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보고 싶은 괴물 같은 영화 '올드보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블루레이가 드디어 출시되었다. '올드보이'라는 영화가 한국 영화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의미만큼이나 이번 블루레이 출시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가장 큰 이슈라면 역시 출시 연기와 관련된 부분인데, 물론 처음 출시를 알렸던 시점에 비해 수년이 흐른 뒤에야 실제 출시가 된 점은 이유를 막론하고 아쉬운 부분이지만, 10주년을 맞아 전면적인 디지털 리마스터링 및 국내 영화계에서는 전무후무한 (후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단순한 메이킹 다큐멘터리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올드 데이즈'라는 제작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까지, '올드보이'라는 영화에 걸맞은 이번 블루레이의 장점들이 미처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는 점 역시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블루레이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간단하게라도 영화 '올드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미 많이 조명되었던 것처럼, 2003년 한국영화는 그야말로 르네상스 시기였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비롯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그리고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등 (이 밖에도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까지) 작품성과 상업성을 겸비한 각각의 다른 색깔과 뚜렷한 개성을 가진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2003년을 비롯해 이 즈음 발표되었던 한국 영화들의 10주년 재상영 및 평가 등이 요 몇 년 사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올드보이'가 갖는 지점은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가장 큰 표면적인 차이점이라면 200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이라는 수상 경력 및 해외 영화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한국 영화를 알린 작품이라는 점일 텐데, 이후 '올드 데이즈'에 담긴 내용을 소개할 때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런 대외적 평가 및 수상 경력이 갖는 명예와 성공 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영화 제작에 참여했던 스텝, 배우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이런 영화를 또다시 만들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는 영화라는 점이 바로 '올드보이'가 특별한 작품이라는 이유라고 말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좋은 영화들은 세월을 두고 다시 보기를 반복할 때마다 다른 감동과 인상을 남기곤 하는데, 개봉 10주년이 지나 다시 보게 된 '올드보이' 역시 그랬다.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땐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최민식이 연기한 오대수 역할이 주는 강렬함과 영화의 독특한 미장센에 매혹되었었는데, 10년이 지나 다시 보니 오대수의 이야기와 충격적인 반전은 여전히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이우진의 이야기가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즉, 15년 동안 갇혀 지냈던 사람의 이야기보다, 누군 가를 15년이나 감금해야 했던 사람의 사연이 더 강렬했다는 얘긴데, 이유도 모른 채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이의 분노보다는, 어쩌면 15년이 넘는 세월을 복수로 보내버린 한 남자의 슬픔이 더 쓰라리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전에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던 대사들이 와 닿았는데, '아무리 짐승 만도 못한 놈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니냐'는 식의 대사와, '그냥 잊어버린 거예요'라는 대사는 이번 재 관람에서 비로소 발견한 중요한 포인트였다. 우진이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 주된 사건은 누군 가의 인생을 통째로 앗아갔음에도, 다른 누군 가는 정말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잊어버린 일이기도 했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우리도 살면서 스스로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지나 치는 일들 가운데에는 누군 가 (그 누군 가가 설령 짐승 만도 못한 이 일지라도)의 인생을 빼앗아 갈 정도로 커다란 일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 지를 떠올려 보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진의 마지막이 더 슬프고 더 쓸쓸하고 더 무기력했다. 오대수의 입장에서 보면 '올드보이'는 강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로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이우진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미 시작할 때부터 끝이 보이는, 죽음의 그림자와 무기력함이 내내 동행하는 그런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오대수는 15년 간 갇혀 있다 풀려 났지만, 우진은 이미 학생일 때부터 자신의 삶으로부터 갇혀 버린 것이 아닌가. 



이우진의 심리에 더 공감하게 되는 변화만큼이나 다시 보게 된 '올드보이'는 날 것 같이 폭주하는 에너지와 과감한 영화적 시도(아니, 도전이라고 하는게 맞겠다)들을 또 한 번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감독, 배우, 스텝 모두 젊고 혈기 왕성하던 그때가 아니었다면 감히 도전하지 못했을. 다시 말해 만약 동일 인물들이 기술적으로 더 성장한 지금에 와서 다시 만들고자 하면 오히려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지금은 이성적으로 시도할 수 없을 다양한 순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간혹 거칠고 정제되지 않고 혹은 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그런 한계들을 모두 예상할 수도 피해갈 수도 없었던 당시의 에너지 (혹은 결의)가 만든 괴물 같은. 하지만 다시 보고 싶은 괴물 같은 영화가 바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아닐까.


