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월드, 그 솔직함을 넘어선 순수의 세계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서는 언제부턴가 그 만의 확실한 세계관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초기작들에서도 그 만의 독특한 영화적 시각은 느낄 수 있었지만 최근 작에 오면서 그의 작품은 분명 방향성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고, 더 구체화되고 노골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런 홍상수를 조금씩 느끼게 된 것은 '극장전'과 '해변의 여인'부터였고, 2008년 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와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좀 더 노골적이 되었다. 홍상수 감독의 최근작을 인상 깊게 본 이들이라면 모두들 알 수 있겠지만 이 '노골적'이라는 표현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느낌의 단어로도 그 의미를 희석시키기 어려울 정도의 순수함 그 자체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할 수 있겠다.





홍상수 영화를 논하면서 많은 이들이 '속물 근성'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나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보았을 때는 이런 논리에 동의 했었으나 '하하하'를 보고 나서는 이것이 단순히 '그래, 너도 나도 모두 속물이다'라는 것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는 두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남자는 각각 통영에 다녀온 추억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각각 자신의 이야기를 술 한잔에 실어 나누기로 한다 (나중에 들었던 생각이지만 이 설정은 은근히 무협지 속의 인물들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렇게 두 남자는 서로 만이 겹쳐지지 않은 두 가지 이야기(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이 두 남자의 이야기가 서로 겹쳐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관객들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왕성옥이 이 일부분을 알게 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부분이다).




'하하하'를 보면서 시종일관 느껴졌던 주제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대화들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을 그의 전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작품은 아는 것에 대한 물음과 주장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각각의 인물들의 대화를 살펴보면 단 한 시퀀스도 이 주제를 다루지 않은 대화가 없을 정도로,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는 서로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무엇이 안다는 것인가에 대한 선문답으로 이뤄져 있다. 영화는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이 뭘 알아요?' '이걸 안다고 할 수 있어?'

이런 '알고 모르는 문제'는 영화가 택하고 있는 구조로 더 선명히 드러난다. 영화는 두 남자의 하나인 동시에 두 개인 이야기로 진행되는데, 각자는 서로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관객에게 그대로 드러나듯 이들의 이야기는, 그러니까 이들이 각자 말하는 인물들과 관계의 이야기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거짓이 많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이들의 이야기는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나의 인물을 두고 각자가 보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대상을 두고도 말하는 화자에 따라 청자의 입장에서 '좋은 어머니'도 되었다가, '돈 많은 식당 주인'도 되는 것, '동굴 같은 곳'에서 '희망을 꿈꾸게 되는 집'도 되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알고 모름의 방식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리 어려운 비유가 아니다. 그리고 특별한 방식도 아니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속내를 겉보다도 더욱 진솔하게 드러낸다.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을 이야기하며 '속물 근성'을 들먹이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미칠듯한 진솔함 때문일 텐데, 사실 이런 솔직함을 그냥 '찌질함'으로 얼버무리기에는 정말 부족한 부분이 많다. '하하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정확히 얘기하자면 찌질 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솔직한 것뿐이다. 뭐랄까 우리가 일상에서 마음 속으로만 하는 이야기들을 모두들 겉으로 거침없이 이야기할 뿐이다. 이것은 분명 찌질 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평소 우리가 얼마나 가식적인 관계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지나치리 싶을 정도의 솔직함은 (그런데 개인적으로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이런 솔직함 자체를 '지나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영화가 의도하는 점이라는 것이다), 묘하게도 극 중 인물과 나를 완전히 겹치도록 만든다. 겉으로는 웃을지언정 그 안에서 나를 완벽하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처럼 솔직하게 '저건 완전히 나다'라고 말하지는 못해도, 속으로는 '맞아, 나도 저런 적 있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상하기만 한 듯한 영화에서 나를 보는 완벽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홍상수 영화가 갖는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라 하겠다.




