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그 어느해 보다 영화를 극장에서 많이 본 한해이기도 했습니다. 각종 크고 작은 영화제에도 참가해서
고전 영화들을 비롯해 작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었고, 개봉영화들은 액션과 볼거리가 위주인 블록버스터부터
개봉관을 찾기 힘들어 발품을 제법 팔아야만 볼 수 있었던 작은 영화들까지 가능한한 빼놓지 않고 보려고
노력했던 한해였구요. 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약 150편 정도 올 한해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그렇다보니 한해를
정리하며 베스트 작품을 단 10작품으로 꼽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더군요.
그리고 유난히 장르적으로 봤을 때 다큐멘터리나 음악영화가 많기도 했는데, 이를 따로 분류하여 순위를 정해볼까도
했지만, 결국 총 15편의 베스트 리스트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뭐 당연한 것이지만, 아래 선택된 15편의 작품들은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평가기준으로 선정되었으며,
2008 한국영화 베스트 5와 동일하게 15편 가운데 차등 순위는 없고, 개봉한 순서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미지 아래 리뷰 제목을 클릭하시면 블로그에 작성했던 영화의 리뷰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그르비차 (Grbavica, 2005) _ 사라예보, 내 사랑


보스니아 내전을 배경으로 전쟁의 아픔을 여전히 간직한채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처해진, 사라예보에 살고 있는
작게는 한 모녀, 넓게는 이들 모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그르바비차>입니다.
이런 소재 역시 어찌보면 새로울 것 없는 전형적인 줄거리일지 모르나,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은 타인이 아닌
그들 스스로가 만든 그들의 영화라는 점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상처와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그르바비차>는 타인이 영화적 극적 요소만 부각시켜 감동을 불러일으키려는 것과는 달리,
전쟁의 모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싶지 않아도 살아가야만 하는 현재의 자신들의 얘기를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의 여운이 깊게 남아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주노 (Juno, 2007) _ 유쾌하고 아름다운 성장통


<주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여주인공을 연기한 엘렌 페이지 때문이긴 했습니다.
제목과 비슷한 소재 때문에 우리 영화 <제니, 주노>와 비슷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를 가볍고 유쾌하게 그려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역할까지 하고 있어 더욱 좋았던 영화로 기억되네요. 두 어린 주인공 외에 이를 둘러싼 두 부부의 이야기를
비중있게 그려낸 시나리오가 돋보였으며, 무엇보다 로우 파이한 인디 록 음악들과 포크음악들로 가득했던
영화음악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영화였습니다. <원스>의 경우처럼 카메라가 서서히 멀어지는 엔딩 장면의 여운도
아직까지 남아있구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_ 느긋하게 서스펜스를 이끄는 장인의 솜씨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요 바래 소개할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감독들의 이름들 덕분에
일치감치 부터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고, 이 큰 기대를 모두 만족시켜준 흔치 않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엔 형제가 이제는 정말 '장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된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보는 내내 그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자유자재로 컨트롤 하는 감독의 연출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기도 했으며, 올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안톤 시거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을 비롯해, 토미 리 존스와 조쉬 브롤린의 열연도 이 영화를 아주 인상깊은 영화로 기억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구요. 







데어 윌 비 블러드 _ 자본주의와 종교에 관한 무서운 예언서

폴 토마스 앤더슨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도 <매그놀리아>는 에이미 만의 음악과
더불어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고, 아담 샌들러와 함께 했던 <펀치 드렁크 러브>는 제가 가끔 잠식당하고 마는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어준 멋진 작품이었죠. 단 한 마디로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정의해 보자면 상당히 무시무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굉장한 영화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제가 쓴
'자본주의와 종교'에 관한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지만 더 다양하고 깊은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역시 매번 무시무시한 열연을 펼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굳이 더 거론할 필요조차 부끄러울 정도이며, <미스 리틀 선샤인>을 통해 알게 된 폴 다노의 연기도 빼놓을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 더 정리를 위해 다시 한번 DVD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스피드 레이서 _ 눈이 부신 가족영화의 황홀경

스피드 레이서 BD _ 황홀경의 레퍼런스급 화질로 만나는 레이싱 어드벤처!


