 홍상수 영화의 정수를 잘 담아내고 있는 멋진 작품이라 하겠다 (진짜 '멋진' 작품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영화 감독이었던 성준(유준상)이 친한 선배 영호(김상중)를 만나기 위해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와 북촌에서 겪는 우연과 운명의 시간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성준의 내레이션을 통해 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이 시점에는 여러가지 함정과 여지가 가득하다. 1차적으로 '북촌방향'은 성준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지점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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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과 영호가 만날 때 연속으로 같은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즉, 다른 시간과 날이 아니라 같은 날의 다른 기억으로 가정할 여지도 있는 것이다)


유준상이 연기한 성준이라는 캐릭터는 본인 스스로도 불안함과 우유부단함을 많이 노출하고 있는 캐릭터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영화는 완전한 객관적 3자가 서술하는 방식이 아니라 성준이 1인칭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했을 때 여기에 어느 정도 힌트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흔들리는 성준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그와 만나게 되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늘어 놓게 된다. 사실 이 영화의 모호함은 이미 여러 관객들이 별다른 의심을 갖지 않고 바로 수긍해 버리는 김보경의 1인 2역으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한 배우가 각기 다른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아주 원초적인 영화적 장치라고 할 수 있을텐데, 관객은 너무나 당연히 '아, 김보경이 성준의 옛 여자친구와 술집 주인 모두를 연기하는구나'라고 받아들이지만 홍상수는 이 뻔한 1인 2역의 장치를 이야기와 맞물려 매우 영민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성준의 이야기 속에 김보경이 연기한 두 명의 캐릭터는 단순한 1인 2역의 범주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이 두 사람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은 성준 밖에는 없는데, 그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술집 주인의 대사와 태도는 옛 여자친구와 동일시 할만한 요소가 충분해 보인다. 갑작스레 술집 주인이 성준을 '오빠'라고 불렀을 때 1차적으로는 영호가 들려준 그녀의 이야기들에 빗대어 무척이나 외로운 존재여서라고 인식할 수 있지만, 2차적으로는 아니 이미 옛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성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는 '그래, 내 새끼'하며 둘을 동일 인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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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여주인은 매번 어딜 갔는지 자리를 비우는 것도 이상하지만 - 마치 1인 2역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처럼! - 테이블에 앉아있는 영호 무리를 대할 때마다 매번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인사하는 것도 흥미롭다. 여러번 같은 대답을 하는 영호의 대답도 그렇고)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흑백 영화로 인한 날과 시간의 모호함 혹은 분명함이다. '북촌방향'은 '오!수정'에 이은 홍상수 감독의 두 번째 흑백영화인데, 이번 작품에서 흑백영상이 갖는 의미는 시각적으로 오는 아름다움과 영화다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영화는 흑백 영상으로 인해 날과 날의 경계가 흐려짐과 동시에 낮과 밤의 경계도 흐려졌다. 처음 성준이 서울에 올라온 뒤 북촌을 기웃거리다 낮술을 한 잔 하고는 다시 젊은 영화하는 남자 세 명과 택시로 자리를 옮겼을 때는 이미 아주 늦은 밤인줄로만 알았었는데, 옛 여자친구와 헤어져 나온 뒤 만나게 된 영호의 첫 마디는 '너 술마셨구나'다. 즉, 이 하루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물론 하루가 지나고 그 다음날도 혼자 술을 한 잔 하고 영호를 만났다고 할 수도 있으나, 이쪽이 더 가깝다) 흑백 영상에서는 이러한 경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즉, 이렇게 되면 성준이 옛 여자친구의 집에서 얼마의 시간 동안 머물렀는지에 대한 추정이 어려워지는데,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북촌방향'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처럼 사실을 추론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크게 중요한 점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모호함의 여지는 매우 흥미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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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은 소설의 여 주인과 이별하며 그녀를 위한 세 가지 좋은 충고를 약속받고 떠난다. 이 약속은 과연 누구에게 하는 것일까?)



날과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가운데 공간적인 장소의 개념은 더욱 선명해진다. 영화 속 성준의 동선은 매우 한정적이다. 영호를 만나기 위한 길, 그리고 영호와 만나서 함께 가는 '소설'이라는 술집. 그 외에 등장하는 공간들도 반복되는 곳들이 많다. 같은 공간, 모호한 시간의 경계 속에 성준은 극 중 대사를 통해 운명론에 가까운 인연에 대해 이야기 한다. 지금까지 영화가 보여준 태도로 보았을 때 이 인연에 관한 이야기는 역시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볼 수 있겠다. 뭐랄까, 영화 속 주인공들이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스스로가 그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는 텍스트라는 점이 '북촌방향'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영화 속 성준의 얘기와도 같이 주인공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로서의 인연과 가능성도 흥미롭지만, 영화 스스로가 막연히 모호한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의 활로를 열어두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인연들의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구성은 생각하면 할 수록 놀라운 구조라 하겠다. 누군가 '북촌방향'을 '인셉션'과 연관지은 제목을 스치듯 본 기억이 있는데, 홍상수 감독은 '나도 몰라'하며 허허 웃지만 이 영화의 구조는 '인셉션'의 그것처럼 깊이와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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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이 보여준 '가능성'에 흠뻑 빠져있다보니 너무 이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 이 와중에도 홍상수는 자신이 그 동안 지속적으로 보여준 남녀상열지사, 아니 인간 관계에 대한 매우 섬세한 과정 역시 담아내고 있다. 전작인 '하하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좋은 것' '좋은 것만 보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북촌방향'은 '착한 것'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좋은 것'에 대해서도 그러했지만, 홍상수가 화두를 던지는 방법은 너무나도 본편적인 것, 그래서 오히려 단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해 다시금 (혹은 처음) 생각해보게끔 하는데, 이번 작품 역시 대중들이 흔히들 사용하는 유행섞인 '착하다'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근본적인 의미로서의 '착하다'에 대해 떠올려 보게 했다. 홍상수 영화에서 처음 이런 대사를 만났을 때만 해도 '큭'하며 코웃음 치는 것으로 그치곤 했는데, 이제는 '넌 너무 착해'라고 이불 속에서 얘기해도 '야, 저런 속물이 다있네'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렇다면 착하다는 것은 진정 어떤 것인가?'라는 걸 떠올려보게 되니, 이렇든 저렇든 결과를 떠나서 참 대단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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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안할 수가 없는데, '성준' 역할을 맡은 유준상의 경우 이미 '잘알지도 못하면서'를 통해 홍상수 세계에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터라 이번 작품이 처음부터 기대되었던 경우인데, 역시나 김상경과는 다른 그 특유의 깔끔하면서도 나태한(?) 목소리는 '성준'이라는 캐릭터를 더욱 빛나게 했다. 기존 TV드라마 출연을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배우 유준상의 가능성은, 이제 더 이상 가능성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 작품을 통해 충분히 발휘되고 있다. 그와 반대로 마치 '잘알지도 못하며서'의 유준상 처럼 '북촌방향'을 통한 개인적 발견이라면 '보람' 역할의 송선미를 들 수 있겠다. 기존 TV를 통해 접했던 그녀의 이미지는 사실 와닿는 것이 없는 평범한 연예인의 그것이었는데, 이 작품에서 그녀가 보여준 캐릭터는 '잘알지도 못하면서'의 고현정이 그러하였듯, 새로운 가능성과 동시에 홍상수 세계에도 썩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더불어 '이렇게 목소리가 좋았던가'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으며, 그 미소 역시 그간 TV를 통해 보았던 얼굴이었으나 처음보는 미소였다.

