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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몽 (A Quiet Dream, 春夢, 2016)

꿈처럼 유령처럼 살아있는 존재들


장률의 신작 '춘몽 (A Quiet Dream, 春夢, 2016)'은 제목 그대로 꿈이라는 구조를 현실에 녹여낸, 소소한 에피소드 같지만 사실은 쓸쓸한 영화였다. 익준과 종빈, 정범 이 세 남자는 예리라는 인물과 그녀가 있는 고향주막을 중심으로 엮여, 아니 모여 있다. 이 세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는 쉽게 홍상수 영화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고 실제로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은 얼핏 그런 듯도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들의 관계는 전혀 다른 성격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마치 세 감독의 전작에서 자신들이 연기했던 캐릭터의 연장선처럼 보이는 이들과 그 중심에 있는 한예리가 연기한 예리라는 캐릭터는 모두의 공통점이라면 각자의 이유들로 사회에 섞이지 못하고 (포용되지 못하고) 주변에 머물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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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존재하고 있는 수색이라는 공간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수색은 내게도 어렸을 때부터 머물지는 않았으나 종종 지나치는 동네로 익숙하지는 않아도 어색하지는 않은 공간인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차 있는 상암이 디지털시티라는 이름의 화려함으로 거듭나면서 오히려 수색이라는 공간의 그늘짐은 더 짙어진 경향이 있다. 장률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수색을 떠올렸을 때 컬러 이미지는 떠오르지 않고 흑백으로만 기억이 되는 공간이라 흑백을 선택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나 역시도 적은 기억이지만 수색이라는 동네를 떠올리면 흑백과 전신주, 송전탑 등의 차가운 느낌만이 남아있다는 걸 이 영화를 보며 새삼 떠올려 볼 수 있었다.


근래에는 어떤 동네보다도 첨단을 달리고 있는 상암동의 바로 옆, 지하로 연결되는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수색동의 이미지는 주인공 네 사람의 이미지와 그대로 겹쳐진다. 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중심이 아닌 주변에 머물고 있는 이들이지만, 마치 수색동이 그런 것처럼 화려함과 사회의 중심에서 아주 먼 곳에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 주변에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유령'과 '살아있다'라는 두 단어가 떠올랐는데, '춘몽'은 단지 사회의 중심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 유령처럼 느껴지는 존재들이 바로 곁에서 살아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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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를 비롯해 이들의 삶은 항상 죽음 혹은 위험과 맞닿아 있는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그렇게 고요하고 평온하게 묘사하는데도 말이다), 그러한 긴장감을 오히려 현실로 느끼게 해주는 장치가 바로 꿈이 아닐까 싶다. '춘몽'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마치 꿈과 같은 장면들이 현실에 개입하는 것을 통해, 이들 삶의 위태로움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한 편 위로하는 듯한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 


장률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두만강'인데, 그 이유는 경계인이라는 장률 감독 자신의 정체성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른 한국 출신 감독은 소화하기 어려운, 그 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묘사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춘몽' 역시 많이 유연해지기는 했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이야기가 짙게 깔려 있다.


이방인으로서 정체성의 관한 이야기가 관객에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쓸쓸하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가 처한 유령 같은 또 다른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가, '춘몽 (春夢)'이라는 이 영화의 제목은 왠지 더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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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익준, 윤종빈, 박정범 이 세 감독의 메소드 연기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포인트에요. 이 세 명이서 만드는 짧은 대화 시퀀스들의 재미는 앞서 이야기했던 홍상수 영화의 그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빅재미가 ㅋㅋ


2. 아, 세 감독의 메소드 연기 못지않은 이준동 대표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ㅎ 왠지 현장에서는 많이 즐거웠을 듯한 ㅎㅎ


3. 이주영 배우도 인상적이었어요. 어서 '꿈의 제인'도 보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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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하루 (Worst Woman, 2015)

