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워 Z (World War Z, 2013)

진정성 있는 재난 영화



그냥 브래드 피트 주연의 좀비 영화 정도로만 알고 보게 된 '월드 워 Z'는 일단 좀비 영화는 아니었다. 그리고 '007 퀀텀 오브 솔러스'와 '네버랜드를 찾아서' 등을 연출한 마크 포스터의 작품이기도 했다. 정말 큰 기대 없이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월드 워 Z'는 흔한 재난 영화들 사이에서도 제법 괜찮은 진정성을 담은 영화였다. 그리고 거기에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는, 자신이 배우로서 갖고 있는 아우라를 최대한 발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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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좀비 영화라기 보단 재난 영화에 속할 것이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한 가족이 대 재난을 만나 겪게 되는 이야기이고, 그 재난의 종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한 좀비화 이기 때문이다. 물론 좀비라는 특성이 아주 활용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몇몇 장면은 그 특성으로 인해 가능한 장면들도 있었을 만큼), 좀비가 아니어도 충분히 가능한 내러티브였기에 오히려 이 영화는 좀 더 집중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최근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를 다시 보며 재난 영화로서의 성격을 생각해볼 시간이 있었는데, '월드 워 Z' 역시 일반적인 헐리웃 블록버스터가 재난을 다루는 방식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누군가 얘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롤렌드 애머리히의 영화들 보다는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에 더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좀비, 액션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웠을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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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장 좋았던 건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제리 레인의 한계였다. 보통 이런 재난 블록버스터의 경우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최고의 액션 영웅이던 주인공이 재난으로 인해 다시 호출되어 어쩔 수 없이(?) 재난을 모두 돌파하는 내용인데, 결과로만 보자면 이 영화 속 제리 레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일단 액션의 측면에서 한정적인 능력으로 그려진 것이 더 현실적이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다 보니 액션의 비중은 자연스럽게 좀 줄었고, 가족의 이야기가 더 전면에 나서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 영화가 다른 재난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 서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만약 제리 레인이 람보나 제이슨 본처럼 엄청난 액션 영웅이라 좀비들을 격퇴하는 모습과 여기에 앞장서는 것으로 그려졌다면 아마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특수부대와 제리 레인이 함께 등장할 때를 보면 제리의 역할은 한정적으로 그려지고 있고, 이후 혼자 좀비들과 상대하게 되었을 때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전개 방식이라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 것과는 분명 다르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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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런 방식의 엔딩을 좋아하기도 한데 (많은 분들이 엔딩 때문에 싫어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비전은 정확히 거기까지가 아니었나 싶다. 즉 과한 욕심을 부려서 그 이후의 해결에 관한 이야기를 그릴 수도 있었겠으나, 영화는 딱 제리 레인 가족의 이야기 해결에서 멈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전 지구적 재앙의 시작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제리의 가족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가 더 큰 진정성을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주연을 맡은 브래드 피트의 역할이 상당히 컸다. 즉, 대 재앙과 맞서는 더 큰 이야기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단 한 가족의 작은 이야기를 더 와 닿게 묘사해야 하는 기능을,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의 진정성과 연기력으로 커버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드 워 Z'는 브래드 피트의 필모 가운데 특별히 돋보이는 영화는 아니지만, 반대로 브래드 피트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작품이 가능했을까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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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퀀텀 오브 솔러스 (Quantum Of Solace, 2008)
카지노 로얄의 속편으로'만' 보자


