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 (Gone Girl, 2014)

결국은 시선에 관한 영화



데이빗 핀처의 신작 '나를 찾아줘 (Gone Girl, 2014)'를 보았다. 핀처의 작품이라면 아무런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의 최근 작이었던 '소셜 네트워크'와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워낙 좋았고 완성도가 높았었기 때문에 이 작품 '나를 찾아줘 (원제를 따르자면 '사라진 소녀'가 적당하겠다)' 역시 아무런 주저 없이 선택하게 되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개봉 전 어디에선가 핀처의 최고 작품 중 하나인 '조디악 (Zodiac, 2007)'과 비교하는 평들이 있었기에 더더욱 큰 기대를 앉고 극장을 찾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를 찾아줘'는 '조디악'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으며, 스릴러 이기는 하지만 스릴러 본연의 재미와 요소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를 둘러싼 이야기와 시선에 더 관심이 많은, 조금은 다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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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아무런 정보를 얻지 않고 보는 편이 최적의 관람 방법입니다)


기본적인 시놉시스는 대략 이러하다. 어느 날 닉은 잠시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은 사고가 난 것처럼 어질러져 있고 아내 에이미는 사라져 버렸다. 아내 에이미를 찾기 위한 노력은 언론 등에 노출되며 더 큰 사건으로 퍼져 나가는 가운데, 닉과 에이미의 이야기는 플래시백을 통해 관객에게 조금씩 이 둘의 결혼 생활에 이미 균열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까지만 해도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핀처의 전작인 '조디악'과 스타일이 유사한, 그러니까 실종된 아내를 찾기 위한 아주 치밀하고 긴장간 넘치는 추리극 일 줄로만 알았다. 에이미가 처음 실종되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싶었지만 영화는 관객에게 단서를 던지고 이른바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실종 사건을 두고 주인공 닉 던 (벤 애플렉)을 바라보는 언론과 주변의 시선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영화는 어느 순간 부터 이 영화의 또 다른 부제라고 할 수 있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 맞아 떨어지는 놀라운 에이미 던 (어메이징 에이미)의 활약상(?)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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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는 노골적으로 실종 사건을 두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고 마녀사냥에 빠져드는 언론과 움직이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조금 연출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언급했다시피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한 편으론 정말로 사라진 소녀를 찾아가는 과정의 스릴러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이건 그런 영화가 아니야'라는 의도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더 노골적으로 표현해야 했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은 형식적으로 표현되는 주변과 언론의 반응들은 그야말로 어메이징 한 에이미라는 캐릭터에 비해 굉장히 단편적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물론 아주 단편적이고 형식적인 모습을 통해 더 바보스럽고 멍청해 보이도록 의도했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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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로자먼드 파이크가 연기한 에이미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벤 애플렉이 연기한 닉 던에 대해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겠다. 극 중 닉 던이라는 캐릭터는 참 묘한 느낌을 주는데, 치밀한 에이미와 같은 레벨로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다면 관객들로 하여금 '불쌍하다'라는 생각에 공감대 혹은 동정심이라도 얻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도 멋대로 인 부분이 있어서 100% 부합하지는 않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극 중 많은 장면에서 닉 던이라는 캐릭터와 벤 애플렉이라는 배우가 겹쳐지면서 의도치 않았던 (그 중 반은 의도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이 의도되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영화 전체가 이 사건을 약간의 조롱기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심각한 사건 속에서도 당사자들은 황당할 정도로 허술하고 초라한 행동을 하게 되는 인물들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으로, 아마 영화가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극 중 대중들처럼 오해했을 관객들에게 '자, 현실은 이럴 때도 있어. 쉽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선 안되'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튼 농반진반 이지만 이 작품은 벤 애플렉의 필모그래피에 있어서 연기력이 최고조로 발휘 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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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애플렉 이야길 하긴 했지만 누가 뭐래도 '나를 찾아줘'는 에이미 역을 연기한 로자먼드 파이크의 영화다. 이 영화는 그녀의 다양한 매력을 모두 담고 있는 영화로, 초반에는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은 물론 마치 중간계의 갈라드리엘을 연상시키는 신비스러운 보이스의 내레이션으로 묘한 매력을 선보이는 한 편, 후반부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의 모습은 극장 내 관객들이 모두 무서워서 치를 떨 정도로 소름 돋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나 역시도 올해를 통 틀어 무서워서(이것도 공포긴 공포다) 소름 돋기는 거의 처음이었다. 


로자먼드 파이크는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전국민이 알고 있는 캐릭터와 평생을 비교 당해야 했을 에이미의 스트레스와 (아마도)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내적으로는 망가지고 폭력적이고 정신이상의 행동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최적화 된 행동을 하게 되는 캐릭터를 '왜 저래?'보다는 '무섭다'가 먼저 느껴지도록 이끌어 냈다. 아마도 많은 영화 팬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게 될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무서우리 만큼 소름 돋았다.


데이빗 핀처의 '나를 찾아줘'는 핀처의 또 다른 재주를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는데, 막장 드라마에 익숙해진 국내 관객들에게는 극장판을 보는 듯한 느낌이 워낙 강해 그 이면의 디테일이 다 전달되지 않는게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하긴 그게 너무 강하긴 했다.



1. 정말로 '사랑과 전쟁' 극장판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2. 핀처는 최근 작품들에서 영화 음악을 특히 더 매력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번 작품 역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어요. 영화 음악에 의도가 많이 담겨있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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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11)
블루레이로서 완성되는 작품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개봉한 데이빗 핀처의 '용문신을 한 소녀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11)'는 이미 너무도 유명한 스웨덴 출신의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 동시에, 닐스 아르덴 오플레프 감독의 2009년 작 '용문신을 한 소녀'와 비교될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읽지 않았고 핀처의 작품을 먼저 보고 나중에 스웨덴 버전의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각각 표현하고자 했던 성격이 조금 달랐던 터라, 같으면서도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이 글에서는 데이빗 핀처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겠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닐스 아르덴 오플레프 감독의 스웨덴 버전과의 차이점 등에 대해서도 조금씩 덧붙여볼 생각이다.