1인 2역을 연기한 김보경의 이미지도 좋았다. 그녀 역시 발견이라 할 만한 것이었으며 여배우가 가질 수 있는 매력을 거의 대부분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다. '영호'를 연기한 김상중은 마치 계속 홍상수 세계에 존재했었던 인물 마냥 그 자리에 떡 하니 있는데,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면 이제야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김상중 역시 발견 또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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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이 일은 몇 일 간의 이입니까 아니면 하루 동안의 일입니까?' 그러자 선생이 대답했다. '허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홍상수의 열 두 번째 장편영화 '북촌방향'은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홍상수! 홍상수!'를 외치게 한 마법 같은 작품인 동시에, 왜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하고 기다리고 빠져들게 되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했던 경험이었다. 그의 가능성 더 나아가 영화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

1. 적어도 극장에서 한 번은 더 볼 작정입니다. 반복으로 이뤄진 작품임에도 또 무엇이 있을까 또 보고 싶은 작품이라서요!

2. 이 영화를 시간의 의미로 풀어낸 글 가운데는 씨네21 정한석 님의 글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영화 만큼이나 흥미로운 글이었어요!
(http://www.cine21.com/do/article/article/typeDispatcher?mag_id=67246&page=1&menu=&keyword=&sdate=&edate=&reporter=)

3. 언젠가 한적한 날을 골라 북촌방향으로 발길을 돌리고 싶네요. 물론 '소설'에 가서 맥주도 한 잔 하구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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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활 (2011)
군더더기 없는 추격의 리듬



2007년 '극락도 살인사건', 2009년 '핸드폰'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의 신작 '최종병기 활'을 보았다. 사실 최근 들어 박해일의 출연작들의 임팩트가 배우가 주는 인상에는 못미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있고, '최종병기 활'이라는 제목은 아무리 들어도 일본 애니메이션 '최종병기 그녀 (最終兵器彼女)'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라 조금은 기대치가 높지 않았던 작품이었는데, 유료시사 (인줄도 몰랐던)로 보게 된 영화는 활이라는 무기를 소재로 병자호란이라는 정치/사회적 사건을 배경으로 풀어낸 군더더기 없는 추격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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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활'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청나라 병사들에게 동생을 빼앗기고 오로지 동생을 구하기 위해 그들을 추격하고 또 추격 당하는 남이(박해일)의 이야기다. 일단 추격의 시작이 되는 발단을 연인 관계가 아닌 남매 관계로 설정한 것이 이 작품의 군더더기를 더는 첫 단추로 작용했다. 중심이 되는 감정을 연인간의 감정으로 삼을 경우 아무래도 여기에 할애해야 하는 감정의 리소스가 많아질 수 밖에는 없기 때문에, 심플한 리듬으로 정리되기 보다는 굉장히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이 부분을 남매간의 애틋한 감정으로 처리하며 오히려 더 단단한 힘을 얻은 경우라 하겠다. 물론 남녀간의 애정 관계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자인 - 문채원 과 서군 - 김무열 간) 이들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남이의 이야기로서 존재한다. 남이가 동생을 구하러 떠나기 전까지의 이야기가 다소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에는 살짝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를 자세히 설명하려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고 과감히 본격적인 추격전에 바로 뛰어든 영화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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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좀 더 깔끔하게 느껴진 또 다른 이유는 이한위가 연기한 캐릭터 등 주인공 주변에서 코믹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캐릭터들에 대한 절제된 묘사도 있었다. 이런 경우 주변 캐릭터들이 웃겨야 한다는 부담감 혹은 무거워만 질 수 있는 극의 분위기에 가벼운 리듬감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가끔 전체적인 흐름을 깨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이한위씨가 등장하는 순간 '아, 이 작품도 그런 장면이 등장하겠구나' 싶었는데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절제된 활용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비중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이런 절제는 추격에 전체적으로 집중한 이 영화에서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류승룡이 연기한 '쥬신타'를 중심으로한 청나라 정예부대를 단순한 악당으로 그리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서로를 인정할 만한 상대로서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설명을 더하지 않은 점 역시 이 영화의 선택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쥬신타와 그의 부대에 대해 관객이 더 흔들릴 수 있도록 서두에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더라도 좋았겠지만, 영화가 선택한 방식도 역시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좀 더 설명이 있었더라면 좋았겠다 라고 느꼈던 부분은 주인공 남이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분명 극 중의 짧은 대사로는 문무 모두에 별다른 흥미를 못느끼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나 추격극을 통해 보여지는 남이의 모습은 흡사 '레골라스'에 가까운 신궁의 모습이었기에 사실 조금 의아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다. 짧은 사냥씬 만으로는 남이가 그 정도의 고수라는 것을 눈치채기는 어려웠기에 이후 정말 고수들로 이뤄진 쥬신타의 부대와 대등하게, 아니 더 뛰어나게 싸우는 모습에서는 '남이가 저 정도의 고수였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더라도 좀 더 고수의 풍모를 숨기고 있다는 짧은 설정들을 초반에 깔아두었더라면 좀 더 공감대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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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런 추격극 위주가 아니라 임금을 잃고 청나라에 나라를 빼았겼던 병자호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했던 때문인지, 맨 마지막에 가서 김한민 감독은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기는데, 전체적인 결론만 보자면 비극적 역사에 대한 부분을 아예 다 빼버리지 않고 마지막에 한 줄로 턱 던져 놓는 방식도 2가지를 모두 어느 정도 만족시킬 만한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비극적 역사에 대한 부분에 더욱 강조했다면 추격극 자체에는 힘을 잃을 수도 있었겠지만 좀 더 비장한 느낌을 살릴 수 있었을텐데, 반대로 아예 추격극 자체에 완전 집중하면서 마지막에 관객들에게 '이 추격극의 배경에는 사실 이런 역사적 비극이 실제로 있었다'라는 사실을 넌지시 던지는 방식 또한 이런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하는 의미에서 괜찮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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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활'은 러닝타임 내내 속도를 늦추지 않고 진행되는 추격전이 볼만한, 그리고 활이라는 무기의 특성을 고려한 거리를 둔 액션이 흥미로운, 올 여름 극장가의 다크호스가 될 듯 하다.


1. 고증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고증 측면은 아니지만 무한히 리필되는 화살이 아닌 쏘고 나서 항상 화살을 회수하는 모습은 현실적이라 좋더군요.

2.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 오히려 더 많은 요소들을 담으려 하지 않고 한 가지에 비교적 충실했던 선택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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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Bleak Night, 2010)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애처로운 간극


단도직입,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윤성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파수꾼'은 포스터 맨 위에 문구처럼 올해의 발견이자 가장 빛나는 데뷔작이라 할 수 있겠다. 윤성현 감독은 이제 막 서른이 된 어린 나이에 정말 멋진 데뷔작을 만들어 냈는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이나 표현 방식 등을 살펴보자면 더더욱 놀라운 데뷔작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겠다. 영화는 미스테리의 방식으로 한 남자가 아이들을 찾아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남자는 기태의 아버지이며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의문점이 있어 아들이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수소문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되는데, 이 이후에도 이 미스테리 방식은 계속 되지만 이 영화는 전혀 미스테리는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전개를 구성하는 방식에서는 시간의 재배열과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사실 관계 등은 감각적이고 신선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른 곳에 있다. 아, 한 편으론 미스테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파수꾼'은 학창시절 그 누구도 왜 그래야만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던 우정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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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은 기태와 희준, 동윤, 이 세 친구들의 관계를 통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 이전에 '파수꾼'은 소년과 학교 그리고 우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흔히 가곤 하는 쉬운 길을 가지 않고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와 같은 표면적인 폭력과 사춘기 솟아나는 사랑의 감정에 집중하지 않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폭력을 권력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사실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파수꾼'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조금은 가까운 작품이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이 영화가 택한 길은 전혀 달랐다. 일단 이 영화가 폭력을 그리는 방식, 폭력의 피해자 보다 가해자(피해자인 동시에)를 묘사하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극중 기태(이제훈)는 학교에서 이른바 '짱'으로 무리를 거느린 일종의 권력자다. 항상 같이 다니는 무리들 중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무섭게 그리고 상대가 무력화되도록 겁을 주곤 하는 존재다. 그러던 기태가 어느 날 역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해 희준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이 일로 인해 희준은 큰 상처를 입고 기태를 멀리하려 한다. 

