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2013)

기회의 땅의 그림자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또 한 번 호흡을 맞춘 신작 '월가의 늑대'를 보았다. 이미 여러 번 좋은 작품을 만들었던 콤비라 세 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임에도 다른 보고 싶은 개봉작들을 제쳐 두고 가장 먼저 선택하게 되었는데, 영화는 역시 스콜세지가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미국의 역사에 관한 또 다른 버전의 '좋은 친구들'이었고, 그의 페르소나인 디카프리오 역시 한껏 과장되고 힘이 들어간 캐릭터로 강렬한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었다.




ⓒ Red Granite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는 1990년대 월 스트리트의 주식 중계인으로 큰 돈을 벌었던 조던 벨포트라는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할 만한 교훈 적인 삶을 살았거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연을 갖고 있는 경우인데 이 작품은 그 두 가지에 다 해당하지 않는 작품이다. 즉, 이야기는 조던 벨포트의 흥망성쇠를 따라가지만 스콜세지가 영화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조던 벨포트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 라기 보다는 미국이라는 한 국가이자 사회의 역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월가의 늑대'는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다룬 '에비에이터 (The Aviator, 2004)'보다는 '좋은 친구들 (Goodfellas, 1990)'이나 '갱스 오브 뉴욕 (Gangs of New York, 2002)'에 더 가깝다.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회의 나라 미국에 대한 이면을 그렸었다면, 미국의 가장 상징적인 곳 중 하나 인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성공과 실패를 겪게 되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스콜세지는 또 한 번 이 기회의 땅이 어떤 꿈과 좌절을 주는지, 그리고 그 기회라는 것 이면에 얼마나 많은 추악한 것들이 숨겨져 있는 지를 한참이나 늘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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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최근 본 어떤 작품들 보다 도 노출이나 선정성의 빈도가 잦은 작품이었다. 강도로 따지면 제일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 빈도 만을 놓고 보면 3시간의 러닝 타임 가운데 거의 2시간은 노출과 욕설, 마약과 섹스로 점철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과장과 답답함, 불편함이 섞여 있는 영화였다. 마초 적이어서 불편 하다기 보다는 이 영화가 이를 다루는 방식이 농담이나 친근함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한 편으론 조롱이라고 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조던 벨포트의 개인 사에 집중하기 보단 그가 본격적으로 월 가에 뛰어 들면서 부터의 이야기를 다룬 것도, 영화가 전반적으로 지니고 있던 과장과 불편함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영화의 마지막 세미나 장면에서 벨포트의 얼굴이 아닌 그의 강의를 초롱 초롱 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로 끝 맺음을 지은 것은, 겉으로 보기엔 누구 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기회의 나라 미국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고자 하는 듯 했다. 이렇게 3시간 내내 이야기했음에도 관객 중 적지 않은 수는 벨포트가 극 중에서 누렸던 그 부를 한 번 쯤은 누려보고 싶거나, 벨포트와는 달리 폭주하지 않고 적당히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런 관객들을 영화가 바라보는 시점 같아 씁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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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확실히 과장되어 있어요. 그의 연기가 과장되었다기 보다는 이 캐릭터 자체가 과장되었다고 봐야겠죠. 그의 얼굴과 연기는 점점 더 잭 니콜슨을 닮아가네요. 다음 작품은 좀 더 힘이 빠진 '캐치 미 이프 유 캔' 같은 작품이어도 좋을 것 같아요.


2. 매튜 매커너히는 출연 사실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반가웠어요. '아티스트'의 장 뒤자르댕도 그랬구요~


3.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극 중 벨포트를 소개해주는 사회자가 실제 조던 벨포트 인 것 같더군요.


4. 국내 용 영화 제목은 그냥 '월가의 늑대'로 했어도 좋았을 텐데;;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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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한국 영화 감독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故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인 '하녀 (1960)'가 드디어 블루레이로 발매된다. 그것도 크라이테리언 시리즈로! 이미 국내에 출시된 DVD를 통해 오랜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복원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바로 그 때 이 작품의 복원 작업을 진행했던 세계영화제단 (World Cinema Foundation, 이하 WCF)의 수장인 마틴 스콜세지로 인해, DVD가 아닌 블루레이로도 '하녀'를 만나볼 수 있게 된 것.



참고 지난 글 - 하녀 DVD리뷰 _ 기이한 그 남자의 대표작 '하녀'

http://www.realfolkblues.co.kr/1049




이번 '하녀' 블루레이는 '마틴 스콜세지의 월드 시네마 프로젝트 (Martin Scorsese’s World Cinema Project)'라는 콜렉션 형태로 발매 될 예정인데, '하녀' 외에도 다섯 작품이 더 수록되어 총 6개의 작품이 함께 수록되었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보는 바와 같이 단독 발매가 아니라 콜렉션 형태로 발매된다는 점인데, 마틴 스콜세지의 안목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하녀'에는 특별히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가 스페셜 피쳐로 추가될 예정이며, 부클릿에는 김경현 교수의 에세이도 수록될 예정이라고 한다. 블루레이 콜렉션에 수록된 작품들의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타이틀은 12월 발매 예정인데, 김기영 감독의 팬으로서 이건 구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외에도 크라이테리언의 9월부터 12월 사이의 라인업은 정말 영화 팬들이라면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는 엄청난 작품들이 준비하고 있는데, 잉마르 베리만의 '가을 소나타 (Autumn Sonata, 1978)'가 9월 17일 발매예정이며,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함께한 3작품 콜렉션도 9월 24일 발매예정이다. 10월에는 존 카사베츠 감독의 콜렉션도 발매 예정이며,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 (City Lights, 1931)'이 11월 12일,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 (Tokyo Story, 1953)'도 11월 19일 발매 예정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Living in the Material World, 2011)

물질 세상 속 영적인 존재가 되다



비틀즈의 멤버이자 기타리스트로서, 솔로 뮤지션이자 에릭 크랩튼과의 유명한 삼각관계의 주인공으로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비 샹카의 영향으로 인도 음악과 시타르 연주자로서. 이 정도가 그 동안 내가 알고 있던 조지 해리슨의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항상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욕구가 존재했었다. 단적으로 얘기해서 비틀즈 보다는 존 레논을 좋아하는 편인데, 조지 해리슨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갈 수록 마치 비틀즈 - 존 레논이 그러했던 것처럼 더 큰 궁금증과 더 큰 만족을 얻게 되던 차에 바로 이 영화 '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Living in the Material World)'을 만나게 되었다. 거기다가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사람이 다름 아닌 마틴 스콜세지라는 점에서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스콜세지라면 누군가를 담아내는 표현에 있어서 객관적이면서도 일반적으로는 놓치기 쉽지만 그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반드시 이야기해야할 '정수'를포착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 믿음은 이번에도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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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분이라는 러닝 타임 답게 이 작품은 조지 해리슨이라는 인물을 시작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까지 차근차근 담아낸다. 비틀즈 결성 전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와 밴드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비틀즈라는 전설적인 밴드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를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고, 이후 비틀즈 활동 시절의 몇몇 일화들과 이후 그들의 관계가 소원해 지고 해체에 이르는 과정 역시 기존에 알고 있는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좀 더 조지 해리슨 중심으로 만나볼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더 흥미로웠던 부분은 비틀즈 활동 이후 솔로 뮤지션이자 영적인 존재가 되고자 했던 조지 해리슨에 대한 이야기였다. 라비 샹카를 알게 된 이후 그에게 깊은 영감을 받은 조지 해리슨은 직접 시타르 연주를 사사 받은 것은 물론, 그의 음악을 더 큰 세계 음악 시장에 알리는 데에 적극적이었고 또한 세계 최초의 대규모 자선 콘서트였던 '더 콘서트 포 방글라데시 (1971년 8월 1일)'를 개최하며 단순한 뮤지션이 아닌 더 가치 있는 일들을 '행동'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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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에 담긴 그의 삶을 다시 한 번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영화 속에 담긴 그의 삶을 보고 느낀 바가 더 중요할 텐데, 개인적으로는 마치 이태석 신부님의 다큐 '울지마 톤즈'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마음의 울림을 얻게 되었다. 아마도 마틴 스콜세지가 반해 그의 삶을 더 많은 이들에게 영화로 소개해야 겠다고 마음 먹은 것 역시 같은 울림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조지 해리슨의 삶 그러니까 그가 살면서 마음 먹었었고 행동으로 그리고 끝까지 삶 자체로 증명한 것들, 그리고 그와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의 진심어린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삶을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글로만 보자면, 아니 더 자세한 설명으로 들어도 '영적인 존재'라는 것은 직관적이라기 보다는 모호함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텐데, 놀랍지만 마틴 스콜세지는 이 작품을 통해 그리고 본질적으로 조지 해리슨은 자신의 삶을 통해 '영적인 존재', '영적인 삶'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지언정 적어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만들었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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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영화의 리뷰 글을 쓸 때는 내가 느낀 바에 대해서 늘어놓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작품의 경우는 글로 표현할 길 없는 내 감상보다는 더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보았으면 하는 소개와 바램의 글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혹시 '조지 해리슨' 이라는 비틀즈 멤버로서의 인물과 208분이라는 쉽게 다가서기 힘든 시간 때문에 이 작품을 멀리한 이들이 있다면, 결코 이런 이유 때문에 놓쳐버릴 작품이 아니라는 점을 전하고 싶다. 이 작품은 비틀즈 멤버로서의 조지 해리슨도 물론 다루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 조지 해리슨의 삶에 대해 깊게 조명하고 있으며, 208분이라는 러닝 타임 역시 부담으로 느껴지기 보다 그의 삶을 담아내기에는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작품이었다.