처음 이 작품에 대한 제작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가장 반가웠던 점은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2010)' 이후 겨우 1년 만에 다시 핀처의 작품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소셜 네트워크'의 그 놀라운 완성도에 감탄하며 다시 한번 '핀처님'을 외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그 그리움의 기간이 무척 짧아졌다는 사실 만으로도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과연 데이빗 핀처를 바로 작품 활동으로 이끌게 된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겼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핀처는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 소설에서 그리고 닐스 아르덴 오플레프의 영화에서 본인이 가장 관심 있고 잘 하는 미스터리와 스릴러에 대한 가능성과 아쉬움을 각각 발견했던 것이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이러한 점은 스웨덴 버전의 영화를 보고 나면 좀 더 핀처의 작품이 지향한 바가 무엇인지 명확해 지기도 한다.






데이빗 핀처는 이 작품 속에서 자신이 계속 관심을 갖고 있던 인간의 변태적인 면과 사건을 풀어가는 미스터리 스릴러로서의 부분을 발견하고 이를 확장시켜 나갔다. 그의 전작 '조디악 (Zodiac, 2007)'에 비하면 그 농도가 덜 깊기는 하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스릴러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영화는 부패한 재벌을 폭로하는 기사를 쓰고 대형 소송에 휘말린 기자 '미카엘 (다니엘 크레이그)'과 정부의 보호감찰을 받는 아웃사이더 정보원 '리스베트 (루니 마라)'의 이야기로 각각 시작된다. 두 사람의 연결 고리는 영화 초반 공개되지만 실제로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기 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데이빗 핀처는 스웨덴 버전의 작품에 비해 리스베트와 미카엘의 비중을 거의 50:50에 가깝게 설정하였는데, 이는 앞서 이야기한 미스터리 스릴러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40년 전 사라진 방예르 가의 소녀 '하리에트'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푸는 것이 이야기에 중심에 놓이기 때문에, 여기에 처음부터 개입한 미카엘의 비중이 자연스럽게 더 부각될 수 밖에는 없었다 (다니엘 크레이그 라는 배우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작품이 하리에트와 관련된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에 좀 더 집중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스베트 라는 이 작품이 만들어 낸 최고의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리는 데에 부족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버전에 비해 리스베트의 이야기가 하리에트의 사건 자체에 얽매여 있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독립적이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서투르며 미카엘과 관계를 맺으며 조금씩 자신을 표현해 가는 그녀의 매력은 충분히 발휘되고 있다. 여기에는 루니 마라 라는 배우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스웨덴 버전의 경우도 리스베트 역할을 맡은 누미 라파스의 연기가 압도적이긴 했지만, 루니 마라는 누미 파라스와는 또 다른 자신 만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루니 마라는 누미 파라스의 연기를 보고 난 뒤였기 때문에 오히려 연기하는 데에 더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루니 마라가 '소셜 네트워크'의 첫 장면에서 주커버그의 여자친구 역할로 등장했던 배우 임을 생각한다면, 이번 캐릭터가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를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얘기로는 자신은 리스베트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고 하지만;).






데이빗 핀처의 다른 작품들이 모두 그러하듯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역시 상당히 세련된 영상과 색감 그리고 음악을 담아내고 있다. 핀처는 리스베트 라는 캐릭터, 미카엘과 리스베트 간의 건조한 관계 그리고 몇몇 장소가 만들어 내는 차가운 금속 느낌들을 통해 미스터리를 더욱 배가 시키는 영화 전체의 온도를 만들어 냈다. 실제로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다리 넘어 섬의 풍광은 스웨덴의 작품보다도 훨씬 더 깊은 추위를 담아내고 있으며 고립된 느낌마저 주고 있어, 이 사건을 파헤쳐 가는 미카엘 캐릭터를 좀 더 불안하고 외롭게 만들고 있다. 또한 트렌트 레즈너가 맡은 음악은 전작 '소셜 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작품 전체의 불안함을 심는 동시에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을 불어넣고 있다.




Blu-ray : Menu





Blu-ray : Picture Quality


데이빗 핀처의 작품은 항상 극장을 나오게 되면 바로 DVD나 Blu-ray 감상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그가 만들어 낸 감각적인 영상들을 좀 더 디테일 하게 확인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조디악' 이후부터는 그 영상미뿐만 아니라 단순한 화질 측면에서도 더 기대를 하게 되어 블루레이로 감상하기를 더더욱 고대하게 되었는데, '밀레니엄' 블루레이는 이 같은 높은 기대감을 충분히 만족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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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Epic 카메라와 Red One MX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은 매우 디테일 한 화질을 선보이고 있는데, 특히 밤 장면에서 조명을 활용한 인물 표현 시 탁월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몇몇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다니엘 크레이그에 거친 수염 질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며 루니 마라의 그 창백한 얼굴과 염색한 눈썹의 컬러도 분명히 구분되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블루레이의 화질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차가운 색감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어 영화 감상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낸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 역시 최신작 블루레이 타이틀로서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다. 트렌트 레즈너가 만든 그 특유의 '지글거리듯' 깔리는 사운드의 질감이 살아있으며, 클럽 장면에서는 확실한 사운드의 임팩트를 느낄 수 있다.






