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All rights reserved


육룡이 나르샤

끝까지 단단하고 새롭기까지 한 역대급 사극



지상파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 한 것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최근엔 별로 재밌게 본 작품이 없었는데, '육룡이 나르샤' 역시 첨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아마도 제목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퓨전 사극 냄새가 나는 '육룡이 나르샤'라는 제목이 처음 내용을 몰랐을 땐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봐야지 했던 이유는 역시 배우들이었다. '베테랑' '사도' 등으로 한창 뜨거웠던 유아인을 비롯해 김명민, 천호진, 신세경 등은 물론 개인적으로 '미생' 이후 더 주목하게 된 변요한까지 출연한다는 소식은, 최소한 일단 시작은 해봐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였던 배우들은, 이 작품을 더 역대급으로 만들어 내는 완벽한 조각이기도 했다.


50부작에 달하는 내용을 하나 하나 다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전체적인 감상과 마지막 회 위주로 간략하게 이야기해볼 텐데, 첫 째는 역시 완성도다. 보통 50부작이나 되는 TV드라마의 경우 완성도 측면에서 있어서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은데, 그건 국내 드라마의 퍽퍽한 제작 여건도 부정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전반적인 리듬감이나 균형을 위해 강약을 조절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데, '육룡이 나르샤'는 50부작 전체가 고른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한 회도 그냥 지나치는 화가 없을 정도로 짜임새 있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는 빠른 리듬감을 보여주었다. 시청자들이 끝나고 나면 '벌써 끝났나?'라고 자주 얘기했던 건 그냥 팬심 만은 아니었다.


사극의 특성상 여러 인물들과 관계 들이 등장하는데 그 다양함을 복잡함의 나열이 아니라 깨알 같은 연관성으로 엮어 냈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는 여러 다른 인물들과 관계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빠지고를 반복해도 완성도의 붕괴나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여러 회차가 다 인상적이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만 꼽으라면 역시 25회를 꼽지 않을 수 없겠다. 땅새와 연희의 이야기가 감정적으로 절정을 치닫는 가운데, 땅새와 무휼, 영규까지 목숨을 건 액션 시퀀스는 과연 한국 TV드라마에서 이 정도 수위와 연출의 액션을 본적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손에 땀을 쥐는 엄청난 회였다. 액션 측면으로만 봐도 잠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긴 호흡으로 가져간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 액션 시퀀스를 비롯한 이 회차 전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밑바닥에는 땅새와 연희의 감정선이 아주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룡이 나르샤'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주제를 감정적으로 분출시킨 장면으로서, 볼거리와 감동을 동시에 전해주었다.



ⓒ SBS. All rights reserved


역사가 스포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 역사를 묘사하는 작품의 방식도 참 인상적이었다. 그 절정은 역시 정몽주와 이방원이 선죽교에서 나눈 단심가와 하여가 시퀀스였다. 누구나 학창시절 배우고 외워서 잘 알고 있는 이 내용을, 머리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전달해 내 이제야 비로소 두 사람의 진심과 심정을 해아리게 만드는 드라마의 힘은 대단했다. 이 밖에도 우리가 흔히 배워서 잘 알고 있는 수 많은 역사 속 순간이나 인물, 사건 들이 등장할 땐, 마치 이 사실을 이제야 처음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해 내는 연출이 돋보였다. 그러니까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우습게도, '그래서 다음에 어떻게 되지?'라는 궁금증 마저 들게 만들거나 혹은 '아..그래서 그랬던 거구나...'하며 비로소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나는 이것이 '육룡이 나르샤'가 달성한 가장 큰 성공이 아닐까 싶다.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 그것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뻔하다고까지 생각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놀랍게도 처음 듣는 얘기처럼 만들어 낸 연출과 구성은, '육룡이 나르샤'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마지막 회는 주로 에필로그를 담는 형식으로 그려졌는데, 보통 에필로그를 그리게 되면 축축 처지면서 정리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마지막 회에서도 마치 더 이야기를 끌고 가려는 듯한 에너지를 보여주며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50부작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SBS드라마인 '뿌리 깊은 나무'와의 연결고리가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했던 이 드라마를 '육룡이 나르샤'는 아주 영리하게 활용했다. 특히 마지막 회는 '육룡이 나르샤'의 50회이자 '뿌리 깊은 나무'의 0회 정도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그 고리가 단단했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은 그 연결 고리를 하나 하나 발견해 내며 이 역사의 계속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뿌나'를 보며 느끼지 못했던 감정선을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말 다음 주 부터 '뿌나'를 방영하는게 새로운 드라마를 하는 것 보다 나을 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이도(세종)를 이방원의 아역 연기자로 등장시킨 것도 정말 좋았다. 이도의 존재가 이방원이 꿈꾸었던 자신을 포함한 존재들의 가치를 모두 조금씩 닮아 있었다는 점에서, 그를 연기한 아역이 다름 아닌 이방원의 아역 연기자라는 점은 묘한 감동과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에 충분했다.