# 올드 데이즈 - 올드보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가장 완벽한 대답

 

메이킹 다큐멘터리 성격 영화에 대한 글 제목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나'는 너무 뻔하고 전형적이라 최대한 피해보려 했지만, '올드 데이즈 (Old Days, 2016)'는 '올드보이'가 어떤 과정과 일들을 겪으며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가장 완벽한 대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올드보이' 블루레이에 부가영상으로 처음 기획된 이 다큐가 전주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정도로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이건 분명 과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해보고 싶었던 작업, 그러니까 좋아하는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긴 호흡과 디테일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 성격의 영상이 우리 영화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는 늘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블루레이 부가영상이 애초 기획이었던 것에서 확장된 버전으로 발전된 것은 조금 무리가 되지 않을까, 과잉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보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걱정 외에 다른 의미로 보자면, 과연 메이킹 다큐를 만드는 데에 한 편의 영화와 동일한 수준의 규모나 의미 부여가 필요한 가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올드보이'라는 영화가 10주년을 맞아 재상영도 할 만큼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고 또 해외에서 특히 인정받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냉정하게 보자면 당위성보다는 영화의 명성에 기댄 다큐 제작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올드 데이즈'를 다 보고 나니 왜 그래야만 했는지, 왜 굳이 '올드보이'의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블루레이에 수록 될 부가 영상에 그치지 않고 영화화까지 발전시켜야 만 했는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즉, '올드 데이즈'는 단순히 '올드보이'라는 작품의 명성을 더하기 위해 기념 적으로 제작되고 기획된 작품이 아니라, 역으로 말해 '이런 제작과정을 통해 탄생된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하고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제작과정 자체가 하나의 역사이자 놀라움 그리고 시대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2003년 '올드보이'에 참여했던 감독과 배우, 스텝들은 지금은 각 분야에서 모두 주역을 맡고 있는 마스터들이지만 당시엔 완전 신인들이 대부분이었고, 경력이 많은 스텝들은 그리 많지 않았었다. '올드 데이즈'는 바로 그들이 어떻게 현장에서 싸우고, 부딪히고, 이겨내며 '올드보이'라는 영화를 완성시켰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간혹 오래전 작업한 (특히 현재는 걸작이 된) 영화를 배우와 스텝들이 추억하며 회고하는 메이킹의 경우, 당시 어리고 미숙했던 자신들을 되돌아보며 '그때는 참 뭘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다시 하라면 아마 다를 거예요'라는 식의 인터뷰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올드 데이즈'에 수록된 당시 스텝들의 인터뷰들에서 하나 같이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현장'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영화'라는 것이었다. '올드보이'가 자신의 첫 번째 영화였던 스텝들도 있고, 나이도 비교적 어린 나이라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던 상황과 조건이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익숙하고 숙련된 지금에 와 다시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그들의 진심에서 다시 한번 왜 이 다큐멘터리가 필요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올드보이'는 내용적인 면이나 스타일, 구조 등 모든 면에서 에너지가 넘쳐나는 영화였다. 혹자는 과잉의 영화라고 할 만큼 모든 분야의 에너지가 한계 이상으로 분출되고 있는 벅찬 영화였다. '올드 데이즈'를 보고 느꼈던 건, 아마도 이 영화가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 (지금에 와서 다시 구현하려고 해도 과연 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는, 아니 불가능하다고 느낄 정도의)를 영화라는 포맷 안에 다 담아낼 수 이유가, 감독 한 명 혹은 예술적 능력이 압도적으로 출중한 몇몇 아티스트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영화여서가 아니라, 감독과 배우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스텝들이 자신들의 한계치 이상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에 기적처럼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정확히 뭐라 말하기는 어려워도 그 당시의 순간에 내가 한국 영화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하고 있다는 공기가 느껴져,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을 해보자 라는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이 영화가 원하는 수준을 내가 해내야만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만들어낸 괴물. 그런 에너지들이 마치 어떤 상자 안에 봉인되듯이 '올드보이'라는 영화 안에 봉인되는 것에 성공한, 그런 괴물 같은 우연 혹은 사건이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들었다.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 블루레이의 부가 영상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결국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 지고, 더 사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올드 데이즈'는 그렇게 익숙한 '올드보이'를 또 보고 싶게 만드는 또 한 번의 놀라운 영화였다. 



# Video & Audio


이번 '올드보이' 리마스터링 블루레이의 본편 화질에 대해서는 먼저 (당연한 얘기지만) 사실 확인을 분명히 하고 동시에 호불호에 대해서는 넓은 범위로 수용하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감독의 의도나 영화 특유의 영상 처리 기법 등을 감안하여도 다른 일반적인 블루레이 영상들과 비교하기에는 확실히 필름 그레인이 (특히 일부 장면들의 경우) 심한 편이기 때문에 쨍하고 시원한 화질을 더 선호하는 대부분의 시청자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화질이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 반면 이런 거친 입자의 화질은 감독이 의도하고 또 최고의 리마스터링 기술을 통해 그 의도를 최선으로 구현해 낸 현존하는 최고의 화질이라는 사실이다 (DVD 출시 당시에도 이러한 의도를 담아낸 화질 - 정확히 말하자면 촬영과 영상 -에 대한 감독과 촬영 감독의 추가 설명이 있기도 했다).