이런 홍상수 월드에 대한 순수함의 경이로움은 영화를 보고 막 극장을 나왔을 때보다, 하루 지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막걸리 한 잔 하며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더 깊어졌고, DVD리뷰를 위해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서 더 나아가게 되었다. 다시 만난 이들의 대화들은 그냥 단편적인 영화적 에피소드로 보아도 소소한 재미가 있는 것이지만, 좀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덜 성숙한 어린아이 같은 결핍이 가져온 순수함이 아니라, 어른이 범접하기 어려운 궁극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대사인 '전 좋은 것만 봅니다'라는 대사는 들으면 들을수록 그냥 넘길 수가 없는 대사가 될 수 밖에는 없다. 마치 코엔 형제의 최근작 '시리어스 맨'에서 그저 웃고 넘길 뻔했지만 작품을 가로지르는 가장 중요한 대사였던 '주차장을 봐'라는 어린 랍비의 말처럼, '전 좋은 것만 봅니다'라는 극중 김상경이 연기한 조문경의 한 마디는, '와, 홍상수 감독이 자신의 세계관을 이 정도까지 밀어붙이려 하는구나'라는 홍상수의 작가적 야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하하하'에 대한 감회를 짧은 글 하나로 정리하기에는 너무 부족함이 따른다. 진짜 홍상수 월드 속 인물들처럼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은 모두 주당이다) 대낮부터 나 한잔 너 한잔하며 이야기 꽃을 피워줘야 어느 정도 정리해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런 면에서 지난 씨네21에 실렸던 홍상수와 정성일의 엄청난 분량의 대담은 이 작품과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었다. 여기서 홍상수는 줌(Zoom)을 일종의 영화적 리듬으로 사용한다는 인터뷰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확실히 '하하하'에 사용된 줌에서는 전작들보다 더한 리듬 감이 느껴진다. 그냥 인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정도가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리듬을 살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음악 역시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홍상수 영화에 이렇게 음악이 많이 사용되었던가 싶을 정도다.




배우들의 연기는 또 어떤 가. 이제는 다른 설명 필요 없이 그냥 '홍상수'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짙게 풍기는 김상경은 말할 것도 없고(주책 떠는 그의 연기가 단순히 '주책'으로만 보이지 않고 진정이 느껴졌던 것은 오롯이 그의 몫이라 하겠다), 전작에 이어 또 다시 출연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유준상의 발견은 계속 되고 있으며(영화를 보고나니 흡사 한석규의 말투를 연상케 하는 그의 말투를 자꾸 따라 하게 된다), 예지원, 윤여정, 김강우, 김민선의 연기들도 잘 녹아 들고 있다. 앞선 두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없지만, 김강우나 김민선의 경우는 홍상수 월드에 들어오게 되면서 연기자로서 발견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가장 평범한 동시에 가장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던 문소리의 연기가 무엇보다 압권이었다. 개인적으로 문소리가 출연한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였다. ('오아시스' 같은 작품 보다 더!)


DVD Menu






DVD Review

누가 '하하하'같은 작품을 보면서 화질과 음질을 첫 번째 고려요소로 선택하겠냐 만은, 이런 작은 영화치고는 나쁘지 않은 화질과 5.1채널의 멀티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일단 화질 같은 경우는 보통 블루레이 시대의 DVD타이틀이라는 점과 영화가 화질의 우수성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가끔씩은 아쉬움이 솟아나는 작품들이 많았던 것을 떠올려 봤을 때, '하하하' DVD의 화질은 비교적 준수한 편이다. 물론 이 준수하다는 표현에는 극장에서 보았던 원본 소스와 비교했을 때 큰 손실이 없었다 라는 의미로 쓰였다.





사운드 역시 2.0채널만 지원했어도 전혀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을 작품이었지만, 5.1채널을 지원하게 되어 앞서 이야기했던 음악을 통한 영화의 리듬감을 좀 더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부가영상으로는 2분 분량의 예고편과 30초 짜리 스팟 만을 제공한다. 물론 이 작품의 제작 여건 상 DVD부가영상을 위한 소스들의 기획이나 제작이 쉽지 않았던 것도 이해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른 감독의 촬영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홍상수 감독 작품의 촬영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긴장감과 편안함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클립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떠올려보니 우리가 본 영화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총평]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는 최근 개봉했던 '옥희의 영화'와 함께 우리 시대의 가장 주목할 만한 씨네 아티스트 중 한명인 작가 홍상수의 세계관을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있었던 대담한 작품이었다. 특히나 한 번 볼 때보단 두 번 보았을 때, 그리고 문득 궁금해져 다시 보았을 때 또 다른 의미를 새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뜻 깊은 소장이 될 수 있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 주의 : 본 컨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재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하하하 (夏夏夏, 2010)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철학적 놀이


