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카데미 시상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라이브로 TV를 통해 시청한 건 이번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매번 시간이 맞지 않아서 인터넷이나 다른 중계등을 통했었는데, 이번엔 쾌적하게 시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CGV의 동시통역 환경은 그리 좋지 못했던 것 같다. 동시통역이라는 것이 본래 매끄럽기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번 처럼 현장의 소리와 통역 소리가 거칠게 겹쳐지고, 또한 대충 들어도 빼먹는 부분이 많거나 통역사의 말투가 매끄럽지 못하다면 차라리 이전처럼 자막으로 제공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듯 싶다. 내년에는 좀 늦더라도 실시간 자막으로 제공하는 편이 좋을 듯.


2. 시상식 전부터 흑인 후보가 한 명도 지명되지 않는 것을 두고 일부 보이콧 까지 벌어졌던 이번 오스카는, 이를 의식한 듯 사회자 크리스 록의 작정 멘트들과 함께 다양한 부분에서 흑인들의 배제를 역으로 이용하는 순서들이 진행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데, 단 하나 스스로 만든 논란과 그 반대의 의견을 그 스스로의 무대에서 펼치는 것이 가능한 아카데미의 환경이 조금은 부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물론 애초에 논란을 안만드는 것이 가장 좋았겠지만).





3. 개인적으로 촬영상과 더불어 가장 주목했던 부문이 바로 여우조연상이었는데, 다섯 작품을 모두 관람한 결과 '대니쉬 걸'의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연기가 가장 손꼽을 만 했으나, '캐롤'의 루니 마라는 물론, '헤이트풀 8'의 제니퍼 제이슨 리와 '스티브 잡스'의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도 충분히 좋았고, '스포트라이트'의 레이첼 맥아담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나 이변이 나지는 않을까 흥미로웠던 부문이었다. 수상은 예상대로 비칸데르가 가져갔다. 루니 마라는 뭐, 칸에서 주연상도 받았는데 뭐. 차라리 주연상 후보에 루니 마라와 케이트 블란쳇이 동시에 올랐다면 더 흥미진진 했을 듯.


4.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초반 기세는 대단했다. '매드 맥스가 아니네요'라는 수상 발표 농담이 나올 정도로. 하지만 오히려 감독상이나 작품상의 주연 부문에서는 수상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작품성이 몹시 뛰어난 작품으로, 경쟁작들을 재치고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수상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오히려 한 편으로는 받았어야 할 작품이기도 하다.


5. 주제가상 후보로 오른 '유스'의 더 심플송의 공연이 되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아쉬웠다. 근데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곡이 주제가상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떠올랐던 생각이 '과연 이 곡을 어떻게 공연할 것인가'였는데, 역시나 시간 상 공연이 어려워 취소된 것이 아쉬웠다.


6. 음악상은 쟁쟁한 후보들을 재치고 엔니오 모리꼬네가 '헤이트풀 8'로 수상했는데, 공로상을 먼저 받고 아카데미를 그 후에 수상하는 경우가 또 있었나 싶다. 레오의 남우주연상도 그렇고, 스콜세지의 감독상도 그렇고, 모리꼬네도 '헤이트풀 8'로 수상하는 건 아이러니랄까.


7.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부문은 아마 촬영상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런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엠마누엘 누베즈키가 만든 '레버넌트'의 촬영이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혹시라도 그가 수상하지 않았더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엠마누엘 누베즈키와 만난 다른 후보들이 몹시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시카리오'의 로저 디킨스는 그저 눈물 ㅠㅠ





8. 이렇게 긴장되는 시상식이 또 있을까. 아마 나중에 우리나라 배우나 감독이 아카데미의 유력 수상 후보로 올라간다 해도 이보다 더 걱정되고 긴장되지는 않을 듯 하다. 골든글로브를 비롯해 여러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모든 예상이 디카프리오의 수상을 점칠 때마다 '혹시...'하는 걱정은 더 커져만 갔다. 그의 팬으로서 상을 꼭 탔으면 하는 것 보다도, 빨리 이 굴레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심정이 더 컸던 것이 사실 ㅋ '레버넌트'보다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로 수상하는 것이 더 적절했겠지만서도. 눈물이 날 법도 한데, 초연한 듯 환경 문제에 대한 수상소감을 힘있게 얘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후광마저 느껴졌다 @@ 다음 작품은 좀 덜 고생하고 가벼운, '캐치 미 이프 유 캔' 같은 영화 하나 했으면 좋겠다.


9. 나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작품들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지만, 감독상을 누구에게 줘야 하냐고 묻는다면 이번에는 조지 밀러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레버넌트'는 감독을 비롯한 배우, 스텝들의 영화적 야망이 아주 강렬하게 묻어난 작품이었는데, 아무래도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보다는 좀 더 아카데미 취향의 영화였던 것은 분명하다.





10. 맨 마지막 작품상 수상작으로 '스포트라이트'라고 모건 프리먼이 짧게 외쳤을 때, 혹시 일종의 페이크는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예상 못할 수준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의외의 결과였다. 좋은 영화였고,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극 중 마크 러팔로가 연기했던 실제 인물이 함께 자리를 한 것도 의미있었다.


11. 이렇게 이번 아카데미도 막을 내렸다. 뭐 상을 받고 못 받고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레오에게는 아닐 듯), 그보다는 인상 깊게 봤던 영화들의 장면들과 배우, 감독, 스텝들을 한 자리에서 만난다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후보작들 가운데 아직 못 본 '룸'이나 '사울의 아들', '트럼보', '브루클린' 등도 어서 봐야겠다.



* 이번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주요 작품들의 리뷰들.



레버넌트 _ 생존 그 자체에 대한 경외 (http://www.realfolkblues.co.kr/2063)

빅쇼트 _ 안일한 자본주의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 (http://www.realfolkblues.co.kr/2068)

스파이 브릿지 _ 신념을 지켜낸 자들의 우화 혹은 실화 (http://www.realfolkblues.co.kr/2038)

마션 _ 다시 우주를 꿈꾸게 만드는 휴먼드라마 (http://www.realfolkblues.co.kr/2017)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_ 여성은 스스로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http://www.realfolkblues.co.kr/1971)

스포트라이트 _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http://www.realfolkblues.co.kr/2077)

스티브 잡스 _ 전기 영화 아닌 치열한 캐릭터 영화 (http://www.realfolkblues.co.kr/2066)

대니쉬 걸 _ 진짜 나를 찾아줘 (http://www.realfolkblues.co.kr/2076)

캐롤 _ 아름답고 확고한 사랑의 이름 (http://www.realfolkblues.co.kr/2071)

헤이트풀 8 _ 타란티노의 첫 번째 오리지널 서부 영화 (http://www.realfolkblues.co.kr/2062)

인사이드 아웃 _ 부모의 마음으로 써내려간 미안함 (http://www.realfolkblues.co.kr/1985)

시카리오 _ 범죄와 현실의 가운데서 (http://www.realfolkblues.co.kr/2049)

침묵의 시선 _ 악마와 얼굴을 마주하다 (http://www.realfolkblues.co.kr/2010)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_ 새로운 삼부작의 시작 (http://www.realfolkblues.co.kr/2054)

007 스펙터 _ 어쩌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마지막 (http://www.realfolkblues.co.kr/2041)

엑스마키나 _ 인공지능에 관한 깊은 반복의 결과물 (http://www.realfolkblues.co.kr/1988)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자 (The Revenant, 2015)

생존, 그 자체의 대한 경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신작 '레버넌트 (망령, The Revenant, 2015)'는 생존에 관한 경외심을 한껏 담아낸 영화다. 네러티브 상으로 보았을 때 주인공 휴 글래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가족을 잃고 살인자를 쫓게 되는 과정은 복수극으로 볼 수 있지만, '레버넌트'는 복수극이라기 보다는 생존이라는 의미, 즉 환경과 인간 누구도 100%를 의도할 수 없는 그 자체의 상황과 극복에 대한 긴 여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 아니, 한 번 죽음에 닿았던 것이나 다름 없는 글래스는 생존이라는 대 서사의 앞에 놓인게 되고, 영화는 바로 그 과정을 최대한 가까이서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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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휴 글래스는 곰과의 사투로 사경을 해매기 이전 부터 이미 생존이라는 싸움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모피 사업을 하기 위해 원주민과 거래하거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다른 백인들과도, 그리고 원주민과도 다른 조금은 특별한 존재다. 원주민과 정을 나누어 아들인 호크와 함께 하게 된 글래스 부자는 원주민의 무리에도 그렇다고 백인들 무리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경계에 놓인 존재다. 이것이 글래스가 이미 영화의 시작 전 시점부터 생존이라는 고독한 상황에 놓여있었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어느 한 편에 서지 못하고 (한 편에 서지 못한 이유 또한 일종의 물리적 생존을 위한 처신이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견뎌왔던 글래스는 곰에게 습격을 받는 사고와 그 이후 벌어진 일들로 인해 실제적인 생존의 경계에 놓이게 되면서 견디는 것 이상의 사투를 벌이게 된다. 죽다 살아난 글래스의 앞에 펼쳐지는 한겨울 매서운 산과 대지라는 자연은, 그의 생존을 돕기도 또 더 힘들게도 한다.


이 생존의 과정 속에 만나게 되는 자연의 범주에는 동물과 원주민, 인간들까지 모두를 포함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를 단순한 복수극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글래스가 기여코 살아 남게 된 과정 속에는 단순히 아들을 죽인자를 찾아 복수하겠다는 일념의 에너지가 아니라 (오히려 복수극으로 본다면 이 복수심은 미약하게 그려지는 수준이다), 복합적인 생존이라는 싸움과 생존해야만 한다는 한 인간의 의지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는 거대한 자연과 순리의 현상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냐리투는 생존이라는 것이 어떠한 인간의 노력과 의지 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들까지 작용하는 더 경외로운 개념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허무함이나 무력함이 아니라 경외로움으로서의 생존. 그것이 이냐리투가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이 시대와 계절 속으로 카메라를 가져갔던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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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용 외적인 측면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누가 뭐래도 엠마누엘 누베즈키가 만들어낸 압도적인 영상이었다. 이미 전작 '버드맨'을 통해 이냐리투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엠마누엘 누베즈키 촬영 감독은 이번 '레버넌트'를 통해 경지에 이른 촬영을 선보인다. '버드맨'을 통해서도 인물의 심리에 맞춰 아주 가깝게 바로 뒤에서 쫓는 시점으로부터 시작되어 마치 현실과 영화를 넘나드는 듯한 카메라워크를 보여주었었는데, 이번 '레버넌트'에서는 이보다 더 진일보한 경지의 압도적인 촬영을 보여준다. 최대한 컷을 끊지 않고 긴 호흡으로 인물이 처해있는 상황과 눈 앞에 펼쳐진 현장의 거리와 분위기를 실제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대자연의 풍광에서 경외로움을 덜어내지 않고 담아내는 기술은 가히 압도적이라는 말 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디카프리오의 연기도 이냐리투의 연출도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도 모두 인상적이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엠마누엘 누베즈키의 촬영이다.



1. 레오의 팬으로서 이제 더이상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캐릭터는 최소한 한동안은 그만 했으면 ㅠ '캐치 미 이프 유 캔' 같은 캐릭터로 좀 환기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드네요 ^^


2. 또 한 번 디카프리오 얘기. 아무래도 그의 연기는 아카데미 수상을 안 떠올릴 수가 없게 만드는데, 그래서 더 안쓰럽달까. 워낙 영화 속에서 고생 고생 상고생을 하다보니 마치 그런 글래스의 모습에서 아카데미를 향한 레오의 고생 고생 상고생이 연상되기도 해서 흑;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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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2013)

기회의 땅의 그림자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또 한 번 호흡을 맞춘 신작 '월가의 늑대'를 보았다. 이미 여러 번 좋은 작품을 만들었던 콤비라 세 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임에도 다른 보고 싶은 개봉작들을 제쳐 두고 가장 먼저 선택하게 되었는데, 영화는 역시 스콜세지가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미국의 역사에 관한 또 다른 버전의 '좋은 친구들'이었고, 그의 페르소나인 디카프리오 역시 한껏 과장되고 힘이 들어간 캐릭터로 강렬한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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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1990년대 월 스트리트의 주식 중계인으로 큰 돈을 벌었던 조던 벨포트라는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할 만한 교훈 적인 삶을 살았거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연을 갖고 있는 경우인데 이 작품은 그 두 가지에 다 해당하지 않는 작품이다. 즉, 이야기는 조던 벨포트의 흥망성쇠를 따라가지만 스콜세지가 영화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조던 벨포트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 라기 보다는 미국이라는 한 국가이자 사회의 역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월가의 늑대'는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다룬 '에비에이터 (The Aviator, 2004)'보다는 '좋은 친구들 (Goodfellas, 1990)'이나 '갱스 오브 뉴욕 (Gangs of New York, 2002)'에 더 가깝다.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회의 나라 미국에 대한 이면을 그렸었다면, 미국의 가장 상징적인 곳 중 하나 인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성공과 실패를 겪게 되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스콜세지는 또 한 번 이 기회의 땅이 어떤 꿈과 좌절을 주는지, 그리고 그 기회라는 것 이면에 얼마나 많은 추악한 것들이 숨겨져 있는 지를 한참이나 늘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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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최근 본 어떤 작품들 보다 도 노출이나 선정성의 빈도가 잦은 작품이었다. 강도로 따지면 제일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 빈도 만을 놓고 보면 3시간의 러닝 타임 가운데 거의 2시간은 노출과 욕설, 마약과 섹스로 점철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과장과 답답함, 불편함이 섞여 있는 영화였다. 마초 적이어서 불편 하다기 보다는 이 영화가 이를 다루는 방식이 농담이나 친근함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한 편으론 조롱이라고 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조던 벨포트의 개인 사에 집중하기 보단 그가 본격적으로 월 가에 뛰어 들면서 부터의 이야기를 다룬 것도, 영화가 전반적으로 지니고 있던 과장과 불편함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영화의 마지막 세미나 장면에서 벨포트의 얼굴이 아닌 그의 강의를 초롱 초롱 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로 끝 맺음을 지은 것은, 겉으로 보기엔 누구 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기회의 나라 미국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고자 하는 듯 했다. 이렇게 3시간 내내 이야기했음에도 관객 중 적지 않은 수는 벨포트가 극 중에서 누렸던 그 부를 한 번 쯤은 누려보고 싶거나, 벨포트와는 달리 폭주하지 않고 적당히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런 관객들을 영화가 바라보는 시점 같아 씁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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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확실히 과장되어 있어요. 그의 연기가 과장되었다기 보다는 이 캐릭터 자체가 과장되었다고 봐야겠죠. 그의 얼굴과 연기는 점점 더 잭 니콜슨을 닮아가네요. 다음 작품은 좀 더 힘이 빠진 '캐치 미 이프 유 캔' 같은 작품이어도 좋을 것 같아요.


2. 매튜 매커너히는 출연 사실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반가웠어요. '아티스트'의 장 뒤자르댕도 그랬구요~


3.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극 중 벨포트를 소개해주는 사회자가 실제 조던 벨포트 인 것 같더군요.


4. 국내 용 영화 제목은 그냥 '월가의 늑대'로 했어도 좋았을 텐데;;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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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  분노의 추척자 _ 블루레이 리뷰
울분을 토해내는 타란티노식 서부극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언제나 유머와 수다, 그리고 반골 기질이 돋보이는데 그의 최신작 '장고 : 분노의 추적자' 역시 그랬다. '장고'라는 이름에서부터 전통적인 서부 극의 이미지가 짙게 풍기는데, 세르지오 코부치 감독과 프랑코 네로가 장고 역을 맡았던 1966년 작 '장고 (Django)'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서부극은 배경으로만 차용했다고 해도 좋을 또 다른 타란티노의 영화이기도 하다.


즉 타란티노는 '장고'라는 서부 극을 통해 온고지신의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당시의 오리지널 작법에 더 가까운 서부 영화를 만드는 동시에, 더 나아가 미국 역사에서 묵과되어 왔던 흑인 노예 (인종 차별)제도에 대한 불합리함을 자신 만의 방식으로 토해내고 있다.






얼핏 보면 전통적인 서부 극의 주인공이 백인이 아닌 노예 출신의 흑인이라는 것 정도의 단순 뒤집기로 볼 수도 있는데, '장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장고(제이미 폭스)가 흑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시선과 차별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그가 말을 타고 나타났을 때 그를 바라보는 백인들의 모습은, 아니 흑인들까지 포함하여 그를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씁쓸한 농담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장고가 본인 스스로를 노예라고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 여기에 불합리함을 평소 느껴왔다는 것, 그래서 자유 인이 되었을 때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시선을 받고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에서도 느껴지는 일반적인 측면이었다. 만약 이 영화가 노예 제도를 벗어나 홀로 주인이었던 백인들을 처단하는 흑인 장고의 활극이었다면 재미있는 영화는 되었을지 모르나 특별한 영화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자신이 언젠가 제대로 하긴 할 것 같았던 서부극을 연출하면서, 단순한 장르적 오마주나 재미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것 만으로도 타란티노 영화는 보는 맛이 있는데 말이다.






'장고'가 흥미롭고 인상적인 건 제이미 폭스가 연기한 장고 때문이 아니라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한 닥터 슐츠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닥터 슐츠는 타란티노가 만든 수 많은 매력적인 캐릭터들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힐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일단 그가 백인이기는 하지만 미국인이 아닌 독일인으로 등장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다.


흔히 들 이렇게 일반적인 설정을 뒤집는 영화 라거나 아니면 어두운 역사를 재평가하는 영화들을 보면, 그 가운데도 깨어 있는 이가 있었다라는 식의 면죄부 적인 설정이 등장하곤 하는데 타란티노의 영화엔 당연히 그런 자비로움이나 대충 넘어감은 없다. 바로 그 핵심적인 요소가 크리스토프 왈츠라는 배우를 통해 닥터 슐츠라는 캐릭터로 세련되게 표현되고 있다.


▽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닥터 슐츠라는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사실 장고를 저렇게 도와야 할 만한 이유가 크게 없어 보이는데,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오직 슐츠 만이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된다. 즉, 그가 장고를 돕게 되는 과정들을 인정이나 도움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의 연결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포인트일 것이다.


슐츠가 처음 장고를 만나게 된 것도 현상금을 얻기 위한 사적인 이유 때문이었고, 이후 그와 파트너가 되고자 했던 것도 거창한 노예 해방의 의의가 아닌 장고의 능력을 본 뒤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유 때문이었으며, 가장 결정적으로 나중에 목숨까지 버려가며 장고의 아내를 구하려고 한 것도 쉽게 말해 노예상인 칼빈 캔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행동거지에 배알이 꼬였기 때문이다.





타란티노가 '장고'라는 이야기를 하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캐릭터인 슐츠를 설명하는 동시에 이 영화 전반에 깔린, 그 근본 없는 자존심에 대한 비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칼빈 캔디와 슐츠와의 마지막 대화 장면이다. 이미 벌어질 일은 다 벌어졌고 다 종료되어 서로의 갈 길을 가면 되는 거였지만, 캔디와 슐츠는 각각의 이유로 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캔디는 돈을 벌기는 했지만 자존심이 상해 무언가 자신의 요구를 끝까지 관철 시켜야만 성이 찼을 터이고 (그것이 고작 악수하는 것이라도), 그 악수 정도 그냥 해주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지만 지금까지 캔디의 행동 하나하나가 계속 마음에 안 들었던 슐츠 역시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될 캔디를 (본인 역시 죽을 걸 알면서도) 결국 죽여야 했던 것이다.


