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쉬 (Whiplash, 2014)

초월의 양면성



보통 영화를 본지 한참이 지나면 기억의 유무와는 상관 없이 (물론 어느 정도의 상관은 있다만) 글로 풀어내기엔 상당히 어려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연유로 영화를 정말 인상 깊게 보았음에도 결국 글로 쓰지는 못한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이 영화 '위플래쉬 (Whiplash, 2014)'도 그럴 뻔 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그럴 뻔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으나 한참이 지났음에도 유독 생생한 기억과 머릿 속 '글감' 때문에 그 위기를 스스로 극복해 낸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여하튼 오랜만에 드럼을 소재로 한 음악 영화가 나온 줄로만 알고 보게 된 '위플래쉬'는, 끝까지 달려가는 동시에 우리가 흔히 한 쪽으로만 판단해 버리는 주제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절반 이상 제공하고 있는, 참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Bold Films. All rights reserved


아마 보통의 음악 영화, 혹은 성장 영화였다면 앤드류는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을 끝내 극복해 낸 천재 음악가가 되었을 것이고, 그의 스승인 플레처는 그런 천재 뮤지션을 키워 낸 아버지 같은 멘토가 되었을 것이다. '위플래쉬'가 흥미로운 건 보통의 음악, 성장 영화가 갖는 위와 같은 성취를 이 작품 역시 거두고 있는 동시에, 정반대의 시각이 가능하다는, 더 나아가 그 반대의 시선에 오히려 더 주목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일단 일반적인 측면으로 바라 본 '위플래쉬'의 이야기는, 제 2의 찰리 파커를 키워내기 위한 플레처라는 스승의 노력(방법)이 결국 앤드류의 잠재력을 일깨워 (일종의 각성) 또 다른 천재 뮤지션이 탄생하게 되는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해 낸다.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방식과 주제로 그려낸 영화들과 비교하더라도 '위플래쉬'가 도달하게 된 그 '순간'의 짜릿함과 희열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영화 말미 앤드류가 마치 초사이어인이라도 된 냥 스스로의 한계 점을 뛰어 넘어버리는 초월의 순간은, 근래 본 장면 가운데 가장 말초적으로 자극되어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마치 집단에게 얻어 맞은 듯한 욱신 거림이 느껴졌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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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어라?'하고 조금씩 다르다고 느껴졌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앤드류의 아버지와 여자친구로 대표 되는 그의 음악 외 일상에 관한 묘사였다. '위플래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드러머로서의 앤드류가 아닌 그 외적인 앤드류를 영화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얼핏 보면 '어? 왜 이런 의미 없는 장면을 넣었지?' 싶을 정도로 건조하게 그려진 앤드류의 일상은, 그렇기 때문에 '왜?'를 질문할 수 밖에는 없었다. '스파이더맨'도 아닌 것이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설정을 이렇게 전면에 자주 등장 시키는 것을 보았을 때, 특히 그 방법에 있어서 특별히 감정이 교류되거나 갈등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닌, 그저 상황을 묘사하는 것 (아버지와 둘이서 영화를 본다거나 하는)에 그쳤을 때, 저 장면이 왜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전반 부에는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후 앤드류가 좋아하게 된 여자친구와의 시퀀스가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그려졌을 때 무언가를 직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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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니콜 과의 이야기들은 아버지와의 그것보다 더 건조하게 그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다른 영화였다면 음악과 여자친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앤드류의 모습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하면서 고조시키거나, 말미에 가서도 그럼에도 돌아온 앤드류와 니콜과의 관계를 더 발전시키는 것으로 정리되었을 텐데, '위플래쉬'는 이 두 가지 모두를 배제하거나 다른 길을 택하고 있었다. 즉, 앤드류의 갈등은 갈등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단순한 결정처럼 묘사되고 있으며, 그 이후에 상황에 대해서도 극적인 결말은 영화가 제공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영화가 이렇게 앤드류의 음악 외적인 일상 들을 비교적 건조하게 늘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바로 글 서두에 언급한 바로 그 절정. 초월의 순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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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초월의 순간, 영화는 엄청난 에너지로 한계를 넘어서는 동시에 드럼과 음악 역시 말초 신경을 몹시 자극하며 인계 치를 넘어서고 있음에도, 그리고 그 절정의 순간에서 정확히 마무리하며 아직 흥분이 가실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고 끝내버렸음에도, 그 만큼의 정서적 해탈감이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드디어 플레처의 바램대로 제 2의 찰리 파커가 된(그 순간 만큼은) 앤드류의 모습에서 성공, 성취, 해피엔딩 이라는 단어들 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상실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앤드류는 플레처가 바라는 대로 음악적으로는 경지에 가까워 짐에 따라 아버지와의 관계, 여자 친구와의 관계가 그랬던 것처럼 일종의 인간성과는 멀어져 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앤드류가 음악적으로 초월하는 순간을 명확하게 그리고 있는 것처럼, 인간성과 멀어지게 되는 또 다른 순간 역시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마지막 아버지와 무대 뒤에서 만나고 이별하는 장면이 바로 그렇다. 앤드류는 음악적으로 경지에 오를 수록 일상에선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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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위플래쉬'를 보고 나면 이런 질문이 남게 된다. '플레처의 교육 방식은 옳았는가?' '경지에 이르기 위해 포기 가능한 가치들은 어디까지인가?' '그렇게 까지 해서 도달한 경지에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들.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정도의 차이를 인정하는 쪽과 정도를 두어서는 결국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특히 예술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의견, 혹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결코 어느 한 분야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다는 (그건 그야말로 배부른, 속 편한 소리라는) 의견도 가능할 것이다. 영화는 이렇듯 초월이라는 순간을 단순히 멋지고, 일방적인 성공과 연결 지어 이상향만으로 그리지 않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면을 부각 시켜 양면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위플래쉬'는 엄청난 영화인 동시에 진심으로 인상적인 영화였다. 다시 말해 엄청나기만 해도 좋았을 텐데, 인상적이기까지 해서 더 기억에 오래 남을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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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서 블루레이로 보고 싶네요. 물론 집에서 맘 놓고 볼륨 키워 감상하긴 어렵겠지만 ㅠ

2.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버드'를 관람하는 걸로?

3. 저에 다음 팬질은 멜리사 비노이스트로 거의 확정적!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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