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우리는 감정 매트릭스에 산다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야 하는 호텔이 있다. 이 호텔에서는 약 45일의 유예기간 동안 호텔에서 머물며 자신의 짝을 찾아야 하고, 혼자보다 짝이 있는 것이 얼마나 더 좋은 것인지 (이를테면 혼자 식사하다가는 목에 무언가 걸려 바로 사망할 수 있지만, 커플이라면 등을 두드려줘 살아날 수 있다든지)를 열심히 교육하고, 기간 중 사냥을 나가 외톨이 사냥에 성공하면 1명 당 1일 씩 유예기간을 늘려주기도 한다. 또한 기간 내에 짝을 찾게 되면 역시 약 4주간의 시간을 주고 진짜 커플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갖는다.


콜린 파렐, 레이첼 와이즈, 레아 세이두, 벤 위쇼, 존 C.라일리 등을 만나볼 수 있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랍스터'는 현대 사회에 대한 거대한 풍자이자 단순한 블랙 코미디 이상의 절제됨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는 설정 등 일종의 판타지 성격을 갖고 있는 이 영화는, 철저하게 이 시스템과 영화적 설정에 충실함을 통해 더 큰 메시지를 전한다.



ⓒ (주)영화사 오원. All rights reserved


'더 랍스터'의 캐릭터들에게서는 거의 감정이 발견되지 않는다.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되지만 다들 절대 동물이 되지 않을꺼야 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 기간 내에 성공하지 못하면 어떤 동물이 될지를 더 고민한다. 꼭 커플이 되고자 하는 이들조차 감정적 요인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마치 일종의 테스트에서 낙오되지 않겠다는 정도의 의욕 만이 느껴질 뿐이다. 극 중 벤 위쇼가 연기한 캐릭터가 그런 점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의 목적은 진정한 짝을 찾겠다는 것 보다는 유예기간 동안 짝을 찾고 다시 4주간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만 탈출할 수 있는 거대한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더 철저하고 정반대로 감정적으로 절제되어 있다.


콜린 파렐이 연기한 데이비드 역시 이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짝을 찾는 것에 성공하지만 결국 호텔을 탈출해 다른 세계에 속하게 되는데, 이 세계는 호텔과는 정반대의 세상이다. 레아 세이두가 연기한 캐릭터가 대장으로 존재하는 이 시스템 밖의 또 다른 시스템 사회는 오히려 커플을 증오하는 세상이다. 철저하게 혼자만이 의미 있다고 여기며 커플이 되고자 이른바 수작을 부리면 스스로가 판 무덤에 묻어 버리곤 한다. 데이비드는 여기서 만난 여자 (레이첼 와이즈)에게 사랑을 느끼고 이 곳 마저 떠나려고 한다. 보통 억압된 시스템에 관한 영화에서 그 시스템의 불합리함을 느낀 주인공 (혹은 안드로이드)이 각성하여 그 시스템을 탈출하는 이야기를 담는 경우는 많은데, '더 랍스터'는 이들과는 전혀 다르다. 바로 주인공의 각성이 없다. 데이비드는 이 시스템들에서 모두 탈출하고자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불합리함을 느꼈다거나 업악되어 있던 감정이 살아났다거나 하는 각성의 과정이 없다. 다시 말해 각성한 듯한 행동을 하지만 이미 시스템에 억압 되어 익숙해진 이들에겐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비슷한 설정의 영화들에 등장했던 어떤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보다도 이 영화의 인물들은 감정이 절제되어 있다.


(다른 단락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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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엔딩 장면은 더 의미 심장하다. 결국 모두에게서 탈출하고자 한 데이비드는 이 과정 속에서 탈출 계획을 알게 된 대장이 장님을 만들어 버린 그녀 (레이첼 와이즈)와 함께 도시로 탈출하는 것에 성공하지만, 결국 그가 결심한 것은 자신 역시 장님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영화는 데이비드가 결국 자신의 눈을 찔렀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장면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거의 영화 내내 처음으로 데이비드가 감정을 조금이나마 드러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그것이 두려움이든 다른 혼란이든 간에 자신을 눈을 찌르려는 것을 망설인다. 결론적으로 그가 어떤 행동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이것은 감독이 이 감정이라곤 모두 거세 된 이야기 속에 조금이나마 남겨두고자 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희망적이지는 않다. 영화의 엔딩은 오히려 데이비드가 스스로 장님이 되었을 확률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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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더 랍스터'는 개개인의 감정마저 강요 받고, 더 나아가 그 강요조차 당연하다고 여기고 어떻게든 그 시스템에 충실하고자 하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아주 차갑게, 감정 한 톨 없이 그려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배경이 되는 호텔이나 도시, 그 길에 있는 갈대숲이나 외톨이들이 모여있는 숲속의 풍경은 아름다운 이미지들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만약 커플이 되지 못했다면 무슨 동물을 택했을까. 랍스터는 아닐 것 같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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