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아쉬타카 입니다.


본래 이 글은 오늘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된 '늑대아이' 블루레이 한정판에 수록된 Collector's Guide Book에 수록될 예정이었으나, 본 원판권사인 '스튜디오 치즈' 측의 컨펌 과정 중에 "영화 '늑대아이'가 세계 어디에서나 혹은 불특정 다수의 누구에게든 공감될 수 있는 보편적인 판타지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의도에 따라, 촬영지의 세세한 정보가 실명으로 언급되는 것에 대해서 작품의 연출의도와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우려된다는 판단으로 최종적으로 아쉽지만 수록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타이틀을 받아 든 지금도 아쉬움이 많이 남기는 하지만, 이렇게 다른 방법으로라도 '늑대아이'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제 글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 부족한 글이지만 영화 속에 등장한 실제 장소와 그 느낌이 조금이나마 전해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정성껏 써보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도 본문 전체를 확인하실 수 있으며, 블루레이 소책자 수록을 위해 제작한 디자인이 완료된 버전도 PDF파일을 통해 직접 확인하실 수 있도록 제공을 하려고 합니다.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소책자에 수록 예정으로 제작된 최종본의 디자인 파일을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저도 하나 컬러로 출력해서 별도로도 소장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늑대아이 _ 그 곳을 가다 (PDF파일 다운받기 / Dropbox)

https://www.dropbox.com/sh/cf6q3egmynnxtb7/WoIMP5P5SX


* 접속하신 뒤 파일명을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으며, 우측 상단의 '다운받기'버튼을 통해 파일로 다운 가능합니다.

(현재는 종료되었습니다 ^^;)



그럼 '늑대아이'와 제 글 '늑대아이, 그 곳을 가다'도 함께 즐겨주세요~

감사합니다!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를 너무나 감명 깊게 본 나머지 이와 관련된 자료들을 여기저기 찾아보던 중, 영화 속에 등장한 대부분의 장소들이 실제 존재하는 장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가는 꼭 한 번 찾아가봐야지 하고 무작정 세웠던 계획을, 국내 블루레이 출시에 맞춰 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벚꽃 시즌이던 지난 3월 22일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늑대아이'의 배경이 된 곳은 크게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 번째는 하나와 그가 처음 만나 데이트를 하고, 유키와 아메를 낳고 시골로 이사가기 전까지의 배경이 되는 도쿄이며, 두 번째는 시골 마을이 주된 배경이 되는 도야마현이다. 도야마현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고향이기도 한데, 이번 여행에 도야마현까지 정말 가고 싶었지만 도쿄와 도야마현을 짧은 일정에 한 번에 소화하기에는 너무 무리라 결국 눈물을 머금고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도쿄를 중심으로 한 적지만 중요한 실제 장소들을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여행 전에 인터넷 등을 통해 철저한 사전 조사를 하기는 했지만, 실제 장소를 찾는 여정이 그리 쉽지 만은 않았다. 히토츠바시 대학처럼 유명한 곳이야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몇몇 장소는 주소 정보도 없고 그 장소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찾기 힘든 평범한 장소인 경우라서 위성 사진은 물론, 실시간으로 현위치와 비교해가며 찾는 등 적지 않은 발품을 팔아야했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가 영화 속 장소와 장면을 딱 만나게 되었을 때의 희열은, 길을 찾으며 흘렸던 땀을 모두 잊게 할 정도로 큰 것이었다. 



1. 하나와 그가 다니던 대학교 가는 길


가장 처음 찾은 곳은 하나가 처음 그를 만난 곳이자 같이 수업을 듣기도 했던 장소인 히토츠바시 대학교였다. 히토츠바시 대학은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오래된 유럽풍의 건축양식을 자랑하는, 실제로 학교의 일부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도 한 유서 깊은 곳이었다. 중앙선 구니타치역에서 내려 남쪽 출구로 나와 대학교 쪽으로 걸어내려 오면 영화 속에 등장한 몇몇 장소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일단 내리자마자 오른 편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Coffee 白十字 Cake'라는 간판의 과자점이었는데 영화 속에서도 너무 쉽게 각인되었던 간판이라 실제로 보는 순간 '아, 내가 진짜 늑대아이 속 장소에 와 있구나!'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가게 앞에는 '늑대아이' 포스터가 붙어 있기도 했는데, 영화 속에서 봤던 장면과 완벽하게 동일한 모습이었다. 이 거리에서 가장 놀랐던 건 단순히 실제 배경에서 착안하여 만든 정도가 아니라 거의 실제와 99% 동일한 모습을 극중에서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과자점은 물론 그 주변의 가게들과 벤치들까지 완전히 동일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 변한 것 외에는 거의 차이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 과자점을 찾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그 반대편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극 중에서 하나가 바로 반대편의 시점에서 이 가게 앞에 서 있는 그를 바라보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설마 이 구도까지도 맞을까 했었는데...







