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타 (Lolita, 1997)

지난 주말 어김없이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상영회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팻걸>이나 <돌이킬 수 없는>등 다른 후보작들은 이미 극장이나 DVD를 통해 보았었기 때문에, 말로만 들어왔던 <로리타>에 소중한 한표를 던졌었는데, 치열한 순위 다툼 끝에 결국 <로리타>가 최종 상영작으로 결정되어 애드리안 라인의 작품을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로리타' 혹은 '로리타 컴플렉스' 등 말만 많이 들었지, 정작 그 말이 유래된 작품인 영화는 보질 못했었기 때문에 이번 감상은 더욱 기대가 되었던 기회였다. 결말부터 이야기하자면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로리타>는 우리가 흔히 모르고 상상하는 그 '로리타'와는 사뭇 다른 진지하고 잘 만들어진 영화였으며, 야하기만 하고 성적인 측면에만 포커스를 맞춘 작품은 아니었다. 그래서 신선했고,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스탠리 큐브릭도 영화화 했었던 이 작품은 애드리안 라인 연출과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연한 이 버전이 가장 널리 알려졌고, 인상적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막연히 '로리타'라고 하면 그 언어가 갖게한 일종의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그저 '성적인' 이미지 만을 떠올리게 되는데, 영화 속에도 분명 그런 시선도 담겨있긴 하지만, 거의 이것은 소스 정도로 사용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로리타'보다는 남자 주인공인 '험버트(제레미 아이언스)'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험버트라는 남자의 심리상태를 드라마로 풀어낸 수작이랄까. 왜 험버트가 로리타라는 캐릭터를 스스로 만들어내(어쩌면 만들어낸 것에 가깝다고 해도 맞겠다), 그 운명과 시간들에 힘들어하고 고뇌하고 결국 파멸로 향해가는 이 이야기를 애드리안 라인 감독은 알기 쉽고 편안한 방식으로(하지만 실험적인 장치들도 곁들여서) 풀어내고 있다. 사실 어쩌면 중년의 지성으로 대표되는 한 남성이 소녀에게 빠지게 되어 일어나게 되는 줄거리는 굉장히 전형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단순히 성적인 코드만을 다루는 것으로, 탐욕하고 해소하고 파멸하고 만으로 이루어졌다면 그럴 수 있었겠지만,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로리타>는 이 감정선을 유치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으며, 영상미학의 측면에서도 아름다운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단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험버트라는 캐릭터가 어쩌면 '로리타'보다도 더욱 돋보이는 영화였다.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돌출형 소녀 캐릭터가 '로'라면 '험버트'는 왜 그가 어린 소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졌기 때문인지 몰라도, 후반부 까지 그의 심리상태에 어렵지 않게 빠져들 수 있었던 캐릭터였다.

개인적으로는 만약 이번 기회를 통해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영영 일반적인 선입관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게 될 뻔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다행이었던 관람이었다. 물론 일부 장면이 삭제된 버전이라 야한 장면이 삭제된 점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국내에 개봉한 이 버전이라면 사실 15세도 가능할 정도다), 이 삭제된 장면이 대부분이 단순히 노출 문제 뿐만 아니라 길어서 자른 부분도 있다는 점에서, 그 장면들이 전부 포함된다고 해도 이 같은 선입견을 깨어버린 경험이 변하게 될 것 같진 않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다가 정말 속으로 '와!'하고 외쳤던 장면은 영화 후반부에 험버트가 '퀼티'를 죽이려고 방문한 시퀀스였다. 총을 쏘며 달려드는 험버트와 몸싸움을 벌이며 저항하던 퀼티(프랭크 란젤라)는 갑자기 나이트 가운을 연주자처럼 휙 하니 재치더니 피아노에 앉아 갑자기 연주를 시작한다. 이 장면의 포스도 엄청났는데, 그 이후에 퀼티가 떠난 다음에도 피아노가 혼자 연주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이건 마치 린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ㄷㄷㄷ ). 퀼티가 죽음을 맞게 되는 장면의 묘사도 정말 인상적이었고(총맞고 죽어가는 사람이 굳이 이불을 덮으려고 애쓰는 장면;;;). 이 장면은 정말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인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위의 장면도 그렇지만 <로리타>에는 예상을 깨는 기이한 설정의 장면들이 제법 등장하고 있는데, 벌레 잡는 전기불을 클로즈업하며 갑작스레 영화를 공포분위기로 몰고가는 시퀀스도 그렇고, 욕실에 들어갔던 험버트가 1초만에 옷을 갈아입고 나온것으로 편집한 장면도 그렇고, 발의 위치에서 핸드 헬드 기법을 사용해 촬영한 장면들도 그렇고. 이런 드라마 장르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기법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롭기도 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도 인상적이었는데, 험버트가 자동차를 좌우로 운전해가며 쓸쓸한 표정을 짓는 장면에서 흐르던 테마 음악은 마치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 누들스(로버트 드니로)의 테마와 음율이 비슷해 자꾸 연상되기도 했다(나중에 애드리안 라인은 음악을 따라가 마치 레오네가 누들스를 비추듯, 험버트를 카메라로 비추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고 진행되었던 씨네토크는 평소보다는 조금 적은 분들이 자리에 남아 계셨지만, 언제나 처럼 흥미로운 시간들로 채워졌다. 특히 이 영화에 오랜 팬이신 관객 분이 남아계셔서 원작과 큐브릭 버전의 <로리타> 등 다양한 기본 지식들을 공유해 주셔서 더욱 도움이 많이 되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벌써부터 제7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상영회가 기다려진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2009년 3월 제 6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가
3월 28일(토) 저녁 7시 30분,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개최됩니다.