다시 글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지금까지는 비틀즈 보다 존 레논을 좋아했었는데 앞으로는 조지 해리슨을 더 동경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도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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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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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 (Hugo, 2011)

마법같은 영화는 지금도 계속된다



사실 나도 오해했었다. 본래 영화에 대한 정보를 감독, 배우와 포스터 외에는 거의 접하지 않고 감상해서인지는 몰라도,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휴고 (Hugo, 2011)'를 포스터로 처음 접했을 때의 예상은 3D까지 더해졌다길래 마치 '폴라 익스프레스 3D'와도 같은 스콜세지의 3D 활용기 혹은 판타지 영화가 아닐까 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다른 영화였다. 판타지 영화도 아닐 뿐더러 (이 영화에서 스콜세지가 '영화'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단순한 추억이나 회환이 아니기 때문에 판타지로 보기는 어렵다) 가족 영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관객들이 기대하는 가족 영화도 아니었고 (이 부분은 마치 이들이 기대하는 가족 영화처럼 홍보한 측의 탓이 크다), 액션, 어드벤처로 롤러 코스터를 타듯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오락 영화도 아니었다. 결국 '휴고'는 마틴 스콜세지라는 영화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팬이자 감독인 한 사람이, 영화 발명에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요즘 관객들이 잊고 있는 '영화'라는 마법과 행복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영화에 대한, 영화 사랑 가득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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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의도를 좀 더 재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개인적으로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에 대한 정보를 미리 더 알고 있었더라면 바로 알아차리고 나서, 어쩌면 이 영화를 멜리에스에 대한 헌정 영화 혹은 영화사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받아들였을 지도 모르겠는데, 영화사에 대한 무지가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멜리에스(=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알아차리지 못해서인지, 사실 초중반 극중 벤 킹슬리가 연기한 멜리에스의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이야기의 전개가 느리다기보다는 거의 전개되는 것이 없다고 느낄 정도의 속도와 불필요하다고까지 느껴진 에피소드들까지 있다보니, 속으로는 '아, 스콜세지 영화에 실망을 하게도 되는구나..' 싶었을 정도였는데, 중반 이후 좀 더 이 작품이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면서 부터 이런 실망감과 지루함은 눈녹듯이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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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탓에 멜리에스 이야기 자체에 주목했다기 보다는 스콜세지가 '휴고'를 통해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가끔 스스로 영화광인 감독 들이 만든 작품을 보면 관객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기 보다는, 일종의 '꿈의 실현'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와 존경의 뜻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스콜세지의 '휴고'에는 앞서 언급한 '꿈의 실현'의 것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관객에게 하고자하는 메시지가 상당히 직접적으로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DP의 'nostalghia'님이 감상기에서 '스콜세지 님이라면 타란티노 라든지 안노 히데아키 라든지, 뭐 그런 애송이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영화 덕후 중에서도 상덕후이신데' 라는 표현을 보고 절로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을 정도로, 정말 스콜세지는 영화로 따지자면 덕후 중에 상덕후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스콜세지가 자신의 영화 사랑을 직접적으로 투영한 작품이 바로 '휴고'라고 보면 더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상상을 해보라. 영화 속 멜리에스를 롤모델로 모든 것을 연구해왔던 그 교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스콜세지가, 멜리에스의 영화들을 자신의 영화 속에 담을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었을까 말이다. 그래서 스콜세지는 이토록 소중한 기회를 자신에게만 할애하지 않고(물론 자기 만족에 충실하게만 만들었더라도 좋았을테지만) 멜리에스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영화라는 마법에 대해 뻔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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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에서는 영화라는 것의 역사를 멜리에스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면서 처음 관객들이 영화 속 기차가 기적을 울리고 달리는 장면을 보고서는 놀라서 모두 몸을 피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보는 순간, 나는 '휴고'를 3D로 보러 온 앞 좌석의 아이가 영화 시작 전 3D 예고편을 보고서는 손을 뻗어 화면 속 물체를 잡으려고 했던 장면이 바로 겹쳐졌다. 사실 스콜세지가 3D로 신작을 낸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기대도 되었지만 살짝 의아한 부분이 없지 않았었는데, 그 의문이 한 번에 말끔히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 영화의 3D 효과가 아주 별로인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일반적인 3D 영화들에 비해서는 그 효과를 좀 더 체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적은 편이라 3D만의 쾌감은 많지 않았었는데, 영화를 처음 본 예전 관객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고 나니, 왜 스콜세지가 이 작품에 3D를 선택했는지를 뒤늦게 알 수 있었다.


마틴 스콜세지는 3D 영화를 보러 온 지금의 관객들에게는 많이 잊혀진, CG나 3D 같은 최첨단 기술력이 더해지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던 '영화'라는 마법 자체에 대한 놀라움과 재미, 즐거움, 행복함을 지금의 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3D 입체영상으로 멜리에스 당시의 영화 제작 방법으로 만들어진 영상들을 감상할 때 느껴지는 쾌감은, 입체감 때문이 아니라 그 장면 장면이 갖고 있는 본연의 마법같은 매력 때문이라는 자신이 있었던 스콜세지는, 그리고 바로 이 원초적 매력을 다시금 지금의 관객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스콜세지는, 일부러 3D를 선택해 이 메시지들을 전달하지 않았나 싶다. 그 결과 '아티스트'를 볼 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처음 본 당시의 관객들 만큼은 아니었겠지만, 영화라는 마법같은 순간을 온전히 느껴볼 수 있었다. 그래서 행복했고, 스콜세지에게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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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조르주 멜리에스가 자신이 외면했던 아픈 과거를 인정하고 어린 두 주인공들에게 자신이 영화를 처음 접하고 만들던 이야기를 들려주던 장면에서, 멜리에스를 연기한 벤 킹슬리는 정확히 카메라를, 즉 관객을 응시한다. 스콜세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제 영화 사랑이 이 정도입니다. 어때요, 영화 아주 매력적이죠?'라기 보다는 자신 스스로가 영화에 빠졌던 것들을 관객들에게 상세하게 풀어놓으면서 '어떻게 이런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요?' '영화의 마법에 너무 익숙해져 행복함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요?'라고 묻는 듯 했다. 농담이 아니라 벤 킹슬리가 스크린 속에서 나를 똑바로 보고 이야기하는데 마치 저렇게 내게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실 '휴고'는 좀 더 파고들려고하면 이것저럿 해볼만한 구석이 많은 작품인데, 저런 질문을 영화에서 받고 나니 다른 것들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흐려져 버렸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는 예술.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들면서 행복해하는 마틴 스콜세지의 얼굴을 스크린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얻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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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본 '아티스트'와 더불어 연거푸어 영화 사랑 충만한 작품을 보았더니 제 영화 사랑도 더 충만해졌어요 ㅎ

2. 진짜 마틴 스콜세지 옹은 덕후 중에 상덕후. 닮고 싶은 분이십니다.