정말로 과자점이 바라다보이는 장소엔 그 전화기가 있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소름이 돋기 시작했는데, 이 장면에서도 자세히 보면 그냥 전화기가 여기 있었다 라는 정도가 아니라, 전화기와 주변의 디테일한 디자인은 물론, 그 뒤로 보이는 건물들까지 그대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낮시간에 방문하여 영화 속에 등장한 밤시간과의 싱크를 맞추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일본에서의 시간이 하루 이틀만 더 있었더라도 극 중의 시간과 맞췄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런 실제장소와 영화 속 장면의 디테일은 거리를 묘사한 장면에서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위의 장면은 하나가 대학교로 걸어가는 장면인데 아래의 실제 장면과 비교하면 정말 있는 그대로를 그렸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다. 세워둔 자전거들의 위치나 가로등과 가로수의 구도야 말할 것도 없고, 왼쪽의 빨간 소화전이라던가 그 뒤에 보이는 복숭아가 그려진 간판까지 완벽하게 일치한다. 계절이 달라 푸른 잎이 아닌 벚꽃이 핀 것이 아쉬울 정도로 이 길의 풍경은 영화 속 장면 그대로였다.






조금 다른 앵글로 잡기는 했지만 신호등과 시계 그리고 가로등까지도 실제 장소와 동일한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면 이 뿐만 아니라 역시 왼편 아래의 공중전화박스나 멀리 보이는 복숭아가 그려진 간판, 그 앞에 빨간 간판과 파이프 담배가 그려져있는 간판까지도 묘사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2. 그와 하나가 처음 만난 대학교






영화 초반 등장하는 주요 배경이자 하나와 그가 처음 만나 감정을 키우는 곳인 대학교는 히토츠바시 대학이다. 방문했던 날은 마침 졸업식 날이었는데, 4시가 지난 시간이라 이미 대부분의 졸업인파는 학교를 떠났고 몇몇 만이 남아 사진 촬영 등을 하는 모습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히토츠바시 대학은 고풍스러운 건축양식으로 일부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도 한 장소였는데, '늑대아이'가 아니더라도 한 번 쯤은 와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이 곳 저 곳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오히려 졸업식이 끝난 직후라 대부분의 강의실이 닫혀 있고 인적이 이미 조금 드물어진 시간이라, 영화 속에 등장했던 강의실이나 식당을 직접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나가 학교에 올 때와 그가 강의실을 떠날 때 넘어지는 아이를 일으켜주던 장면에서 등장하던 커다란 입구 역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면 더 완벽했겠지만 이번 '늑대아이' 여행은 최대한 실제 장소에 피해를 주거나 부담을 주지 말자는 것 (소란스럽게 한다거나)이 또 다른 목표였기 때문에 일부러 학생들이 나가고 닫혀 있는 문을 억지로 열거나 하지는 않았다. 실제 장소에 다녀온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은, 극중 장면에서 입구 저 멀리 보이는 풍경까지 거의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하나가 걸었던 길을 걸어 조금 더 학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방향은 위와 아래로 다르지만 하나가 처음 그에게 말을 걸었던 그 계단도 찾을 수 있었다. 새로로 길게 뻗은 창문 덕에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극 중 등장한 창문과 완벽하게 동일한 모양의 창문은 반대편의 계단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교내의 모습들도 극중에 등장한 것과 동일한 앵글로 촬영하고 싶었는데, 졸업식 후 이미 대부분이 떠난 뒤라 불이 꺼져 있는 곳이 대부분이라 더 많은 곳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래도 의외의 수확이라면 이 도서관 입구를 찾은 것을 들 수 있겠다. 이번 여행에 앞서 이미 일본 내의 마니아들이 실제 장소를 탐방한 뒤 기록해 둔 사이트를 참고하였는데, 대부분의 장면과 장소를 찾아낸 이 사이트에도 없는 도서관 장면이라 더욱 반가웠달까. 물론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들어가지는 못했고 입구의 촬영도 실례가 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진행하기는 했지만, 기존 자료에도 없던 곳을 담아낸 터라 좀 더 의미 깊은 순간이기도 했다.