50부작이라는 긴 호흡의 드라마를 쉬지 않고 긴박하게 달려 온 '육룡이 나르샤'는, 배우들의 놀랍고 가슴을 울리는 연기를 바탕으로 마지막회가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단단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익숙한 역사에 생동감을 불어 넣은 역대급 사극이었다.

아... 다음 주 부터는 정말 뭘 보지. 둘 중 하나는 봐야겠다. '육룡이 나르샤'를 1회부터 다시 정주행하거나 '뿌리 깊은 나무'를 다시 보거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SBS 에 있습니다.




왕좌의 게임 (Game of Thrones)
치열한 권력 다툼과 판타지의 절묘한 조화



미국 출신의 소설가 조지 R.R.마틴의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 (A Song of Ice and Fire)'가 드라마로 제작된다고 했을 때 많은 원작 팬들은 엄청난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1996년에 첫 발간된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는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15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드라마가 다름 아닌 명가 HBO에서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이런 기대는 더 커질 수 밖에는 없었는데, 모든 원작을 가진 작품들이 그러하듯 소설 팬들 사이에 만족과 아쉬움이 자연스럽게 교차되긴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완성도의 드라마라는 평가를 얻었다. HBO에서 제작한 드라마는 첫 번째 소설인 '왕좌의 게임 (Game of Throne)'을 각색하여 제작되었으며, 2011년 4월 시즌 1의 방영을 시작으로 현재는 시즌 2의 첫 방영을 앞두고 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 다른 소설 원작 작품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단순히 드라마 제작사가 원작 판권을 구매하여 제작된 방식이 아니라 원작자인 조지 마틴(▲ 위 사진)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원작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나서 조지 마틴은 여러 곳에서 영화화 제의를 받게 되었는데, 영화화는 애초부터 반대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라는 매체는 아무래도 자신이 만든 작품의 방대한 분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러닝 타임 때문이었는데, 자신의 마음에 드는 온전한 상태로 영화화 되기는 사실상 불가능 하다고 생각한 조지 마틴은, 처음부터 드라마로 제작되는 것을 생각했었고 HBO가 아니면 안된 다는 생각에 오히려 매니저를 통해 HBO측에 드라마 제작을 먼저 문의하기도 했었다. 원작에 관심이 있던 HBO 역시 드라마 제작을 환영하였고 조지 마틴이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 '왕좌의 게임'은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에다드 스타크 역의 '숀 빈'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나 드라마화 할 때 성공에 가장 큰 요인이라면 캐스팅을 들 수 있을 텐데,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각 캐릭터의 모습들을 현실로 구현하는 데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 하기 때문이다. 이런 캐스팅 측면에 있어서 '왕좌의 게임'은 정말 완벽에 가까운 조합을 만들어 냈고 이것이 드라마의 성공에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여러 딱 맞는 캐스팅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에다드 스타크 역할을 맡은 숀 빈의 캐스팅은 그야말로 환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과연 숀 빈 보다 에다드 스타크에 더 잘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주었다.

숀 빈 외에도 티리온 라니스터 역의 피터 딘클리지, 캐를린 스타크 역의 미쉘 페어리, 칼 드로고 역의 제이슨 모모아, 존 스노우 역의 킷 하링턴 등 많은 배우들이 캐릭터에 딱 맞는 모습으로 분한 것은 물론, 시즌 1에서는 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하고 있는 아역 캐릭터들의 캐스팅과 연기도 시즌 1의 완성도를 한층 더했다.