3. 극 중에 '인셉션'이 나옵니다 ㅎ 그러고보니 '인셉션'도 영화에 대한 텍스트로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죠.

4. 스콜세지는 자신의 작품에 가끔 까메오로 나오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특히 나오고 싶었을 거에요. 아니 처음 영화를 맡기로 했을 때 이것부터 정했을지도 모르겠어요 ㅋ

5. 클로이 모레츠는 아직까지 잘 자라주고 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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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알고나서 다시보기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데니스 르헤인의 원작소설을 스콜세지는 깊이 있는 질감과 시각적인 효과,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에게 공감하도록 만드는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원작 못지 않은 훌륭한 영화화를 이루었다. '셔터 아일랜드' 개봉 당시 흥미로웠던 점은 이 이야기의 반전을 두고 양측이 제법 대등하게 의견을 겨루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완벽하게 정해지고 짜여진 한 쪽의 이야기, 그러니까 너무 명확한 일방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지만, 그와 반대의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설을 들어보아도 '제법 이야기가 되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당시 영화 평에도 썼듯이, 당시에 보았던 영화들 가운데 극장을 나오며 가장 뜨거웠던 작품 중 하나였으며, 누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영화를 본 사람에게 자신이 궁금한 점을 묻게 되고, 또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설득하고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 '인셉션'은 모두가 정답이 되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이야기라면, '셔터 아일랜드'는 정답은 분명 한가지이지만 오답 역시 설득력을 갖을 수 있도록 연기와 연출이 섬세하게 다룬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아, 그리고 이 작품은 '인셉션'과 여러모로 비교할 만한 구석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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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 개봉 당시 글에서는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메시지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었지만, 이번 글에서는 그런 점보다는 다시 보면 더욱 분명해지는 영화의 이야기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을 해보려고 한다. 극장에서도 두 번을 관람하였었는데, 이런 영화의 특성상 두 번 이상 보게 될 경우,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일 수 밖에는 없으며, 그저 스쳐 지나쳤던 장면들이나 인물들의 행동들이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게 된다. 이 글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보기'의 방식으로 끄적여 보았다.


(이 글은 스포일러 투성이인 글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께서는 모쪼록 내용이 전부 들어 있는 이 글을 읽지 마시고, 영화를 감사하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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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아일랜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스릴러 라는 장르적 측면에서 두 가지를 특별히 고려하고 있다. 하나는 영화는 알고 있는 진실을 나중에 관객에게 알렸을 때 모든 것이 수긍가도록 그 과정을 세밀하게 설계해야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런 단서를 여기저기 흩어놓으면서도 관객들이 영화의 이야기와는 반대의 길을 가는 주인공의 심정에 완전히 공감하도록 (그래서 심지어는 영화가 나중에 반전을 알려주어도 쉽게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만드는 것이다. '셔터 아일랜드'는 이런 두 가지를 모두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주인공 앤드류, 아니 테디 다니엘스의 환상을 현실이라고 믿고 이에 대한 자신만의 공식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아예 확실한 결론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이것은 너무나 명확히 극중 앤드류 레디스, 그러니까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캐릭터가 테디가 아니라 앤드류이며, 영화의 마지막 닥터 코리가 이야기해준 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볼 수 있겠다. 본 블루레이에 수록된 부가영상을 보면 이것저것 고민할 것도 없이 '정신병자를 연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라는 식으로 확정지어 얘기하고 있으니 사실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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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셔터 아일랜드'는 극중 디카프리오가 앤드류 레디스라는 것을 알고 한 번 더 보게 되면 또 다른 흥미로운 작품이 된다. 그리고 앤드류 레디스라고 인정할 때만 더 확연히 보이는 디테일이나 연출, 연기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바로 그런 점들, 테디 다니엘스라고 믿었던 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앤드류 레디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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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 셔터 아일랜드에 테디 다니엘스와 그의 동료 척이 (일단 이렇게 지칭해두자) 도착하자 굉장히 삼엄한 경관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현재 위험한 환자가 탈출한 상황이고 이 연방요원들이 그냥 탐탁치 않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여겼었지만 사실은 테디가 아니라 앤드류 레디스이기 때문이다. 앤드류는 폭력적인 성향의 환자이고 경관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할 만큼 위험한 환자였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병원 밖을 활보하는 이 상황이 경관들로서는 몹시 긴장된 상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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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에 설치된 전기선을 보고는 '전에도 본 적이 있어'라고 얘기하는데, 이 대사는 나중에 나치의 수용소에 갔었던 기억 (이 기억조차 거짓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다)에서 그 때봤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았었지만, 사실은 저 말 그대로 바로 그 것을 본 적이 있는 것이다. 그는 앤드류 레디스고, 이곳의 환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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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에서도 이런 이상한 점을(테디의 이야기로 알고 있는 관객들이 이상함을 느끼게 되는)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테디와 척이 애쉬클리프에 입장하기 위해 총기를 반납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총기를 반납하려는데 연방 보안관으로 4년이나 근무했다는 척은 어찌된 일인지 허리춤에 있는 총 조차 제대로 벗어내질 못한다. 이 장면에서는 위 스크린 샷 속 테디의 시선처럼 관객 역시 척 (마크 러팔로)을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이후에도 척을 의심케 하는 몇가지 연막 작전이 등장하기도 한다. 척을 의심하는 것은 맞지만, 테디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척은 바로 닥터 시한이기 때문에 이런 연방 보안관의 행동에는 익숙하지 않을 수 밖에는 없었을 터. 하지만 영화는 아직까지는 좀 더 직접적인 단서는 제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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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더욱 그렇지만, 척은 유난히 테디에게 '괜찮아요?'라고 걱정스런 질문을 자주 던지곤 한다. 이는 물론 그가 척이 아니라 앤드류의 주치의인 닥터 시한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또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시한은 코리와 더불어 이런 방식의 치료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진보적인 의사이기 때문에 아마도 테디의 파트너인 척 역할을 자청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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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연기에 관심없는 배우들을 시한 박사가 열심히 이끌고 있는 한 연극의 장면과도 같다)

이 병원 내에는 앤드류 레디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두가 동원된 거대한 연극을 하는 것에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긍정적인 이라면 역시 코리와 시한 박사를 들 수 있겠고, 부정적인 이들이라면 막스 본 시도우가 연기한 내링 박사를 비롯해 소장과 대부분의 이곳 사람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코리 박사와 주치의인 시한은 이런 치료방법이 통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지만, 내링 박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래봤자 소용없어'라는 식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거추장스러운 연극에 그리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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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보면 유난히 앤드류 혼자서 열심히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렇다)

