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큰롤 인생 (Young@Heart, 2007)
현자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영화를 보기 전에 얻었던 정보들로는 그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연세에 걸맞지 않는 록큰롤 곡들을 무대에서 노래해
Youtube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고, 이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낸 영화라는 것 그 뿐이었습니다.
국내 쇼프로그램인 '스타킹'에나 나올 법한 정도의 소재는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가
음악 영화라는 점에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소재를 그렸던 영화나 다큐멘터리들은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슈와 화제거리에만 집중해 단순히 '노인들이 모여서 록을 연주한다' 정도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영상은 전해주지
못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었죠(실제로 이 '영앳하트' 코러스 밴드의 단장인 밥 실먼은 쉽게 영화화를
허락해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미 여러 번 '영앳하트'를 촬영한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거의 모두가 그저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제작된 프로그램들이었기 때문에, 또 한번 그런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겠죠. 결과적으로
스티븐 워커 감독에게 영화화를 허락한 것은 대단히 성공적인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이 영화는 영앳하트의 'Alive and Well' 공연을 앞둔 6주 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스티븐 워커 감독은 매우 영리하게
6주라는 시간 속에 영앳하트 멤버들의 에피소드와 더불어 어느 영화 못지 않게 재미있는 유머들과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삶의 의미와 노인의 들려주는 지혜에 대해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실제하는 것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극영화보다 오히려 더 극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킬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로큰롤 인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담겨있는 진리와도 같은 감동이 빼곡히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감독인 스티븐 워커는 본래 TV쇼를 연출했던 감독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는 이 짧은 러닝 타임 속에도
의도되지 않은 장면들을 통해 어느 코미디 못지 않은 유머러스함을 이끌어냅니다. 극중 노인들이 자신들의 취향에는
전혀 맞지 않는 펑크나 록 음악들을 배우는 과정을 그리는 방법은 특히 돋보이는데, 자칫하면 노인들을 우습도록 보이게
만들 수도 있는 이 과정을 그는 적절한 편집을 통해 유머러스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전합니다. 정말 행복해서 웃음이
나도록 만드는 것이죠.

이 외에도 이 영화에는 행복한 순간이 가득 넘칩니다. 80이 넘은 노인들이 소닉 유스나 콜드 플레이를 부르는 모습은
설명만 들으면 그저 기이하거나 코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영화 속에서 영앳하트가 콜드 플레이의 'Fix You'를 부르는
장면을 본다면 아마 그 누구도 절대 숙연해 지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아마도 단장인 밥 실먼이 가장 중점을 두었고,
영화의 감독인 스티븐 워커가 놓치지 않았던 점은 바로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가요도 그렇지만 팝송의 경우는 더더욱 가사에 집중해서 듣는 일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멜로디나 음악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음악에서 가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음악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죠.
영앳하트를 바라보는 일반적 시선이 단순히 노인이 펑크를 부른다 라는 것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티븐 워커 감독은 그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미덕을 본 것이지요. 바로 이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들 말입니다. 확실히 이야기나 노래는 그 메시지 자체가 어떤 것이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누가 들려주느냐의
문제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영화를 통해 새삼스레 깊게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80년 넘게 혹은 90년 넘게 살아온
이들이 부르는 노래들의 가사는 결코 헛되이 들을 수가 없었는데, 그들이 공연 중에 불렀던 곡들의 대부분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저로서도, 그 노래의 가사들이 다시금 새롭게 심장을 관통할 정도로 놀라운 가사 전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콜드 플레이 (Coldplay)의 'Fix You'의 가사가 이리도 나를 위로하는 가사라고는 이전에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었고,
(물론 크리스 마틴이 부르는 'Fix You'도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영앳하트의 '프레드 니들'이 부르는 이 곡의 감동만은
못했던 것 같아요) 밥 딜런의 'Forever Young'이 이렇게 감동적인 곡인 줄은 이제야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교도소에서 제소자들을 대상으로 공연 중 'Forever Young'을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자
찰나이기도 했습니다. 울음을 참으려고 참으려고 하는데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걸 도저히 막을 수가 없더군요.
확실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가 누구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흡수력에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암으로 몇번씩 수술을 치루고, 병으로 인해 몇 번씩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노인이 거누기 힘든 몸을
이끌며 하나하나 읖조리는 가사의 내용은, 어쩌면 오리지널 뮤지션이 부른 것 보다도 더 뼈저리게 다가오더군요.
그래서 눈물이 났구요.




