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우주를 건축하고 낭만을 이야기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인터스텔라'를 개봉 첫 주말 아이맥스로 보았다. '인터스텔라'는 그의 작품답게 원초적으로 머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복잡한 설계가 밑바탕에 깔려있고 그 위에는 가슴을 움직이게 만드는 낭만과 감동이 자리 잡고 있는, 딱 크리스토퍼 놀란 다운 작품이었다. '인터스텔라'는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 (Gravity, 2013)' 이후 사실상 처음 선보이는 본격 우주 체험 영화라는 부담감이 작용했을 수 밖에는 없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보고 배우는 것에 그치던 우주라는 공간과 세계를 체험하는 것으로 끌어 들이는 데에 성공한 '그래비티' 이후엔 그 어떤 영화도 (최소한 단 기간 내에는) 우주를 다시 배경으로 하는 것에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그래비티'를 보지 않은 유일한 사람일 거다 라고 밝히기도 했던 놀란은, '그래비티'와는 또 다른 의미로 체험하는 우주를 그리는 동시에 또 한 번 설계자 다운 면모를 발휘해 다층적이다 못해 다 차원적인 구조를 구현해 냈고, 여기에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의 드라마까지 담아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인터스텔라' 역시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은 작품이지만, 뭐랄까 놀란의 영화관에 있어서 좀 더 명확해 지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구체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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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가 이 작품을 인상적으로 보았던 본격적인 이유를 하기에 앞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가 항상 대단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도록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이에 근본적인 원인은 그가 만든 거의 모든 영화에 기본이 되는 치밀한 설계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가 주로 만드는 설계도는 무언가 학구적인 의욕을 한 껏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은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플래시백 형태로 구성한 '메멘토'도 그랬고, 꿈 속의 꿈이라는 다층 구조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낸 '인셉션'은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100% 완벽하게 분석해 내겠어!'라는 의지를 불태우게 했었던 것처럼, 이번 '인터스텔라' 역시 우주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공간을 배경으로, 역시 익숙하게 들어 왔지만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블랙홀, 웜홀, 4차원, 5차원 이라는 개념과 현상들을 시각적으로 수긍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렇듯 학구적으로 파고든 설계 탓에 자주 그가 만든 세계는 논리적 오류나 설정의 오류라는 많은 의견들과 부딪히게 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가 그의 동생과 함께 쓴 시나리오가 과학적, 논리적 오류가 있는 가의 여부와는 별개로, 그가 왜 이런 방식을 매번 택하고 있는 지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봐야겠다는 걸 '인터스텔라'를 통해 또 한 번 강하게 느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왜 이렇게 영화를 복잡하고 설명하듯 만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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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정리하면 두 가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하나는 그 세밀한 설계 자체가 갖는 중요성, 그러니까 '인터스텔라'로 비유하자면 5차원이라는 개념을 관객이 더 쉽게 이해하도록 영화화하기 위해 이를 논리적으로 뒷 받침할 만한 만반의 준비와 설계를 건축하듯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더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구조와 설계 자체를 중심에 둔 다는 얘기다. 사실 대다수가 이 의견에 손을 들어줄 텐데, 내 의견은 조금 다르다. 사실 이렇게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은 '인셉션'을 보고나서 부터인데, '인셉션'이 개봉하고 나서 흡사 논문에 가까운 영화 글들이 수를 놓았을 정도로 구조가 전면에 드러난 작품이었지만 개인적으론 오히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코브'라는 캐릭터의 트라우마에 관한 아주 강력한 드라마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놀란 영화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아내를 잃은 남편이거나 가족을 잃은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의 분석은 이미 여럿 있어 왔는데, 여기에 더 힘을 보태서 이런 설정들이 어쩌면 그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설계한 구조적 배경보다도 더 우선적으로 그가 들려주고자 한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인터스텔라'를 보며 또 한 번 강하게 들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결국, 기억을 이야기할 때도, 꿈 속의 꿈을 이야기할 때도, 코스츔을 입은 외로운 영웅을 이야기할 때도, 그리고 우주 속 웜홀 뒷편의 5차원을 이야기할 때도 결국 한 인간의 드라마를, 더 나아가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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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측면이 놀란의 모든 영화에 드러나고 있다고 봤을 때,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다크나이트'의 경우 이 가운데 가장 감정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편이고, 이 작품 '인터스텔라'는 가장 직접적으로 감정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인셉션'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 구조의 황홀함에 압도되어 만족감을 얻기에 벅찼었지만 두 번째 관람을 하고 나니 너무도 명백한 코브의 슬픈 드라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인셉션'은 놀란 영화의 큰 두 가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설계와 감정, 혹은 설계와 낭만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인터스텔라'는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 후자에 더 큰 비중, 아니 비중이 크다기 보다 더 노골적인 표현이 담긴 작품이었다.



(다음 단락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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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데에는 역시 '사랑'이라는 개념의 표현 방식 때문이 컸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른 작품은 물론이고 감정적이라고 느꼈던 '인셉션'에서도 그 표현 방식은 직접적이지는 않은 편이었는데 '인터스텔라'에서의 후반부를 장악하고 있는 정서는, 오히려 한편으론 이런 우주 영웅 가족영화에 대명사로 불리우는 '아마겟돈'보다도 더 강력한 세기로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정서가 자리잡고 있었다. 조금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앞서 영화의 중반부까지 우주와 웜홀에 대한 방정식을 풀 듯 논리의 파도를 따라오던 관객 입장에서는, '결국 이 모든 것의 해답은 사랑, 사랑이야!'라는 영화의 후반부가 맥이 빠질 수 밖에는 없는 노릇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개인적으론 '인터스텔라'의 방식이 조금 직접적이었을 뿐 놀란의 영화는 항상 이런 드라마를 바탕에, 아니 중심에 놓았었기에 크게 이질적인 부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 사랑이었어!'라는 식의 전개는 이 5차원이라는 개념을 재료로 하기엔 너무 1차원적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들게 마련인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은 마치 찰리 카우프만이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2008)'을 통해 본인의 메세지를 정말 끝까지 밀어 붙였던 것처럼, 본인이 항상 두 손에 쥐고 있던 설계와 감정의 개념을 한 발 더 나아가 하나의 개념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아니었나싶다. 이 작품에서 후반부 사랑의 개념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인간의 사랑이야말로 차원을 넘어서는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힘이 존재한다 라는 식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가설을 꺼내놓는데, 바로 사랑이라는 개념이 아직 인간이 알아 낸 과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인간이 발명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혹시 설명할 수 없는 과학적 개념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즉, 사랑이라는 것이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일종의 과학적 산물 혹은 미래에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설명이 가능한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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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접근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접근이었는데, 처음엔 이 같은 영화의 태도가 '와, 정말 대단한데!'라고만 느껴졌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 작품의 기반이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저메키스의 '콘택트 (Contact, 1997)'가 던진 화두인 '과학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분명히 경험한 것'에 대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메시지로 채용했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즉, 아빠가 똑같이 딸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은 맞지만 그 이유가 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영화가 바라보든 태도는 이전 다른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인터스텔라'가 왜 흥미로운 작품인지를 또 한 번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콘택트'와 근본적으로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콘택트'는 이 광할한 우주에 인간만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공간 낭비인가 라는 말처럼 외계 생명체에 가능성에 대한 중요성이 짙게 깔려있는 작품이지만, '인터스텔라'는 그 중심이 외계 생명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 혹은 인간의 진화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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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어쨋든 '인터스텔라'는 놀란의 다른 작품들처럼 하나 하나 따져보면 '왜 그런한가?'에 대해 소품이나 배경, 인물, 대사 등 모두 이유를 찾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영화일테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것들을 다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더 강력하게 드러난 낭만적인 가족 드라마이기도 했다. 뒤돌아 보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들은 다들 순수하리만큼 낭만적인 인물들이 중심이 된 드라마였던 것 같다. 마치 더 이상 막는 것이 불가능한 디지털의 시대에 끝까지 필름 촬영을 우선하고 3D를 배제해 온 그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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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차원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건 '그래비티'의 우주를 경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체험이었어요. 오히려 이 부분은 나중에 블루레이가 나오면 서플먼트를 통해 좀 더 구조적인 뒷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네요.


