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셰티 킬즈 (Machete Kills, 2013)

우주로 가기 위한 예고편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그라인드하우스'의 가짜 예고편에서 시작된 (결국 가짜가 아니게 된 건가) 대니 트레조 주연의 '마셰티' 시리즈의 속편 '마셰티 킬즈'를 보았다. '마셰티'는 그 시작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상 로드리게즈의 장난 같은 프로젝트 (하지만 누구보다 진지한)가 거대한 농담이 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많은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영화는 '분명' 아니지만 로드리게즈의 그 독특한 유머와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약간의 저질 관객이라면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시리즈가 되었다. 전편인 '마셰티'는 이 가짜 예고편에서 시작한 작은 농담이 얼마나 진지하고 그럴싸하게 장편 영화가 될 수 있는지 스스로 뽐낸 작품이었다면, 속편인 '마셰티 킬즈'는 그에 비하자면 좀 아쉽고 심심하지만 3편을 기다리게 끔 하는 거대한 예고편으로 볼 수 있겠다.



ⓒ  Quick Draw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마셰티'의 세계관에서는 누구도 목숨을 장담할 수가 없다. 그 어떤 네임 벨류 있는 배우가 등장하더라도 예외는 없으며, 저 유명한 배우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까 하고 궁금해 할 쯤이면 이미 그는 사지 절단되어 사라지기 일쑤다. '마셰티' 시리즈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을 보고 있노 라면, 마치 홍상수나 우디 앨런 영화의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 결과 물은 전혀 다를지 모르지만, 구성이나 방식만 놓고 보면 배우들 스스로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고, 특히 배우로서의 자신을 완전히 즐겁게 소비하는 모습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로드리게즈의 '마셰티'는 그런 면에서 완전히 작정한 영화이기 때문에, 배우들 역시 매우 진지하게 임하지만 그래서 더 '큭큭'거리게 만드는 저렴한 재미가 있다. '마셰티 킬즈' 역시 마찬가지다.



ⓒ  Quick Draw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전작에 비해 '마셰티 킬즈'는 조금 이야기가 느슨한 편이다. 뭐 전작도 이야기가 얼마나 있었겠냐 만은, 전반적으로 이번 영화는 낄낄 거릴 만한 부분도 좀 적은 편이고, 사지 절단도 줄었으며 혼자만의 심각함이나 장르 적 유희도 조금은 심심한 편이다. 물론 기존 배우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장르의 팬들이라면 더 유쾌해 할 만한 농담 들이 존재하지만, '그라인드하우스'나 전편 '마셰티'에 비하면 확실히 심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가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가 끝나기 직전인데, 이미 또 다른 가짜 예고편을 통해서 공개된 것처럼 마셰티가 우주를 무대로 펼치는 속편을 암시하는 장면들과 짧은 예고 영상은, 조금은 밋밋했던 영화를 다시금 뛰게 만든다. 즉, 이 작품만 놓고 보자면 아쉬운 점이 많은 편이지만, 좋게 평가하자면 우주를 무대로 펼칠 마셰티 3편에 대한 거대한 예고편으로서의 의미를 둘 수 있겠다.



ⓒ  Quick Draw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예고편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의외로) '마셰티 킬즈'의 이야기와 다음 속편이 매우 깊은 연관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뭐 미 시리즈에 연관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만은, 왜 마셰티가 우주를 배경으로 또 한 번의 활극을 펼치게 되었는지 에 대한 나름 논리적인 이유와, 각 캐릭터들의 사연 들이 이 작품 '마셰티 킬즈'에서 시작된 다는 점에서, 언젠가 나올 (나와야 할) 속편을 더 재미있게 즐기려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 될 듯 하다. 말을 이렇게 그럴싸하게 했지만, 나중에 속편이 나온다 해도 이 작품을 안봐도 전혀 지장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부담 없이 낄낄 거리며 보는 게 이 작품의 묘미고, 로드리게즈의 취향이기 때문에. 아마도 로드리게즈는 이 작품의 형편 없는 평점을 보고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래 이건 그런 영화야!' 하면서!