위와 같은 장면에서는 아예 앤드류가 돌아서자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이 연극 놀음이 그저 재밌기만 한 한 남자 간호사의 웃는 장면마저 확인할 수 있다. 그를 비롯한 이 곳 직원들에게는 자신들이 계속 돌보던 한 환자가 연방 보안관 행세를 하며 자신들을 심문하고, 그의 주치의 역시 보안관 행세를 하는 것이 한편으론 재미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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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들은 대부분 이 상황에 비협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대놓고 테디를 우습게 깔보며 대하기까지 한다. 항상 반대로 자신들이 환자에게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그랬던 환자가 보안관이라며 자신들을 심문하는 것 자체가 우습고 불편한 것이다. 위의 두 간호사의 표정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왼편의 간호사는 못마땅의 강도가 더한 경우라 계속해서 테디에게 까칠하게 대하는 것이고, 오른편의 간호사는 그저 이 상황이 전혀 심각하게 느껴지지(그렇게 연기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않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실제 상황이었다면 지금의 간호사들처럼 이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중요한 환자가 실종되었고, 연방 보안관이라는 자가 자신들을 심문하는 떨리는 상황이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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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을 심문하는 곳에 닥터 코리가 자리잡고 이 상황을 주시하는 것을 처음 봤을 땐, 혹시 어떤 직원이 이 사건에 연루되었는지 캐내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비협조적인 직원들이 혹시라도 실수를 할까봐 혹은 앤드류가 계속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이 틀어질 경우 그 길을 조정해주기 위한 안내자이자 감시자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를 잘보면 앤드류가 직접 방향이나 행동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척이나 주변 사람들이 은근 슬쩍 앤드류의 경로를 정해주는 장면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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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해서 뭐라도 나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위의 장면도 이런 비협조적인 이들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해안가에 실종사 수색을 하러 나왔는데, 실제로 수색하는 인력들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그냥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테디는 뭔가 불편함을 느낀다. 이 경관들은 이 모든 것이 그저 연극일 뿐인 것을 알기 때문에, 즉 아무리 찾아봐도 시체나 환자따위 나올리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 연극에 열심히 참여할 동기조차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저렇게 비협조적인 모습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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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것은 바로 환자들을 테디가 심문하는 장면부터다. 이 심문 장면이 시작하기 전 아까 그 까칠한 반응을 보였던 간호사가 위와 같은 주사를 준비하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심문을 받게 되는 환자들이 발작이나 이상 반응을 보일 때를 대비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 장면 역시 다시보게 되면 이 주사가 환자들이 아니라 또 다른 환자, 가장 위험한 환자인 앤드류 레디스를 위해 준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1로 다른 환자들과 맞닥들였을 때 이상 행동이나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낼 수도 있는 앤드류였기 때문에, 아까 직원들을 심문하던 때와는 다르게 상당히 긴장한 모습으로 환자들과의 심문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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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떡하니 앉아있으니 말하기가 쑥스럽네요;;;")

이 심문 장면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시한 박사에 대한 묘사다. 이 장면 전에도 슬쩍 그런 분위기를 보였던 영화는 이 장면에 와서는 아주 직접적으로 척이 닥터 시한임을 연기와 컷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앤드류가 시한에 대해 묻자 여자 환자는 오른편에 앉은 시한을 흘깃 쳐다보며 이야기한다. 일반인이었다하더라도 바로 앞에 그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인척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정실질환을 겪고 있는 이들 같은 경우는 이런 연기에 아무래도 좀 더 미숙할 수 밖에는 없다. 그래서 잘 생겼다는 얘기를 할 때는 쑥스러움을 그대로 표정에 드러내기도 하고, 위의 스크린 샷처럼 저렇게 바로 앞에 시한을 쳐다보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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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영화는 아주 노골적으로 그 반대편에 앉은 척을 보여준다. 잘생겼다는 이야기를 쑥스럽게 할 때 바로 시한의 표정과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외에도 영화 속에서 시한의 이름이 언급될 때는 거의 모든 장면이 척에게로 이동한다. 즉 영화는 이때부터 척이 닥터 시한이다 라는 암시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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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에게 휴가를 허락해요? 근데 나는 왜 여기서 일하고 있는거임? -_-;;")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재미있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 같은 위급 상황에 닥터 시한에게 휴가를 주고 섬을 나가게 했다는 이야기에 바로 본인인 척이 '주치의에게 휴가를 허락해요?'라며 되묻는 장면은, 이 연극의 작은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연극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라 이런 대화들이 오갈 때의 반응을 보면, 조금씩 머뭇거리거나 쑥스러워하는 장면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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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링 박사의 위와 같은 질문도 이 연극의 측면에서 보면 흥미로운 점이다. '그 바닥 사람들은 술을 즐기지 않나요?'라고 물어보는 와중에는 약간 비꼬는 투가 섞여있는데, 환자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래, 니가 보스턴에서 온 보안관이라며?'라는 식으로 약간 비꼬면서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이 환자가 자신의 환상에 깊이 빠져있는지 일종의 테스트를 겸하고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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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레이첼'을 앤드류가 만나게 되는 이 장면은 구성자체가 너무 연극스러운 장면이기도 하다. 각 인물들의 배치자체도 마치 무대 연극을 보는 듯한 위치를 보여주고 있고, 아래에서 위로 비추는 조명은 이런 연극같은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앤드류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레이첼의 불꽃 연기에 감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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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돌변한 레이첼을 맞닥들이는 앤드류의 표정도 흥미롭다. 이 장면만 본다면 극중 앤드류는 명백한 정신병동의 환자이고 레이첼은 간호사 임이 명확히 드러난다. 저 표정은 갑자기 변한 상대에 대한 놀라움이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불안을 겪는 환자로서 공포를 느끼는 표정이라고 해야 맞겠다. 이 장면은 그래서 테디가 이 곳에 와서 이상한 일들을 겪으며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이었다는 점을 그의 반응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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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척이 테디를 눈치보는 장면은, 둘이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한다고 할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앤드류를 철썩 같이 테디로 믿고 있을 때에는 이런 시선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이런 종류의 영화의 묘미다. 그리고 다시 보는 '셔터 아일랜드'의 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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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금씩 소스를 제공하던 영화는 조지 노이스 (잭키 얼 헤일리)와의 만남 장면을 통해 매우 노골적으로 영화의 본래 이야기를 드러낸다 (여기서 본래 이야기란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메시지가 아니라, 사실관계상 본래 이야기를 말한다). 조지 노이스는 앤드류 레디스와 테디 다니엘스를 모두 잘 알고 이해하는 인물로서, 빨리 아내를 잊으라고 진심으로 부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테디를 만난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그를 테디가 아닌 앤드류 레디스로서 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테디 다니엘스라고 믿는 앤드류는 이 이야기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관객은 점점 더 주인공에 대해 의혹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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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영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주인공의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짧게 한가지만 언급하자면 세 아이를 부둥켜 안고 오열하는 저 장면은, 이 모든 이야기의 단서이자 시작이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앤드류 레디스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우울증을 겪던 아내가 아이들을 모두 익사시킨 이 사건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고, 자신의 손으로 이런 아내를 죽인 것에도 충격을 받아 결국, 자신안에 또 다른 자아를 갖게 되는 정신질한마저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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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인 척을 잃고, 동굴에서는 실제 레이첼이라는 여성과의 만남을 갖은 뒤 앤드류는 소장에게 발견되어 차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소장은, 코리 박사가 주장하는 이 거대한 연극에 결코 협조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소장은 앤드류에게 매우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건낸다. 앤드류를 완전한 환자 취급하며 그의 폭력성이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흥미로운건 앤드류, 아니 현재는 테디 다니엘스인 디카프리오가 소장의 이런 억압에 전혀 꼼짝을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테디는 더 이상 연방보안관이 아니라 이곳의 환자인 앤드류의 모습으로 변모해왔으며, 자신을 완전히 환자 취급하는 소장의 말에도 제대로 한 마디 받아치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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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코리 박사에게 모든 사실을 전해 듣고 자신이 테디 다니엘스가 아니라 앤드류 레디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앤드류는 코리 박사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는 바로 과거에도 이렇게 치료됐던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앤드류의 마지막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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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은 원작인 소설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 대사는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의미심장한 것이었는데,

'괴물로 평생을 살겠나? 선량한 사람으로 죽겠나?'

