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DVD로 보면서, '이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면 진짜 멋있겠다'라고 생각하며 아쉬워했었는데, 다행히 그런 기회가 생겼네요. 몇달 전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데이비드 린 회고전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소식만으로도 몹시 흥분스러웠는데, 드디어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이번 상영회에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물론, <닥터 지바고> <콰이강의 다리> <밀회> <올리버 트위스트> 등 총 13편의 작품을 상영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상영시간이 시간인지라 평일 저녁에는 거의 잡혀있지 않고 주말에 한 번씩은 다 잡혀있는데, 이 주말 기회를 놓치지 말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아...두근거리네요.



데이비드 린 회고전 스케쥴 링크
http://www.cinematheque.seoul.kr/rgboard/addon.php?file=programdb.php&md=read&no=320








컴퓨터 그래픽으로도 느낄 수 없었던 웅장한 스케일과 영화사에 기록될 만한 수많은 명장면을 보유하였고, 예전 영화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명배우들이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출연해 열연을 펼치는 영화. 그것은 바로 데이비드 린 감독의 걸작 ‘아라비아의 로렌스’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걸작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걸작이다. 먼저 감독과 배우들이 이름들은 가히 가공할만하다. 최근에는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이 그저 명불허전(名不虛傳)인 경우가 많지만, [아라비아의 로렌스]에게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먼저 감독인 데이비드 린은 예전 영화 팬들이라면 너무나도 잘 아는 감독이자,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를 여럿 만든 거장이다. 이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비롯하여, [닥터 지바고] [콰이강의 다리] [인도로 가는 길] [여정] [밀회] [위대한 유산]등 모두가 다 고전영화로서 오래 사랑받고 영화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들이다. 이 중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닥터 지바고] [콰이강의 다리]와 더불어 데이비드 린 감독의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1962년에 개봉한 작품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놀랍고도 거대한 영상의 스케일과 웅장하고 감동적인 스코어 일 것이다. 사실 최근 범람(?)하는 컴퓨터 그래픽에 익숙해진 필자로서도 ‘과연 저 당시에 어떻게 저런 엄청난 스케일의 영상을 담아낼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CG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사실적이고 풍부한 질감의 자연의 위대함과 웅장함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 [아리비아의 로렌스]는 70mm에 담은 이 같은 영상만으로도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임에 분명하다.