이번 블루레이의 화질과 디지털 리마스터링 과정에 대해서는 부가영상으로 수록된 정정훈 촬영감독과 박진호 디지털 리마스터링 슈퍼바이저의 인터뷰를 통해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보자면 일단 '올드보이'는 '블리치 바이패스 (bleach bypass)'라는 현상 기법을 활용한 작품이라는 점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블리치 바이패스'란 필름 현상 시 은입자를 씻어내는 표백 과정을 건너 뜀으로서(bypass) 콘트라스트는 더 강해지고 그림자는 더 어둡고 채도는 감소시켜 영상의 몰입도를 더 강조하게 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콘트라스트를 더 강조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레인 역시 강조가 되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쨍한' 화질보다는 필름 그레인이 도드라지는 화질을 갖게 된다. 이번 블루레이 리마스터링은 이러한 느낌을 더 제대로 살리기 위해 오리지널 네가를 스캔받아 DI를 하는 방식이 아닌 MP (Master Positive)를 스캔하여 '올드보이' 특유의 룩을 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즉, 그레인을 지우고 쨍한 화질을 만들기 위한 리마스터링이 아니라 오히려 감독이 원했던 그레인과 거친 입자, 색감을 더 제대로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리마스터링이라는 얘기다.



또한 '올드보이'는 촬영 당시 제한된 조명과 고감도 필름을 과감하게 사용한 작품이라는 점도 화질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올드보이'는 박찬욱 감독이 원했던 특유의 분위기와 색감을 구현하기 위해 그린 톤의 실험적 조명 등이 적극 활용되고 또 고감도 필름이 일부 실내 장면 촬영에 사용되었는데, 그렇다 보니 거친 입자의 화질을 갖게 된 경우다. 다시 말하자면 감독이 원했던 특유의 분위기와 색감을 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친 입자와 그레인이 도드라지는 화질을 수용 해야만 했던 것이 아니라, 그 거친 입자와 그레인이 바로 박찬욱 감독이 의도라는 점이다. 



쨍한 화질을 자랑하는 최신 블루레이 영상들과 객관적 비교를 한다면 분명히 그레인이 심하고 암부 표현력이 떨어지는 '올드보이'의 화질이 더 낫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감독을 비롯해 영화를 만든 이들이 원했던 바를 충족시켜주고 있는가 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비교한다면 '올드보이' 블루레이의 화질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최상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현존하는 최선인 동시에 절대적 측면에서 최상급의 화질(감독이 직접 승인한 점이 그것)이라 결론 지을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올드보이' 본편 화질에 대한 감독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덧붙이자면, 영화 후반부 우진의 펜트하우스 장면 가운데 우진의 얼굴 옆으로 과감하게 오대수의 얼굴로 클로즈업이 진행되는 장면이 있는데 촬영 감독 및 스텝들은 조명 등 여러 여건들 때문에 화질이 무너지는 것을 우려했지만 (일부는 못 견뎌했지만), 박찬욱 감독은 오히려 바로 그게 본인이 원하는 것이었다며 최종적으로 OK사인을 주기도 했었다.



DTS-HD MA 5.1과 2.0 채널의 사운드는 준수한 편이다. 대사 전달력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균형이 잡힌 사운드를 들려주며, 특히 액션 씬이나 다른 씬에서의 멀티채널 활용도 보다 스코어가 흐르는 장면의 음장감이 체감하기에 더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 Special Features


3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이번 '올드보이' 블루레이는 각 디스크마다 부가영상을 나눠서 빼곡히 수록하고 있는데, 첫 번째 디스크에는 리마스터링 된 영화 본편과 함께 총 6개의 음성해설 트랙과 약 48분여의 인터뷰 영상이 수록되었다. 음성해설의 경우 기존 DVD에 수록되었던 5개의 트랙 외에 박찬욱 감독의 특별 추천한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의 음성해설이 독점으로 새롭게 추가되었다. 음성해설은 그 엄청난 분량도 분량이지만 각 트랙마다 참여자들의 분야에 따른 다른 시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만약 DVD에 수록되었던 음성해설을 아직 들어보지 못한 이들이라면 한 번쯤 감상해 보기를 추천한다. 특히 박찬욱 감독과 정정훈 촬영 감독이 참여한 음성해설은 왜 이 영화가 이런 거친 질감과 특유의 색감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인터뷰 영상의 첫 번째는 박찬욱 감독이 전하는 일종의 인트로 영상인데, 예전 '반지의 제왕' 확장판을 보았던 이들이라면 영화 시작 전 피터 잭슨이 등장해 간단하게 확장판과 추가된 장면들에 대해 소개하는 영상을 떠올리면 될 듯하다. 