극중 리스베트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장면에서는 배기 음을 우퍼의 활용을 통해 체감할 수 있으며, 후반 부에 등장하는 추격 씬이나 그 이전 마르틴의 집에서 펼쳐지는 장면에서도 음장감을 보다 더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앞서 화질과 사운드를 설명하면서 데이빗 핀처의 작품은 블루레이가 특히 기대되는 작품이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사실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부가영상에 있다. 이미 데이빗 핀처의 작품들을 블루레이로 감상한 이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그가 연출한 작품들의 블루레이 타이틀에는, 마치 그의 작품 속 디테일과도 같은 열정과 디테일이 담긴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극장 개봉만큼이나 블루레이 출시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이번 '밀레니엄' 블루레이 역시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과 핀처의 음성해설이, 두 번째 디스크에는 본격적인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었는데, 정말 음성해설에 한국어 자막이 지원되었다면 10점 만점 짜리 Special Features 였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디테일하면 누구 못지 않은 핀처의 음성해설을 본편과 동일한 158분 동안 즐길 수 있었다면 정말 소중한 자료가 되었을 텐데, 한국어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것은 '밀레니엄' 블루레이 타이틀의 옥의 티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외에 몇 가지 소소한 부가영상 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한국어 자막을 지원하고 있다).







첫 번째 부가영상인 'Men Who Hate Women'에서는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원작 소설과 영화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본연의 메시지에 대한 다양하고 깊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데이빗 핀처는 이 작품을 어떤 방향으로 연출했는지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고, 다니엘 크레이그, 루니 마라, 스텔란 스카스가드 등 배우들은 자신들이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각본을 쓴 스티브 자일리안 같은 경우는 자신이 각색을 하면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었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약 6분 30초여의 짧은 분량이지만 다들 너무도 진지하고 성실하게 답변에 응하는 자세 덕분에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밀레니엄' 블루레이의 부가영상 속 인터뷰 영상들은 모두 검은 배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어 집중력 있게 인터뷰를 감상할 수 있다.






'Charaters' 에서는 영화 속 주요 캐릭터 3인인 리스베트와 미카엘 그리고 마르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만나볼 수 있는데, 각각 단순히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준이 아니라 캐스팅과 의상 컨셉 등은 물론 각 캐릭터마다 특화된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매우 유익했다. 첫 번째 리스베트에 대한 내용에서는 이를 연기한 루니 마라가 이 배역을 따내기 위해 노력한 상세한 과정들부터 리스베트를 연기하기 위해 변신을 하게 된 과정과 이후 이리나로 변신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들도 만나볼 수 있다. '소셜 네트워크'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을 보면서도 느꼈던 바이지만, 단순히 캐릭터를 완성된 대사들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감독과 각본가, 배우가 대사 하나하나를 골똘히 연구해 가며 완전히 캐릭터에 몰두하는 과정을 또 한 번 만나볼 수 있었다. 그래서 보통 다른 작품들의 촬영 현장 모습과는 달리 본편과 촬영 현장 장면이 크게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모두들 작품과 캐릭터에 흠뻑 빠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지만 부가영상을 보니 리스베트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데에는 배우와 감독 못지 않게 의상을 맡은 디자이너 트리쉬 썸머빌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의상에 대한 부가영상에서만 디자이너의 인터뷰가 수록된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밀레니엄'의 경우는 거의 모든 부가영상에서 트리쉬 썸머빌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을 정도다. 





그녀는 리스베트라는 캐릭터에게 있어 단순히 의상과 헤어 스타일을 결정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각 캐릭터의 성격과 영화 전반의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리스베트의 다양한 부가영상 가운데는 실제로 루니 마라가 촬영과 상관없이 의상이나 헤어가 화면에 어떻게 나오는가 등을 테스트 해보기 위해 지하철 등을 타고 카메라 테스트를 해본 테스트 영상도 만나볼 수 있었다. 






'미카엘'에 관한 캐릭터 부가영상에서는 역시 다니엘 크레이그의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만나볼 수 있으며, 의상 컨셉이나 촬영장에서 감독과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등이 수록되었다. '마르틴' 역시 스텔란 스카스가드의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를 기본으로 사이코패스에 관한 내용과 영화 후반 마르틴의 집에서 벌어지는 장면의 구성과 내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감독과 스텝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그냥 별 것 아닌 것처럼 스쳐 지나간 장면들이 실제로는 어떤 아이디어와 촬영 기법 등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마르틴의 장면을 중심으로 수록되었다.






그 다음 수록된 부가영상은 로케이션 촬영지에 관한 내용인데, 스웨덴과 헐리우드로 나뉘어 수록되었다. 이 작품은 미국 버전 임에도 인물들이나 배경이 그대로 스웨덴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데이빗 핀처가 얘기한 것처럼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는 바로 스웨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방예르 가문의 사건과 관련된 배경에도 스웨덴의 역사가 묻어나 있고, 이후 벌어지는 과정 속에서도 장소가 갖는 특성들이 이야기에 깊게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는 주요 촬영지인 스톡홀롬을 중심으로 지하철 역 촬영 장면들과 영화 본편에는 각본이 수정되어 실리지 않았던 장면의 촬영 장면도 수록되었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장면의 촬영 장면도 만나볼 수 있다.





'헐리웃'에서는 드라간 아르만스키 역할 캐스팅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었는데, 이를 연기한 고란 비스닉의 캐스팅 비화와 그의 오디션 장면들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리스베트가 자신을 폭행한 남성에게 더 악날한 방식으로 되돌려 주는 그 장면의 촬영 과정이 담겨있다. 이 보기에도 괴로웠던 장면이 실제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17분에 가까운 짧지 않은 분량으로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카엘과 리스베트, 마르틴 각각의 집에 대한 설정과 디자인에 대한 짧은 영상들도 수록되었다.






'Post Production'에서는 편집과 후시 녹음(ADR), 특수효과 등의 후반 작업 과정을 소개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가영상들이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만큼이나 흥미로운 영상이었다. 실제로 편집자와 데이빗 핀처가 함께 편집실에 모여 가편집 본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그대로 수록되었는데, 극장에서 보게 된 영화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감독과 편집자가 얼마나 깨알 같은 디테일을 잡아내고 걷어내고 난 결과물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예전과는 다르게 촬영한 필름의 양(스케일)이 많아서 편집 과정에서 자유롭게 화면을 자르고, 원하는 각도로 보정하는 것 등이 가능해져 보다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편집자에 말에 따르면 이 정도로 완벽한(편집 과정에서 일정한 기준으로 완벽하게 통일된) 작품은 없었다고 말할 정도니.