이 영화가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기태가 사과를 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 이유는 바로 폭력의 주체였던 기태조차 자신의 저지른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지 몰랐던 것은 물론, 결국 그 결과와 맞닥들이게 되었을 때 어디서 잘못되었고 어떻게 돌릴 수 있을지를 전혀 알 수 없었던 기태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압권이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그것처럼 처음부터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행한 것이 아니라, 잠깐의 실수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로 인해 가해진 상처는, 상처를 고스란히 받게 된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역시 비슷한 (혹은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을 영화는 매우 섬세하게 묘사한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제훈이 연기한 기태가 그 상황을 맞닥들이는 장면의 전율에 가까운 떨림은 정말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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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평범하지 않은 동시에 더 섬세함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기태라는 캐릭터의 묘사를 들 수 있을텐데, 일단은 기태와 희준, 동윤이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아니라 우정을 나눈 친구로 묘사되었다는 점과 더불어 기태 역시 직간접적인 피해자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태의 이런 면을 그리는 것에 있어서 직접적인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로 보았을 때 기태는 분명 미워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안타까운 추억과도 같다. 일단 영화는 기태라는 캐릭터의 단서로 그의 아버지와 가족을 들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태의 아버지는 죽음 이후 기태의 친구들을 수소문해 궁금한 점들 혹은 의심되는 점들을 찾아가고 있다. 기태 아버지의 여정은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오는 속죄의 여정에 가깝다. 어머니의 부제와 존재는 했지만 곁에 있지 못했던 아버지의 존재, 이로 인해 외로움과 결핍을 겪어야 했던 기태는 주목 받기 위한 삶을 자연스레 택하게 되었고, 어쩌면 그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를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아버지와 기태의 자리를 몇 번 그대로 포갠듯이 묘사한다. 영화의 시작, 위 층에서 들리는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듣는 아버지의 모습은, 친구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큰 상처를 받은 기태의 마지막 모습과 겹쳐지고, 동윤이는 같은 장소에서 기태와 기태 아버지를 모두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은 분명 아버지의 속죄의 여정이지만 그의 표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기에 속죄는 없다. 후회만이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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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이 가장 빛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미묘하고 섬세한 관계에 대한 감정 묘사 부분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섬세한 감정묘사가 단순히 묘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핵심적인 장치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앞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미스테리일지도 모른다'라는 식의 얘기를 했는데, 결국 이 작품은 세 친구의 우정과 그 헤어짐을 통해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 된 걸까에 대한 물음이자, 아니 묻기 보다는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아니 그렇게 밖에는 못했던 수 많은 관계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극 중 주인공들의 대화를 보면 핵심이 없다. '뭐' '그래서' '그래서 왜' '뭐가 어쨌는데'라는 식의 서로를 방어하고 물러서지 않으려는 자기 보호식의 대화들이 주를 이룬다. 자아가 만들어져 가는 시기에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이들은 마음을 열고 상대를 이해하기 보다는 이내 마음을 닫고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결국 이야기는 핵심없이 겉돌고 무엇 때문에 언제부터 잘못되었는지 조차 서로 알지 못한 채 안타까운 해체를 맞게 되는 것이다.

'파수꾼'은 세 친구에게 똑같은 애정을 쏟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기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장 크게 묻어나고 있다. 결국 희준과 동윤이 역시 기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과연 더 현명한 우정으로 이 간극을 극복할 수는 없었는지. 영화가 이 안타까움을 그리는 라스트 씬에서는 데뷔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영화적 기운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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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을 보고나서 자연스레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나는 기태였을까, 희준이었을까 아님 동윤이었을까. 내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된 들,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1. 기태 역의 이제훈씨를 비롯해 서준영, 박정민 이 세 사람의 연기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본문에도 썼지만 기태의 그 흔들리는 눈동자와 불안하고 당황한 연기는 정말 압권이었어요.

2. 사실 이 영화가 조금 더 개인적인 다른 이유는 영화의 배경이 된 기차역이, 바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낸 동네의 장소이기 때문이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아는 곳 같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엔딩 크래딧에 원능역이 있는 걸 보고나서 역시!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실제로 저 기차길에서는 불량한 형들을 비롯해 학생들이 자주 놀 던 곳이기도 하고,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걸터 앉아 놀던 기억이 있어 제 학창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실제로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기차길 바로 앞 아파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메일 학교가려면 그 기차길을 지나야 했거든요.

3. 윤성현 감독과 세 배우의 앞날이 모두 너무나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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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 동 (Re-encounter, 2010)
상처를 인정하는 방식


민용근 감독의 영화 '혜화, 동'은 스물 셋 혜화 (유다인)의 지난 겨울 이야기 그리고 아직 겨울인 혜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등학생이었던 혜화와 한수는 서로 사랑했고 혜화는 아이를 갖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낳을무렵 한수는 말도 없이 외국으로 떠나버리고, 혜화는 아이를 잃은 채 홀로 남겨지게 된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뒤 혜화는 동물병원에서 버려진 동물들을 구조하고 보살피는 일을 하던 중, 다시 나타난 한수에게 아이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다시 한번 혜화의 삶은 크게 요동친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하는 데에도 '다시 (Re-encounter)'를 여러 번 사용하게 된 것처럼, '혜화, 동'은 다시 겪게 되는 아니 겪어야만 하는 풀지 못한 미완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5년이 흐른 뒤 혜화의 모습은 다시 금 평온을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그냥 터지지 않은 상처일 뿐, 치료 후 아물지 않은 상처와는 다르다. 그냥 시간 속에 꾹꾹 눌러담아 두었던 과거의 일들은 5년이 지난 뒤 다시 나타난 한수로 인해 다시 쓰려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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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치유되지 못한 상처를 앉고 있는 혜화의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특별한 구분 없이 넘나드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과거의 장면과 현재의 장면이 영화적으로 별다른 장벽이나 구분없이 섞여 놓여있는데, 이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혜화의 과거의 상처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은 흘러갔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혜화의 시간은 그대로임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전지적인 시점에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를 동일선상에서 두고 풀어가지만, 영화 속 혜화와 한수는 현재를 위해 과거로 계속 돌아가려고 한다. 혹은 치유되지 않은 과거는 무시한 채 미래로 나아가려고 한다. 한수는 혜화에게 미안한 마음과 혜화가 앉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해결하는 방식을 꺼내온다 (이 방식은 영화의 마지막 일종의 반전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이 반전이 극적인 요소를 주기는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려는 정서와 반전의 연관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혜화는 한수가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 자신의 상처를 다른 것들을 통해 잊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기 보다는 다른 것들로 그 빈자리를 채워가는 것이 치유된다고 믿었다. 자신의 아이의 빈자리는 일하는 동물병원 원장의 아이에게서 채우고, 한수의 빈자리는 동물병원 원장과의 관계에서 채워가고 있었고, 어린 시절 키웠던 개 '혜수'와 새끼들을 보내야만 했던 것과 더 나아가서는 이 모든 것을 보내야만 했던 빈자리를, 집을 잃고 상처받고 버려진 개들을 구조해 보살피는 것에서 채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혜화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듯 했던 존재들은 모두 혜화가 아닌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고, 이와 맞물려 한수가 나타나면서 혜화는 결국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대해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니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와 직면하려고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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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처음으로 잠시나마 직면하고서야 혜화는 어쩔 수 없음을 알게 된다. 혜화가 갖고 있는 상처는 치유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그 앞에 서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 혜화는 고민 끝에 이 모든 것을 그냥 인정하는 것을 택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가능한 선택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에 있다. 혜화의 선택을 통해 그녀의 상처가 치유되거나 길었던 겨울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혜화는 그걸 알고서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한다. 사실 고민은 했지만 선택지가 없었던 선택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상처를 인정하는 방식'은 참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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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중 삽입되고 엔딩 크래딧에도 흐르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는 처음 들었을 때는 잘 어울리지 않는 선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보니 영화가 혜화의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과 곡의 가사가 잘 맞아 떨어지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이 곡의 가사도 잘 보면 희망적이거나 하기보다는 안되는 것, 돌아오지 않는 것을 그렇다고 담담히 인정하는 것에 가까우니까요.