'왕좌의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판타지의 세계를 배경으로 현실 세계의 왕좌를 차지하려는 권력 다툼의 구조와 과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전개된다는 점이다.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가 슈퍼 히어로물을 현실적인 범죄/사회 물로 그리면서 더 큰 파급력 갖게 된 것과 마찬가지의 경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판타지의 세계관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은 채 (특히 시즌 1에서는 더욱) 왕좌를 두고 벌이는 권력 다툼을 드라마라는 롱테일의 호흡으로 짜임새 있게 그려내면서, 권력 다툼에서 오는 현실적인 드라마의 재미는 물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판타지의 잠재 요소를 통해 그 이상을 기대하게끔 하는 심리마저 이끌어 내고 있다. 특히 이야기의 서두에 해당하는 시즌 1에서는 아마도 앞으로의 시즌에 본격적으로 등장할 판타지적 요소를 최대한 절제하였음에도, 그 미묘한 잠재력을 조금씩 드러내는 연출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 시리즈 1에서 주연 이상의 역할을 하는 조연 '티리온 라니스터'. 돈 많고 못생긴 난봉꾼 난장이이지만 이 역할을 맡은 피터 딘클리지는 '티리온'을 원작보다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살려 놓았다. 2011 에미상에서 남우조연상 수상.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왕좌를 둘러싼 권력 다툼의 대상을 '가문'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는 점이다. 에다드 스타크를 비롯해 롭, 산사, 아리아 그리고 존 스노우 등이 속하는 스타크 가문. 현재의 군주인 로버트 바라테온과 라니스터 가문이자 왕비인 세르세이 라니스터, 왕세자 조프리 바라테온 등의 바라테온 가문. 타이윈 라니스터를 비롯해 제이미, 세르세아 그리고 티리온의 라니스터 가문. 추방당한 칠왕국의 주인 비세리스 타가리옌 왕자와 대너리스 공주의 타가리옌 가문. 그리고 아린, 그레이조이, 툴리 가문까지. 가문이라는 설정을 그냥 개념 자체로만 활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로 하여금 가문 간과 캐릭터 간에 선택을 유도함으로써 '주인공과 악당' 만으로도 이뤄진 단면적인 구조를 벗어나며 훨씬 다각적인 소비가 가능한 작품이 되었다.



DVD Menu



DVD Quality


총 5장의 디스크의 디지팩 케이스로 출시된 '왕좌의 게임' DVD는 HBO의 작품이라면 반드시 지원해야 할 무삭제판으 로 출시되었다. '왕좌의 게임' 시즌 1에서 무삭제판의 활용도라면 잔인함보다는 노출 등 선정성에 좀 더 활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기존 HBO의 작품들에 비하면 그리 강도가 센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맘 놓고 있다가는 정신이 번쩍 날 장면들도 있으니 촉각을 곤두세워야(?)겠다.



DVD의 화질은 장면마다 편차는 조금 있지만 최근작답게 우수한 편이다. 확실히 실내 촬영과 야외 촬영 분에 따라 편차가 드러나며, 얼핏 보면 HD에 가까운 우수한 화질을 선보이는 장면들도 간혹 있지만 블루레이와의 차이점이 확실히 느껴지는 장면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칭찬이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크게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음질을 수록하고 있는데, 대사 전달에서도 이렇다 할 단점이 발견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다양한 병장기 들의 사운드와 어쩌면 또 하나의 HBO사운드라고 할 수 있을 일종의 '베는 소리'에 있어서도 그 잔인함이 스피커를 통해 생생히 전달된다.


DVD Special Features


총 5장의 디스크에는 각각 2개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었으며, 1~4번째 디스크에는 음성해설 트랙과 짧은 Previews와 Recaps 그리고 메뉴 선택을 통한 가이드가 수록되었으며 5번째 디스크에는 별도의 메이킹 영상 및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었다.



가이드에서는 각 가문 별 주요 인물 소개부터 그 가문의 속한 다른 인물들의 소개까지 다양한 정보들을 소개해 주고 있는데 한국어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긴 이 부분은 자막으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라 100%를 즐기려면 아예 화면 전체의 한글화 작업이 필요했을 텐데 현재 국내 DVD시장을 감안했을 때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각 디스크마다 수록되어 있는 음성해설 역시 한국어 자막이 지원되지 않아 아쉽다.



다섯 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Making of Game of Thrones'에서는 원작자인 조지 마틴을 비롯해 각 에피소드를 연출한 감독들과 배우들, 스텝들의 인터뷰를 통해 30분 동안 '왕좌의 게임'의 다양한 뒷이야기 들을 들려준다. 특히 30분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임에도 배우, 촬영, 조명, 의상, 음악, 미술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밖에 다른 부가영상 들에서는 원작 소설을 드라마로 옮기게 된 이야기와 도투락 언어 만들기, 나이트 워치의 이야기 등을 짧지만 만나볼 수 있다.



