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2013)

평생을 바칠 만한 일이라는 것



오다기리 조의 내한 소식 때문에 급하게 보게 된 이시이 유야 감독의 '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2013)'은 그를 비롯해 미야자키 아오이와 마츠다 류헤이 등 좋은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고 있음에도 처음부터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작품은 아니었다. 극장으로 가던 마음 가짐도 오다기리 조를 실제로 본다는 마음이 더 컸었다. 하지만 잔잔하고 소소하기만할 것으로 예상되던 영화는 의외로 진중하고 내 현실과도 겹쳐져 생각해 보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 씨네그루.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1995년 한 출판사의 사전편집부를 배경으로 이들이 '대도해'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전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 가운데 몇 가지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영화는 오로지 사전 만드는 일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당히 심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차적으로 사전을 만드는 과정의 묘사는 우리가 잘 몰랐던 일로서, 일반 사람들이 흔히 이용하는 (최근엔 전자 사전 등으로 많이 대체되었지만) 사전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 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누구도 호기심을 갖지 않았을 사전 만들기라는 일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과정을 견뎌야만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런 점은 일단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일들이 아닌, 어쩌면 관심은 물론이요 존재조차 느끼지 못한 일들을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생을 바쳐 분투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사실상 전혀 몰랐던 일의 시작과 과정, 완성을 지켜보는 것도 의미있지만, 이 작품에서 더 큰 인상을 받았던 부분은 인물들이 그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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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가장 큰 행복을 이야기할 때 하고 싶은 것으로 돈을 버는 것, 즉 하고 싶은 것을 일로서 할 수 있는 직장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영화 속 대도해를 만드는 일은 이런 점은 물론 그것이 비록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은 아니더라도 '일'이라는 것에 혼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난 이 영화를 보고 평생 직장에 관한 것을 떠올렸다. 마츠다 류헤이가 연기한 마지메는 대도해를 만드는 일에 대한 내용을 듣고는 이 일에 평생을 매진하기로 결정하는데, 일단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마지메라는 사람이 몹시 부러웠다. 어떤 일이든 간에 평생을 바칠 만한 일을 선택 혹은 만나게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런 일을 만나고 그 과정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던 그가 (영화 속에서는 약간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처럼 묘사되고 있음에도) 부럽기도 했다. 또한 더 부러웠던 것은 그런 자신을 끝까지 이해해주고 묵묵히 바라봐주는 동반자를 만나기까지 했다는 점이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어갈 수록 이런 소소한 일상의 일들을 담은 영화들이 오히려 더 큰 판타지로 느껴지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대도해를 만드는 과정 속의 마지메의 삶도 한 편으론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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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평생 직장을 이야기하거나 선택할 때 직장의 조건 및 환경 등을 이야기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 것은 그런 배경이 아니라 결국 '하고 싶은 일'이거나 '가치 있는 일' 그 자체였다. 무언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것을 일로서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무언가 가치를 영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이 작품은 단순한 사전 만들기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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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을 주저없이 바칠 만한 일을 만날 수 있을까? 혹은 이미 지나쳤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님 정말 그런 일을 만난다는 건 환상에 가까운 일일까? 조용한 한 무리의 사전 만들기 이야기가 작은 파도를 불러왔다.



1. 이 영화에 출연하는 지도 몰랐던 터라 등장부터 놀랐던 우리의 조제, 이케와키 치즈루. 조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깜놀.


2. 아래는 지난 2월 18일 씨네큐브에서 있었던 '행복한 사전' 상영 이후 GV에 참석한 오다기리 조 사진. GV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제되지 않은 질문들에 답하느라 배우나 감독들이 고생이 많은 듯;; 오다기리 조는 이날 무심한 듯 하면서도 나름 솔직한 답변들을 들려준 편이었어요.


왜 미야자키 아오이는 내한하지 않은 것인가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주)씨네그루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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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アヒルと鴨のコインロッカㅡ)
바람만이 아는 대답


참 일본영화스러운 괴상한 제목.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그 괴상한 제목에 일단 끌리고, 그리고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와 영화 <좋아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에이타가
주연을 맡았다는 소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영화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는 이 정도가
전부였고, 포스터나 전단지를 통해 영화 속에 밥 딜런의 'Blowin’in the wind'가 수록되었다는 것도 미리
알 수 있었다.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평범하고 잔잔한 가운데 '이야기'를 잘 끌어낸다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잔잔한 것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스테리한 부분이 주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더 큰 범위에서 이 영화를 감싸고 있는 정서는 소소함과 따뜻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라고 하는데, 소설을 미리
접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미스테리한 줄거리가 이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인지,
영화가 전개되면서 살짝 놀라게 된 부분도 있었다. 미스테리한 부분이 전개되기 전까지는 보통의 일본 영화들이
그렇듯, 일본 영화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듯한 약간 괴짜 캐릭터와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영화겠구나 했는데, 즉 가볍게 슬쩍 즐기고 나오려고 했는데, 제법 짠한 감동마저
받고 극장을 나오게 되는 영화였다. 확실히 일본 영화는 포스터나 제목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아래부터 영화의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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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멜로디가 흐르면, 2년 전 그날의 기억이 찾아온다.