아마도 극 중에 나온 장면은 2~3층으로 생각되는데 실제 촬영한 곳은 1층의 모습이다. 저렇듯 졸업식으로 불이 대부분 꺼져 있는 어두운 분위기였다.



3. 하나가 일하던 세탁소








하나가 일하던 세탁소는 학교에서 나와 다시 구니타치 역 쪽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구니타치 역 남쪽출구로 나와 동쪽으로 100미터 정도를 들어오면 왼편에 커다란 주황색 간판을 확인할 수 있다. 제작 당시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터라 완벽하게 동일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로고나 유리 창의 모습, 들여다보이는 내부의 모습까지도 극 중과 동일한 모습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놀란 점들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장소만큼이나 그 주변의 묘사가 정확하다는 점인데, 이 세탁소 역시 그 옆 가게들의 묘사와 오른 편의 돈카츠를 파는 가게의 광고판까지도 그대로 묘사되어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차마 실제로 옷을 맡겨보거나 하는 시도까지는 하지 못했다 ㅎ



4. 하나와 그가 헤어지던 다리





그가 하나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하려다가 머뭇거리고 말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그 다리도 실제 존재하는 장소였는데, 이 곳은 니시오기쿠보 역에서 북쪽 출구로 나와 도보로 약 7~10분 정도를 걸어오면 발견할 수 있다. 이 다리는 극 중에서 보았던 느낌과 실제의 느낌이 가장 차이가 나는 장소였는데, 일단 실제 다리는 파란 색의 기둥과 난간이 인상적이었지만 극 중에서는 흰색 혹은 회색으로 묘사되고 있기도 했고, 다리 난간에 물고기 장식도 극 중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라 이곳이 맞는지 여러 번 확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다리 주변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실제 장소라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이 다리는 이 후 하나가 빗속에서 그를 발견하게 되는 장면에서도 등장하는데, 실제로 보니 극 중에서 등장한 앵글이 실제 장소와는 조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영화 속 장면으로 보면 왼편과 오른편의 건물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인데 이 건물들을 다리 위에서 보았을 때 저 정도 거리에 위치하려면, 건물 하나의 거리 정도는 다리가 앞서 위치해야 가능한데 조금은 원하는 구도로 수정을 거친 듯 했다.




그리고 영화 속 장면과는 다르게 그 위치에는 사다리가 존재하지 않고, 다리와 바로 붙어서 사다리가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기서 한 참을 서서 다리 아래를 바라보다가 다음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5. 그를 찾아 해매는 하나





비가 내리던 날 그가 돌아오지 않자 유키와 아메를 들쳐 메고 그를 찾아 나선 하나. 이 때 등장하는 장소는 약 두 곳인데 두 곳 모두 역시 실제 존재하는 장소였다. 우산을 쓰고 뒤를 돌아다보던 고가는 미타카 역 근처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중앙선 미타카 역 북쪽 출구로 나와 중앙선 선로를 따라 동쪽으로 약 10분 정도를 걸어오면 바로 그 고가와 통로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 곳도 주소 등이 정확하지 않아 (이번 여행에서 주소가 확실한 곳은 사실 한 곳도 없었다) 미타카 역에 내려 고가를 따라 마냥 걸어서 확인할 수 밖에는 없었는데, 그래도 막상 그 장소에 도착하면 그 주변의 디테일까지 그대로 묘사한 장면 탓에 쉽게 그곳임을 알 수 있었다. 이 고가 아래 장소 역시 고가가 통과하는 다른 여러 장소 중에 이 곳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던 건, 그 주변의 철망이라던가 나무 등의 정확한 묘사 때문이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경사진 골목은 미타카 역 근처가 아니라 앞서 소개했던 '하나와 그가 헤어지던 다리' 근처였는데, 니시오기쿠보 역에서 그 다리를 지나 하류 쪽으로 내려오다보면 또 다른 다리가 등장하는데 그 다리에서 우측으로 살짝 방향을 틀면 바로 위의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곳은 다른 장소들 가운데서도 싱크로율이 특히 높은 곳이라 보는 순간 '여기다!' 하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사실 내용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장면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실제 장소들을 확인하면서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은 하나의 동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를 찾아나설 때의 동선은 물론이고, 하나와 그가 어디서 만나서 어디서 데이트를 했는 지를 직접적인 동선으로 연결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여행에서 얻은 추가적인 매력이었다.