[총평] 원작 소설은 물론 HBO의 드라마로서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왕좌의 게임'은 시즌 1의 성공을 발판으로 오는 4월 시즌 2를 준비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팬으로서 차세대 화질과 사운드의 블루레이로 소장할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사실상 국내 출시 예정이 없기에 이번에 출시된 완전 무삭제판 DVD가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 주의 : 본 컨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재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이 글에는 문경은 선수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바야흐로 지금은 스포일러 홍수의 시대다. 아주 예전에 스포일러라는 말 자체가 흔하게 사용되지 않던 시절에는 단순히 반전이 있는 영화에만 국한되어 그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것으로만 인식되었으나, 요즘 같아서는 그날 그날 방영하는 드라마는 물론 각종 스포츠 경기의 결과에 이르기까지, 관심사가 많을 수록 스포일러를 피하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먼저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스포일러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스포일러라는 것의 범위가 사실상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일 수 밖에는 없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어제 방영한 드라마의 줄거리를 얘기하는 것은 제법 많은 이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스포일러 하면 반드시 얘기되는 작품인 '식스 센스'의 반전을 이야기하는 것은 미미한 수준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확률적인 것일 뿐 아직 '식스 센스'를 보지 않은 이에게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가 스포일러로 느껴질 수 밖에는 없을 것이란 얘기도 된다. 특히 예전 작품 같은 경우 동시대를 살았던 이가 아니라면 그 다음 세대의 경우 일부러 찾아봐야 하는데 이럴 때 '누구나 다 아는 얘기'는 이들에게 큰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스포일러의 범주를 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을 인정 정도만 하는 것으로 그치자는 얘기.


개인적으로는 이 글에서 '식스 센스'의 반전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처럼 가능하다면 핵심이 되는 내용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지켜주고 싶은 편이지만(아예 쓰지 말자는게 아니라 스포 표시 정도를 해둘 수도 있다는 얘기), 이런 성향을 재쳐두더라도 최근의 경향은 실시간이 아니면 사실상 스포를 피하기 어려운 시대라 점점 따라가기 벅찬 것에 대해 살짝 푸념을 늘어놓고 싶어서랄까. 물론 여기에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양한 관심사 때문일 것이다. 슈퍼스타 K도 안보고 위대한 탄생은 조용필의 밴드로 알고 있고, 농구는 문경은이 뛰던 시절 보고 안보는 이라면 이들의 결과를 주변에서 보게 되더라도 스포이기는 커녕 소소한 정보가 되는 경우가 더욱 잦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SK농구단의 경기 결과 뉴스를 보며 '엇, 문경은이 벌써 감독이 되었어?'라고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수이기는 하겠지만 관심사가 어느 정도 다양한 입장에서는 정말 완벽하게 스포를 피하는 것은 어려운 실정이다. 최근에는 일단 정보 유통 채널이 너무 다양해져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걸 막기란 어려운 일인데, 주로 관심사 별로 팔로잉을 하고 있는 트위터나 지인들로만 이루어진 페이스북만 해도 근 시일 내에 걱정되는 스포거리가 있다면 아예 타임라인을 보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실시간으로 즐기지 못한 것들에 대해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SNS 정도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포털 메인 등에 아주 깨알 같이 기사 형태로 등장하는 스포를 피하기란 정말 힘든 일인 듯 하다. 예전에는 꼭 봐야할 일이 있어서 포털에 접속은 했으나 고개는 다른 곳으로 돌리고 로그인 하여 피한 웃지 못할 경우도 있었다. 특히 요즘 드라마 같은 경우는 그냥 포털 메인만 하루에 한 두 번씩 방문해도 대충의 줄거리는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드라마 속 이야기를 마치 실제 이야기인냥 포장하는 것에 처음에는 조금 놀라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러려니 할 정도로 무뎌져버렸다.


가장 무방비로 당할 때는 SNS는 물론 포털 및 인터넷 서비스를 거의 대부분 피했음에도 발생하는 경우인데, 무심코 TV 뉴스를 보다가 아래 지나가는 자막으로 스포츠 결과가 슬쩍 지나가는 걸 보게 된다거나, 극장 상영관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미 내가 보려는 영화를 본 이들에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듣게 된다거나 (ㅠㅠ), 역시 술집이나 지하철 등에서 크게 얘기하는 사람들로 인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듣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이럴 때는 아주 신속하게 반응하여 예를 들어 맨유 경기의 결과를 알고 싶지 않을 경우, 지하철에서 누가 맨유...라는 얘기만 귀에 들리면 바로 귀를 막아버리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당할 때는 사실상 무방비나 다름 없다. 피할 곳도 없고 내가 더 큰 소리로 떠들 정도로 진상도 아니고, 이건 그냥 운명에 맡길 수 밖에는 없는 경우라 하겠다.