올해 개인적으로는 가장 눈이 즐거웠고 황홀했으며 내용도 괜찮았던 작품이었으나 아마도 제가 꼽은 영화들 중에
가장 다른 분들은 썩 좋아하지 않으실 법한 영화가 <스피드 레이서>가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맥스 상영시
2번 정도 관람하였고, 블루레이로 시청, 부산에서 열렸던 블루레이 영화제에서 또 한 번 관람하였는데 보면 볼수록
워쇼스키 형제가 얼마나 오타쿠 스럽고 원작을 21세기 스크린에 잘 표현해 냈는지 느끼게 되는 영화이기도 했구요.
저 같은 사람이야 좋아했지만 사실 저렇게 오타쿠 스러운 작품을 헐리웃 메이저 시장에서 저 정도 규모로 만들
생각을 한 워쇼스키 형제도 형제고, 제작자인 조엘 실버도 대인배가 아닌가 싶습니다. <드리븐>같은 레이싱을
생각하셨다면 얼른 잊으세요. <스피드 레이서>의 자동차들은 앞보단 주로 옆으로 달리고, 쿵푸도 하거든요 ^^;






아임 낫 데어 _ 밥 딜런의 몽타주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 매체라고 생각됩니다. 보통 뮤지션을 그리게 되면
전형적인 전기 영화 형식으로 그리게 되는데 <아임 낫 데어>는 이런 정형화된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마치 한 편의 시처럼, 한 편의 그림처럼 밥 딜런이라는 사람, 뮤지션의 일대기를 조명합니다. 다른 뮤지션 같았으면
이런 방식이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을 그리는데 이 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을 것
같네요. 토드 헤인즈 감독은 단순히 밥 딜런의 인생과 주변을 그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만의 장점을 살려
당시의 문화와 사회까지 아우르는 영화를 만들어 냈는데, 밥 딜런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물어볼 필요도 없겠지만
그에게 관심이 없는 일반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점에는 케이트 블랑쳇,
히스 레저, 크리스찬 베일, 리차드 기어, 벤 위쇼, 마커스 칼 프랭클린 등 배우들의 연기가 한 몫을 하고 있구요.
개인적으로는 출연하는줄 몰랐던터라 더 반가웠던 줄리안 무어와 미셸 윌리엄스가 특히 반가웠던 기억이 나네요;






플래닛 테러 _ 극장에서 즐기는 B무비에 환호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는 다들 조용한 분위기에서 관람하기를 원할 텐데, <플래닛 테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각 장면 장면마다 소리내어 반응하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다 였습니다. 일반 관객들과
다 같이 보는 환경이라면 어렵겠지만 특별히 로드리게즈의 팬들이라던가 이 영화에 팬들만이 모여 영화를 관람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그 장면 장면 하나에 소리내어 환호하고 역겨움엔 질색하며 보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생각말이죠.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정말 영화 장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대형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에서 여러가지 작업을 혼자 뚝딱 해내는 감독으로 유명한데, <플래닛 테러>는 그의 B무비적
감성과 애착이 고스란히 묻어난 특별한 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고어한 장면들이 많지만 불쾌하다기보다는
신나게(?)그려내고 있으며, 최첨단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일부러 옛 것의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낸 영상은,
그의 감성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로즈 맥고완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그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들도
너무 만족스러웠던 영화였네요.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 첫 느낌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 세계관과 메시지


<다크나이트>는 올해를 통틀어 가장 극장에서 여러 번 본 영화입니다. 정확히 몇번 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영화가 주는
압도감이란 대형 아이맥스 스크린과 맞물려 엄청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 분위기를 한번 더, 한번 더 느껴보기 위해
반복적으로 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나네요. 과연 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조커가 되어버린 히스 레저의
연기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며, 히스 레저에 가려져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어둠의 기사'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한 편의 영화가 이렇게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보여준 대작이었으며, 그 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이어서 더욱 반가웠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다크나이트>도 이렇게 짧은 몇 줄로는 도저히 표현을 못하겠네요 ^^;