(참고로 이 글은 영화를 보고 나서 하루를 훌쩍 넘기고도 그 여파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막걸리 한 잔을 건하게 걸치고 나서 작성하는 글 임을 밝힌다. 본래 술을 마시고 쓰는 글은 매번 위험하지만, 이번 '하하하' 리뷰 만큼은 이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랬다. 일단 이것저것 복잡한 것을 떠나서 홍상수 감독의 열번째 장편 영화 '하하하'는 나에게 있어 술을 부르는 영화였다. 참고로 그의 전작 '잘알지도 못하면서'는 그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라는 슬픈 국환 때문에 차마 글을 남기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나름 술 한잔을 더해가며 글을 가져가게 되었다. 최근 15주년 기념 버전으로 발행된 '씨네 21'이 특별히 홍상수 에디션을 내어놓은 것도 그렇고, 일반 대중들에게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홍상수가 대세라고 할 정도다. 사실 나는 예전 홍상수 영화에서는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한 편이었다. 특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같은 작품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떠나서 별로 달갑지 않게까지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그랬던 홍상수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역시 '잘알지도 못하면서' 였다. 남들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 이전과 이후의 홍상수가 확연히 달라보일 만큼, 인상적인 변화였고 가볍지만 더욱 생각할 거리는 많아진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이전과는 다른 기대를 갖고 보게 된 '하하하'는 새로워진 홍상수 월드를 좀 더 견고하게 하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 전원사. All rights reserved


홍상수 영화를 논하면서 많은 이들이 '속물 근성'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나도 '잘알지도 못하면서'를 보았을 때는 이런 논리에 동의 했었으나 '하하하'를 보면서 이것이 단순히 '그래, 너도 나도 다 속물이다'라는 것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는 두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남자는 각각 통영에 다녀온 추억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각각 자신의 이야기를 술 한잔에 실어 나누기로 한다(나중에 들었던 생각이지만 이 설정은 은근히 무협지 속의 인물들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렇게 두 남자는 서로 만이 겹쳐지지 않은 두 가지 이야기(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이 두 남자의 이야기가 서로 겹쳐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관객들 뿐이다(영화의 마지막 왕성옥이 이 일부분을 알게 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부분이다). 

'하하하'를 보면서 시종일관 느껴졌던 주제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대화들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을 그의 전작 '잘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작품은 아는 것에 대한 물음과 주장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각각의 인물들의 대화를 살펴보면 단 한 시퀀스도 이 주제를 다루지 않은 대화가 없을 정도로,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는 서로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무엇이 안다는 것인가에 대한 선문답으로 이뤄져있다. 영화는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이 뭘 알아요?' '이걸 안다고 할 수 있어?'



ⓒ 전원사. All rights reserved


이런 '알고 모르는 문제'는 영화가 택하고 있는 구조로 더 선명히 드러난다. 영화는 두 남자의 하나이지만  두 개인 이야기로 진행되는데, 각자는 서로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관객에게 그대로 드러나듯 이들의 이야기는, 그러니까 이들이 각자 말하는 인물들과 관계의 이야기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거짓이 많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이들의 이야기는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나의 인물을 두고 각자가 보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대상을 두고도 말하는 화자에 따라 청자의 입장에서 '좋은 어머니'도 되었다가, '돈 많은 식당 주인'도 되는 것, '동굴 같은 곳'에서 '희망을 꿈꾸게 되는 집'도 되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알고 모름의 방식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리 어려운 비유가 아니다. 그리고 특별한 방식도 아니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속내를 겉보다도 더욱 진솔하게 드러낸다.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을 이야기하며 '속물'이내 뭐내 하는 것은 바로 이 미칠듯한 진솔함 때문일텐데, 사실 이런 솔직함을 그냥 '찌질함'으로 얼버무리기에는 정말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하하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정확히 얘기하자면 찌질한게 아니라 지극히 솔직한 것 뿐이다. 뭐랄까 우리가 일상에서 속으로만 하는 이야기들을 모두들 겉으로 거침없이 이야기할 뿐이다. 이것은 분명 찌질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지나치리 싶을 정도의 솔직함은 (그런데 개인적으로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이런 솔직함 자체를 '지나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영화가 의도하는 점이라는 것이다), 묘하게도 극 중 인물과 나를 완전히 겹치도록 만든다. 겉으로는 웃을 지언정 그 안에서 내가 완벽하게 보이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처럼 솔직하게 '저건 완전히 나다'라고 말하지는 못해도, 속으로는 '맞아, 나도 저런 적 있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상하기만 한 듯한 영화에서 나를 보는 완벽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홍상수 영화가 갖는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라 하겠다.