어쨋든 결론이 날 수 없는 이야기지만, 관심사에 대해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가능한한 본방 사수, 빠른 관람 등으로 미연에 방지하는 것 밖에는 답이 없으며, 불가항력으로 당할 시에는 조용히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쓸쓸히 알아버린 내용을 복습할 수 밖에는 없을 듯 하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포인트는 불가항력이다. 스포하는 사람이 잘못이라는 전제는 결코 없다. 잘못일 수도 없고. 이미 본방사수로 본 것에 대해 못 본 사람이 있을까봐 꽁꽁 입을 막고 사는 것도 말이 안되니까 ㅎ)


아, 왜 이렇게 눈물나지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음식으로 담아낸 인생 이야기

'신주쿠 구 하나조노 근처의 골목에 마스터 혼자서 운영하는 작은 밥집이 있다. 심야 0시부터 아침 7시까지 영업하며, '밥집' 이라고만 쓰여져 있지만, 단골 손님 사이에선 '심야식당'이라 불린다. 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 맥주, 일본주, 소주 밖에 없지만 원하는 음식을 말하면 가능한 한 만들어 준다'


아베 야로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2009년 일본 TBS에서 방영해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심야식당'이 DVD로 출시되었다. 일단 원작인 아베 야로의 만화의 경우, 인생의 소소함을 과장 없이 잔잔하게 그려 큰 인기를 끌었는데, 국내에도 총 6권으로 발매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아베 야로의 원작과 2009년 방영한 드라마 모두의 인상적인 점이라면 '인생 얕보지마' 라는 극 중 대사처럼, 인생에 대한 조심스런 자세와 동시에 별다른 극적 장치 없이도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움직이게끔 만든다는 점이다. 자극적인 소재들이 넘쳐나는 요즈음, 이처럼 잔잔한 드라마는 그 자체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요즘 장난처럼 유행하게 된 '차가운 도시'. 이 작품은 바로 그 차가운 도시에 사는 외롭고 지친 이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10편의 길지 않은 분량의 '심야식당'은 일본 방영 시 오후 11시에 방영되었던 것처럼, 하루를 마감하며 자기 전 한 편씩 보기에 참 적절한 작품이다. 딱 하나 적절하지 않은 점이 있다면 극 중 등장하는 평범한, 너무나도 평범한 음식들이 몹시도 먹고 싶도록 묘사된다는 점일 텐데, 야심한 시각인지라 아마도 실제로 매주 11시에 이 작품을 보았더라면 매일 밤 극중 등장한 요리를 꼭 먹고 잠들어 다이어트에 가장 큰 적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음식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작품들의 경우 대부분 음식 자체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경우가 많은데, '심야식당'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겠다. 각 편마다 하나의 음식이 등장하지만 그 음식은 캐릭터의 인생을 비추는 하나의 매개체로 작용할 뿐이며, 음식 자체에 대한 찬양이나 기술적인 면으로는 연결되고자 하지 않는다. 10가지 다른 음식 이야기가 아닌 10가지의 다른 인생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각각의 인생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10편 마다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분량의 탓도 있겠지만, '심야식당'이 음식으로 담아낸 인생사는 자극적이지도 않고 아주 특별한 일도 많지 않다. 오히려 극적인 부분을 상당히 절제하고 있는 느낌이며, 작품이 이야기하려는 메시지처럼 인생이라는 것을 가볍게 다루지 않으면서도 누군가 제 3자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과장된 면을 최소화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 역동적인 전개나 장면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몹시 심심할 수도 있겠으나, 바로 그것이 '심야식당'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음식 자체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은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의 종류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존 음식이 주가 되는 작품에서 등장했던 최고급 요리 혹은 요리사의 혼이 깃든 절정의 작품에 가까운 요리는 '심야식당'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극중 등장하는 음식들은 하나 같이 단순하고 간편하다 못해 집에서 누구나 쉽게 해먹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포테이토 샌드위치, 소스 야키소바, 가츠돈, 오차즈케까지는 그렇다 쳐도, 그저 밥에 버터 넣고 비벼 먹는 버터 라이스나 맨밥에 가쓰오부시를 얹어 먹는 고양이 맘마 같은 경우는 요리라고 하기에도 너무 단촐한 구성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심야식당'에서는 바로 이 단순하고 평범한 음식에 인생이라는 큰 화두를 담아낸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만 덧붙이자면, 10화에 등장하는 라면 역시, 일본 특유의 맛을 자랑하는 그 라면이 아니라, 인스턴트 라면이 등장하니 말 다했다.




DVD Menu





총 3개의 디스크로 출시된 '심야식당' DVD는 1, 2번 디스크에는 각각 5편씩 본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3번째 디스크에는 부가영상이 수록되었다. 디스크 메뉴는 메인 메뉴가 바로 각화를 선택하는 일종의 장면선택 메뉴이며, 음성/자막을 선택할 수 있는 설정 페이지가 추가되었다.


