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브 원 (The Brave One, 2007)

사실 이 영화는 예정에 없던 영화였다.
<패닉 룸>에서부터 살짝 실망하기 시작했고 <플라이트 플랜>까지 개인적으로
모두 그럭저럭으로 본 터라, 이번 조디 포스터의 새 영화 역시 그냥 그렇게 넘길 작정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친구가 보러가자고 하는 바람에(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그냥 봐주는 식으로
갔었는데, 영화 시작전에 팜플렛에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감독이 닐 조단이었던것.
가끔 포스터나 배우, 여기서 나오는 분위기만 가지고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브레이브 원>의 경우가 바로 이 경우다.
포스터를 보니, 또 그런 영화구나 싶어서 감독이 누구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던것.
그리고 조디 포스터외에 테렌스 하워드가 나온다는 것도 몰랐던 것.
닐 조단 감독에, 조디 포스터와 테렌스 하워드라면 사실 충분히 볼 만한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이 영화는 닐 조단 감독이 9.11 이후 미국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그리고도 바로 뉴욕.

그곳에서 어쩌면 가장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여성의 삶이
전혀 우연한 어떤 사고로 인해(구체적으로 공격을 당함으로 인해), 어떻게 변해가고
변해가는 것을 넘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는(Stranger) 이야기.

사실 이런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는 많이 있어왔으나 닐 조단 감독의 <브레이브 원>은
9.11이후 미국사회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 있어 매우 중요한 논점을 갖고 있다.

(스포일러 있음)

처음에는 우연한 사고로 공격을 당한 피해자의 입장이었고,
그 다음에는 공격에 의한 정당방위로서의 살인이었으며,
그 다음에는 아예 폭력을 행하는 주체가 되어 자신이 당한 것처럼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이들에게 이른바 '정의'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모든것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을 해치고 남자친구를 살해한 이들에게,
하지만 이미 너무 변해버려서 그 원인이 무엇이었던건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폭력적이 되어버린 주인공은
복수의 총구를 거두게 된다.

여기까지만 비교해봐도, 9.11이후 미국의 움직임과 그대로 닮아있다.
처음 테러를 당한 미국은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긴 했지만(물론 테러의 원인은 제쳐두고서) 나중엔 있지도 않은 이유를 들어가며 공격적으로만 변해버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영화의 반전격이라 할 수 있는 결말이 가장 냉소적인 의도를 담고 있는데,
9.11과 생각않고 따져본다면,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마지막에 가서는 총을 거워 결국은 법대로 처리한다는
결말이 아니라, 시원(?)하게 악을 무찔러서 괜찮은 엔딩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물론 이렇게만 따져봐도 충분히 논란이 있긴 할테지만)

9.11이후 미국사회와 비교해 본다면 이 결말은 아주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해한 범인을 죽이지 않고 총을 거둔 주인공에게 형사인 머서는 죽이려면
합법적인 총으로 죽이라며 자신의 총을 건네고, 나중에 자신에게도 총상을 만들게 해 그녀의 존재를
즉 그녀가 그동안 저질러왔던 행동들을 전부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다.

닐 조단의 이런 논조는,
즉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들이 행하는 전쟁과도 같은 나쁜 일들을 결국 모두 합법화하고 정당화함으로써
사건의 본질을 덮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일랜드의 이 정치적인 노련한 감독은 얼핏 보기에 범죄 스릴러 같은 이 영화속에
자신이 바라본 9.11 이후 미국사회의 대한 생각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두 배우의 깊은 심리연기를 볼 수 있었던 명장면)

조디 포스터는 기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연기를 펼친 듯 하다.
사실 그 동안에는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에 실망을 많이 했었고,
이번 영화는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느낌을 받았을런지는 모르겠다 --;

하지만 개인적으로 출연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몇분 전 밖에는 않되지만 --) 기대했던
테렌스 하워드는 역시 무겁고, 어쩌면 주인공만큼이나 큰 고민을 겪고 있는 캐릭터인 머서를
멋지게 연기한 것 같다. 특히 자칫 조디 포스터가 맡은 에리카의 1인 이야기로 독점될 수 있었던
영화의 분위기를 중간부터 두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가게 한 데에는 그의 깊은 연기가 큰 몫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냥 놓쳐버릴 수도 있었는데,
꼭 다시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는 아니지만,
놓쳤으면 분명히 아쉬워는 했을 작품이었다.