2. 한스 짐머의 음악이 참 좋았어요. '다크나이트' 이후 가장 인상적인 그의 작품인듯. 김혜리 기자의 말만 따라 정말로 놀란 작품만 특별히 더 신경 써주는 것 같은 느낌이 ㅎㅎ


3. 본문에도 전반적으로 뉘앙스를 밝혔지만 개인적으로 놀란은 '5차원은 이렇게 표현하면 되겠다!'라는 것을 생각했던 것 만큼, 극 중 쿠퍼가 비디오를 보며 눈물 흘리는 장면을 먼저 떠올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극의 구성상 중간 정도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마치 마지막 대사를 하려고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닐까 싶었던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처럼 감정적으론 이 장면을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 싶은.


4. 그냥 다른 얘긴데, 만약 이 영화를 그대로 번역해서 '별과 별 사이'로 개봉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하네요. 감독이 전한 의도는 분명 '별과 별 사이' 일텐데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게 되어버리는 묘한 영어 제목 번역의 현실. 꼭 이 작품 만의 얘기가 아니라 가끔 미국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제목들을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일지 궁금해지더군요. 우리는 아무래도 영어 그대로를 제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보니 오히려 번역하게 되면 느낌이 애매해지는 경우도 발생하다보니.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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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
놀란의 배트맨, 이렇게 마무리 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이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를 마지막으로 드디어 완결되었다. 놀란의 배트맨 영화가 처음부터 삼부작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개인적 의문이 있지만 ('라이즈'를 보고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다시 본 결과 놀란은 분명히 '다크나이트'에서 종결 짓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분명히 '종결'의 의미를 가득 담은 성격의 작품이었다.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던 점은 물론 아쉬운 점들도 없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이전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배트맨이라는 코믹스의 영웅을 완벽한 스크린의 영웅이자 현실의 영웅으로 만들어낸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감사의 인사와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로 인해 몇 년간 기다림의 가치와 영화를 본다는 것의 즐거움을 새삼 즐길 수 있었기에...



(삼부작에 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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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 (크리스찬 베일)이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만들고 스스로 고담의 악당이 되버린 채 떠나버린 그 이후, 하비 덴트 법을 통해 더이상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배경으로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첫 번째 배트맨의 부제를 묘사하는데 그리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대사들과 상황 묘사를 통해 지난 수년간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고, 고담시는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는 영화 인트로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베인 (톰 하디)이라는 캐릭터를 지체하지 않고 고담으로 끌어 들인다.