 

두 번째는 디지털 리마스터링에 대한 부분인데, 이번 블루레이의 화질과 관련하여 왜 이번 버전이 감독이 승인한 버전인지 또 어떤 기술적 과정을 통해 이번 리마스터링이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정정훈 촬영감독과 박진호 디지털 리마스터링 슈퍼바이저의 인터뷰를 통해 상세히 들려준다. 이번 블루레이에 화질에 대해서는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심하게 나뉠 수 있을 텐데 호불호를 떠나 정상 비정상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촬영감독과 리마스터링 슈퍼바이저의 설명이 담긴 이 인터뷰는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영상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박진호 슈퍼바이저의 인터뷰는 이번 블루레이 화질에 대한 기술적인 내용이나 이해의 측면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인터뷰로 어떤 과정이나 의도, 방식으로 이번 화질 리마스터링 작업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술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올드보이'가 선택한 특수 현상 방식인 '블리치 바이패스 (bleach bypass)' 방식에 대한 상세한 소개 및 이 방식을 선택함에 따라 얻게 되는 것과 잃게 되는 것들 그리고 이번 리마스터링 작업의 목표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평론가들이 말하는 '올드보이'에서는 오동진, 이동진, 달시 파켓, 크리스 후지와라 이렇게 네 사람의 인터뷰를 통해 각기 이 작품이 갖는 의미와 미친 영향에 대해 들려준다. 감독들이 말하는 '올드보이'에서는 당시 주연 배우 캐스팅 오디션에 함께 심사를 보기도 했던 김지운 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 출신으로 당시 '주먹이 운다'를 촬영하고 있었던 류승완 감독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다. 해당 인터뷰 영상은 모두 이번 블루레이를 위해 새롭게 촬영된 것으로 HD의 선명한 화질로 만나볼 수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앞서 별도로 소개했던 '올드 데이즈' 본편이 수록되었고, 이 외에 기존 DVD에 수록되었던 SD 화질의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었다. 기존에 수록되었던 영상들이라 여기서 더 자세한 리뷰는 하지 않겠지만 혹 기존 UE를 꼼꼼히 감상하지 못한 이들이나 소장하지 못한 이들이라면 SD 화질 영상이라 하더라도 꼭 한 번 감상하기를 권한다. 특히 ‘Autobiography of Oldboy’라는 제목의 3시간 29분 분량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는 러닝타임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뒷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박찬욱 감독의 단편 영화 ‘심판 (28분, SD)’도 빼놓을 수 없겠다.



세 번째 디스크에는 '올드 데이즈' 본편을 위해 촬영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본편에는 수록되지 않은 추가 인터뷰 영상들이 수록되었다. '못다 한 이야기'라는 제목이 어색할 정도로 총 183분 분량으로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인데, '올드 데이즈'에 수록된 영상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HD 화질로 만나볼 수 있다. 이 인터뷰들은 각 인물별로 감상이 편하게 챕터가 나뉘어 있으며, '올드 데이즈'에는 미처 다 수록되지 못한 후반 작업과 관련 된 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롭다. '올드 데이즈'가 하나의 영화로서 편집된 버전이라면 ‘못다 한 이야기'에 수록된 인터뷰들은 좀 더 인터뷰 중심으로 골라서 선택적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유익하다. 참고로 ‘올드 데이즈' 및 관련 인터뷰 영상들은 캐논 C300 메인 카메라와 캐논 C100, 파나소닉 GH3, 캐논 5DMK3 등의 서브 카메라를 통해 촬영되었다.


새롭게 촬영된 인터뷰 영상 외에 한세준 스틸 작가가 당시 현장에서 찍었던 미공개 사진 1만 4천여 컷을 모두 스캔하여 엄선한 스틸 사진들을 인터뷰 중간에 영화 속 장면들과 함께 삽입시키면서 좀 더 인터뷰 내용을 흥미롭게 즐길 수 있도록 다채롭게 전달하고 있다 (즉, 인터뷰 내용과 관련이 있는 스틸컷이나 영화 장면들이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다).