DVD Quality

1.85:1 화면 비의 영상은 흔히 일본영화 타이틀에서 만날 수 있었던 평균적인 화질이라고 보면 되겠다. '심야식당' 같은 DVD를 보면서 어떤 이가 과연 칼 같은 화질을 원할는지 모르겠지만, 감상에는 당연히 불편을 주지 않는 준수한 수준이며 반대로 얘기하자면 작품의 특성상 차세대 화질까지 바랄 필요가 없는 타이틀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돌비디지털 2.0만을 제공하는 사운드 역시 크게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5.1채널의 멀티 사운드를 요하지 않는 작품이라 2.0만으로도 충분한 느낌이다.


DVD : Special Features

3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부가영상 중 가장 먼저 만나보게 될 서플은 '심야 식당 영업 직전 스페셜' 인데, 원작 만화에 대한 이야기서부터 출연배우들과 감독이 말하는 원작 만화의 매력과 감독이 전하는 주연 코바야시 카오루에 대한 인상 그리고 '마스터'를 연기한 코바야시 카오루가 촬영전 요리 연습을 하는 과정을 만나볼 수 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여러 감독이 함께 연출한 작품인데, 이렇게 한 작품을 나눠서 연출한 것에 대한 감독들의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고, 극중 등장하는 요리를 만든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 속 요리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제작과정'에서는 심야식당에 간다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답변으로 시작해,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만화 원작을 영화화하게 된 소감과 제작과정에서 있었던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참고로 심야식당에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이라는 질문과 답변은 감독의 인터뷰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다.





'코바야시 카오루 x 마츠오카 조지 스페셜 대담'에서는 각각 주연과 연출을 맡은 두 사람의 대담을 담고 있다. 약 20분 분량의 영상으로 편한 분위기 속에 작품에 대한 담담한 소회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극중 등장했던 '인생 흐르는 대로' '길 잃은 고양이' 두 곡의 뮤직비디오와 '방해꾼 BOY를 날려 버려!' 영상, 예고편 및 심야식당 메뉴 앨범, 사진관이 부가영상으로 수록되었다.



[총평] '심야식당' DVD는 작품에 대한 내용을 논하기 이전에, 국내 최초로 정식 발매되는 일본 드라마 타이틀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국내에 일드 팬들이 미드 못지 않게 존재한다는 점에서 '드디어' 이루게 된 정식발매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심야식당'을 계기로 더 많은 일드 타이틀을 만나볼 수 있길 바래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 주의 : 본 컨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재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생각할 것 많았던 추노의 마지막


'선덕여왕' 이후 오랜만에 재미있게 끝까지 잘 보았던 '추노'가 드디어 오늘 막을 내렸다. '추노'에 대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 정리하는 것은 너무 방대해질 우려가 있으니, 인상 깊었던 마지막 화에 대해서만 간단히 이야기하고 넘어가보려고 한다(사실 무언가 글로 쏟아내지 않으면 몹시도 답답할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다).

(혹시 몰라 스포일러 표시합니다. 당연히 추노 마지막 회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추노'는 구조상 처음부터 누군가가 마지막에 죽을 수 밖에는 없는 이야기였다. 단 누가 어떻게 죽을 것인지 혹은 누가 살아남을지가 관심거리였는데, '추노'는 이렇듯 '누가 죽고 사느냐'에만 몰입하고 있던 시청자들에게, '왜 살아남고' '왜 죽어야 했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인상적인 엔딩을 선사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누가 죽네마네'하며 손가락으로 그 경우의 수를 꼽아보았던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첫 번째로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 하는 업복이 (공형진). 바로 전회에서 믿었던 그(박기웅)에게 배신 당한 뒤, 이제야 마음을 고백한 초복이를 남겨두고, 초복이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궁궐로 향한 업복이의 이야기는,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의미있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사실 보통 같으면 자신들을 배신한 그에게 복수하고 자신은 장렬히 죽음을 당하는 것만으로 업복이의 이야기를 마무리 할 수 있었을텐데, 업복이의 이야기는 그 자신의 죽음으로 쓰는 메시지보다도 더 큰 메시지를 남겼다. 그것은 바로 극 내내 세상을 바꾸려는 업복이를 (적어도 겉으로는) 못마땅해 하고, 그저 주어진 노비의 삶을 살아가는데에 충실하려 했던(자신의 딸의 고통을 참아내면서까지) 반짝이 아버지에게로의 전파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렇게 어긋난 세상을 그저 순응하고 받아들이고 있던 평범한 반짝이 아버지에게, 양반노비 구별 없는 세상을 만들려다가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업복이의 삶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꽉 쥔 주먹으로 알 수 있듯이 반짝이 아버지의 삶은 극 마지막의 내레이션을 들려주지 않았더라도, 앞으로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해준다.