베인. 베인은 어쩔 수 없이 전편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캐릭터였는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중반까지 베인이라는 캐릭터는 충분히 조커와 비견될 수 있을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라이즈'가 '다크나이트'와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베인이라는 캐릭터를 영화의 메시지와 결부시킨 정도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후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라이즈'는 '다크나이트'와 사실상 비교대상이 되기 어려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은 메시지가 핵심이라기 보다는 그간 쌓아왔던 캐릭터, 감정,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는 것에 목적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베인이 중반까지 보여준 메시지의 힘이 마스크를 쓴 인상적인 외모나 특유의 발성이나 압도하는 근육질의 몸매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왔었기에, 베인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이야기를 '다크나이트' 조커의 경우처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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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가 '혼란 (Chaos)'을 통해 메시지를 던진 경우였다면 베인은 좀 더 계획과 의지를 갖고 있었던 '혁명가'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베인이 고담에 던진 이 혁명의 메시지는 '그냥 내가 도시를 지배하겠다'와는 달리, '고담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라는 것이었기에 여러가지로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담론이었다. 특히 증권거래소를 공격하고 그 과정 속에서 부자들의 돈 놀이를 비판하는 대사들이나, 이후 월가에서 벌어지는 혁명군과(사실 이때는 이미 혁명군으로 불리기에는 그 의미가 퇴색된 이후였지만) 경찰들과의 대규모 전투씬 들을 보며, 지난해 미국내 가장 큰 사회문제였던 1:99의 월가 시위와 연결지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인이 처음 고담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 이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매트릭스 속을 사는 것이 더 편한 사람들처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내던 나쁜 결과를 내든 상관없이 누군가 혹은 자본이나 세력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불만 조차 갖고 있지 않은 시민들에게, '본래 네 것이었던 것을 이제 온전히 네게 돌려주마' 라고, '너희가 99%인데 왜 1%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대해 부당함을 이야기조차 하지 않느냐!'라고 외부적인 쇼크를 베인이 던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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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베인이 던진 이 혁명과 질문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했더라면 전작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그랬던 것처럼 이 깨우침 (혹은 혼란)을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다크나이트'에서 두 유람선의 실험이 그랬던 것처럼)에 따라 더 큰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텐데, 꺼내어 놓은 주제에 비해 사실상 답을 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만약 이 혁명을 영화에 주된 테마로 가져와 이를 두고 배트맨과 베인이 벌이는 극렬한 신념의 대립을 메인 테마로 가져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아마도 계속 남을 듯 하다. 이렇게 소모되기에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비중은 너무도 컸고 매력적이었기에 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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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담론을 어느 정도 끌어 올린 시점에서 영화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인 블레이크 (조셉 고든 래빗)의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상 블레이크라는 캐릭터가 맨 마지막에 밝혀지는 '로빈' 이라는 풀 네임 때문에 단순히 '로빈'으로만 해석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가 지니는 가치는 단순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트맨 & 로빈'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로빈이 아니라고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론 마지막에 등장한 이 조크와도 같은 풀 네임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았더라도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블레이크의 존재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자신의 자리를 대신 할 빛의 사도로서 믿고 선택했었던 하비 덴트와의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더 이상 필요없는 고담을 꿈꿨던 브루스 웨인은 결과적으로 타락해버린 하비 덴트의 실패를 통해 수 년간 은둔하고 고담을 떠나다시피 했을 만큼 (레이첼에 대한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배트맨이라는 존재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기회를 - 배트맨은 고담에 있어 필요악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 놓쳐버린 것에 대한 실망과 자책이 더 컸을 것이다) 타격을 받게 되는데, 그런 그에게 스스로 접근해 와 다시금 희망의 가능성을 갖도록 한 것이 바로 블레이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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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하비 덴트에게 자연스러운 이양을 하려다 실패했던 배트맨은 다시 한 번 블레이크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갖게 되자, 조심스럽지만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으로 블레이크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동시에 더 확실한 메시지를 심으려 한다. 이미 블레이크가 브루스 웨인 = 배트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는데,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일 때도 배트맨일 때도 블레이크에게 지속적으로 고담시의 수호자로서 겪어야 하는 일들, 해야만 하는 일들 또한 감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이미 레이첼을 잃는 경험을 했던 브루스로서는 아직 신념만으로 뭉쳐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블레이크에게 '혼자 활동하려면 마스크를 써'라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임을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이라는 것이 고아라는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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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이 블레이크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이 정도면 정말 친절한 거라고 할 수 있다) 거듭 설명해주는 건 다시 말하지만 하비 덴트에 대한 아픈 상처와 자책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진실을 왜곡한 고든 (게리 올드만)을 강하게 질책할 정도로 정의와 신념으로 똘똘 뭉친 청년 (누가 이 열혈 경찰 좀 데리고 나가지 ㅎ)인데, 사실 이런 정의로움이나 신념으로만 따지자면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 역시 결코 뒤쳐진다고 볼 수는 없는 캐릭터였다. 그렇기에 이미 하비 덴트의 실패를 겪었던 배트맨은 이 신념만을 믿기보다는 (I Believe in Harvey Dent) 좀 더 구체적인 방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블레이크를 대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 속 블레이크 (새로운 고담시의 수호자)의 이야기가 로빈 혹은 또 다른 수호자의 '비긴즈'에 수록되지 않고 배트맨 삼부작의 마지막에 위치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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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전편에서 실패를 겪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신념에 관한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한 블레이크의 이야기가 그렇고 (알다시피 배트맨의 성격상 자신이 피곤하다고해서 그냥 고담시를 적당한 사람에게 맡기고 방관할 수 있는 양반이 아니다), 셀리나 카일 (앤 해서웨이)의 이야기가 그러하며 알프레드 (마이클 케인)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극중 캣 우먼으로 등장하는 (극중에서 실제로 고양이와 관련하여 그녀를 표현한 대사는 처음 웨인 저택에서 만났을 당시의 언급 밖에는 없다) 셀리나 카일과 배트맨의 관계를 보자면 결국 배트맨의 입장에서는 전혀 믿을 만한 위치와 관계에 있지 않은 셀리나를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길 정도로 믿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러닝 타임상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배트맨과 캣우먼 사이에 다른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것은 이 믿음이라는 테마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배트맨의 믿음은 셀리나 스스로도 믿지 못했던 결과를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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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리즈 내내 배트맨이 아닌 브루스 웨인을 믿어왔던 알프레드였기에 어쩌면 가장 필요할 때 떠나버린 그의 존재가 더 안타깝기만 했다.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도 알프레드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알프레드가 끝까지 지키지 못한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항상 자신보다도 더 자신을 믿어주었던 알프레드에 대한 브루스의 보답에 관한 이야기하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삼부작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서 '라이즈 (Rises)'라는 제목처럼 배트맨으로서나 브루스 웨인으로서나 완전히 일어서는 모습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자신을 항상 믿음으로 돌봐주던 알프레드에 대한 완벽한 보답으로, 그 알프레드가 믿음을 저버렸을 때 다른 방식이 아닌 바로 그 믿음으로 답하는 브루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화의 구성과는 별개로 브루스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에 진심으로 눈물 흘리며 그를 떠날 때, 그리고 브루스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알프레드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알프레드 캐릭터의 묘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브루스 웨인과 알프레드의 관계를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가 아니라 어쩌면 토마스 웨인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들까지 든든하게 지원하는 아버지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로 그리면서, 배트맨 영화의 또 다른 담론과 감정선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선이 드디어 폭발한 이 작품에서 알프레드가 눈물을 흘릴 때 나도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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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삼부작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신념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또 다른 테마인 자경단에 관한 이야기 역시 풀어낸다. 자경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주제인 '감시하는 자는 누가 감시하는가'라는 담론을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결국 이 거대한 권력을 쥔 자가 타락하거나 혹은 한꺼번에 힘(권력)을 빼았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어떠한가?'라는 화두로 가져와 후자의 경우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 가운데 역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면 배트맨의 모든 기술과 무기를 만들어내던 응용과학부서를 베인이 통째로 갖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가장 큰 위험으로 작용한 신에너지의 핵폭탄화 역시 이 같은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 초반 만약 악당들이 이 힘을 얻게 될 경우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그럴 경우를 대비해 침수해 폐기하도록 되어 있다는 장치를 설명하지만, 이것 또한 힘을 가진 자의 자만이었다는 것을 영화는 그대로 보여준다).

 

'다크나이트'에서도 그랬지만 (마지막 조커의 위치를 찾기 위해 고담 시민 전체의 휴대폰을 감청하는 반인권 방식을 택했지만, 조커라는 위험을 제거하고 나서는 이 시스템 자체를 폐기시킨 것)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주제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 확실히 어느 한 편에 서기보다는 양날의 경우를 모두 인정하는 입장을 취한다고 볼 수 있을 텐데,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특수성으로 인해 완벽한 중립에서기 보다는 좀 더 필요악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편에  더 기울어 있지 않나 싶다. 앞서 이야기했던 '다크나이트'의 휴대폰 감청 시스템도 그렇고 (폐기하긴 했지만 사용했으니. 폭스였으니까 이번만 합니다 라고 했지 블레이크였다면 절대 수긍하지 못했을 것이다 ㅎ),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도 결국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만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배트맨 아니 또 다른 어둠의 기사를 키워낸 것으로 마무리 된 것에서 엿볼 수 있듯이 놀란의 영화는 물론,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텍스트 자체가 바로 이 완전하지 않은 것 때문에 가장 흥미롭고 여러가지 다른 담론이 가능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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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배트맨 비긴즈'를 다시 보고 쓴 글(배트맨 비긴즈 다시보기 - 공포를 극복하고 배트맨으로 태어나다)에서도 이야기했 듯이 '배트맨 비긴즈'의 주요 테마는 '두려움' 그리고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이와는 어쩌면 전혀 상반되는 주제를 담고 있다. 바로 두려움의 극복이 아닌 '인정' 이다. 브루스 웨인은 부모를 잃은 상처와 그로 인한 복수, 그리고 어린 시절 동굴에 떨어져 겪었던 두려움과 박쥐 등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면서 진정한 배트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러한 극복의 테마는 고담을 어지럽히는 악당들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으로도 표현되는데, 이러한 갈등은 조커와 하비 덴트의 일을 겪은 뒤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그저 보지 않으려 한 것 뿐). 하비 덴트 법이 무너지고 베인이라는 고담의 커다란 재앙이 다가오자 브루스는 다시 한 번 '고담에는 배트맨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생각으로 고담시에 나타나 베인과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베인에게 부러지고 난 뒤 감옥에 떨어지게 된 브루스 웨인은 여기서 극복이 아닌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깨우침을 얻게 된다.