6. 고백의 언덕






그가 하나에게 처음 마음을 고백하고, 이후 자신의 모습을 처음 보여주기도 한 곳으로 연결되는 일명 '고백의 언덕'은 이번 늑대아이 여행에 핵심이었다. 이번 여행을 처음 계획하게 된 것도 바로 고백의 언덕에 가고자 함에서 시작되었는데, 핵심인 만큼(?) 가장 찾기 힘든 장소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곳이 가장 찾기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장소들도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평범한 장소이고 또한 완전한 주거 지역 내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이 별로 접근할 기회가 없어서였다. 실제로 이 곳에 대한 정보라고는 구니타치 역 북쪽 출구로 나와 동쪽 방향이라는 것과 주거 지역이라는 것 뿐이었는데, 이 곳을 찾기 위해 위성지도와 실시간 위치 파악까지 해가며 조용한 동네의 어두운 골목과 언덕들을 수없이 오르내려야만 했다. 





(위 장면에서 그와 하나는 위 사진 속 풍경을 보고 있었다고 보면 되겠다)


이 곳의 정보가 부족했던 것은 일종의 배려 처럼 느껴졌다. 이 곳은 주거지역, 그 가운데서도 정말 조용한 지역이라 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사실상 올 일이 없어 외부인이 오면 바로 주목을 받게 될 정도로 고요함이 느껴지는 장소였는데 (속삭이듯 말해도 멀리서 들릴 정도), 그렇기 때문에 이 동네 사람이 아니면 찾기가 쉽지 않고 이 곳을 이미 다녀온 현지 마니아들도 더 많은 이들이 찾아올까봐 주소 등의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듯 싶었다. 


이 곳에 대한 힌트 가운데는 시 경계가 지나고 있어 언덕 위와 아래의 멘홀을 만든 곳이 다르다는 정보도 있었는데, 제법 유용한 정보였다. 정말 한 참을, 하지만 조용히 헤맨 끝에 찾은 고백의 언덕은 그래서 더 값지게 느껴졌고 뭉클함 마저 밀려왔다. 






고백의 언덕의 가장 상징적인 아이템이라면 단연 저 음료수 자판기를 꼽을 수 있을 텐데, 실제로 빨간 색의 자판기가 환하게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참고로 다른 곳은 일부러 시간을 맞추지 못했지만 고백의 언덕 만은 극 중과 최대한 동일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부러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조명이 켜진 후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충분히 만족스러운 사진과 장면을 포착해낼 수 있었다. 어렵게 찾은 곳인 만큼 한 참을 계단 밑에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그리고 '늑대아이' 속 장면을 떠올리며 그렇게 앉아 있었더랬다. 참고로 그가 하나에게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공터는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선 상태라 확인할 수는 없었는데, 이 계단을 올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언덕을 올라 정상에 다다르면 극 중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던 컷을 시도해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건물과 나무에 대부분 가려 실제로는 건널목 등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주변을 충분히 둘러보고 빨간 자판기에서 음료수 캔을 하나 사서 마신 뒤, 언덕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도쿄에서의 짧은 '늑대아이' 여행은 마무리 되었다. 글의 서두에도 이야기했지만 극 중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도야마 현을 가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도야마 현에 가서 아메와 유키가 하나와 함께 힘들지만 행복하게 지내던 곳곳을 둘러 보고 싶다는 바램을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새겼다. 이렇게 또 '늑대아이'는 내 인생에 있어 더더욱 지울 수 없고 큰 의미를 갖는 작품이 되어 버렸다. 비단, 이 고백의 언덕에서 나도 '늑대아이'의 그처럼 사랑하는 이에게 평생을 준비해왔던 말로 청혼을 해서 만은 아니다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작품 속 캡춰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스튜디오 치즈' 및 한국내 수입사 '(주)얼리버드픽쳐스에 있으며, 
글의 실제 장소를 촬영한 사진의 저작권은 아쉬타카에게 있습니다