'장고'의 내러티브가 흥미로운 건 바로 이 참고 억눌린 정서를 그냥 참고 넘기려다가(넘겨주려 했는데) 결국 화를 돋군 이로 인해 폭발하게 되는 점인데, 그 '참고 있는' 이와 '계속 신경을 건드는 이' 사이의 긴장감은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타란티노의 영화가 흥분되는 건 바로 이런 지점이다. 결국 참지 않고 화끈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설사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캐릭터들은 그래서 호 불호도 강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 스포일러 끝


한 편으로 '장고'는 전작 '바스터즈'와 같은 맥락에 놓여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 편에서도 그냥 뒤집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자신 만의 다소 과한 방식으로 해소 했듯이, 이번 작품에서 역시 후반부의 총격 씬은 '킬 빌'의 총기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피와 살점이 낭자하는 과함을 보여준다. 이런 식의 장면을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처음 보았을 땐 보여지는 측면의 재미나 영상미 적인 측면 만을 주목했었는데, '장고'에서부터는 더욱 확연히 메시지적인 측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재미나 영상미가 포인트라기 보다는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 혹은 울분의 포효처럼 보였다. 타란티노는 자신이 뭔가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진지하게 풀어내기 보다는 쿨함을 유지하며 유머와 조소를 섞은 뒤에 마지막에 가서는 피와 살육으로 피해자 혹은 고통 받던 이들의 울분을 토해 내곤 하는데, '장고'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장고'의 마지막 총격전은 잔인한 장면이 많았음에도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에서 볼 수 있었다.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았던 것을 해소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다양한 장르의 오마주를 선보이던 타란티노가 언젠가는 한 번 꼭 만들 줄 알았던 서부 영화이자, 단순히 오마주를 넘어서 그냥 60년 대 당시 서부영화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만든 오리지널리티는 물론, 사회적 약자의 울분을 분노로만 일방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3자를 통해 극히 상식적으로 표현한 메시지가 참으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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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은 최신작다운 우수한 화질이나 최근 출시된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는 영상 자체의 성격이 더 부각된 영상이기에, 최신 액션 영화나 드라마의 칼 같은 날카로움과 쨍한 화질을 기대했다면 조금은 아쉬울 수도 있겠다. 인트로 장면에서는 강한 대비로 인해 강렬하고 인상 깊은 화질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 후 부터는 좀 더 부드러운 화질을 평균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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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장면에서의 표현력도 나쁘지 않고 클로즈 업 장면에서는 역시 블루레이 다운 화질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중반 이후 캔디 랜드 장면부터는 붉은 조명 빛이 주가 되는 비교적 어두운 장면들이 많은데, 전반적으로 붉은 화면의 디테일이 매우 뛰어난 편은 아니다. 특히 영상의 포커스에 있어서 디테일 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색감의 표현 쪽에 더 집중한 영상인지라 화질 측면에서는 장면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배경, 사물의 디테일 체크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영상의 아쉬움은 화질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본래 영상의 의도된 점이 반영된 것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실제로 극장에서 보았을 때에도 화질이 좋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을 정도로, '장고'는 칼 같고 선명한 화질 보다는 서부극의 느낌이 강한 동시에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각 시퀀스마다의 톤이 강한 영상을 담고 있다. 오히려 극장보다는 블루레이를 통해 캔디 랜드에서 벌어지는 어두운 조명의 장면들과 클라이맥스의 대 혈전은 더 생생하고 자극적으로 전달 된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는 총격 씬이 많은 영화답게 화려함과 임팩트를 모두 갖추었다. 일단 영화를 보는 순간 구매 생각부터 하게 되는 사운드 트랙의 강렬함이 사운드로 그대로 전달 된다. 타란티노 영화의 수록 곡들이 하나 같이 좋은 것은 이제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지만, '장고'의 수록 곡들은 원작인 1966년 작 '장고'에 수록된 곡들이 다시 빛을 발할 정도로 완벽한 싱크로율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보컬과 올드 한 악기 소리들이 귀에 착 와 감긴다.




(오리지널 서부극 느낌이 물씬 나는 타이틀 시퀀스에 흐르는 Luis Bacalov와 Rocky Roberts의 'Django'는 단 번에 보는 이를 화면 속으로 끌어 들인다)


'장고'의 총격 씬 가운데 초 중반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갑작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그 갑작스러움을 배가 시켜주는 것은 바로 그 순간 반짝하는 사운드다.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서부터 발사 시에 발생하는 더 큰 소리까지 (근래의 작은 권총 격발 시에 비하면 더 큰 소리). 총격 씬 만으로도 블루레이 사운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들려준다. 클라이맥스와 그 이전 총격 씬은 그야말로 옆집에 사람이 있다면 리모컨을 손에 들고 볼륨을 예의 조작하며 봐야 할 정도로 강렬한데, 단순히 격발음 뿐 만 아니라 총알이 나무로 된 벽과 사람의 육체에 박히고 튀는 소리들이 정말 피가 사방으로 튀듯 온 방을 휘젓기 때문이다. 공간감과 파워 모두 만족스러운 사운드였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은 크게 총 4가지 정도를 수록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는 'Reimagining the Spaghetti Western'으로 극 중에서 선보인 말들이 동원된 액션 촬영에 관한 이야기와 스턴트의 뒷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사실 관객은 크게 인식하지 못했지만 '장고'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가 바로 말(Horse)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말이 함께하는 다양한 스턴트 장면을 촬영하면서도 말과 사람 모두 다치지 않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새로운 장면들을 시도해야 했기에 쉽지 않은 촬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전설과 선배를 존중하는 타란티노답게 이 스턴트를 위해 이 업계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이들을 영화에 참여시키고 있었다. 이 부가영상은 바로 이 스턴트를 함께 만든 스텝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The Costume Designs of Sharen Davis'는 이 영화의 의상 디자인을 맡은 샤런 데이비스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었는데, 시대극인 만큼 고증과 창의력이 더해진 특별한 의상 들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Remembering J. Michael Riva'는 이 작품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J. 마이클 리바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되었는데 아쉽게도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그를 동료들의 이야기와 그가 남긴 디자인 작품들로 만나볼 수 있다. 마이클 리바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아이언 맨 1,2' 등 최근에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었었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 '장고'가 유작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블루레이 컬렉션과 '장고' 사운드 트랙의 짧은 프로모션 영상이 각각 수록되었다.




[총평]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타란티노 세계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거기에 좀 더 흥미로운 요소가 가미 되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 작품이었다. 특히 색다른 연기를 보여준 디카프리오와 장고 역을 맡아 열연한 제이미 폭스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바스터즈'때 와는 또 다른 범접할 수 없는 매력을 선보인 닥터 슐츠를 연기한 크리스토프 왈츠를 빼고는 말할 수 없는 작품이기도 했다. 추가로 아직 1966년 작 '장고'를 보지 못했다면 한 번쯤 찾아봐도 좋을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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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2013)

화려함이 독이 된 바즈 루어만의 또 다른 물랑루즈



바즈 루어만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그의 필모그래피를 빼놓지 않고 봐왔었고, 무엇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캐리 멀리건이 출연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 '위대한 개츠비'는 원작을 제쳐두더라도 관심이 가는 작품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바즈 루어만은 이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과 스타일대로 연출했는데, 그 스타일이 이 이야기와는 잘 맞지 않는 듯 했다. 바즈 루어만은 이 고전을 21세기에 새롭게 펼쳐 놓으면서 무언가 다른 볼거리와 화려함으로 업그레이드 하려 했지만, 결국 이 시도는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적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  Village Roadshow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원작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보자면 극 중 개츠비의 심리는 물론 그 외의 인물들의 심리를 100% 이해하기에 영화의 내러티브는 상당히 부족한 편이었다. 물론 말미에 개츠비의 심리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기도 하고, 개츠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거의 낭비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바즈 루어만은 개츠비를 중심으로 데이지와의 로맨스를 그리는 것은 물론, 닉 캐러웨이를 화자로 하여 전반적인 구조를 설명하고 더 나아가 그 시대가 담고 있던 깊은 경고와 반성의 메시지까지 녹여내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너무 집중력이 분산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화려함이 너무 과했다. 화려함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화려함은 바즈 루어만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니던가) 이 화려함의 활용을 통해 오히려 메시지의 깊이를 더 견고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그저 화려한 눈 요기로만 남은 것이 안타까운 점이었다. 3D 버전은 보지 않았지만, 아마 3D로 보았다면 그 안타까움은 더 커졌으리라.



ⓒ  Village Roadshow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총 천연 색의 활용과 볼거리 가득한 화려함은 분명 바즈 루어만의 장기다. 바즈 루어만은 '위대한 개츠비'를 마치 '물랑루즈'처럼 찍었는데, '물랑루즈'의 경우 딱 맞는 옷이었지만 '위대한 개츠비'는 그 옷만 보이는 경우였다. 즉, 극 중 개츠비가 화려한 대규모의 파티를 매주 여는 것을 두고 세간에서 보는 일반적인 시선과 개츠비의 숨은 의도가 있는 것처럼 이 화려함의 정당성을 이끌어 냈어야 했는데, 영화의 화려함은 그저 공허함 만을 남겼다. 특히 음악의 활용도 실패였다고 생각하는데, 이 역시 '물랑루즈'와 마찬가지로 기존 곡들을 다시 활용하는 방식을 사용했으나 그 원곡이 무엇인지 알아채는 기쁨 외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었다. 제이 지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뮤지션인데, 어쨋든 '위대한 개츠비'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가 제작자로 참여하고 있는 점도 한 몫 했으려나;;). 



ⓒ  Village Roadshow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아쉬운 점만 쭉 늘어놓았으나 만족스러운 점도 있었는데, 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바즈 루어만의 재회랄까. 바즈 루어만은 마치 예전 '로미오와 줄리엣' 출연했던 그 아름답고 풋풋한 미소년을 그리듯, '위대한 개츠비' 속 레오를 그려내고 있었다. 약간 CG가 더해진 듯 했지만 (레오 뿐만 아니라 배경에 CG가 워낙 강하다 보니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도 CG 느낌이 강하게 난다) 미모로 관객을 사로잡는 레오의 매력을 또 한 번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그의 팬으로서 반가웠다. 그와는 정반대로 캐리 멀리건은 정말 매력적인 배우인데 그 매력이 거의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 다는 점에서 그녀 필모에서는 좋지 않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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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 분노의 추적자 (Django Unchained, 2012)

울분을 통해내는 타란티노식 서부극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언제나 유머와 수다, 그리고 반골 기질이 돋보이는데 그의 신작 '장고 : 분노의 추적자' 역시 그랬다. '장고'라는 이름에서 부터 전통적인 서부 극의 이미지가 짙게 풍기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서부 극은 배경으로만 차용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냥 또 다른 타란티노의 영화다. 오히려 타란티노는 '장고'라는 서부 극을 통해 서부 극과 미국 영화의 전통적인 요소 더 나아가 미국 역사에서 묵과되어 왔던 흑인 노예 (인종 차별)에 대한 부분을 대놓고 뒤집는 작품을 만들었다.



ⓒ  Weinstein Company, The. All rights reserved


얼핏 보면 전통적인 서부 극의 주인공이 노예 출신의 흑인이라는 것 정도로 뒤집기인가 생각할 수 있는데, '장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장고 (제이미 폭스)가 흑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시선과 차별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그가 말을 타고 나타났을 때 그를 바라보는 백인들의 모습은, 아니 흑인들까지 포함하여 그를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씁쓸한 농담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장고가 본인 스스로를 노예라고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 여기에 불합리함을 평소 느껴왔다는 것, 그래서 자유 인이 되었을 때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시선을 받고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에서도 느껴지는 일반적인 측면이었다.


'장고'가 흥미롭고 인상적인 건 제이미 폭스가 연기한 장고 때문이 아니라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한 닥터 슐츠라는 캐릭터 때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일단 그가 백인이기는 하지만 미국인이 아닌 독일인으로 등장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었다. 흔히 들 이런 뒤집는 영화 라거나 아니면 어두운 역사를 재평가하는 영화들을 보면, 그 가운데도 깨어 있는 이가 있었다라는 식의 면죄부 적인 설정이 등장하곤 하는데 타란티노의 영화엔 당연히 그런 자비로움은 없다.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Weinstein Company, The. All rights reserved


닥터 슐츠라는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사실 장고를 저렇게 도와야 할 만한 이유가 크게 없어 보이는데,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오직 슐츠 만이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도 된다. 즉, 그가 장고를 돕게 되는 과정들을 인정이나 도움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것의 연결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포인트일 것이다. 슐츠가 처음 장고를 만나게 된 것도 현상금을 얻기 위한 사적인 이유 때문이었고, 이후 그와 파트너가 되고자 했던 것도 장고의 능력을 본 뒤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유 때문이었으며, 가장 결정적으로 나중에 목숨까지 버려가며 장고의 아내를 구하려고 한 것도 쉽게 말해 배알이 꼬여서 였기 때문이다.


타란티노가 '장고'라는 이야기를 하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캐릭터인 슐츠를 설명하는 동시에, 이 영화 전반에 깔린 그 근본 없는 자존심에 대한 비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칼빈 캔디와 슐츠와의 마지막 대화 장면이다. 이미 벌어질 일은 다 벌어졌고 다 종료되었으나, 캔디와 슐츠는 각각의 이유로 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캔디는 돈을 벌기는 했지만 자존심이 상해 무언가 자신의 요구를 끝까지 관철 시켜야만 성이 찼을 터이고 (그것이 고작 악수하는 것이라도), 그 악수 정도 그냥 해주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지만 이 말도 안되는 캔디가 계속 마음에 안 들었던 슐츠 역시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될 캔디를 결국 죽여야 했던 것이다. 타란티노의 영화가 가끔 흥분되는 건 바로 이런 지점이다. 참지 않고 화끈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설사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캐릭터들은 이래서 매력적이다.



ⓒ  Weinstein Company, The. All rights reserved


한 편으로 '장고'는 전작 '바스터즈'와 같은 맥락에 놓여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전 편에서도 그냥 뒤집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자신 만의 과한 방식으로 해소 했듯이, 이번 작품에서 역시 후반부의 총격씬은 '킬 빌'의 총기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피와 살점이 낭 자하는 과함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땐 보여지는 측면의 재미나 영상미 적인 측면을 주목했었는데, '장고'에서부터는 더욱 확연히 다른 측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재미나 영상미가 포인트라기 보다는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 혹은 포효처럼 보였다. 타란티노는 자신이 뭔가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진지하게 풀어내기 보다는 유머와 조소를 섞은 뒤에 마지막에 가서는 피와 살육으로 피해자 혹은 고통 받던 이들의 울분을 토해내는 듯 했다. 그래서 '장고'의 마지막 총격전은 잔인한 장면이 많았음에도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에서 볼 수 있었다.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았던 것을 해소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Weinstein Company, The. All rights reserved


이 글에서 미처 다 얘기하지는 못했지만 타란티노 영화 답게 깨알 같은 재미 들도 여전해서 좋았던 작품이었다. 아, 그리고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바스터즈' 만큼이나 혹은 더 크리스토프 왈츠가 매력적이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1. 타란티노 영화 답게 사운드트랙도 정말 좋습니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OST를 질렀는데 역시나 만족. 뭔가 비장하면서도 신나게 출근하고 싶은 날엔 장고 OST를 BGM으로 사용하곤 하죠 ㅋ


2. 디카프리오는 워낙에 매력적인 크리스토프 왈츠에 비해 좀 가려지기는 했지만, 이런 조연으로서의 매력도 보여준 것 같아 신선하더군요. 진짜 더 나이 먹으면 잭 니콜슨 처럼 될 것 같아요 (이건 칭찬)


3. 캔디의 일당 가운데 복면을 한 유일한 여자 멤버가 있는데, 조이 벨이더군요. 눈빛만 봐도 이제는 알아볼 정도 ㅎ 아, 그리고 조나 힐도 나와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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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에드가 (J.Edgar, 2011)
역사를 관통한 한 남자의 소박한 이야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작 '제이 에드가 (J. Edgar, 2011)'는 미국 FBI를 창설한 인물로 알려진 실존인물 J. 에드가 후버(John Edgar Hoover)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거장이 연출하고 디카프리오와 나오미 왓츠, '소셜 네트워크'에서 쌍둥이 형제를 연기한 아미 해머 등이 출연한 작품이지만, 아쉽게도 국내에는 극장 개봉조차 못하고 바로 블루레이로 출시되는 불운을 겪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게 블루레이로 보게 된 'J.에드가'는 제이 에드가라는 실존 인물과 그가 관통하고 있던 미국 정치의 역사를 그리지만, 영화가 역사적으로 제이 에드가를 평가하기 보다는 관객에게 평가의 기회를 돌리고 있는 작품이었다.







얼핏 관객에게 평가의 기회를 돌렸다는 얘기는 일반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이 작품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좀 더 흥미로울 수 있는 부분인데, 보수 성향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역시 보수 성향의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 제이 에드가를 묘사하게 된 경우였기 때문이다. 사실 보는 내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어떤 식으로 제이 에드가를 묘사하는지에 대해 촉각이 곤두설 수 밖에는 없었는데, 그는 관객에게 그 평가를 돌린 것처럼 제이 에드가를 어느 한 쪽에서 편향되어 묘사하지 않고 아슬아슬한 중립의 줄타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즉, 지금의 CSI로 흔히 불리우는 과학수사를 최초로 도입한 인물로서 그의 공적을 묘사하기는 하지만, 이 기술적인 사실을 단순히 공로로만 그리기 보다는 수 많은 시민들을 모두 데이터화하여 중앙에서 관리하는 것에 대한 위험이나 공포에 대한 뉘앙스도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담아내고 있다. 또한 현재에도 제이 에드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역사가들 조차 그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못할 정도로 홀로 권력과 정보를 쥐고 있었던 그를, 한편으로는 사람들과 쉽게 가까워지지 못하고 자신의 진심을 꺼내는 데에 서투르며 어머니의 품 속에서만 평온을 얻던 아주 여린 한 남자로 묘사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권력을 쥐고 행했던 일들에 대한 이유로서 강요하고 있지는 않다. 좀 더 극적으로 묘사하려 했었다면 겉으로는 칼 같고 냉철한 FBI국장으로서의 면모 뒤에는 너무도 여린 한 남자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을 테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런 극적인 방식보다는 거의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의 미묘한 정도를 택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나이가 들어갈 수록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이러한 감정 표현에 더욱 집중하는 듯 하다.






이제 더 이상 디카프리오에게 연기 잘한다는 얘기는 무의미 하지만, 노년의 모습까지 연기하는 레오를 보니 다시 한 번 잭 니콜슨이 연상되기도 했다. 젊은 시절을 연기할 때도 기본적으로 살을 찌우고, 기존에 보여주었던 스마트한 캐릭터들과는 완전한 차별을 두는 것은 물론, 노년의 에드가를 연기할 때는 완전한 노역 분장과 불룩 나온 배가 별로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움을 보여주었다. 아미 해머가 연기를 잘 하기는 했지만 노역을 연기할 때는 분장과 배우 사이에 조금의 이질감이 느껴졌다는 것과 비교해보면, 디카프리오의 노역 연기가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일에 미친 실존 인물을 연기하다보니 마틴 스콜세지와 함께 했던 '에비에이터 (The Aviator, 2004)'를 연상시키기도 했는데 (재판 장면과 청문회 장면이 겹쳐지기도 하고), 분명한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을 정도로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좋았다. 여러 거장들과 함께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그의 모습에, 그 다음, 또 다음 작품을 계속 기대할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참고로 디카프리오는 올해 바즈 루어만과 재회한 '위대한 개츠비'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 '장고 언체인디드 (Django Unchained, 2012)'를 통해 다시 한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타란티노와 디카프리오라니! 벌써 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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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에드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여러 작품을 함께 해오고 있는 촬영 감독 톰 스턴과 미술감독 제임스 J. 무라카미의 합작품인데, 그렇기 때문에 최근 이스트우드의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색감과 톤을 영상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톤에 채도는 떨어져 있으며 장면 자체도 어두운 장면들이 많아 화려하거나 칼 같은 화질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화질을 보여준다. 물론 시종일관 일정하게 다운된 톤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는 디테일들도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최근 작품들에서 보여준 영상이 명암을 깊게 가져가지만 암부를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작품들은 아니기 때문에 기술적인 화질 측면에서 체감하기에는 심심한 영상일 수 있겠다.