월-E _ 우주 최고의 러브 스토리


픽사의 작품은 항상 극장을 나오면서 이런 말을 하게 합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천재야!!!!' <월-E>는 그 가운데서도 그 천재성이 정말 놀랍도록 발휘된 올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누가 쌍안경 렌즈 속에서 저런 오묘한 눈빛을 떠올릴 수 있었겠으며,
최첨단 테크놀로지와 아날로그한 감성을 이리도 잘 버무린 작품이,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틀어 얼마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월-E>의 감동은 '우주최고'였습니다. 저는 여러가지 감정들 중에 특히 '아련함'을 좋아하는데,
이런 '아련함'을 표현함에 있어 월-E와 이브가 보여준 우주최강 애틋 러브스토리는 절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더군요.
한동안 입에 '이 봐~' '이브아~'를 달고 살 정도로 중독성있는 대사들과, 장난감 뽐뿌라는 엄청난 부산물들을 만들어낸
올해 최고의 러브 스토리 <월-E>였습니다.






컨트롤 _ 흔들리는 청춘. 그리고 이언 커티스.

올해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으로 본 '음악영화'를 고르라면 주저없이 <컨트롤>을 꼽겠습니다.
뮤지션의 삶을 다룬 만큼 '음악영화'와 '전기영화'의 성격을 고루 갖추고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컨트롤>만의
다른 시각을 꼽자면 조이 디비전의 멤버였던 이언 커티스, 즉 뮤지션으로서의 그를 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청춘을 살았던 청년 '이언 커티스'를 조명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영화는 흑백영상으로 담겨있는데,
흑백의 질감으로 표현되는 이언 커티스의 고뇌와 혼돈, 그리고 맨체스터의 풍광들은 너무나도 인상적입니다.
이언 커티스를 연기한 샘 라일리의 연기는 정말 이언 커티스가 살아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놀라운 집중도를 보여주었으며, 의외의 캐스팅이라고 생각되었던 사만다 모튼은, 개인적으로 그녀 필모그래피의
최고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네요. <컨트롤>영화 팜플렛은 <렛 미 인>과 더불어 제 회사 책상을 장식하고 있기도 합니다.






렛 미 인 _ 고혹적 아름다움의 러브 스토리


지난해 <원스>가 있었다면 올해는 <렛 미 인>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웨덴이라는 헐리웃 밖의
영화가 영화 팬들 사이에서 이 정도로 관심과 반응을 불러낸 것 자체가 우선 반가웠으며, 뱀파이어 영화가 이렇게
진화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겨울을 맞은 북유럽의 고요하면서도 신비로운 풍광들도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두 주인공이었던 오스칼과 이엘리의 관계 묘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흥미로운
요소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러브스토리가 남녀 간의 것에 국한되지 않고, 존재와 존재간의 사랑
이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으며, 한 편으론 러브스토리로만 읽혀지지 않는 여백이 있어 생각해 볼만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부작용이 있다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만 생각하면 <판의 미로>의 메인 테마 음악이
떠오른다는 것 -_-;;;






로큰롤 인생 _ 현자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사실 15편을 선정하면서 이 작품 <로큰롤 인생>과 <존 레논 컨피덴셜>을 두고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그 어느 해 보다 많이 극장에서 관람하기도 했었는데, 그래서 그 어느 해 보다 좋은 다큐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그 중 한 작품을 꼽으라면 <로큰롤 인생>을 꼽을 수 있겠네요. 저에게는 올해의 다큐 영화랄까요.
처음 보기 전에는 그냥 인간극장 스타일의 다큐일줄로만 알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소닉유스를 노래한다'라는
사실은 그런 화제성 다큐로 만들어지기가 쉽거든요(실제로도 이런 식으로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었구요).
하지만 <로큰롤 인생>은 그들이 노래하는 자체가 부수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여기에 집중하지 않고, 노인이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두시간 남짓을 알았던 것 뿐인데, 극 중 인물에
죽음에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들의 인생을 통해 조금이나마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렇게 늙고 싶다'도 좋지만 '지금부터라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가 더 맞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네요.





