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타카의 레드필]

감상과 비평보다 설명과 정리가 더 중요한 시대



영화 비평의 시대가 죽다시피 한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비평이 주를 이루던 영화 잡지나 매체들은 거의 다 사라졌고, 영화 평론은 그 존재 의미에 대해 토론할 때만 가끔씩 등장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 없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주류에서 아주 아주 멀어졌다는 것뿐. 영화 평론가 중심의 비평이 주를 이루던 시대 이후에 등장한 것은 개인 블로거들을 중심으로 한 감상평 혹은 리뷰 중심의 시장이었다. 여러 영화 커뮤니티와 카페를 중심으로 다양한 감상평과 리뷰 들이 한 때 관심도 받고 그 숫자도 상당했던 시기가 바로 몇 해 전까지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는데 이는 감상평과 리뷰 자체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도 있지만,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 중심의 플랫폼에서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플랫폼으로의 주류 이동으로 인한 외부적인 요인도 적지 않았다. 


단문, 아니 짧은 이미지와 영상 위주의 플랫폼이 대세를 이루게 되면서 영화 관련 콘텐츠 역시 이에 맞게 변화했다. 아무래도 이 영상과 이미지 중심의 플랫폼 기반에서는 긴 호흡으로 어떠한 비평이나 감상을 전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장의 현실은 긴 호흡의 글을 소화할 흥미도 시간도 없는 듯했다. 그렇다 보니 최근 몇 년 사이에 눈에 띄게 성장한 콘텐츠가 바로 영화를 설명하고 알기 쉽게 정리한 콘텐츠들이다. 


사실 이런 설명과 소개, 정리 중심의 콘텐츠는 이전부터 계속 있어왔는데, 그 대상의 범위가 거의 전방위 적으로 확대되었다는 것과 시장의 수요가 더 늘었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 하겠다. 이전에 있었던 이런 류의 콘텐츠들은 명확한 지향점이 있었다. 주로 어떤 영화의 팬들이라거나 장르의 팬들이 호기심을 가질 만한 콘텐츠가 많았다. 이를 테면 007 시리즈 전체를 훑어가며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개봉 이후 흥행과 관련된 이야기까지, 007 영화의 팬이라면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는 유익하고 재미있는 콘텐츠였고, 콘텐츠의 질도 상당했다. 007 시리즈를 예로 들었던 것처럼 이런 종류의 콘텐츠들은 주로 역사가 오래되었거나 혹은 우여곡절이 많았다거나 하는 영화 혹은 인물을 중심으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설명, 정리 중심의 콘텐츠들은 지향하는 바가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콘텐츠의 소비자층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일 텐데, 영화를 감상하고자 하는 관객들보다는 지식의 측면에서 알고자 하는 관객들의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편이다. 즉, 단순하게 말하자면 회식 자리에서 혹은 친구들과의 대화 과정 속에서 등장하는 하나의 이슈 요소 정도로 소비되는 경향이 매주 짙어졌다. 예를 들자면 '어제 뭐 봤어?'라며 TV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프로를 보지 않았으면 다음 날 대화에 끼기 어려운 것처럼, 인기가 있거나 화제가 되는 영화를 보지 않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면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음으로 요약정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두 시간 남짓의 영화를 단 몇 장의 이미지나 동영상으로 간략하게 정리해주는 콘텐츠들이 매우 인기가 많다. 이런 설명 콘텐츠들이 절대 일방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아닌데, 무언가 주객이 전도된 듯한 느낌은 좀 든다. 영화가 재미있었는지 없었는지 하는 것보다 줄거리나 해설된 내용을 내가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거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실 관계의 옳고 그름을 확실하게 배우다시피 하는 것에 더 흥미와 관심이 몰리는 것은 아무래도 본질과는 조금 멀어진 느낌이다. 