2. 유다인 씨의 연기는 역시 참 좋았습니다. 처음 영화가 시작할 때 그녀의 얼굴은 그저 평범하게만 느껴졌는데, 시간이 흐를 수록 그 백지에 점점 무언가가 써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여러 클로즈업 장면에서 그 눈망울의 깊이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3. '혜화, 동'은 반려동물에 관한 생각도 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혜수의 딸로 여겨지는 그 강아지가 철거된 집에 홀연히 나타나는 그 장면의 컷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마치 '모노노케 히메'에서 시시가미가 등장할 때처럼 정적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확실히 동물의 눈빛이 주는 특별함이 잘 드러난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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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세상의 모든 방관자들에게…

김기덕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장철수 감독의 2010년 작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이른바 '김기덕의 아이들'로 불리는 감독의 작품 가운데서도 단연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촬영을 마치고 나서 개봉여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때, 제 63회 칸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제 14회 부천 국제영화제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작품이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이하 김복남)'은 개봉 당시에도 조금씩 호불호가 갈리기는 했었지만, 대체적으로 '인상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만큼 비슷한 시기의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되는 메시지로 – 그리고 이 메시지를 증폭시키는 영상으로 – 기억되는 작품이다.





'김복남'을 단순히 '억압받던 자의, 드디어 시작되는 복수' 영화로 보긴 어렵다. 사실 이런 영화였다면 잔인함을 떠나서 주인공의 복수 여정에 통쾌함이 느껴져야 하는데, 김복남 (서영희)의 복수에는 이런 통쾌함이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본래 말하려던 것은 무엇일까. 제목인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 엿볼 수 있듯 '전말' 즉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던 제 3의 관찰자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복남'에서는 이 관찰자를 이야기의 화자나 제 3자로 두지 않고, 이 사건에 연루된 또 하나의 인물 즉 '방관자'로서 규정 짓는다. 극 중에 이 방관자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서울에서 은행을 다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섬 '무도'로 잠시 휴가를 오게 되는 혜원 (지성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의 구성상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주인공은 복남 보다 혜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복남의 이야기를 통해 혜원에게 메시지를 주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더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극중 혜원으로 대표되는 '방관자'의 입장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입장과 겹쳐진다는 점이다. 극중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마치 원시사회와도 같이 그려지는 '무도' 사람들과 그 사회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이런 고립된 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폐쇄적이고 사회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똘똘 뭉쳐있는 섬뜩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 무도 사회의 모습이 문제가 있는 것은 맞지만, 영화는 단순히 고립된 이 사회의 공포에 죄를 전가하기 보다는,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외부의 방관자에게 죄를 묻는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다른 영화였다면 주인공이 – 이 영화의 경우라면 혜원이 복남을 데리고 나오는 것 – 무도를 탈출 하는 것으로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겠으나, 이 영화에서는 이런 탈출 역시 방관자 적인 태도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얘기다.





극중 혜원에게는 방관자로 더 이상 남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제공한다. 하지만 그녀는 잘못을 목격하고도 방관자로서 남는 쪽을 택한다.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 보았을 때 누구도 혜원의 이런 행동을 나무라기 어렵다는 것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흥미로운, 방관자가 관객과 겹쳐지는 부분이다. 관객은 '서울 사람'인 혜원의 시점과 겹쳐져 처음에는 회사에서 겪는 스트레스에 공감하고, 범죄를 목격한 것만으로 경찰서에 불려가 범죄자들에게 협박을 받는 그녀와 똑 같은 공포를 경험하며, 이후에는 복남의 부당한 생활에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만, 이후 복남의 복수가 시작된 이후에는 역시 혜원과 마찬가지로 복남에게 공포를 느끼며 도망을 치기까지 이른다. 이렇듯 영화 속 혜원의 시점과 심리는 관객의 공감대와 완벽히 맞아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복남의 복수에 통쾌함을 느끼지도 못하고, 오히려 혜원과 마찬가지로 방관자로서의 죄의식에 마음이 무거워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관객을 피해자로 몰아가는 것이 훨씬 보편적이고 쉬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고 방관자라는 가해자의 입장으로 그려낸 방식은, 대중영화에서 용기 있는 시도인 동시에 영화적으로도 몹시 흥미로운 구성을 갖게 되었다. '김복남'은 이런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중간중간 직간접적인 비유와 설정들을 상당히 많이 배치하고 있다. '무도'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 사회에 대한 묘사 – 남성 위주의 절대적 사회 -, 그리고 이후 무도를 떠나 벌어지는 사건들에 있어서도 가끔 거칠고 과장된 내러티브가 있을지언정 여러 가지를 곱씹어 볼 수 있는 장치들이었다. 특히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장철수 감독이 김기덕의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점 – 그리고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시점 – 을 눈 여겨 볼 만한 작품이기도 했다. 아, 그리고 서영희 라는 배우가 드디어 제대로 주목 받게 된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DVD Menu






DVD Quality

화질과 사운드는 최시작 DVD답게 우수한 편이다. 화질의 경우 플레이어의 업스케일링 기능을 통해 HDTV로 감상할 경우 기대 이상의 화질을 보여주고 있다. 블루레이 소스를 보지 못해 얼마나 BD가 얼마나 기대 이상의 화질을 보여줄 지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BD로 출시된다면 분명 영화의 깊은 인상을 더 배가 시켜줄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말할 수 있겠다.





DTS를 수록한 사운드 역시 기대이상의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사실 블루레이 이후 DVD를 감상하며 사운드에 크게 귀 기울여 볼 정도의 타이틀은 많지 않았는데, '김복남' DVD의 경우 DVD만 놓고 경쟁했을 때는 우수한 수준의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특히 소소한 사운드가 잘 살아 있는 동시에 임팩트를 전달해야 할 때는 박력도 선사하는 만족스런 사운드였다.