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2007)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는 올해의 걸작 중 한 편입니다.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무거운 이야기와
분위기를 담고 있었던 영화이기도 한데, 크로넨버그의 전작이었던 <폭력의 역사>와 더불어 함께 생각해 봐야할
그 만의 깊은 연구가 담긴 하나의 결과물 같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와 더불어 매우 드물게 리뷰의
소재목을 따로 정하지 못한 작품이기도 하며(그만큼 먹먹함이 오래갔죠), 비고 모르텐슨과 뱅상 카셀의 연기에
감탄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비고 모르텐슨의 경우야 다들 혀를 내두르고 칭찬을 하시는터라 제가 더 거들지
않아도 될듯 하지만, 뱅상 카셀의 연기는 그가 연기한 '키릴'캐릭터가 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가를
고려해 봤을 때, 그의 나름 팬으로서 정말 훌륭하고(어쩌면 비고 보다 더) 멋진 연기를 펼쳤다고 사방에 얘기하고
싶은 정도입니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크로넨버그의 세계에서는 비고가 연기한 니콜라이가 주인공이지만,
다른 감독이 연출했다면 뱅상 카셀이 연기한 '키릴'이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더 폴 _ 영화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타셈 싱의 동화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작품인 동시에,
타셈 싱 감독이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영화를 보는 그 행위에 대한 행복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감상 전 다른 분들의 평에서는 이야기는 허술하나 볼거리는 대단하다 라는 것이 대세였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어쩌면 그 허술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4년 간의 고생을 하며 볼거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런 곳이 실제 지구상에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의 아름답고 웅장한 미관을 자랑하는 영상미는 물론이고,
영화 속 이야기와 실제의 이야기(화자와 청자가)가 뒤섞여 버무려지는 이야기 구조는 <더 폴>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순간인지를 은연중에 느끼게 했던 '좋은' 영화였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 2007)


<이스턴 프라미스>의 경우는 영화를 보고 난 뒤 먹먹함이 심해져 별도의 제목을 정하지 못했던 경우였지만,
이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경우는, 이 제목 만으로도 대부분이 설명되고 제가 하고 싶은 말도 다 설명이
되기 때문에 추가로 제목을 달지 않은 케이스입니다. 제목 뿐 아니라 이 영화는 영화 속 인물의 대사나 나레이션 등을
통해 제가 영화를 보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거의 다 담겨있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일본 내 사법제도의 모순점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다큐멘터리스런 이 영화를 통해, 단순히 일본이 사법제도만을 문제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법이 인간을 어떻게 취급하고 다루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카세 료는 정말 일본 남자 배우들 가운데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봐도 손색이 없을 만한 연기를 펼쳤으며,
감독인 수오 마사유키는 과연 <쉘 위 댄스>같은 코미디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온 감독인가 싶을 정도의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15작품에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영화들로는 <존 레논 컨피덴셜> <에반게리온 : 서> <마법에 걸린 사랑> <쿵푸팬더>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8년 한해는 위의 15편 영화들을 비롯해 제가 본 150편 넘는 영화들로 인해 무척이나 행복했던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영화를 보는 순간 만큼은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어 다른 생각하지 않고,
행복해 했던 것 같구요.

2009년에도 더 좋은 영화들과 조우하기를 바래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로큰롤 인생 (Young@Heart, 2007)
현자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영화를 보기 전에 얻었던 정보들로는 그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연세에 걸맞지 않는 록큰롤 곡들을 무대에서 노래해
Youtube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고, 이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낸 영화라는 것 그 뿐이었습니다.
국내 쇼프로그램인 '스타킹'에나 나올 법한 정도의 소재는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가
음악 영화라는 점에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소재를 그렸던 영화나 다큐멘터리들은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슈와 화제거리에만 집중해 단순히 '노인들이 모여서 록을 연주한다' 정도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영상은 전해주지
못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었죠(실제로 이 '영앳하트' 코러스 밴드의 단장인 밥 실먼은 쉽게 영화화를
허락해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미 여러 번 '영앳하트'를 촬영한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거의 모두가 그저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제작된 프로그램들이었기 때문에, 또 한번 그런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겠죠. 결과적으로
스티븐 워커 감독에게 영화화를 허락한 것은 대단히 성공적인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이 영화는 영앳하트의 'Alive and Well' 공연을 앞둔 6주 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스티븐 워커 감독은 매우 영리하게
6주라는 시간 속에 영앳하트 멤버들의 에피소드와 더불어 어느 영화 못지 않게 재미있는 유머들과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삶의 의미와 노인의 들려주는 지혜에 대해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실제하는 것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극영화보다 오히려 더 극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킬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로큰롤 인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담겨있는 진리와도 같은 감동이 빼곡히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감독인 스티븐 워커는 본래 TV쇼를 연출했던 감독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는 이 짧은 러닝 타임 속에도
의도되지 않은 장면들을 통해 어느 코미디 못지 않은 유머러스함을 이끌어냅니다. 극중 노인들이 자신들의 취향에는
전혀 맞지 않는 펑크나 록 음악들을 배우는 과정을 그리는 방법은 특히 돋보이는데, 자칫하면 노인들을 우습도록 보이게
만들 수도 있는 이 과정을 그는 적절한 편집을 통해 유머러스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전합니다. 정말 행복해서 웃음이
나도록 만드는 것이죠.