각 인물별 약 10분 안팎으로 인터뷰 내용이 추가 수록되어 있다.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판단에 추가 수록분에 포함된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워낙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인 만큼 이 못다 한 이야기들에 수록된 인터뷰 내용들도 상당히 흥미롭고, 특히 각 스텝들의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이야기들이 관심을 끈다. 인터뷰들이 각 스텝들의 전문 공간 (혹은 관련된 공간)에서 진행되었다는 점도 은근한 디테일. 새삼스럽지만 블루레이 부가영상을 위해 총 40명이나 되는 영화의 스텝과 배우들을 일일이 한 명씩 찾아가 몇 시간씩 인터뷰한 정성과 노력은 글의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과연 앞으로 또 가능할까 싶다.




# 총평 

 

이번 플레인에서 출시한 '올드보이' 블루레이는 여러 가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의미는 역시 한국 영화 블루레이, 아니 블루레이 부가영상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시도가 또 언제 가능할까 싶은 도전이었던 '올드 데이즈'의 존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출시 지연 및 화질에 관한 점이 더 이슈가 되어서 그렇지 '올드 데이즈' 만으로도 이번 블루레이 제작과 출시는 대단하고 놀라운 사건이었다. 


또한 10주년을 맞아 박찬욱 감독이 승인한 유일한 버전이자 리마스터링 화질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것이 현존하는 최고의 버전이라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올드보이' 블루레이는 작품에 대한 호불호나 완성도 여부를 떠나, 한 편의 영화가 어떤 이야기들과 정서 그리고 추억들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담고자 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던 아주 소중한 기회였다. 왜 우리는 영화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변 모두가 담겨 있는 선물 상자 같은 (DVD때 같은 상자 패키지는 아니지만 ^^;) 타이틀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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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 10주년 (Old boy 10th Anniversary)

다시 보니 완벽한 우진의 영화더라



2003년 극장에서 보았던 '올드보이 (Old boy, 2003)'의 강렬함은 지금도 그대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스테리와 에너지, 쓸쓸함에 휘둘리며 마지막 미도의 왈츠가 나오며 막이 내릴 땐 좌석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만큼 '올드보이'는 강렬한 영화였고 박찬욱 이라는 이름을 전세계에 널리 알린 작품이기도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도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점에 놓여 있는 '올드보이'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올드보이'는 10주년을 맞아 단순 재 개봉이 아닌 디지털 리마스터링 (색보정 및 일부 장면 보정)을 거쳐 다시 선보이게 되었는데, 좋은 기회에 초대를 받아 박찬욱 감독님의 GV까지 더해진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일단 리마스터링 된 부분은 전반적으로 색보정을 감독님이 원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고, 개봉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몇몇 장면의 실수들을 바로 잡았다고 했다. 개봉 당시는 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의 장면들을 이번 기회에 수정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감독님이 말한 이번 리마스터링의 가장 큰 의의는 '올드보이'라는 영화 자체가 여러 해외에서 상영되는 등 필름의 보존 상태가 좋지 못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업데이트 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블루레이 리뷰어로서 본 '올드보이' 리마스터링 버전은 확실히 10년 전 영화라 세월의 흔적이 아주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 된 화질이라고 (현실적으로 보자면 더더욱) 할 수 있을 것 같아 블루레이가 정식 발매된다면 화질 측면에서 좀 더 나은 환경이 갖춰 졌다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렇게 다시 보게 된 '올드보이'는 예상은 했지만 완벽한 우진 (유지태)의 영화로 받아들여 졌다.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땐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최민식이 연기한 오대수 역할이 주는 강렬함과 영화의 미장센에 매혹 되었었는데, 10년이 지나 다시 보니 오대수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이우진의 이야기가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즉, 15년 동안 갇혀 지냈던 사람의 이야기보다, 누군 가를 15년이나 감금해야 했던 사람의 사연이 더 강렬했다는 얘긴데, 이유도 모른 채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이의 분노 보다는, 어쩌면 15년이 넘는 세월을 복수로 보내버린 한 남자의 슬픔이 더 쓰라리게 다가왔다.


그런 측면에서 이전에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던 대사들이 와 닿았는데, '아무리 짐승 만도 못한 놈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니냐'는 식의 대사와, '그냥 잊어버린 거에요' 라는 대사는 이번 재 관람에서 비로서 발견한 중요한 포인트였다. 우진이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 주된 사건은 누군 가의 인생을 통째로 앗아갔음에도, 다른 누군 가는 정말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잊어버린 일이기도 했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우리도 살면서 스스로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지나 치는 일들 가운데에는 누군 가 (그 누군 가가 설령 짐승 만도 못한 이 일지라도)의 인생을 빼앗아 갈 정도로 커다란 일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 지를 떠올려 보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진의 마지막이 더 슬프고 더 쓸쓸하고 더 무기력했다. 오대수의 입장에서 보면 '올드보이'는 강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로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이우진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미 시작할 때부터 끝이 보이는, 죽음의 그림자와 내내 무기력함이 짙게 깔린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인지 이번 재 관람에서는 한 없는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오대수는 15년 간 갇혀 있다 풀려 났지만, 우진은 이미 학생일 때부터 자신의 삶으로부터 갇혀 버린 것이 아닌가.