사운드 역시 소소한 액션 장면들이 아주 잠깐 등장할 때는 나도 모르게 리모컨으로 손이 가 볼륨을 줄이게 될 정도로 임팩트가 있지만, 조용한 드라마의 특성상 블루레이 타이틀 만의 사운드를 쉽게 체감하기는 어렵다. 화질이 그렇듯이 사운드도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이런 평가는 상대적인 체감에 대한 부분인데, 개별 퀄리티만 놓고 따져본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은 영화 음악은 물론 대사와 기타 사운드 전달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다. 특히 아미 해머의 매력적인 중저음 보이스를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제이 에드가' 블루레이 타이틀의 아쉬운 점은 너무 단촐한 부가영상이다. 'J. EDGAR:THE MOST POWERFUL MAN IN THE WORLD'라는 제목의 약 18분 분량의 다큐만을 수록하고 있는데 (북미버전도 마찬가지다), 실존 인물과 역사를 다룬 작품이라 이야기할 거리가 무궁무진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과, 더 많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궁금증이 컸던 터라 단촐한 부가영상의 구성은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부가영상은 실존 인물인 제이 에드가 후퍼를 둘러싼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베일에 둘러 쌓여 있던 (지금도;) 인물이었기에 구체적인 평가를 하기 보다는 추측이나 주변의 내용들을 정리해 주는 성격을 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디카프리오가 함께한 촬영장의 뒷 이야기들도 이 못지 않게 궁금했었는데, 이런 부분들을 만나볼 수 없음이 두 사람 모두의 열혈 팬으로서 아쉬운 점이었다.





[총평]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합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제이 에드가'는 그 기대치에 비하면 어쩌면 임팩트가 부족한 작품이었을지 모른다 (여기에는 개봉조차 하지 못한 탓도 크다). 하지만 두 사람의 필모그래피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충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에비에이터'에 이어 실존 인물의 (사실상) 원톱 영화를 다시 한 번 짊어지게 된 디카프리오의 성장한 모습과 최근 들어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만큼이나 극장을 나와 문득 문득 곱씹고 싶어지는 영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만나볼 수 있는 그리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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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Titanic, IMAX 3D, 2012)

3D로 다시 본 타이타닉 그리고 1998년의 추억



최근 아이맥스 3D로 재개봉한 제임스 카메론의 대표작 '타이타닉 (Titanic, 2012)'를 보았다. 최근 본 영화 '건축학개론'도 그랬지만 이 영화 '타이타닉'은 나로 하여금 90년대를 다시금 추억하게 만들었는데, 한 편으론 '와, 벌써 시간이 이렇게 훌쩍 지났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은 사실 지금처럼 영화를 열심히 보지는 않던 어린 시절에 본 영화라 복잡한 의미나 생각보다는, 훨씬 간결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작품이었는데 3D나 아이맥스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 추억 속의 대작을 극장에서 다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일이었다. 그렇게 다시 보게 된 '타이타닉'은 이미 DVD를 통해 여러 차례 보았을 정도로 익숙한 영화였으나, 또 다시 빠져들도록 만드는 매력을 여전히 갖고 있는 작품이었으며, 10년이 넘는 세월이 만들어낸 또 다른 감정과 디테일을 만나볼 수 있는 두근대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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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또 봐도, 탄성이 마음 속으로가 아니라 입밖으로 터져나올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디카프리오의 저 미모!!)


이번에 '타이타닉'을 극장에서 대화면으로 다시 보며 새삼 느낀 바이지만,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이고 위대한 부분은 타이타닉 호의 엄청난 스케일이나 재난을 현실적으로 그린 부분이 아니라, 주인공 '잭 도슨'이라는 캐릭터를 관객들이 사랑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관객들이 잭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잭이 로즈를 구해준 댓가로 부자들이 참석하는 저녁 식사에 초대받고 시계 아래 계단에서 로즈를 기다리던 그 때. 계단 위 로즈를 발견하고 지긋이 위로 로즈를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마스크는 모든 관객을 로즈와 같은 느낌을 받도록 만들었다. 즉, 이 순간 자기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극중 '잭'에게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허름한 주인공이 그럴싸한 옷으로 치장하고 나타나는 수 많은 장면들 가운데서도, 개인적으로는 '타이타닉'의 이 장면을 가장 최고로 꼽고 싶다. 그리고 이번 재관람에서도 역시 (뻔히 다 알면서!!) 바로 이 순간 나도 모르게 또 한 번 탄성을 내뱉을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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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1998년 개봉 당시 극장 내에서는 디카프리오가 처음 양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 여기저기서 '우아~'하는 소리가 객석에서 터져나왔으며, 위에서 언급한 바로 저 장면에서 역시 정말 날개를 단 디카프리오를 보고는 '멋있다~' '하트 뿅뿅'의 탄성들이 터져나왔다. 물론 이 장면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배우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는 했지만, 바로 이 순간 관객들은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잭'에게 완전히 빠져들게 되어 이후 잭이 겪게 되는 러브 스토리와 대재난의 과정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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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이리와서 3D 체험 한 번 해볼래요?)


3D 아이맥스로 본 소감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확실히 3D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들에 비해서 입체 효과가 두드러지는 장면이 많지는 않았으나 억지스러운 효과 (일부러 입체 효과를 내려고 굳이 만들어낸 장면들 같은)는 찾아볼 수 없었다. 3D에 대한 기대치가 높거나 화끈한 입체효과를 기대했던 이들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는데, 개인적으로는 1997년 작임을 감안했을 때 이 정도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수준의 적절한 효과였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건 '타이타닉'의 가장 대표 명장면 중 하나인 두 주인공의 '두 팔벌려 타이타닉 자세(?)' 장면인데, 이 장면을 3D로 보고 있노라니 제임스 카메론이 이 장면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3D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ㅎ 다름이 아니라 잭은 로즈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고는 로즈를 위에 올라가도록 하고는 눈 앞에 펼쳐진 대양을 한 눈에 들어오도록 체험을 시켜주는데, 이것이 바로 3D입체 체험이 아니었나 싶다 ㅋ (로즈도 '날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체험 소감을 밝히지 않았는가!). 워낙에 이런 기술 쪽에 관심이 많은 제임스 카메론이다보니 이렇게까지 연결지어 생각되는게 재미있기도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3D도 좋지만 아이맥스라는 포맷이 '타이타닉'을 즐기는데에 좀 더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워낙에 스케일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인지 아이맥스라는 포맷을 만나니 확실히 시너지가 발생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역시 여러 번이나 보았던 장면임에도 '와~'하는 탄성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아이맥스라는 대화면의 영향이 컸다.




(1998년 당시 서울극장에서 본 '타이타닉' 영화 입장권. 잘 보관한 탓에 아직도 소장하고 있다)


'타이타닉'을 처음 극장에서 본 건 1998년이었다. 아마도 고등학교 때 여름 방학 기간 중이 아니었나 싶은데,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종로의 서울 극장에 가서 긴 줄을 서서 티켓을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지금처럼 멀티 플렉스도 없고(혹은 많지 않고) 영화를 보려면 거의 무조건 종로(서울극장, 스카라, 대한극장, 피카디리)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개봉관 하면 제일 먼저 서울극장을 떠올리곤 했던 때라 '타이타닉' 역시 이 곳에서 보게 되었다. 얼핏 기억으로는 당시 '타이타닉'부터 극장 요금 상승을 적응하는가 마는가를 가지고 애국심까지 들먹일 정도의 티켓 가격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어쨋든 그 만큼 화제작이었고, 음...화제작이었다.


당시 반 친구들과 '타이타닉'을 보고 나와서 한 참 동안이나 여운에 빠져 살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제곡인 'My Heart Will Go On'은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세뇌되다시피 했었으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대한 인상은 남자인 나로서도 무척이나 강한 인상을 남겼으니 여자 아이들이 어떻게 느꼈을지는 말 다했다. 당시에는 워낙에 레오의 팬덤이 대단했고 아이돌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무거운 케이트 윈슬렛 때문에 우리 오빠가 그리 되었다 ㅠ'라는 얘기가 돌기도 했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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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다시 보게 되는 영화는 아예 다른 포인트로 감상을 하게 되거나, 놓쳤던 장면들을 새롭게 만나는 재미가 주를 이루게 되는데, '타이타닉'의 경우 10년 넘는 세월이 흐르기도 했지만 (그 중간에 DVD로 본 걸 감안하면 5년 정도?)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거의 처음 보는 것과 동일한 감상을 할 수 있었다. 다 아는 내용은 물론 장면 하나하나도 다 기억할 만큼 익숙한 작품임에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푹 빠져서 울고 웃을 수 있었던 것이야 말로 '타이타닉'이라는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니었나 싶다. 아... 오늘은 하루 종일 타이타닉 OST를 들으며 대양의 심장이 어디쯤 있을까 모험을 계획해 봐야겠다.



1. 예전 극장 자막까지는 기억이 100% 안나지만, DVD로 봤을 때의 자막과는 아이맥스 번역이 조금 달라졌더군요. 침몰 직전까지 연주하던 악사들의 마지막 대사는 '오늘 밤 자네들과 연주하게 되어 영광이었네'라는 번역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오늘 밤 자네들과의 연주 즐거웠네'로 번역되었고, 마지막 빌 팩스톤의 대사에서도 '그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 걸 잊었다'라는 식의 대사가 아주 인상적이었었는데, 이번 아이맥스에서는 없더군요. 몇 군데 비슷한 사례가 더 있었던 것 같아요.


2. 예전엔 몰랐었는데 극중 로즈를 수발들던 여 하인이 나중에 침몰 될 때 추락해 죽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3. 회사에 아직 '타이타닉'을 제대로 안 본 분이 있더군요!! 어찌나 부럽던지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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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상 깊게 본 작품 중 하나인 '클로니클'에서 유난히 돋보이고 또 극장을 나오고 나서도 계속 이미지가 아른 거리는 (여배우도 아닌!) 배우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주인공 '앤드류' 역할을 맡은 데인 드한 (Dane DeHaan) 이었다.



'클로니클'에서 데인 드한이 연기한 앤드류 라는 캐릭터는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기에 좋은 예였는데, 초반 친구도 없이 홀로 외롭게 지내는 소극적인 캐릭터에서부터, 이후 초능력을 얻게 되면서 점점 변해가는 과정과 이후 분노를 폭발시켜 폭주하게 되는 것까지. 앤드류라는 캐릭터는 데인 드한이라는 신인 배우를 단 번에 세상에 알리는 데에 매우 좋은 옷이였다. 그런데 영화를 볼 때도 그랬지만 초반 여리고 약해보이는 모습에서부터 후반부의 강한 분노 표출의 모습까지 누군가를 많이 닮아있었다. 그는 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누구? 데인 드한??)


실제 생김새에서도 그렇고 이 '앤드류'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느낌도 그렇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떠올리게 되었다. 디카프리오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초기에 출연했었던 '디스 보이즈 라이프 (This Boy's Life, 1993)' '바스켓볼 다이어리 (The Basketball Diaries, 1995)' '토탈 이클립스 (Rimbaud Verlaine Total Eclipse, 1995)' 등의 작품에서 '클로니클'의 데인 드한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말이 반대로 되긴 했지만), 여린 와중에도 그 여리고 호리호리한 몸과 팔과 다리로 분노와 울분을 표현하는 장면들은 '앤드류'의 분노를 떠올리게 한다. 개인적으로 처음 디카프리오를 인식하게 된 것은 '타이타닉'은 물론이요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닌 조니 뎁과 함께 연기한 '길버트 그레이프 (What's Eating Gilbert Grape, 1993)'나 '토탈 이클립스'같은 강렬한 작품이었는데, 데인 드한 역시 '클로니클'을 통해 강렬한 인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도 유사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 데인 드한의 작품을 단 한 작품 밖에는 보질 못했기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단 한 작품만으로도 디카프리오를 연상시키게 만드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얘기일터. 참고로 개인적으로 신인 배우에게 디카프리오를 연상시켰다는 이야기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찬사 중 하나인 점을 밝혀둔다. 즉, 대중이 오해하는 것처럼 단순히 얼굴도 잘 생겼고 연기도 좀 하겠네.. 가 아니라 진정한 배우로서 앞으로가 기대되는 신예라는 점이다. 물론 냉정하게 얘기해서 데인 드한에게 레오의 초창기 시절과도 같은 레전드급 미모는 존재하지 않지만 (비교 상대가 레오라면 누구라도 무릎을 꿇어야 할터;) 표정과 연기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갖고 있는 매력들이 엿보이는 다는 점만으로도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 같다.



(찬조출연 : 빵 형님)



데인 드한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클로니클' 이전에는 주로 TV시리즈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아왔음을 알 수 있었는데, 다행히 이미 '클로니클' 이후 후속작들이 결정되어 촬영에 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왜냐하면 가끔 보석 같은 배우를 발견했는데 너무 반짝하고 사라져 버리거나 생각보다 후속작이 늦어져서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기 때문인데, 데인 드한은 '클로니클'의 기억이 다 식기 전에 (아마도) 극장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스럽다. 일단 브래들리 러스트 그레이 감독의 신작 '잭 앤 다이앤 (Jack and Diane, 2012)'이 북미기준으로 올해 6월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톰 하디, 게리 올드만, 샤이야 라포프, 가이 피어스, 제시카 차스테인 등 캐스팅만으로도 기대를 갖게 하는 'The Wettest County (2012)'에 캐스팅 되어 올해 8월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해리포터' 다니엘 레드클리프와 '덱스터' 마이클 C.홀과 함께 'Kill Your Darlings (2013)'에도 캐스팅 되어 촬영에 임하고 있다.



(아.. 이 사진은 정말 레오의 눈빛을 갖고 있네요. 오른쪽 말고요;)


영화에서 새로운 배우를 만나는 것은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클로니클'의 데인 드한은 어린 시절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연상시키는 것 만으로도 관심이 가는 배우였다. 다시 말하지만 '데인 드한에게서 디카프리오가 보인다'라는 표현은 내가 데인 드한에게 현재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고 할 수 있겠다. 차기작에서도 이런 기대와 관심이 더 큰 사랑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멋진 연기와 작품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대되! 데인 드한 (Dane DeHaan)!!!




글 / 아쉬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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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는 그 장면 #7

타이타닉



'눈물나는 그 장면' 그 일곱 번째 작품은 너무나도 유명한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을 꺼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서울극장가서 함께 보고 흠뻑 감동받은 것은 물론, 영화 말미 케이트 윈슬렛의 간절한 외침이었던 'Come Back~'을 목놓아 쉰소리로 따라하기도 했었다. 블록버스터인 동시에 비극을 다룬 영화라 말미에 가서는 가슴 찡한 장면들이 많았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흠칫 눈물을 훔치곤 하는 내게 가장 슬프게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로즈(케이트 윈슬렛)가 등장하는 장면이 아닌, 다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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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침몰하고 정신없이 탈출하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음악을 연주하던 악사들은, '이제 아무도 듣지 않으니 그만 연주하지'라는 식의 말을 남기고는 서로 헤어지려고 하지만, 홀로 남은 바이올리니스트는 다시 조용히 'Nearer My God To Thee'를 연주하기 시작하고 돌아가려던 다른 악사들도 다시 돌아와 이 곡을 함께 연주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음악의 힘이랄까. 이 장면 전까지는 비극을 볼거리와 액션 위주로 다루었다면, 이 장면에서 부터는 감정적인 것으로 그리기 시작한 지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타이타닉'을 떠올려 보면 수 많은 명장면들 가운데서도 이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오늘 밤, 자네들과 함께 연주하게 되어 영광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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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최고의 화제작,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

2010년을 돌아보며 다들 각자 자신 만의 최고의 작품을 꼽게 되는데, 각기 다른 최고의 작품들 가운데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가장 큰 '화제작'은 누가 뭐래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인셉션'이었다. '인셉션'은 그 완성도나 재미여부가 이슈가 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과연 이 이야기가 코브의 꿈인 것인가, 아닌 것인가?'라는 대표적인 물음으로 시작해, 꿈 속의 꿈 그리고 그 꿈 속의 꿈으로 이어지는 영화 속 꿈의 단계에 대한 매뉴얼이 등장할 정도로, 영화 그 자체가 관객들 사이에서 스스로 진화하고 발전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영화와 관객 그 사이의 간격을 매우 가깝게 만든 작품으로 더욱 화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개봉 당시 첫 느낌은 '매트릭스'와의 유사한 점 그리고 무엇보다 찰리 카우프만의 '시네도키, 뉴욕'과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 블루레이로 다시 본 '인셉션'은 결국 '영화'라는 매체, 포맷과 시스템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영화의 제목인 '인셉션'의 의미처럼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생각을 심어, 그 생각이 스스로 진짜인 것처럼 발전되어 믿도록 만드는 것은,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과 너무도 닮아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라는 것은 어쩌면 관객을 상대로 한 또 다른 인셉션의 과정이며, 좋은 영화란 감독이 하려는 말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을 관객들이 적극 공감하여 스스로 믿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보았을 때, 더더욱 인셉션은 영화에 관한, 그리고 영화 만드는 과정에 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인셉션'에 관한 이야기는 개봉 당시 너무 많이 – 두말 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 거론되었고, 다양한 의견들을 이미 만나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 블루레이 리뷰에서는 블루레이에 관한 내용에 포커스를 맞추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개봉 당시 썼던 글 한 편과 당시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늑대발 님이 작성하신 '25가지 완벽 분석 가이드' 글의 링크로 대신하려 한다.

[감상기] 인셉션 _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스스로 발전하는 세계

[정보] 인셉션 : 25가지 완벽 분석 가이드 (완결) – 늑대발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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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 Picture Quality

SMPTE VC1 코덱의 1080p 화질은 최신작다운 우수한 화질을 보여준다. 특히 그 동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타이틀의 화질들이 작품의 완성도에 비해서는 아쉬운 화질을 보여주었다는 점과 '인셉션' 역시 극장 상영 시에도 화질이 뛰어나게 좋은 경우는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블루레이의 화질이 오히려 체감하기에는 극장상영 시 보다 더 좋다고 느낄 만큼 – 단순히 화면 크기가 작아짐에 따라 발생하는 부분은 제외하고 – 우수한 화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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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 한 측면이나 암부 표현력 모두 수준급이며, 극장에서는 작품에서 신경 쓰느라 미처 알지 못했던, 아웃 포커싱을 상당히 자주 사용하고 있음을 블루레이 화질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아웃 포커싱이 적극적으로 사용된 작품들의 경우 아무래도 일반적으로 앵글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이 선명한 작품보다는 화질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이런 점은 의도적 아웃 포커싱으로 인해 오해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레퍼런스 급의 화질을 보여주는 다른 극영화 타이틀에 비하자면 본래 촬영된 소스의 탓인지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 발견되며, 장면의 편차도 조금은 있는 편이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는 극장에서 느꼈던 그 웅장한 스코어와 효과음을 고스란히 수록하고 있다. 영화 인셉션의 장면 장면이 더욱 거대하고 웅장하게 다가왔던 것은, 과연 가능할까 생각되었던 세계관을 실제로 현실화에 가깝게 영화화한 영상에도 있었지만, 이를 받쳐주는 한스 짐머의 완벽한 음악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일이었을 것이다. 블루레이에는 바로 이 한스 짐머의 무게 있는 스코어가 가감 없이 전달되며, 극장에서 느꼈던 그 중압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본격 액션 영화는 아니지만 자동차 액션, 대형 기차의 도심 등장, 총기를 이용한 액션, 격투, 대형 폭발음까지 다양한 사운드가 수록된 작품이기 때문에 사운드 측면에서 다양한 활용도를 선보인다. 또한 에디뜨 삐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의 경우 같은 공간에서 들려주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다음 레벨로 전달되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오는 특유의 공간감 역시 탁월하게 전달하고 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두 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인셉션 블루레이에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 외에도 상당히 많은 분량의 부가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Play Extraction Mode'로 감상하면 본편을 감상하던 중 부가영상이 있을 시 자동으로 연결되어 즐길 수 있으며, 'Jump Right to the Action'을 선택하면 본편과 상관없이 수록된 부가영상만 별도로 감상할 수 있다.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직접 쓴 인셉션 속 꿈의 단계에 대한 스케치

인셉션 블루레이에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부가영상들에 수록된 감독의 인터뷰와 내레이션을 통해 음성해설 못지 않은 흥미로운 정보들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놀란 감독이 직접 구상했던 '꿈의 단계' 에 대한 이야기와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인셉션'이 결국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관객을 인셉션하는 과정에 놀란과 함께 참여하고 있는 주요 스텝들의 깊이 있는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는데, 말 그대로 관객이 영화 속 장면들을 실제처럼 느낄 수 있도록 가능하면 실제 하는 세트, 실제 하는 장치, 실제 하는 장소에서 촬영하려고 했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보통의 다른 영화였다면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처리했을 장면들을 CG보다는 실제 엄청난 비를 퍼붓게 한다거나, 진짜 같은 펜로즈 계단을 만든다던가 무중력 상태가 되어 좌우로 공간이 움직이는 장면의 경우 실제로 움직이는 세트를 만드는 등, 이들이 얼마나 관객 인셉션에 혼을 불어넣고 있는지 부가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마지막 설원에서의 폭발 장면의 경우, CG로 충분히 효과를 표현할 수 있음에도 실제 크기의 세트와 미니어처 – 상당한 크기의 미니어처 – 를 직접 제작하여 폭발시키는 여러 번의 수고를 하면서까지 진짜 폭발 장면을 만들려고 노력한 장면을 엿볼 수 있으며, '다크 나이트'에 이어 '인셉션'의 영화 음악을 맡은 한스 짐머의 작업 과정도 만나볼 수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첫 번째 부가영상은 'Dreams : Cinema of the Subconscious' 인데, 이 영상은 이 작품의 주제가 되고 있는 '꿈'에 대한 근본적인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큐멘터리로서,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도 있지만, 그 보다는 꿈과 관련한 전문가들의 이야기도 깊이 있게 전달하고 있는 다큐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인셉션' 보다도 훨씬 더 흥미로운 '꿈'의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고민에 절로 관심을 갖게 될 정도다. 이 작품은 조셉 고든 레빗의 홈페이지이자 젊은 예술가들의 예술 프로젝트이기도 한 'hitRECord'의 참여로 완성되었는데, 평소 JGL의 팬이었던 이들과 hitRECord를 알고 있던 이들이라면 더욱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겠다.