오랜만에 개봉일에 영화를 보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만큼 007의 22번째 시리즈인 <퀀텀 오브 솔러스>는 초기대작은
아니더라도 나름 전통의 시리즈로서, 그리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를 워낙에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으로서 기대작이었으며,
감독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음에도 개봉일날 다른 영화들을 재쳐두고(사실 뚜렷한 경쟁작이 없기도 합니다만;;)극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널리 알려진 것 처럼 전편인 <카지노 로얄>의 이야기에서 불과 1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007시리즈가 각각 다 개별적으로 에피소드를 풀어냈던 것을 보자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더군다나 감독도 교체되었는데 말이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목을
<007 퀀텀 오브 솔러스>라고 할 것이 아니라, <007 카지노 로얄 - 퀀텀 오브 솔러스>라고 부제로 달던가 아니면 제목의 비중상
카지노 로얄 보다는 퀀텀 오브 솔러스가 더 큰 범주라고 할 수 있을테니, 마치 매트릭스 3부작의 제목들처럼
<007 퀀텀 오브 솔러스 - ******> 뭐 이런 식으로 했으면 더 이해가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지금으로선 확실하지
않지만 여기에 이어지는 속편 성향에 007이 제작될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전편인 <카지노 로얄>을 최근에 보았거나 아니면 극장에서 인상 깊게 보고 DVD나 블루레이를 통해 재차 감상한 이들에게는
조금 덜했겠지만, 전작을 보지 않았거나 어렴풋한 기억만 있는 대부분의 관객들에게는, 사실상 전편의 이야기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인물들과 이야기가 가득해, 영화를 100% 즐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영화 속에서 계속 '베스퍼'가
등장하는데 전편을 안본 사람이라면 이게 누구인지 제목에 '퀀텀'보다도 더 궁금할 것이고, 중간 중간 익숙한 척하며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히스토리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몰입도도 덜하지 않았을까 싶더라구요. 아예 제목에서부터 속편임을 강조하고
들어갔다면 관객들이 스스로 복습을 한다던가 아니면 준비를 한다거나 했을텐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 일단 일반 관객들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저는 <카지노 로얄>을 인상깊게 보고 블루레이의 놀라운 화질로 다시 한번
감상한 경우였기 때문에 괜찮긴 했지만 말이죠.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007 이야기가 3부작 형식으로 다음 작품까지 이어진다면,
그리고 마지막 작품에 해당할 다음 007 영화가 <본 얼티메이텀>처럼 대박을 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이럴 경우엔 어느 정도 전편에 해당하는 실망스런 한 두편의 시리즈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그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론
나쁘지 않았어', '그래, 중간에 약간 쉬어가는 분위기였군'하며 나름 세뇌되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일단은 지금 현재로서의 평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말이 많은 오프닝 시퀀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전작인 <카지노 로얄>의 오프닝 시퀀스는
새로운 시대의 본드를 설명하는데 매우 탁월하고 임팩트 넘쳤던 오프닝이었습니다. 깔끔한 비주얼과 동시에(블루레이의
화질은 그야말로 작살이죠), 크리스 코넬(잘 아시다시피 '사운드 가든'의 보컬이었고, 해체뒤에는 'R.A.T.M'의 멤버들과
'오디오슬레이브'를 결성하기도 했으며, 솔로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였죠)의 인상 깊은 보컬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오프닝에서 상당히 깊은 인상을 주고 시작한 경우가 바로 <카지노 로얄>이었습니다.
<퀀텀 오브 솔러스>의 경우는 시작 전 부터 말들이 많았습니다. 일단 '화이트 스트라입스(White Stripes)'의 잭 화이트가
곡을 맡았으며, 그와 알리시아 키스가 듀엣으로 노래를 했는데 전체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라는 점 때문이었죠.
개인적으로는 잭 화이트가 만든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곡을 좋아하기도 하고, 알리시아 키스야 워낙에 좋아하는 뮤지션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건조한 사막을 배경으로 찐득하고 이질적인 사운드의 음악과 보컬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가 봤을 때도 뭐랄까 '이색적'이긴 하지만 '대중적'이지는 않다고 할까요.
제가 감독이거나 잭 화이트라면 '이거 괜찮은데, 하지만 사람들한테는, 특히나 007 보러온 사람들 한테는 안먹히겠다'하면서
이대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 같더군요. 특히나 전작의 크리스 코넬의 임팩트가 아직도 귀에 선하기 때문에 더욱 손해보는
면도 있었던 것 같구요.

개인적으로는 두 뮤지션 모두 좋아하는 이들인데, 이전에 <미션 임파서블 3>의 메인테마송을 맡았다가 자신의 경력에
오점 아닌 오점을 남긴 칸예 웨스트 처럼, 이번 오프닝 테마곡이 이 둘에게 앞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듯 합니다.