극장에서 DVD로. 몇몇 버전의 DVD가 업데이트 될 때마다. 그리고 블루레이로. 여러 번을 본 '올드보이'였지만 10주년을 맞아 극장에서 다시 본 '올드보이'는 또 달랐다. 새삼스럽지만 확실히 좋은 영화란 세월이 흘러도 좋은, 각 시기에 따라 다른 의미와 감흥을 전하는 것이라는 걸 또 한 번 깨닫기도 했다.


영화가 끝난 후 박찬욱 감독님과 주성철 기자님이 함께 한 GV는 예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최근 화제가 된 유연석 씨의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까지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분의 GV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중화권 배우와 '올드보이'의 연관성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도 주성철 기자님 GV만의 특징이었고 ㅎ







10년 전 극장에서 혹은 다른 매체로 이미 '올드보이'를 인상 깊게 보았던 이들이라면, 10주년을 맞아 재 개봉한 '올드보이'를 극장에서 다시 관람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누군 가에게는 또 다른 영화가 되어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우리 집에 왜 왔니 (2009)
혐오스런 강혜정의 일생


일단 강혜정의 한 때 팬이었던 나로서도 (과거형이 쓰였던 이유는 후반부에 다시 얘기하자), 이 영화 <우리 집에 왜 왔니>는 큰 관심이 없었던 영화였다. 그런데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본 이들의 평은 '올해의 발견' 혹은 '예상과는 달랐던 독특한 영화' 라는 등 나 역시 예상했던 반응들은 아니었다. 이런 비슷한 의외의 반응들은 지난해 말, 다른 한국영화 한 편을 통해서 똑같이 발생했던 일이었는데 그 영화는 다름아닌 <과속 스캔들>이었다. 일단 <과속 스캔들>이 그 본질을 가늠하기 어려운 제목으로 판단력을 흐리게 했던 경우라면, <우리 집에 왜 왔니>는 제목 자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과속 스캔들>과 비슷하지만 이 보다 더 나은 제목이 쉽게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직접적이고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한 제목으로서 <과속 스캔들>과는 일단 평가를 달리해야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개인적으로는 <과속 스캔들>보다 <우리 집에 왜 왔니>가 훨씬 더 좋았으며, 내 취향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했던 강혜정이 돌아왔다는 점에서 반가웠던 작품이었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영화는 초반 줄거리를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놓고는, 조금 지나서 주요등장인물들을 등장시키고 나서는 극중 대사를 통해 '미저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대충의 분위기를 관객들에게 설명한다. 제목처럼 왜 이집에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수강(강혜정)은 병희(박희순)의 집에 어느날 갑자기 쳐들어와서는 병희를 묶고는 감금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저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길래 '아, 이 영화 미저리를 베이스로 하되 무언가 코믹하고 감성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영화는 아닐까?'했었지만, 베이스로 한 영화는 따로 있었다. 아마도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본 이들이라면 모두 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마츠코..>를 절로 떠올렸을 것이다. 만약 각본을 쓴 김지혜씨나 연출한 황수아 감독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물어보고 싶은데, 만약 이 이야기가 <마츠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쓰여진 시나리오와 영상이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 믿기 어려울 것 같다. 그냥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하기엔 부족할 정도로 의상부터 설정, 대사들까지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어 몹시도 흥미로웠다(앞서 이야기해두지만 흔히 생각하는 '표절'이라는 느낌이 강하지는 않았다. 단지 많은 인용이 있었다는 느낌이었고, 감독이나 각본을 쓴 이가 <마츠코...>를 보고는 나도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라는 생각에서 기초한 영화는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느낌이었다).

