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시간 : 블루레이 리뷰 (Two Days, One Night : blu-ray review)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에 관한 딜레마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그리고 명확하다. 직장으로의 복직을 앞둔 산드라 (마리옹 꼬띠아르)는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게 되는데, 회사에서 자신의 복귀와 보너스를 두고 투표가 진행되었고 동료들이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것. 하지만 산드라는 반장의 강요에 의해 투표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제보를 받고는 사장에게 재투표에 대한 허락을 받는다. 그리고 이틀 동안 16명의 동료들을 일일히 찾아가 보너스 대신 자신에게 투표해 줄 것을 부탁한다. 줄거리는 명확하지만 이 이틀 간의 시간 속에 담겨 진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산드라는 물론 이 동료들이 처한 딜레마는 인간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산드라가 동료들을 찾아가 설득도 부탁도 아닌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은 최근 본 영화 속 장면들 가운데 가장 현실적이고 또한 집중하게 되는 장면이었으며, 그 상황 속 인물들의 대화 내용 역시 수긍할 수 밖에는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서의 수긍이란 영화의 방향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산드라의 입장은 물론, 그녀가 만나는 회사의 직원들의 입장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는 없는, 틀린 것이 아닌 다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르덴 형제는 우울증을 겪고 있지만 이제는 건강하게 일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역시나 당장 생계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 산드라의 입장과 1천 유로라는 현실적인 보너스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직원들의 입장을 모두 정당하게 대변한다. 이런 이야기를 다룰 때 영화가 흔히 '영화적'이게 되는 지점은, 주인공에게만 타당성을 부여해서 반대에 서는 이들의 주장은 모두 설득력을 잃도록 묘사하거나 일종의 악당으로 묘사하게 되는 부분인데, '내일을 위한 시간'에는 이런 양분론이 없다. 보너스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녀의 복귀를 찬성하는 이들 가운데도 그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고, 반대로 보너스를 받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16명의 상황은 모두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어느 한 사람의 입장도 이기적이라고 쉽게 지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산드라와 직원들의 대화 가운데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나에게 투표해줄 수 있어요?'라고 묻는 산드라에게 직원들이 하나 같이 처음 묻는 질문이 바로 '누가 찬성하기로 했어요?' '몇 명이나 찬성표를 던진 데요?'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각자의 입장이라는 점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직원들 대부분이 양심과의 갈등을 겪는 가운데 다른 직원들, 즉 사회라는 구조의 보이지 않는 구속 혹은 힘(꼭 나쁜 의미만은 아닌)을 크게 염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문제가 명확한 정답이 없어 보인다는 바탕 아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크게 모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결정을 재고하려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한 편으론 이 같은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을 보며 '어쩌면 저렇게들 다 이기적이지'라고 쉽게 되 물을 수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 속에는 그러한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으로 남편의 모습에서 힘들어 하는 아내에게 직원들을 만나 설득하기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영화가 이 딜레마를 풀어가는 방식은 극도로 현실적이고 객관적이다.






이 영화는 산드라가 동료들을 하나 하나 만나고 표를 얻거나 못 얻게 되는 과정을 진행하며 관객에게 각자의 가치관을 비춰보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아마 다른 영화 같았으면 철저하게 영화가 만들어 낸 정서적 아우라를 든든히 얻으며 관객과 함께 이야기를 펼쳐나갔을 주인공 산드라는, 앞서 언급했듯이 철저히 객관적인 영화적 조건들 속에서 외롭게, 혹은 그래서 더 처연하게 이 짧고 고된 여정을 이어간다 (산드라가 왜 우울증을 겪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은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제시한 방식에 따라 이 영화를 읽어보자면, '착한 것은 좋지만, 착하지 않은 것이 곧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것에 기인해 상황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산드라의 복직을 찬성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복직 대신에 보너스를 택한 것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극중 산드라의 대사를 통해 이 부분은 여러 번 설명되는데, 이 상황은 산드라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어쩌면 회사가 선택한 것도 아닌, 그냥 상황이 벌어진 것에 가깝다. 다르덴 형제는 이 상황을 아주 특별한 사건이 아닌 자본주의 사회에서 쉽게 벌어질 수 있는 회사와 노동자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있는 영화다. 

