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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정한다 (Denial, 2016)

진실은 왜 승리해야 하는가


홀로코스트 연구의 권위자 데보라 립스타드 (레이첼 와이즈)와 홀로코스트 부인론자 데이빗 어빙 (티모시 스폴)간의 소송과 재판 과정을 다룬 영화 '나는 부정한다 (Denial, 2016)'는 동명의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미 홀로코스트 연구자와 부인론자의 소송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부정한다'의 이야기는 치열하게 진실 공방을 벌일 만한 미지의 무엇의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이미 역사적으로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 이를 부정하는 이를 대상으로 입증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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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흔히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억지 주장을 펼치는 이들과 맞닥들이게 되었을 때 'x가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라는 식의 말을 하며 상대를 하지 않는 것으로 상대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일들은 상대를 하는 것 자체로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내게는 득이 될 것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럽다는 이유로 피하는 것이 더 상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역사에 관한 진실 혹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인권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그것이 단지 억지 주장이거나 상대하는 자체로 손해를 보는 것일지언정 그저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여기까지가 상식적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일 텐데, 이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바로 그렇게 피하지 않고 맞서게 되는 어떤 이의 실제 사례를 들어 간접 경험을 하게 되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과정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고통스럽고 또 냉정을 유지해야만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역시 냉정하고 담담한 말투로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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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립스타드가 처한 상황을 한 번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홀로코스트 연구의 권위자로서 이 참상과 진실을 더 널리 알리는 데에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있는 인물로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그녀에게 이를 완전히 부정하는 데이빗 어빙의 명예훼손 소송은 쉽게 무시하기 어려운 도발이었을 동시에, 무죄추정 원칙의 유무와는 무관하게 어빙의 잘못된 주장을 입증하는 데에 (이 정도의)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홀로코스트를 인식하고 있는 것 보다도 더 전문가인 그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어빙의 주장은 완전히 터무니없고 말을 섞을 가치 조차 없다고 여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판에 들어가 진실 공방이 아닌 철저한 법적 공방에 놓이게 되면서 그녀는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그녀는 유태인이자 이 문제에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모든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을 뿐더러, 자칫 자신이 이 재판에서 지게 될 경우 모든 홀로코스트 피해자들과 역사적 진실이 훼손될 수 있다는 부담은, 쉽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무게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필사적으로 이 재판에 임하게 되는데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는 없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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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감정적으로 공감되는 데보라에 비해 영화를 보다 보면 중반에 이를 때까지도 그녀를 변호하는 변호인단의 진심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게 한다. 즉, 변호인단이 쉽게 말해 너무 비즈니스 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 실제 진실이 밝혀지는 것 그 자체에는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은 듯 한 뉘앙스를 남긴다. 이후 영화는 톰 윌킨슨이 연기한 변호인 리처드 램튼의 캐릭터를 통해 이들도 정서적으로 충분히 공감을 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냉정을 잃지 않고 전략적으로 대한 것이라는 전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또 다른 변호인인 앤드류 스콧이 연기한 줄리어스의 경우 그 진심이 어느 정도 입증된 이후에도 드라마틱하게 이 부분이 표현되는 장면이나 전개는 등장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 재판의 판결이 나는 장면의 경우도 보통의 법정 영화였다면 과연 판결이 어떻게 될지 긴장감과 극적 요소를 최대로 끌어올려 클라이맥스를 연출했을 텐데, 이 영화의 판결 부분은 얼핏 연출력의 부제로까지 느껴질 정도로 아주 덤덤하게 묘사되고 있다. 변호인단의 캐릭터 묘사나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다루는 방식으로 미뤄봤을 때, '나는 부정한다'의 메시지는 승리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승리를 위해 어떤 과정을 감내해야만 하는 가에 더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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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예하게 진실을 다투는 공방이 아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거나 억지에 가까운 극단적인 주장과 진실을 다투어야 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얻는 방법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나는 부정한다'는, 아주 가깝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연스레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친일 역사와 또 일제 시대 벌어진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참혹한 인권 문제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독도 영유권 관련해서도 그렇고 우리는 당연히 우리 땅이고, 당연히 침략과 지배 과정 중에 사실로 벌어진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저 '당연하다'라고 쉽게 생각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일본과 일부 친일파 세력의 경우 이 역사를 본인들이 원하는 역사로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해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다시 한번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진실을 실제 하고 더 확고한 진실로서 후세에 전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또한 최근 가장 뜨거운 대선 판에서도 그저 웃어 넘기기엔 너무나 저급하고 모욕적이며 진실을 왜곡하는 상대를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과연 같은 땅에 살고 있는 이런 세력들을 그저 말이 안 통하는 이들이라 칭하며 무시하는 것으로 해결이 될 것인지, 또 그것이 진정 옳은 방법인지 새삼 떠올려 보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진실은 왜 승리해야 할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진실은 꼭 승리해야만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거짓들로부터 꼭 지켜내야만 할 진실들에 대해 외면하지 않는 사회와 내가 되길 바라고 또 경종을 울리게 만드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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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우리는 감정 매트릭스에 산다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야 하는 호텔이 있다. 이 호텔에서는 약 45일의 유예기간 동안 호텔에서 머물며 자신의 짝을 찾아야 하고, 혼자보다 짝이 있는 것이 얼마나 더 좋은 것인지 (이를테면 혼자 식사하다가는 목에 무언가 걸려 바로 사망할 수 있지만, 커플이라면 등을 두드려줘 살아날 수 있다든지)를 열심히 교육하고, 기간 중 사냥을 나가 외톨이 사냥에 성공하면 1명 당 1일 씩 유예기간을 늘려주기도 한다. 또한 기간 내에 짝을 찾게 되면 역시 약 4주간의 시간을 주고 진짜 커플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갖는다.