 

즉,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감옥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인정함으로서 표면적인 감옥에서는 물론 오랫동안 브루스 웨인을 짓누르고 있던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맨 비긴즈'에 등장했던 토마스 웨인의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면 돼'라는 대사는 역시나 의미심장하게 쓰이고 있다. 일어나라 (Rises)라는 죄수들의 외침과 함께 말이다). 이제 두려움을 인정하고 강박에서 자유로워진 배트맨은 혼자 다 해결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고 셀리나에게 믿음으로서 역할을 부여하고, 배트맨으로서 산화하는 것이 아니라 브루스 웨인으로서 살아 남는 것을 택하였으며, 자신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물려주는 것 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브루스 웨인이라는 인물이 트라우마를 겪고 또 싸우고 결국에는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이야기를 그렸다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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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제(?)의 캐릭터인 탈리아 알굴에 대해서 조금만 이야기해보자면, 사실 누구나 그녀가 탈리아 알굴 일 거라고 많이들 예상했었기에 그녀가 스스로 '내 이름은 탈리아야'라고 했을 때 극중 배트맨 만큼 놀라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놀라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로 인해 베인이라는 멋진 캐릭터가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누구보다 '순정마초'스러운 이야기에도 쉽게 동화되는 편이지만 베인은 한 여인을 향한 충성에 가까운 애정보다는, 혁명가로서 더 깊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였기에 이렇게 탈리아의 정체와 함께 한 방에 (실제로도 한방에 ㅠ) 무너져 버린 것이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이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는 몇 가지 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이야기와 캐릭터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갑은 역시 탈리아 알굴이었다. 놀란이 마무리해야할 배트맨 이야기에 탈리아의 자리는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에필로그에 가까운 엔딩 부분. 이 작품이 종결의 의미가 가장 크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엔딩 부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놀란의 영화치고는 너무도 직설적이고 친절하게 하나 하나 논란의 여지 없이 정리하는 마무리에 사실은 조금 놀라기도 했을 정도였다. 블레이크의 부상 (Rises), 알프레드가 복선으로 깔아놓은 이야기로 정리되는 브루스 웨인의 미래는 사족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이 작품이 '다크나이트'와는 달리 최소한 바로 이어서 4편을 기대할 수는 없도록 완전히 종결지어야 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고 보았을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신파스러운 장면에서도 위엄을 만들어 냈다 (물론 더 위엄있는 마무리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여지가 남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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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전 '인셉션 (Inception, 2010)'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놀란의 영화를 보며 이야기의 구조나 구성 등에 대해서만 주로 언급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인 부분을 이끌어 내는 데에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셉션'에서는 꿈 속의 꿈이라는 구조를 영화적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해 낸 것도 물론 좋았지만 아내를 잃고 아이들을 그리워 하는 코브의 이야기가, 그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감정적으로도 공감되고 마음이 흔들리는 작품이었다. 이번 '다크나이트 라이즈' 역시 시리즈 내내 그 곳에 서 있었던 알프레드의 눈물을 보았을 때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고, 브루스 웨인이라는 캐릭터가 배트맨을 거쳐 다시금 브루스 웨인으로 돌아가게 된 과정에서 오는 고통과 깨달음, 결심을 보았을 때 액션이나 볼거리, 이야기적인 흥미 때문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것을 또 한 번 경험할 수 있었다. 좀 가볍게 얘기해서 '고담 밖에 모르는 바보'의 이야기가 그냥 흥미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과 갈등이 한 알 한 알 느껴진 덕분에 가슴 깊이 흔들려 결국 소름과 동시에 울컥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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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해보아도 액션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의 범주 내에서, 특히나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작품에서 감독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철학을 이 정도로 과감하고 자신감 있게 표현해낸 것이야 말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가장 큰 업적이 아닐까 싶다.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으로 그러하였듯,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통해 그러했듯,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 만의 비전으로 전 세계 누구나 아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자신의 영화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짓게 만드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이 삼부작에 참여한 주요 배우들은 모두들 하나 같이 이야기한다. 더이상의 배트맨은 없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다면 출연할 의지가 있다.


나 역시 언제라도 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다면 만사를 재쳐두고 극장으로 향할 의지가 있다. 아..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1. 그냥 담론에만 집중해서 쓰다보니 액션, 한스 짐머의 영화 음악, 트리비아와 영화 속에서 발견한 인물들과 소소한 설정 들에 대해서는 아예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보고 짧게 정리해 봐야겠네요. 아이맥스로만 2번 관람했는데 이번에는 메가박스 M관의 4K로 볼지 아님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볼지 (행복한) 고민입니다.


2.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두 번째 보고 온 날 집에오자마자 '다크나이트'를 다시 보았어요. '라이즈'를 보니 더 더욱 '다크나이트'가 보고 싶어지더라구요. 아, 물론 아직 '비긴즈'를 다시 보시지 않았다면 이게 무조건 우선입니다.


3. 아직 기다림이 다 끝나지는 않았군요. 블루레이 발매를 또 기다립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에 있습니다.


 


 




인셉션 (Inception, 2010)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스스로 발전하는 세계


사실 많이 걱정했었다. '메멘토'부터 그의 작품을 ( '미행' 제외) 모두 극장에서 보고 팬이 된 입장에서는 '인셉션' 역시 기대되는 그의 신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다크나이트'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은 영화 팬 뿐만 아니라 모든 대중들이 기대하고 관심을 갖게까지 만드는 이른바 '모두의 기대작'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기대라는 것은 감독에게 있어 가장 부담스런 것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다크나이트'는 몹시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었기 때문에 과연 이 정도의 기대를 안고도 대다수가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팬으로서 걱정부터 앞선 던 것이다 (사실 이 걱정 자체는 모순인데, 대다수의 기대를 꼭 만족시켜야할 의무도 없고 어떤 영화든 개인에 따라 더 좋고 덜 좋음이 다를 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대중의 기대를 뒤로하고 순전히 개인적으로만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면, '인셉션'은 과연 '다크나이트' 이후 스튜디오의 더 큰 전폭적 지지를 얻게 된 놀란 감독이 더더욱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작품을 만들었을지 아니면 좀 더 대중친화적인 작품을 만들었을지가 궁금한 점이었는데, 이런 궁금증이 무색할 정도로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도  (타협없이도) 대중들을 다 만족시키는 것이 가능한, 어떤 측면에서 진정한 아티스트임을 '인셉션'을 통해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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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 구조는 사실 새로울 것이 없다. 장자와 프로이트 등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가깝게는 '매트릭스'를 떠올릴 수 있겠는데, '매트릭스'의 경우 문화와 철학의 인용 그 자체로 이루어진 작품이라면 '인셉션'은 익숙한 것들을 인용보다는 소재로 그리고 장치로 사용하되, 이를 양분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새롭게 설계한 또 다른 신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과연 저것이 가능할까?' 싶은 정도의 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그것이 가능해졌을 때 새롭게 갈 수 있는 길을 다각도로 펼쳐놓는 여유까지 (하지만 이 여유 뒤엔 자신감보다는 치밀함이 있다)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꺼풀만 보자면 '인셉션'에서는 여러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들이 겹쳐지곤 한다. 알렉스 프로야스의 '다크시티'는 세계관이나 그 이미지에서,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은 시간과 기억을 다루는 것에서, '매트릭스'나 '오션스 일레븐'은 몇몇의 캐릭터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법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겹쳐지는 부분을 자주 경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한꺼풀만 벗겼을 때 '인셉션'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영화는 바로 찰리 카우프만의 '시네도키, 뉴욕' 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만약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이 '인셉션'이 아니라 '시네도키, 뉴욕'이었더라면 지금과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카우프만의 작품일 때 보다는 더 큰 파급효과와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만큼 카우프만의 만들어낸 시네도키의 세계관은 '인셉션' 못지 않은 (혹은 더 복잡한) 심연을 파해치고 있는데, 카우프만은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마음의 심연에 몹시 집중한 반면, 놀란은 이 세계관을 보다 흥미롭게 단계화(Level) 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카우프만의 작품은 좀 더 개인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된 반면, 놀란의 작품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이해하고 싶어 안달하게 하는 (정답을 찾고 싶게 만드는) 더 큰 매력을 지닌 작품이 된 것이다. 