또한 사막의 모습을 가장 사실적이고 아름답게 그린 영화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사막에서 동이 터오는 장면을 실제 해가 뜨기 시작하여 다 떠오를 때까지 실제 그대로의 러닝 타임을 실은 것과 원거리에서 촬영한 사막의 광대한 모습은, 흡사 네셔널 지오그라피에나 나올만한 장면들로 다큐멘터리나 아이맥스 영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굉장한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영화사에 가장 인상적인 등장 장면이라는 오마 샤리프의 등장 장면은, 아마도 관객들보다 영화감독들이 더 부러워하고 감탄할 만한 장면이 아닌가 싶다.[닥터 지바고]에서도 감동적인 스코어를 만들었던 모리스 쟈르의 음악은(물론 이 영화가 지바고 보다 먼저 만들어진 작품이긴 하나), 웅장한 영상의 스케일과 맞물려 역시 큰 스케일 의 스트링으로 영화적 감동을 한층 더하고 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출연한 배우들은 그 세대가 아닌 사람들이라도, 영화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만한 이름들이 무더기로 등장해 소이 ‘압박’이 심하다. 로렌스 역의 피터 오툴을 비롯해, 알리 역의 오마 샤리프, 파이잘 왕자 역의 알렉 기네스, 아우다 아부 타이 역의 안소니 퀸. 이 외에도 잭 호킨스, 안소니 콰일 등 인기가 아니라 연기로 승부하는 ‘명배우’들이 전부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황제]에서의 모습이 인상 깊었던 피터 오툴은 주인공 로렌스 역을 맡아 그야말로 열연을 펼쳤다. 로렌스란 인물 자체가 그다지 평범한 인물은 아닌지라, 또한 실존 인물인지라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정말 훌륭한 연기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오마 샤리프. 그해 아카데미의 남우조연상 수상이 말해 주듯 이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오마 샤리프는 이 영화로 인해 단 번에 명배우란 수식어를 얻게 되었다. 감독인 데이비드 린은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오마 샤리프를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닥터 지바고]에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기도 한다. 당시 데이비드 린 감독은 로렌스 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인 알리 역 캐스팅에 상당히 고심했다고 했는데, 진짜 아랍 사람처럼 생긴 배우들을 찾던 중 오마 샤리프가 눈에 띄었다고 한다(개인적으로는 지바고의 오마 샤리프가 먼저 인지라 이 같은 이미지의 변화를 순차적으로 느끼긴 힘들지만, 정상대로 로렌스를 먼저 보고 지바고를 보았다면 아마도 로렌스의 알리의 이미지가 쉽게 지워지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훗날 사람들이 오마 샤리프하면 [닥터 지바고]를 떠올리는 걸 보면, 지바고에서의 연기가 또한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실감하게 해준다). 파이잘 왕자 역의 알렉 기네스는 역시 개인적으로는 [스타워즈]의 ‘오비완’으로 더 기억되는 배우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도 차분함과 중후함으로 스토리의 한 축을 훌륭히 써내려갔다. 그리고 우리에게 [나바론 요새] []등의 영화로 잘 알려진 안소니 퀸이 있다. 극 중 아우다 아부 타이는 마치 안소니 퀸을 위해 탄생한 역할이라 해도 좋을 만큼 그에게 적역이었다고 생각된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영국 장교 T.E 로렌스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만큼, 그의 일대기를 사실적이면서도 또한 영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영화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일생은 참으로 파란만장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처음에는 진정으로 아랍 민족의 통일과 자주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영화의 후반부를 보면 영국군의 정책, 터키 군에게 당한 치욕적 사건, 아랍 부족 간의 끊임없는 분쟁으로 인해 로렌스 자신 역시 회의를 느끼고, 초심의 본질은 상실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실존인물임으로 역사적이나 정치적 평가는 삼가도록 하겠다). 어쨌든....파란만장한 삶과 힘든 인생을 보낸 인물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이 같이 결국 영국에게도 아랍에게도 배신자가 되어버린 로렌스라는 인물에 대해 영화의 초점을 맞추었고, 다른 흥행 요소가 될 수 있는 액션이나 로맨스는 제외하였다(액션 씬은 가끔 등장하나 로맨스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에는 대사가 있는 여배우는 단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 완벽한 ‘남자 영화’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배우는 아우다 아부 타이의 진영에서 대화를 나눌 때 잠시 스쳐가는 것과 마지막 위생병으로 출연하는 엑스트라가 전부이다). 그리고 227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 때문에 중간에 휴식시간(Intermission)이 있는데, 이번 출시된 타이틀에는 이 휴식시간이 그대로 수록된 점도 이채롭다.



슈퍼비트 포맷의 타이틀은 궁극의 화질과 사운드를 구현해 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개봉한지 40년이 넘은 영화인지라 최근 개봉한 영화의 타이틀들과는 그 화질과 사운드를 같은 잣대에서 비교하기 어려운 태생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였을 때에는 만족할 만한 화질과 음질을 들려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1.85:1의 와이드 스크린 포맷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신 영화들과는 분명히 비교되는 선명도와 콘트라스트 비를 수록하였지만, 영화의 웅장한 스케일을 비교적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사운드는 화질보다는 조금 나은데,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는, 총소리나 폭발음 등은 조금 음장감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물론 이 같은 느낌은 최신 영화의 DTS와 비교하였을 때 이다), 스코어는 비교적 큰 손실(?)없이 전달되고 있다.



2003.10.15
글 / ASHITAKA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