DVD Special Features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김복남' DVD에는 기본적인 부가영상만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음성해설 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장철수 감독과 주연을 맡은 서영희, 지성원이 참여한 음성해설에서는 주로 촬영장에 대한 뒷이야기와 각 배우들의 연기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다소 무거웠던 영화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편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영화의 메시지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 부족한 것이 살짝 아쉽기도 하지만, 두 주인공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것만의 재미를 충분히 전달한다.




'메이킹'에서는 별다른 인터뷰나 진행 없이 몇몇 중요 장면의 촬영장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 밖에 예고편과 TV Spot이 수록되었다.



[총평]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영화 속 전말이 드러나는 사건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인상적인 작품이었으며,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흥미로운 텍스트이기도 했다. DVD 타이틀의 경우 준수한 화질과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지만, 블루레이의 출시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려운 국내 BD 시장이지만, 그래도 조심스레 이 작품의 블루레이 출시를 바래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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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2010)
개싸움으로 풀어낸 카오스의 세계


나홍진 감독의 2008년 작 '추격자'는 분명 잘 빠진 데뷔작이었다.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서 감독이 하고자 하는 바를 끝까지 밀어붙인 힘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작품인 동시에, 극적인 공감대를 통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던 깊은 색의 작품이었다. 그런 그가 '추격자'의 김윤석, 하정우와 함께 또 한번 호흡을 맞춘 신작 '황해'는, 동일한 배우와 몇몇 추격하는 장면 탓에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전작과는 구성자체가 전혀 다른 감독의 야심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홍진 감독의 '황해'는 의도하지 않았던 카오스를 통해 어떤 결론을 도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카오스 그 자체에 관한 담론이라 해야할 것이다. (이제 고작 그의 작품을 두 작품 보았을 뿐이지만) 어쩌면 나홍진 감독의 스타일이야말로 카오스를 그려내기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황해'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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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속 문구처럼 면정학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김구남에게는 그간 겪고 있던 삶의 고통보다 더한 카오스를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4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제목은 (택시운전사, 살인자, 조선족, 황해) 단순하게는 주인공 김구남 (하정우)의 현실 혹은 상황을 가리키고 있으며, 더나아가 이 막 구성은 카오스를 그리게 된 영화적 특성을 보완하려는 친절한 구성으로 받아들일 수도 겠다. 어쨋든 '황해'가 흥미로운 것은 초중반까지는 김구남을 주인공으로 그가 매달려있는 구심점에 동조하도록 의도하지만, 갑자기 이 구심점이 변하고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김구남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더이상 김구남 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전작인 '추격자'와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추격자' 같은 경우는 확실한 극적인 구심점이 있었기 때문에 (하긴 '추격자'는 이 구심점을 아예 처음부터 노출하고 시작한 작품이라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관객이 끝까지 공감대를 이어갈 수 있었던 반면, '황해'는 어느 정도 중심의 이야기로 흘러가나 싶더니 이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에 잠식되어 갈피를 잃게 되는 동시에, '어? 지금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라고 막 느끼게 될 때쯤 이미 카오스의 중심에 서있게 되는, 그러니까 카오스 자체가 구심점이 되어버리는 흥미로운 구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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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는 이번에도 도망자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황해'의 김구남은 자신도 모르는 일에 휩쓸려 도망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물론 여기서 갈피를 잃었다던가 구심점을 잃게 되었다는 것은,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얘기가 복잡해져서 흔들렸다가 아니라 의도적인 흔들기로 볼 수 있겠다. 제목 역시 '서해'가 아니라 '황해'라고 한 것은 무언가 뿌연 느낌과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모호함을 의도하기 위한 제목이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이 처럼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는 일들에 우연 혹은 더 큰 권력과 시스템에 의해 이용되어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린 영화들은 많은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황해'의 구남은 그냥 휩쓸린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도박을 한 셈이라는 점이다. 조선족으로 많은 빚을 지며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고 미래를 꿈꿀 수 없었던 구남은 여분의 돈만 생기면 마작을 통해 더 큰 돈을 벌려고 하지만 매번 여의치가 않다. 그런 그에게 브로커인 면정학 (김윤석)이 접근하게 되고 김구남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도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초반 마작을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준다. 이 도박이라는 점은 앞서처럼 무고한 인물이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와는 달리 공감대에 있어서 취약할 수 밖에는 없다. 특히나 이 영화에서 관객이 김구남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라고는 그가 꾸는 꿈과 단편적인 이야기들 뿐이라 더더욱 그러한데, 이 점 역시 앞서 얘기한 카오스론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의도적으로 관객들이 구남에게, 일반적으로 주인공에게 느끼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면서 영화가 끝나고, 구남과 면정학 그리고 김태원 (조성하)의 이야기가 모두 마무리 되어도 그저 뿌연 안개같은 모호함만 남게 되는 결과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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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은 이러한 카오스를 더 극대화 시키기 위해 폭력성과 잔인성을 가미한다. 즉, 깔끔한 액션이 아닌 이른바 '개싸움'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대놓고 이런 '개싸움'의 이미지를 여기저기서 드러내고 있다). 인물들은 상대를 맞아 엄청난 칼부림과 도끼질을 휘두르는데, 여기에는 리얼리즘과 판타지적인 요소를 모두 느낄 수 있다. 개싸움이라고 했던 만큼 주인공들은 멋진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로 뒹굴고 서로 상처를 입는 싸움이 계속된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개싸움 와중에도 구남이나 명정학은 항상 그 상황을 빠져나오거나 이겨낸다. 특히 이 정도 스케일을 모르고 휘말리게 된 구남의 생명력은 판타지에 가깝다. 전국의 수배령이 내려지고 뉴스 속보로 자신의 얼굴이 연일 나오는 과정 속에서 몇번이나 직접적으로 맞닥들였음에도 동에 번쩌 서에 번쩍하며 도망다니는 구남의 모습을 보면, 이걸 단순히 공권력에 대한 조롱으로 보기에도 너무 과한 건너 뛰기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면정학의 경우는 구남과는 다르게 애초 캐릭터 설정에서 부터 일반인과는 다른 아우라를 갖은 캐릭터로 그리고 있다. 후반부 면정학의 모습을 보면 마치 신적인 존재로까지 느껴질 정도로 리얼리즘을 뛰어넘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처음부터 판타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리얼리즘에 근거하여 이런 존재의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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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홍진 감독의 '황해'가 조금 아쉬운 부분은, 이왕 카오스 그 자체를 그리려고 했던 것이라면 구남과 아내의 관한 부분을 좀 더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주인공에게 공감대를 완전히 실어 관객이 '구남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하기 보다는, 이 미칠듯한 개싸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길 의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여기에 관객이 계속 구남에게 여지를 남기도록 하는 부분이 바로 아내에 관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참으로 애매했다. 그러니까 의도한 모호함이 아니라 그냥 애매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결국 죽었는가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엔딩은 그런 의미에서 모호함을 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구남이 영화 내내 오해하고 의심했던 부분에 대한 따듯한 위로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구남이 카오스에 빠져들게 된 동기로 그치지 않고 영화 내내 구남을 지배하는 구석으로 남아, 영화에 극적인 온기를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는 점인데, 개인적으로는 이보다는 오히려 이 감정적일 수 있는 부분을 과감히 정리하고, (어차피 카오스에 집중하려고 했던 만큼) 구남에게도 잔인하리만큼 황폐함을 남겨주었다면 더 강렬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부분이 상업영화로서 마지막으로 포기할 수 없었던 부분일 수도 있고, 아니면 구남에게 주는 위로가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이왕 가기로 마음 먹은거 더 밀어 붙였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 황폐함과 카오스의 끝으로 말이다 (쓰고보니 너무 잔인한 바램인 것 같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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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황해'는 다시 한번 나홍진 감독의 스타일을 확고히 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아무리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 해도 감독이 자신의 스타일을 꺽으면서까지 대중과의 타협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즉, '나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관객에게는 내가 생각해도 불편한 작품일 것 같다'라고 생각될 때 타협을 하게 되는 것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추격자'에 이어 좀 더 자신의 스타일이 투영된 '황해'를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더 확고히 한 것은 그의 팬에게도 팬이 아닌 이들에게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팬이던 팬이 아니던 앞으로 나홍진 감독의 신작이 나왔을 때 더 확실한 선택을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1.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갔다던 카체이스 장면은 나쁘지 않았으나, 너무 카오스를 강조하려는 나머지 필요이상으로 카메라를 흔들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조금만 덜 흔들었어도 좀 더 멋진 카체이스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적 바램은 이렇지만, 감독은 분명 더, 더를 외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ㅎ