<퀀텀 오브 솔러스>가 가장 우려되었던 점은 오프닝도, 본드 걸도 아닌 감독인 마크  포스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전작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그는 <연을 쫓는 아이> <네버랜드를 찾아서> <몬스터 볼>등 드라마에 장점을 보인
감독이지 액션 영화는 단 한번도 찍어본 적이 없는 감독이었거든요(전 저 중에서 <네버랜드를 찾아서>가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감독이 다른 영화도 아니고 007의 감독이라. 더군다나 전편에서 다른 본드들과는 달리 '제이슨 본'급으로
액션이 상향 조정된 본드의 감독이라니. 걱정이 아니 될 수 없었죠.
결과를 놓고 보자면 확실히 아쉬운 면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핸디캡을 너무 의식했는지 액션을(말그대로 시퀀스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이 크게 한숨 돌리게 되는)여러차례 감행하고는 있는데, 일단 편집이 너무 급한 감이 있어서 정신을
못차리게 되는 것은 맞지만, 액션의 화려함과 숨막힐 듯한 긴장 구조 때문이 아니라 정신없는 편집 때문에 그리 된다는 것이죠.
예고편에서 본드와 적이 함께 유리창으로 떨어지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쫓아 떨어지는 장면이라던가, 몇몇 장면에서 카메라가
거의 인물의 시선과 같은 입장에서 이동하는 멋진 샷들이 있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평범함을 넘어서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퀀텀 오브 솔러스>역시 전작의 본드처럼 다니엘 크레이그는 본 스타일의 액션을 보여주는데, 크게 나아지거나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오히려 전작보다 이를 더 강조하려는 듯 창문이나 벽 등을 더 많이 부수고 떨어지고 하는 듯한
느낌이었죠. 이런 액션들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뭐랄까 의미없는 장면들이라고 할까요. 스토리에 완전히 녹아들어 있다고
하기 보다는 그저 '나 마크 포스터도 이 정도 액션이 가능하다구!'하고 말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애스턴 마틴의 자동차 액션씬과 비행기 액션씬도 등장하는데, 비행기 액션씬은 나름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주인공이 탄 비행기라 그런지 어지간히 맞았는데도 폭발하거나 추락하지 않더군요 @@)




확실히 본드는 냉전의 산물이자 총아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냉전이 끝나면서 007은 혼란을 겪는 모습이
역력하거든요. 이렇다할 뚜렷한 적이 없다보니 이번엔 돈으로 무장한 사업가가 그 반대편에 서게 되는데 아무래도 007 무비
에서는 임팩트가 떨어질 수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선과 악의 경계가 미묘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새로울 것도 없고 본드에게는 그리 잘 어울리지도 않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서 그런지 몰라도 악역의 임팩트가 그리 강하질 못합니다. 정말로 악하다기 보다는
그저 '사장'이상의 포스를 주지는 못하거든요. 악당 '그린' 역할을 맡은 매티유 아멜릭은 <잠수종과 나비>를 통해
깊은 인상을 받았던 배우이며,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던 <뮌헨>에서도 괜찮은 캐릭터를 연기했었는데,
확실히 이런 두목 역할과 그는 잘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카지노 로얄>처럼 선액션, 후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무리가 어정쩡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같은 MI6 요원들 3~4명도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던 본드가 아무리 미리 몇 대
맞았기로서니 고작 '회사 사장'과 막판 듀얼을 펼쳐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마지막 호텔에서의
액션들도 전체적으로 너무 급작스럽고 임팩트가 부족하게 느껴졌구요. 그렇다고 그 이후에 짧은 드라마에도 전작에 비해
공감을 얻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배우를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그가 연기하는 본드도 매우 좋아하는 편입니다.
본드는 본래 느글느글하고 여유롭고 바람둥이다 라는 것이 기본적이긴 하지만, 뭐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의
본드는 그렇게 되기 전 본드이니 이런 점에서는 자유로운 것 같구요. 역대 어느 본드들과 비교하여도 쉽게 뒤지지 않는 그의
수트 입은 모습은 남자인 제가 봐도 움찔하게 되며, 최초의 금발 본드이지만 흑발 본드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이미 그는 제임스 본드에 많이 적응된 모습으로 느껴집니다. 역대 본드들 가운데 가장 스턴트 액션이 많고 과격해지다보니
수트는 항상 더러워지고 얼굴은 더 더러워지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모델 워킹으로 사막을 걷는 것이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에서 다음 007 영화에 그가 더 출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들은 실로 아쉽게 느껴지는군요.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것은 없지만 1~2편 더 정도는 그가 본드로 출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본드하면 본드 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카밀'역할로 출연한 올가 쿠리렌코는 기존 본드걸과는 또 다른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이렇다할 노출이나 배드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액션에 매우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것도 아닌데(어느 정도
가담하기는 하죠;), 그 갈색 피부와 검은 머리는 마치 일종의 코스츔처럼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코스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초반 부두가에서 그녀가 입고 나온 의상과 헤어를 보니 마치 애니메이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 주인공인
'나디아'가 절로 떠오르더라구요.