로리타 (Lolita, 1997)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원작, 애드리안 라인 감독
스테판 스치프 각본, 하워드 애서튼 촬영,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
제레미 아이언스, 도미니크 스웨인, 멜라니 그리피스, 프랭크 랑겔라 주연


슬 픈 첫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47세의 불문학자 험버트(제레미 아이언스)는 강의차 미국 뉴잉글랜드에 들른다. 샤롯트(멜라니 그리피스)라는 미모의 미망인의 집에 거처를 마련한 그는 그녀의 딸 로리타(도미니크 스웨인)를 본 순간 아찔한 사랑에 빠진다. 결국 험버트는 로리타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 샬롯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고 그녀와 결혼한다. 그러던 어느날, 로리타에 대한 마음을 기록한 그의 일기장을 샬롯이 발견하고, 그 충격에 거리로 뛰쳐나가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로리타는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험버트에게 매달리는데...


제 6회 상영회 후보작들과 투표 결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는
관객들이 영화를 직접 고르고,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새로운 컨셉의 상영회입니다.

또한 유명인사나 평론가 없이, 블로거들과 관객들이 동등한 시각에서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교류할 수 있는
색다른 씨네토크도 함께 진행됩니다.

상영회 일시: 3월 28일 토요일 저녁 7시 30분
상영회 장소: 아트하우스 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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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도 어김없이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이번 상영회는 '금기와 욕망'을 주제로 4작품이 후보작이었는데, 애드리안 레인의 <로리타>가 상영작으로
결정이 되었네요. 이번 상영회에도 제 블로그를 통해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의 신청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토요일 저녁 상영회에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비밀 댓글로

닉네임 :
핸드폰 뒷번호 네자리 :
인원수 (최대 2장) :

를 남겨주시면, 제가 답글로 초대여부를 확인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선착순으로 진행되며, 초대인원이 마감되면 댓글로 안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번 제6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에도 블로거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2009년 3월 제 6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가
3월 28일(토요일) 저녁,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개최됩니다.



이번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는 "금기와 욕망"을 주제로 하는
4편의 영화를 상영작 후보로 골라봤습니다. 후보작들 가운데
씨네아트 블로그 방문자 여러분들의 투표를 통해 최다 득표작을
제 6회 블로거 상영회에서 상영하게 됩니다.

투표 기간 : 3월 9일 ~ 3월 18일
Affiliate Program poll generator


[ 상영 후보작에 대한 기본 정보와 소개의 글 ]
팻 걸
감독 카트린느 브레야 (2001 / 프랑스, 이탈리아)
출연 아나이스 르부, 록산느 메스키다, 리베로 드 리엔조, 아시니 칸지얀
상세보기
권태
감독 세드릭 칸 (1998 / 프랑스, 포르투갈)
출연 샤를르 베를링, 소피 길멩, 아리엘 동발, 로버트 크레이머
상세보기
로리타
감독 애드리안 라인 (1997 / 프랑스, 미국)
출연 제레미 아이언스, 도미니크 스웨인, 멜라니 그리피스, 프랭크 란젤라
상세보기
돌이킬 수 없는
감독 가스파 노에 (2002 / 프랑스)
출연 모니카 벨루치, 뱅상 카셀, 알베르 뒤퐁텔, 죠 프레스티아
상세보기

<팻 걸>은 프랑스 여류 작가이며 영화 감독이기도 한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의 2001년작으로 여름 휴가에서 첫 경험을 하게 되는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성에 관한 빛나는 통찰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원제가 À Ma Soeur!(For My Sister!)으로 여성의 시점이 강조되고 있는 <팻 걸>과 달리 세드릭 칸 감독의 1998년작 <권태>는 철저하게 남자 주인공의 입장에서 따라가게 되는 작품이죠. 40대의 철학 교수가 17살짜리 누드 모델과의 만남을 통해 무너져가는 모습이 일견 코믹하기도 하고 서슬퍼보이기도 합니다. 감각적인 영상으로 80 ~ 90년대를 풍미했던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1997년작 <로리타>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62년작에 비해 좀 더 풍부한 내러티브와 스피디한 전개, 그리고 드라마의 완결성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또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원작에 대해서도 좀 더 친절한 접근이 아니었나 생각되네요. 마지막 후보작인 <돌이킬 수 없는>은 가스파 노에 감독의 반사회적 성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으로 영화 속 금기와 그 한계에 대해 거칠게 도전했던 2002년 최대의 문제작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는
관객들이 영화를 직접 고르고,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새로운 컨셉의 상영회입니다.

또한 유명인사나 평론가 없이, 블로거들과 관객들이 동등한 시각에서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교류할 수 있는
색다른 씨네토크도 함께 진행됩니다.

상영회 일시: 3월 28일 토요일 저녁
상영회 장소: 아트하우스 모모

* 상영 후에는 영화에 대한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씨네토크 시간이 이어집니다.
* 본 상영회는 유료 상영입니다.(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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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3월의 컨셉은 매우 화끈하고 자극적이로군요!
상영회에서 만나보고 싶은 작품에 투표해주세요~

나중에 상영작이 결정되게 되면 상영회에 초대하는 글을 따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블로거가 직접 상영작을 결정하고 서로 이야기도 나누는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에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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