닐 조단!
역시 그 이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인듯!
심리적인 긴장감과 그 안에 담긴 주제 모두 만족스러웠던 작품!


 

 
글 / ashitaka


플루토에서 아침을 (Breakfast On Pluto, 2005)
 
분명 이 영화는 같은 연령대의 남자 배우들 가운데 자신만의 색깔있는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킬리언 머피가 주연이라는 점에서 가장 먼저 관심이 갔던 영화였다.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텅빈 거리에서 홀로 방황하던 <28일후...>에서 처음 만났던
킬리언 머피는(예전엔 '실리언'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나 이젠 완전히 '킬리언'으로 굳어진듯),
니콜 키드먼, 주드 로, 르네 젤위거가 함께한 <콜드 마운틴>에서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러닝 타임에 비해 깊은 인상을 주었으며(확실히 이것이 그의 가장 큰 장점이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역시, 스칼렛 요한슨의 고풍스런 자태에 압도당하지 않은 것은
그의 파란 눈빛이 유일했으며, 어쩌면 그와 가장 안어울릴 것 같았던
<배트맨 비긴즈>의 크레인 박사 역할도 그가 맡았기 때문에 단순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그 점에서 놀란 감독이 그를 선택했던 것 같다).



최근 킬리언 머피라는 이름이 그래도 가장 많이 알려졌던 것은
거장 켄 로치 감독에게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안겨주었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연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지닌 캐릭터를 연기하여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는데, 이 영화 <플루토에서의 아침을>에서는
그야말로 킬리언 머피 없이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만들어내버렸다.
 
감독인 닐 조단도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킬리언 머피를 일찍이 주연으로 점찍고
그가 아니면 안된다고 강력하게 영화사에게 요청했을 정도.
 
이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이라면, 킬리언 머피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쉽게 느낄 수 있겠지만, 킬리언 머피에게는 이전에 이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캐릭터들에서도
왠지 미묘한 느낌, 많은 색깔이 어지럽게 혼합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플루토에서의 아침>은 이 같이 킬리언 머피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를 극대화 시킨, 그 역시도 지금까지 지나온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어울렸던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했을 땐, 앞서서 주렁주렁 언급한 것처럼
단순히 킬리언 머피라는 배우 때문이었다. 킬리언 머피의 여장한 모습이 전혀 처음부터 이상하지 않았기에
영화가 더욱 기대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이 영화는 결코 단순한 영화가 아니었다.
쉽게 말하면 그저 남자로 태어나 여자로 살고 싶은 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뿐' 일 것이라고
짐작했었는데, 역시 <크라잉 게임>, <푸주간 소년>을 만들었던 닐 조단 감독은,
이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녹여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일랜드와 영국.
이 영화에서는 이 배경이 되는 이야기와 패트릭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공존하고 있는데,
이것을 그리는 방법이 매우 탁월하다.



우리가 이미 여러 영화나 매체들을 통해 알고 있는 이들의 문제들.
당시의 대규모 소요와 IRA, 신교와 구교 간의 다툼 등,
아일랜드의 정치적인 문제들을 배경으로 그리고 있는데,
그렇다고 절대 정치적이지는 않다. 이 영화는 혼란한 사회를 배경으로, 더 복잡한 배경 속에 태어난
한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주인공 패트릭은 자신의 국적, 성적 정체성 등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겪어내지만,
그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 아버지와 어머니, 친구들, 새롭게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그는 신경쓰지 않는 주변의 현실들로 그를 평가하고 혹은 힘들게 한다.
 