 

당신은 저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보너스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산드라가 아니더라도 곧 누가 실직할 수도 있는 일이고, 그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저 같이 일하는 직원 이상의 관계도 아닌 한 사람을 위해 내 가정의 경제적 보탬과 직장의 안정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내일을 위한 시간'이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보다 조금 더 위대한 점이라면, 이 문제를 단순히 '용기'의 문제로 치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용기에 관한 것으로 풀어냈다면 영화는 오히려 맥이 빠질 정도로 허무하고 단적인 영화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결말을 쉽게 예상하기 어려웠던 이 이야기를 영화가 어떻게 마무리 할까 몹시 궁금했었는데, 마지막 산드라가 남편에게 전화 통화로 이야기하는 말을 듣고 나니 다르덴 형제의 생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다르덴 형제는 이 정답이 없는 딜레마에 자신들만의 답을 내어 놓았다. 그리고 그 답은 관객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할까?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할까?



Blu-ray : Plain Archive Collection

 

매번 소장하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플레인 타이틀답게 이번 '내일을 위한 시간' 블루레이 역시 안 밖으로 꽉 찬 구성과 알찬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아트웍과 컬러를 달리 한 A타입과 B타입으로 나눠 출시한 블루레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아웃케이스의 질감과 영화의 내용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소장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 잡는다.





▲ 위 쪽이 A타입, 아래가 B타입

 

 

플레인 블루레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성물인 소책자의 경우 이번에도 고심한 흔적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기존 소책자들과는 조금 달리 날개 커버 부착 형 중철 제본 소책자로 아웃케이스 내부에 수록했을 때의 사이즈를 고려하면서도 책자의 넘김의 편의와 보관을 신경 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소책자에서 또 마음에 들었던 점은 바로 종이의 질감인데, 인쇄 되었다는 느낌이 강한 빳빳한 느낌의 종이가 아닌 '소책자'라는 구성물의 오리지널리티가 바로 느껴질 정도의 질감이 마치 작은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전달했다. 

 

내용적으로는 현 LA영화비평가협회 부회장이자 영화/음악 평론가인 팀 그리어슨의 글과 김세윤 영화칼럼니스트의 마리옹 꼬띠아르의 관한 글, 그리고 씨네21에 수록되었던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통찰력 깊은 글도 만나볼 수 있어 유익하다. 여기에 다르덴 형제의 인터뷰 내용을 담은 글과 매거진M과 맥스무비를 통해 진행되었던 감독과의 인터뷰 대화 내용도 수록되었다.





다른 구성물로는 고화질 아트 카드 및 미니사이즈 트레이딩 카드가 수록되었는데 이를 수록하고 있는 고급 봉투가 이번에도 눈길을 끈다. 플레인이 이번 블루레이의 컨셉 컬러로 선택한 핑크 컬러가 돋보이는 이 봉투에는 지난 번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비즈 왁스 봉인 되어 있는데, 지극히 소장하는 입장에서 꼭 그대로 살리고 싶었던 이 봉인 문장을 더 쉽게(?) 살릴 수 있도록, 기존 과는 다르게 구부려도 잘 깨지지 않고 고무처럼 구부러지는 형태의 유연형 비즈 왁스를 사용했다고 하니, 전혀 예상 못했던 업그레이드다.






Blu-ray : Video & Audio

 

1.85:1 의 화면비와 1080P의 풀HD를 수록한 블루레이의 화질은 다르덴 형제가 담아낸 놀라운 자연광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이런 드라마 장르의 블루레이 화질을 이야기할 때 자주 하는 이야기처럼 화질의 좋고 나쁨이 최고 우선 순위의 요소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내일을 위한 시간' 블루레이의 화질은 큰 흠집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좋고, 극장에서 관람했을 때와는 또 다르게 분명 우수한 화질이 감상에 도움이 된다.








앞서 언급한 자연광의 표현력은 이 같은 블루레이 화질의 우수함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인데, 밝기에 따라 미묘한 차이로 발견할 수 있는 그늘진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묘사는 단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화질이며, 산드라가 내내 입고 있는 분홍색 민소매 셔츠의 색감이나 한 여름 낮 시간의 좋은 날씨의 느낌도 블루레이로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선명함은 이 같은 드라마 장르에서도 분명 화질의 우수함이 도움이 된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준다.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도 크게 흠잡을 부분은 없다. 다만 사운드 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화려함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대사 전달은 선명하고 (잘 알다시피 이 영화의 9할은 대화 시퀀스다) 다른 사운드들도 감상에 크게 부족함이 없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이전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 블루레이 타이틀을 리뷰 하면서 로컬 음성해설 트랙 수록에 대한 칭찬을 한 적이 있는데, 이번 '내일을 위한 시간'에도 플레인 버전에만 특별히 로컬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다. 이번 음성해설에는 김혜리 씨네21편집위원과 최근 '베테랑'으로 130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 감독인 류승완 감독이 참여하고 있다. 기존 씨네21 지면이나 이동진 평론가와 함께 한 팟캐스트 등을 접했던 이들이라면 김혜리 기자의 팬들도 많을 텐데, 김혜리 기자만의 섬세한 분석과 더불어 이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다르덴 형제의 작품 세계 전반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과 평가들을 들려주고 있어 러닝 타임 내내 빈틈 없이 즐길 수 있는 편이다.