'Inception : The Cobol Job'은 약 14분 분량의 풀 애니메이션 모션 코믹스로서, 내용상으로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의 사건, 그러니까 코브와 아서가 사이토의 꿈에 들어가게 되었던 사건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5.1 Inception Soundtrack'에서는 한스 짐머의 스코어를 5.1채널로 즐길 수 있다. 음악만을 별도로 즐길 수 있는 컨텐츠로서, 한스 짐머의 스코어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참고로 이 부분에는 이스터 에그가 숨겨져 있는데, 관련된 부분은 nello 님의 인셉션 이스터 에그 글을 참고하면 되겠다. 그 밖에 아트 갤러리와 프로모션 자료들, 그리고 TV예고편과 티져 예고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총평]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은 그를 '다크 나이트'에 이어 또 한번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경지에 올려놓은 걸작이었으며, 화제성과 이슈로 인해 묻힌 감이 있지만 결말 논란과 영화의 미로 구성과는 별개로,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영화적 완성도가 매우 높은 아이디어가 집약된 작품이기도 했다. 우수한 화질과 사운드, 아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크리스토퍼 놀란과 그 일당들이 관객에게 인셉션 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부가영상이 수록된 점이야말로, 이 타이틀의 소장 이유가 아닐까 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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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알고나서 다시보기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데니스 르헤인의 원작소설을 스콜세지는 깊이 있는 질감과 시각적인 효과,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에게 공감하도록 만드는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원작 못지 않은 훌륭한 영화화를 이루었다. '셔터 아일랜드' 개봉 당시 흥미로웠던 점은 이 이야기의 반전을 두고 양측이 제법 대등하게 의견을 겨루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완벽하게 정해지고 짜여진 한 쪽의 이야기, 그러니까 너무 명확한 일방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지만, 그와 반대의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설을 들어보아도 '제법 이야기가 되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당시 영화 평에도 썼듯이, 당시에 보았던 영화들 가운데 극장을 나오며 가장 뜨거웠던 작품 중 하나였으며, 누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영화를 본 사람에게 자신이 궁금한 점을 묻게 되고, 또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설득하고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 '인셉션'은 모두가 정답이 되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이야기라면, '셔터 아일랜드'는 정답은 분명 한가지이지만 오답 역시 설득력을 갖을 수 있도록 연기와 연출이 섬세하게 다룬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아, 그리고 이 작품은 '인셉션'과 여러모로 비교할 만한 구석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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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 개봉 당시 글에서는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메시지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었지만, 이번 글에서는 그런 점보다는 다시 보면 더욱 분명해지는 영화의 이야기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을 해보려고 한다. 극장에서도 두 번을 관람하였었는데, 이런 영화의 특성상 두 번 이상 보게 될 경우,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일 수 밖에는 없으며, 그저 스쳐 지나쳤던 장면들이나 인물들의 행동들이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게 된다. 이 글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보기'의 방식으로 끄적여 보았다.


(이 글은 스포일러 투성이인 글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께서는 모쪼록 내용이 전부 들어 있는 이 글을 읽지 마시고, 영화를 감사하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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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아일랜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스릴러 라는 장르적 측면에서 두 가지를 특별히 고려하고 있다. 하나는 영화는 알고 있는 진실을 나중에 관객에게 알렸을 때 모든 것이 수긍가도록 그 과정을 세밀하게 설계해야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런 단서를 여기저기 흩어놓으면서도 관객들이 영화의 이야기와는 반대의 길을 가는 주인공의 심정에 완전히 공감하도록 (그래서 심지어는 영화가 나중에 반전을 알려주어도 쉽게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만드는 것이다. '셔터 아일랜드'는 이런 두 가지를 모두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주인공 앤드류, 아니 테디 다니엘스의 환상을 현실이라고 믿고 이에 대한 자신만의 공식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아예 확실한 결론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이것은 너무나 명확히 극중 앤드류 레디스, 그러니까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캐릭터가 테디가 아니라 앤드류이며, 영화의 마지막 닥터 코리가 이야기해준 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볼 수 있겠다. 본 블루레이에 수록된 부가영상을 보면 이것저것 고민할 것도 없이 '정신병자를 연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라는 식으로 확정지어 얘기하고 있으니 사실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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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셔터 아일랜드'는 극중 디카프리오가 앤드류 레디스라는 것을 알고 한 번 더 보게 되면 또 다른 흥미로운 작품이 된다. 그리고 앤드류 레디스라고 인정할 때만 더 확연히 보이는 디테일이나 연출, 연기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바로 그런 점들, 테디 다니엘스라고 믿었던 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앤드류 레디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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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 셔터 아일랜드에 테디 다니엘스와 그의 동료 척이 (일단 이렇게 지칭해두자) 도착하자 굉장히 삼엄한 경관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현재 위험한 환자가 탈출한 상황이고 이 연방요원들이 그냥 탐탁치 않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여겼었지만 사실은 테디가 아니라 앤드류 레디스이기 때문이다. 앤드류는 폭력적인 성향의 환자이고 경관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할 만큼 위험한 환자였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병원 밖을 활보하는 이 상황이 경관들로서는 몹시 긴장된 상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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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에 설치된 전기선을 보고는 '전에도 본 적이 있어'라고 얘기하는데, 이 대사는 나중에 나치의 수용소에 갔었던 기억 (이 기억조차 거짓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다)에서 그 때봤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았었지만, 사실은 저 말 그대로 바로 그 것을 본 적이 있는 것이다. 그는 앤드류 레디스고, 이곳의 환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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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에서도 이런 이상한 점을(테디의 이야기로 알고 있는 관객들이 이상함을 느끼게 되는)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테디와 척이 애쉬클리프에 입장하기 위해 총기를 반납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총기를 반납하려는데 연방 보안관으로 4년이나 근무했다는 척은 어찌된 일인지 허리춤에 있는 총 조차 제대로 벗어내질 못한다. 이 장면에서는 위 스크린 샷 속 테디의 시선처럼 관객 역시 척 (마크 러팔로)을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이후에도 척을 의심케 하는 몇가지 연막 작전이 등장하기도 한다. 척을 의심하는 것은 맞지만, 테디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척은 바로 닥터 시한이기 때문에 이런 연방 보안관의 행동에는 익숙하지 않을 수 밖에는 없었을 터. 하지만 영화는 아직까지는 좀 더 직접적인 단서는 제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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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더욱 그렇지만, 척은 유난히 테디에게 '괜찮아요?'라고 걱정스런 질문을 자주 던지곤 한다. 이는 물론 그가 척이 아니라 앤드류의 주치의인 닥터 시한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또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시한은 코리와 더불어 이런 방식의 치료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진보적인 의사이기 때문에 아마도 테디의 파트너인 척 역할을 자청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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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연기에 관심없는 배우들을 시한 박사가 열심히 이끌고 있는 한 연극의 장면과도 같다)

이 병원 내에는 앤드류 레디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두가 동원된 거대한 연극을 하는 것에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긍정적인 이라면 역시 코리와 시한 박사를 들 수 있겠고, 부정적인 이들이라면 막스 본 시도우가 연기한 내링 박사를 비롯해 소장과 대부분의 이곳 사람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코리 박사와 주치의인 시한은 이런 치료방법이 통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지만, 내링 박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래봤자 소용없어'라는 식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거추장스러운 연극에 그리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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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보면 유난히 앤드류 혼자서 열심히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렇다)

위와 같은 장면에서는 아예 앤드류가 돌아서자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이 연극 놀음이 그저 재밌기만 한 한 남자 간호사의 웃는 장면마저 확인할 수 있다. 그를 비롯한 이 곳 직원들에게는 자신들이 계속 돌보던 한 환자가 연방 보안관 행세를 하며 자신들을 심문하고, 그의 주치의 역시 보안관 행세를 하는 것이 한편으론 재미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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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들은 대부분 이 상황에 비협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대놓고 테디를 우습게 깔보며 대하기까지 한다. 항상 반대로 자신들이 환자에게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그랬던 환자가 보안관이라며 자신들을 심문하는 것 자체가 우습고 불편한 것이다. 위의 두 간호사의 표정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왼편의 간호사는 못마땅의 강도가 더한 경우라 계속해서 테디에게 까칠하게 대하는 것이고, 오른편의 간호사는 그저 이 상황이 전혀 심각하게 느껴지지(그렇게 연기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않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실제 상황이었다면 지금의 간호사들처럼 이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중요한 환자가 실종되었고, 연방 보안관이라는 자가 자신들을 심문하는 떨리는 상황이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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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을 심문하는 곳에 닥터 코리가 자리잡고 이 상황을 주시하는 것을 처음 봤을 땐, 혹시 어떤 직원이 이 사건에 연루되었는지 캐내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비협조적인 직원들이 혹시라도 실수를 할까봐 혹은 앤드류가 계속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이 틀어질 경우 그 길을 조정해주기 위한 안내자이자 감시자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를 잘보면 앤드류가 직접 방향이나 행동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척이나 주변 사람들이 은근 슬쩍 앤드류의 경로를 정해주는 장면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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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해서 뭐라도 나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위의 장면도 이런 비협조적인 이들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해안가에 실종사 수색을 하러 나왔는데, 실제로 수색하는 인력들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그냥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테디는 뭔가 불편함을 느낀다. 이 경관들은 이 모든 것이 그저 연극일 뿐인 것을 알기 때문에, 즉 아무리 찾아봐도 시체나 환자따위 나올리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 연극에 열심히 참여할 동기조차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저렇게 비협조적인 모습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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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것은 바로 환자들을 테디가 심문하는 장면부터다. 이 심문 장면이 시작하기 전 아까 그 까칠한 반응을 보였던 간호사가 위와 같은 주사를 준비하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심문을 받게 되는 환자들이 발작이나 이상 반응을 보일 때를 대비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 장면 역시 다시보게 되면 이 주사가 환자들이 아니라 또 다른 환자, 가장 위험한 환자인 앤드류 레디스를 위해 준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1로 다른 환자들과 맞닥들였을 때 이상 행동이나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낼 수도 있는 앤드류였기 때문에, 아까 직원들을 심문하던 때와는 다르게 상당히 긴장한 모습으로 환자들과의 심문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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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떡하니 앉아있으니 말하기가 쑥스럽네요;;;")

이 심문 장면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시한 박사에 대한 묘사다. 이 장면 전에도 슬쩍 그런 분위기를 보였던 영화는 이 장면에 와서는 아주 직접적으로 척이 닥터 시한임을 연기와 컷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앤드류가 시한에 대해 묻자 여자 환자는 오른편에 앉은 시한을 흘깃 쳐다보며 이야기한다. 일반인이었다하더라도 바로 앞에 그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인척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정실질환을 겪고 있는 이들 같은 경우는 이런 연기에 아무래도 좀 더 미숙할 수 밖에는 없다. 그래서 잘 생겼다는 얘기를 할 때는 쑥스러움을 그대로 표정에 드러내기도 하고, 위의 스크린 샷처럼 저렇게 바로 앞에 시한을 쳐다보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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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영화는 아주 노골적으로 그 반대편에 앉은 척을 보여준다. 잘생겼다는 이야기를 쑥스럽게 할 때 바로 시한의 표정과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외에도 영화 속에서 시한의 이름이 언급될 때는 거의 모든 장면이 척에게로 이동한다. 즉 영화는 이때부터 척이 닥터 시한이다 라는 암시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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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에게 휴가를 허락해요? 근데 나는 왜 여기서 일하고 있는거임? -_-;;")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재미있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 같은 위급 상황에 닥터 시한에게 휴가를 주고 섬을 나가게 했다는 이야기에 바로 본인인 척이 '주치의에게 휴가를 허락해요?'라며 되묻는 장면은, 이 연극의 작은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연극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라 이런 대화들이 오갈 때의 반응을 보면, 조금씩 머뭇거리거나 쑥스러워하는 장면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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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링 박사의 위와 같은 질문도 이 연극의 측면에서 보면 흥미로운 점이다. '그 바닥 사람들은 술을 즐기지 않나요?'라고 물어보는 와중에는 약간 비꼬는 투가 섞여있는데, 환자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래, 니가 보스턴에서 온 보안관이라며?'라는 식으로 약간 비꼬면서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이 환자가 자신의 환상에 깊이 빠져있는지 일종의 테스트를 겸하고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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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레이첼'을 앤드류가 만나게 되는 이 장면은 구성자체가 너무 연극스러운 장면이기도 하다. 각 인물들의 배치자체도 마치 무대 연극을 보는 듯한 위치를 보여주고 있고, 아래에서 위로 비추는 조명은 이런 연극같은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앤드류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레이첼의 불꽃 연기에 감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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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돌변한 레이첼을 맞닥들이는 앤드류의 표정도 흥미롭다. 이 장면만 본다면 극중 앤드류는 명백한 정신병동의 환자이고 레이첼은 간호사 임이 명확히 드러난다. 저 표정은 갑자기 변한 상대에 대한 놀라움이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불안을 겪는 환자로서 공포를 느끼는 표정이라고 해야 맞겠다. 이 장면은 그래서 테디가 이 곳에 와서 이상한 일들을 겪으며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이었다는 점을 그의 반응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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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척이 테디를 눈치보는 장면은, 둘이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한다고 할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앤드류를 철썩 같이 테디로 믿고 있을 때에는 이런 시선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이런 종류의 영화의 묘미다. 그리고 다시 보는 '셔터 아일랜드'의 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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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금씩 소스를 제공하던 영화는 조지 노이스 (잭키 얼 헤일리)와의 만남 장면을 통해 매우 노골적으로 영화의 본래 이야기를 드러낸다 (여기서 본래 이야기란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메시지가 아니라, 사실관계상 본래 이야기를 말한다). 조지 노이스는 앤드류 레디스와 테디 다니엘스를 모두 잘 알고 이해하는 인물로서, 빨리 아내를 잊으라고 진심으로 부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테디를 만난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그를 테디가 아닌 앤드류 레디스로서 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테디 다니엘스라고 믿는 앤드류는 이 이야기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관객은 점점 더 주인공에 대해 의혹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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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영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주인공의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짧게 한가지만 언급하자면 세 아이를 부둥켜 안고 오열하는 저 장면은, 이 모든 이야기의 단서이자 시작이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앤드류 레디스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우울증을 겪던 아내가 아이들을 모두 익사시킨 이 사건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고, 자신의 손으로 이런 아내를 죽인 것에도 충격을 받아 결국, 자신안에 또 다른 자아를 갖게 되는 정신질한마저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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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인 척을 잃고, 동굴에서는 실제 레이첼이라는 여성과의 만남을 갖은 뒤 앤드류는 소장에게 발견되어 차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소장은, 코리 박사가 주장하는 이 거대한 연극에 결코 협조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소장은 앤드류에게 매우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건낸다. 앤드류를 완전한 환자 취급하며 그의 폭력성이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흥미로운건 앤드류, 아니 현재는 테디 다니엘스인 디카프리오가 소장의 이런 억압에 전혀 꼼짝을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테디는 더 이상 연방보안관이 아니라 이곳의 환자인 앤드류의 모습으로 변모해왔으며, 자신을 완전히 환자 취급하는 소장의 말에도 제대로 한 마디 받아치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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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코리 박사에게 모든 사실을 전해 듣고 자신이 테디 다니엘스가 아니라 앤드류 레디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앤드류는 코리 박사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는 바로 과거에도 이렇게 치료됐던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앤드류의 마지막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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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은 원작인 소설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 대사는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의미심장한 것이었는데,

'괴물로 평생을 살겠나? 선량한 사람으로 죽겠나?'

바로 이 것이다. 시한 박사를 다시 한번 척으로 부르고 이곳을 탈출해야 겠다고 한 뒤 남긴 말이 바로 위와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고는 제 발로 자신을 수술하려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로 걸어간다. 이것은 분명 테디 다니엘스로서의 선택이 아니라 앤드류 레디스로서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과거에도 이런 식으로 여러번 치료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앤드류는, 또 한번 환상에 빠지기 전 오롯한 앤드류 인 지금 선택해야 한다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극복하지 못할 트라우마 때문에 계속 정신이상과 현실을 반복하는 괴물로 평생을 살기 보다는, 그냥 앤드류 레디스로서의 죽음을 택한다. 영화는 이렇게 걸어가는 앤드류의 뒷 모습으로 끝나지 않고, 수술이 행해질 등대를 마지막 행선지로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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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는 반전을 숨기고 있는 영화로서 이야기의 양면성을 영화화로서 잘 표현해 낸 작품이었다. 영화가 이끄는 대로 테디 다니엘스의 이야기로 보는 것도 물론 흥미롭고, 그 반대로 앤드류 레디스의 이야기로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앤드류 레디스라는 것을 알고 테디 다니엘스를 보는 것도 몹시 흥미로운 감상이 아닐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블루레이 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Paramount Pictures 에 있습니다.