바로 이 것이다. 시한 박사를 다시 한번 척으로 부르고 이곳을 탈출해야 겠다고 한 뒤 남긴 말이 바로 위와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고는 제 발로 자신을 수술하려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로 걸어간다. 이것은 분명 테디 다니엘스로서의 선택이 아니라 앤드류 레디스로서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과거에도 이런 식으로 여러번 치료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앤드류는, 또 한번 환상에 빠지기 전 오롯한 앤드류 인 지금 선택해야 한다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극복하지 못할 트라우마 때문에 계속 정신이상과 현실을 반복하는 괴물로 평생을 살기 보다는, 그냥 앤드류 레디스로서의 죽음을 택한다. 영화는 이렇게 걸어가는 앤드류의 뒷 모습으로 끝나지 않고, 수술이 행해질 등대를 마지막 행선지로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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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는 반전을 숨기고 있는 영화로서 이야기의 양면성을 영화화로서 잘 표현해 낸 작품이었다. 영화가 이끄는 대로 테디 다니엘스의 이야기로 보는 것도 물론 흥미롭고, 그 반대로 앤드류 레디스의 이야기로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앤드류 레디스라는 것을 알고 테디 다니엘스를 보는 것도 몹시 흥미로운 감상이 아닐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블루레이 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Paramount Pictures 에 있습니다.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2009)
시대의 불안과 트라우마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콤비의 신작 <셔터 아일랜드>는, 스콜세지 - 로버트 드니로 이후 최고의 감독과 페르소나 콤비로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이들의 신작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더군다나 <미스틱 리버>, <곤 베이비 곤>의 원작자 데니스 르헤인이 쓴 유명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었는데, 원작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스크린으로 먼저 만나게 된 <셔터 아일랜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언급한 것처럼 히치콕식 스릴러 연출과 큐브릭을 연상시키는 미장센으로 담아낸,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수작이었다(개인적으로는 걸작이라 불러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요 근래 극장에서 본 작품들 가운데 가장 몰입도 있고, 가장 영화 본연의 미덕에 충실한 작품이었으며, 근래 본 연기 가운데 또 하나의 절정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었던 매우 만족스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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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연방 보안관인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날 처음 만난 자신의 파트너 척(마크 러팔로)과 함께, 셔터 아일랜드에 위치한 '애쉬클리프' 정신병원에 환자 실종사건을 조사하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탈출구라고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는 것 외에는 없는 이 외딴 섬에서 어떻게 환자가 도망치게 혹은 실종되었는지 의문이 많은 가운데, 테디는 이 정신병원 시설과 관계자들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며, 그 안에 자신의 개인적인 조사 역시 진행하게 된다.

영화의 오프닝의 타이틀 텍스트라던지 애쉬클리프를 조명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이라던지, 'The Band'의 기타리스트 출신인 음악감독 로비 로버슨의 음산하고 무거운 음악 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50년대 미국의 보스턴 셔터 아일랜드로 이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미장센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보자면, <셔터 아일랜드>의 의상과 미장센은 너무도 영화적이라 매혹적이다. 당시의 코트와 의상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배우 중 하나인 마크 러팔로의 코스츔은 그 자체로 고증을 넘어선 매혹이 되버리고, 아내가 골라준 촌스러운 넥타이를 코트에 어울리지 않게 매치한 디카프리오의 모습 역시 영화 초반 연대를 알리는 텍스트 없이도 이 작품이 어느 시대를 그리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사실 몰입 잘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나는, 코트에 모자를 눌러 쓴 마크 러팔로를 보는 순간 이미 몰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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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과 미장센이 시대의 공기를 담으려고 애썼다면, 시종일관 긴장감을 전하는 스코어는 장르 영화로서의 장점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시대의 불안과 트라우마라는 영화 뒷 편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든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마크 러팔로의 등장만으로 몰입했던 터라 그 이후에도 심하게 몰입해 영화가 반전을 제공했을 때에도, 그 이후를 이야기했을 때에도 모두 다 함께 할 수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스코세지가 풀어낸 <셔터 아일랜드>의 구성은 혼란스럽고 불부명한 구조를 보여주는 듯 하다.

관객들은 죽었다던 테디의 아내가 등장할 때 꿈이나 환상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그녀가 환상 속에서 보여주는 장면과 대사, 미장센 들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쉽게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테디가 보는 아내의 환상 들은 마치 최근 보았던
찰리 카우프먼의 <시네도키 뉴욕>을 연상시킬 정도로, 어쩌면 이 작품을 더욱 모호하게(하지만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던)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영화의 결말로 되돌아 보았을 때 다시 한번 장면 하나하나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좋은 영화적 장치들이었다(재미있는 건 <시네도키 뉴욕>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미셸 윌리엄스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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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아주 깊게 몰입했던 터라 결말에 보여준 반전과 그 이후에 영화가 택한 설정도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이 영화는 반전에만 목숨건 정통 스릴러는 아니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중간에 혼란스런 설정들도 매우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정통 스릴러의 범주로만 따져보아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캐릭터가 결국 테디 다니엘스 인지 앤드류 레디스 인지를 따져보는 것도 흥미롭고, 맨 마지막에 선택한 삶(혹은 죽음)이 테디로서의 그것인지 앤드류 로서의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스포일러를 표시한 김에 이 영화의 반전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결국 마지막 등대 위에서 들려주는 박사의 이야기처럼 앤드류는 자신의 아이들을 우울증으로 익사시켜 살해한 아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과 나치 수용소의 기억 등이 트라우마가 되어 결국, 테디 다니엘스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냈고 수술이 아닌 진보적인 치료를 추구하던 코리 박사는 이 거대한 연극을 통해 앤드류를 치료하길 시도했으나, 결국 다시 한번 돌아오는 것에 실패한 앤드류에게 포기하고 외적인 수술을 시도할 수 밖에는 없게 된다.

원작에는 없다는 영화 만의 마지막 대사는 이 영화의 반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단초가 되는데, '괴물로 살아가거나 선량한 사람으로 죽거나'라는 대사 뒤에 스스로 수술을 당하는 것을 인지하고 행동하는 앤드류(테디)의 모습은, 이런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앤드류(괴물)로서 살아가느니, 가상의 인물인 테디가 되어 모든 것을 잊은 채 사는 것을 (수술)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결국 앤드류의 환상이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수긍이 가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를 테디 다니엘스의 이야기로 보아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조목조목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결국 이 모든 것이 음모를 파해치려는 연방 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를 막기 위해 병원가 박사가 몰아간 것이라고 보는 설도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운 부분이다. 그 만큼 스콜세지는 각각의 이야기에 논리가 될 만한 설정들을 영화 중간 중간에 직간접적으로 뿌려 놓았다. 이것들은 <셔터 아일랜드>가 재 관람 할 때마다 다른 영화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테디 다니엘스의 이야기로 믿으며 따라가느냐 아니면 앤드류 레디스의 이야기로 따라가느냐에 따라 영화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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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이 진실인가에 대한 논란은 그 자체로 너무도 흥미로운 이야기거리 이긴 하지만, <셔터 아일랜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진실이 무언인가?'에 대한 것은 아니다. 만약 진실에 관해 이야기하려 했다면 이 작품은 혼란스럽게 단서를 풀어놓 되 결말이 알려지고 나서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야 했고, 깊이 파고들면 들 수록 더 확고한 영화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트라우마' 그 자체다. 영화는 반전에 관련된 여러 단초들을 심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시종일관 하고 있다. 테디가 이 일에 자처한 것도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앤드류가 이곳에 있다는 정보 때문이며, 꿈만 꾸면 보이는 환상들(나치 수용소에 쌓여 있는 시체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자신의 아이들을 빨리 구하지 못한 트라우마까지) 역시 모두 테디 내면의 트라우마 들이다. 영화는 한 개인이 트라우마로 인해 어떻게 잠식되어 가고 고통을 겪는지의 과정을 스릴러라는 그럴 듯한 장르에 빗대어 들려준다.