2. '추격자'의 마지막 슈퍼 장면에서 많은 이들이 허술함을 지적했던 점을 미뤄봤을 때, '황해'에는 이를 뛰어넘는 비약과 건너 뜀이 훨씬 많은 편이에요. 특히 구남이 도망치는 부분에 있어서 그렇죠. 여기서 너무 많이 '풋..'하게 되면 이 후의 개싸움도 빠져들기 어려울 것 같아요

3. 하정우, 김윤석의 경우 스크린에 보여지는 표정만 봐도, 얼마나 '찌들어 있는지' 그 질감이 느껴지더군요. 두 배우 모두 쉽게 '황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듯 싶네요.

4. 초반 김구남이 살인을 계획하는 시퀀스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멋진 장면이었네요. 이런 카오스가 주제인 작품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장면이라는 점만 빼면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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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월드, 그 솔직함을 넘어선 순수의 세계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서는 언제부턴가 그 만의 확실한 세계관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초기작들에서도 그 만의 독특한 영화적 시각은 느낄 수 있었지만 최근 작에 오면서 그의 작품은 분명 방향성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고, 더 구체화되고 노골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런 홍상수를 조금씩 느끼게 된 것은 '극장전'과 '해변의 여인'부터였고, 2008년 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와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좀 더 노골적이 되었다. 홍상수 감독의 최근작을 인상 깊게 본 이들이라면 모두들 알 수 있겠지만 이 '노골적'이라는 표현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느낌의 단어로도 그 의미를 희석시키기 어려울 정도의 순수함 그 자체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할 수 있겠다.





홍상수 영화를 논하면서 많은 이들이 '속물 근성'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나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보았을 때는 이런 논리에 동의 했었으나 '하하하'를 보고 나서는 이것이 단순히 '그래, 너도 나도 모두 속물이다'라는 것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는 두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남자는 각각 통영에 다녀온 추억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각각 자신의 이야기를 술 한잔에 실어 나누기로 한다 (나중에 들었던 생각이지만 이 설정은 은근히 무협지 속의 인물들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렇게 두 남자는 서로 만이 겹쳐지지 않은 두 가지 이야기(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이 두 남자의 이야기가 서로 겹쳐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관객들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왕성옥이 이 일부분을 알게 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부분이다).




'하하하'를 보면서 시종일관 느껴졌던 주제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대화들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을 그의 전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작품은 아는 것에 대한 물음과 주장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각각의 인물들의 대화를 살펴보면 단 한 시퀀스도 이 주제를 다루지 않은 대화가 없을 정도로,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는 서로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무엇이 안다는 것인가에 대한 선문답으로 이뤄져 있다. 영화는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이 뭘 알아요?' '이걸 안다고 할 수 있어?'

이런 '알고 모르는 문제'는 영화가 택하고 있는 구조로 더 선명히 드러난다. 영화는 두 남자의 하나인 동시에 두 개인 이야기로 진행되는데, 각자는 서로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관객에게 그대로 드러나듯 이들의 이야기는, 그러니까 이들이 각자 말하는 인물들과 관계의 이야기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거짓이 많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이들의 이야기는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나의 인물을 두고 각자가 보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대상을 두고도 말하는 화자에 따라 청자의 입장에서 '좋은 어머니'도 되었다가, '돈 많은 식당 주인'도 되는 것, '동굴 같은 곳'에서 '희망을 꿈꾸게 되는 집'도 되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알고 모름의 방식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리 어려운 비유가 아니다. 그리고 특별한 방식도 아니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속내를 겉보다도 더욱 진솔하게 드러낸다.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을 이야기하며 '속물 근성'을 들먹이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미칠듯한 진솔함 때문일 텐데, 사실 이런 솔직함을 그냥 '찌질함'으로 얼버무리기에는 정말 부족한 부분이 많다. '하하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정확히 얘기하자면 찌질 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솔직한 것뿐이다. 뭐랄까 우리가 일상에서 마음 속으로만 하는 이야기들을 모두들 겉으로 거침없이 이야기할 뿐이다. 이것은 분명 찌질 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평소 우리가 얼마나 가식적인 관계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지나치리 싶을 정도의 솔직함은 (그런데 개인적으로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이런 솔직함 자체를 '지나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영화가 의도하는 점이라는 것이다), 묘하게도 극 중 인물과 나를 완전히 겹치도록 만든다. 겉으로는 웃을지언정 그 안에서 나를 완벽하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처럼 솔직하게 '저건 완전히 나다'라고 말하지는 못해도, 속으로는 '맞아, 나도 저런 적 있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상하기만 한 듯한 영화에서 나를 보는 완벽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홍상수 영화가 갖는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라 하겠다.




이런 홍상수 월드에 대한 순수함의 경이로움은 영화를 보고 막 극장을 나왔을 때보다, 하루 지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막걸리 한 잔 하며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더 깊어졌고, DVD리뷰를 위해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서 더 나아가게 되었다. 다시 만난 이들의 대화들은 그냥 단편적인 영화적 에피소드로 보아도 소소한 재미가 있는 것이지만, 좀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덜 성숙한 어린아이 같은 결핍이 가져온 순수함이 아니라, 어른이 범접하기 어려운 궁극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대사인 '전 좋은 것만 봅니다'라는 대사는 들으면 들을수록 그냥 넘길 수가 없는 대사가 될 수 밖에는 없다. 마치 코엔 형제의 최근작 '시리어스 맨'에서 그저 웃고 넘길 뻔했지만 작품을 가로지르는 가장 중요한 대사였던 '주차장을 봐'라는 어린 랍비의 말처럼, '전 좋은 것만 봅니다'라는 극중 김상경이 연기한 조문경의 한 마디는, '와, 홍상수 감독이 자신의 세계관을 이 정도까지 밀어붙이려 하는구나'라는 홍상수의 작가적 야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하하하'에 대한 감회를 짧은 글 하나로 정리하기에는 너무 부족함이 따른다. 진짜 홍상수 월드 속 인물들처럼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은 모두 주당이다) 대낮부터 나 한잔 너 한잔하며 이야기 꽃을 피워줘야 어느 정도 정리해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런 면에서 지난 씨네21에 실렸던 홍상수와 정성일의 엄청난 분량의 대담은 이 작품과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었다. 여기서 홍상수는 줌(Zoom)을 일종의 영화적 리듬으로 사용한다는 인터뷰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확실히 '하하하'에 사용된 줌에서는 전작들보다 더한 리듬 감이 느껴진다. 그냥 인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정도가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리듬을 살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음악 역시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홍상수 영화에 이렇게 음악이 많이 사용되었던가 싶을 정도다.