시네도키, 뉴욕 _ 외로운, 위로의 일기



(이제부터 슬슬 스포일러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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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마치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처음 모피어스와 함께 매트릭스에 접속했을 때를 연상시킨다)

이 글은 '인셉션'을 두 번 보고 나서 쓰게 된 글인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비로소 두 번째 보았을 때 이 영화의 정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재미없던 것이 재미있어진 경우가 아니라 영화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정서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첫 번째 보고 난 후의 간략한 소감은, 크리스토퍼 놀란은 동시대에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영화 기술자이자 장인이기는 하지만, 정서적인 측면 즉 이야기의 주인공이 갖게 되는 정서적 울림에 있어서는 다른 측면에 있어서 조금 부족하지 않나 (특히 '인셉션'의 경우) 싶은 것이 전반적인 느낌이라, 둘 중에 굳이 더 나은 작품을 꼽으라면 메시지의 울림이 영화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다크 나이트'를 주저없이 꼽을 수 있었는데, 두 번째 보고나서는 이런 결정을 쉽사리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야 말았다. 마치 '프레스티지'는 '참 영리한 두뇌로 쓰여진 치밀한 시나리오다'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크리스찬 베일과 휴 잭맨이 연기한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완전히 공감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했던 '인셉션'이 전혀 다른 작품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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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양한 해석과 많은 논란 혹은 해석할 여지가 존재하는 작품이다. 사실 잘 짜여진 시나리오라는 것 그리고 잘 편집된 한 편의 영화라는 것은, 이렇듯 보는 이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작품인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측면에서 '인셉션'은 이것 만으로도 부족할 것 없이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제목인 '인셉션' (다른 사람의 무의식, 꿈 속에 생각을 심는 것) 의 의미처럼만 만들어졌어도 이 영화는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란 감독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영화 속에서 코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팀이 피셔 (킬리언 머피)에게 실행했던 방법처럼, 인셉션을 통해 심은 생각이 단순히 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심은 생각이 자라날 수 있도록 (그래야 인셉션이 성공하듯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성해 냈다. 즉, 관객들은 놀란이 심은 기본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나래를 펴 점차 더 깊은 인셉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어디까지가 꿈이고 현실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다. 이미 관객은 영화 속 맬 (마리온 꼬띨라르)처럼 더이상 인셉션의 경계를 확인하는 대신에 자신만의 세계를 더 굳건히 믿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믿는 다는 것은 영화 속 과는 다르게, 논란이 풀어놓은 퍼즐 조각을 끊임없이 맞추고자 하는 욕구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꿈' 혹은 또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인셉션 (Inception)'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무서운 영화적 야심인가. 남들이 100점 만점의 이야기를 갖고 있을 때 놀란은 150점 짜리 이야기를 구상해 냈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관객이 느끼는 것에 따라 160점도, 200점도 될 수 있는 구조까지 마련했으니 말이다. 이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관객이 놀란을 완전히 신뢰하며 인셉션에 빠질 수 있는 것처럼, 놀란 역시 자신의 영화를 100점 이상으로 봐줄 관객들을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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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첫 번째 관람 후에 글을 바로 썼다면 여기까지에서 간단히 마무리 했다거나 아니면 논란이 풀어놓은 퍼즐 조각들을 이렇게 저렇게 맞춰가며, 이런 것도 가능하고 저런 것도 가능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을 것이다. 사실 정답이라 한다면 이게 정답인데, 두 번째 보고 나니 이 수 많은 갈래길들 가운데 단 하나의 길 만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리곤 앞서 했던 생각을 완전히 뒤집게 되었다.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크 나이트'처럼 메시지가 강한 영화가 아닌 경우라면 세계관 설계에는 누구도 따라오기 어려운 탁월한 재주를 보여주지만,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는 공감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다는 생각 말이다. 확실해진 갈래길을 따라가보니 이 영화는 놀란의 작품 가운데 그 어느 작품보다도 주인공의 이야기와 감정적 동요가 큰 작품이었다. 마치 '메멘토'를 완벽하게 확장시킨 듯한 모습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메멘토'하면 그 영화적 형식에 더 귀를 기울이지만 '메멘토'에는 분명 주인공 '레너드'의 사연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10분 간만 기억을 유지할 수 있다는 특수한 설정을 흥미위주로 구성하는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 겪어야만 했던 감정의 이면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인셉션'을 두 번 보고 느낀 것은 바로 이런 주인공 코브의 이야기였다. 수많은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내러티브가 가장 자연스럽고 또 감정적이며 가장 많은 부분이 맞아 떨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도 헛점은 있다. 하나하나를 다 맞추려고 하면 맞지 않는 부분은 이 경우에도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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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셔에게 코브가 인셉션을 시도했듯, 코브에게 인셉션을 한 것은 바로 장인인 마일스일지 모른다)

코브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진짜 인셉션

첫 번째 보고나서 그 엔딩의 쓰러지지 않는 팽이와 공항 씬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몇가지 단서들 덕에, 이것이 결국 코브의 꿈, 그러니까 코브의 인셉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때 까지만 해도 확신이라기 보다는 다른 수 많은 갈래길 중 좀 더 유력한 길 정도로 생각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두 번 보게 된 영화는 확실히 달랐다. 이것은 완벽한 코브의 인셉션의 관한 이야기였다. (개인적인 확실일 뿐, 다른 분들이 갖는 확신 역시 틀리다기 보다는 또 다른 맞는 확신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일단 코브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바로 자신의 아내를 죽음으로 몰게 했다는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엄청난 죄책감이다. 코브와 아내 맬은 드림머신을 통해 꿈의 세계를 설계하는데에 흥미를 갖게 된 뒤, 꿈 속의 꿈, 그 꿈 속의 꿈 등 더 깊은 꿈의 세계, 즉 꿈의 끝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결국 이 과정 속에서 맬은 자신이 믿고 있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더이상 믿지 않는 동시에, 자신이 살고 있는 꿈 속의 세계를 현실로 믿어버리게 된다 (즉, 림보에 빠진 것이다). 꿈과 현실의 단계가 단순히 한 단계로 이루어졌더라면 이런 혼동이 없었겠지만, 꿈의 꿈 그 꿈의 꿈, 또 그 꿈의 꿈으로 이어지는 영역을 경험한 이들에겐 현실을 자각하는 능력이 점차 사라져갔고, 맬은 결국 꿈을 현실로 믿게 된 것이다. 이런 맬을 끝내 설득시키지 못한 코브는 결국 맬에게 인셉션을 감행하게 된다. 즉, 맬이 꿈을 꿈으로 믿고 돌아올 수 있게 생각을 심는 것이었는데, 그리하여 오랜 꿈 속에서 벗어난 맬은 하지만 이 현실 역시 꿈으로 받아들이고는 이 꿈에서 깨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이 과정 속에서 코브가 얻은 교훈이라면 단순히 생각을 주입하는 인셉션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 즉, 스스로 그 생각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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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서부터 코브의 인셉션은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이것은 코브에게 엄청난 죄책감이 된다. 꿈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던 것도 본래 본인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림보에 빠진 맬을 구하기 위해 성공확률이 높지 않았던 인셉션을 맬에게 직접 시도했으며, 결국 이 인셉션이 성공하지 못하면서 맬을 진짜 죽음으로 이르게 했기 때문이다. 이런 코브의 죄책감은 이후 그가 다른 의뢰인의 꿈에 들어갈 때마다 불안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자신이 죽게 했다는 생각에 맬의 존재는 언제나 꿈 속에서 코브나 꿈의 주인공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하고, 이런 죄책감이 가져온 불안감은 점점 더 예고하지 않고 예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코브가 맬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 어린 아들, 딸과 다시 재회하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인셉션으로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코브가 이렇게 되길 가장 바라며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사람은 누구일까.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맬의 아버지, 그러니까 코브의 장인어른으로 등장하는 '마일스' (마이클 케인) 밖에는 없다고 생각된다 (아버지인지 장인인지 좀 불확실한 면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부자관계나 아니냐 라기 보다는 꿈에 침투하는 것을 가르친 사람이 마일스 라는 점이다). 마일스는 일단 코브에게 직접적으로 이 일을 가르쳤다는 점에서 (그리고 가족이라는 점에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코브를 구하고자 하는 감정적 동기가 충분하다. 또한 자신이 가르친 기술 때문에 결국 딸의 죽음과 사위의 트라우마가 생겼음으로, 마일스 스스로도 이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동기가 되겠다.