'추노'는 대부분 대길(장혁)과 송태하(오지호)의 이야기에 촛점이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극이 진행될 수록 황철웅(이종혁)에게 연민이 들었다. 그리고 황철웅이 사실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어쩌면 '누가 죽을까?'라는 어리석은 질문에서 어렵지 않게 죽음을 예상했었던 황철웅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초반을 제외하고는 인간적인 면모를 거의 지워낸 듯 했던 황철웅에게, 바로 마지막 직전에 다시 한번 어머니를 등장시키며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려 했을 때부터, 무언가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그렇지 않다면 이제 거의 살인귀로 다 몰아갔던 황철웅을 다시 한번 지옥에서 구해낼 이유가 없었다). 대길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대길에게 이렇게까지 자신을 막는 이유를 듣고 나서, 칼을 스스로 내린 순간 이미 황철웅은 이 싸움을 포기 한 듯 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들어섰다는걸 스스로 깨닫고 있던 황철웅은, 마지막에와서야 대길과 송태하의 집념을 새삼 느끼고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을 자인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황철웅은 집으로 돌아가,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불편한 아내에게 기대어 눈물을 흘린다. 이는 극중 내내 터지지 않았던 유일한 황철웅의 감정의 폭발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너무 깊게 잘못 되어 버린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준 황철웅의 마지막 진솔한 눈물은, 대길과 송태하의 눈물에 버금가는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대길과 언년이, 송태하의 마지막은 사실 앞선 이들에 비하면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바이고 전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감정이 울컥하는건 어쩔 수 없었다(물론 여기에 가장 큰 공은 '대길'이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창조해 낸 장혁이라는 배우 덕택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세상을 바꾸려 했던 남자와 세상을 바꾸려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된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운명을 선택해야 했던 한 여자의 이야기. 그렇게 한 세상을 살 다간 이들 이야기의 마지막은 예정되었던 대길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사실 다시 생각해봐도 대길의 죽음이 인상 깊은 것은 장혁의 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업복이와 황철웅의 마지막 보다 메시지 측면에서는 대단할 것이 없는 엔딩이었으나, 그 마지막에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장혁의 공이었다. 그리고 애초 '추노꾼 = 현상금 사냥꾼' 이라는 설정으로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을 연상시켰던 '추노'는 엔딩 장면에서는 아예 완벽한 오마주로, 이런 논란 아닌 논란에 대해 깔끔한 마침표를 찍었다. <카우보이 비밥>의 말할 것도 없는 팬인 나로서는, 그 오마주에 소름이 돋을 수 밖에는 없었다.



(아, 이제 이 장면을 볼 때 '대길'이 겹쳐 보일지도 모르겠다 ㅠ)


어쨋든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던 마지막을 (특히 업복이와 황철웅 때문이었다) 선사한 추노. (아, 그리고 초복이가 해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장면은 마치 <매트릭스 3>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라클이 사티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아, 이제 무슨 재미로 수요일, 목요일을 보낸다니.
이제 정녕 추노가 끝났다는 것이 말이여 당나귀여.

보너스.

광고 이후 나온 정말 '추노'의 마지막 장면.(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spedr.com/10b6i


p.s 1. 내가 정녕 죽은것인지 아닌지 어심을 읽으시게
     2. 나는 전반적으로 맞아 죽지 않았나 싶은데
     3. 형님들, 남아로 태어났으면 블루레이 한번은 출시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4. 이히히히히, 나 천지호야, 나 마지막회 안나왔다고 잊지마, 천지호야~~~~~~~

이제 이런 성대모사 연습한거 다 어디 써먹나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KBS에 있습니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 이후, 요즘 KBS에서 방영하는 <추노>를 1회부터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 매우 재미있게 본 편인 <선덕여왕>의 경우도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이야기했고 특히 미실없는 덕만이 등장한 이후에는 많이들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나는 미실없는 덕만 스토리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본 편이었다), 한 번도 따로 글을 쓴 적은 없었는데 이번 <추노>는 도저히 짧게라도 한 마디 안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뭐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상태라서 전체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분위기로 보았을 때 이대로의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추노>는 개인적으로 (아마도 많은 드라마 팬들이 그러할듯) 국내 TV드라마 가운데 블루레이 출시를 소원하게 되는 작품이 될 듯 하다.