배우들의 연기는 또 어떤 가. 이제는 다른 설명 필요 없이 그냥 '홍상수'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짙게 풍기는 김상경은 말할 것도 없고(주책 떠는 그의 연기가 단순히 '주책'으로만 보이지 않고 진정이 느껴졌던 것은 오롯이 그의 몫이라 하겠다), 전작에 이어 또 다시 출연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유준상의 발견은 계속 되고 있으며(영화를 보고나니 흡사 한석규의 말투를 연상케 하는 그의 말투를 자꾸 따라 하게 된다), 예지원, 윤여정, 김강우, 김민선의 연기들도 잘 녹아 들고 있다. 앞선 두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없지만, 김강우나 김민선의 경우는 홍상수 월드에 들어오게 되면서 연기자로서 발견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가장 평범한 동시에 가장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던 문소리의 연기가 무엇보다 압권이었다. 개인적으로 문소리가 출연한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였다. ('오아시스' 같은 작품 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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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하하하'같은 작품을 보면서 화질과 음질을 첫 번째 고려요소로 선택하겠냐 만은, 이런 작은 영화치고는 나쁘지 않은 화질과 5.1채널의 멀티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일단 화질 같은 경우는 보통 블루레이 시대의 DVD타이틀이라는 점과 영화가 화질의 우수성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가끔씩은 아쉬움이 솟아나는 작품들이 많았던 것을 떠올려 봤을 때, '하하하' DVD의 화질은 비교적 준수한 편이다. 물론 이 준수하다는 표현에는 극장에서 보았던 원본 소스와 비교했을 때 큰 손실이 없었다 라는 의미로 쓰였다.





사운드 역시 2.0채널만 지원했어도 전혀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을 작품이었지만, 5.1채널을 지원하게 되어 앞서 이야기했던 음악을 통한 영화의 리듬감을 좀 더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부가영상으로는 2분 분량의 예고편과 30초 짜리 스팟 만을 제공한다. 물론 이 작품의 제작 여건 상 DVD부가영상을 위한 소스들의 기획이나 제작이 쉽지 않았던 것도 이해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른 감독의 촬영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홍상수 감독 작품의 촬영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긴장감과 편안함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클립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떠올려보니 우리가 본 영화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총평]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는 최근 개봉했던 '옥희의 영화'와 함께 우리 시대의 가장 주목할 만한 씨네 아티스트 중 한명인 작가 홍상수의 세계관을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있었던 대담한 작품이었다. 특히나 한 번 볼 때보단 두 번 보았을 때, 그리고 문득 궁금해져 다시 보았을 때 또 다른 의미를 새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뜻 깊은 소장이 될 수 있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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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2010)
언브레이커블 돋는 초능력자를 지지한다


고수라는 배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건 순전히 마스크 때문인듯) 반드시 봐야 겠다는 생각은 사실 없었는데, 그래도 '초능력자'라는 구미를 당기는 제목 때문에 극장에서 놓치면 나중에 후회가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보게 된 영화 '초능력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어설프다, 유치하다 등등의 많은 평들과는 다르게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강동원, 고수라는 두 배우의 이름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이 영화는 (물론 '초능력자'라는 제목자체가 엄청난 정보이긴 했지만) 봉준호, 김지운 감독의 연출부였던 김민석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특히나 데뷔작임을 감안한다면 아쉬움보다는 가능성을 훨씬 더 많이 엿볼 수 있었던 취향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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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능력으로 인해 불운을 타고 난 '초인 (강동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평범하지만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또 다른 인물 '임규남 (고수)'의 이야기를 슬쩍 얹어 놓는다. 눈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모든 사람을 자유자재로 조종 가능한 초인은 여느 때처럼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손 쉽게 돈을 훔쳐내는데,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규남과 만나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급속도로 전개 된다. 사실 초능력을 갖은 주인공과 이런 초능력이 유일하게 통하지 않는 또 다른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설정을 들었을 때부터 M.나이트 샤말란의 '언브레이커블'이 얼핏 떠올랐었는데, 막상보고 나니 '초능력자'는 '언브레이커블'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즉, 다르게 말하자면 '언브레이커블'을 보았느냐 말았느냐에 따라 혹은 어떻게 보았느냐에 따라 '초능력자'에 대한 인상이 다를 수 밖에는 없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언브레이커블'을 히어로 영화의 중요한 줄기 중 하나라고 여기는 입장에서, 이를 충실하게 따르며 또 다른 정서까지 담아내려 했던 '초능력자'가 인상적일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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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브레이커블'이 히어로물의 세계관의 충실한 영웅과 악당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초능력자'도 얼핏보면 단순한 에피소드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바로 이런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언브레이커블'은 좀 더 서사적이고 신화적인 측면에서 무겁게 다룬 것에 비해, '초능력자'는 영웅의 탄생을 유쾌하고 가벼운 터치와 더불어 다른 문화적인 공기를 좀 더 담으려고 애썼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이런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유쾌함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부분들 때문이라고도 생각이 되는데, 특히 규남의 친구들인 외국인들의 경우 한국말을 능숙하게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웃음의 포인트가 되기 때문에, 이 패거리의 이야기가 그냥 웃긴 것으로 뭉뚱그려 지는 부분이 있었고 규남의 이야기 역시 거꾸로 돌아보면 영웅의 이야기로 볼 수 있지만, 태생부터 능력 위주로 연출했던 초인의 이야기에 비해 관객들이 규남을 영웅이 되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본래부터 영웅이었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언브레이커블의 데이빗 던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더 심각한 분위기와 신화적인 내용을 담아내려 했다면 영화는 더 실패했을 지언정 어쨋든 히어로 물의 범주에서 논의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영화가 그려내려 했던 그 분위기와 문화적인 주변의 이야기가 '초능력자'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규남의 외국인 친구들의 경우 한국말을 능숙하게 한다는 것 자체와 마치 이 3인조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도색된 다마스 차량 그리고 폐차장에서 일하는 특성을 살린 각종 수공예 무기들과 후반부 만화적인 상상력마저 폭발하게 하는 부스터 개조까지! 이 3인조는 분명 독특한 분위기를 영화 전체에 제공하고 있다. 주류 사회에서 외면당한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또 다른 히어로물의 가능성을 보여준 '킥 애스'를 연상시키게도 했는데, 결국 주류 사회를 믿지 못하고 아웃사이더인 이들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해결해야만 하는) 나서는 모습은, 그리고 멍청해 보일 정도로 무심한 주류 사회의 모습은 이 영화가 숨기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정서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내면의 것들을 다 무시하더라도 일수회사가 몰려 있는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을 배경으로 한국청년과 터키, 가나 청년 이렇게 셋이서 (그리고 다마스!) 만들어내는 아우라는 이런 요상한 감성을 좋아하는 이들을 마구 자극하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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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규남의 이야기만 했던 것 같은데 초인을 그려내는 방식도 아쉬움은 있었지만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영화는 초인 역시 완전한 악당으로 그리기 보다는 능력을 타고 났지만 그 능력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캐릭터로 그려내려 하고 있는데, 확실히 이런 영화의 의도는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초인을 연기하면서 좀 더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즉, 관객들은 다른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영화의 내러티브와 큰 상관없이 강동원이 연기한 캐릭터에 공감을 담게 되기 때문에, 악한 일들을 저지르지만 태생적 고통에 대한 여지를 저절로 얻게 된달까. 물론 이로 인해 적어도 동등한 비중과 공감대는 얻었어야 할 규남의 이야기가 오히려 덜 공감을 얻게 되어 영화가 전체적으로 꼬일 확률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이런 외부적 요인들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은 관객들이라면 영화가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규남과 초인의 이야기를 모두 비중있게 다루려 했다는 점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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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과 카메라 그리고 음악에 있어서도 상당히 의도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콘트라스트가 강한 영상은 장면 장면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음악 역시 상당히 장르화 되고 매우 의도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다른 부족한 부분들을 힘으로 커버하고 있는 느낌이다. 카메라의 경우 한 2~30도 쯤 기울여서 찍은 장면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초인과 규남의 대결 구도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에 전체적으로 리듬감을 주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특히 규남이 임대리로서 첫 출근하는 날의 그 장면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중 하나였다. 