추가로 배우들이 후시 녹음을 하는 장면들과 카일 쿠퍼가 연출했던 '세븐'의 그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획을 그었던 핀처 답게, 이번에는 팀 밀러라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탄생한 환상적인 오프닝 타이틀의 제작과정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영화 속에 사용된 다양한 CG활용 등도 확인할 수 있는데, 주로 배경을 더 그럴 듯 하게 묘사하는 데에 활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Promotion'에서는 영화의 홍보와 관련된 영상들이 수록되었는데 기본적인 예고편들은 물론이고, 영화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일종의 페이크 다큐프로그램이 수록되어 눈길을 끈다. 'Hard Copy'라는 제목의 영상인데, 극중 등장하는 하리에트의 실종 or 사망 사건을 다룬 그 당시의 뉴스/고발 프로그램 형태로 제작된 영상으로서, 당시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좋지 않은 비디오의 화질로 제작되었다.




[총평] 데이빗 핀처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사실 솔직히 이야기해서 극장에서 보았을 때도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지금과 같은 정도의 만족도를 얻었던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블루레이를 주저 없이 구매한 것은 핀처의 다른 작품들이 그러했듯이 이 작품도 블루레이가 더 많은 만족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특히 그 깨알 같은 부가영상들이 있어 영화를 보며 아쉽게 느껴졌던 부분들까지 비로소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만약 '밀레니엄'을 인상 깊게 보았거나 데이빗 핀처의 팬이라면 이 블루레이는 반드시 소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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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11)

데이빗 핀처의 용문신을 한 소녀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원작 소설 '용 문신을 한 소녀' (북미와 영국에서 발간될 때 사용했던 제목)라는 제목은 들어보았을 정도로 아주 생소한 작품은 아니었는데, 스웨덴에서 영화화한 버전과 데이빗 핀처가 리메이크 했다는 소식을 거의 동시에 듣게 되었고, 개봉도 그 규모는 다르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만나볼 수 있어 어느 작품을 먼저 볼까 고민하던 중, 결국 핀처님의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밀레니엄'은 전작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2010)' 이후 1년 만에 바로 만나볼 수 있는 데이빗 핀처의 신작이라 일단 무척이나 반가웠다. '소셜 네트워크'가 이제 막 1년이 조금 넘은 작품임에도 가끔씩 다시 보고픈 충동을 느끼게 되는 작품이라고 봤을 때, 과연 핀처의 신작은 또 어떤 감흥을 전달해 줄지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유명한 원작 소설도 스웨덴판 영화도 보질 않았기 때문에 오롯이 핀처의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부분 원작이 별도로 있거나 소설의 방대한 분량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영화의 경우, 원작을 읽었을 경우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바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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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끝내주는 오프닝 타이틀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미 카일 쿠퍼가 연출했던 '세븐' 오프닝 타이틀을 통해 획을 그었던 핀처는, 이번에는 팀 밀러라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환상적인 오프닝 타이틀을 선사하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 이어 음악을 맡은 트렌트 레즈너의 강렬한 비트와 함께 펼쳐지는 오프닝은 흡사 검은 기름을 뒤집어 쓴 듯한 영상에 다니엘 크레이그까지 더해지면서 흡사 007 시리즈의 오프닝마저 연상시킨다. 음악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트렌트 레즈너가 음악을 맡아서인지 영화 곳곳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떠올릴 만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음악은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와 그 이면에 가려진 무게감을 대변하고 있었다면, '밀레니엄'에서는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미스테리함의 증폭과 추운 날씨와 고립된 듯 외로운 장소와 캐릭터의 면면을 더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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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부패한 재벌을 폭로하는 기사를 쓰고 대형 소송에 휘말린 기자 '미카엘 (다니엘 크레이그)'과 정부의 보호감찰을 받는 아웃사이더 소녀 '리스베트 (루니 마라)'의 이야기를 각각 전개해 나간다. 두 사람의 연결 고리는 영화 초반 공개되지만 실제로 두 사람이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지기 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작 소설과 스웨덴 버전의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포스터나 제목에서 풍겨나오는 뉘앙스를 보았을 때 리스베트라는 캐릭터의 비중이 절반이상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헐리웃 버전의 '밀레니엄'은 적어도 50:50이거나 미카엘의 비중이 더 크다고 볼 수 있겠다. 중심이 되는 스토리에 더 빨리 투입되는 것도 미카엘이고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미카엘이 중심에 있다는 점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작품이었다면 리스베트 캐릭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스웨덴 버전 포스터로 미뤄 짐작했을 때 기존의 작품들이 리스베트의 이야기라고 예상되었다면, 헐리웃 버전은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이야기로 느껴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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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를 풀어가는 스릴러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밀레니엄'은 괜찮은 과정을 담고 있다. 앞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 작품에는 40년 전 사라진 소녀 '하리에트'의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를 푸는 것 이전에, 리스베트의 이야기가 적지 않은 비중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중반까지는 완전히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그렇다보니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이야기가 하나로 모아진 다음, 본격적으로 하리에트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157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에도 100% 만족할 만한 문제 해결의 과정을 담고 있지는 못하다. 즉, 실제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 범인을 밝혀내게 되는 과정에 있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동시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전에 비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인해 약간 급마무리 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밀레니엄'이 보여준 문제 해결 과정이나 속도, 리듬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닌데, 이것이 데이빗 핀처의 작품이어서 어쩔 수 없이 드는 아쉬움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미 '조디악 (Zodiac, 2007)'이라는 너무 완벽한 스릴러를 만들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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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극장을 나오며 느꼈던 교훈은 좀 다른 얘기일지도 모르겠는데, '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특히 리스베트가 처한 상황과 그녀가 이 상황 속에서도 살아나가는 방식을 보면서, 이런 저런 고통과 억압들은 절대 참는다고 끝나지 않으며 오히려 더 상처가 깊어진다는 진리와, 그 가운데서도 굴하지 말고 끝까지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교훈적 메시지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리스베트의 이야기는 화려한 용문신과 피어싱 보다도 더 빛났다.