이 외에도 이 영화에는 행복한 순간이 가득 넘칩니다. 80이 넘은 노인들이 소닉 유스나 콜드 플레이를 부르는 모습은
설명만 들으면 그저 기이하거나 코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영화 속에서 영앳하트가 콜드 플레이의 'Fix You'를 부르는
장면을 본다면 아마 그 누구도 절대 숙연해 지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아마도 단장인 밥 실먼이 가장 중점을 두었고,
영화의 감독인 스티븐 워커가 놓치지 않았던 점은 바로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가요도 그렇지만 팝송의 경우는 더더욱 가사에 집중해서 듣는 일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멜로디나 음악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음악에서 가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음악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죠.
영앳하트를 바라보는 일반적 시선이 단순히 노인이 펑크를 부른다 라는 것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티븐 워커 감독은 그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미덕을 본 것이지요. 바로 이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들 말입니다. 확실히 이야기나 노래는 그 메시지 자체가 어떤 것이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누가 들려주느냐의
문제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영화를 통해 새삼스레 깊게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80년 넘게 혹은 90년 넘게 살아온
이들이 부르는 노래들의 가사는 결코 헛되이 들을 수가 없었는데, 그들이 공연 중에 불렀던 곡들의 대부분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저로서도, 그 노래의 가사들이 다시금 새롭게 심장을 관통할 정도로 놀라운 가사 전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콜드 플레이 (Coldplay)의 'Fix You'의 가사가 이리도 나를 위로하는 가사라고는 이전에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었고,
(물론 크리스 마틴이 부르는 'Fix You'도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영앳하트의 '프레드 니들'이 부르는 이 곡의 감동만은
못했던 것 같아요) 밥 딜런의 'Forever Young'이 이렇게 감동적인 곡인 줄은 이제야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교도소에서 제소자들을 대상으로 공연 중 'Forever Young'을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자
찰나이기도 했습니다. 울음을 참으려고 참으려고 하는데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걸 도저히 막을 수가 없더군요.
확실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가 누구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흡수력에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암으로 몇번씩 수술을 치루고, 병으로 인해 몇 번씩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노인이 거누기 힘든 몸을
이끌며 하나하나 읖조리는 가사의 내용은, 어쩌면 오리지널 뮤지션이 부른 것 보다도 더 뼈저리게 다가오더군요.
그래서 눈물이 났구요.




어느 기사에서 본 것 과도 같이 <로큰롤 인생>은 훨씬 더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음에도 매우 영리하게 한 걸음 물러서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공연을 준비하던 멤버들 가운데 몇 분이 지병으로 인해 끝내 무대에 서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아마도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였다면 이 과정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 바다에서 허우적대도록
'죽음'이라는 극적인 소재를 그냥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죽음이라는 일종의 사건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마치 영앳하트의 멤버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처럼요. 8,90이 넘는 나이에 멤버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항상 가까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를 가지고 서로 농담을 할 정도로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경지이며, 단순히 두려움은
아닌 것이죠. 그래서 공연 바로 직전에 동료의 사망 소식을 듣지만, 단 한 명 동요없이 공연을 끝까지 치루기도 하구요.
그리고 카메라 역시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시선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버스 내에서 부단장이 멤버들에게 사망 소식을
알릴 때는 버스 밖을 비출 뿐이고, 다른 멤버가(여기선 그냥 멤버라고 표기했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다시피
거의 주인공에 가까운 분이 돌아가셨을 때도) 죽음을 맞이 했을 때도 짧은 나레이션으로 처리할 뿐입니다.