콜린 파렐, 레이첼 와이즈, 레아 세이두, 벤 위쇼, 존 C.라일리 등을 만나볼 수 있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랍스터'는 현대 사회에 대한 거대한 풍자이자 단순한 블랙 코미디 이상의 절제됨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는 설정 등 일종의 판타지 성격을 갖고 있는 이 영화는, 철저하게 이 시스템과 영화적 설정에 충실함을 통해 더 큰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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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의 캐릭터들에게서는 거의 감정이 발견되지 않는다.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되지만 다들 절대 동물이 되지 않을꺼야 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 기간 내에 성공하지 못하면 어떤 동물이 될지를 더 고민한다. 꼭 커플이 되고자 하는 이들조차 감정적 요인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마치 일종의 테스트에서 낙오되지 않겠다는 정도의 의욕 만이 느껴질 뿐이다. 극 중 벤 위쇼가 연기한 캐릭터가 그런 점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의 목적은 진정한 짝을 찾겠다는 것 보다는 유예기간 동안 짝을 찾고 다시 4주간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만 탈출할 수 있는 거대한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더 철저하고 정반대로 감정적으로 절제되어 있다.


콜린 파렐이 연기한 데이비드 역시 이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짝을 찾는 것에 성공하지만 결국 호텔을 탈출해 다른 세계에 속하게 되는데, 이 세계는 호텔과는 정반대의 세상이다. 레아 세이두가 연기한 캐릭터가 대장으로 존재하는 이 시스템 밖의 또 다른 시스템 사회는 오히려 커플을 증오하는 세상이다. 철저하게 혼자만이 의미 있다고 여기며 커플이 되고자 이른바 수작을 부리면 스스로가 판 무덤에 묻어 버리곤 한다. 데이비드는 여기서 만난 여자 (레이첼 와이즈)에게 사랑을 느끼고 이 곳 마저 떠나려고 한다. 보통 억압된 시스템에 관한 영화에서 그 시스템의 불합리함을 느낀 주인공 (혹은 안드로이드)이 각성하여 그 시스템을 탈출하는 이야기를 담는 경우는 많은데, '더 랍스터'는 이들과는 전혀 다르다. 바로 주인공의 각성이 없다. 데이비드는 이 시스템들에서 모두 탈출하고자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불합리함을 느꼈다거나 업악되어 있던 감정이 살아났다거나 하는 각성의 과정이 없다. 다시 말해 각성한 듯한 행동을 하지만 이미 시스템에 억압 되어 익숙해진 이들에겐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비슷한 설정의 영화들에 등장했던 어떤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보다도 이 영화의 인물들은 감정이 절제되어 있다.


(다른 단락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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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엔딩 장면은 더 의미 심장하다. 결국 모두에게서 탈출하고자 한 데이비드는 이 과정 속에서 탈출 계획을 알게 된 대장이 장님을 만들어 버린 그녀 (레이첼 와이즈)와 함께 도시로 탈출하는 것에 성공하지만, 결국 그가 결심한 것은 자신 역시 장님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영화는 데이비드가 결국 자신의 눈을 찔렀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장면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거의 영화 내내 처음으로 데이비드가 감정을 조금이나마 드러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그것이 두려움이든 다른 혼란이든 간에 자신을 눈을 찌르려는 것을 망설인다. 결론적으로 그가 어떤 행동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이것은 감독이 이 감정이라곤 모두 거세 된 이야기 속에 조금이나마 남겨두고자 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희망적이지는 않다. 영화의 엔딩은 오히려 데이비드가 스스로 장님이 되었을 확률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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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더 랍스터'는 개개인의 감정마저 강요 받고, 더 나아가 그 강요조차 당연하다고 여기고 어떻게든 그 시스템에 충실하고자 하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아주 차갑게, 감정 한 톨 없이 그려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배경이 되는 호텔이나 도시, 그 길에 있는 갈대숲이나 외톨이들이 모여있는 숲속의 풍경은 아름다운 이미지들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만약 커플이 되지 못했다면 무슨 동물을 택했을까. 랍스터는 아닐 것 같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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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 (Oz: The Great and Powerful, 2013)