1. '소셜 네트워크'의 첫 장면에서 마크 주커버그를 차버렸던 그녀 루니 마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더군요.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는데, 확실히 이 리스베트라는 캐릭터는 루니 마라의 필모그래피에 획을 그을 것만은 분명한 것 같네요.


2. 아, 스웨덴의 그 공기. 이런 차가운 공기를 느껴보는 건 '렛 미 인' 이후로 오랜만인듯.


3. 이게 한국 영화였다면 전 그 가죽 자켓 버린 곳을 아마도 직접 찾아가 봤을 거에요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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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2010)
네트와 인간관계에 관한 또 다른 진실


5억명의 온라인 친구, 전세계 최연소 억만장자, 하버드 천재가 창조한 소셜 네트워크 혁명 등의로 포장하고 있는 데이빗 핀처의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사실 이와 같은 영화는 아니다. 다시 말해 5억명의 온라인 친구를 만들기 위한 영화도 아니고, 전세계 최연소 억만장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도 아니며, 하버드 천재가 창조한 소셜 네트워크 혁명을 그린 영화도 아니다. 물론 성공신화에 솔깃 하는 대중의 심리에는 '과연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서비스 페이스북 (facebook)는 어떻게 탄생되고 성공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갖을 수 있겠지만, 그래서 이런 기대에 발맞춰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의 입장에서 멋진 성공신화를 써내려 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보다는 더 영리한 데이빗 핀처와 각본을 쓴 아론 소킨은 페이스북과 마크 주커버그를 지우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를 완성해 냈다. 

즉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보고나면 가장 많이 궁금해 하는 바인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인가?'에 대한 물음은 이 영화의 정확한 본질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저 이들은 21세기의 소셜 네트워크와 그 중심에 있는 페이스북의 이야기에 빗대어, 네트와 인간관계 혹은 네트의 광활한 발전으로 인한 인간 관계의 진화 (혹은 퇴화)에 대한 씁쓸한 담론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저'와 '뿐이다'라는 표현은 이 영화의 완성도와 임팩트를 억지로 억누르려는 시도였을 뿐, '소셜 네트워크'는 데이빗 핀처의 필모그래피의 또 하나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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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하는 이야기를 구현하려하지 않고 하버드 아이들의 '라쇼몽'을 생각했다 라는 데이빗 핀처의 인터뷰 처럼, 이 작품은 하나의 진실을 둘러 싼 각기 다른 이들의 또 다른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데이빗 핀처는 이처럼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각기 다른 진실을 이야기하는 구조를 원했음에도, 이를 복잡한 영화적 트릭이나 장치 없이도 수려하게 완성해 냈다. 그러니까 영화 속 주인공인 마크 주커버그 (제시 아이젠버그)와 왈도 세브린 (앤드류 가필드) 그리고 윈클보스 형제 (아미 해머)가 싸늘한 테이블 위에서 나누는 논쟁은, '내 이야기는 이랬어' '어, 내 이야기는 다른데?'하며 각자에게 같은 사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턴을 제공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 이어가고 있음에도, '라쇼몽'과 같은 느낌과 더불어 누군가에게 완전한 치우침 없이 아슬아슬한 이야기의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완벽하게 동등한 공감대의 비중을 두지는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하려던 얘기가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동등함은 필요가 없을 터), 관객은 특히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한 왈도에게 좀 더 공감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확실히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에서는 왈도 세브린의 이야기가 임팩트가 느껴진다.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약자에게 공감을 하게 되어 있는데 어쩌면 표면적으로 이 작품 속에서 왈도가 가장 약자처럼 연약한 존재로 (냉철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묘사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가 흥미로운 것은 모두가 승자인 동시에 결국 모두가 패자가 된다는 점이다. 마크 주커버그와 왈도 세브린의 작은 프로젝트였던 '더 페이스북'이 전세계 5억명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으로 성장하였지만 마크의 모습은 여전히 행복해 보이지 않고, 반대로 페이스북의 성공으로 인해 가장 친한 친구와 멀어지게 된 왈도의 경우 패배자로 보이지만, 이 고소건에 대해서는 서로 합의를 보았으니 표면적으로는 패배자로 보기도 어렵다.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빼았겼다고 주장하는 윈클보스 형제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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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셜 네트워크'의 이야기를 단순히 엄청나게 성공한 기업의 어두운 뒷이야기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런 소재의 영화에서 의례 등장하는 이런 방정식으로 풀어내기에 이 영화의 알고리즘은 훨씬 더 견고하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정서를 거의 대부분 대변하고 있다. 결국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여자친구에게마저 차인 마크 주커버그는 홧김에 여자 친구를 욕보이게 되는 일들을 인터넷 상에 하게 되고, 결국 이 잘못을 만회하기 위한 방법도 보란듯이 자신이 만든 서비스를 성장시키는 것으로 하려 한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하버드의 모든 학생들을 넘어서서 수 많은 대학의 네트워크에 퍼졌을 정도로 유명해졌을지언정, 떠나버린 여자친구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러면 돌아올 것으로 예상했던 마크는 실망보다는 당황을 하게 되고, 마지막에 가서 다시 홀로 남게 된 마크가 자신이 만든 서비스의 베타적 특징 때문에 (이 서비스가 전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었던 바로 그 장점 때문에) 본인조차 '수락'의 과정을 거쳐야만 전 여자친구의 소식을 듣거나 다시 친구가 될 수 있게 된 현실은, 그리고 그 현실 앞에서 계속 새로고침을 누르고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현실은, 인간관계의 가장 밀접하고 민감한 부분에 기인해 만든 소셜 네트워크이지만 이것 역시 완벽한 대안이 될 수는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보통같으면 영화 속 인물들의 현재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자막이 등장했을 때, 특히나 이번 영화처럼 '페이스북은 전세계 가입자 5억명이 사용하는 서비스고, 마크 주커버그는 최연소 억만장자다'라는 문구가 등장했을 때 무언가 해피엔딩에 가까운 감흥을 느끼게 되지만, '소셜 네트워크'의 마지막에는 이러한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즉 현실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억만장자이지만, 우리가 영화를 통해 보게 된 그의 마지막 모습은 앞서 언급한 '새로고침'하는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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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셜 네트워크'를 만든 이들 가운데 빼놓지 말아야 할 한 사람은 바로 음악을 맡은 '트렌트 레즈너'이다. 록 팬들에게는 '나인 인치 네일스 (Nine Inch Nails)'의 프론트맨으로 더욱 유명한 트렌트 레즈너가 만든 영화 음악은, '소셜 네트워크'를 전반적으로 쓸쓸하면서도 차가운 정서로 이끄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있다. 이 영화는 음악이 상당히 깊게 관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차가운 디지털 사운드로 채워진 음악들은 장면의 리듬감은 물론 마치 스릴러 영화에서나 느꼈을 법한 긴장감과 동시에 인간관계를 디지털화하여 쉽게 연결해주는 페이스북이라는 도구와, 그 도구로 인해 멀어져버린 진짜 인간관계에 대한 쓸쓸한 정서를 마치 무채색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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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가 더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개인적으로도 페이스북과 같은 서비스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최근에는 새로운 서비스를 한창 기획하고 준비하는 시기여서 평소에 브레밍스토밍 하고 있는 것들과 연관되는 부분들, 혹은 근본적인 원류를 다시금 되돌아보게끔 해 더 인상적일 수 밖에는 없었다. 또한 페이스북 서비스를 사용한지가 어느 덧 제법 오래되었고 또 최근 몇 달간 더 자주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시류를 잘 읽고 앞서갔던 서비스라는 점에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던 터라, 마크 주커버그가 처음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게 되었는지 (교내 네트워크를 위한 서비스에서 시작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영화로 그 과정을 접하니 감회가 남다르더라), 또 '더 페이스북'이 어떻게 '페이스북'이 되었는지, 현재 페이스북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몇가지 중요한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설계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작품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업계 사람으로서 업계 1위라고 할 수 있는 서비스의 리얼한 탄생과정의 목격은 그 자체로 흥분되는 것이었다 (음악으로 바꿔 이야기하자면 유명한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볼 때, 명곡이 어떻게 우연처럼 탄생하게 되었는지가 등장할 때 소름이 돋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미 지난 예전의 이야기임에도 무릎을 탁치게 되는 장면들이 많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서비스 혹은 훗날 만들게 될 서비스에 여기서 파생된 아이디어들을 접목시켜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아, 물론 영화 속 이들의 이야기처럼 5억명의 친구를 만들기 위해 진짜 친구들을 모두 적으로 만들게 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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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시 아이젠버그와 완성시킨 '마크 주커버그'는 그야말로 올해의 캐릭터 중 하나로 꼽을 만 하더군요. 연민과 비난이 동시에 들게 끔 하는 묘한 주인공이었죠. 