또한 코브에게 이를 가르친 만큼 코브의 인셉션을 설계할 만한 능력은 물론, 수제자 (엘렌 페이지)를 통해 이를 완성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들 수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보기 시작하면 이 이야기는 놀랍도록 맞아 떨어지기 시작한다. 특히 처음 파리에서 코브와 마일스가 만나 나누는 대화 장면을 보면 이런 심증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이 대화를 보면 마일스는 은근히 코브가 진행하려는 인셉션을 막아서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유도하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코브는 애초에 인셉션을 마음먹고 이를 설계해줄 아키텍트를 구하러 오긴 했지만, 마일스는 이런 코브의 심정을 이용하여 좀 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코브가 계획을 세우도록, 코브의 말을 받아들이기도하고 반대로 그를 잘 아는 만큼 일부러 약을 올려 더 하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대화를 이끄는 마일스, 그리고 이를 연기한 마이클 케인의 연기를 보면 무서울 만큼 디테일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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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후 코브의 토템이 쓰러지는 장면, 즉 현실임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다음부터는 코브의 팀이 피셔에게 인셉션을 심는 상황을 그대로 코브에게 대입하면 된다. 극중 임스 (톰 하디)는 피셔에게서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삼촌인 브라우닝 (톰 베린저)으로 분장해 아버지와의 관계 등 더 많은 깊은 정보를 캐내게 되는데, 피셔와 브라우닝으로 분한 임스의 관계는 그대로 코브와 아리아드네 (엘렌 페이지)의 관계에 대입해 볼 수 있다. 아리아드네는 코브를 더 알아야만 불안요소를 업애고 더 완벽한 설계를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코브가 동료들에게는 잘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묻는다. 그리고 코브의 꿈에도 적극적으로 접속해 코브와 맬의 관계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것을 알려고 한다. 이는 코브에 대한 인셉션을 성공시키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아리아드네는 결국 아무도 알지 못했던, 코브와 맬이 림보에서 겪었던 일들마저 알게 되었고 이는 피셔가 인셉션을 겪으며 스스로 발전한 것처럼, 코브 역시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결심하게 하는 계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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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보면 경쟁 회사를 분리하기 위한 사이토의 의뢰는 말그대로 코브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하나의 어려운 미션일 뿐인데, 이 자체가 마치 영화의 주된 메시지인냥 코브의 트라우마 이야기와 비중을 같이하며 (혹은 더 큰 비중으로) 그려지는 것은 단순히 볼거리 측면 때문이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피셔에게 인셉션을 하는 것은 그대로 코브에게 인셉션을 하는 것과 겹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피셔가 사이토의 뜻대로 회사를 나누는 것은 영화 상에서 하나도 중요할 것이 없는 사실이고,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중요한 것인데도 이 과정을 그렇게 심도 있고 비중있게 그린 이유가 바로, 이마저도 피셔의 이야기가 아닌 코브의 이야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무의식 속에 갇혀있는 맬에게로 가는 길을 찾는 과정인 동시에 이런 맬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과정인 것이다. 다시 말해 너무 직접적인 (1차적인) 인셉션을 코브에게 시도했다면 코브는 이를 금새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셔의 인셉션이라는 복층의 인셉션을 설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코브는 그의 무의식 속에 있는 맬과는 다르게 정확히 현실과 꿈을 구분하려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꿈에서 나올 때마다 토템을 통해 현실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있으며, 다른 영화의 감상적인 주인공들처럼 영원히 맬과 림보에 남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코브에게는 맬에 대한 죄책감 만큼이나 자식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이런 맬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코브는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미 맬에게 했던 인셉션이 실패로 돌아갔던 과거 때문에 (꿈의 설계에 상상력만이 아닌 기억을 동원하게 된 점) 자신이 설계한 인셉션으로는 절대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즉, 계기가 필요했던 것인데 (헬기에 탄 사이토의 인셉션 제안에 너무 쉽게 수락한 경향이 있다. 인셉션의 실패 경험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파리로 이 문제를 해결해줄 마일스를 찾아갔고 자연스레 인셉션에 몸을 맡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리아드네를 그의 꿈에 너무 쉽게 받아들인 것도 쉽게 수긍이 된다. 아마도 그렇지 않았다면 '너는 여기 오면 안돼' 그 이상으로 그리고 그 다음에도 절대 아리아드네를 맬이 있는 자신의 꿈에 들이지 않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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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인셉션'은 그 어떤 영화 못지 않게 주인공 코브의 절절한 감동의 이야기가 된다. 정말 아내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둘이 함께 추구하는 바를 이루려 꿈꾸던 그 곳에 끝까지 가게 되었지만, 결국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아내를 위해 자신도 그곳에 남아 아내의 꿈 (둘이서 함께 늙고 싶다는)을 이뤄줄 때까지 기다려주기도 했고, 한 차례 꿈에서 빠져나온 이후에도 아내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자 인셉션을 동원해 어떻게든 아내를 현실로 데려오려 했으나, 그것마저 실패하고 결국 아내의 죽음을 맞게 되어 그것이 평생의 짐이 되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인셉션을 통해 스스로 죄책감을 벗어내려는 노력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담긴 이야기는, 첫 번째 관람시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 몹시 동요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즉, 이 인셉션이라는 세계, 꿈의 꿈이라는 세계가 어떻게 이뤄지고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화려하고 매력적인 표피 속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 왜 이들은 림보에 빠지게 되었나, 왜 이들은 인셉션을 하게 되었나, 왜 코브는 죄책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나에 대해 비로소 생각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고나니 처음 볼 때도 뭉클했던 림보에서 코브와 맬이 나누었던 대화 장면이 더더욱 눈물날 수 밖에는 없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것은 결국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코브는 피셔의 인셉션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고, 나중에 가서는 그 동안 죄책감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말들 (맬에게 인셉션을 했던 사실, 50년 넘게 림보에서 둘이 함께 늙어갔던 사실)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눈 앞에 만져지는 진짜 같은 꿈 속의 맬을 용기 있게 부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맬에게 인셉션을 고백하는 장면부터 코브가 드디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는 이 시퀀스가 몹시도 슬프고 감정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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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은 트라우마라는 점에서 역시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았던 '셔터 아일랜드'와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결말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셔터 아일랜드'의 레오는 결국 자신의 트라우마를 인정하긴 했지만 이겨내진 못했던 반면, '인셉션'의 레오는 눈물겹고 힘들었지만 결국 극복하고 현실로 돌아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것이 마일스가 설계한 (물론 세부 내용은 아드리아네가 설계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코브의 인셉션이라고 해놓고선 현실로 돌아오는데에 성공했다는 얘기가 무슨 얘기냐고 물어올 수 있겠는데, 사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부분은 마지막 시퀀스로 미뤄 봤을 때 아직 꿈 속이라고 볼 수 있겠다.

