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영화 (Enlightenment Film, 2009)
과연, 계몽이 필요한 한국사와 현실


제목부터 확실한 이 영화, 박동훈 감독의 '계몽영화'는 (한편으론 '계몽영화'라는 제목이 영화를 보기에 앞서 미리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면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처럼 확실한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3대에 걸친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상처와 청산해야할 과거, 그리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되물림 되고 있는 폭력 (넓은 의미의 폭력)에 대한 '계몽'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처음 예상했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 아니 스케일의 작품이었다. 독립 영화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3대를 그리더라도 시대극일 거라는 예상은 거의 하지 못했었는데, '계몽영화'는 한 가족을 이어주고 있는 3대의 이야기를 각각 1931년, 1965년, 1983년으로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좋고 나쁘고의 의미를 떠나서 독립영화 같지 않은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다. 


 3767 Film. All rights reserved


사실 영화의 내용적인 면을 논하기 전에 이 영화가 '계몽영화'의 영화적 완성도 (촬영 및 스케일)에 조금 놀랐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시대극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무리가 없으며, 로케이션이나 공간의 활용 측면에서 보아도 일반적인 상업영화와 비교했을 때 크게 부족함이 없는 결과물이었다. 이런 영화적 완성도는 영화가 의도하고 있는 이른바 '계몽하려는' 의도와 맞물려 관객들로 하여금 좀 더 쉽게 극중 인물들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실제로 아직 독립영화에 익숙치 않은 많은 관객들은 독립영화 혹은 저예산 영화, 그 '날 것'의 느낌 때문에 그 속에 담고 있는 메시지를 발견하기도 전에 실증내고 마는 경우를 자주 보았던 점을 떠올려 봤을 때, '계몽영화'의 이런 자연스러움은 시네필을 넘어서 더 많은 일반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767 Film. All rights reserved


3대의 이야기를 통해 감독이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일단 이 가족의 이야기를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한국 사회 전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질적인 병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의 과거, 그리고 반대로 고통 속에 살아야 했던 친일파 후손의 현실 (물론 대부분 친일파의 후손들은 이런 후회보다는 아직까지도 일제 강점기 마냥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이 대한민국 현실의 가장 이상한 부분일 것이다), 가부장적인 가족 구조와 살아남아야만 했던 변화의 시대 속에서 '나'를 돌볼 수 없었던 존재들에 대한 연민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들이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 혹은 그렇게 변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깍듯하고 아내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섬기던 정학송이 왜 그렇게 폭력적이고 술에 쩔어사는 남자가 되었는지, 딸 태선 역시 그런 아버지의 말도 잘 따르며 순종적이었던 아이가 종교부분에 있어서는 왜 그렇게 극도로 기독교를 민감하게 거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이 영화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물론 몇 가지 단서들을 통해 유추해볼 부분은 분명히 있지만, 그 과정을 누락하다시피 한 것은 분명 시간 상의 의미보다는 다른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3767 Film. All rights reserved


즉 이런 '과정'을 갖지 못했던 이들의 현실, 이런 '과정'을 갖을 여유를 갖지 못했던 불쌍한 역사의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별 것 아닌 학교 단체 사진에서도 '왜 중앙에 서지 않았냐!'라며 딸에게 화를 내는 아버지나, 매번 상사 욕을 입에 붙이고 살면서도 때마다 음식에 돈뭉치를 함께 전달할 수 밖에는 없었던 씁쓸한 현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에도 하느님을 욕하는 이야기에 오랜 세월 한 번도 대항할 수 없었던 힘 없는 노모의 모습, 그리고 사회에서 엘리트로 취급받지 못하고 아내가 바람 피는 것을 알면서도 화조차 내지 못하는 불쌍한 가장의 현실 등, 중간에 잘못된 것을 바로 잡거나 반론을 제기할 만한 시간은 있었음에도 그 속에서 '여유'나 '용기'는 가져보지 못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이 무엇이던가. 바로 '계몽영화'다. 즉, 한국사의 암울한 과거 그리고 현재까지도 세습되어 전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단순히 연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몽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이 인물들을 바라보는 방식은 연민보다는 오히려 냉소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나?'라고 물으며, 현실의 관객들에게는 '저렇게 그냥 두면 안되는 거였다'라고 계몽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3767 Film. All rights reserved