인셉션 (Inception, 2010)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스스로 발전하는 세계


사실 많이 걱정했었다. '메멘토'부터 그의 작품을 ( '미행' 제외) 모두 극장에서 보고 팬이 된 입장에서는 '인셉션' 역시 기대되는 그의 신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다크나이트'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은 영화 팬 뿐만 아니라 모든 대중들이 기대하고 관심을 갖게까지 만드는 이른바 '모두의 기대작'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기대라는 것은 감독에게 있어 가장 부담스런 것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다크나이트'는 몹시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었기 때문에 과연 이 정도의 기대를 안고도 대다수가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팬으로서 걱정부터 앞선 던 것이다 (사실 이 걱정 자체는 모순인데, 대다수의 기대를 꼭 만족시켜야할 의무도 없고 어떤 영화든 개인에 따라 더 좋고 덜 좋음이 다를 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대중의 기대를 뒤로하고 순전히 개인적으로만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면, '인셉션'은 과연 '다크나이트' 이후 스튜디오의 더 큰 전폭적 지지를 얻게 된 놀란 감독이 더더욱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작품을 만들었을지 아니면 좀 더 대중친화적인 작품을 만들었을지가 궁금한 점이었는데, 이런 궁금증이 무색할 정도로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도  (타협없이도) 대중들을 다 만족시키는 것이 가능한, 어떤 측면에서 진정한 아티스트임을 '인셉션'을 통해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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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 구조는 사실 새로울 것이 없다. 장자와 프로이트 등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가깝게는 '매트릭스'를 떠올릴 수 있겠는데, '매트릭스'의 경우 문화와 철학의 인용 그 자체로 이루어진 작품이라면 '인셉션'은 익숙한 것들을 인용보다는 소재로 그리고 장치로 사용하되, 이를 양분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새롭게 설계한 또 다른 신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과연 저것이 가능할까?' 싶은 정도의 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그것이 가능해졌을 때 새롭게 갈 수 있는 길을 다각도로 펼쳐놓는 여유까지 (하지만 이 여유 뒤엔 자신감보다는 치밀함이 있다)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꺼풀만 보자면 '인셉션'에서는 여러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들이 겹쳐지곤 한다. 알렉스 프로야스의 '다크시티'는 세계관이나 그 이미지에서,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은 시간과 기억을 다루는 것에서, '매트릭스'나 '오션스 일레븐'은 몇몇의 캐릭터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법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겹쳐지는 부분을 자주 경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한꺼풀만 벗겼을 때 '인셉션'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영화는 바로 찰리 카우프만의 '시네도키, 뉴욕' 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만약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이 '인셉션'이 아니라 '시네도키, 뉴욕'이었더라면 지금과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카우프만의 작품일 때 보다는 더 큰 파급효과와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만큼 카우프만의 만들어낸 시네도키의 세계관은 '인셉션' 못지 않은 (혹은 더 복잡한) 심연을 파해치고 있는데, 카우프만은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마음의 심연에 몹시 집중한 반면, 놀란은 이 세계관을 보다 흥미롭게 단계화(Level) 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카우프만의 작품은 좀 더 개인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된 반면, 놀란의 작품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이해하고 싶어 안달하게 하는 (정답을 찾고 싶게 만드는) 더 큰 매력을 지닌 작품이 된 것이다. 

시네도키, 뉴욕 _ 외로운, 위로의 일기



(이제부터 슬슬 스포일러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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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마치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처음 모피어스와 함께 매트릭스에 접속했을 때를 연상시킨다)

이 글은 '인셉션'을 두 번 보고 나서 쓰게 된 글인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비로소 두 번째 보았을 때 이 영화의 정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재미없던 것이 재미있어진 경우가 아니라 영화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정서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첫 번째 보고 난 후의 간략한 소감은, 크리스토퍼 놀란은 동시대에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영화 기술자이자 장인이기는 하지만, 정서적인 측면 즉 이야기의 주인공이 갖게 되는 정서적 울림에 있어서는 다른 측면에 있어서 조금 부족하지 않나 (특히 '인셉션'의 경우) 싶은 것이 전반적인 느낌이라, 둘 중에 굳이 더 나은 작품을 꼽으라면 메시지의 울림이 영화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다크 나이트'를 주저없이 꼽을 수 있었는데, 두 번째 보고나서는 이런 결정을 쉽사리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야 말았다. 마치 '프레스티지'는 '참 영리한 두뇌로 쓰여진 치밀한 시나리오다'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크리스찬 베일과 휴 잭맨이 연기한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완전히 공감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했던 '인셉션'이 전혀 다른 작품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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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양한 해석과 많은 논란 혹은 해석할 여지가 존재하는 작품이다. 사실 잘 짜여진 시나리오라는 것 그리고 잘 편집된 한 편의 영화라는 것은, 이렇듯 보는 이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작품인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측면에서 '인셉션'은 이것 만으로도 부족할 것 없이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제목인 '인셉션' (다른 사람의 무의식, 꿈 속에 생각을 심는 것) 의 의미처럼만 만들어졌어도 이 영화는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란 감독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영화 속에서 코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팀이 피셔 (킬리언 머피)에게 실행했던 방법처럼, 인셉션을 통해 심은 생각이 단순히 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심은 생각이 자라날 수 있도록 (그래야 인셉션이 성공하듯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성해 냈다. 즉, 관객들은 놀란이 심은 기본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나래를 펴 점차 더 깊은 인셉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어디까지가 꿈이고 현실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다. 이미 관객은 영화 속 맬 (마리온 꼬띨라르)처럼 더이상 인셉션의 경계를 확인하는 대신에 자신만의 세계를 더 굳건히 믿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믿는 다는 것은 영화 속 과는 다르게, 논란이 풀어놓은 퍼즐 조각을 끊임없이 맞추고자 하는 욕구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꿈' 혹은 또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인셉션 (Inception)'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무서운 영화적 야심인가. 남들이 100점 만점의 이야기를 갖고 있을 때 놀란은 150점 짜리 이야기를 구상해 냈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관객이 느끼는 것에 따라 160점도, 200점도 될 수 있는 구조까지 마련했으니 말이다. 이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관객이 놀란을 완전히 신뢰하며 인셉션에 빠질 수 있는 것처럼, 놀란 역시 자신의 영화를 100점 이상으로 봐줄 관객들을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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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첫 번째 관람 후에 글을 바로 썼다면 여기까지에서 간단히 마무리 했다거나 아니면 논란이 풀어놓은 퍼즐 조각들을 이렇게 저렇게 맞춰가며, 이런 것도 가능하고 저런 것도 가능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을 것이다. 사실 정답이라 한다면 이게 정답인데, 두 번째 보고 나니 이 수 많은 갈래길들 가운데 단 하나의 길 만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리곤 앞서 했던 생각을 완전히 뒤집게 되었다.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크 나이트'처럼 메시지가 강한 영화가 아닌 경우라면 세계관 설계에는 누구도 따라오기 어려운 탁월한 재주를 보여주지만,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는 공감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다는 생각 말이다. 확실해진 갈래길을 따라가보니 이 영화는 놀란의 작품 가운데 그 어느 작품보다도 주인공의 이야기와 감정적 동요가 큰 작품이었다. 마치 '메멘토'를 완벽하게 확장시킨 듯한 모습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메멘토'하면 그 영화적 형식에 더 귀를 기울이지만 '메멘토'에는 분명 주인공 '레너드'의 사연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10분 간만 기억을 유지할 수 있다는 특수한 설정을 흥미위주로 구성하는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 겪어야만 했던 감정의 이면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인셉션'을 두 번 보고 느낀 것은 바로 이런 주인공 코브의 이야기였다. 수많은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내러티브가 가장 자연스럽고 또 감정적이며 가장 많은 부분이 맞아 떨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도 헛점은 있다. 하나하나를 다 맞추려고 하면 맞지 않는 부분은 이 경우에도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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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셔에게 코브가 인셉션을 시도했듯, 코브에게 인셉션을 한 것은 바로 장인인 마일스일지 모른다)

코브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진짜 인셉션

첫 번째 보고나서 그 엔딩의 쓰러지지 않는 팽이와 공항 씬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몇가지 단서들 덕에, 이것이 결국 코브의 꿈, 그러니까 코브의 인셉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때 까지만 해도 확신이라기 보다는 다른 수 많은 갈래길 중 좀 더 유력한 길 정도로 생각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두 번 보게 된 영화는 확실히 달랐다. 이것은 완벽한 코브의 인셉션의 관한 이야기였다. (개인적인 확실일 뿐, 다른 분들이 갖는 확신 역시 틀리다기 보다는 또 다른 맞는 확신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일단 코브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바로 자신의 아내를 죽음으로 몰게 했다는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엄청난 죄책감이다. 코브와 아내 맬은 드림머신을 통해 꿈의 세계를 설계하는데에 흥미를 갖게 된 뒤, 꿈 속의 꿈, 그 꿈 속의 꿈 등 더 깊은 꿈의 세계, 즉 꿈의 끝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결국 이 과정 속에서 맬은 자신이 믿고 있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더이상 믿지 않는 동시에, 자신이 살고 있는 꿈 속의 세계를 현실로 믿어버리게 된다 (즉, 림보에 빠진 것이다). 꿈과 현실의 단계가 단순히 한 단계로 이루어졌더라면 이런 혼동이 없었겠지만, 꿈의 꿈 그 꿈의 꿈, 또 그 꿈의 꿈으로 이어지는 영역을 경험한 이들에겐 현실을 자각하는 능력이 점차 사라져갔고, 맬은 결국 꿈을 현실로 믿게 된 것이다. 이런 맬을 끝내 설득시키지 못한 코브는 결국 맬에게 인셉션을 감행하게 된다. 즉, 맬이 꿈을 꿈으로 믿고 돌아올 수 있게 생각을 심는 것이었는데, 그리하여 오랜 꿈 속에서 벗어난 맬은 하지만 이 현실 역시 꿈으로 받아들이고는 이 꿈에서 깨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이 과정 속에서 코브가 얻은 교훈이라면 단순히 생각을 주입하는 인셉션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 즉, 스스로 그 생각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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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서부터 코브의 인셉션은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이것은 코브에게 엄청난 죄책감이 된다. 꿈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던 것도 본래 본인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림보에 빠진 맬을 구하기 위해 성공확률이 높지 않았던 인셉션을 맬에게 직접 시도했으며, 결국 이 인셉션이 성공하지 못하면서 맬을 진짜 죽음으로 이르게 했기 때문이다. 이런 코브의 죄책감은 이후 그가 다른 의뢰인의 꿈에 들어갈 때마다 불안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자신이 죽게 했다는 생각에 맬의 존재는 언제나 꿈 속에서 코브나 꿈의 주인공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하고, 이런 죄책감이 가져온 불안감은 점점 더 예고하지 않고 예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코브가 맬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 어린 아들, 딸과 다시 재회하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인셉션으로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코브가 이렇게 되길 가장 바라며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사람은 누구일까.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맬의 아버지, 그러니까 코브의 장인어른으로 등장하는 '마일스' (마이클 케인) 밖에는 없다고 생각된다 (아버지인지 장인인지 좀 불확실한 면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부자관계나 아니냐 라기 보다는 꿈에 침투하는 것을 가르친 사람이 마일스 라는 점이다). 마일스는 일단 코브에게 직접적으로 이 일을 가르쳤다는 점에서 (그리고 가족이라는 점에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코브를 구하고자 하는 감정적 동기가 충분하다. 또한 자신이 가르친 기술 때문에 결국 딸의 죽음과 사위의 트라우마가 생겼음으로, 마일스 스스로도 이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동기가 되겠다.

또한 코브에게 이를 가르친 만큼 코브의 인셉션을 설계할 만한 능력은 물론, 수제자 (엘렌 페이지)를 통해 이를 완성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들 수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보기 시작하면 이 이야기는 놀랍도록 맞아 떨어지기 시작한다. 특히 처음 파리에서 코브와 마일스가 만나 나누는 대화 장면을 보면 이런 심증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이 대화를 보면 마일스는 은근히 코브가 진행하려는 인셉션을 막아서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유도하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코브는 애초에 인셉션을 마음먹고 이를 설계해줄 아키텍트를 구하러 오긴 했지만, 마일스는 이런 코브의 심정을 이용하여 좀 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코브가 계획을 세우도록, 코브의 말을 받아들이기도하고 반대로 그를 잘 아는 만큼 일부러 약을 올려 더 하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대화를 이끄는 마일스, 그리고 이를 연기한 마이클 케인의 연기를 보면 무서울 만큼 디테일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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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후 코브의 토템이 쓰러지는 장면, 즉 현실임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다음부터는 코브의 팀이 피셔에게 인셉션을 심는 상황을 그대로 코브에게 대입하면 된다. 극중 임스 (톰 하디)는 피셔에게서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삼촌인 브라우닝 (톰 베린저)으로 분장해 아버지와의 관계 등 더 많은 깊은 정보를 캐내게 되는데, 피셔와 브라우닝으로 분한 임스의 관계는 그대로 코브와 아리아드네 (엘렌 페이지)의 관계에 대입해 볼 수 있다. 아리아드네는 코브를 더 알아야만 불안요소를 업애고 더 완벽한 설계를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코브가 동료들에게는 잘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묻는다. 그리고 코브의 꿈에도 적극적으로 접속해 코브와 맬의 관계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것을 알려고 한다. 이는 코브에 대한 인셉션을 성공시키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아리아드네는 결국 아무도 알지 못했던, 코브와 맬이 림보에서 겪었던 일들마저 알게 되었고 이는 피셔가 인셉션을 겪으며 스스로 발전한 것처럼, 코브 역시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결심하게 하는 계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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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보면 경쟁 회사를 분리하기 위한 사이토의 의뢰는 말그대로 코브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하나의 어려운 미션일 뿐인데, 이 자체가 마치 영화의 주된 메시지인냥 코브의 트라우마 이야기와 비중을 같이하며 (혹은 더 큰 비중으로) 그려지는 것은 단순히 볼거리 측면 때문이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피셔에게 인셉션을 하는 것은 그대로 코브에게 인셉션을 하는 것과 겹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피셔가 사이토의 뜻대로 회사를 나누는 것은 영화 상에서 하나도 중요할 것이 없는 사실이고,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중요한 것인데도 이 과정을 그렇게 심도 있고 비중있게 그린 이유가 바로, 이마저도 피셔의 이야기가 아닌 코브의 이야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무의식 속에 갇혀있는 맬에게로 가는 길을 찾는 과정인 동시에 이런 맬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과정인 것이다. 다시 말해 너무 직접적인 (1차적인) 인셉션을 코브에게 시도했다면 코브는 이를 금새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셔의 인셉션이라는 복층의 인셉션을 설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코브는 그의 무의식 속에 있는 맬과는 다르게 정확히 현실과 꿈을 구분하려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꿈에서 나올 때마다 토템을 통해 현실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있으며, 다른 영화의 감상적인 주인공들처럼 영원히 맬과 림보에 남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코브에게는 맬에 대한 죄책감 만큼이나 자식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이런 맬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코브는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미 맬에게 했던 인셉션이 실패로 돌아갔던 과거 때문에 (꿈의 설계에 상상력만이 아닌 기억을 동원하게 된 점) 자신이 설계한 인셉션으로는 절대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즉, 계기가 필요했던 것인데 (헬기에 탄 사이토의 인셉션 제안에 너무 쉽게 수락한 경향이 있다. 인셉션의 실패 경험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파리로 이 문제를 해결해줄 마일스를 찾아갔고 자연스레 인셉션에 몸을 맡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리아드네를 그의 꿈에 너무 쉽게 받아들인 것도 쉽게 수긍이 된다. 아마도 그렇지 않았다면 '너는 여기 오면 안돼' 그 이상으로 그리고 그 다음에도 절대 아리아드네를 맬이 있는 자신의 꿈에 들이지 않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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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인셉션'은 그 어떤 영화 못지 않게 주인공 코브의 절절한 감동의 이야기가 된다. 정말 아내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둘이 함께 추구하는 바를 이루려 꿈꾸던 그 곳에 끝까지 가게 되었지만, 결국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아내를 위해 자신도 그곳에 남아 아내의 꿈 (둘이서 함께 늙고 싶다는)을 이뤄줄 때까지 기다려주기도 했고, 한 차례 꿈에서 빠져나온 이후에도 아내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자 인셉션을 동원해 어떻게든 아내를 현실로 데려오려 했으나, 그것마저 실패하고 결국 아내의 죽음을 맞게 되어 그것이 평생의 짐이 되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인셉션을 통해 스스로 죄책감을 벗어내려는 노력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담긴 이야기는, 첫 번째 관람시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 몹시 동요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즉, 이 인셉션이라는 세계, 꿈의 꿈이라는 세계가 어떻게 이뤄지고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화려하고 매력적인 표피 속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 왜 이들은 림보에 빠지게 되었나, 왜 이들은 인셉션을 하게 되었나, 왜 코브는 죄책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나에 대해 비로소 생각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고나니 처음 볼 때도 뭉클했던 림보에서 코브와 맬이 나누었던 대화 장면이 더더욱 눈물날 수 밖에는 없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것은 결국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코브는 피셔의 인셉션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고, 나중에 가서는 그 동안 죄책감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말들 (맬에게 인셉션을 했던 사실, 50년 넘게 림보에서 둘이 함께 늙어갔던 사실)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눈 앞에 만져지는 진짜 같은 꿈 속의 맬을 용기 있게 부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맬에게 인셉션을 고백하는 장면부터 코브가 드디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는 이 시퀀스가 몹시도 슬프고 감정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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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은 트라우마라는 점에서 역시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았던 '셔터 아일랜드'와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결말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셔터 아일랜드'의 레오는 결국 자신의 트라우마를 인정하긴 했지만 이겨내진 못했던 반면, '인셉션'의 레오는 눈물겹고 힘들었지만 결국 극복하고 현실로 돌아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것이 마일스가 설계한 (물론 세부 내용은 아드리아네가 설계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코브의 인셉션이라고 해놓고선 현실로 돌아오는데에 성공했다는 얘기가 무슨 얘기냐고 물어올 수 있겠는데, 사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부분은 마지막 시퀀스로 미뤄 봤을 때 아직 꿈 속이라고 볼 수 있겠다.

비행기 내에서 깬 뒤 공항에 도착한 순간, 유난히 코브를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선들도 그렇고 이를 마중나온 마일스도 그러하며, 결정적으로 결국은 쓰러지지 않은 팽이와 (물론 이는 쓰러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엔딩 크래딧 말미에 흐르던 킥을 신호하는 에디뜨 피아프의 노래까지. 코브가 이 꿈에서 깨는 순간 다시 모든 것을 잊고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그 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전한 인셉션인 만큼 꿈에서 깬 다음에도 이 어렴 풋한 기억을 발판으로 반드시 이 죄책감에서 벗어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코브가 바라던 현실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고 (정확히는 성공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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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이 결국 트라우마에 관한 영화라는 점은 영화 속 킥의 도구로 사용된 에디뜨 피아프의 유명한 곡 'Non, Je Ne Regrette Rien'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이 곡이 본래 워낙에 유명한 곡이기도 했지만, 에디뜨 피아프의 전기를 다룬 영화 '라비앙 로즈'를 감상한 탓에 이 곡은 물론, 이 곡의 가사들도 미리 머릿 속에 인지하고 있던 것이 '인셉션'을 감상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정말 굴곡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지만 결코 자신은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이 곡의 제목과 가사처럼, 킥 할 때마다 울려퍼지는 이 곡은 마치 코브의 트라우마를 덜어주려는 아키텍트의 세심한 배려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아내에 대한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코브와 '난 후회하지 않아'라는 곡의 대비는 아이러니와 동시에 영화의 메시지를 더 확고히 하는 장치가 되었다 (물론 '라비앙 로즈'의 주인공이 마리온 꼬띨라르 였다는 점도 묘한 흥미거리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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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지 생신지 볼을 꼬집, 아니 얼른 토템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 사람같으니라구!)

개인적으로는 두 번 보고 나서 확실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래서 '인셉션'을 더 격하게 좋아하게 되었지만), 처음 보고나서의 느낌처럼 '인셉션'을 이런 감정적 내러티브보다 다층적이고 흥미로운 세계관에 집중한다 하더라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 대단한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놀란은 '인셉션'이라는 세계를 설계하고 그 안에 인셉션을 심어 결국 관객들이 스스로 이를 발전시켜 더 큰 세계로 혹은 자신조차 의도하지 않았던 이야기로 확장시켜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놀라운' 세계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1. 이 글을 다 쓰고 나서야 각종 정리글과 분석글들을 차근차근 읽어보았는데, 제 생각과 일치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하나같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완전 이 세계관에만 집중해서 하나하나 분석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이미 대부분을 다른 분들이 해주셔서 이 부분은 생각날 때마다 보충하는 것 정도로 하려구요.