비행기 내에서 깬 뒤 공항에 도착한 순간, 유난히 코브를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선들도 그렇고 이를 마중나온 마일스도 그러하며, 결정적으로 결국은 쓰러지지 않은 팽이와 (물론 이는 쓰러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엔딩 크래딧 말미에 흐르던 킥을 신호하는 에디뜨 피아프의 노래까지. 코브가 이 꿈에서 깨는 순간 다시 모든 것을 잊고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그 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전한 인셉션인 만큼 꿈에서 깬 다음에도 이 어렴 풋한 기억을 발판으로 반드시 이 죄책감에서 벗어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코브가 바라던 현실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고 (정확히는 성공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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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이 결국 트라우마에 관한 영화라는 점은 영화 속 킥의 도구로 사용된 에디뜨 피아프의 유명한 곡 'Non, Je Ne Regrette Rien'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이 곡이 본래 워낙에 유명한 곡이기도 했지만, 에디뜨 피아프의 전기를 다룬 영화 '라비앙 로즈'를 감상한 탓에 이 곡은 물론, 이 곡의 가사들도 미리 머릿 속에 인지하고 있던 것이 '인셉션'을 감상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정말 굴곡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지만 결코 자신은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이 곡의 제목과 가사처럼, 킥 할 때마다 울려퍼지는 이 곡은 마치 코브의 트라우마를 덜어주려는 아키텍트의 세심한 배려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아내에 대한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코브와 '난 후회하지 않아'라는 곡의 대비는 아이러니와 동시에 영화의 메시지를 더 확고히 하는 장치가 되었다 (물론 '라비앙 로즈'의 주인공이 마리온 꼬띨라르 였다는 점도 묘한 흥미거리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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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지 생신지 볼을 꼬집, 아니 얼른 토템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 사람같으니라구!)

개인적으로는 두 번 보고 나서 확실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래서 '인셉션'을 더 격하게 좋아하게 되었지만), 처음 보고나서의 느낌처럼 '인셉션'을 이런 감정적 내러티브보다 다층적이고 흥미로운 세계관에 집중한다 하더라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 대단한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놀란은 '인셉션'이라는 세계를 설계하고 그 안에 인셉션을 심어 결국 관객들이 스스로 이를 발전시켜 더 큰 세계로 혹은 자신조차 의도하지 않았던 이야기로 확장시켜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놀라운' 세계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1. 이 글을 다 쓰고 나서야 각종 정리글과 분석글들을 차근차근 읽어보았는데, 제 생각과 일치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하나같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완전 이 세계관에만 집중해서 하나하나 분석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이미 대부분을 다른 분들이 해주셔서 이 부분은 생각날 때마다 보충하는 것 정도로 하려구요.

2. 이것이 코브의 인셉션이라해도 피셔의 인셉션은 킬리언 머피의 연기로 인해 설득력을 얻게 되더군요. 사실 이 이야기 자체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보였거든요. 경쟁사의 회사를 반쪽내기 위해 이 정도의 위험을 감수한 사이토의 이야기도 그렇고. 그런데 킬리언 머피의 연기는 진짜 영화 속 영화처럼 설득력을 주더군요.

3. 디카프리오야 동시대의 배우들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한명이니 더 부연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더 좋아하게 된 배우가 있다면 역시 조셉 고든-래빗이죠. '브릭'과 '500일의 썸머'는 물론 왜 나왔을까 싶은 '지아이조'마저 본 팬인데, '인셉션'에서의 조셉은 정말 멋졌어요. 물론 멋진걸로만 따지자면 '임스' 역할로 나온 톰 하디에게 좀 밀렸지만요 ㅎ

4. 이미 3회차 관람은 예매가 완료되어 있고, 지금은 나만의 토템을 찾는 중입니다.

5. 참고로 제 핸드폰 벨소리도 바꿨어요. 'Non, Je Ne Regrette Rien'로요.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올 때마다 킥이 되는거죠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Pictures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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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 첫 느낌


해외에서 쏟아지는 호평과 극찬들. 국내 시사회 이후에 역시나 관객과 평론가 모두에게 쏟아지는 박수와 걸작이라는 거침 없는 평가들. 저는 본능적으로 남들이 다 좋아하는 것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면도 있고(물론 예외는 존재하지만), 저 뿐 아니라 기대라는 것은 커지면 커질 수록 실망이 자연적으로 커지는 법이라 감상전의 이 같은 엄청난 기대를 불러 일으키는 말들은 분명히 곧 만나게 될 <다크 나이트>에게는 마이너스 요소였습니다. 즉 쉽게 말해 100점짜리 영화를 만들었어도 워낙에 커진 기대 탓에 120점 정도는 보여줘야만이 100점으로 느껴질 정도였다는 얘긴데,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런 부담스런 기대를 안고 관람했음에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는 200점짜리 결과물을 저에게 안겨주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극장에서 감동과 전율의 눈물과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존경과 위대함에 대한 박수를 보낸 영화였으며, 그 동안 알고 있던 히어로 장르의 영화들을 모두(과장을 보태자면)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압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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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보여준 것은 정말 의미있는 시작이었다는 것이 <다크 나이트>를 통해 다시 한번 느껴졌습니다. 기존 판타지스럽고 기존 히어로 물의 일반적인 구성에 충실했던(물론 팀 버튼의 <배트맨>이 이런 전형적인 히어로 물의 룰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아니죠) 배트맨의 이야기를, 어쩌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실로 가져와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이라는 캐릭터를 좀 더 인간적인 면으로 그려냈고, 리얼리티를 강조하면서 왜 배트맨이 되었나에 관한, 혹은 될 수 밖에는 없었나에 대한 이해가 용이해졌고, 무엇보다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에 좀 더 애정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정말 놀란이 만든 <배트맨 비긴즈>이전에는 단 한 번도 고담시가 현실에 존재할 법한 도시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이 처음 맡게 된 배트맨 이야기의 새로워진 배경과 분위기를 설명하는데에 <배트맨 비긴즈>의 최대 공을 들였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이러한 프롤로그 없이 이미 비긴즈에서 설명이 된 세계와 인물들을 중심으로 본래 하고 싶었던 복잡한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꺼내 놓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는 배트맨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이라 할 수 있는 적으로 조커가 등장하게 되었고, 투 페이스도 등장하게 되죠.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웅이 악당을 무찌르는 기본적인 히어로 물의 아주 커다란(아주) 바탕 아래 범죄 스릴러의 요소를 가져왔으며, 사회/정치적인 메시지와 히어로로서 겪는 갈등의 요소를 극대화해 어느 리얼한 극 영화들 보다도 관객이 놓여진 상황에서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없고 지치고 곤란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의 갈등을 야기시키면서(그것도 히어로 물에서 말이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심리극의 분위기로 배트맨을 이끌고 있습니다.