1. 본래 로드리게즈의 영화들은 트러블메이커 스튜디오의 이름으로 제작했었는데, 이번 작품에는 Quick Draw Productions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이름이 바뀐 것인지, 각각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Quick Draw Productions 있습니다.


 




마셰티 (Machete, 2010)

일부러 그 수준으로 만든 영화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쿠엔틴 타란티노, 이 두 사람이 쿵짝쿵짝 거리며 만들었던 '그라인드 하우스 (Grindhouse,2007)'는 이들의 팬들은 물론 B무비의 감성을 그리워 했던 영화 팬들에게도 몹시 반길 만한 작품이었다. '데쓰 프루프'와 '플래닛 테러'로 이뤄진 이 B무비는 사실 보는 사람도 보는 사람이지만, 로드리게즈와 타란티노가 만드는 과정 속에서 얼마나 좋아했을까? 라는 것이 떠올라 더 훈훈했던 작품이기도 했는데, 이 '그라인드 하우스'의 가짜 예고편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셰티 (Machete)'였다. 이미 가짜 예고편 만으로도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이 작품은 결국 거짓말처럼 정말 장편 영화화 되었고,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B무비 아닌 B무비로 탄생했다.




ⓒ Troublemaker Studios. All rights reserved


'마셰티'의 예고편은 적어도 '플래닛 테러' 정도를 예상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만화처럼 두려움을 모르고 다양한 각도로 펼쳐지는 칼부림과 그로 인해 터져 나오는 선혈과 어긋나는 관절들, 헐벗은 미녀들과 후끈한 영상은 '야, 이거 플래닛 테러처럼 또 한 번 신나게 즐길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마셰티'는 예고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작품이었다. 아니 다르다기보단 이런 류의 예고편들이 매번 그렇듯 조각을 전체처럼 포장한 그럴 듯한 예고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마셰티'가 마음에 안들었다는 얘기처럼 들리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라인드 하우스' 특히 '플래닛 테러'는 B급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을 로드리게즈가 마음 껏 펼쳐본, 즉 갈때까지 가 본 작품이었다. 그 절제 없는 막장 에너지에  관객은 환호했고 터져나오는 폭소와 키득거림이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즐길 수 있게 될 줄이야!'라며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셰티'가 갖고 있는 성격은 이와는 조금 달랐다. 뭐 '플래닛 테러' 스타일을 기대하게 한 예고편 때문에 많이들 실망할 수도 있는 부분이긴 했지만, 이 영화에 미지근함과 촌스러울 정도로 전형적인 구조와 장면, 연출들은 말그대로 '일부러' 그런 것이라는 얘기다.



ⓒ Troublemaker Studios. All rights reserved


'마셰티'는 일부러 촌스럽고 미지근한 전개와 장면을 연출하려고 디테일하게 애쓴 작품이다. 사실 그 표면적인 열기는 달랐지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느꼈을 로드리게즈의 희열은 아마도 '플래닛 테러' 못지 않았으리라 예상된다. 로드리게즈는 '마셰티'의 플롯도 화면 연출도 자신이 동경하는 B무비의 사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데, '마셰티'가 답습하고 있는 B무비의 전형은 괴상하고 유치하리만큼 이질적인 소재와 캐릭터(플래닛 테러)도, 어린 시절 TV시리즈와 영화에서  보았던 올드한 향취(데쓰 프루프)도 아닌 바로 관객에게 외면 당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그 뻔뻔함과 촌스러움이었다.

언제부턴가 B무비라고 하면 대중적인 영화와는 조금 차별되는 감성과 소재를 다룬 저예산 영화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졌는데, 우리가 B무비라고 기억하는 작품들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작품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매끄러움이나 세련됨, 영화적 재미 부분들은 상당히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일종의 악취미가 없다면 보기 힘든 작품들이 많았는데, 로드리게즈는 '마셰티'를 통해 바로 이런 B무비만의 성격(자의든 타의든 어쩔 수 갖게 된)을 다시금 불러오고자 했던 것이다.