(더 나디아 스럽게 나온 풀샷 사진을 찾아보려 했는데 도무지 없군요;;;)

여튼 얼핏 들으면 어디 동유럽에 테니스 스타 이름 같은 올가 쿠리렌코의 다음 영화도 기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이러저러한 이유들을 들어 조금은 아쉬웠던 22번째 007 영화였습니다.
약한 악당, 모호한 구조, 1편의 연장, 심심한 액션 등 전체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으로서 과연 다음 007 영화의 행보는 어찌될지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감독은 누가 맡게 될지.
다니엘 크레이그는 계속 본드로 남게 될지. 이야기는 3부작의 마지막 형식을 띄게 될지 등등 말이죠.



1. 여러 전작 007 영화들에 대한 오마쥬가 등장합니다.

2. 오페라 '토스카'가 등장하는 장면 또한 일종의 오마쥬였는데, 이 장면은 나름 멋지더군요

3. 악당이 손에 넣으려는 것이 '석유'가 아닌 '그것'이었다는 점이, 21세기 답게 느껴지면서 씁쓸해 지더군요.

4. 본드가 한 번 휙 눈치보고 자동차를 훔쳐타는 장면을 보니 '저거 너무 쿨한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며 왠지 우습게
   보이더군요 ㅋ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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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The Kite Runner, 2007)

이 영화의 원작은 2003년 발간한 동명 소설 <연을 쫓는 아이>인데 이 소설은 2005년 전미 베스트셀러 3위를
기록하고, 2004년 미국도서관협회의 '청소년이 읽을 만한 성인도서'로 선정될 만큼 미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셀러이다. 영화는 이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겨왔는데, 대부분의 대사가 자막으로 처리될 만큼
영어가 아닌 그들의 언어가 사용되었으며, 아프칸과 그 사람들의 이야기와 과거를 훌륭한 문체로 풀어낸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원작을 쓴 할레드 호세이니는 영화 속 주인공 아미르 처럼,
아프칸에서 태어나 소련 침공시 미국으로 망명한 '아프칸 출신 미국인'이다.