대학 입학을 위해 센다이 시(市)로 이사 온 시이나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를 흥얼거리면서 짐 정리를 하는데, 노래를 따라부르는 이웃집 청년 가와사키를 만나게 된다. 괴짜 같은 가와사키는 이웃에 사는 부탄 출신 유학생 도르지가 일본에서 처음 사귀게 된 친구 둘을 동시에 잃은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일본어대사전을 훔쳐 선물하자는 황당한 제안을 한다. 얼떨결에 사건에 가담하게 된 시이나는 가와사키가 훔쳐 온 책이 일본어대사전이 아님을 알고 황당해하고, 우연히 알게 된 펫 숍 주인 레이코는 가와사키의 말을 믿지 말라고 시이나에게 경고를 한다. 그리고 시이나는 가와사키의 비밀 이야기를 알게 되는데…(보도자료)

사실 처음 '밥 딜런의 멜로디가 흐르면, 2년 전 그날의 기억이 찾아온다'라는 홍보문구를 보았을 때는,
너무 뻔하고 오버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저 문구만 본다면 너무 뻔한 홍보문구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 뻔하지만 노골적인 문구가 나름대로 영화의 분위기를 잘 함축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영화의 초중반이 지나기 전까지는 그저 대학진학을 계기로 센다이로 이사온 주인공 '시나'의
하루하루를 조심스레 스케치 해 나가는 평범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하지만 바로 옆방에 살고 있는 '가와사키'와
알게 되면서 그를 통해 듣게 된 이야기를 통해 약간은 이상한 주변 사람들과 동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와중에 알게 된 사람들을 통해 가와사키 역시 미스테리함이 많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알게 되고, 시나는
가와사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자 그의 뒤를 밟고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에 관해 묻게 된다.

이렇게 되면서 영화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개된다. 그저 단순히 괴짜로만 보였던 가와사키가 보여지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미스테리한 인물임을 알게 되고, 시나가 그를 점차 알아가면서 이 영화는,
미스테리한 퍼즐을 한 조각 한 조각 풀어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한 편, 퍼즐이 하나씩 풀려갈 수록
감동의 조각도 하나하나 완성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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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사키가 원래는 가와사키가 아니었고, 옆방에 사는 부탄에서 온 학생 도르지는 그저 지방에서 온 일본 학생
이었으며, 부탄에서 왔다는 도르지는 다름아닌 가와사키 였다는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 영화는 왜 부탄에서 온
도르지가 가와사키라는 이름을 쓰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해 플래시백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저 괴짜스럽게만 보였던 가와사키의 행동과 대사들은 이후 진짜 가와사키가 등장하는 후반부를 위해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이 과정속에서 그 동안 에이타가 가와사키로 연기했을 때의 장면들을, 에이타가
도르지로 등장하는 것으로 다시 한번 보게 되는데, 이 장면들을 통해 모든 비밀이 풀리고 도르지가 가와사키로
살아야만 했던 이유에 대한 정확한 답을 들을 수 있게 되지만, 거의 모든 장면을 다시 보여주는 것은 일부
관객들에게 약간의 지루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하긴 이 영화의 전반부, 그러니까 에이타가 가와사키를
연기하는 부분은, 모두 이 후반부를 위한 도구이니 전부 다시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에이타는 기존에 출연한 작품들에서도 제법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었지만, 그것은 연기 외에 인상적인
외모가 한 몫을 했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을텐데,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에이타를 좀 더
배우로 인식하기에 충분한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가 초반 가와사키로 등장할 때의 연기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오다기리 죠가 계속 떠올랐는데, 무언가 괴짜스럽고 이상하면서도 남모를 포스를 풍기는 그의
연기는 오다기리 죠가 많은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비슷한 캐릭터를 쉽게 떠올리게 했다. 후반부에 도르지를
연기하는 그의 모습에서도 나이에 걸맞는 순수한 미소를 볼 수 있어 좋았고. 특히나 후반부에 시나가 모든
비밀을 알게 된 이후의 그의 연기는 그 웃음, 표정 하나하나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 영화가 너무 에이타에 의해 과대포장 된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뭐 맞는말도, 틀린말도 될 수 있겠다. 영화는 에이타의 출연 하나만으로 설명되기에는 너무도 할 말이 많은
훌륭한 영화이지만, 이 영화에서 에이타가 차지하는 비중이라던가 그가 보여준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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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에이타 외에 마츠다 류헤이, 세키 메구미, 하마다 가쿠 등이 출연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국내에서
하마다 가쿠의 홍보가 너무 부족한 것이 아쉽다. 물론 기존의 국내 지명도에서는 조금 뒤쳐지는 배우일지는
몰라도, 엄연히 이 영화에서는 에이타에 버금가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국내 전단지에는 이름 한 번
언급되지 않는 등 너무 홀대를 당하고 있는 듯해 동정심 마저 느껴졌다. 사실 국내의 전단지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똑같은 옷을 입은 에이타와 마츠다 류헤이가 떡 하니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리뷰 글에 메인 포스터로 일본 포스터를 가져왔다. 저 포스터 속 캐릭터의 비중이
영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밥 딜런의 'Blowin’in the wind'의 경우 뭐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곡이었지만, 앞으로는 이 곡을
듣게 될 때마다 이 영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유명한 팝송을 영화 속에
자연스레 녹이는 방법으론 이 영화같은 방식이 가장 영리한 방식이라 생각된다. 적절하게 스토리에 녹아들도록
만들어내서, 나처럼 이미 이전에도 수없이 들었던 노래가 새롭게 들리도록 만드는 방식말이다.




1. 일본어를 잘모르다보니 '코인로커'라는 한국어 제목을 보고는 도대체 뭔가 했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나서야 '아, 코인 락커구나'했다는. 락커룸이라고 주로 하지 로커룸이라고는
   안하니까 --;

2. 제목을 보며 왠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스러움을 느꼈다.

3. 센다이는 마치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주더라. 특히나 대형 서점의 경우 미국 서부의
   인적 뜸한 주유소를 연상시키는 포스를.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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