아, 그리고 말 많은 규남의 엔딩 장면에 대해서는, 이 영화가 그냥 '초능력자'였다면 필요없는 과한 장면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언브레이커블'과 마찬가지로 영웅의 탄생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 장면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그리는 방식이 좀 세련되다기 보다는 너무 직접적이고 코믹하긴 했지만 (그런데 이렇게 오버스러운 연출이 오히려 귀엽고 이 영화를 더 오래 기억하게 할 것 만 같다), 이 장면이 있어야 '아, 그래서 규남이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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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쉬움 보다는 감독의 마니아적 취향과 정서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고, 유쾌함과 통쾌함도 느껴졌던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좀 더 세련된 작품이 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인 것도 분명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날 것의 느낌이 살아있는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속편이 나온다면 아, 속편이 나온단 얘기 따윈 없었지. 하지만 유토피아 임대리가 매편 다른 초능력자를 상대하는 시리즈물로 기획된다면 어떨까. 그럴리 없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 작품 '초능력자'는 갈수록 의미있는 '임규남 비긴즈'가 될지도 모른다. 순전히 개인적인 공상이지만.


1. '유토피아 임대리다!' 아, 이 대사가 주는 정서가 좋았어요. '유토피아'라는 회사 이름도 의미심장하고 말이죠 ㅋ

2. 많은 분들이 단순히 '왜 안죽어?'라는 의문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영화를 더 재미있게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웠어요. 여기서 자유로워지면, 아니 왜 안죽는지를 인정하고 나면 영화가 좀 더 재미있어지는데 말이죠;

3. 몇몇 말깔나는 대사들이 있었어요. '엄마가 단추 끝까지 채운 놈들은 조심하랬어'라는 대사 같은거요. 김인권 씨의 애드립일 수도 있겠군요. 

4. 두 주인공 만큼이나 두 명의 외국인 친구들이 주는 인상이 컸어요. 단순히 유창한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을 넘어서서, 연기도 나쁘지 않았거든요. 아, 이 3인조를 오래 기억하게만 될 것 같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유나이티드 픽처스 에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까이 (Come, Closer, 2010)
가을로 위로하는 러브스토리


김종관 감독의 첫 장편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는 각기 다른 다섯 커플의 러브스토리를 느슨한 관계로 엮은 하나의 러브스토리다. '러브 액츄얼리'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바벨'과는 달리 인물들 간에 조금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확실히 좀 느슨한 관계로 이뤄져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조금만 더 가까이'는 전혀 다른 다섯 편의 단편으로 볼 수 있는 동시에, 하나의 장편으로 봐도 무리가 없는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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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에피소드는 작은 프레임 안에서 진행된다. 이 이야기는 노트르담에 폴란드인인 그루지엑과 서울 카페에서 전화를 받게 된 효서와의 통화가 전부다. 이 첫 번째 에피소드는 장편 '조금만 더 가까이'의 시작이자 느슨한 옴니버스의 키가 되는 에피소드이기도 한데, 일단 뮤직비디오 같다는 것 보다는 훨씬 더 나은 표현이 필요할 영상미 덕분에 금새 이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 에피소드에서 프레임을 나누는 방식이나 대사를 나누는 방식은 마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을 연상시키게 한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까이'라는 제목을 한 번 쯤 생각하게 한다. 그루지엑과 효서는 각가가 노트르담과 서울에 떨어져 있지만 이들에게 그 만큼의 거리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의 통화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 번 더 '조금만 더 가까이'라는 제목을 떠올려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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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게이 인 영수와 그의 여자후배 세연의 첫 섹스를 담고 있는데, 이 에피소드는 단순한 첫 경험이라는 것보다는 더 많은 미묘한 감정이 담긴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런 감정이 피부로 다 느껴질 정도로 (장면의 수위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들의 아슬아슬한 감정선 때문에) 정말 '떨리는' 순간을 담고 있다. 게이인 남자가 여자와 갖는 첫경험의 측면에서도 이 에피소드는 특별할 수 있겠지만, 이런 점을 생각지 않더라도 그 '떨림'과 주저함이 에로티시즘과 함께 맞물려 숨을 멎게 한다. 사실 이런 에로틱한 장면이 있는 작품인줄 몰랐기 때문에 조금 놀랐기도 했었는데, 그 몰입감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정말로 이 시퀀스가 완전히 다 끝나기 전까지 극장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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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 (윤계상)와 은희 (정유미)의 이야기는 어쩌면 가장 보편적이 되어버린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놓아주지 못하는 미련 등에 관한 에피소드인데, 영화는 여기서 자신만의 장점을 마음껏 드러낸다. 김종관 감독은 '조금만 더 가까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주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 영화의 공간이 되는 장소와 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가을'이라는 공간의 장점이 이 에피소드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비가 오고, 보케가 아름답게 펼쳐진 창밖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이야기는 마치 비내리는 가을 밤에 수줍게 흘러나오는 이른 입김처럼 관객에게 전달된다. 영화는 이 이야기가 만약 다른 계절과 배경에서 이뤄졌다면 과연 지금과 같았을까 라는 물음을 갖게 한다. 그 만큼 철저히 공간 안에 놓인 인물들과 이야기에 촛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런 이들의 이야기는 가을이라는 계절로 인해 위로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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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 (윤희석)과 혜영 (요조)의 이야기도 직접적인 가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단풍으로 젖어있는 가을 남산을 오르며 나누는 이들의 대화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 가을을 배경으로 했을 때 이들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추억과 기억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공연 장면은 '조금만 더 가까이'를 마무리하는 멋진 피날레가 된다.

사실 '조금만 더 가까이'를 보면서 스스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내게는 항상 위로보다는 우울함과 쓸쓸함을 증폭시키는 매개체로 함께 했던 가을이라는 존재가 '위로'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함께 들었던 음악,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을 남겼던 거리, 뜨거운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는 그 곳과 그 계절의 기운이, 특히 가을이라는 것은 매번 아름답지만 쓸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들이 위로가 된다는 영화의 감성은 그간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하는 작은 계기가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진행되었던 GV에서 김종관 감독은 유독 '거짓말'이라는 얘기를 자주 했다. 자신의 추억이나 경험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수 많은 거짓말들이 더해지게 되고, 그 많은 거짓말들을 통해 본래 하고자 했던 얘기를 결국 돌려 말하거나 말하지 못하고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 말이다. 이 글을 쓰다보니 어쩌면 가을에 위로받는다는 이야기 역시 또 다른 거짓말이 아닐까 싶었다. 아직까지 가을에게 위로받는다기 보단 그로 인해 아파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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