이렇게 개인적인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셔터 아일랜드>의 트라우마는 개인적인 것 외에 당시 미국 사회의 레드 컴플렉스와 트라우마를 담고 있다. 극중 테디가 겪었던 나치 수용소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때 뿐이며, 공산주의자를 색출해 내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던 당시 미국 사회내의 문제는 영화가 담고 있는 불안으로 바꿔 이야기할 수 있다. 50년대 핵과 냉전 시대의 공포와 의심은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대의 트라우마를 개인의 트라우마에 빗대어 직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극중 조지 노이스(잭키 얼 헤일리)와의 대화 중에 '수소 폭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비유는 사실 매우 직접적인 당시 미국사회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다. 내부에서부터 폭발한다는 수소 폭탄의 비유는, 냉전 시대 소련이나 다른 세계로 부터의 공포보다는 메카시즘으로 대표되는 당시 미국 사회 내의 불안과 공포가 더욱 스스로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렸던 또 다른 영화는 바로 밀로스 포먼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였는데, 이 작품에도 <셔터 아일랜드>와 비슷한 시대 배경과 정신병원(뇌수술)이라는 설정이 등장한다. 실제 이런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는 미국 사회를 되돌아 보았을 때, 마치 독일이라는 나라가 '나치'라는 트라우마를 지울 수 없는 것처럼 현재의 미국 사회에서 역시 50년대 메카시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치와 공산주의의 정반대에서서 자유를 부르짖었던 자신들에게 나치와 똑같은 어두운 과거는 분명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였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는 시대의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개인에 빗대어 이야기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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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갈수록 매혹적이다. 1950년대에 빠져든 디카프리오는 당시 고전 헐리웃 영화 속 남자 배우들 처럼, 연극적인 연기를 펼친다. 스콜세지와의 호흡은 한계를 모르고 나아가고 있으며, 이젠 더이상 연기력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실례일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크 러팔로 라는 배우는 시대극에서 특히 장점을 발휘하는 것 같다. 그 자체가 미장센이 되는 연기에 있어서 마크 러팔로는 참으로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 밖에 벤 킹슬리와 막스 본 시도우 같은 베테랑 연기자들이 함께한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무게는 깊어지며, 미쉘 윌리엄스와 잭키 얼 헤일리(아시다시피 <왓치맨>의 '로어셰크'가 바로 그다), 그리고 에밀리 모티머와 패트리시아 클락슨의 연기도 좋았다. 디카프리오가 월등한 롤을 맡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조연급 연기자들의 연기를 맛보는 것도 이 작품의 또 다른 재미다.

여러가지 이유로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는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다.

1. 벌써부터 얼른 블루레이가 출시되었으면 좋겠네요. 디지털 상영으로 보았는데 영상의 입자 자체가 거친 편이라 칼 같은 선예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어서 블루레이나 DVD가 출시되어 음성해설 트랙이라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2. 마크 러팔로의 의상을 보며 자연스럽게 <조디악>을 떠올렸는데, 흥미로운건 <조디악>에서 범인으로 의심되었던 배역을 연기했던 존 캐롤 린치가 이 작품에도 소장(부소장?)으로 등장한다는 점이죠.

3. IMDB의 트라비아를 보니 파라마운트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데이빗 핀처와 브래드 피트, 마크 월버그로 진행하려고 했었다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조디악>스러워졌을지도 모르겠군요 ㅎ

4. 오랜만에 스코어에 감동 받았습니다. 감정적 감동이 아닌 영화적 감동이요. 사운드 트랙도 구매해야 겠네요.

5. 글을 다 쓰고 오랜만에 관련 글들을 읽어보며 정말 희열을 느꼈습니다. 영화의 반전을 가지고 각자의 논리들로 풀어놓은 글들을 보는 재미를 이렇게 느낀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6. 아, 또 보고 싶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Paramount Pictures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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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 어 라이트 (Shine A Light, 2007)
멈추지 않고 구르는 빛나는 돌들!


롤링 스톤스 (The Rolling Stones). 그들의 이름이 록 씬에서 전설로 추앙받고 있고, 그들의 가치나 몇몇
유명한 곡들은 잘 알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한참 활동할 때(물론 그들은 지금도 한참 활동중입니다!)
의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한 번 마음먹고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미처 아직까지
그럴 기회를 잡지 못했던 밴드 중의 하나가 바로 '롤링 스톤스'였죠. 최근엔 이렇게 이전 세대에 활동했던,
혹은 전성기를 보냈던 밴드들을 차근 차근 들어보는 기회를 못갖고 있는데, 아마도 몇 년전 도어즈 (Doors)를
이런 식으로 제대로 느껴보았던 뒤로는 없었던 것 같네요. 영국출신으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비틀즈와는
그 색깔을 달리하는 그룹으로서(재미있게도 실제 노동자 계급 출신인 비틀즈는 여성적이고 팝적인 음악을
선보였고, 중산층 출신으로 쉽게 말해 부유하게 자란 롤링 스톤스는 반대로 굉장히 반항적이고 남성적인
록음악을 들려주었죠), 개인적 취향으로로 그 간 롤링 스톤스를 제대로 들춰보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인데,
이 영화 <샤인 어 라이트>를 보게 된 뒤로는, 이들의 발자취를 훑어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네요.
너무나 상투적인 표현이라 정말정말 쓰고 싶지 않지만 딱 한 번만 눈 딱 감고 써보자면,
이들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신화이며 전설입니다. 그들이 발표했던 주옥같은 앨범들이 신화와 전설을 말해주고,
무려 45년을 지나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그들의 활동기간이 바로 '살아있음'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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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설명한 말들 가운데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은 바로 '콘서트 영화 (Concert Movie)'라는 장르에 관한
설명입니다. 콘서트면 콘서트고 영화면 영화지 '콘서트 영화'는 무엇인가 싶기도 한데, 일단 가볍게 살펴보자면,
<샤인 어 라이트>는 뮤지션이나 음악을 다룬 여타 영화들과는 달리 다큐멘터리가 주가 된 영화가 아니라,
밴드의 콘서트 자체가 90% 이상 주를 이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초반 리허설 장면 몇 분과 중간 중간 예전
TV인터뷰 클립등이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마치 콘서트 실황 DVD의 서플먼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미미한 것이며,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의 대부분은 롤링 스톤스의 '비거 뱅 투어(A Bigger Bang Tour)' 가운데
2006년 10월 29일과 11월 1일 뉴욕의 비콘 극장에서 가졌던 콘서트 실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는 밴드가 공연하는데에 있어 최대한 이질감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배려하면서,
총 16대의 카메라를 공연장 여기저기에 배치하였고, 객석 가운데서, 드럼 가까이에서, 무대와 아주 가까이서
담아낸 그들의 공연 모습은 일반 콘서트 실황 영상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었던 진짜 밴드의 모습,
진짜 '롤링 스톤스'의 모습을 체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초반 리허설 장면에서 공연 전에 민감해져 있는
믹 재거를 비롯한 밴드 멤버들이 스콜세지의 영화화 작업에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물론 이것은 실제 상황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편집에 의해 연출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는 <샤인 어 라이트>를 단순히 콘서트 영상이 아니라 '콘서트 영화'로 만들기 위해,
초반에 이런 긴장감을 불어넣기도 하고, 자신이 감독의 역할로 직접 등장하여 영화의 시작과 마무리를
명확히 지음으로서 이것이 '콘서트 영화'임을 좀 더 명확하게 보여주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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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라스트 왈츠>나 '더 블루스' 프로젝트의 <고향으로 가고 싶다>, 그리고 밥 딜런에 관한
<노 디렉션 홈 : 밥 딜런>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뮤지션에 관한 깊이 있는 시각과 애정을 보여주었던
마틴 스콜세지이기에, <샤인 어 라이트>는 더 특별하면서도 의미있는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틴 스콜세지는 잘 알려진대로 음악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은 영화 감독인데,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팬레터
성격에 그치지 않고 뮤지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상당히 전문적인
음악영화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예전부터 자신의 작품에서 롤링 스톤스의 음악을 자주 쓰기도 했었고,
오래전 부터 팬이었던 스콜세지는, 이번에도 색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애정을 갖고 있는 이 전설이 밴드를
그려냅니다.