2. 극중 윙클보스 형제는 아미 해머가 1인 2역으로 연기하고 나중에 CG를 통해 영화 속 장면이 완성되었는데, 감쪽 같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그 보다는, 오히려 '자, 이건 1인 2역이야, 뭔가 이상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데이빗 핀처의 영화적 조크와 장난끼랄까요.

3.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필모그래피에서도 현재까지는 최고의 연기가 아닐까 싶군요. 영화를 보고나서 아직까지도 얄밉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걸 보면요.

4. 개인적으로 최고의 대사는 '션, 난 니 옆에 서고 싶어. 그럼 내가 더 터프해 보일테니까'라는 왈도의 대사와 '더 는 빼, 그냥 페이스북으로'라는 션의 대사를 꼽고 싶군요. 전자는 감정적으로 후자는 현실적으로요 ㅋ

5. 이 글은 제 페이스북으로도 발행하였습니다. 5억명의 친구들이 보게 될까 두렵군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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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
순간의 성장영화

F.스콧 피츠제랄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데이빗 핀처가 연출하고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처음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다('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우리말 제목에
괸해서는 조금 직접적이고 자극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원제 그대로 '흥미로운 사건' 혹은 '기이한 사건' 이라던가
아니면 그냥 '포레스트 검프'처럼 '벤자민 버튼'이라고 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던터라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었으나, 우리말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주인공 '벤자민 버튼'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것 정도 외에는 별다른 정보를 수집하지 않은채 관람하였는데(아! 2시간 40분에 달하는 긴 상영시간에 대해서도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데이빗 핀처의 스타일이나 성향 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영화도 어느 정도 이런
성향에 연장선에 있지 않을까 했지만, 의외로 이 영화의 주된 흐름은 로맨스에 있었다. 원작을 이미 읽어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원작과는 사뭇 다른 각색으로 실망도 했다고 하는데, 원작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데이비드 핀처만의
스타일리쉬하고 독특한 장면들을 만나볼 수 있는 동시에 <조디악>이후 확실히 <조디악> 이전 작품들과는 구별되는
연출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이미 스포아닌 기본 줄거리로서 알려진 바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 벤자민 버튼은 태어날 때 노인의 몸(정확히 말해서는
몸상태라 해야 맞겠다)으로 태어나 점점 시간이 흐를 수록 몸이 젊어지는 독특한 인생을 타고난 캐릭터이다. 태어나자 마자
노인과 같은 주름진 얼굴과 피부를 하고 나온 아이를 아버지인 토마스 버튼은 어느 한 집에 버리게 되는데, 이 집은 일종의
양로원 같은 공간으로 노인들이 모여사는 곳이다(원작에서 벤자민의 부모는 벤자민을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은 일반
평범한 가정이 아니라 조금은 특별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이 장소 설정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만드는 듯 하다.
이 곳을 관리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된 벤자민은 어렸을 때 부터 노인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지내게 된다. 거꾸로 시간이
간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기 어렵고 그들의 죽음을 계속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역시 의미하는데,
바로 이 점에서 노인들이 주로 살아가는 이 공간은 매우 효과적으로 적용이 되고 있다. 자신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었던 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세상을 보여주었던 이,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죽음을 하나하나 다
겪어야만 하는 캐릭터를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메시지들을 은연 중에 전달하고 있다.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었으나 이 공간과 벤자민의 나레이션들을 통해 이 '인생'에 관한 깊은 메시지는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이야기 하고 있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바로 소외된 자를 받아들이는 방법과 선입견이
없이 수용하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가 판타지스러운 것은 단순히 시간을 거꾸로 적용받는 주인공 때문 만은 아닐 것
이다. 앞서 언급한 이 공간, 이 공간은 어찌보면 매우 판타지스러운 공간이 아닐 수 없겠다. 일단 이 시기라면 완벽하게
인종차별이 없었던 시기라고 할 수 없을텐데(하긴 오바마 정부인 최근조차 완벽하게 없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사실상
흑인들이 운영하는 이 공간에 굉장히 격식이 차려진 삶을 살아온 듯한 백인 노인들이 이 공간에 아무런 불평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노인들의 헤어스타일이나 의상, 장신구들로 미뤄보아 다들 여유로운 마지막을 준비하려 이곳을 선택한
이들임을 알 수 있는데, 이들에게서는 전혀 인종차별의 낌새조차 발견할 수 없다.

인종차별에 관한 건 굳이 발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 영화에서 더 중요한 다른 시선은 바로 선입견 없이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바라보는 인물들에 모습에 있다. 벤자민의 아버지는 벤자민이 태어나자 마자 '괴물'같이 흉측한 모습이라며 아이를
버렸지만, 이를 발견한 '퀴니'는 거의 단 한번도 주저함 없이 벤자민을 겉모습이 아닌 '아이' 그 자체로만 받아들인다.
이 공간 속에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보통 같으면 퀴니가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벤자민을 공개했을 때 기겁들을 했겠지만,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노인들은 '내 죽은 남편과 비슷하게 생겼다'며 농담까지 할 정도로 퀴니가 그랬던 것처럼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벤자민을 처음 친구로 받아주었던 피그미족 남자도 그랬고, 키작고 노인으로만 보였던 벤자민을