PA013 '내일을 위한 시간' 로컬 코멘터리 프리뷰 from PLAIN ARCHIVE on Vimeo.



아마 처음 류승완 감독이 '내일을 위한 시간'의 음성해설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을 텐데, 그가 액션 영화 감독으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평소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들을 즐기는 것은 물론, 다르덴 형제의 영화 역시 팬을 넘어서 존경하는 감독이었기에 이번 음성해설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의 감독으로서의 시선은 김혜리 기자와는 또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관객이나 평론가 입장에서는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시선으로 바라 본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대한 소개는 흥미롭고 신선했다. 영화 전체의 러닝타임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이 참여한 음성해설을 통해 영화를 관람하는 것도 꼭 추천하고 싶다.





부가영상으로는 전체적으로 인터뷰 영상과 예고편이 수록되었는데 첫 번째로 만나 볼 '다르덴 형제와의 대화'에서는 약 14분 분량으로 감독의 입을 통해 이 작품에 대한 집약적인 내용을 전해들을 수 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언제나 영화를 보고 나면 무언가를 말하고 싶게 만드는 동시에, 감독은 과연 어떤 의도와 메시지를 담으려 했을까가 듣고 싶어지는데 이 부가영상은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는 편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를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은 10년 전의 일이었으며, 그 당시에는 마리옹 꼬띠아르를 고려하지 않았으나 나중에 다시 제작하게 되었을 때 자크 오디아르의 <러스트 앤 본> 출연 당시 본 적이 있는 그녀를 고려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다르덴 형제는 <러스트 앤 본>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마리옹 꼬띠아르와의 작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모두와 동일한 조건으로 촬영에 임해야 한다는 조건에서는 그들의 영화만큼이나 제작 방식에 있어서도 노동자 중심의 성향을 읽을 수 있었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리허설 방식에 대해서도 살짝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이 감독과의 대화 영상이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특별히 좋았던 건 다르덴 형제의 영화인 만큼 질문의 수준도 뻔한 신변잡기나 에피소드 중심이 아닌 영화적으로 의미 있는 질문들이었다는 점이다. 플랑 세캉스 기법을 선택하게 된 이유나 연출 방식에 대한 철학을 끌어낼 수 있는 질문들은 여러 모로 유익했다.





감독과의 대화와 동일한 형식으로 진행되는 '마리옹 꼬띠아르와의 대화' 부가영상은 그녀 스스로도 기대하지 않았던 다르덴 형제 영화의 출연 소식에 대한 소감으로부터 시작된다. 평소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특별히 동경하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캐스팅이 그들의 필모그래피에 특별한 이벤트가 되기 보다는, 이미 익숙한 다르덴 형제의 영화 이길 바랬는데 시나리오를 읽고 그녀가 동경하던 그들의 영화임을 알고는 무척이나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외에 산드라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준비했던 점들이나 다르덴 형제 영화 특유의 리허설 작업에 대한 경험 등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인터뷰 내내 진심으로 다르덴 형제와 함께 작업한 것에 대해 아직도 무척이나 행복해 하고 있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참고로 이 부가영상에는 2014년 7월 파리에서 진행된 별도의 인터뷰 내용도 함께 수록되었다.