45년에 활동기간을 굳이 감안하지 않는 만행을 저지르더라도, 롤링 스톤스에게는 영화나 다큐로 만들 만한
무수한 이야기 거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화 작업에 있어서 단지 공연 실황만을 담은 것은,
어느 리뷰에서 보았듯 라이브 자체가 바로 롤링 스톤스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사건들과 일화들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릴 수도 있겠고, 전기영화 방식으로 좀 더 서사적으로
그려낼 수도 있겠지만, 마틴 스콜세지는 롤링 스톤스의 오랜 팬이었기 때문에 다른 거 다 재쳐두고 그들의
라이브 실황을 관객으로 하여금 2시간 동안 즐기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설명 방법인 동시에,
롤링 스톤스 멤버들에게도 가장 올바른 헌정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결국 그 방법은 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그 어떤 다큐나 음악 영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에너지와
진짜 '롤링 스톤스'를 만나볼 수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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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롤링 스톤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겠느냐만은)이
<샤인 어 라이트>를 본다며, 이들이 좀 나이 먹어 보이기는 하지만 45년을 활동해온 60대의 멤버들로 구성된
밴드라고는 절대 생각지 못할 겁니다. 그 만큼 이들의 라이브는 '아직도'라는 말을 붙이기가 민망하고 미안할
정도로 너무 열정적입니다. 믹 재거는 여전히 섹시하며 젊은 여성들도 혹할 만한 몸매와 카리스마, 댄스 실력을
보여줍니다. 키스 리차드는 또 어떻습니까. 아마도 요즘의 어린 팬들은 거꾸로 조니 뎁이 연기한 '잭 스페로우'
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키스 리차드를 알게 된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카리스마는 정말 무대를
압도합니다. 젊은 시절 무대 위나 인터뷰 시에 뿜어나오던 포스도 대단했지만, 나이를 먹은 지금에 그가
보여주는 퍼포먼스와 연주는, 감히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인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정말 대단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 콘서트에는 세 명의 게스트가 등장하는데(오프닝을 맡은 클린턴은 빼고요),
첫 번째는 화이트 스트라입스(White Strips)의 잭 화이트(Jack White)가 등장해 'Loving Cup'을 함께
노래, 연주합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와, 잭 화이트가 게스트로 등장하다니!' 하고 좋아만 했겠지만,
이번 경우는 그저 '와, 믹 재거와 한 무대에서 함께 노래하고, 키스 리차드와 마주보며 연주를 하다니,
잭 화이트, 너무 부럽다' 뭐 이런 느낌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잭 화이트도 나름 카리스마와 포스를 갖고 있는
까칠한 뮤지션인데,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 앞에선 그저 착한 후배로 밖에는 보이질 않더군요 ^^;
두 번째로 등장하는 뮤지션은 바로 버디 가이(Buddy Guy)입니다. 앞선 잭 화이트의 출연에서 잭 화이트가
마냥 부럽기만 했다면, 버디 가이와의 협연에서는 정말 고수들의 엄청난 아우라를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샤인 어 라이트>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버디 가이와 함께한 'Champagne & Reefer'를
꼽지 않을 수 없겠네요. 버디 가이와 키스 리차드가 함께 연주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온몸에 절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우리만큼 강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스콜세지가 버디 가이를 오랜 시간 동안
클로즈업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롤링 스톤스와 버디 가이가 함께 연주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그 어떤 훌륭한 배우가 열연을 펼친다 하더라도 미처 도달할 수 없는 '실연'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경지에 다다른 두 팀의 뮤지션이 협연을 펼치는 장면은, 왠만해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감동이었습니다(키스 리차드 역시 이 협연에 감동했는지 자신이 연주한 기타를 그 자리에서 버디 가이에게
선물하기도 합니다).

세 번째로 등장하는 게스트는 의외일 수도 있으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아길레라가
그녀의 실력에 비해 가쉽과 부수적 요소들에 의해 과소평가 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은데, 이번 공연에서는
믹 재거와 함께 'Live With Me'를 열창합니다. 믹 재거에 포스에도 주눅들지 않고 무대에서 자신만의 노래를
해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확실히 동년 배의 여자 가수들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가창력을 가졌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나이로만 보면 할아버지와 딸에 듀엣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공연을 본 사람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믹 재거는 아직도, 아니 그냥 섹시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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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했던 거지만, 참 밴드 이름 잘 지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 구르는 돌들이라. 영화 속에 삽입된 예전 인터뷰처럼 2년이나 활동할지도 몰랐던
이들이, 하지만 한 편으론 60대에도 당연히 노래하겠다라고도 했던 이들이, 진짜로 이렇게 오랫동안이나
활동하게 될 줄은 아마 그들은 물론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구르는 돌들이라는 밴드 이름이 처음 만들 떄는
그저 자신들이 존경하는 밴드의 곡 제목을 따온 것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세월이 지나고 이리도 오래
활동하고 있는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정말 운명적인 밴드의 이름이 아니었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롤링 스톤스의 공연을 대한민국 땅에서 보기가 여간 힘든일이(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실감 나는 공연 실황을 단돈 7천원으로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정말 소중한 기회이며,
롤링 스톤스라는 록 계의 전설적인 밴드에 관한 중요한 필름으로서 극장에서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소중한 기회이기도 한 것이 바로 이 영화 <샤인 어 라이트>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동안 롤링 스톤스 음악에 빠져 살 수 밖에는 없겠네요.




1. 극장에서 보는 내내 너무 답답했습니다. 이런 라이브를 딱딱한 좌석에 앉아서 2시간 내내 조용히 관람해야
   하다니 말이에요. 마음 맞는 록 팬들끼리 단관해서 함께 신나게 춤추며 보면 정말 좋을 것 같더군요.
   박수치며 환호하며 말이에요. 이런 '콘서트 영화'가 애니메이션 만큼의 비중만이라도 된다면 특별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바램이라도 가져보겠지만, 이런 영화가 워낙에 드물다보니 그것도 어렵겠네요.
   여튼 맘 속으로만 환호해야 하다보니 많이 아쉬웠습니다.

2. 그들의 대표곡 중 하나이고, 특히 국내팬들에게 더욱 친숙한 'Paint Black'은 영화에는 누락되었습니다.
   사운드트랙에서는 만나볼 수 있구요.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DVD에는 수록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3. 블루레이가 이미 해외에서 출시된 거 같던데, 이 타이틀은 별다른 자막이 어차피 큰 필요없으니
   기회되면 질러봐도 좋겠네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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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역사란 곧 미국의 역사라는 말과도 같다.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전하는, 미국인들조차 잘 알지 못했던 뉴욕의 피비린내 나는 탄생의 보고서. [갱스 오브 뉴욕]
 
Synopsis
 

1860년대 초 뉴욕의 격동기. 월 스트리트의 비즈니스 지구와 뉴욕 항구, 그리고 브로드웨이 사이에 위치한 파이브 포인츠는 뉴욕에서 최고로 가난한 지역이며 도박, 살인, 매춘 등의 범죄가 만연하는 위험한 곳이다. 또한 이 곳은 항구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매일 수 천 명씩 쏟아져 들어오는 꿈의 도시도 하다.