해피엔딩이 필요해



'조금만 더 가까이 (Come, Closer, 2010)'를 연출했던 김종관 감독의 신작 '최악의 하루 (Worst Woman, 2015)'는 주인공 은희 (한예리)가 만나게 되는 세 명의 남자와의 이야기를 다룬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제목에서 또 한 여자와 세 명의 남자가 얽히게 된다는 줄거리에서 쉽게 홍상수의 영화들을 떠올려 보게 되는데, 영화는 실제로도 중반까지는 어느 정도 홍상수 영화에서 느꼈던 남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한다. 그렇게 은희가 만났던 두 남자의 한 편으론 찌질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찌질하다 못해 무례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남산을 배경으로 즐기고 있는데, 소설가인 료헤이 (이와세 료)의 이야기가 조금씩 짙어질 수록 '아, 이 영화는 무언가 결이 좀 다른데?'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의 초반 부에 등장했던 료헤이의 내레이션과 연습실에서 대사를 읊던 은희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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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을 가혹한 상황 속에 몰아 넣고 탈출할 곳을 주지 않았던 작가의 이야기와 할 때는 진짜인데 끝나고 나면 가짜인 것이 연극(연기)이라는 영화 속 대사는, 은희가 하루 동안 겪게 되는 이른바 최악의 사건들 그리고 또 다른 최악의 하루를 맞게 된 소설가 료헤이의 이야기와 겹쳐지면서 단순한 남녀 관계의 시작과 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전혀 새로운 방향성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게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앞서 언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보다는 오히려 이와세 료가 출연하기도 했던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같은 이유로 시달리는 것에 가까운 은희와는 정반대로 배경이 되는 도시의 작은 골목들과 그 속에 위치한 자연에 가까운 공간인 남산 산책로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복선으로 볼 수 있다. 그저 아름다운 영상미 만을 위해 활용된 것이라기 보다는 메시지가 주는 희망과 포용의 느낌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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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극장에서 그 해피엔딩이 언급된 대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속으로 생각하기에도 '어? 이건 좀 너무 갑작스러운데?' 라고 스스로에게 느낄 정도로 갑작스러운, 하지만 송곳 같이 마음에 다다른 대사가 바로 해피엔딩, 어쩌면 너무 뻔하고 순진하다고 자주 여겨지는 해피엔딩에 관한 것이었다. 


다른 영화 글을 통해서도 종종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나는 대책없는 순진함 혹은 무턱대고 해피엔딩스러운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최악의 하루'에 담겨 있는 해피엔딩에 관한 내용은 분명 그것들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이건 그냥 연출의 힘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갑자기 다른 시공간으로 느껴질 정도로 공기가 달라진 늦은 밤 시간의 남산 산책로에서 영어가 서투른 두 남녀가 각자의 하루를 돌이켜 보며 (그럼에도)행복을 찾고자 하는 그 간절함은, 급작스러울 수 있는 해피엔딩의 감성을 너무나도 정확히 관통시켰다. 행복한 결말을 맺는 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새겨보는 동시에, 영화를 만드는 작업 혹은 영화 속 인물을 연기하거나 소설 속 인물을 대하는 (행하는)방식과 태도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소품 같은 이야기와 전형적인 메시지를 너무 판타지적으로 승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알맞게 그려낸 매력적인 영화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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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 (海霧, 2014)

내 몰린 이들의 잔혹극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각본을 썼던 심성보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고 봉준호 감독이 기획과 제작을 담당한 영화 '해무'를 보았다. 국내 영화 계는 특히나 어떤 스타일의 영화가 갑자기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오곤 하는데, 이번 여름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두 글자 제목의 영화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미 엄청난 기세로 기록을 모조리 갈아 치우고 있는 '명량'과 헐리우드 스타일을 가져온 여름 오락 영화 '해적', 그리고 이 작품 '해무'가 그렇다. 개인적으로 조금 다른 분류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던 '군도'를 제외한다면 세 작품 중에 가장 기대한 영화는 바로 '해무'였다. 봉준호 라는 이름을 빼더라도 영화의 시놉시스나 장르를 보았을 때 가장 흥미를 끄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심성보 감독의 '해무'는 어쩔 수 없이 벼랑 끝으로 몰린 이들이 서로 뒤엉켜 벌이는 잔혹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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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는 기본적으로 한정된 공간 (바다 위 고기잡이 배)을 배경으로 한정된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배경으로는 IMF시기를 다루고 있어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한 선장과 선원들의 이야기와 역시 경제적인 이유로 목숨을 걸고 밀항을 시도하는 조선족의 이야기를 겹쳐 놓는다. 이렇게 '그럴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의 이유를 배경으로 가볍게 설명한 영화는 바로 먼 바다로 나가 중심 사건을 진행한다.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모두 설명되기에는 조금 부족한 시간일 수 밖에는 없었는데, 그래도 비교적 각자의 배경을 짧게 소개한 탓에 큰 무리 없이 녹아드는 편이고 무엇보다 이들이 처하게 되는 상황의 특성 상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그 상황에 빗대어 각각을 바라보는 편이 흥미로웠다.