어느 기사에서 본 것 과도 같이 <로큰롤 인생>은 훨씬 더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음에도 매우 영리하게 한 걸음 물러서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공연을 준비하던 멤버들 가운데 몇 분이 지병으로 인해 끝내 무대에 서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아마도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였다면 이 과정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 바다에서 허우적대도록
'죽음'이라는 극적인 소재를 그냥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죽음이라는 일종의 사건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마치 영앳하트의 멤버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처럼요. 8,90이 넘는 나이에 멤버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항상 가까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를 가지고 서로 농담을 할 정도로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경지이며, 단순히 두려움은
아닌 것이죠. 그래서 공연 바로 직전에 동료의 사망 소식을 듣지만, 단 한 명 동요없이 공연을 끝까지 치루기도 하구요.
그리고 카메라 역시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시선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버스 내에서 부단장이 멤버들에게 사망 소식을
알릴 때는 버스 밖을 비출 뿐이고, 다른 멤버가(여기선 그냥 멤버라고 표기했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다시피
거의 주인공에 가까운 분이 돌아가셨을 때도) 죽음을 맞이 했을 때도 짧은 나레이션으로 처리할 뿐입니다.

이렇듯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유혹을 뿌리치면서 결과적으로 영화는 훨씬 극적인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되게 우스운건, 이분들의 80년 넘는 인생에서 겨우 1시간 남짓을 함께 했을 뿐인데, 그들의 죽음이 너무도 슬프게
다가온다는 것이었죠. 이건 단순히 존재가 사라졌음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짧은 시간 그로 인해 느꼈던
감정들에 솔직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겠지요.




삶과 죽음에 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많이 봐왔지만 <로큰롤 인생>처럼 나 스스로 깊게 돌이켜 보게 된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리뷰의 제목도 '로큰롤 인생 _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다'라고 할까 했을 정도로,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이 직,간접적으로 말하는 것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삶 자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음악 자체는 단순히 소재일 뿐이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영화의 포스터나 영화의 시작부분
공연의 피날레 장면이 등장하면서, 마지막에 그들이 갖은 어려움 끝에도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가 주된 클라이막스가
아닐까도 했지만, 오히려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는 감정이 극대화 되지는 않습니다. 이미 그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감동했기 때문이죠. 그 나이쯤 되면 모든 것에서 초연하게 될까요?  영앳하트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삶과 죽음마저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에 경이로움 마저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장난스럽게 툭툭 던지듯 건네는 말들이 하나하나 결코 가볍지 않게 느껴지더군요.




하다보니 음악 얘기를 거의 하지 못했는데, 아무리 그렇다해도 <로큰롤 인생>을 논하면서 음악 얘기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극중에서는 이들이 공연 준비를 위해 연습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데, 제임스 브라운의 'I Feel Good'을
연습하고 공연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공연날 까지도 가사를 완벽히 외우지 못해
한 구석에서 열심히 연습하는 두 노인의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럽더군요. 소닉 유스의 'Schizophrenia (정신분열증)'은
어쩌면 이들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실제로 소닉 유스의 팬이 아니면 이런 가사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죠), 처음에는 단순히 가사를 읽고 따라하는 정도였지만 연습을 해갈수록 가사를 이해해 가는 이 과정을 바라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입니다. 더 포인터 시스터즈의 'Yes We Can Can'을 연습하는 장면 역시 재미있는 장면인데,
'Can'이라는 단어가 무려 71번이나 등장하는 이 곡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다가 결국 무대에서는 완벽하게 성공해 내는
장면에서는 감동이라기 보다 뿌듯함이 느껴지더군요.

극 중간 중간에는 이들이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촬영한 영상들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 작품들도 굉장히 센스 넘치는
작품들입니다. 특히 비지스의 'Stain' Alive' 를 부른 뮤직비디오에서는 이 곡이 삽입되었던 원작인 존 트라볼타 주연의
<토요일 밤의 열기>의 첫 장면을 패러디한(호리호리한 존 트라볼타가 말끔히 차려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발이 클로즈업
되는 바로 그 유명한 장면!) 장면이 인상적이더라구요. 볼링 치는 그 장면도 매우 재미있었구요 ~
또 하나 재밌는건, 이 곡의 가사도 이들이 부르니 굉장히 의미있게 들렸다는 겁니다.
'아직 살아있어' 라는 후렴구가 이리도 인상깊게 들리다니요!
물론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본래 듀엣곡이었던 곡이 멤버의 죽음으로 인해 솔로곡으로 변해버린 'Fix You'와
교도소 공연에서 들을 수 있었던 밥 딜런의 곡 'Forever Young'이었구요 (Fix You는 마치 조니 캐쉬처럼 멋지게 소화해
내시더라구요).




모든 좋은 영화가 그렇지만 이 영화 <로큰롤 인생 (Young@Heart)>도 아무리 설명글을 주저리 주저리 써봤자,
영화 1회 관람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에 1000분의 1도 전달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건, 그저 '유투브에서 화제가 되었던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라는 것 만으로 이 영화를
판단하시고 영화를 안보시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실 거라는 말 뿐입니다. 영화야 어차치 100% 취향에 근거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높은 확률로 많은 분들께 감동을 드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같네요.
단순히 슬퍼서라기 보다는 노인의 지혜에 저절로 숙연해 짐을 느꼈기 때문이었겠지요.




Fix You - Young@Heart (모두를 숙연하게 만든 바로 그 노래)




Forever Young - Young@Heart (이 곡은 중반부터 나오네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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