'파브리지오 롱지온과의 대화'에서는 남편 역할을 연기한 파브리지오 롱지온과의 대화 영상도 만나볼 수 있는데,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여러 번 출연한 배우답게 감독과의 만남과 그들의 작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가 연기했던 다르덴 형제의 다른 영화 속 캐릭터들과 이번 영화의 캐릭터와의 비교에 관한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예고편'에서는 이 작품 ‘내일을 위한 시간’과 마리옹 꼬띠아르의 주연작이자 플레인의 전작인 ‘러스트 앤 본’ 그리고 최근작으로 역시 마리옹 꼬띠아르의 출연작인 ‘이민자’의 예고편이 수록되었다. 참고로 ‘이민자’ 역시 플레인 아카이브를 통해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총평] 마리옹 꼬띠아르가 주연을 맡은 다르덴 형제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고민하게 되는 딜레마에 대한 극도의 현실적인 질문이자, 그 과정과 결말을 통해 관객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는 의미 깊은 작품이었다. 플레인을 통해 출시 된 블루레이는 이 버전을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음성해설 트랙과, 블루레이는 안 봐도 책장에 하나 꽂아 두고만 싶은 매력적인 디자인과 구성물로, 이번에도 또 소장하고픈 최상급의 제품이라 부르기에 손색 없는 타이틀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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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 (Deux jours, une nuit, Two Days, One Night, 2014)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다르덴 형제의 신작 '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그리고 명확하다. 직장으로의 복직을 앞둔 산드라 (마리옹 꼬띠아르)는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게 되는데, 회사에서 자신의 복귀와 보너스를 두고 투표가 진행되었고 동료들이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것. 하지만 산드라는 반장의 강요에 의해 투표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제보를 받고는 사장에게 재투표에 대한 허락을 받는다. 그리고 이틀 동안 16명의 동료들을 일일히 찾아가 보너스 대신 자신에게 투표해 줄 것을 부탁한다.

줄거리는 명확하지만 이 이틀 간의 시간 속에 담겨진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명확한 답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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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가 동료들을 찾아가 설득도 부탁도 아닌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은 최근 본 영화 속 장면들 가운데 가장 현실적이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장면이었다. 여기서의 수긍이란 영화의 방향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산드라의 입장은 물론, 그녀가 만나는 회사의 직원들의 입장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는 없는 명확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르덴 형제는 우울증을 겪고 있지만 이제는 건강하게 일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역시나 당장 생계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 산드라의 입장과 1천 유로라는 보너스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직원들의 입장을 모두 정당하게 대변한다. 이런 이야기를 다룰 때 영화가 흔히 '영화적'이게 되는 지점은, 주인공에게만 타당성을 부여해서 반대에 서는 이들의 주장은 모두 설득력을 잃게 되는 부분인데, '내일을 위한 시간'에는 이런 양분론이 없다. 보너스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녀의 복귀를 찬성하는 이들 가운데도 그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고, 반대로 보너스를 받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16명의 상황은 모두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어느 한 사람의 입장도 이기적이라고 쉽게 지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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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와 직원들의 대화 가운데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나에게 투표해줄 수 있어요?'라고 묻는 산드라에게 직원들이 하나 같이 처음 묻는 질문이 바로 '누가 찬성하기로 했어요?' '몇 명이나 찬성표를 던진데요?'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각자의 입장이라는 점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직원들 대부분이 양심과의 갈등을 겪는 가운데 다른 직원들, 즉 사회라는 구조의 보이지 않는 구속 혹은 힘(꼭 나쁜 의미만은 아닌)을 크게 염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문제가 명확한 정답이 없어 보인다는 바탕 아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크게 모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결정을 재고하려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한 편으론 이 같은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을 보며 '어쩌면 저렇게들 다 이기적이지'라고 쉽게 되 물을 수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 속에는 그러한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으로 힘들어 하는 아내에게 직원들을 만나 설득하기를 반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남편의 이러한 성향이 나와는 가장 거리가 있는 부분이라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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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면서 평소 생각하던 가치관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는 '착한 것은 좋지만, 착하지 않은 것이 곧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평소 갖고 있었다.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 보자면, 산드라의 복직을 찬성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복직 대신에 보너스를 택한 것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극 중 산드라의 대사를 통해 이 부분은 여러 번 설명되는데, 이 상황은 산드라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어쩌면 회사가 선택한 것도 아닌, 그냥 상황이 벌어진 것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해도 누구 하나를 탓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있는 영화다. 당신은 저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보너스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산드라가 아니더라도 곧 누가 실직할 수도 있는 일이고, 그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저 같이 일하는 직원 이상의 관계도 아닌 한 사람을 위해 내 가정의 경제적 보탬과 직장의 안정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난 다르덴 형제가 이 문제를 단순히 '용기'의 문제로 치환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 문제를 용기에 관한 것으로 풀어냈다면 영화는 너무 흑백 논리에 가까운 단적인 영화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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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화가 어떻게 마무리 될까도 궁금했었는데, 마지막 산드라가 남편에게 전화 통화로 이야기하는 말을 들어보니 다르덴 형제의 생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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