자신의 선원으로 받아준 선장 마이크 역시 그러했고, 벤자민의 연인이었던 데이지 역시 그러했던 것처럼, 이들 모두는
우리가 쉽게 보는 벤자민의 기이한 겉모습에 전혀 편견을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있다. 현실은 이렇지 않기에
이런 구성이 판타지로 느껴지는 것이 씁쓸하기까지 한데, 이를 반영하는 캐릭터들을 노인이나, 흑인, 선원들로 묘사한 것은,
그 반대에 서있다 할 수 있는 이른바 '지식층'들에 대한 조롱의 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괴물 같다며 벤자민을 버렸다가
나중에 점점 젊어지고 번듯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의 전재산을 물려주며 가업을 잇게 하기 위해 아버지임을 밝히게 되는
토마스 버튼이 기업가(사업가)라는 점도 앞선 것들과 연관지을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케이트 블란쳇 만큼이나 좋아하는 줄리아 오몬드도 만나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영화는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데이지와 그녀의 딸 캐롤라인이 예전 일기장을 읽어내려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중간중간 계속 나레이션이 삽입되어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더더욱 마치 책
한 권을 읽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좀 더 진실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비춰
봤을 때도 그렇고, 부모가 (직간접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판타지스럽다는 측면에서,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가
연상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기이하게 태어난 벤자민 버튼의 삶을 그리고 있지만,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을 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매우 보편적
이다. 노인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벤자민은 노인들과의 생활을 통해 여러가지를 배우고, 우연히 함께하게 된 인양선 항해를
통해 마치 사춘기 소년이 그러하듯 성에 대한 첫경험과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갖게 되었으며, 데이지를 통해 이성에 대한
감정과 이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도 하나씩 배워나가게 된다. 시작은 남들과 정반대에서 시작했지만 시작점이 달랐을 뿐
같은 길을 반대방향에서 걸어간다고 보면 될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이 기이한 설정만 제외하면 완벽하게 성장영화와
맞아 떨어진다. 일단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이 데이빗 핀처라는 점이었는데, 이 기이한 설정을
컨트롤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그의 역량이 발휘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바이지만, 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로맨스와
드라마에 가까운 이 영화를, 스릴러와 강한 스타일이 장기인 핀처가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데이빗 핀처는 <조디악>이후 이렇게 느긋하게 극을 이끌어나가는 부분에 있어서 스릴러 적인 긴장감 없이도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조디악>은 물론 범죄 스릴러 라는 장르 안에 있었지만 이전 그의
작품들처럼, 장르적인 특성과 분위기에만 기대는 영화가 아니었다. 이런 장점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다시금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데, 특히 순간순간 장면을 감성적으로 그려낸 것을 보니 '과연 이 장면들이 데이빗 핀처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야기가 잠시 헛나갔는데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이 영화가 인생이라는 것을 그리는데 있어서 얼마나 순간과 지금에
중요성을 두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점은 데이지가 사고를 당하게 되는 시퀀스를 통해 아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데이지가 차에 치이게 되는 과정에 얽힌 여러 인물들의 인과 관계를 설명하면서, 이렇듯 여러가지가 제대로 정상적
으로 작용하지 못했음에도 즉 단 한가지라도 어긋났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찰나의 사고가 일어나게 된 것을 매우 직접적으로
묘사하면서,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순간과 시간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벤자민과 데이지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벤자민의 특별한 상황 때문에 일종의 '접점'을 기다려왔다고 할 수 있는데,
서로 반대의 출발점에서 시작한 둘의 나이가 서로 어느 정도 비슷한 시기에 도달했을 때, 이들은 그야말로 서로를 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정도로 이 순간에 집중한다. 얼핏보면 이 시기가 곧 '청춘'이 인생의 클라이맥스이자 만개했다
지는 꽃처럼, '한 때'를 찬양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았을 때 '찬양'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음을 인지하고 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대한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영화에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사실 조금 의외다 싶었는데, 영화를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일단 벤자민의 어린 시절(?)의 묘사를 위해 엄청난 CG가 사용되고 있다. 이부분은 모션캡쳐를 통해
브레드 피트의 얼굴 부분을 그래픽으로 완성하고, 얼굴 외 부분은 대역 연기자가 연기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진짜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호빗을 촬영했던 방식으로 촬영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키도 작고 노인의 몸을 갖고 있는
브레드 피트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재미있는건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등장한 순서대로 배우들의
이름이 나열되는데, 벤자민 버튼 역을 맡은 브레드 피트는 세 페이지가 지난 다음에야(틸다 스윈튼이 등장할 때) 등장하는
것으로 나온다).