여기저기 녹이 쓸고 비린내가 진동하며 기능적으로도 수리할 곳이 많은 이 배(전진호)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확실히 이미지 적인 측면에서는 영화의 분위기에 딱 걸 맞는 도구였다고 생각된다. 특히 기관실의 미장센은 갑판 위와 확실히 구별되는 이미지로 공포스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 효과적으로 활용된다.계단과 계단 아래, 쇠와 철로 된 파이프들로 인해 보이지 않는 공간이 생겨남으로서 관객에게 긴장감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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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해무'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선장을 포함해 여섯 명의 선원들이 가끔은 하나의 공동체처럼도 보이지만 사실은 다 각자의 욕망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쉽게 생각하면 김윤석이 연기한 선장 혼자 사이코 처럼 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도 그렇게 된 데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보긴 힘들고 (그가 전진호를 마치 사람처럼 대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래서 이상하다기 보다는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김상호가 연기한 갑판장 캐릭터 역시 조직과 대의라는 것에 함몰된 인물을 엿볼 수 있었으며, 이 사고 속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에만 몰두하는 이희준이 연기한 캐릭터 역시 전체적으로 이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보면 박유천이 연기한 주인공 캐릭터가 영화적으로 보았을 때는 가장 설득력이 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한 편으론 그가 홍매 (한예리)에게 가졌던 감정이 인간 애인지 사랑인지 조금은 모호한 것이 이 작품에는 더 어울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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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가 더 깊은 몰입도를 전달하는 데에는 영화 음악의 공도 빼놓을 수 없겠다. '해무'의 영화 음악은 정재일이 담당했는데 긱스 출신으로 천재 소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그 정재일이 맞다. 정재일의 음악 스펙트럼이야 워낙 넓다 보니 영화 음악도 나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기대보다도 더 멋진 영화 음악을 만들어 낸 것 같다. 바다라는 배경과 그 위에 홀로 떠 있는 배라는 한정적 공간의 분위기를 공포스러우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만드는 데에는 음악의 힘이 컸고, 전체적으로 영화가 담고 있는 슬픔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의 표현 범위 내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해 낸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근래 나온 한국 영화의 사운드 트랙 (스코어) 가운데 단연 인상적인 음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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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말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해무'는 끝까지 다 보여준 영화는 맞는데 기분은 뭔가 더 갈 때까지 가 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뒷맛이 남는 영화이기도 했다. 이야기 자체는 더 공포나 스릴러로 갈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구조라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해무'의 이야기는 본래 장르적이기 보다는 그 가운데 시대의 고통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사지로 내 몰릴 수 밖에는 없었던 각자의 이야기를 하나로 담는 데에 더 주목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잔혹극은 더 슬프게 다가왔다.



1. 이제야 관객들이 한예리 라는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되겠네요!

2. 트위터에도 썼지만 이희준과 한예리가 함께 출연하다 보니 '환상속의 그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래서 극 중 이희준의 집착이 왠지 이유 있게 느껴졌다는 ㅎ

3. 본래는 극단 연우무대의 작품이 원작으로 알고 있는데, 연극 무대에서는 이 작품이 어땠을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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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 : 민란의 시대