어느 기사를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이 팀 버튼의 배트맨과 차별되는 배트맨을 만들기 위해 리얼리티를 강조함에 있어 마이클 만을 거쳐가는 방법을 택했다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이에 적극 공감하는 바입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그 동안은 그저 코믹스나 영화 속에나 만나볼 수 있는 가상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고담씨티를 실제 시카고를 배경으로한 로케이션 촬영으로 대부분의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요 인물들과 배트맨, 조커 등의 캐릭터에 대한 리얼리티도 동시에 부여하는 효과를 거뒀으며, 마이클 만이 <히트>에서 보여주었던 총격씬에서의 리얼리티와 사운드(마이클 만은 역시 총소리의 달인!), 그리고 <콜레트럴>에서 보여주었던 L.A의 밤거리의 묘사 같은 장면의 장점만을 고스란히 흡수하면서, (특히나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에서는) CG가 아닌 리얼리티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초반 프롤로그 장면을 비롯해 영화 속의 사운드는 엄청난 박력으로 무장되어 있었으며, 밤거리를 배경으로 벌어진 차량 추격씬에서도 화려함보다는 오히려 묵직함과 박력이 느껴지는 구성이라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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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열연은 <다크 나이트>를 위대한 영화로 만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먼저 배트맨/브루스 웨인
역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는 여전히 뛰어납니다. 사실 조커 역의 히스 레저의 놀랍도록 완벽한 연기에 가려서이지, <배트맨 비긴즈>에 이어 <다크 나이트>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배우에 대해 다시 한번 신뢰를 깊게 할만큼 인상적입니다. <비긴즈>에서 배트맨이 되어야만 했던 '브루스 웨인'으로서의 고뇌를 표현해 냈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언제 까지 배트맨이 고담시에 존재해야 하는가' 혹은 배트맨의 등장이 악을 소탕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더 큰 악을 불러 오게 된 계기는 아니었나'하는 '배트맨'으로서의 고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중에 더 집중적으로 리뷰할 글을 위해 남겨두느라 자세한 표현은 하지 않겠지만,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겪는 고민은 관객도 예상할 수 없음은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해도 기회비용이 따르는,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이런 복잡한 심리를 표현해 내기에 크리스찬 베일만한 배우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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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에서는 배우 히스 레저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단순히 짙은 분장과 의도된 목소리 연기 탓만이 아니라, 그의 놀랍도록 몰입된 연기에서는 히스 레저는 물론, 조커 하면 떠오르는 잭 니콜슨의 그림자 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간 히스 레저가 출연한 작품들은 <카사노바>를 제외하면 거의 다 보았던 것 같은데, 그 작품들 어디에서도 이런 모습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의도된 목소리 연기와 입맛을 다시는 동작 등을 볼 때는 정말 소름이 돋더군요. 히스 레저의 연기에 대해서도 너무나 감탄스럽고 칭찬할 부분들이 많은데 이 부분 또한 나중 포스트에 좀 더 자세하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하게 마무리하자면,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속보로 전했을 때보다 <다크 나이트>를 보고 나온 오늘의 느낀 그의 공백에 대한 충격이 더욱 컸습니다. ㅠㅠ


초반 등장하는 킬리언 머피는 이 정도면 거의 까메오 수준입니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배우임에도 이런 스쳐가는 분량에도 기꺼이 참여한 그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결과적으로 킬리언 머피도 이 걸작의 영화에 동참하는 배우가 되었네요). 알프레드 역의 마이클 케인과 폭스 역의 모건 프리먼 역시 <배트맨 비긴즈>에 비하면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둘 캐릭터는 <다크 나이트>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캐릭터라 할 수 있겠죠.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를 거치면서 어느새 악역의 기존 이미지는 거의 다 희석되다시피 되어버린 게리 올드만 역시 고든 역할을 충실히 연기해냈고(코믹스 속 고든의 모습을 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코믹스 속 고든과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고든의 모습의 싱크로율은 상당히 높습니다), 케이트 홈즈에 이어 레이첼 역할을 맡은 메기 질렌할은 객관적인 미모 평가에서는 조금 뒤쳐진다는 평들도 있으나(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전작에서부터 그대로 이어지는 캐릭터 가운데 유일하게 배우가 교체된 핸디캡이 있었음에도 몰입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물론 영화 자체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만든 감독의 연출력이 바탕이 되었죠).

하비 덴트를 연기한 아론 에크하트는 이 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배트맨과 조커 만큼이나)중요한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선의 상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하비 덴트와 악당이 모습으로 변해버린 투 페이스의 캐릭터 모두를 연기함에 있어, 캐릭터를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되지 않도록 훌륭한 연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배트맨, 조커, 투페이스, 그리고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아론 에크하트 등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 포스트에 따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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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짐머와 제임스 뉴튼 하워드가 무려(!) 함께 작업한 사운드 트랙은 그야말로 걸작에 어울리는 웅장하고 중후하면서도 극적인 분위기를 한꺼번에 전하고 있습니다. 액션 장면에서도 너무 오버되지 않은 표현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서사적이면서도 슬픈 감정이 묻어있는 음악을 들려주는데, 정말 오랜만에 스케일이 느껴지는 사운드 트랙이 아닐까 싶습니다(이미 너는 질러져있다).


DVD나 블루레이가 출시된 이후에 작정하고 하나의 영화에 대해 연재를 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개봉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단 한 번 보고, 단 번에 연재할 만한 이야기꺼리가 떠오르고 계획하게 된 건 <다크 나이트>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영화의 세계관 / 감독의 메시지, 배우/캐릭터 열전, 크리스토퍼 놀란만의 배트맨 이야기 등등 적게는 3회, 많게는 4~5회에 걸쳐 <다크 나이트>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 걸작이자 히어로 물의 역사를 새로 쓴 영화에 대해 제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작은 성의이겠지요 ^^;



1.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의 압도적인 스케일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건 느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말로 설득할 수 없습니다.

2. 하비 덴트가 투 페이스로 변해가는 과정과 배경을 보니 <배트맨 포에버>에서 토미 리 존스가 연기한 투 페이스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약간 우습게만 보였던 그의 모습들이 다시 보였달까요. <다크 나이트>중복 관람이 어느 정도 끝나게 되면 <배트맨 포에버>를 다시 찾아봐야 겠어요.

3. 영화가 끝나자 마자 한 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름이 뜨자 한 번, 그리고 세상을 떠난 히스 레저와 스텝의 이름이 떴을 때 한 번, 총 3번의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4. 전 원래 어느 영화든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끝날 때 까지 다 보고 나오는 편이지만, 화요일 6시 용산에서 아이맥스로 관람하고 계단을 내려오며 뒤를 쳐다봤는데, 아마도 제가 본 이래에는 가장 많은 관객들이 완전히 끝까지 남아있던 광경이었습니다.

5. 에릭 로버츠의 모습도 오랜만이라 반갑더군요.

6. 고든의 아들 역할로 나오는 아역배우 나단 겜블은 <미스트>에서 토마스 제인의 아들로 나오기도 했었죠.

7. 엔딩 크레딧에 히스 레저와 함께 추모의 뜻을 보냈던 이는 Conway Wickliffe 라는 특수효과 전문 스텝이었습니다. 1966년 생으로 지난해 9월 25일 유명을 달리하셨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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