ⓒ Troublemaker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이렇게 일부러 가져다 놓은 영화의 장면들은 너무 정색을 하고 있어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니 트레조가 연기한 마셰티 역할이야 캐릭터 자체가 상반대는 대사 하나 만으로도 코믹스런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경우라 많이들 눈치챌 수 있었겠지만,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멀쩡하게 정색하고 촌스러움의 전형을 연기하는 대표적인 캐릭터는 제시카 알바가 연기한 사타나 라고 할 수 있겠다. 요원인 동시에 전직 요원 출신인 마셰티에게 빠져 결국 그와 함께 정의의 편에 서게 되는 사타나 캐릭터는, 이 전형적인 스토리 가운데서도 가장 전형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텐데, 패러디 영화에서 처럼 일부러 오버하지 않아도 제시카 알바가 이 캐릭터에 충실하면 충실할 수록 더욱 키득거릴 수 밖에는 없었다.

참 전형적인 포즈로 현장을 조사하는 모습이나, 집으로 돌아와 알몸으로 샤워를 하며 고뇌에 사로 잡히는 모습은 (비록 제시카 알바의 몸매에 눈을 빼앗겨 장면의 정서를 놓쳐버릴 확률이 높긴 하지만) 이 영화가 B무비를 지향하는 B무비이기에 웃을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로드리게즈가 추억을 갖고 동경하는 B무비에서 이러한 장면들은 웃길려고 연출되었다기 보다는, 그 촌스러움에 웃을 수 밖에 없었던 장면이었다는 얘기다. 



ⓒ Troublemaker Studios. All rights reserved

결국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들과 자신이 동경했던 B무비의 정취를 가져다가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격한 표현들로 풀어내긴 했지만, '킬 빌'처럼 오마주 그 자체의 영화는 물론, '오스틴 파워'처럼 패러디 영화도 아닌 '딱 그 수준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단점들까지 그대로 다 갖고 있을 정도로 정말 '딱 그 수준'의 영화를 만든 터라, 앞서 언급했던 갖가지 양념들을 제외하면 관객들로 하여금 '이건 좀 심심한데?'라는 평을 듣기에 딱 좋은 영화가 되었지만, 어쩌면 이것 역시 '마셰티'가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종착지였는지도 모르겠다. 즉, 반대로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플래닛 테러'나 '데쓰 프루프'가 더욱 좋긴 했지만, '마셰티'는 '마셰티'대로의 정도를 지키고 있어 나름의 의미를 갖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확실히 이것은 절제였다. '플래닛 테러'를 만든 로드리게즈였다면 '마셰티'에서도 근질근질 할 정도로 참기 힘든 장면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창자 탈출 씬을 제외한다면 거의 정도를 지키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자극적 욕망을 꾹꾹 눌러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절제의 영화라고는 부를 수가 없는 것이, 로드리게즈는 B무비의 이런 단점들까지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진정한 매니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셰티'는 다시 말하면 참느라 힘들었던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00%를 발휘한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 Troublemaker Studios. All rights reserved


1. 로드리게즈는 이번에도 공동감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그와 함께 이름을 올린 에단 마니퀴스(Ethan Maniquis)는 '플래닛 테러' '씬 시티' 등의 편집을 맡았던 인물이네요.

2. 이번 작품 역시 로드리게즈는 1인 다역을 맡고 있습니다. 연출, 제작, 편집, 비주얼 이펙트, 음악 등. 

3. 그의 작품들에서 꾸준히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익숙한 배우들의 출연도 계속됩니다. 톰 사비니, 치치 마린 같은 배우들은 그의 작품에서는 결코 빠질 수 없는 배우들로서, 이번 작품에서 역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칩니다. 이 외에 마치 실제 자신의 모습을 연상시키게도 했던 린제이 로한과 또 여전사이긴 했지만 그래도 완소 미셸 로드리게즈, 이 작품에 딱 맞아 떨어진 캐스팅 중 하나였던 스티븐 시걸과 돈 존슨 까지. 로버트 드니로 전편의 브루스 윌리스 같은 비중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4.  이 영화의 마지막엔 놀랍게도 마셰티 속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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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Troublemaker Studios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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