그러나 파이브 포인츠에 사는 정통 뉴요커들은 아일랜드 이주민들을 침입자라 여기며 멸시한다. 결국 두 집단의 갈등은 전쟁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아일랜드 이주민의 존경을 받던 데드 레빗파의 우두머리 프리스트 발론은 빌 더 부처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그의 어린 아들 암스테르담 발론은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16년 후, 성인이 된 암스테르담은 복수를 위해 빌 더 부처의 조직 내부로 들어간다. 뉴욕을 무자비한 폭력과 협박으로 지배하며 파이브 포인츠 최고의 권력자로 성장한 빌 더 부처는 자신을 향한 음모를 까맣게 모른 채 암스테르담을 양자로 삼게 된다. 암살계획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암스테르담은 빌 더 부쳐의 정부(情婦)이자 소매치기인 제니 에버딘을 만나 한눈에 반하게 되고 처절한 복수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마틴 스콜세지의 필생의 프로젝트
 
[갱스 오브 뉴욕]이 기획된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이전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는 언젠가는 반드시 뉴욕의 역사에 관한 딱 잘라, 뉴욕에 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항상 생각해 왔었다. 이미 20년도 더 전에 [갱스 오브 뉴욕]에 관한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실행하려고 했지만, 그 당시로서는 그만한 이야기를 담아낼 만한 여력이, 스콜세지에게도 제작사에게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제작사에서는 거대한 스케일과 긴 러닝 타임 등을 고려해, 이 프로젝트를 무척이나 부담스러워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지난해인 2002년에야 그 뜻을 이루게 된 [갱스 오브 뉴욕]은 이와 같은 커다란 기대 때문이었는지 전체적으로는 관객들에게도 평론가들에게도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하였다. 개인적으로는 극장에서 볼 때에도 크게 지루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갱스 오브 뉴욕]에 전체적인 반응은, ‘지루하다’였다. 블록버스터 치고는 긴 러닝타임인 2시간 40분이 넘는 시간과(아시다시피 164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본래 22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을 제작사인 미라맥스에 설득 끝에 편집된 것이라고 한다), 감동을 주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서사적 보고서에 가까운 이야기와 전개가, 자극에 민감한 대부분의 관객들에게는 결코 달가웠을 리가 없었다. 흥행 성적은 그렇다쳐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등 중요 시상식의 중요 부분을 노렸음에는 분명한 영화였는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골든 글로브를 수상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득을 본 것이 없었다. 특히 아카데미에서는 무려 10개의 중요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단 한 개의 오스카상도 가져가지 못하였다. 이는 어쨌거나 감독인 스콜세지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되었으며, 제작사인 미라 맥스 역시 울상 짓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에 실망이 컸던 것 같고, 마틴 스콜세지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임엔 분명하지만, 처음 기획부터 영화화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체되면서 많이 지쳐버린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갱스 오브 뉴욕]은 최근 영화들에 비하면 오락적인 요소가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틴 스콜세지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는 그래도 오락적 요소가 제법 있는 영화라 생각되고,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를, 콕 찍어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 열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살펴보자.
 
영화가 지루했다는 사람들도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 연기에는 뭐라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영화는 시큰둥한 반응이 많았었지만 그런 반응을 보인 사람들조차도 무시 못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빌 더 부쳐 역할을 맡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였다. 이미 [나의 왼발] [아버지의 이름으로] [라스트 모히칸]등에서 선 굵고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었던 다니얼 데이 루이스는 연기를 하지 않겠다는 은퇴선언을 번복하며 출연한 [갱스 오브 뉴욕]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경지에 연기를 선보였다. 일명 ‘도살 광’이라고 불리는 뉴욕의 토박이들의 리더 격인 ‘빌 더 부쳐’역할을 맡은 그는, 이전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들과는 또 다른, 완전히 다른 한 인물을 새롭게 그려내면서 무서우리만큼 냉정하고 치밀한 성격과 육체적으로도 강한 인상의 ‘빌’이 된다. 함께 출연하였던 ‘리암 니슨’의 말을 빌리자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빌’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빌’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촬영을 하는 동안이 아닐 때에도 동료 배우들을 극중 이름으로 대하고, 그중 캐릭터처럼 생활했다는 것이다. ‘빌 더 부쳐’라는 인물에 너무 깊게 빠져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한동안은 그중 그의 악센트를 결코 쉽게 버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카메론 디아즈의 말로도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이 같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완벽한 연기는 스콜세지의 영화에 주인공하면 떠오르던 로버트 드니로를 잠시도 생각나지 않게 하였다.




[갱스 오브 뉴욕]은 대부분 모두의 박수와 관심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에 맞추어 지긴 했지만, 그 외에도 여러 배우들이 크고 작은 역할을 훌륭히 연기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관심에 초점이 되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레오가 [타이타닉]때보다는 많이 성숙했다는 것이었다. 잘 생긴 외모와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으로 단번에 최고의 스타가 되었던 레오는, 이제는 한 번쯤 자신을 뒤돌아볼 여유가 생긴 듯 하다. 거칠고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레오 자신도 배우로서 많이 발전한 듯 하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 카메론 디아즈 등 동료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는 방식도 예전보다는 많이 터득한 것 같다. 관객들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완벽한 연기에 눈을 빼앗겼지만, 레오 자신에게는 [갱스 오브 뉴욕]이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영화의 포스터, DVD의 자켓에도 주연 배우 세 명의 이름과 얼굴이 크게 프린트 되어 있지만 [갱스 오브 뉴욕]에는 이들 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능력 있는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 일단 영화의 초반부 ‘빌 더 부쳐’와 맞서는 발론 신부 역할로 출연한 리암 니슨을 들 수 있다. 비록 시작부분 잠깐이기는 했지만 영화의 설정한 중요한 역할인 발론 신부역할을 인상 깊게 연기하였다. 그리고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정치인을 연기한 짐 브로드밴드. 그리고 존 C.라일리브랜든 그리섬 등은 다른 영화라면 주인공으로 출연하여도 젼혀 손색이 없는 배우들이지만 또한 개성 있고 자연스러운 조연 역할에도 익숙한 배우들인지라, [갱스 오브 뉴욕]에서도 주연 배우들에 비해 튀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카메라가 돌아왔을 때에는 강한 인상을 심어 주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싶었을 쟈니 역할은 바로 이전 [E.T]에 주인공 엘리엇으로 출연했던 헨리 토마스가 맡았다. 그 동안 몇몇 작은 영화에 출연했었던 헨리 토마스는 [갱스 오브 뉴욕]을 계기로 다시금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Gangs of New York / DVD

일단 기본적인 화질과 음질은 최신 출시된 타이틀답게 비교적 높은 수준의 퀄리티를 재공하고 있다. 시대, 서사극을 표현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미술, 의상 등일 것인데, 1800년대의 뉴욕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엄청난 크기의 세트들과,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다양하고 고풍스러우면서 화려한 의상들은 [갱스 오브 뉴욕]을 감상하는 또 다른 재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DVD는 이 같은 배경과 의상 디자인을 섬세하게 재공하고 있으며, 영화 자체가 표방하는 컬러인 갈색과 회색 톤의 색감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제법 액션 장면이 등장하는 [갱스 오브 뉴욕]에서 사운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인데,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는 거리에서 펼쳐지는 잔혹한 전투의 소리들을 현실적으로 전해준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대포에 의해 폭발하는 장면에서는 DTS의 음장감을 실감할 만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갱스 오브 뉴욕]DVD 타이틀의 가장 아쉬운 점으로 남는 것은 바로 본 편이 두 장으로 나뉘었다는 사실인데, 이는 많은 DVD 마니아들이 귀찮아하는 일로, 타이틀의 구매를 한 번 더 선택하게 하는 단점이 된 것 같다. 본 편과 같이 두 장의 디스크에 나뉘어 담긴 서플먼트를 살펴보자.




일단 가장 반가운 서플은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의 음성해설을 들 수 있겠다. 다른 어느 영화보다도 감독이 할 말이 많았었을 법한 영화인지라 음성해설의 수록은 DVD마니아와 마틴 스콜세지의 팬이라면 아니 기쁠 수 없을 것이다. 화질을 언급하며 잠시 거론되었듯이 [갱스 오브 뉴욕]에서 스토리 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는 세트와 의상 등 디자인 요소를 들 수 있는데, DVD타이틀도 이 같은 중요성을 강조하듯 디자인에 관련된 서플먼트들이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또한 세트를 설명하는 영상에서 360도 팝업을 지원하는 서플은, 넓고 다양한 1800년대 뉴욕의 거리를 좀 더 가까운 시선으로 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몇 가지 다큐멘터리 영상이 수록되어 있는데, 영화에 관련된 제작 과정 노트라던가 에피소드 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실제 뉴욕의 역사에 기인한 다큐멘터리가 수록되어 영화의 기본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 같은 영상들은 위와 같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흔한 제작과정 다큐멘터리가 하나 정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극장용 예고편과 U2가 부른 주제곡 ‘The Hands that Built America'의 뮤직 비디오도 감상할 수 있다.
 
2003.09.08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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