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닌 (ソラニン, Solanin, 2010)
청춘의 또 다른 이름


청춘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는 언제나 반가운 동시에 아련하다. 청춘을 그린 영화의 특징이라면 한참 이를 겪는 이들은 그 깊이를 느끼지 못하고, 이 깊이를 비로소 알게 되었을 즈음엔 이미 청춘의 가장 뜨거웠던 순간을 지나온 뒤이기 때문이리라.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미키 다카히로의 '소라닌 (ソラニン)'은 이런 청춘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감자에서 돋아난 싹에 있는 독성물질'을 뜻하는 '소라닌'이라는 제목처럼, 기존의 청춘 영화들 과는 비슷한 듯 다른 감성을 갖고 있다. 모든 청춘 영화들이 특유의 아련함으로 보는 이를 추억과 감성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지만, '소라닌'은 유난히도 아련하다. '소라닌'은 한 때의 소나기로 기억될 수도 있고, 작은 방에 드리워진 햇살로 기억될 수도 있고, 행복했던 추억 혹은 아픈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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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사표내고 싶게 만드는 영화'

사실 이런 감정은 이미 영화를 보기 전 감성스러운 사운드트랙을 들었을 때부터 얘견되었던 것이었다. 무언가 답답한 사무실에 앉아 이 풋풋하고 자유로움이 샘솟아나는 사운드트랙을 듣고 있노라니, 사무실이라는 현실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은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우발적으로 어디로든 뛰쳐나가고 싶어졌는데, 역시나 영화를 보고나니 이런 감정은 더욱 본격화 되어버렸다. 극중 메이코 (미야자키 아오이)와 타네다 (코라 켄고)는 각자 회사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거를 하는 중인데, 어느 날 이런 평범하고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려 조금은 우발적으로 사표를 내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물론, 현실적으로는 더 큰 압박과 마주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들이 이렇게 용기내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끔 했던 것은 아마도 청춘, 그 자체였을 것이다.   

'소라닌'은 이런 청춘이 가진 양날의 검을 모두 담담히 그려낸다. 무조건 현실에서 도망쳐 사표를 내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하며 정해진 길을 그대로 가라는 것만도 아니다. 어찌보면 영화는 이 자체에는 무심한 듯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려는 이들의 행동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극적으로 묘사되지만 않을 뿐 영화 내내 이 현실의 그림자는 주인공들에게 드리워져 있으며, 은연 중에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별다른 자극적 연출 없이도 자연스럽게 표현해 낸다. 그럼으로서 이를 맞닥들이게 되는 관객들은 오히려 이런 현실에 처한 청춘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뭐랄까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현실에서 잠시 혹은 영영 벗어난 이들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던 어떤 현실에 놓여져있던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분명 '본격 사표내고 싶게 만드는 영화'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아주 깊은 과정이 포함된 (결과는 같지만, 과정의 깊이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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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밴드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

청춘은 흔히 록(Rock) 음악과 함께 등장하곤 한다. 어쩌면 록이라는 음악은 그 만큼 순수하고 깨끗한 장르이기 때문에 청춘과 비견된다고도 할 수 있을텐데, '소라닌'은 그 지점을 아주 잘 짚어내는 작품 중 하나다. 청춘을 록이라는 소재로 풀어낸 작품은 '린다린다린다'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소라닌'은 그 가운데서도 '밴드 (Band)'라는 것에 더욱 비중을 두고 있다.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록만을 (혹은 펑크를) 부르 짖는 청춘과 밴드가 위주가 된 청춘은 조금의 차이가 있다. 이 영화는 록의 정신을 청춘고 결부시킨 것보다는 밴드라는 것 자체가 더욱 중요하다는, 그러니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느냐 보다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 시절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유독 강조한 작품이라 하겠다. 물론 전자를 강조한 작품들 역시 이런 점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라닌'은 분명 후자에 더 큰 비중을 두면서 함께 한다는 것 (함께 했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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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소라닌'은 미치도록 기타 연주를 하고 싶게 끔 만드는 영화라기 보다는 미치도록 밴드하고 싶게 끔 만드는 영화다. 밴드를 해본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겠지만, 혼자 연주할 때와 합주할 때의 느낌은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분명히 밴드와 함께 할 때는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소라닌'는 극중 등장하는 밴드 'ROTTI'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이런 대리만족을 가능케 해준다. 여기에 이들만의 특별한 사연이 더해져 ROTTI가 부르는 '소라닌'은 음악적인 완성도를 떠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정서를 안겨준다. 이건 도저히 말로 설명이 안된다. 이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영화 속 수록곡의 원곡인 'Asian Kung Fu Generation'의 곡을 들어보게 되면 금새 알게 된다. 원곡도 물론 좋지만, ROTTI가 부를 때 만큼의 감동은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ROTTI가 '소라닌'을 부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이 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 절절함과 뜨거움이 미처 식기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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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소라닌'

사실 이 영화에 대해 글을 쓰려고 앉아 한 발 물러서 생각해보니, 한 편으론 참 심심하고 지루할 수도 있었던 작품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보는 이에 따라 별다른 클라이맥스 없이 지리하게 흘러가는 청춘들의 흔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라닌'에는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힘 만큼이나 강력한 이미지와 정서가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사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소라닌'을 보게 된 것은 첫 째도 둘 째도 미야자키 아오이 때문이었는데, 영화를 보고나서는 미야자키 아오이보다 '소라닌'이 더 깊게 각인되었을 정도로, 이 영화에는 깊은 청춘의 자욱이 남아있다. 

사실 청춘 영화들이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춘 영화' 역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아주 심하게 얘기해서 영화가 시종일관 별로 였다 하더라도 청춘의 순간을 제대로 그려낸 장면이 있다면 그 자체로 기억에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소라닌'은 참 인상 깊은 청춘 영화였다. 내게는 추억 속의 한 페이지였던 청춘이란 순간을, 어쩌면 바로 오늘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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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작 만화책은 뒤늦게 사려고 보았더니 모두 품절이라 좌절했었는데, 곧 영화 개봉을 기념해서 다시 재판될 예정이라고 하니 급 기대중입니다!

2. 미야자키 아오이에게도 이런 에너지가 있었구나 싶네요. 그 에너지는 아마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3. 사실 청춘 영화는 이렇다할 설명이나 비평이 필요없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구요. 보고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것이 과제죠.

4. 영화를 보고 난 뒤 무한반복 중인 아지캉의 'ソラニン'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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