일단 비슷한 설정들을 보자면 가장 먼저 영화의 화자가 제 3자인 병희를 통해 전달되기도 하고 수강 스스로의 시점에서(내레이션) 진행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노숙자 차림을 한 수강의 코디(?)는 딱 봐도 후기 마츠코의 모습을 절로 떠올리게 하며, 왕따로 오해로 각각 일생을 험하게 살았다는 점도 유사하다. 특히 그 중에서 서울로 올라온 수강이 돈을 벌기 위해 사창가를 비롯해 각종 유흥주점에서 일하는 장면을 빠른 편집으로 처리한 것은, 마츠코에서도 음악과 함께 만날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영상 측면에서도 굉장히 감성적이고 색감이 진한 장면들을 여럿 보여주었는데, 물론 색감부분에서는 <마츠코..>의 경우가 훨씬 강렬하긴 했지만 분위기에서는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마츠코에게는 음악이 있었다는 점과 <우리 집에 왜 왔니>에는 납치 시퀀스가 가미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대사 측면에서 무려 '다녀왔습니다'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이는 일본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주 중요한 대사로서(일본 영화나 애니를 자주 본 이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이 '다녀왔습니다 (다다이마, ただいま)'라는 의미는 여러가지 함축적인 의미와 감정을 담고 있는 실로 강력한 대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영화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대사인데 이 영화에서는 분명 일본영화에서의 그것과 똑같은 기능으로 의미심장하게 사용되고 있다(마츠코에서 역시 이 대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정말로 여러가지 측면에서 일본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떠올릴 수 밖에는 없는 영화였는데, 이것이 불쾌하게 느껴질지 아니면 똑같이 흥미롭게 느껴질지는 개인의 취향차일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표절적인 측면보다는 또 한번 감성의 유니크한 면을 간지럼피는(내 스타일) 영화를 만난 듯해 반가웠고 즐거웠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에서 수강이 미끄러지듯 욕조 안으로 빠져드는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었는데, 아마 감독도 이 장면을 보고 나서는 너무 만족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욕조의 구조를 너무도 잘 이용한 베스트 장면 중 한 장면이듯)

평범하지 않고 독특한 캐릭터인 수강의 이야기만 있었다면 영화의 깊이가 조금 덜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병희의 이야기를 중반부에 배치해 두었다. 사고로 아내를 잃은 병희의 이야기를 수강의 이야기가 병희의 이야기와 점점 겹쳐질 때쯤 들려주게 되면서, 관객들은 점점 두 캐릭터에게 유사점을 발견하게 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특히 아내를 잃은 것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항상 뉴스에서나 나오는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일로 인한 것이었다는 점과(무장 탈영병과 후반부에 추가로 등장하는 아내와 탈영병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까지) 막을 수 있었다는 트라우마를 굉장히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들려주는 또 한 번의 '남의 이야기'에 좀 더 공감할 수 있기도 했다.

그리고 후반 부에(수강이 죽고 나서) '그랬었었구나'하며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전개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 부분은 굉장히 전형적인 전개방법으로서 그 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캐릭터를 말미에 가서야 비로서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밀려오는 감동을 느끼게 되는 부분인데, 역시나 캐릭터나 이야기 자체가 평범하지 않다보니 뻔하지 않고 감성적인 영상들과 감각들로 잘 표현해 내고 있는 듯 하다. 수강의 마지막 날을 상상하는 방식도, 병희가 편지를 뒤늦게 보고 이를 찾아가 상상하는 장면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인 '우리 집에 왜 왔니'를 직접적으로 등장시키는 부분은 살짝 낯뜨겁기도 했지만, 결국 감독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영화 초반 자신의 집에 난데없이 들어온 수강에게 병희는 계속 물어본다. '왜'하고. 나중에 수강은 앞으로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는 병희에게 역시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둘은 서로에 트라우마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둘은 쉽게 이 '왜'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지만(아니 하려하지 않지만), 결국 수강도 남은 병희도 이 물음에 답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사실은 '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것. '왜'라는 것은 스스로가 만든 일종의 장벽이며 무언가에서 보호받기 위해, 자기 합리화를 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장치라는 것을. 결국 굉장히 특별한 삶을, 사건을 겪게 되는 두 주인공이지만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서로에게 찾게 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역시 강혜정!)

영화가 후반부로 후반부로 갈 수록 머릿 속에 드는 한가지 생각이있었다. '아, 내가 좋아했던 그 강혜정이 돌아왔구나', '<나비> <올드보이> <연애의 목적>을 통해 한 때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였던 그녀가 다시 돌아왔구나'하는 생각이었다. 사실 어리석게도 그녀의 영화나 활동들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이유는 연기 자체가 아니라 바로 얼굴의 변화 때문이었는데, 이것은 실망이라기보다는 안타까움에 비롯된 것이긴 했었다. <우리 집에 왜 왔니>에서는 유난히 강혜정의 얼굴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완벽하지는 않지만 예전 좋아했던 그 소녀의 표정을 다시금 읽을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적어도 나에게는 '돌아온' 강혜정을 알리는 완벽한 영화이며, 다시금 강혜정을 배우로서 좋아하게 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참고로 남들은 다 은실이 좋아할 때 나는 은실이의 못된 언니로 나오는 강혜정을 더 좋아했으며, 팬까페라는 것까지 가입해본 거의 유일한 여배우였다).