2. 이것이 코브의 인셉션이라해도 피셔의 인셉션은 킬리언 머피의 연기로 인해 설득력을 얻게 되더군요. 사실 이 이야기 자체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보였거든요. 경쟁사의 회사를 반쪽내기 위해 이 정도의 위험을 감수한 사이토의 이야기도 그렇고. 그런데 킬리언 머피의 연기는 진짜 영화 속 영화처럼 설득력을 주더군요.

3. 디카프리오야 동시대의 배우들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한명이니 더 부연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더 좋아하게 된 배우가 있다면 역시 조셉 고든-래빗이죠. '브릭'과 '500일의 썸머'는 물론 왜 나왔을까 싶은 '지아이조'마저 본 팬인데, '인셉션'에서의 조셉은 정말 멋졌어요. 물론 멋진걸로만 따지자면 '임스' 역할로 나온 톰 하디에게 좀 밀렸지만요 ㅎ

4. 이미 3회차 관람은 예매가 완료되어 있고, 지금은 나만의 토템을 찾는 중입니다.

5. 참고로 제 핸드폰 벨소리도 바꿨어요. 'Non, Je Ne Regrette Rien'로요.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올 때마다 킥이 되는거죠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Pictures 에 있습니다.






인셉션 (Inception, 2010)
스포일러 없는 단상들


1.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기 전 정보를 최소화 하는 것이 영화를 즐기는데에 (더군다나 많은 것을 좌우하는 첫 관람일 경우라면 더) 최적화된 상태라고 보는 입장에서, 가능한한 직간접적인 누설을 다 피하였으나 그마저도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과감히 이 글을 패스해주시길 바랍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 아주 약간의 정보나 아님 본 사람의 대력적 느낌은 자신의 관람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상상력을 제한하는 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완벽한 무지의 상태에서 보길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개봉일을 꾹 참고 기다려주세요 ^^;

2.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을 시사회에 초대되어 먼저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첫 경험을 아이맥스로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네요. 사실 시사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입장에서 패스하려고 했는데, 이번 만큼은 개봉일까지 혹시라도 당할지 모를 일말의 스포를 아예 차단하기 위해, 가능한 빨리 보는 쪽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3. 예상했던 바와 같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은 굉장히 복잡한 다층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시작하고나서 끝날 때까지 단 한시도 주의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복선이 되고 단서가 되며, 파편의 조각이 되거든요. 이건 거대한 퍼즐 (혹은 미로) 같아서 조각마다 크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 조각이라도 없으면 그림이 완성되질 않습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본인은 다 맞추었다고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감독이 그린 그림과는 조금 다른 그림이 될 수도 있겠죠 (영화는 어차피 감독의 것이 아니라 관객의 것이지만, 이처럼 '퍼즐'형식인 경우에는 영화에 담긴 단서를 포착하면 할 수록 더 깊은 작품이 될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네요).

4. 아무래도 필연적으로 '인셉션'은 감독의 전작 '다크나이트'와 비교될 수 밖에는 없을 텐데, 개인적으로 '다크나이트'는 매력적인 영화적 구조와 형식을 빌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작품이었다면, '인셉션'은 형식 그 자체에 대한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미 '메멘토'를 통해 영화적 기술자임을 유감없이 보여준 놀란은 다시 한번 자신이 왜 이런 측면에서 '기술자'인지 더 나아가 '장인'의 소리를 들을 정도인지를 보여줍니다. 

5. 즉 '인셉션'의 이야기 구조나 스토리 자체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에요. 무엇에서 가져왔다고 말하는 것조차 미묘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제외하고 이야기하자면, 이야기의 구조는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이를 설계하고 배치하는데에 있어서 크리스토퍼 놀란은, 새로운 이야기를 즐길 때 만큼의 황홀한 감흥을 선사합니다. 

6. 사실 이렇게 완전히 메시지나 주인공의 이야기 (영화적 이야기 말구요)가 배제된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놀란 감독은 이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어요.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주인공의 이야기도 분명 존재하죠. 그래서 저 같이 주인공에게 쉽게 동화되어 감정이입 되는 이들에겐 여기서 오는 감동도 빼놓을 수 없겠죠.




7. 영화 속에 테마 곡으로 등장하는 노래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곡이 어떻게 쓰였느냐도 재미있지만, 그 곡의 제목과 가사가 주는 의미를 영화의 내용과 비교했을 때 오는 아이러니가 있죠.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 곡을 사용한 이유는 바로 이 아이러니에 있다고 생각되요. 물론 단순히 분위기 측면에서 훨씬 우아해지고 낭만적인 효과도 있었지만요.

8. 전 영화를 보기 전 포스터 조차 제대로 살펴보질 않았기 때문에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정확히 누가 출연하는지 파악하지 않았었는데, 톰 베린저가 출연하더군요. 정말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보는 그여서 그것만으로도 반갑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레오를 제외하면 조셉 고든-레빗의 연기가 좋더군요. 사실 다 좋았는데 그냥 개인적 취향 때문에 조셉이 아주 조금 더 눈에 들어왔다는 정도에요. 그 좁은 어깨와 올백으로 빗어넘기는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더라구요.

9. 한스 짐머의 음악은 '다크나이트'를 연상시키는데, '다크나이트'의 경우 그 메시지를 더 돋보이게 했다면 '인셉션'은 역시, 장면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10. '매트릭스'와 비교되는 부분도 있고 '이터널 선샤인'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엠파이어지의 평가에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찰리 카우프만의 '시네도키, 뉴욕'을 더 떠올리게 했습니다 (참고로 '시네도키, 뉴욕'은 현재까지 올해 저의 베스트 작품). 두 작품 모두 심연에 심연으로 파고들지만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정반대죠. 그런 면에서 이 두 작품은 각각 같지만 다른 길을 보여준 베스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11. 엔딩에 추가 장면은 없지만 놀란 감독이 넣어둔 장난스런 부분은 존재합니다. 영화의 엔딩과 맞물려 다시 한번 심연을 고민하게하는 감독의 장난이죠 ㅎ

12. 스포있는 본격적인 글은 많은 분들이 보신 후인 정식 개봉 후에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는 마음껏 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볼 수 있겠네요. '다크나이트'를 인상깊게 보신 분들 가운데는 여러 의견을 갖고 있는 분들이 함께 섞여있다고 생각하는데, '인셉션'을 보고나면 조금은 이 집단이 나뉘어지지 않을까도 생각되네요. 

13. 아, 얼른 스포있는 글을 일기장에라도 적어야겠어요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2009)
시대의 불안과 트라우마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콤비의 신작 <셔터 아일랜드>는, 스콜세지 - 로버트 드니로 이후 최고의 감독과 페르소나 콤비로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이들의 신작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더군다나 <미스틱 리버>, <곤 베이비 곤>의 원작자 데니스 르헤인이 쓴 유명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었는데, 원작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스크린으로 먼저 만나게 된 <셔터 아일랜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언급한 것처럼 히치콕식 스릴러 연출과 큐브릭을 연상시키는 미장센으로 담아낸,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수작이었다(개인적으로는 걸작이라 불러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요 근래 극장에서 본 작품들 가운데 가장 몰입도 있고, 가장 영화 본연의 미덕에 충실한 작품이었으며, 근래 본 연기 가운데 또 하나의 절정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었던 매우 만족스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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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연방 보안관인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날 처음 만난 자신의 파트너 척(마크 러팔로)과 함께, 셔터 아일랜드에 위치한 '애쉬클리프' 정신병원에 환자 실종사건을 조사하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탈출구라고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는 것 외에는 없는 이 외딴 섬에서 어떻게 환자가 도망치게 혹은 실종되었는지 의문이 많은 가운데, 테디는 이 정신병원 시설과 관계자들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며, 그 안에 자신의 개인적인 조사 역시 진행하게 된다.

영화의 오프닝의 타이틀 텍스트라던지 애쉬클리프를 조명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이라던지, 'The Band'의 기타리스트 출신인 음악감독 로비 로버슨의 음산하고 무거운 음악 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50년대 미국의 보스턴 셔터 아일랜드로 이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미장센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보자면, <셔터 아일랜드>의 의상과 미장센은 너무도 영화적이라 매혹적이다. 당시의 코트와 의상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배우 중 하나인 마크 러팔로의 코스츔은 그 자체로 고증을 넘어선 매혹이 되버리고, 아내가 골라준 촌스러운 넥타이를 코트에 어울리지 않게 매치한 디카프리오의 모습 역시 영화 초반 연대를 알리는 텍스트 없이도 이 작품이 어느 시대를 그리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사실 몰입 잘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나는, 코트에 모자를 눌러 쓴 마크 러팔로를 보는 순간 이미 몰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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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과 미장센이 시대의 공기를 담으려고 애썼다면, 시종일관 긴장감을 전하는 스코어는 장르 영화로서의 장점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시대의 불안과 트라우마라는 영화 뒷 편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든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마크 러팔로의 등장만으로 몰입했던 터라 그 이후에도 심하게 몰입해 영화가 반전을 제공했을 때에도, 그 이후를 이야기했을 때에도 모두 다 함께 할 수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스코세지가 풀어낸 <셔터 아일랜드>의 구성은 혼란스럽고 불부명한 구조를 보여주는 듯 하다.

관객들은 죽었다던 테디의 아내가 등장할 때 꿈이나 환상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그녀가 환상 속에서 보여주는 장면과 대사, 미장센 들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쉽게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테디가 보는 아내의 환상 들은 마치 최근 보았던
찰리 카우프먼의 <시네도키 뉴욕>을 연상시킬 정도로, 어쩌면 이 작품을 더욱 모호하게(하지만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던)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영화의 결말로 되돌아 보았을 때 다시 한번 장면 하나하나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좋은 영화적 장치들이었다(재미있는 건 <시네도키 뉴욕>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미셸 윌리엄스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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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아주 깊게 몰입했던 터라 결말에 보여준 반전과 그 이후에 영화가 택한 설정도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이 영화는 반전에만 목숨건 정통 스릴러는 아니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중간에 혼란스런 설정들도 매우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정통 스릴러의 범주로만 따져보아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캐릭터가 결국 테디 다니엘스 인지 앤드류 레디스 인지를 따져보는 것도 흥미롭고, 맨 마지막에 선택한 삶(혹은 죽음)이 테디로서의 그것인지 앤드류 로서의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스포일러를 표시한 김에 이 영화의 반전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결국 마지막 등대 위에서 들려주는 박사의 이야기처럼 앤드류는 자신의 아이들을 우울증으로 익사시켜 살해한 아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과 나치 수용소의 기억 등이 트라우마가 되어 결국, 테디 다니엘스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냈고 수술이 아닌 진보적인 치료를 추구하던 코리 박사는 이 거대한 연극을 통해 앤드류를 치료하길 시도했으나, 결국 다시 한번 돌아오는 것에 실패한 앤드류에게 포기하고 외적인 수술을 시도할 수 밖에는 없게 된다.

원작에는 없다는 영화 만의 마지막 대사는 이 영화의 반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단초가 되는데, '괴물로 살아가거나 선량한 사람으로 죽거나'라는 대사 뒤에 스스로 수술을 당하는 것을 인지하고 행동하는 앤드류(테디)의 모습은, 이런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앤드류(괴물)로서 살아가느니, 가상의 인물인 테디가 되어 모든 것을 잊은 채 사는 것을 (수술)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결국 앤드류의 환상이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수긍이 가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를 테디 다니엘스의 이야기로 보아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조목조목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결국 이 모든 것이 음모를 파해치려는 연방 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를 막기 위해 병원가 박사가 몰아간 것이라고 보는 설도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운 부분이다. 그 만큼 스콜세지는 각각의 이야기에 논리가 될 만한 설정들을 영화 중간 중간에 직간접적으로 뿌려 놓았다. 이것들은 <셔터 아일랜드>가 재 관람 할 때마다 다른 영화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테디 다니엘스의 이야기로 믿으며 따라가느냐 아니면 앤드류 레디스의 이야기로 따라가느냐에 따라 영화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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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이 진실인가에 대한 논란은 그 자체로 너무도 흥미로운 이야기거리 이긴 하지만, <셔터 아일랜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진실이 무언인가?'에 대한 것은 아니다. 만약 진실에 관해 이야기하려 했다면 이 작품은 혼란스럽게 단서를 풀어놓 되 결말이 알려지고 나서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야 했고, 깊이 파고들면 들 수록 더 확고한 영화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트라우마' 그 자체다. 영화는 반전에 관련된 여러 단초들을 심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시종일관 하고 있다. 테디가 이 일에 자처한 것도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앤드류가 이곳에 있다는 정보 때문이며, 꿈만 꾸면 보이는 환상들(나치 수용소에 쌓여 있는 시체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자신의 아이들을 빨리 구하지 못한 트라우마까지) 역시 모두 테디 내면의 트라우마 들이다. 영화는 한 개인이 트라우마로 인해 어떻게 잠식되어 가고 고통을 겪는지의 과정을 스릴러라는 그럴 듯한 장르에 빗대어 들려준다.

이렇게 개인적인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셔터 아일랜드>의 트라우마는 개인적인 것 외에 당시 미국 사회의 레드 컴플렉스와 트라우마를 담고 있다. 극중 테디가 겪었던 나치 수용소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때 뿐이며, 공산주의자를 색출해 내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던 당시 미국 사회내의 문제는 영화가 담고 있는 불안으로 바꿔 이야기할 수 있다. 50년대 핵과 냉전 시대의 공포와 의심은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대의 트라우마를 개인의 트라우마에 빗대어 직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극중 조지 노이스(잭키 얼 헤일리)와의 대화 중에 '수소 폭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비유는 사실 매우 직접적인 당시 미국사회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다. 내부에서부터 폭발한다는 수소 폭탄의 비유는, 냉전 시대 소련이나 다른 세계로 부터의 공포보다는 메카시즘으로 대표되는 당시 미국 사회 내의 불안과 공포가 더욱 스스로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렸던 또 다른 영화는 바로 밀로스 포먼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였는데, 이 작품에도 <셔터 아일랜드>와 비슷한 시대 배경과 정신병원(뇌수술)이라는 설정이 등장한다. 실제 이런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는 미국 사회를 되돌아 보았을 때, 마치 독일이라는 나라가 '나치'라는 트라우마를 지울 수 없는 것처럼 현재의 미국 사회에서 역시 50년대 메카시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치와 공산주의의 정반대에서서 자유를 부르짖었던 자신들에게 나치와 똑같은 어두운 과거는 분명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였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는 시대의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개인에 빗대어 이야기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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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갈수록 매혹적이다. 1950년대에 빠져든 디카프리오는 당시 고전 헐리웃 영화 속 남자 배우들 처럼, 연극적인 연기를 펼친다. 스콜세지와의 호흡은 한계를 모르고 나아가고 있으며, 이젠 더이상 연기력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실례일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크 러팔로 라는 배우는 시대극에서 특히 장점을 발휘하는 것 같다. 그 자체가 미장센이 되는 연기에 있어서 마크 러팔로는 참으로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 밖에 벤 킹슬리와 막스 본 시도우 같은 베테랑 연기자들이 함께한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무게는 깊어지며, 미쉘 윌리엄스와 잭키 얼 헤일리(아시다시피 <왓치맨>의 '로어셰크'가 바로 그다), 그리고 에밀리 모티머와 패트리시아 클락슨의 연기도 좋았다. 디카프리오가 월등한 롤을 맡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조연급 연기자들의 연기를 맛보는 것도 이 작품의 또 다른 재미다.

여러가지 이유로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는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다.

1. 벌써부터 얼른 블루레이가 출시되었으면 좋겠네요. 디지털 상영으로 보았는데 영상의 입자 자체가 거친 편이라 칼 같은 선예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어서 블루레이나 DVD가 출시되어 음성해설 트랙이라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2. 마크 러팔로의 의상을 보며 자연스럽게 <조디악>을 떠올렸는데, 흥미로운건 <조디악>에서 범인으로 의심되었던 배역을 연기했던 존 캐롤 린치가 이 작품에도 소장(부소장?)으로 등장한다는 점이죠.

3. IMDB의 트라비아를 보니 파라마운트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데이빗 핀처와 브래드 피트, 마크 월버그로 진행하려고 했었다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조디악>스러워졌을지도 모르겠군요 ㅎ

4. 오랜만에 스코어에 감동 받았습니다. 감정적 감동이 아닌 영화적 감동이요. 사운드 트랙도 구매해야 겠네요.

5. 글을 다 쓰고 오랜만에 관련 글들을 읽어보며 정말 희열을 느꼈습니다. 영화의 반전을 가지고 각자의 논리들로 풀어놓은 글들을 보는 재미를 이렇게 느낀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6. 아, 또 보고 싶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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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

1950년대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본, 그들의 이상과 현실

리처드 예이츠(Richard Yates)의 소설을 원작으로 '아메리칸 뷰티'를 연출했던 샘 멘더스와 '타이타닉'의 커플이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이 출연한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지금까지 언급한 이유만으로도 일단은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잘 알다시피 샘 멘더스와 케이트 윈슬렛이 부부관계인 것 또한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이었으며 이 둘이 함께 처음으로 작업하게 된 작품이라는 점과, '타이타닉'의 커플이 11년 만에 다시 커플로 스크린에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영화 팬들에게는 분명 설레 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재미 있는건 이들 외에 역시 '타이타닉'에 함께 출연했었던 케시 베이츠 역시 '레볼루셔너리 로드' 비중 있는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명한 문학작품인 예이츠의 원작을 읽었던 이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이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결코 만만한 영화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올해는 물론 근래 보았던 영화들 가운데 가장 무겁고 괴로운 영화였으며, 냉소적인 시선과 희망적인 시선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부부관계에 대해 더 나아가서는 남녀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그 어느 영화보다 현실적이고 치밀한 묘사를 보여준 작품으로 당대 최고의 배우들인 레오와 케이트의 열연을 만나볼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이 영화는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당시 미국사회의 문제 거리였던 급속한 경제 성장과 맥카시즘에 관한 이야기들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정치/사회적인 영화는 결코 아니다. 1950년대 미국 코네티컷에 사는 중산층 부부인 프랭크와 에이프릴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이 둘의 이야기는 결국 지금의 것으로 그대로 가져와도 전혀 문제가 없음을 -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기까지 한 - 몸소 보여주고 있으며 '아메리칸 뷰티'를 통해 미국사회의 단면을 비교적 희망적으로 조명했던 샘 멘더스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가 만들어낸 어두운 면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견뎌내야만 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그려내고 있다.


(이후 네 단락에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극중 휠러 부부가 사는 거리의 이름이다. 잘 사는 중산층을 대변하는 일종의 상징으로서 인식할 수 있을 텐데, 이 거리와 언덕 위의 하얀 집은 전형적인 보기 좋은 상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영화에서 하나 흥미 깊게 지켜볼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던 이 언덕 위의 집이(=휠러 부부가) 점점 어떻게 감옥 같은 공간으로 변해가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 휠러 부부는 이 가운데서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선망에 대상이며, 그들 스스로도 이를 인지하고 보여지는 것에 더욱 신경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생계를 위해 하고 싶지 않은 뻔한 세일즈 일을 해오고 있는 프랭크(디카프리오)와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가사를 꾸려가고 있는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은 우연한 기회에 파리로의 여행이 아닌 이민을 계획하게 된다. 현재의 삶에 무력함과 공허함을 느끼던 에이프릴은 예전 사진을 정리하다가 파리에 꼭 다시 가보고 싶다던 프랭크의 말을 떠올려 급작스레 이를 계획하게 된다. 프랭크도 처음에는 이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현실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터라 이 비현실적으로만 보이는 계획에 함께 하게 된다.