이렇듯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유혹을 뿌리치면서 결과적으로 영화는 훨씬 극적인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되게 우스운건, 이분들의 80년 넘는 인생에서 겨우 1시간 남짓을 함께 했을 뿐인데, 그들의 죽음이 너무도 슬프게
다가온다는 것이었죠. 이건 단순히 존재가 사라졌음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짧은 시간 그로 인해 느꼈던
감정들에 솔직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겠지요.




삶과 죽음에 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많이 봐왔지만 <로큰롤 인생>처럼 나 스스로 깊게 돌이켜 보게 된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리뷰의 제목도 '로큰롤 인생 _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다'라고 할까 했을 정도로,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이 직,간접적으로 말하는 것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삶 자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음악 자체는 단순히 소재일 뿐이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영화의 포스터나 영화의 시작부분
공연의 피날레 장면이 등장하면서, 마지막에 그들이 갖은 어려움 끝에도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가 주된 클라이막스가
아닐까도 했지만, 오히려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는 감정이 극대화 되지는 않습니다. 이미 그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감동했기 때문이죠. 그 나이쯤 되면 모든 것에서 초연하게 될까요?  영앳하트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삶과 죽음마저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에 경이로움 마저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장난스럽게 툭툭 던지듯 건네는 말들이 하나하나 결코 가볍지 않게 느껴지더군요.




하다보니 음악 얘기를 거의 하지 못했는데, 아무리 그렇다해도 <로큰롤 인생>을 논하면서 음악 얘기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극중에서는 이들이 공연 준비를 위해 연습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데, 제임스 브라운의 'I Feel Good'을
연습하고 공연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공연날 까지도 가사를 완벽히 외우지 못해
한 구석에서 열심히 연습하는 두 노인의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럽더군요. 소닉 유스의 'Schizophrenia (정신분열증)'은
어쩌면 이들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실제로 소닉 유스의 팬이 아니면 이런 가사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죠), 처음에는 단순히 가사를 읽고 따라하는 정도였지만 연습을 해갈수록 가사를 이해해 가는 이 과정을 바라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입니다. 더 포인터 시스터즈의 'Yes We Can Can'을 연습하는 장면 역시 재미있는 장면인데,
'Can'이라는 단어가 무려 71번이나 등장하는 이 곡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다가 결국 무대에서는 완벽하게 성공해 내는
장면에서는 감동이라기 보다 뿌듯함이 느껴지더군요.

극 중간 중간에는 이들이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촬영한 영상들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 작품들도 굉장히 센스 넘치는
작품들입니다. 특히 비지스의 'Stain' Alive' 를 부른 뮤직비디오에서는 이 곡이 삽입되었던 원작인 존 트라볼타 주연의
<토요일 밤의 열기>의 첫 장면을 패러디한(호리호리한 존 트라볼타가 말끔히 차려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발이 클로즈업
되는 바로 그 유명한 장면!) 장면이 인상적이더라구요. 볼링 치는 그 장면도 매우 재미있었구요 ~
또 하나 재밌는건, 이 곡의 가사도 이들이 부르니 굉장히 의미있게 들렸다는 겁니다.
'아직 살아있어' 라는 후렴구가 이리도 인상깊게 들리다니요!
물론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본래 듀엣곡이었던 곡이 멤버의 죽음으로 인해 솔로곡으로 변해버린 'Fix You'와
교도소 공연에서 들을 수 있었던 밥 딜런의 곡 'Forever Young'이었구요 (Fix You는 마치 조니 캐쉬처럼 멋지게 소화해
내시더라구요).




모든 좋은 영화가 그렇지만 이 영화 <로큰롤 인생 (Young@Heart)>도 아무리 설명글을 주저리 주저리 써봤자,
영화 1회 관람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에 1000분의 1도 전달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건, 그저 '유투브에서 화제가 되었던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라는 것 만으로 이 영화를
판단하시고 영화를 안보시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실 거라는 말 뿐입니다. 영화야 어차치 100% 취향에 근거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높은 확률로 많은 분들께 감동을 드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같네요.
단순히 슬퍼서라기 보다는 노인의 지혜에 저절로 숙연해 짐을 느꼈기 때문이었겠지요.




Fix You - Young@Heart (모두를 숙연하게 만든 바로 그 노래)




Forever Young - Young@Heart (이 곡은 중반부터 나오네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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