차라리 더 조윤의 영화였더라면



'범죄와의 전쟁'을 연출했던 윤종빈 감독이 다시 한 번 배우/스텝들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만든 사극 '군도 : 민란의 시대'는 그의 신작이라는 점과 하정우, 강동원의 대결 구도 등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다. 화려한 캐스팅은 물론이고 예고편에서 뿜어나오는 타란티노스러운 리듬감과 스타일은, 강동원이라는 보증되어 있는 비주얼과 함께 어떤 스타일리쉬한 액션 활극이 될지 큰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군도'는 위의 기대를 대부분 충족시킨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윤종빈 감독에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균형감이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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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의 스토리는 대략 히어로물과 유사하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능력도 없고 평범한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에 이미 대의를 위해 오랜 시간을 준비해 오던 무리에 일원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그들에게 훈련을 받아 그들이 오래 계획했던 대업을 결국 마무리하게 되는 중책을 맡게 되는 그런 구조인데, '군도'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조금씩 흔들렸다고 하겠다. 저런 스토리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 스토리가 관객에게 더 큰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는 초반 평범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관객에게 공감을 얻어야 하고, 무리로 등장하는 선의의 그룹의 이야기 역시 진정성이라는 이름의 이유가 필요한데, '군도'의 경우는 이 두 가지가 조금은 부족했다. 돌무치는 불운한 사건을 겪으며 도치가 되지만 이 성장 아닌 성장 과정에서 관객은 별다른 동요를 느끼지 못하고,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백성을 위하고자 하는 도적떼의 이야기 역시 더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시간도 깊이도 부족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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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은 이 부족한 부분을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하려 하는데, 아쉽게 느껴졌던 것은 이 부분에서 필요했던 건 설명이 아니라 공감대였다는 점이다. 역사적인 내용은 설명으로 해결이 될 수 있었지만 이 설명 만으로는 지리산 도적떼가 이루려고 하는 진짜 세상과 주인공 돌무치의 울분이 생각보다 와닿지 않았다. 써놓고 보니 특히 돌무치의 경우 그 울분이 더 강렬하게 표현되어도 좋았을 법 했는데 너무 쉽게 대의에 섞여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즉, 개인적인 사정과 시대적인 사정이 결합하는 구조에서 둘 모두가 조금은 미지근하게 표현되다 보니, 전반 부는 조금 지루하고 후반 부는 빠르게 진행되나 감정적으로 공감되기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인가.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강동원이 연기한 조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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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이 설정한 이 영화의 대립 구도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도가 아니라 둘 다 갖지 못한 자들의 싸움 구도였다. 재산은 물론 먹을 것 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백성들과 처음 부터 서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했던 이의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앞선 군도들의 이야기는 진정성이 미처 다 어필되지 못했지만, 그 반대 편에 서 있는 조윤의 이야기는 비교적 절제된 방식으로도 충분히 설명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후반 부의 클라이맥스에서도 도치가 아니라 오히려 조윤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결과까지 낳게 되었다. 솔직히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100% 이를 가능케 했다기 보다는 조윤이라는 캐릭터와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비주얼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다. 긴 도포를 휘날리며 신선처럼 걷고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무를 겸비한 조윤은, 강동원이라는 배우를 통해 곱지만 강렬한 선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조윤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돌무치와 군도들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갖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었기에, 말미에 가서도 그 반대 편에 서 있는 '적'이라기 보다는 또 다른 주인공 (사실상 주인공)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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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보니 차라리 더 조윤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캐스팅은 어려웠을 지도 모르지만, 조윤의 캐릭터가 워낙 강렬하다보니 조금 더 많은 비중을 조윤에게 할애하고 지금과 같은 구도가 아닌 조윤에게 더 포커스를 맞춘 구도였다면, 혹은 돌무치의 비중과 공감대를 조윤에게 버금가도록 끌어냈다면 (사실은 조윤을 넘어서야 하지만) 더 흥미로운 구도의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도'는 한 편으로 감독의 전작 '범죄와의 전쟁'과 닮아 있는데, 여럿을 등장시키면서도 그 균형점을 잘 잡아내었던 전작에 비해 이번 작품은 조금은 그 균형이 흔들렸던 것 같다. 하지만 조윤 때문이가. 극장을 나온 뒤로도 계속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영화이기도 하다.



1. 타란티노 스타일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텐데 (실제로 '장고'에 수록된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고), 그런 면에서 통쾌함을 주지 못했다는 건 아쉬운 점이었네요.


2.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극 중 캐릭터들의 나이였죠. 나중엔 이성민씨가 연기한 대호역시 25정도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요. 그 땐 정말 힘든 시기였나보네요;;;;


3. 처음 김성균씨가 등장했을 땐 까메오 정도인 줄 알았었는데 쭈욱 나오더라는. 결국 또 하정우의 오른팔인겁니까?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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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2012)