ⓒ 전원사. All rights reserved


사실 '하하하'에 대한 감회를 짧은 글 하나로 정리하기에는 너무 부족함이 따른다. 진짜 홍상수 월드 속 인물들처럼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은 모두 주당이다) 대낮부터 나 한잔 너 한잔하며 이야기 꽃을 피워줘야 어느 정도 정리해볼 수 있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어설프게 남아버린 글에서 더 본격적인 것으로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 다시 영화적인 이야기로 돌아오려 한다. 이번 씨네 21에 실린 홍상수와 정성일의 엄청난 대담을 보면(아직도 못 본 이들이 있다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지난 호를 반드시 소장해야 한다. 그 만큼 압도적인 컨텐츠가 실려있다), 홍상수는 줌을 사용하는 것이 일종의 리듬으로 사용한다고 했는데, 확실히 '하하하'에 사용된 줌에서는 리듬 감이 느껴진다. 그냥 인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정도가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리듬을 살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음악 역시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홍상수 영화에 이렇게 음악이 많이 사용되었던가 싶을 정도로, 많은 음악이 인식되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또 어떤가. 이제는 다른 설명 필요없이 그냥 '홍상수'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짙게 풍기는 김상경은 말할 것도 없고(주책 떠는 그의 연기가 단순히 '주책'으로만 보이지 않고 진정이 느껴졌던 것은 오롯이 그의 몫이라 하겠다), 전작에 이어 또 다시 출연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점점 만들어내고 있는 유준상의 발견은 계속 되고 있으며(영화를 보고나니 흡사 한석규의 말투를 연상케하는 그의 말투를 자꾸 따라하게 된다), 예지원, 윤여정, 김강우, 김민선의 연기들도 잘 녹아들고 있다. 앞선 두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없지만, 김강우나 김민선의 경우는 홍상수 월드에 들어오게 되면서 발견할 거리를 제공한 듯 하다. 이순신 장군 역의 김영호도 인상적이었으며(리뷰를 하다보니 이 시퀀스에 대해서 아무 언급도 하지 못했는데, 작정하고 쓴다면 이 시퀀스만 가지고도 한 편의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연기를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던 문소리의 연기가 무엇보다 압권이었다. 개인적으로 문소리가 출연한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그녀의 연기였던 것 같다('오아시스' 보다도 말이다).


ⓒ 전원사. All rights reserved


구성이 없는 듯 했던 전작들과는 다르게 완벽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번 영화 '하하하'. '잘알지도 못하면서'와 마찬가지로 인물 하나하나의 대사를 곱씹어 볼 수록 그 속에서 나와 너를 발견하게 되는 아름다운 대사들. 이제는 홍상수 월드에 완벽히 적응한 페르소나들과 이제막 세계에 입성한 신예들의 신선함이 돋보이는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 홍상수. 내게 있어 '하하하'는 참 재밌고, 참 의미있고, 참 깊은 영화였다.


1. 리뷰를 그저 '하하하하하하하하'라고 써보고도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2.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 영화 속 배경이 된 통영에 다녀온지라 살짝 남다르더군요. 나폴리 모텔에서 잘 뻔도 했었구요.
3. 서두에 밝혔듯이 술을 부르는 이 영화 때문에, 아래의 그림 처럼 순대에 막걸리 한잔하고 쓰는 글입니다. 영화 속 처럼 '막걸리에 도토리묵', '순대에 소주'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영화 분위기가 나더군요 ㅎ




4. 재미있어요. 또 보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전원사에 있습니다.





2003.10.31

이 당시에도 파격적이었던 제목 --;;

그 당시엔 잘 몰랐는데 지금은 잘 지었다와 창피하다가 주기적으로 교차하는듯 --;


'농촌 스릴러'와 '전원일기 세븐' 가운데서 메인 제목을 상당히 고민했던 기억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