늑대아이 (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 2012)

엄마는 그렇게 살아왔구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워즈'를 만든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늑대아이 (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 2012)'를 보았다. '시달소'와 '썸머워즈' 모두를 인상 깊게 본 입장에서 그의 신작은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처음 포스터가 공개되고 예고편을 보게 되면서 그 기다림을 더 깊어지게 되었다. 제목과 설정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늑대인간과 인간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즉, 판타지에 더 가까운 이야기가 아닐까 예상했었다. 그래서인지 어쩌면 그냥 재미있는 영화 한 편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다가 진심으로 크게 당했다. 결국 호소다 마모루는 자신이 직접 가사를 쓴 '어머니의 노래'를 바탕으로 이 세상 어머니들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위대함을 '늑대인간'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빌려 말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 Studio Chizu. All rights reserved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눈물을 많이 흘렸던 작품은 '늑대아이'가 되었다. 올해가 다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런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몰입도가 대단했는데, 왜인지는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정말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초반 전개서부터 계속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어머니에 관한 영화라고 한다면 주인공 '하나 (花)'가 어머니가 되기 전 장면에서부터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이미 올라와버렸다는 것이다. 마치 픽사의 '업 (Up)'이 초반부에서 이미 관객을 펑펑 울렸던 것에 비할 정도였는데, 이 감정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다가 후반부에 가서 다시 끓어오른 것이 아니라, 이 때부터 끝날 때까지 러닝 타임 내내 감정선이 유지되어 글썽였다는 것이 '업'과는 다른 점이었다. 영화는 본격적으로 하나가 어머니의 삶을 살게 되는 시작 시점에서 별다른 대사 없이 잔잔한 배경음악과 함께 일련의 순간들을 그려내는데, 아... ㅠㅠ



