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

전편을 돌아보게 만드는 깊이 있는 프리퀄



찰톤 헤스톤 주연의 SF영화이자 영화사상 가장 충격적인 엔딩 중의 하나로 꼽히는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 1968)'로 더욱 유명한 '혹성탈출' 시리즈의 프리퀄 성격인 영화 '진화의 시작'을 보았다. 혹성탈출 시리즈는 앞서 언급한 1968년 작을 비롯 총 7편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는데, 이 가운데 2001년에는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사실 처음 이 시리즈의 프리퀄에 대해 듣게 되었을 때에는 팀 버튼의 악몽이 불현듯 스치기도 했고, 요 몇 년 간 붐처럼 지속되고 있는 프리퀄 열풍에서 얼마나 개성있게 빛날 것인지를 장담하기 힘든 작품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극장을 나오며 들었던 생각은 1968년 작 '혹성탈출' 외에 다른 시리즈들도 다시금 주욱 훑고 싶은 생각이 진심으로 들 만큼 (물론 여기에는 팀 버튼의 작품도 포함된다. 그 정도!), '혹성탈출'이라는 커다란 이야기의 시작으로서 손색이 없는, 제대로 된 프리퀄이었다.



ⓒ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진화의 시작'은 프리퀄 답게 유인원들이 인간들을 지배하는 설정이 아닌, 보통의 현대 인간사회를 배경으로 유인원 침팬지 '시저 (앤디 서키스)'의 이야기를 맨처음부터 차근차근 들려준다. 침팬지인 시저가 인간들을 지배할 정도로 뛰어난 지능을 갖게 되는 이유로 영화는 아버지의 알츠하이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는 주인공 윌 (제임스 프랭코)의 이야기로 풀어놓는데, 이 과정이 프리퀄이라는 성격을 버리더라도 즉, 처음 이 시리즈를 만난 관객이 즐기기에도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될 만큼의 진정성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의 치료를 목적으로 생겨버린 인연이지만, 윌과 시저, 그리고 윌의 아버지와 시저의 관계는 여느 가족과 다름없는 분위기로 그린 점도 이런 공감대 형성에 크게 한 몫을 했다. 처음 시저가 인간들에게 분노를 폭발하게 되는 장면에서도 단순히 자신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인간들과 다르다는 정체성의 혼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는 데에서 발단했다는 점에서 이 '시저'라는 캐릭터의 깊이를 한층 깊게 했다.


누가 뭐래도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의 주인공은 앤디 서키스가 연기한 시저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캐릭터를 단순히 (인간과 상대되는 개념으로서의)침팬지로 한정 짓지 않고, 남다른 가족사와 성장기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까지 담아내며 훨씬 더 깊이 있는 캐릭터로 만들어냈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이전 시리즈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의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이처럼 이 작품은 시기적으로 나중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전작들에서 미처 깊게 파고들지 못했던 깊이과 과거를 선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없이 올바른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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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이 작품이 만족스러웠던 것은 전편들에 대한 오마쥬를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 캐릭터들의 이름의 근원은 물론 (이전 작품들에 등장한 배우나 캐릭터들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조합하여 만든 경우가 많았다), 인상적인 대사들을 그대로 활용한다던지 'Take your stinking paws off me you damn dirty ape!', 전작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도록 만드는 장면이 영화 곳곳에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극 중에서 윌이 약물을 통해 눈동자의 색이 달라진 시저를 부르는 'Bright Eyes'라는 명칭은 원작에서 유인원인 지라 박사가 인간인 테일러 (찰톤 헤스톤)의 눈을 보고 했던 명칭으로 정확한 대구를 이루며, 시저가 자유의 여신상 장난감을 갖고 노는 장면 역시 직접적인 오마쥬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영화가 끝나고 추가된 장면에서 역시 노골적인 오마쥬와 단순 오마쥬를 넘어서는, 이전 작품들과 앞으로 이 시리즈의 후속편에 직접적으로 단서가 되는 장면도 이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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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면, 한 번 더 생각을 해봐도 이 '시저'라는 캐릭터는 상당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일반적인 영화 속 주인공 캐릭터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감정처리와 주인공 만의 포스를 갖고 있어서, 시저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는 이후부터의 장면 하나하나는, 그야말로 정말 멋진 (카메라 앵글이나 배경음악은 거들 뿐) 장면들을 쉴새 없이 선사한다. 실제로 몇몇 장면에서 입 밖으로 '와~' 소리가 나올 정도로 멋진 장면들도 있었는데, 이처럼 관객들이 사람이 직접 (표면적으로) 연기하는 캐릭터가 아닌 CG캐릭터에 완벽하게 동화될 수 있다는 점만 봐도 이 작품의 완성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에서 우스게 소리로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은 제임스 프랭코가 유인원들 보다 연기를 못한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실제로 제임스 프랭코가 연기를 못해서라기 보다는 시저를 비롯한 여러 유인원들의 연기(혹은 묘사)가 워낙에 뛰어났기에 나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니 앤디 서키스에게 아카데미 연기상을 주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 아니겠는가. 정말 언젠가 모션 캡쳐를 통해 연기한 CG캐릭터가 연기상을 수상할 날이 오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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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프리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속편을 기대하게 하는 여러 여운도 남겨놓았는데, 이번 작품의 완성도 정도라면 속편을 기대해보는 정도가 아니라 꼭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제 막 자신을 깨닫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온 시저의 앞날이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 이 작품을 연출한 감독 루퍼트 와이어트는 사실상 신예라고 할 수 있을텐데, 헐리웃에서 이 정도 스케일의 작품 연출을 맡게 된 계기도 궁금하지만, 불쑥 나타나 앞으로를 기대하게 하는 감독이 되어버렸네요.

2. 별로 비중없는 윌의 여자친구 역할이 아직도 기억나는 유일한 이유는 프리다 핀토가 연기했기 때문일 겁니다.

3. 이 작품은 제목 자체가 진화의 '시작'이라 그런지, 포스터나 홍보문구에 '~~가 시작된다'라는 말이 없는 것 같더군요;;

4. 말포이 날 또 실망시켰어!

5. 기회가 되면 아마존에서 할인할 때를 노려 혹성탈출 블루레이 컬렉션을 구매하려구요. 이전 할인 때는 관심도 없었는데 이제는 그리운 할인행사가 되었네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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