캐릭터 묘사에 사용된 CG와 이에 따른 비용도 많았겠지만, 이 밖에도 배경 묘사나 로케이션을 대체하기 위해 엄청난 CG를
사용하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극 중 벤자민 버튼은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데 물론 실제 로케이션을 통해 촬영된 분량도
조금 있는 듯 하지만 대부분은 완벽한 CG로 채워졌으며(예전 파리 시내를 아우르는 장면은 CG이지만 상당한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브래드 피트가 인양선을 타고 간 곳 거리의 디테일도 로케이션이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묘사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 이 두 배우의 모습 묘사에도 많은 CG가 사용되었는데, 특히 브래드 피트의
경우 할아버지 분장부터 <델마와 루이스>시절 혹은 더 이전을 연상케 하는 '미소년'의 모습까지 연기하고 있어,
이른바 '뽀샵'의 효과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극중 데이지가 발레를 하는 이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장면을 보면서 데이빗 핀처도 이런 감수성이 있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고)

극중 벤자민 버튼 역을 맡은 브레드 피트는 연기를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벤자민 버튼'이라는 이 캐릭터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젊어진 다는 설정을 표현함에 있어서 그의 외모는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겠는데,
점점 젊어질 때마다 더더욱 빛을 발하는 그의 외모는 여성 관객들의 탄성을 절로 불러일으켰다. 사실 의외로 이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자체로 표현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극중 틸다 스윈튼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가 연기한
것이 아니라 모션 픽쳐를 사용한 대역 연기자가 벤자민을 연기하였고, 이후 에도 외모 적인 변화 만큼 인상적인 연기는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물론 그의 외모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스럽긴 했다;;).

그에 반해 데이지 역할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훨씬 깊은 편이다. 대부분 CG에 큰 도움을 받았던 벤자민 버튼 역할과는
달리, 죽음을 앞둔 노인 역할부터 20대의 풋풋한 발레리나 까지, 또 한번 그녀의 놀라운 연기 스펙트럼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워낙에 빛을 발하는 브래드 피트 때문에 조금 가려져 있긴 하지만, 20대의 데이지를 연기한 케이트의 놀라운 외모는
(물론 CG의 도움이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다시 한번 여신의 포스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제목이 '벤자민 버튼의 ....'라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경향이 있지만 연기면에서는 그녀의 연기가 훨씬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데이지의 딸로 등장하는 줄리아 오몬드의 경우 브래드 피트와 <가을의 전설>에서 연인으로 출연했던 터라 이 같은 관계설정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어찌보면 큰 기대에 비해 표면적으로 별로 들려주는 얘기는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 젊어진다는 설정을 좀 더 다양하게 이용하지 못한 듯한 느낌도 살짝 들지만, 개인적으론 이 설정에
국한되지 않고 본래 하려던 이야기를 단지 설정만 빌려와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비교적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2시간 40분이라는 상당히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가 단지 두 배우의 외모적 변화를
관찰하는 재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1. <콘스탄틴>등에서 잘 보여줬던 것처럼, 이번 영화에서도 워너브라더스의 로고가 멋지게 변형되어 등장한다.
이 로고를 통해 벤자민 '버튼'이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 살짝 예상해볼 수 있었다.

2. 초반에 허리케인이 온다며 잠시 간호도우미가 자리를 뜨는데, 이 도우미의 이름이 도로시라는 점도 재미있었다.
참고로 영화 마지막 장면의 날짜는 뉴올리언즈가 카트리나에 피해를 받게 되었던 그 날이라고 한다.

3. 본문에도 썼지만 영화의 초중반 등장하는 벤자민 버튼은 브래드 피트의 얼굴을 모션 캡쳐하여 대역 연기자가 연기한 것이기
때문에, 등장순서대로 나오는 엔딩 크래딧에 브래드 피트는 세 페이지가 지난 뒤에야 이름을 올리고 있다.

4.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은 알렌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 <바벨>에서 부부로 등장했던 적이 있다.

5. 의외로 케이트 블란쳇과 틸다 스윈튼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많은데(비슷한 시기에 마녀 혹은 여왕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듯 하다), 이 두 배우가 한 영화에 등장한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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