'계몽영화'를 보고 나오며 좋았던 건, 이 영화가 영화 속에서 모든 것을 이루려 한 작품이 아니라 관객들이 느끼는 순간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어서였다. 아마도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극중 '태선' 같이 관객들이 좀 더 감정이입을 하기 쉬운 인물을 완전히 계몽시켜, 영화 안에서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하는 것까지 마무리 지었을지 모르지만, '계몽영화'에서는 태선 역시 3대의 한 인물로서 이 굴레 안에 머물러 있다. 마지막에 가서 가족의 역사가 서려있는 서교동 집을 둘러보며 3대의 이야기를 훑으며 결국에는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이 시퀀스를 통해, 무언가 변화의 조짐을 느낄 수 있지만 이것이 영화에 마지막인 것처럼 영화는 바로 여기서 멈춘다. 그리고는 관객에게 그 다음을 이어가길 바라고 있다. 


1. 개인적으로는 참 오랜만 아니 거의 처음으로 느껴보는 '계몽'이라는 단어의 긍정적인 느낌인 것 같네요.
2. 코믹한 부분들도 많았습니다. 큭큭 하고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이요.
3. 카라얀의 실황을 녹음하는 장면이나 실크로드 녹화하는 장면들을 보니, 영화 속과 같은 시대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 좋아하는 TV프로나 라디오 프로를 연달아 가며 녹음하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더블데크가 있어서 테잎으로 녹음할 때 테입을 갈아끼우는 시간의 여백을 만들지 않기 위해, 양 쪽에 테입을 넣어놓고 한쪽이 다되면 다른 쪽을 눌러 바로 연결해 녹음하곤 했었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3767 Film 에 있습니다.





사실 명절 연휴기간이라고 해서 영화를 더보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쨋든 명절연휴라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기간내에 상영하는 영화들이 기대되곤 하는데, 매번 너무 '추석연휴'를 노린 듯한 영화들만 많았던 것에 비해 올해 추석연휴 극장가는 그런 작품들 외에도 볼만한 소소한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 미리 계획을 세워야 했다. 본격적인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2주 후를 비롯해 다음 주 개봉작들까지 아울러서, 연휴 기간 볼만한 작품들을 정리해보았다. 평소 같으면 이렇게 목록을 정리해놓고 반 이상을 못보게 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번 연휴기간에는 꼭 모두 극장에서 볼 수 있기를! (순서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1. 계몽영화
감독 - 박동훈
출연 - 정승길, 김지인, 오우정
개봉일 - 2010.09.16

'전쟁영화'를 연출했던 박동훈 감독의 신작. 매번 좋은 다큐영화들을 소개했던 '인디스토리'의 시작이기도 하다. 최근 훈훈함이 주가 되었던 가족영화들과는 달리, '우리 시대의 미완성 가족교향곡'이라는 설명처럼 한국근대사를 배경으로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화두를 던져주지 않을까 기대되는 작품. 




2. 땅의 여자
감독 - 권우정
출연 - 소희주, 강선희, 변은주
개봉일 - 2010.09.09

오늘 개봉한 '땅의 여자' 역시 인디씬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작품이다. 다양한 국제 영화제에서의 수상 소식은 재쳐두고서라도, 이 '진짜' 이야기가 과연 어떤 울림을 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잔뜩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몇년 전 귀농을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터라, 그녀들의 농촌 라이프가 여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언가 풀냄새, 땀냄새 나는 인생의 맛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3. 노다메 칸타빌레 Vol.1
감독 - 타케우치 히데키
출연 - 우에노 쥬리, 타마키 히로시
개봉일 - 2010.09.09