마법같은 '영화'로의 초대



너무도 익숙한 '오즈의 마법사'를 가지고,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오즈에 오기 전의 이야기를 다룬 샘 레이미의 '오즈 :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은 하지만 기존 '오즈의 마법사'나 이와 비슷한 설정을 갖고 있는 뮤지컬 '위키드'를 전혀 무시해도 될 만큼 스토리나 캐릭터에 치중하고 있는 작품은 아니다. 그렇다고 디즈니 영화 답게 마냥 행복하고 순진하기만 한 어린이용 영화라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봐도 무방하다). 처음 포스터와 스틸컷만 보고는 왜 샘 레이미가 이 영화, 이 시나리오에 끌렸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 특히 디즈니라는 스튜디오가 그랬고 전체관람가의 너무 착하기만한 영화가 그랬다. 하지만 극중 오즈(제임스 프랭코)가 켄터키를 떠나 오즈에 도착하기 전까지 풀스크린의 흑백으로 펼쳐지는 영화 장면을 보고선 '혹시....?'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영화의 말미에 가서는 왜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 비로소 수긍할 수 있었다. 샘 레이미는 마치 마틴 스콜세지가 '휴고'를 통해 그러했듯, 이 작품 '오즈 : 그레이드 앤드 파워풀'을 통해 '영화'라는 것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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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굳이 '오즈의 마법사'의 이야기를 꺼내들지 않더라도 몹시 단순한 편이다. 주인공 오즈가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은 물론 그 주변의 캐릭터들과 선과 악으로 나뉘어진 캐릭터들의 묘사도 디즈니 영화의 전형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펼쳐지는 오색 찬란한 오즈의 모습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놀라운 장관을 만나게 되는 편도 아니다. 오히려 CG수준은 이전 작품들 보다 좀 못해서 마치 예전 영화들에서 배경을 그림으로 활용했던 것에서 느꼈던 이질감과 같은, 블루스크린을 통해 표현된 배경과 인물들 간의 이질감이 느껴진다 (혹시 일부러??). 사실 이 영화를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샘 레이미 감독보다도 미셸 윌리엄스, 제임스 프랭코, 레이첼 와이즈, 밀라 쿠니스 등의 화려한 출연진 때문이었는데,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배우들의 매력 측면에서도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못한 작품이었다 (특히 밀라 쿠니스의 팬들이라면 실망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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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설명을 들어보자면 샘 레이미의 '오즈'는 볼 이유가 하나도 없는 작품이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사실 영화가 종반에 이르기까지 내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전까지 가장 매력적인 장면이 오즈가 켄터키에서 마술하던 흑백 시절이었을까. 하지만 그래서인지 영화는 클라이맥스에 가서 바로 그 흑백 장면에서 보여주었던 매력을 다시 한 번 꺼내들었다. 영화 속 오즈가 그러했듯 이 가짜 아닌 가짜 마술이 갖는 매력 즉, 영화라는 것에 대한 매력에 대한 표현이 그것이었다. 오즈에 도착한 이후 시골의 마법사이던 오즈의 모습은 마치 한 명의 영화 감독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해 스스로도 만족이나 자신감을 갖지 못해 영화를 만드는 일을 포기하려고까지 마음 먹은 영화 감독. 어쩌면 이 영화는 영화 팬들은 물론 아직까지 빛을 발하지 못한 수 많은 영화 감독들에게 '너는 이미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영화 감독이야'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극 중 오즈의 모습은 분명 그렇게 보였다. 결국 이렇다할 개봉기회조차 얻지 못하던 영화 감독 오즈는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조력자들과 함께 자신 만의 영화를 완성해 내고, 영화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에 비로소 용기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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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영화 감독 오즈에 대한 이야기로 빠졌지만, 서두에 말했듯이 이 영화는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한 마법 같은 경험에 대한 샘 레이미의 환기이다. 클라이맥스에서 오즈가 펼치는 마법은 은유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영화라는 매체를 지칭하고 있다. 즉,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마법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 샘 레이미는 다시 한 번 '오즈의 마법사'라는 판타지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보니 영화 내내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이 '오즈'의 이야기는, 영화가 끝난 뒤 제법 매력적인 이야기로 느껴졌다. 물론 그렇게보아도 아쉬운 점이 여럿 발견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관객에게 말하고자 했던 그 메시지와 방식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1. 본문에도 있지만 레이첼 와이즈와 밀라 쿠니스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아쉬운 점이 특히 많은 영화였네요. 디즈니라는 점을 감안해도 말이죠. 전 미셸 윌리엄스의 광팬인데 물론 이 측면에서 봐도 아쉽기는 했어요.