전형적이어도 괜찮아



'코리아'는 1991년 제 41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북이 최초로 단일 팀으로 출전해 최강의 상대였던 중국 팀을 꺾고 기적 같은 금메달을 거두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1991년 이면 겨우 초등학생 일 때였음에도 이 날의 기억은 제법 생생했다. 태극기나 인공기가 아닌 한반도 기를 들고 우리의 소원을 부르던 그 때의 기억은 어린 나이 임에도 무언가 찡한 것이 있었나 보다. 여튼 그 날의 이야기가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생각보다 큰 기대는 갖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남북이라는 관계와 단일팀이라는 특수상황 그리고 세계선수권 대회 등의 재료로 미뤄보아 너무나 방향이 뻔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화의 감동이 워낙에 대단했기 때문에 아무리 극적 장치를 추가해 영화화를 한들 실화의 감동을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예상은 대부분 들어 맞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괜찮은 방향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나 통일 이라는 테마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 에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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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쉬운 점들 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영화가 흔히 범하는 실수인 완급조절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감정은 강요하고 (은은함과 우러나옴의 미덕이 아쉬운 부분이다) 극의 전개를 돕기보다는 집중력을 흐리는 조연과 부가 에피소드 들의 비중이 크고, 너무 극적 요소를 과장되게 표현한 점이 그것이다. 실제로 '코리아'는 앞서 이야기했던 재료들을 모두 비슷한 비중으로 담아내려 한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 아니었나 싶다. 남북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오는 긴장감을 배제할 수는 없었겠지만 역시나 이를 다루는 방식이 91년 당시의 것 같았고, 스포츠 영화로서 탁구 경기와 그 주변을 묘사하는 것 역시 어정쩡한 느낌이었다 (그 예로 마지막 시합의 경우 그 장면이 마지막 금메달을 결정하는 포인트 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던 것 처럼 - 다시 듀스가 되는 포인트인 줄로만 알았음). 특히 하지원을 비롯한 배우들이 촬영 후 인터뷰 등을 통해 역대 가장 힘든 촬영이었다고 얘기했던 것에 비하면 그 훈련의 효과가 스크린에서 100% 발휘될 만한 장면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스포츠 영화로서의 매력을 살릴 수 있었음에도 놓쳐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하지원과 배두나를 비롯한 배우들이 실제 선수들처럼 훈련한 덕에, 실제 현정화 선수와 거의 일치하는 폼도 나왔고, 금메달을 따로 나서 오열하는 장면에서 연기가 아닌 것만 같은 얼굴 표정이 나왔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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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게 전형적이고 완급조절에 사실상 실패했음에도 '코리아'가 괜찮게 느껴졌던 것은 원칙적인 방향성과 이 영화가 지금의 대한민국에게 줄 수 있는 작은 영향 때문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랬던 것처럼 '코리아'는 남북, 북남이라는 특수상황 속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딱딱한 이데올로기로 그리기 보다는, 마치 현정화와 리분희의 로맨스 영화 같은 방식으로 그린 것이 마음에 들었다. 서로 남북이라는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냥 서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두 주인공이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가는 과정으로서 묘사한 것이, 배두나와 하지원이라는 두 배우의 연기로 잘 표현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커다란 테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직접적으로 파고 드는 방식보다는 관객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은히 배치하고 나중에 극장을 나오면서야 '아, 이 영화가 사실 그것에 관한 영화였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영화들을 좋아하는데 (5.18 광주를 다룬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가 임창정 주연의 '스카우트'인 것 처럼), '코리아'에도 역시 그런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물론 여기에 100% 집중하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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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코리아'는 '1991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 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지난 기적같은 일을 통해 2012년의 한반도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중요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정화와 리분희의 관계를 마치 로맨스 영화인 것처럼 묘사한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극장 내 분위기를 보니 어린 나이의 관객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관객들도 1991년의 이 경기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위기였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관객들이 배두나와 배우들이 연기한 북한 사람들을 북한 사람들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이전에 그냥 각 캐릭터가 갖고 있는 성격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이 중요했다고 본다.


'북한선수'가 아니라 리분희, 유순복 으로 느껴지도록 했기에 영화가 이데올로기에 관련한 텍스트를 들고 나왔을 때야 비로소 관객들은 '아, 그랬지' 하며 이 안타까운 상황을 좀 더 생각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배우가 이데올로기에 대해 대화하는 그 장면은 직접적이어도 좋았다. 그리고 맨 마지막 둘이 헤어질 때 나눈 안타까운 인사말에서도 어쩔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뻔히 알고 뻔히 예상된 순간이었고 울겠지 라는 예상 역시도 했던 장면이었지만, 울어버린 것이 나쁘지 않았다. '코리아'가 2012년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통일과는 멀어져 버린 세대들에게 단순히 분단의 현실을 잠시나마 환기시켜주는 기능은 해주지 않았나 싶다.



1. 실제와 영화 속 줄거리와는 다른 부분이 많더군요. 혹시나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역시나 기억이 대부분 맞더라구요. 영화는 극적인 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부분을 가공하였는데, 워낙에 실제가 드라마틱한 이야기라 그대로 갔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2. 배두나의 존재감은 대단했습니다. 원래도 팬이었지만 (참고로 제가 이 영화를 보기로 한 첫 번째 이유가 바로 그녀!) 더 반했어요!!!




3. 북한팀 감독으로 나오신 김응수 씨는 이 작품에서는 전혀 웃긴 인물이 아니었는데, 최근 본 '라디오스타'에서의 진진바리 춤 때문에 몰입이 잘 안되긔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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