우에노 쥬리의 왕팬이자 '노다메'의 팬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작품! 사실 일본에서는 이미 지난해 12월 개봉했던 작품이라 국내 개봉은 결국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했었는데, 소규모이지만 국내 극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TV시리즈는 원작인 만화의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렸었음으로, TV시리즈를 재미있게 본 이들에게만 추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이미 TV시리즈를 통해 이 황당하고 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연출과 유치한 설정들에 적응되지 않은 이들이라면 아마도 유치함게 못이겨 극장을 빠져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노다 메구미와 치아키 센빠이에 흠뻑 빠진 이들이라면 적은 상영관도 큰 걸림돌은 되지 않을듯.




4. 마루 밑 아리에티
감독 -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개봉일 - 2010.09.09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른바 '빠'로서 이번 연휴의 최대 기대작은 볼 것도 없이 '마루 밑 아리에티'라 할 수 있겠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감독하지 않은 '게드 전기'의 실패 이후, 다시 선보인 지브리의 비 하야오 작품으로서 더 큰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적으로 실망을 표현했던 '게드 전기'와는 달리 만족을 표현한 작품이라니 일단 안심이 된다. 지브리의 작품은 그냥 마음을 비우고 보면 된다. 물론 그 속에는 여전히 무거운 화두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런 것 다 무시하고 봐도 좋은 것이 바로 지브리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는 그야말로 '초' 기대작이다.




5. 시라노; 연애 조작단
감독 - 김현석
출연 -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 박신혜
개봉일 - 2010.09.16

오랜만에 극장에서 볼 만한 국내 로맨스 영화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나의 여신으로 떠오른 '이민정' 양의 출연 만으로도 영화의 완성도 따위는 볼 것도 없이 기대되는 작품이긴 하지만, '스카우트' 'YMCA야구단' 등을 만들었던 김현석 감독의 작품이니 완성도 역시 기대해봐도 좋겠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로맨스를 즐길 생각을 하니 두근거리는 동시에 (이민정 양을 스크린을 통해 본다는 기대도 동시에!), 과연 이번 작품에서도 소문난 야구광인 김현석 감독의 야구사랑이 드러난 장면이 있을지도 체크 포인트.




6. 엉클 분미
감독 -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출연 - 사크다 카에부아디
개봉일 - 2010.09.16

최근 시네필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작품이 있다면 단연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의 신작 '엉클 분미'였다. 이미 이 작품을 본 이들의 평들을 보면 하나같이 그냥 '좋다' 수준이 아니라, '압도적'인 느낌이 들 정돈데, 다행히도 오래 기다릴 필요없이 극장에서 빠르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 아니더라도, 좀 더 제대로 아피찻퐁 감독의 세계를 스크린에서 만나보고 싶었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과연 어떤 영화, 어떤 감흥을 선사할까. '아리에티'와는 또 다른 설레임이다.




7. 옥희의 영화
감독 - 홍상수
출연 - 정유미, 이선균, 문성근
개봉일 - 2010.09.16

홍상수. 홍상수의 영화다. 언제부턴가 홍상수 영화라는 것은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영화와는 또 다른 절대적인 느낌을 주게 되었는데, 그의 신작 '옥희의 영화' 역시 이미 제작 소식이 들려왔을 때 부터 몹시 기대가 되었던 작품이었다. 정유미, 이선균 두 배우는 포스터 속 모습 만으로도 이미 홍상수 월드에 완벽 적응한 듯해 이들의 능청스런 연기가 기대되는 가운데, 오랜만에 홍상수 월드로 돌아온 문성근의 연기도 주목할 부분이다. '옥희의 영화'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좋은 것만 보자던 홍상수 감독의 의지가 이 영화에서는 또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된다.


이번 추석연휴도 개인적으로는 극장을 매일 들락날락하게 될 것 같다. 
이 영화들로 인해 더 풍성한 추석연휴가 되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각 영화사 에 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