2. 마지막은 미셸 윌리엄스의 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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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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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My Blueberry Nights, 2007)
왕가위의 헐리웃 뮤직드라마

무엇보다 왕가위 감독이 주드 로, 노라 존스, 나탈리 포트만, 레이첼 와이즈 등 헐리웃 배우들을 데리고
어떤 영화를 찍었을까 궁금하게 했었던 영화. 왕가위 스타일은 <동사서독>에서부터 많이들 좋아했던
<중경삼림>은 물론, 많이들 난해해했던 <2046>에 이르기까지 잘 즐겨왔던터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되었던 건 역시 노라 존스의 주연 캐스팅이었다.
'Don't Know Why'의 재즈/블루스/컨츄리 뮤지션으로 너무도 유명한 노라 존스이지만,
그가 과연 배우로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는 참으로 걱정이었다. 특히나 내가 알고 있는 노라 존스는
그렇게 활달한 성격도 아니고 순둥이라면 순둥이인 성격을 지닌 사람인데, 자신의 주 영역도 아닌
아니 전혀 다른 분야인 연기를 어떻게 해냈을지가 사실 걱정이었다.
영화를 보니 어느 정도는 왕가위 감독도 인간 노라 존스를 알고 있었는지, 조금은 순둥이같은 캐릭터를
연기한터라 크게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 영화는 확실히 '왕가위' 영화다. 왕가위 영화 특히 <중경삼림>을 인상깊게 본 이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 영화가 왕가위 영화임을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중경삼림>등 그의 주요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영상들(약간 느린 슬로우모션과 멈춰있는 배경속에서 인물들은 빠르게 움직이는 등의 기법)이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등장하고, 서로 다른 몇몇의 인물들이 시간과 공간을 두고(이 영화에서는 공간/지역을
두고)얽히고 섥히는 과정을 감각적인 영상미로 그려내는 방법 또한 여전하다.

씨네21 리뷰를 보다보니 '신인 헐리웃 감독이 왕가위에게 오마쥬를 바친 작품인듯 하다'라는 평을 했던데,
이 평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이다. 이 영화는 분명 왕가위스럽긴 하지만 더 나아가지는 않고, 말그대로
그저 배경과 인물들만 서양으로 옮겨와 답습한 분위기를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옮겨오는 것 만으로도
이 황홀한 배우들 덕분에(여기나오는 배우들은 노라 존스까지 포함해서 내가 모두 평균이상으로 좋아하는
배우들이라^^;)충분히 볼만했던 영화였지만, 작가로서의 왕가위라면 무언가 옷을 갈아입는 것 외에 더 나아가는
무언가를 기대했던 팬들에겐 조금은 아쉬운 결과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영화에서 스토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스토리보다는 이미지와 음악이 깊은 인상을 주고 있는
영화인데, 일단 이미지를 중시한 스타일에 있어서 배우들의 캐스팅은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앞서 말했듯이
실제 노라 존스의 이미지를 많이 그대로 가져온 '엘리자베스'캐릭터를 비롯하여, 말끔한 정장만큼이나 이런
내츄럴한 이미지도 잘 어울리는 주드 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레이첼 와이즈가 오랜만에 좀
강한 캐릭터를 보여준 듯 하고, 나탈리 포트만은 확실히 한살 한살 먹을 수록 연기가 성숙해지고, 자신만의
아우라가 강해지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굿 나잇, 앤 굿 럭>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데이빗 스트래던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얘기하면서 음악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단 노라 존스가 출연하는 만큼
노라 존스 특유의 편안한 재즈/블루스 음악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겠다.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신곡 'The Story'는 이 영화의 전반을 둘러싸고 쉽지 않은 연인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이 영화의 영화음악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으로 유명한 라이 쿠더가 맡고 있는데,
그의 다양하고 박식한 음악적 역량을 또 한번 발휘한 음악작업이 아니었나 싶다. 라이 쿠더 외에도
<바벨>등 영화음악감독으로 유명한 구스타보 산타올라야의 곡도 수록이 되어있으며, Cat Power, Amos Lee 등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흥을 주는 곡들이 가득하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영화의 특성상, 다른 영화들보다는 장면과 음악과의 아주 직접적인 관계는 없기
때문에 사운드트랙만으로도 충분히 들을만한 음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전체적으로는 왕가위가 만든 한 편의 헐리웃 뮤직드라마로 다가왔지만,
단순하게 그렇게 지나치기에는 너무 황홀한 배우들의 모습과, 헐리웃의 옷을 입은 왕가위의
화려한 영상미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팬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작품이 될 듯 하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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