이 계획이 있기 전 프랭크가 기차를 타고 회사에 출근하는 장면은 그의 삶을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출근 시간 다른 사람들과 구분이 되지 않는 똑같은 양복과 모자, 무엇보다 표정으로 무의미하게 회사 건물로 들어서는 프랭크의 모습은, 프랑스 이민을 결정하고 나서 180도 달라진다. 분명 똑같은 옷과 시간이지만 현실에서의 탈출구를 계획하고 있는 프랭크에게는 유난히 빛이 나게 마련이다 - 이 말은 그대로 장면으로 표현되는데, 정말 놀랍기만 하다 - . 휠러 부부는 친한 부부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데, 이 부부는 이들 앞에서는 말하지 못했지만 이들이 가고 나자 말도 안되게 유치한 계획이라며 서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이들 부부의 행동과 설정은 휠러 부부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 역시 자신들의 솔직한 마음을 얘기하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그 앞에서는 그러지 못한다. 말하고 싶은 건 이상이고, 그럼에도 말 못하고 나중에 뒤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현실이다. 이 친구 부부의 남편은 자신의 집 마당에서 휠러 부부의 집을 멀찌감치 동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는 오래 전부터 에이프릴에게 연정을 품었지만 이를 고백하지 못한다.




이렇게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때조차 믿어주지 못하는 거품으로 덥힌 관계 속에 영화는 현실과 이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휠러 부부의 이야기를 - 가식이 아닌 -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이 정신적 병을 갖고 있는 '존 (마이클 섀넌)' 뿐이라는 점은, 이 부부와 이들을 둘러싼 사회의 대한 깊은 메시지를 전하는 매우 직접적인 설정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속에서 존은 휠러 부부의 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듯이 그들의 행동과 관계에 대해 거칠게 몰아치는데, 이는 존의 이야기가 '너무' 직언이기 때문이다. 뭐라고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치부를 꿰뚫고 있는 말들은 거칠게 반응한다 해도 뒷 맛이 깔끔할 리가 없다.



(좁은 방안에서 여러 명의 캐릭터들을 서로 겹치지 않게 배치한 이 쇼트는 가히 압도적이다. 마치 유명 사진작가의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 이 장면은, 그 대사들과 캐릭터가 갖는 의미들로 인해 더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영화가 가장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이상과 현실에 대한 판단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본다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이뤄내기 위해 떠나는 '파리' 행이 이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화를 차근차근 보다 보면 과연 이들이 이상향으로 설정한 '파리'가 이상인지 혹 현실은 아닐지, 반대로 '코네티컷' 역시 벗어나고만 싶은 현실이 맞는 건지 아니면 이상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인지 매우 혼란스러움을 겪게 된다. 즉 이상으로만 꿈꿔 왔던 것과 현실은 사실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며, 이상을 택하는 것으로 완전 해결되는 현실의 문제는 없다는 진리를 깊은 곳에 숨겨둔 텍스트라고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스포일러 끝)



사실 이 작품을 처음 극장에서 접했을 때에는 바로 리뷰를 쓸 수 없었을 정도로 괴로운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내용 때문에 다른 것들이 잘 보이지 않았었는데, 블루레이로 재차 감상을 하면서 배우들이 열연만큼이나 돋보이는 영화적 미학의 순간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요즘 영화들로는 매우 드물게 세트 촬영이 거의 없이 100%에 가까운 장면들을 로케이션 촬영으로 소화했다는 점이 이색적인데, 영화의 배경이 되는 코네티컷 주의 한 집을 실제 모델로 하여 그 공간 내에서 인위적인 장치들을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영화적으로 너무 아름다운 장면들을 완성해냈다. 세트가 아닌 실제 집을 무대로 촬영을 하다 보니 조명장치를 좀 더 활용할 수 없었고, 동선 등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톤 핑크’ ‘쇼생크 탈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을 촬영했던 명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가 창조해낸 영상들은 색감이나 조명 부분에 있어서 최고의 순간을 선사한다. 조명에 대한 찬사들은 감독과 작가가 함께한 코멘터리에서도 재차 확인할 수 있다(주로 코엔 형제와 작업을 해왔던 로저 디킨스는 감독인 샘 멘더스와는 ‘자헤드 ? 그들만의 전쟁’을 함께 했었고, 케이트 윈슬렛과는 ‘더 리더’를 통해 함께 작업하기도 했었다)




촬영만큼이나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은 바로 음악이다. ‘월-E’와 ‘아메리칸 뷰티’ 등 여러 흥행작들의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토마스 뉴만은 이 절제와 폭발이 공존하는 영화에 무섭도록 냉정한 차분함과 서글픔을 동시에 전달하고 있다. 그 테마 몇 마디만 들어도 영화의 전반적인 메시지와 색감이 떠오를 정도로 토마스 뉴만이 만들어낸 선율은 또 다른 의미에서 중독적이다. 토마스 뉴만은 역시 감독과는 ‘자헤드 : 그들만의 전쟁’을 함께 했었고, 케이트 윈슬렛과는 ‘리틀 칠드런’을 통해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다.




차 안에서 심하게 다투는 이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서, 만약 ‘타이타닉’의 잭과 로즈가 죽지 않고 계속 함께 지내왔다면 프랭크와 에이프릴과 같은 시간을 겪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 그 만큼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이 두 배우가 함께 출연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두근대는 영화였지만, 영화 속에서는 ‘타이타닉’ 당시에는 그저 외모가 더 돋보였던 이 두 배우가 현재는 어떻게 당대를 대표하는 남녀 배우라고 불리 우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케이트 윈슬렛은 ‘더 리더’로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리더’가 아닌 이 영화로 수상을 했어야 더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한다. 그 만큼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통해 그녀가 보여준 연기는 언제나 그렇듯 신뢰가 가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에 더해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등이 출연했던 ‘다우트’와는 또 다른 의미로 스크린을 장악하는 열연을 펼치고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이제 이렇게 미묘한 감정과 심리를 다룬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을 꼽으라면 단연 그를 최우선으로 꼽게 될 정도로 아카데미가 부럽지 않을 최고의 열연을 펼쳤다.




존 기빙스 역할을 맡은 마이클 섀넌 역시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석 같은 존재다. 그는 일반적인 정신 질환자로 보기 어려운 존 기빙스 역할을 맡아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두 주연 배우를 압도할 정도의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영화의 중요한 줄기를 담당하고 있다. 사실 그의 분량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닌데 영화를 다 보고 관객이 느끼는 비중은 두 배우 못지 않을 정도이니 그가 연기한 캐릭터의 임팩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이 밖에 기빙스 부인 역할을 맡은 케시 베이츠와 하워드 기빙스 역할을 맡은 리차드 이스튼은 왜 그들이 베테랑 연기자인지 연기로 증명하고 있으며, 조 카잔이 깜찍한 얼굴도 기억에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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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0p 풀HD영상과 MPEG-4 AVC포맷을 수록한 화질은 영화 속 1950년대를 고스란히 안방극장으로 전달하고 있다(그렇다고 50년대의 오래된 화질은 절대 아니니 안심하시길 ^^;). 사실 이렇게 조용한 드라마 장르 영화에서는 액션 블록버스터나 SF 영화들에 비해 차세대 화질을 체감하는 정도가 적은 편이긴 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레볼루셔너리 로드’ 블루레이의 화질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편이다. .

(아래 4장의 그림은 클릭하면 원본 사이즈의 그림으로 확대됩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100% 로케이션 촬영과 한정된 공간에서 많은 부분이 촬영되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풍부한 조명보다는 제한된 광량이 효과적으로 사용된 장면들이 많은데, 옅은 그림자들이나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볕 같은 부분이 블루레이의 화질로 잘 표현되고 있는 편이다. 또한 클로즈업 시에는 캐릭터의 고뇌가 더 와 닿을 정도로 피부의 질감 표현도 만족스러운 편이고, 1950년대를 완벽하게 복원해 낸 당시 사회의 분위기와 색감들도 잘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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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 True-HD 5.1채널을 수록한 사운드는 기술적인 면에서 크게 아쉬울 것은 없는 사운드지만, 작품의 특성상 차세대 사운드를 실감할 만한 부분이 비교적 적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몇 가지 소소한 사운드를 체감할 수 있는 장면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운드 임팩트는 대사와 스코어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차세대 사운드답게 대사 전달은 또렷하게 전해지고 있으며, 토마스 뉴만의 스코어가 흐를 땐 좀 더 깊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레볼루셔너리 로드’ 블루레이 타이틀이 반가웠던 가장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감독인 샘 멘터스와 시나리오를 각색한 저스틴 헤이시가 참여한 음성해설이 수록된 점이었다. 보통은 배우들이 참여하는 코멘터리를 선호하게 마련이지만 이 작품 같은 경우는 감독과 작가의 코멘터리가 예이츠의 원작과 비교하며 더욱 뜻 깊은 시간이 되고 있는 듯 하다(배우들의 코멘트는 메이킹 영상으로 충분히 보완되고 있다). 코멘터리를 통해 1950년대를 재현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기 전 촬영 감독인 로저와 함께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와 교외의 모습을 묘사한 영상들을 많이 참고했다는 이야기와, 실제 로케이션 장소에서 촬영 함으로서 얻게 되는 영화적 이득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이 영화의 끔찍한 결말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감독과 배우라지만 그 이전에 남편인 샘 멘더스가 어떻게 자신의 아내에게 이런 연기를 시킬 수 있었을까 - 참 독하다 - 하는 생각과 의문이 있었는데, 자신의 평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촬영이었다는 코멘터리를 들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다.




‘Lives of Quiet Desperation : The Making of Revolutionary Road’는 제목 그대로 전반적인 메이킹 영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프리 프로덕션과 캐스팅, 촬영, 프로덕션 디자인 등 전분야의 배우와 스텝들의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처음 영화화가 기획되면서 주연인 케이트 윈슬렛이 가장 먼저 캐스팅이 되었고 그 다음에 감독인 샘 멘더스가,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무려 케이트가 2년 반을 설득하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 점도 알 수 있었다. 또한 실제 로케이션 촬영을 고집하다 보니 프랭크의 일터인 녹스 빌딩이나 부부가 사는 언덕 위의 집 같은 경우 비슷한 조건의 건물을 찾지 못해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문도 들을 수 있었다. 참고로 집 뒤편에서 휠러 부부의 집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캠벨 부부의 집 또한 영화 속에 등장한 그 위치에 그대로 있는 집을 이용하여 촬영한 경우다.




‘The Wages of Truth‘는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책을 쓴 리처드 예이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후 미국소설 중 최고의 작품으로 추앙 받는 그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와 ‘인간 예이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을 그의 친구들과 딸들의 인터뷰를 통해 전해들을 수 있다. 상당히 많은 분량의 인터뷰로 이어진 영상으로서 리처드 예이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Deleted Scenes’ 을 통해서는 비교적 많은 분량의 삭제 장면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감독인 샘 멘더스의 설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삭제 장면의 특이할 점이라면, 장면과 감독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삭제 장면들이 본편에 수록된 장면들 보다 도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진 다는 점이다. 한 장면 한 장면을 설명할 때마다 ‘이 장면은 정말 제일 마지막에 회의를 거쳐 삭제하기로 한 장면이에요’ ‘이 영화만큼 좋은 장면들을 삭제한 영화는 없습니다’ ‘이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등 샘 멘더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본편 장면들이 잠시나마 ‘초라’해질 정도다 ^^; 그 만큼 본편에 버금가는 완성도를 지닌 삭제 장면들이 수록되어 있으니 꼭 놓치지 말고 감상하길 바란다. 그 밖에 극장용 예고편이 수록되었다.




[총평]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감독과 배우들의 인지도에 비하면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한 작품이지만 단연코 올해 개봉한 작품들 가운데 최고 수준에 있는 드라마이자, 깊은 현실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생각해 볼만한 작품이었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현실은 견디기 힘들 정도지만, 영화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장면들과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열연은 상투적인 표현일지언정 거짓은 아님을 분명히 말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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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 Road, 2008)


1. 원래 리뷰를 반 이상 굉장히 많이 써놓았었는데, 도저히 정리가 안되더군요. 가끔 그럴 때가 있는데 이번 경우는
<바벨>의 경우처럼 영화에 완전히 압도당해 쓸 엄두를 못 내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좀 처럼 정리가 되지 않더라구요;;

2. 사실 반 이상 써놓았던 리뷰만 봐도 그렇지만, 이 영화는 굉장히 할 얘기가 많은 영화였어요.
그냥 <타이타닉>의 두 주인공이 나온다길래 워낙에 좋아하는 배우들이라 주저없이 선택한 영화였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할 얘기거리도 많았고,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들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좀 처럼 하나의 '글'로서 마무리 짓지를 못하겠더군요;

3.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 편하지 만은 않더라구요. 이 영화는 굉장히 내면을 건드리는 영화인데, 상당히 냉소적이고 현실적인데다가 비관적인 논조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괴롭더군요. 꼭 내 얘기가 아니더라도 주인공에게 쉽게 동화되는 저로서는 역시나 괴롭더라구요 ^^;

4. 영화를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화 속 케이트 윈슬렛이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감독인 샘 멘더스가 감독으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남편으로서는 상당히 독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아무리 영화라지만 저 같으면 자신의 아내에게 이런 캐릭터를 연기시키지는 못할 것 같아요;;

5. 마이클 샤논이 연기한 '존'이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영화 속에서 보면 존이 휠러 부부에게 따지듯이 얘기하는 장면이 나와요. 근데 이 장면은 존이 휠러 부부의 내면의 욕망과 허영과 모든 것을 겉으로 끄집어 내어 까발리는 굉장히 괴로운 장면이라 할 수 있는데, 관객들이 이 장면에서 웃더라구요. 도대체 뭐가 우스웠던 겁니까.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이라 우스웠던 것인지 묻고 싶어지더라구요.

6. 안좋았던 기억에 대해 하나만 더 추가하자면, 영화를 본 아트하우스 모모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모두 끝날 때까지 불이 켜지지 않는데(이게 맞죠), 뒤에 앉으신 여자 분 두 분이 계속 작지 않은 소리로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여기 왜 불 안켜줘' '뭐야 이거 다 봐야 되는거야?' '뭐야 우리 무슨 극장에 갇힌거야?'
저 정말 거의 처음으로 극장에서 큰 소리로 누구에게 따질뻔했어요. 엔딩 크래딧을 저처럼 모든 관객들이 보길 원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보고 싶어도 시간 때문에 일찍 나가야할 수도 있을거고. 하지만 보고 싶지 않으면서 보고 싶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짜증이 나더군요.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이것들 때문에 영화평을 정리 못한 것은 아니에요 ^^;)

7.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영화의 초반에 부부관계인 두 주인공이 다투는 장면이 나오는데, 왠지 타이타닉의 잭과 로즈가 죽지 않고 계속 부부관계를 유지했다면, 아마도 이런 권태기를 한번쯤은 겪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왠지 잭과 로즈의 연장선으로 느껴져서 재미있기도 했죠.

8. 결국 영화는 현실과 이상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데, 제 생각은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이상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즉 이상으로 여겼던 것들이 어쩌면 또 다른 현실일 수도 있고, 현실로만 생각해왔던 것이 어쩌면 이상과 별 차이가 없는 것 일 수도 있다는 거죠.

9. 가장 좋아하는 남녀 두 배우들 하나인 레오와 케이트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더라구요. 멋지게 배우로 성장한 둘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어서 이기도 했고, 그냥 둘이 좋아서이기도 했구요.

10. 음악도 참 좋았습니다. 스코어 앨범이 나온다면 구매하고 싶을 정도로요.

11. 그냥 두 배우가 나오는 로맨스 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으시면 될 것 같아요. 인간관계과 현실과 이상, 그리고 결혼에 관한 냉소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화에요.

12. 마지막 극중 케시 베이츠의 남편의 행동이 이 영화에 심정을 말해주는 것 같아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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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드림웍스 픽쳐스에 있습니다.







아래는 반도 못 쓴 리뷰인데, 혹시나 나중에라도 이어쓰거나 수정할 일이 생길지 몰라 남겨두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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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 Road, 2008)
무엇이 현실이고 이상인가.

리처드 예이츠(Richard Yates)의 소설을 원작으로 <아메리칸 뷰티>를 연출했던 샘 멘더스와 <타이타닉>의 커플이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이 출연한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지금까지 언급한 이유만으로도 일단은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잘 알다시피 샘 멘더스와 케이트 윈슬렛이 부부관계인 것 또한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이었으며, <타이타닉>의 커플이 11년 만에 다시 커플로 스크린에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영화팬들에게는 분명 설레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재미있는건 이들 외에 역시 <타이타닉>에 함께 출연했었던 케시 베이츠 역시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비중있는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원작이 된 예이츠의 소설도 읽어보질 못했고, 영화에 대한 정보라고는 감독과 배우들 뿐이었기에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관람하게 되었는데, 영화는 생각보다 상당히 냉소적인 동시에 괴롭기까지한 영화였다.


(이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영화는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심하게 다투는 휠러 부부의 언쟁으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일단 이 첫 장면부터 한 번에 체감할 수 있었던 건 이 영화의 화면비였다. 드라마 장르치고는 드물게 2.35:1의 와이드 비율로 영상을 제공하고 있는데, 스펙터클한 장면이 많은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2.35:1의 화면비를, 드라마가 주가 되는 이 영화에서 사용한 이유는 바로 인물들간의 거리를 더 표면적으로 느끼게 해주어 관객들로 하여금 캐릭터들이 한 공간안에 있어도 그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 생각하도록 만들게 된다. 초반 좁은 자동차 앞 좌석에 앉아 두 주인공이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차안 옆 좌석에 앉아있음에도 이 사이에 얼마나 큰 거리가 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다. 사실 더 인상적인건 극중에서 두 인물이 표면적으로는 다투고 있지 않을 때라고 할 수 있을텐데,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있을 때도 그렇고 우리가 현실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는 인물들 간의 거리를 눈에 확 띄도록 설정함으로서 이 영화에서 말하려고 하는 현실과 이상간의 간극, 인물들 간의 갈등에 대해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극중 휠러 부부가 사는 거리의 이름이다. 잘사는 중산층을 대변하는 일종의 상징으로서 인식할 수 있을텐데, 이 거리와 언덕 위의 하얀 집은 전형적인 보기 좋은 상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휠러 부부는 이 가운데서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선망에 대상이며, 그들 스스로도 이를 인지하고 보여지는 것에 더욱 신경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생계를 위해 하고 싶지 않은 뻔한 세일즈 일을 해오고 있는 프랭크(디카프리오)와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가사를 꾸려가고 있는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은 우연한 기회에 파리로의 여행이 아닌 이민을 계획하게 된다. 현재의 삶에 무력함과 공허함을 느끼던 에이프릴은 예전 사진을 정리하다가 파리에 꼭 다시 가보고 싶다던 프랭크의 말을 떠올려 급작스레 이를 계획하게 된다. 프랭크도 처음에는 이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현실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터라 이 비현실적으로만 보이는 계획에 함께 하게 된다.

이 계획이 있기 전 프랭크가 기차를 타고 회사에 출근하는 장면은 그의 삶을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출근 시간 다른 사람들과 구분이 되지 않는 똑같은 양복과 모자, 무엇보다 표정으로 무의미하게 회사 건물로 들어서는 프랭크의 모습은, 프랑스 이민을 결정하고 나서 180도 달라진다. 분명 똑같은 옷과 시간이지만 현실에서의 탈출구를 계획하고 있는 프랭크에게는 유난히 빛이 나게 마련이다. 휠러 부부는 친한 부부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데, 이 부부는 이들 앞에서는 말하지 못했지만 이들이 가고나자 말도 안되게 유치한 계획이라며 서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이들 부부의 행동과 설정은 휠러 부부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 역시 자신들의 솔직한 마음을 얘기하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그 앞에서는 그러지 못한다. 말하고 싶은건 이상이고, 그럼에도 말못하고 나중에 뒤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현실이다. 이 친구 부부의 남편은 자신의 집 마당에서 휠러 부부의 집을 멀찌감치 동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는 오래전부터 에이프릴에게 연정을 품었지만 이를 고백하지 못한다.

이렇게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때조차 믿어주지 못하는 거품으로 덮힌 관계 속에 영화는 현실과 이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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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이라 할 수 있는 '존'과 연관 지은 이야기는 시작도 못하고 리뷰를 접게 되었네요;;;




바디 오브 라이즈 (Body Of Lies, 2008)
리들리 스콧과 레오, 그리고 마크 스트롱!