박희순은 <세븐 데이즈>이후 주목을 받으며 여러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의 영화를 스크린에서 처음 만나는 터였다. 정재영과 겹치는 듯한 느낌도 있지만, 무언가 현실적이고 삶에 관한 공감을 일으키는데에는 탁월한 연기를 펼치는 것 같다. 그리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배우의 조합은 매우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뭐 뻔한 얘기지만 다른 배우가 했을 경우가 상상히 안갈 정도로.

<우리 집에 왜 왔니>는 분명 <과속스캔들>과는 다르게 엄청난 흥행성적을 거두거나 하긴 어려울 것 같다(이것은 악담이 아니다). 대중적 코드보다는 감성적인 코드가 영화를 둘러싸고 있으며, 영화적인 측면에서도 영상과 음악 측면에서 상당히 장르영화적인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올해의 발견이었다. 영화는 어차피 취향차. 이 영화는 확실히 내 취향이다.


1. 오프닝의 흐르는 음악을 딱 듣는 순간 정재형이 떠올랐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재형이 영화음악을 맡고 있더군요.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곡은 정재형 곡에 엄정화와 루시드폴이 노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 까메오 출연도 말그대로 갑작스러운 터라 재밌더군요. 분량도 적절하고. 조은지씨는 조금 놀랬음 ㅎ

3. 승리 얘기가 전혀 없는데, 일단 승리가 연기를 잘했다 못했다라기 보다는 비중 자체가 아역 배우에게 오히려 더 쏠려있기 때문에, 배우 이승현을 평가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불어 얘기하자면 제작에 YG엔터테인먼트가 참여했더군요.

4. '혐오스런 수강의 일생'이라고 해야 맞겠지요.

5. (주)어거스트의 창립작품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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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주)어거스트에 있습니다.







웰컴 투 동막골

내가 영화를 보기 전에 들었던 정보들을 나열해보면..

1. 히사이시 조의 음악 때문에 너무 미야자키 작품 스럽다
2. 강혜정이 간만에 쎄지 않은 약한 역할을 맡았다
3. 역시 간만에 보는 착한 영화다

등등

일단 개인적으로는 전체적으로 괜찮았던 영화다.
원작을 쓴 장진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웰컴 투 동막골은 장진이 영화화하기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신인 박광현 감독은 전혀 신인답지 않은 터치로
영화를 완성시켰다.

저 포스터만 보면 강혜정 주연에 정재영과 신하균이 삼각관계로 등장하는 마냥 서있지만,
사실 강혜정은 조연이요, 정재영과 신하균 투 톱이 이끄는 영화였다. (물론 본인의 말만따라
신인상을 노린다는 임하룡의 비중도 무시못할 듯 ㅋ)

내가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본 사람들에게 접해듣기로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좋긴 하나
너무 미야자키와의 조합에 익숙해져 있는터라, 영화를 보는 내내 미야자키 애니메이션 같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내 느낌은 조금 달랐다.

물론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지브리의 영상을 떠올리게 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보다도 영화의 장면장면 하나하나가 지브리의 그것을 더욱 닮아있었다.

후반부를 제외하면 자연속에 숨어있는 동막골의 설정이나 마을 사람들의 모습 또한
매우 닮아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동막골의 처음 소개하는 카메라 워크에서
나타난 모습은, 정말로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옮겨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극의 중간에 맷돼지를 사냥하는 장면은 근래 한국영화에서 봤던 장면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시퀀스였다 ㅋㅋ 특히 이건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에서도 없던 거라 더욱 재미있었다
극의 중간에 맷돼지를 사냥하는 장면은 근래 한국영화에서 봤던 장면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시퀀스였다 ㅋㅋ 특히 이건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에서도 없던 거라 더욱 재미있었다

사실 박광현 감독이 미야자키 열혈 팬이라는 사실을 미루어봤을때, 첫 작품으로서는
충분히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작품이 나온것 같다. 그래서 두 번째 작품이 더욱 기대되기도하다.
사실 이 동막골은 여러가지로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장진이라는 원작자가 있었고,
히사이시 조라는 음악 감독이 있었기 때문에, 감독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기에는 조금
부족한 작품이었던 것 같다.

사투리가 등장하는 한국영화는 매우 많은데,
사투리 자체로 웃음을 주면서도 저속하지 않게 그려내는건 그리 쉬운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막골은 강원도 사투리라는 특수한 소재를 튀지 않으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진짜 말그대로 폭력과 잔인함, 미스테리가 난무하는 한국영화계에서
간만에 숨 돌릴만한 착한 영화가 될 것 같다.

//// 극장에 보니 예전 JSA나 친구를 보러 갔을 때와 비슷하게 중장년 층의 관람객 수가
       제법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친구나 실미도 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영화지만,
       비슷한 흥행을 거둘지는 미지수..아니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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