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Wonderland, 2010)
그리려고 그린 그림


너무나 유명한 원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하긴 하지만, 어쩃든 그와 상관없이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제작초기부터 스냅 샷이 하나하나 공개 될 때마다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다. 팀 버튼의 작품 성격으로 미뤄보았을 때 기괴하면서도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되었고, 이야기도 어두움을 배경으로 기괴한 웃음을 전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그의 페르소나인 조니 뎁은 물론 헬레나 본햄 카터가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한다는 소식은, 이 삼총사가 다시 한번 일을 내보려고 하는구나 싶었었는데,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런 기대에는 많이 못미치는 아쉬운 작품이었다. 원작과 감독, 캐스팅으로 미뤄봤을 때 참 괜찮은 조합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팀 버튼의 판단미스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는지, 이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너무 '그리려고 그린 그림'의 티가 나는 작품이었다. 즉,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의도보다는 너무 그려보고 싶은 그림이 있어서, 그림 그리는 것에만 집중해버린 나머지 그림의 메시지는 억지로 가져다 놓은, 아니면 메시지를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의미없는 화려한 그림이 되어버렸다.



Walt Disne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환상적인 '이상한 나라'의 비주얼은 만족스럽다. 이런 것들은 팀 버튼이 본래 매우 잘하는 것들로서 그 만의 색채가 쉽게 묻어난다. 비대칭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면서 매우 화려한 색감의 세계와 캐릭터는 일단 관객들의 눈을 쉽게 빠져들게 만든다. 그런데 일단  근본적으로 주인공 앨리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원작이 너무 유명해서인지 아니면, 이미 한번 다녀온 세계를 앨리스가 나이 먹고 다시 방문하게 된 점을 감안해, '두번째'라 관객에게 역시 설명하는 부분을 대폭 축소한 것인지는 몰라도, 앨리스가 이 곳에서 사건들을 겪게 되는 과정 속에 아무런 공감대를 얻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건 내 꿈이야'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 할 때도, 마지막에 이곳을 떠나려고 할 때도 아무런 감정적 동요가 일지 않는 것이다. 물론 작품의 특성상 이 같은 공감대가 최우선 과제는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어쩃든 '너무' 부족한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 하다.

주인공인 앨리스에게서 어떠한 매력이나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나다보니, 이런 새로운 캐릭터들에게 역시 쉽게 빠져들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그 중 가장 피혜를 본 캐릭터라면 조니 뎁이 연기한 '모자 장수'를 들 수 있을텐데, 애초의 이 작품이 마치 조니 뎁 주연의 영화로 알려진 것에 더더욱 작품이 혼란스러워진 느낌이 분명 있다. 즉,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찌되었든 '앨리스'가 주인공인데, 팀 버튼의 작품에서는 앨리스가 별다른 주인공스러운 매력을 뿜지 못하다보니 더더군다나 조니 뎁의 모자 장수에게 관심을 흘렸으나, 모자 장수라는 캐릭터는 태생부터 자신 만의 한계가 있는 캐릭터이다보니 관객들이 주연급의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도 애매한 정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차라리 앨리스 역할에 조니 뎁의 이름 값에도 눌리지 않는 스타급 여배우를 캐스팅 했더라면 어느 정도 이런 아쉬움이 상쇄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물론 이것으로 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만;;). 일반적인 영화의 주인공에게 100%는 안되도 80%이상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보통이라면, 이 영화는 주인공 앨리스를 비롯해, 모자 장수와 붉은 여왕 등에게 각각 2,30% 씩 정도밖에 공감을 나눌 수 밖에는 없는, 겉만 맴도는 작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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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팀 버튼이었다면 차라리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에 집중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원작의 설정을 더 뒤집는 한이 있더라도, 심지어 앨리스가 없어도 좋으니 모자 장수가 완전한 주인공인 이야기라던가 아니면 붉은 여왕이 주인공인 이야기였다면, 좀 더 비대중적일지언정 훨씬 더 팀 버튼스러운 만족스런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든 생각은 (이때 쯤 이미 앨리스는 아웃 오브 안중;)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연기한 붉은 여왕이 주인공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팀 버튼은 앨리스를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이 캐릭터에게 애정을 숨기지 못한 기색이 역력한데(차라리 더 여기에 애정을 쏟아 부었어야 했다!), 팀 버튼이 악당을 그리는 대부분의 방식처럼, 붉은 여왕은 완전히 나쁜 사람이라기 보다는 결핍과 부족함으로 인해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연민이 느껴지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 붉은 여왕의 이야기였다. 명령과 강제 보다는 사랑으로 통치하려 하고(그래서 그녀의 세계는 온통 하트가 아니던가!), 자신의 컴플렉스를 자랑처럼 여기는 모습은 그 주변에 있는 비컴플렉스 인들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연민으로 다가온다. 잘 생각해보면 붉은 여왕의 가장 큰 고민은 '왜 내 말을 안들을까?'가 아니라 '왜 나보다 내 동생(백색 여왕)을 더 좋아할까? 내가 이렇게 잘 해주는데' 였다는 점을 떠올렸을 때, 그리고 그녀의 주변에 있는 이들 모두가 그녀를 사랑한다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곁에 있는 이들이었다는 점을 봤을 때, 그녀의 이런 외로움과 컴플렉스를 연민으로 더더욱 감싸며 주연의 롤을 주었더라면 좋았을 듯 싶다. 아니면 모자 장수를 주연으로 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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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참 좋을 것 같았던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다른 감독이 했으면 분명 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작품이 되어버렸다. 너무 보여지는 이미지에 급급한 나머지 (물론 이 작품은 보여지는 이미지가 참 중요한 작품이긴 하지만서도) 본래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메시지마저 조니 뎁의 CG가득한 댄스 스텝과 함께 날려버린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1. 앨리스 역할을 맡은 미아 바쉬이코브스카 양의 매력이 부족했던 것도 한 몫 한듯 싶습니다. 요즘 같아선 시얼샤 로넌 양이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2. 몇몇 익숙한 목소리 연기자들의 연기는 좋았습니다. 앨런 릭만이나 크리스토퍼 리 같은 경우는 워낙에 유명한 목소리라 이번에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더군요. 목소리로는 알아차리지 못했었는데 크래딧에서 티모시 스펠을 보고서는, '엇 또 쥐 역할로 나왔나?' 싶었는데 이번엔 다행히(?) '개' 역할이더군요 ㅎ

3. '네이브 오브 하트' 역할로 나온 크리스핀 글로버의 모습도 반가웠습니다. 이 분만 보면 아직까지도 <백 투더 퓨처>의 조지 플라이가 제일 먼저 떠올라요. 참고로 이 캐릭터는 팀 버튼의 의도적으로 CG스러운 움직임을 준 것 같더군요.

4. 앤 해서웨이 얘기를 한 마디도 못했는데, 그녀가 이 작품에 나오는 사람 중 제일 웃깁니다. 말 다했죠.

5. 엔딩 크래딧에 흐르던 주제곡 'Alice'는 에이브릴 라빈이 불렀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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