사실 이 영화는 얼핏 깊게 생각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면 매우 감동적인 드라마로 다가온다.
베스트셀러 소설답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감동을 자아내는 재주가 탁월하며, 주인공 아미르의 감정변화에
보는이가 흠뻑 빠지기 쉽도록 영화도 좋은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중에도 약간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가 영화 속에서 아미르가 아이를 찾기 위해 다시 카불을 찾았을 때, 예전 핫산에게
피해를 주었던 친구가 '너는 왜 돌아왔느냐, 소련이 침공하고 공산주의와 싸울 때 너는 어디있었느냐,
우리는 스스로 민족을 지켰다'라고 얘기할 때 비로서 이 영화에 대한 감정 정리가 제대로 되었다.
얼핏 보면 아프칸의 어려운 정치적 상황 속에서 피어난 인간애를 통해 탈레반의 잔혹함과 동시에,
모든 아랍인을 적으로 생각해선 안된다는 메시지만을 주는 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건 어디까지나
'아프칸'인이 아니라 이제는 '미국인'이 되어버린 사람의 시각에서 쓰여진 작품으로서, 그들의 이야기인양
교묘하게 위장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 아미르와 핫산의 관계는 충분히 훗날의 이야기에 감동을 전해줄 만큼 소중했던 것은 맞다.
이 둘은 주종 관계였지만, 분명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하지만 자신을 지켜주던 핫산이 당하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던 아미르는 죄책감으로 스스로 핫산을 더 멀리하게 되고, 오히려 자신을 떠나도록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어른이 된 아미르는 우연한 기회에 핫산의 소식을 듣고 그가 이미 죽은 것과 아이가 혼자 고아원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여기서 아미르가 핫산에게 진정으로 미안한 마음을 그동안 가지고 속죄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 전후사정 생각하지 않고 카불로 떠났어야 했다. 하지만 영화 속 아미르의
모습은 다르다. 처음에는 분명히 '제가 굳이 가야됩니까. 돈이라면 얼마든지 주겠다며, 사람을 보내서 아이를
데려오라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핫산과 형제고 결국 이 아이가 자신의 조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군다나 아미르 부부는 불임으로 아이가 없는 불완전 가정이다), 그 때야 직접 카불로 가겠다고 한다.
이것은 결국 속죄의 의미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속죄라기 보다는 이기적인 이유로 아이를 되찾으려 하는 것
밖에는 되질 않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감동하는 이유는 바로 '핫산'의 충직함 때문일 텐데,
어린시절도 그렇고 어른이 되어서도 작은 거짓말만해도 살 수 있었던 경우마다 충직하게도 주인에게
피해가 갈까봐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핫산은 결국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관객들은 핫산에게
연민을 느끼면서 아미르의 속죄에 더욱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도 감정적으로는 상당히 훌륭한
장치일지 모르지만, 본질적으로는 주인과 하인이라는 관계를 더욱 심하게 인식시키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결국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친구'였어 라기 보다는 '충직한 하인'이었어가 되면서, 계급 평등 혹은 계급이라는
것 자체의 무의미로 생각이 발전하지는 않고, 반대로 '저런 충직한 하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탈레반은 나쁜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테러를 저지르는 행위가 절대 정당화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입장에서보면 미국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근데 이 영화는 2000년까지의
이야기만 담고 있다. 즉 9.11이전의 상황만 담고 있기 때문에 아프칸의 탈레반은 무조건 악당이고, 미국은
이를 피해 온 아프칸 사람들에게 낙원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지 않는가. 물론 이 작품이 2003년에
출판되었다고 해서 2003년에 쓰여진것은 아니겠지만, 이 작품은 분명 9.11이후 미국내에 아프칸계 이민자들에
대한 입장이 담겨있는 영화이다. 당시 전시 상황에서 미국으로 망명해 지금까지 미국사회에서 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은, 영화에서 보다시피 아프칸에서 살 때에도 테러범과는 거리가 먼 지식인에, 엘리트고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옳은 사람들이었으며, 나중에 아미르가 아이를 찾으러 카불로 가서 겪는 일들을 보여주면서,
탈레반의 극악함은 강조하고, 결국 나는 아프칸 사람이었지만 탈레반과는 전혀 다르다라는 것을
같은 땅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전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테러를 저지르는 탈레반들과 일반 아프칸 사람들이 동일시
될 수는 없으며, 9.11이후 미국내에서는 모든 아랍인들을 테러범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얘기하는 방법이 좋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차라리 대놓고 이야기 했으면 좋았을 텐데,
교묘하게 감정으로 녹아들도록 자신들의 처지와 입장을 빙 둘러 설명한 영화가 결과적으로는 생각해봤을 때
뒷 맛이 씁쓸했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조카로 밝혀진 뒤에 아이를 찾으러 고아원에가서 그곳을 책임지는
사람이 아미르에게 '다른 아이들은 어찌할거냐, 그 아이만 빼가면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되나'라는 말에
더 무게가 실린다. 물론 아미르가 슈퍼 히어로도 아닌터라 민족 해방을 위해 탈레반과 싸울 수는 없겠지만,
결국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와 편안하게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연을 날리는 장면은, 이런 면에서
상징적이라고 해야겠다. 결국 영화는 이데올로기를 제외하고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나누었던 우정을
감명 깊게 그리는 것으로 포장되지만, 사실은 아프칸에서 망명한 '미국인'의 개인적인 성공담이었을
뿐인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분노까지는 느끼지 않았지만, 뭔가 방법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미국인들은 이 영화를 보며 감동과 아프칸이라는 미지에 세계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아프칸에서 지금도 살고 있는 그들이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마도 미국인들이
느끼는 것과는 분명 다를 것이라 생각된다.


* 추가로 영화를 본 내 생각과 너무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신 씨네21 기사가 있어 아래 링크로 대신한다.
   황진미 기자님은 나보다도 훨씬 더 분노하신 듯 싶다 ^^;
http://movie.naver.com/movie/mzine/read.nhn?office_id=140&article_id=0000010532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Dreamworks Picture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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