예를 들어 최근 개봉한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같은 경우, 레이가 누구의 딸인지 카일로 렌과 핀의 광선검 듀얼 설정이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 등은 물론 흥미롭고 재미있는 얘기 거리이기는 하지만, 스타워즈라는 한 편의 영화가 어떠한 점이 재미있었는지 어떤 점은 별로였는지, 영화를 보고 나서 어떠한 것들을 느꼈는지 하는 것보다 더 먼저 이야기되거나 혹은 이런 것들은 아예 이야기되지 조차 못하는 것은 조금 문제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얘기다.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는 적지 않은 많은 관객들이 보았지만, 각자의 스타워즈가 탄생되었다기보다는 정리된 몇 가지의 스타워즈만이 남게 된 듯하다. 예전엔 어떤 영화가 개봉하면 재미있는가 없는가가 주로 논의되었는데, 최근에는 그보다 영화 속 사실이나 어떤 설정 등이 맞느냐 틀리느냐에 대한 논의가 더 관심거리인 듯하다. 그렇다 보니 한 편의 영화가 개봉하고 나면 어떠한 담론이나 감상이 남게 되는 것보다는 어떤 사실 혹은 지식 만이 남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수의 관객들 역시 영화를 느끼기보다는 '알았다'는 것에 더 만족하게 되는 것 같고.


틀린 것이 아닐 경우 다양성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영화라는 매체의 경우도 그렇다. 비평 만이 고귀한 것이고 감상이나 리뷰는 하찮은 것은 물론 아닐 것이며, 영화 한 편을 두고 정리하고 설명하는 것 역시 잘못 소비하는 과정은 결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까지 가게 되면 본질이 위축되고 심화되면 결국 성격 자체가 바뀌어 버리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특히 영화 같은 예술 혹은 상업예술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미 잘 보고 잘못 보고의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영화 매체에서 모두가 '내가 맞게 보았나'에 대한 강박이나 설명 만으로 배부른 소화 경향은 확실히 아쉬운 부분이다. 설령 감독의 의도와 정반대로 보았거나 내용을 잘못 이해해서 전혀 다른 영화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그 편이 더 영화를 의미 있게 소화한 경우가 아닐까. 천만 관객이 보았다면 천만 개의 각기 다른 영화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이 영화나 음악 같은 예술 만의 장점일 텐데, 모두가 같은 방식과 같은 내용을 보기를 스스로 원하는 현실은 조금 씁쓸하다.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백이면 아흔 아홉번은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끝나서 극장에 불이 완전히 들어올 때까지 관람을 하는 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리를 지킨다'가 아니라 '관람을 한다'라는 것이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한 번에 해당하는 경우는, 밤늦은 시간 관람이어서 막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부득이하게 나설 때와 영화가 정말 재미없을 때 뿐인데, 이를 제외하면 정말로 거의 모든 영화를 '완전히 끝날 때까지' 관람한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정말 대부분의 영화를 '재미있게' 본다). 극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거론했던 주제이기는 한데, 오늘은 아예 이 '엔딩 크래딧을 볼 권리'에 대해서만 따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꼭 최근 찾았던 극장에서 엔딩 크래딧이 나오는 동안 한 두명의 직원이 끊임없이 나를 노려보고, 다 끝나고 자리를 일어나자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내 곁을 바람처럼 스쳐가서 이 주제를 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서두에 밝혀둔다. (끙;)


여기서 오해를 살만한 부분부터 밝히고 시작하자면, 모든 관객들이 엔딩 크래딧을 꼭 다 관람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앞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개인적 사정이 없을 경우에도 일찍 자리를 일어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아니며, 엔딩 크래딧을 끝까지 다 보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보고자 하는 관객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말아야하지 않는 가에 대한 얘기다.


개인적으로 엔딩 크래딧을 끝까지 다 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첫 째로 쉽사리 가시지 않는 영화의 여운을 최대한 가슴 속에 담아두기 위함이다. 많은 영화의 여운들은 극장을 나서서 현실 세계를 맞닥들이는 순간 상당 부분 손실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몇 년이 지나도 여운이 남는 작품처럼 그 여운이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영화가 막 끝난 뒤 극장 안에 남아 있는 여운과는 비교하기 그 세기를 비교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인상 깊게 본 영화라면 최대한 이 여운을 있는 그대로 오래 간직하고 싶어 엔딩 크래딧을 끝까지 즐기는 편이다.


둘 째는 첫 째로 든 여운과 연결이 되는 이야기인데,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최고 시설의 환경에서 즐기기 위함이다. 영화 만큼이나 영화음악을 좋아하는 이로서 영화음악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시간 중 하나는 바로 엔딩 크래딧이 흐를 때 일 것이다. 각자 집에 어떤 사운드 환경을 갖추고 있는 지를 모르겠지만, 누구나 집에 THX 인증관 쯤은 하나씩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제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췄다고 할지라도 극장의 시스템보다야 좋겠는가. 이런 최적의 시스템에서, 아직 영화의 여운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영화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영화음악을 감상하는 최적의 환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순간을 놓칠 이유가 없다.