<바디 오브 라이즈>는 개봉 전부터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대를 모았던 영화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인의 반열에 이미
올랐다 할 수 있는 리들리 스콧이 연출하고 스콜세지의 페르소나가 되면서 매 작품마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리고 항상 선굵고 무게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러셀 크로우가 출연한 영화였기 때문이었죠.
더군다나 이 작품은 리들리 스캇과 함께 <아메리칸 갱스터> <블랙 호크 다운>등을 만들어온 주요 스텝들이 고스란히
참여하고 있는 영화라 또 한 번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특히 <킹덤 오브 헤븐>과 <디파티드>의 각본을 썼던 윌리암 모나한이
이 작품에도 각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간단히 얘기해보자면, 리들리 스캇이 선사하는 장면 장면의 완성도와 <블랙 호크 다운>에 이어 중동을
실감나게 그리는 그 재주는 여전했지만, 무언가 새로울 것 없이 기존 비슷한 영화들에서 보여주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반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던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리들리 스캇과 레오 모두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이기에 그럭저럭 볼만 했지만요.


영화는 CIA 비밀 요원 로저 페리스(디카프리오)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의 알 살림을 쫓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스릴러라는 장르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장 요원인 로저 페리스는 본국의 상사인
호프만(러셀 크로우)에게 지속적으로 지령을 받아 각종 작전을 지휘하게 되는데, 이 둘의 관계는 이 영화의 주된 관계 중
하나로 등장합니다. 현장 요원인 페리스는 어느 정도 선한 의도에서 정보원들의 생명을 존중하고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신뢰와 우정을 중시하지만, 호프만은 '전쟁에는 희생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미국에게 이로운 것을 위해서는
전혀 다른 것들을 신경쓰지 않는 냉혈한으로 그려집니다. 여기서 조금 아쉬웠던 건 호프만은 사실상 내용상으로 보면
악역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가족에게 신경쓰고 러셀 크로우의 불어난 체중처럼 날카롭지 못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아주 냉혈한스러운 인상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좀 더 정치적으로 모호한 영화가 되기도
했구요. 인터뷰를 보니 이 영화는 처음부터 정치적인 입장을 확실히 하기 보다는 단순히 '상황'을 리얼하게 보여주는데에
좀 더 중점을 둔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여전히 훌륭합니다. 스콜세지의 작품에 연속으로 출연하면서 이제 디카프리오에게
'이제는 연기파 배우다'라고 굳이 재차 말할 필요가 없어졌죠. 생각해보면 최근 디카프리오의 작품들에서 그는 거의 한번도
말끔하게 면도한 채 등장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즉 액션이나 스릴러 등 장르에서 좀 더 거친과 강한 캐릭터들을
주로 연기해 왔다는 말도 되겠죠. 로저 페리스를 연기한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액션이면 액션, 표정이면 표정 다 수준급
이상이지만 뭔가 계속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 서서히 들기 시작합니다. 특히 전작인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그가
연기했던 '대니 아처'와 여러 부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대니 아처보다 페리스는 덜 활발하고 유쾌한
대신 액션이나 무게감을 더 주기는 하지만요. 개인적으로 <바디 오브 라이즈>에서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만족스러웠지만,
이런 비슷한 캐릭터가 한 번 더 반복된다면 그 때 부터는 조금 우려스럽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러셀 크로우의 경우는 알려진 바와는 달리 거의 조연에 가깝습니다(기존에 홍보를 통해 알려진 바로는 마치 디카프리오 VS
크로우 이런 동등한 대결구도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 물론 몸무게를 20킬로 이상 불렸다는 것처럼 약간은 나태함이
엿보이면서도 악역스런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그만의 카리스마를 다 담기에는 조금 심심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 속에서 크로우의 굴욕 장면이 나오는데, 속으로 불쌍하기까지 하더군요 ㅎ).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 가장 멋진 배우를 꼽으라면 '하니'(달려라 하니 아니에요 --;)역할을 맡은 마크 스트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얼핏 보면 샤프한 앤디 가르시아를 보는 듯도 하고, 한 편으론 베르바토프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마스크를 갖은 그는 이 영화에서 요르단의 정보 국장인 '하니'를 연기하는데 정보국장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주어야 할
여유로움과 날카로움, 그리고 무서움을 모두 잘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그의 필모그라피를 뒤져보니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
중에 보았던 영화들이 제법 있는데 다들 큰 역할은 아니었는지 그의 얼굴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네요.
여튼 시종일관 거친 사막과도 같은 곳에서 항상 양복을 입고 포스를 뿜어주시던 그의 연기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리들리 스콧의 영화답게 몇몇 장면에서는 스케일이 느껴집니다. 헬기가 동원된 액션 씬도 물론이고 총격씬 같은 경우도
헐리웃에서 아마 마이클 만을 제외한다면 가장 수준 높은 총격 액션 씬을 보여주는 그 답게 리얼한 장면을 선사합니다.
일부 액션씬에서는 카메라를 무려 8대나 동원해서 촬영을 했던데 그 만한 노력을 스크린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리들리 스콧과 그의 팀이라서 이 새로울 것 없는 영화가 어느 정도 볼만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겠구요. 충분히 만족할 만한 영화라고는 볼 수 없겠으나,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엔 좀 아쉬운 영화라고 해야겠네요.
전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감독과 배우의 팬이라 그럭저럭 즐겼지만요~ ^^;



1. 최근 개봉했던 <이글아이>같은 경우도 그렇고, 핸드폰 쓰기 참 무서워지는 세상입니다.
   핸드폰 하나면 모든게 감시 가능하니 말이죠.

2. 중동과 유럽 각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로케이션 촬영 장면을 즐기는 것도 또 하나의 볼거리입니다.

3. 엔딩에 흐르는 곡은 'Guns n' Roses'의 'If the World'입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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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역사란 곧 미국의 역사라는 말과도 같다.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전하는, 미국인들조차 잘 알지 못했던 뉴욕의 피비린내 나는 탄생의 보고서. [갱스 오브 뉴욕]
 
Synopsis
 

1860년대 초 뉴욕의 격동기. 월 스트리트의 비즈니스 지구와 뉴욕 항구, 그리고 브로드웨이 사이에 위치한 파이브 포인츠는 뉴욕에서 최고로 가난한 지역이며 도박, 살인, 매춘 등의 범죄가 만연하는 위험한 곳이다. 또한 이 곳은 항구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매일 수 천 명씩 쏟아져 들어오는 꿈의 도시도 하다.



그러나 파이브 포인츠에 사는 정통 뉴요커들은 아일랜드 이주민들을 침입자라 여기며 멸시한다. 결국 두 집단의 갈등은 전쟁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아일랜드 이주민의 존경을 받던 데드 레빗파의 우두머리 프리스트 발론은 빌 더 부처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그의 어린 아들 암스테르담 발론은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16년 후, 성인이 된 암스테르담은 복수를 위해 빌 더 부처의 조직 내부로 들어간다. 뉴욕을 무자비한 폭력과 협박으로 지배하며 파이브 포인츠 최고의 권력자로 성장한 빌 더 부처는 자신을 향한 음모를 까맣게 모른 채 암스테르담을 양자로 삼게 된다. 암살계획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암스테르담은 빌 더 부쳐의 정부(情婦)이자 소매치기인 제니 에버딘을 만나 한눈에 반하게 되고 처절한 복수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마틴 스콜세지의 필생의 프로젝트
 
[갱스 오브 뉴욕]이 기획된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이전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는 언젠가는 반드시 뉴욕의 역사에 관한 딱 잘라, 뉴욕에 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항상 생각해 왔었다. 이미 20년도 더 전에 [갱스 오브 뉴욕]에 관한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실행하려고 했지만, 그 당시로서는 그만한 이야기를 담아낼 만한 여력이, 스콜세지에게도 제작사에게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제작사에서는 거대한 스케일과 긴 러닝 타임 등을 고려해, 이 프로젝트를 무척이나 부담스러워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지난해인 2002년에야 그 뜻을 이루게 된 [갱스 오브 뉴욕]은 이와 같은 커다란 기대 때문이었는지 전체적으로는 관객들에게도 평론가들에게도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하였다. 개인적으로는 극장에서 볼 때에도 크게 지루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갱스 오브 뉴욕]에 전체적인 반응은, ‘지루하다’였다. 블록버스터 치고는 긴 러닝타임인 2시간 40분이 넘는 시간과(아시다시피 164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본래 22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을 제작사인 미라맥스에 설득 끝에 편집된 것이라고 한다), 감동을 주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서사적 보고서에 가까운 이야기와 전개가, 자극에 민감한 대부분의 관객들에게는 결코 달가웠을 리가 없었다. 흥행 성적은 그렇다쳐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등 중요 시상식의 중요 부분을 노렸음에는 분명한 영화였는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골든 글로브를 수상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득을 본 것이 없었다. 특히 아카데미에서는 무려 10개의 중요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단 한 개의 오스카상도 가져가지 못하였다. 이는 어쨌거나 감독인 스콜세지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되었으며, 제작사인 미라 맥스 역시 울상 짓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에 실망이 컸던 것 같고, 마틴 스콜세지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임엔 분명하지만, 처음 기획부터 영화화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체되면서 많이 지쳐버린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갱스 오브 뉴욕]은 최근 영화들에 비하면 오락적인 요소가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틴 스콜세지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는 그래도 오락적 요소가 제법 있는 영화라 생각되고,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를, 콕 찍어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 열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살펴보자.
 
영화가 지루했다는 사람들도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 연기에는 뭐라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영화는 시큰둥한 반응이 많았었지만 그런 반응을 보인 사람들조차도 무시 못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빌 더 부쳐 역할을 맡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였다. 이미 [나의 왼발] [아버지의 이름으로] [라스트 모히칸]등에서 선 굵고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었던 다니얼 데이 루이스는 연기를 하지 않겠다는 은퇴선언을 번복하며 출연한 [갱스 오브 뉴욕]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경지에 연기를 선보였다. 일명 ‘도살 광’이라고 불리는 뉴욕의 토박이들의 리더 격인 ‘빌 더 부쳐’역할을 맡은 그는, 이전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들과는 또 다른, 완전히 다른 한 인물을 새롭게 그려내면서 무서우리만큼 냉정하고 치밀한 성격과 육체적으로도 강한 인상의 ‘빌’이 된다. 함께 출연하였던 ‘리암 니슨’의 말을 빌리자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빌’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빌’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촬영을 하는 동안이 아닐 때에도 동료 배우들을 극중 이름으로 대하고, 그중 캐릭터처럼 생활했다는 것이다. ‘빌 더 부쳐’라는 인물에 너무 깊게 빠져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한동안은 그중 그의 악센트를 결코 쉽게 버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카메론 디아즈의 말로도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이 같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완벽한 연기는 스콜세지의 영화에 주인공하면 떠오르던 로버트 드니로를 잠시도 생각나지 않게 하였다.




[갱스 오브 뉴욕]은 대부분 모두의 박수와 관심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에 맞추어 지긴 했지만, 그 외에도 여러 배우들이 크고 작은 역할을 훌륭히 연기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관심에 초점이 되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레오가 [타이타닉]때보다는 많이 성숙했다는 것이었다. 잘 생긴 외모와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으로 단번에 최고의 스타가 되었던 레오는, 이제는 한 번쯤 자신을 뒤돌아볼 여유가 생긴 듯 하다. 거칠고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레오 자신도 배우로서 많이 발전한 듯 하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 카메론 디아즈 등 동료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는 방식도 예전보다는 많이 터득한 것 같다. 관객들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완벽한 연기에 눈을 빼앗겼지만, 레오 자신에게는 [갱스 오브 뉴욕]이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영화의 포스터, DVD의 자켓에도 주연 배우 세 명의 이름과 얼굴이 크게 프린트 되어 있지만 [갱스 오브 뉴욕]에는 이들 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능력 있는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 일단 영화의 초반부 ‘빌 더 부쳐’와 맞서는 발론 신부 역할로 출연한 리암 니슨을 들 수 있다. 비록 시작부분 잠깐이기는 했지만 영화의 설정한 중요한 역할인 발론 신부역할을 인상 깊게 연기하였다. 그리고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정치인을 연기한 짐 브로드밴드. 그리고 존 C.라일리브랜든 그리섬 등은 다른 영화라면 주인공으로 출연하여도 젼혀 손색이 없는 배우들이지만 또한 개성 있고 자연스러운 조연 역할에도 익숙한 배우들인지라, [갱스 오브 뉴욕]에서도 주연 배우들에 비해 튀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카메라가 돌아왔을 때에는 강한 인상을 심어 주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싶었을 쟈니 역할은 바로 이전 [E.T]에 주인공 엘리엇으로 출연했던 헨리 토마스가 맡았다. 그 동안 몇몇 작은 영화에 출연했었던 헨리 토마스는 [갱스 오브 뉴욕]을 계기로 다시금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Gangs of New York / DVD

일단 기본적인 화질과 음질은 최신 출시된 타이틀답게 비교적 높은 수준의 퀄리티를 재공하고 있다. 시대, 서사극을 표현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미술, 의상 등일 것인데, 1800년대의 뉴욕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엄청난 크기의 세트들과,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다양하고 고풍스러우면서 화려한 의상들은 [갱스 오브 뉴욕]을 감상하는 또 다른 재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DVD는 이 같은 배경과 의상 디자인을 섬세하게 재공하고 있으며, 영화 자체가 표방하는 컬러인 갈색과 회색 톤의 색감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제법 액션 장면이 등장하는 [갱스 오브 뉴욕]에서 사운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인데,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는 거리에서 펼쳐지는 잔혹한 전투의 소리들을 현실적으로 전해준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대포에 의해 폭발하는 장면에서는 DTS의 음장감을 실감할 만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갱스 오브 뉴욕]DVD 타이틀의 가장 아쉬운 점으로 남는 것은 바로 본 편이 두 장으로 나뉘었다는 사실인데, 이는 많은 DVD 마니아들이 귀찮아하는 일로, 타이틀의 구매를 한 번 더 선택하게 하는 단점이 된 것 같다. 본 편과 같이 두 장의 디스크에 나뉘어 담긴 서플먼트를 살펴보자.




일단 가장 반가운 서플은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의 음성해설을 들 수 있겠다. 다른 어느 영화보다도 감독이 할 말이 많았었을 법한 영화인지라 음성해설의 수록은 DVD마니아와 마틴 스콜세지의 팬이라면 아니 기쁠 수 없을 것이다. 화질을 언급하며 잠시 거론되었듯이 [갱스 오브 뉴욕]에서 스토리 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는 세트와 의상 등 디자인 요소를 들 수 있는데, DVD타이틀도 이 같은 중요성을 강조하듯 디자인에 관련된 서플먼트들이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또한 세트를 설명하는 영상에서 360도 팝업을 지원하는 서플은, 넓고 다양한 1800년대 뉴욕의 거리를 좀 더 가까운 시선으로 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몇 가지 다큐멘터리 영상이 수록되어 있는데, 영화에 관련된 제작 과정 노트라던가 에피소드 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실제 뉴욕의 역사에 기인한 다큐멘터리가 수록되어 영화의 기본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 같은 영상들은 위와 같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흔한 제작과정 다큐멘터리가 하나 정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극장용 예고편과 U2가 부른 주제곡 ‘The Hands that Built America'의 뮤직 비디오도 감상할 수 있다.
 
2003.09.08
글 / ashitaka


블러드 다이아몬드 (Blood Diamond, 2007)


이 영화는 의외로 소리소문없이 제법 갑자기 개봉을 하게 되었는데

때마침 레오의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 소식이 들려와

어떤 영화일까 알아보던 중 에드워드 즈윅 감독에 제니퍼 코넬리까지 출연하는 영화라는

것을 알고 바로 극장을 찾게 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대략적으로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피의 다이아몬드의

유통과정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참사와 역시나 갖은 자의 힘의 논리 등

현재도 실제로 자행되고 있는 다이아몬드 유통상의 문제를 배경으로

정치적이면서도 개별적인 문제에 대해 동시에 풀어내고 있다.


정치적이라는 것은 앞서도 말했듯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픽션이 아니라 실제로 다이아몬드 유통과정에

존재하는 일들이라는 점인데,

힘의 논리에 의해 가해지는 무자비한 학살들과 그런 것과는 전혀 별개로

이루어지는 지극히 상업적인 논리들이, 도대체 인간성이라는 것이

요즘 세상에(미처버린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아프리카의 참혹한 현실을 다룬 점에서라면 <호텔 르완다>나 <콘스탄트 가드너>등이

떠오르는데,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는 구체적으로 철저히 상업적 논리에 의해

인간성을 무참히 처형해 버리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첨부터 악당으로 설정되어 나오는 '혁명전선'의 인물들은 그렇다치더라도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믿었던 주인공 '아처'마저

다이아몬드에 눈이 어두워 '솔로몬'을 위협하는 장면에서는

'와, 디카프리오 저러면 안되는데'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전히 사라져버린 인간성을  실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아처는 마음을 바꿔서 다이아몬드를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대의적인 목적을 위해 희생(?)하게 되는데,

어쩌면 가장 사실적이고 이기적이었던 '아처'라는 캐릭터가

사건들 속에서 인간성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아직 희망은 있다라는 단순하면서도 씁쓸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이제 더이상 왈가왈부할 정도가 아니다.
이제 굳이 <타이타닉>의 얘기는 할 필요도 없을 정도.
영화 속 배경이 정글, 숲속이라 그런지 그 속에서 연기하는 레오의 모습은
전작 <비치>를 연상시키게 했지만, 그 때와 지금의 레오의 모습은 천지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특히 극중 '아처'의 특별한 출신을 말해주는 독특한 억양이 인상적이었고,
앞서 말했듯이 갑자기 인간 최후의 악마성을 드러내는 모습 등은
섬뜩할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스콜세지의 페르소나로 거의 굳혀갈때쯤 다른 감독의 영화에
참여한 것이 기뻤고, 그 때와는 또 다른 인상적인 연기로
이젠 동년배 다른 남자 연기자들 사이에서도 단연 최고의 연기력을 뿜어내는 배우로
손색이 없다 하겠다.



그리고 디몬 하운스.
독특한 외모 때문에 항상 맡는 역할이 한정되어 있는것이 개인적으로
좀 아쉽긴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좀 더 그의 드라마틱한 연기를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마지막 액션 장면에서의 야수와 같이 포효하는 장면에서는
저절로 입이 벌어졌고, 아들과 감동적인 대화를 나누며 눈물을 주루룩 흘리는 장면에서는
(정말 눈물이 말그대로 주루룩 흐른다..)영화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호평을 받았던 <아미스타드>와 러셀 크로우와 호흡을 맞췄던 <글래디에이터>만큼
그의 필모그래피에 인상적인 영화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제니퍼 코넬리.
개인적으로 그녀의 팬이라 이 영화엔 레오가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보러갔을터인데, 이젠 완전히 성숙해져버린 매력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직도 동안인 레오인 탓에 두 사람의 애정관계는
그리 비주얼적으로 어울렸던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모래와 안개의 집>이후로 오랜만에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여서 만족.



국내에는 우습게도 이 영화가 완전 액션 블록버스터 인것으로 홍보가 되었는데
물론 액션이 많고 전투 헬기와 대규모의 폭격, 총격씬이 등장하는 등 액션의 규모가
블록버스터인 것은 틀림없지만, 본질적으론 드라마인 영화인데 이런 홍보방식은
역시나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로 이 영화로 인해 다이아몬드 업계가 적지 않은 타격(최소한 이미지 상의 타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영화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런 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다이아몬드 회사가 아닌 바로 소비자임을 새삼 알려주는 영화였다.
 
 

 
글 / ashitaka

*** / 1. 엔딩크래딧에 흐르는 목소리는 확실히 나스(Nas)의 목소리임을 단번에 알아채릴 수 있었다.
 
2. 개인적으로 다이아몬드를 비롯, 보석에 관해 전혀 소유욕이 없음으로
전혀 죄책감없이 볼 수 있었다 --;
 
3. 영화에 비해 리뷰가 너무 맘에 안드는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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