ⓒ Studio Chizu. All rights reserved


유키와 아메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는 특별하지만 그 근원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보편적인 이야기다. 보편적이지만 위대한 이야기. 정말 천방지축으로 말썽을 부리는 유키의 어린 모습, 숫기가 없어서 본인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어린 아메의 모습, 늑대인간인 아이들을 데리고 사람들을 피해 인적드문 시골에서 어렵지만 작은 행복을 만들어 가는 하나의 모습, 이후 유키와 아메가 각각 겪게 되는 다른 이야기는 늑대인간이라는 특수성과 잘 맞닿아 있지만 늑대인간 이야기를 빼더라도 성립할 수 있을 만큼, 모든 아이들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자 모든 어머니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 만의 길을 택하게 되는 유키와 아메의 모습은 모든 아이들이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하나의 마음, 더 중요한 어머니의 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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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유키가 아팠을 때 소아과를 가야할지 가축병원에 가야할지 몰라 고민하는 모습에서 전혀 코믹함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은, 여기서 중요한 건 두 병원 사이에 놓인 늑대인간으로서의 유키가 아니라, 아픈 아이를 두고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늑대와 인간 사이를 마음껏 오가는 어린 유키를 학교에 보내는 하나의 마음 역시, 처음 내 품에서 처음 벗어나 사회로 나아가는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메가 강물에 휩쓸려 죽을 뻔 했을 때 하나가 느낀 심정 역시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실 말로는 이런 얘기를 쉽게 할 수 있지만 정말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떨까 하는 건 체감하기 어려운데, '늑대아이'는 처음부터 워낙 깊게 빠져있어서인지 이런 클리셰에 가까운 장면들에서도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거의 내내 울면서 보다시피 한 것은 역시 태풍이 몰아치던 날의 장면이었다. 하나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과정을 겪게 되는데 바로 아메에 관한 것이다. 이미 인간보다는 늑대의 세계에 더 빠져있던 아메는 태풍이 몰아친 그 날 말없이 숲 속으로 향하는데 이런 아메를 찾기 위해 하나는 정말로 큰 역경을 겪는다. 보통 같으면 왜 기다리는 유키를 데리러 가지 않고 아메를 (끝까지) 찾기 위해 죽음에 문턱까지 겪으면서 고생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지만, 이런 하나를 아메가 집으로 데리고 온 뒤의 장면에서 조금이나마 하나의 마음을, 호소다 마모루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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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엄마가 되면서부터 계속 어떻하면 이 아이들을 어른으로 키울 수 있을지, 어떻하면 늑대아이를 어른으로 키울 수 있을지 난감해 했었는데, 하나는 아메가 바로 그 어른이, 자신의 품을 떠나서도 홀로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마지막으로 본인 스스로가 그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 아메를 끝까지 찾아 헤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제는 가족을 떠나 산으로 훌쩍 떠나버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그 남자를 닮아있는 아메를 산으로 떠나보내는 장면은 정말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어떤 과정을 겪으며 지금까지 키워낸 아메인지를 알기에, 그런 아메를 떠나보내기엔 아직 하나에겐 너무 이르다는 것도 잘 알기에 이렇게 '건강하라'며 떠나보내는 하나의 외침은 정말로 감정이 터져나올 수 밖에는 없었다. 모든 어머니들은 이런 삶을 살아왔구나해서....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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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인간'이라는 특수성에 더 기반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랬었기에 이 본편적 진리의 이야기에 더 무방비 상태로 눈물을 빼았겨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근본에는 그 동안 지겹게 들어왔던 어머니의 삶에 대해 비로소 '아!'하며 '아...엄마는 그렇게 살아왔구나...ㅠㅠ'하고 깨달을 수 있었기에 뭉클했었지만, 단지 그것 뿐만이 아니라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하나가 어머니가 되기 전 일상을 담은 장면에서부터 무언가 감정이 일어났던 것처럼, 영화 내내 호소다 마모루의 마법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장면 하나 하나에 눈물이 섞여 나왔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다른 가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런 어머니의 삶에 대해 와닿는 부분이 적은 상황이었음에도, 작은 일상에서부터 이 정도로 감정이입과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은 아직도 머리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보통 다른 사람들보다 감정이입을 잘하고 감정적으로 쉽게 빠져드는 편이긴 하지만, 그런 나임을 감안하더라도 '늑대아이'가 주는 감동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나중에 시간이 더 지나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된다면 알게 될까? 내가 지금 느낀 이 감동이 정확히 무엇 때문이었는지. 혹은 나중에 나도 유키와 아메 같은 내 아이들을 키우게 되면 알게 될까? 이유도 잘 모른채 내게는 너무도 큰 슬픔과 감동을 전해 준 작품이었다.



ⓒ Studio Chizu. All rights reserved


1. 요 근래 이 정도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하루가 지난 지금도 극장을 나올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감정선이 유지되고 있고, 유키와 아메를 두 손으로 안고 있는 하나가 그려진 포스터만 봐도 울컥할 정도네요 ㅠㅠ


2. 다른 분들에게는 아마도 아닐 듯 한데, 저에게는 '시달소'나 '썸머워즈'보다 더 좋았던 것은 물론, 올해 남은 기간 동안 무슨 영화가 더 나오더라도, 폴 토마스 앤더슨이 '매그놀리아'보다 더한 감동을 전해주거나, 피터 잭슨이 빌보 이야기로 포로도 얘기보다 더 큰 감동을 전해줄지라도, 제게 있어 올해의 영화는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가 될 것 같네요 (에바가 나온다면?)


3. 집에 오자 마자 이 주제곡만 무한 반복하고 있어요 ㅠㅠ 바로 HMV에 사운드트랙 주문까지 ㅠㅠ





4.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이 영화가 또 남다르게 다가왔던 것은 하나가 시골에서 살게 되는 것 때문이었어요. 귀농 아니면 귀촌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저로서는, 시골에서 다시 시작하다시피 하는 하나 가족의 일상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더군요.


5. 빨리 블루레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아니, 그 전에 극장에서 더 봐야겠어요.


6. '하나' 목소리는 미야자키 아오이가 연기했는데, 제가 미야자키 아오이에 대한 언급을 한 줄도 안했을 정도로 영화에 푹 빠졌었네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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