세 번째 이유는 엔딩 크래딧에 담긴 깨알 같은 정보들 때문이다. 출연한 배우들의 이름들을 확인하는 기본적인 것에서 부터, 수록된 곡들의 정보를 한 곡 한 곡 확인할 수도 있고 주요 스텝에는 어떤 인물들이 참여했는지도 관심을 갖고 보다보면 눈에 익은 인물들을 한 두 명씩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인의 참여 여부로 시작한 이름으로 국가 맞추기는, 어떤 국적의 스텝들이 어떤 비중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로케이션의 경우 현지 스텝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경우와 CG 같은 기술파트의 경우 어느 회사가 참여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에 더해, 어떤 국적의 팀들이 참여했는 지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스페셜 땡스를 통해 감독과 제작자의 평소 인맥도 확인할 수 있고, 이 영화가 실제로 촬영된 장소들의 지명과 상호 등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정보들은 영화를 좀 더 깊게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그냥 넘기기엔 너무 소중한 정보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엔딩 크래딧을 온전히 즐기기에 현재 대부분의 극장 환경은 그리 좋지 못하다. 그리고 그 잘못의 대부분은 극장에게 있다. 빨리 청소를 끝내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맘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내가 엔딩 크래딧을 보고 있을 때 들어와서 청소를 하셨으면 좋겠다. 그런데 관객이 있을 땐 청소를 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는지 계속 불이 켜져있는 문 앞에 서서 고개를 내밀었다 말았다를 반복하며 내가 언제 나가는 가를 감시하신다. 그게 내 앞 줄에서 청소를 하시는 것보다도 훨씬 더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물론 세상의 여러 일들 가운데는 다수가 옳은 일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도 많은데, 관객의 다수가 영화가 끝나자마자 (정확히 얘기하자면 본편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뜬다고 해서,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다 끝날 때까지 자리에 남아 있는 관객이 과연 유난히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가 라면 그렇지 않다. 극장은 영화 시작 시간이 10분이라고 했을 때 광고를 한 15~20분 쯤 틀어주고 나서 실제 영화는 30분쯤이 되서야 상영을 해서인지 몰라도, 러닝 타임이라는 것의 개념이 부족한 것 같다. 즉, 본편이 끝나는 시간을 러닝타임 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은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를 포함한 것이 영화의 러닝타임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논리를 따져봐도, 대부분의 소비자가 빵을 사서 90%먹고 나머지 10%는 안먹고 버린다고 해서, 100% 빵을 다 먹는 사람에게 '왜 남들은 안먹는걸 혼자 굳이 다 먹어야 속이 시원하냐!'라고 반문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엔딩 크래딧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극장에 매번 마지막까지 남아있다보니 겪게 되는 다양한 일들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직원들의 눈치야 말할 것도 없고(언제부턴가는 오히려 오기가 생겨서 눈을 일부러 맞춘 적도 있다), 막 나가려던 다른 관객이 나보고 '저 혹시 끝나고 뭐 있어요?'라고 물어보거나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뭐가 있어서 남았겠지....하고 생각했다가 아무 것도 없자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라며 마치 나 들으라는 듯이 얘기하며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극장이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불을 켜지 말아달라는 요구는 꺼낼 수 조차 없는 수준이다. 실제로 내가 자주 가는 좋은 극장들 가운데는 영화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불을 켜지 않아 엔딩 크래딧까지 온전히 즐기며 영화의 여운을 최대한 끝까지 머금을 수 있는 곳들도 많다. 실제로 예전에도 한 번 얘기한 적이 있지만 극장이 영화가 끝나고 불을 켜고 안켜고는 관객들의 행동에 생각보다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불을 켠다는 것은 곧 나가라는 신호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불을 켜지 않을 경우 실제로 나갈 사람이 훨씬 덜 나가는 것도 목격한 적이 있다. 더 많은 극장들이 이런 시스템을 지향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영화 시작 5분 전까지 앞선 타임의 영화가 끝나지 않았을 정도로 스케쥴을 빡빡히 짜고, 그 짧은 여유 시간에는 광고하기 바쁜 극장에게 이런 바램을 갖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러니 그냥 엔딩 크래딧을 보고자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적어도 방해는 받지 않고 끝까지 여운을 즐길 수 있었으면, 그리고 이를 이상한 사람마냥 취급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열심히 엔딩 크래딧을 볼 자유는 꼭꼭 챙겨 누릴테지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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