어제 10화를 보고 든 생각은 '와, 진짜 연출, 연기, 로케이션 모두 비교대상을 훨씬 뛰어넘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드라마(월화수목 방영되는)가 벗어나기 어려운 약점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아쉬운 점들을 조금 이야기해보자면, 송태하와 언년이의 문제의 키스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의 감정선을 고려했을 때 이럴 수도 있겠다는 싶다(난 관대하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동안 송태하라는 캐릭터가 보여주었던 충성심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미뤄봤을 때 자신이 말한 것처럼 일각이 급한 시점에서, 그토록 보호해야 하는 마마가 배위에서 굳건히 기둥을 꼭 쥐고서 기다리고 있음에도, 언년이와 시간을 지체한 지점이었다(사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키스씬이 아닌 지체 부분이었다). 한섬이 이를 두고 어찌되었든 또 누군가를 구하러 갔다는 식으로 미화하려고 했지만 (마치 '네오'를 보는 듯), 그간 송태하를 보았던 시청자들로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추노>를 아쉬워하는 이들이 주로 언급하는 점들 가운데는 역시 '현실성'을 들 수 있겠는데, 뭐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리얼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의 허구는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언년이가 송태하의 큰 도를 한 손으로 번쩍번쩍 드는 것이나, 배에 상처를 입은 황철웅이 관군 수십명을 모두 제압한 뒤의 장면이라던지 등은 그 동안 일부 리얼리티로도 좋은 반응을 얻었던 (당시 재현 언어와 무기들로) 작품이어서 좀 더 아쉽게 느껴진 감이 없지 않다. 만약 이 작품이 이런 리얼리티를 모두 살렸다면 지금과 같은 인기나 관심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다큐로 오해하지 말자!) 아, 추가로 막장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출생의 비밀' 건은, 받아들이는 사람들로서는 '출생의 비밀'로 오해할 수 있지만 연출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 당시 양반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이 더욱 강했다고 생각한다. 즉, 대길과 언년이, 큰놈이 형제이자 남매라는 것도 분명 충격포인트이지만 그것보다는 양반들이 노비들을 어떻게 대하고 당시의 잘못된 제도가 만들어낸 폐해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 더 포인트라는 점이다.




여튼 <추노>는 참 흥미로운 작품이다. 일단 연기를 이야기해보자면 주연을 맡은 장혁 같은 경우 본인 최고의 작품을 드디어 만났다고 볼 수 있을텐데, 분명 오버스러움이 더해진 연기이지만 '이대길'이라는 캐릭터와는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터라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는다. 오지호의 경우 분명 처음에는 책을 읽는 듯한 대사 톤이 어색하게 느껴졌었는데, 익숙해져서 인지 점점 '송태하' 캐릭터와 겹쳐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짧은 시간내에 역대 최고 민폐 캐릭터로 등극한 '언년이' 역할의 이다해의 경우, 본인의 연기에 대한 내용보다는 역시 캐릭터에 대한 찬반(물론 반이 압도적으로 많지만)이 뜨거운데 뭐 이것저것 다 떠나서 민폐의 수준은 확실히 넘사벽인듯(어느 게시판을 보니 언년이의 민폐를 따로 정리한 고문서가 있던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포스가 흐르더라...).

<추노>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 인상적인 조연 캐릭터들과 연기자들이 아닐까 싶다. 그 중 최고는 역시 성동일 일텐데, 그간 코믹한 이미지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시청자들에게 공감대와 공포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최고의 열연을 펼치고 있다(사실 천지호가 황철웅에게 '버릇없이' 대들 때는 저래도 되나 싶을 때가 많다 ㅋ). 처음엔 까메오 출연인줄로만 알았던 공형진도 인상적이고 대길 패거리와....여튼 거론하기조차 너무 많은 한명한명 조연들의 연기만으로도 <추노>는 충분히 재미있다. 따지고보면 이렇게 주인공 외에 각각의 캐릭터에게 공감을 할 수 있었던 작품이 얼마나 있었나 싶기도 하고(화방 아저씨의 울컥함에도 살짝 공감이 되었을 정도니;;;).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로케이션이었다. <추노>는 정말 로케이션의 승리라고 할 만한 장면들이 여럿 등장했는데 특히 어제 10화에서 등장한 제주도 장면들은 장소가 장면을 만들어낸 최고의 순간이었다(이 장면을 보는 순간 블루레이 구입 욕구가 200% 증가했다!). 그리고 잘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은 레드원 카메라로 촬영이 되었는데, 역대 한국 드라마 가운데 최고의 영상과 화질을 선사하고 있다. 국내 TV방영 환경이 소스의 우월함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블루레이의 출시를 더욱 기대하게 된다.

앞으로 또 <추노>에 대해 글까지 쓸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엔딩 시점이나 아니면 완전히 막장으로 흐르게 되었을 경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여튼 누군가에게 '언니, 저도 추노 열심히 보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심정으로 짧게 나마 글을 남겨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KBS에 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