패트릭은 얼핏 보면 이 같은 현실에 대해서 완전히 멀어진 딴 세상에 살고 있는 듯 하지만,
'항상 웃는 이유는, 웃지 않으면 울 것 같아서'라고 말하는 것에 비춰봤을 때,
이 영화로서 닐 조단 감독은 현실과 사회의 문제가 한 개인의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으며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를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자신만의 행복한 세계에 살고 있는 패트릭의 입장에서
그리는 듯 싶다가도, 사회적인 현실의 문제를 곳곳에 대두시키면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현실은 달라요'라는 메시지를 은근히 노출하고 있다.
 
닐 조단 감독은 이 두가지의 세상을(결국은 같은 세상인) 그리는 데에 있어
마치 동화 같은 36개의 챕터 형식과 당시를 주름 잡았던 80년대의 팝 음악을 쉴세없이
삽입시키며, 시종일관 유쾌한 리듬감을 심어주고 있다.
 
특히 팝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T-Rex의 Children of the Revolution, Morris Albert의 Feelings, Harry Nilsson의 'You're Breakin' My Heart'
Patti Page 등등등,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내내
쉴세 없이 이어지는 팝 음악만으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이 장면은 정말 요 근래 본 장면중에 최고로 재미있었다 ㅋ)
 
당시의 현실은 심각하고 우울하지만, 패트릭의 상상 속의 세계에서는
유쾌한 유머들이 넘쳐나는데, 극한 상황에서도 그(그녀)가 꿈꾸는 모습은
헛 웃음이 아니라 진정한 웃음과 쓴 웃음을 동시에 짓게 한다.
 
영화가 진행될 수록 살짝 놀라게 된 것은 킬리언 머피외에 등장하는
경력있는 배우들 때문이었는데, 본인의 이름으로 등장한 리암 니슨을 비롯하여,
나오는 영화마다 가벼운 연기는 보여주지 않는 브렌단 글리슨이나
닐 조단 감독의 전작 <크라잉 게임>에 출연했었고, 최근에는 <브이 포 벤데타>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스티븐 레아의 모습도 갑작스러워 더욱 반가웠다.
 
이들 외에도 아주 유명하진 않지만,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이라면
이름을 잘 몰라도 얼굴은 얼핏 기억할 만한 좋은 배우들이 여럿 등장해
각 챕터를 더욱 빛내주고 있다.
(마치 챕터마다 치고 빠지는 형식이 연극을 보는 듯 했다)



시종일관 유쾌한 리듬을 유지하는 터라 <플루토에서의 아침을>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미소를 지을 수 있지만,
극 중 패트릭이 그토록 만나고 싶던 유령숙녀를 만나게 되었음에도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 못했을 때, 결국은 자신의 동생 벌이되는 유령숙녀의 아들에게
예쁜 딸 나으라고 엄마에게 전해달라고 했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쓴 웃음을 넘어서 눈물을 짓게 한다.
 
그만큼 따지고 보면 이 영화는 참으로 슬픈 영화이기도 하다.



웃지 않으면 울 것 같다는 패트릭의 말은 어쩌면, 이 영화를 아우르고 있는
가장 슬픈 대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제목인 '플루토에서의 아침을'이 비밀이 밝혀졌을 때,
오토바이 뒤에 현자를 태우고, 단지 길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4차원의 경계를 달린다고,
최종 목적은 플루토(명왕성)에서 아침을 먹는 것이라고 했을 때,
 
이 말들이 코미디로 느껴지지 않고 진지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킬리언 머피의 열연.
닐 조단 감독의 훌륭한 연출력.
역설을 통해 다양한 주제의 많은 생각을 진지하게 해볼 수 있었던
기대 이상이었던 영화 <플루토에서의 아침을>.
 
나도 언제쯤 플루토에서 아침을 할 수 있을까,
 기대해본다.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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