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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본 (Jason Bourne, 2016)

영원히 고통받는 제이슨 본



1. 이번 '제이슨 본'은 길게 쓸 내용까지는 없어서 간단히 코멘트 하는 방식으로만.


2.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이 다시 뭉친 '제이슨 본'은 확실히 또 한 번 요원물의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제 C.I.A.요원 이야기는 영화로나 다큐로 너무 많이 접해서 신선한 감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기대하는 바는 충분히 충족시켜주는 액션 영화였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본이 그 특유의 빠른 걸음걸이로 군중 속을 휘젓고 다니는 장면만 봐도, '아, 본이 돌아왔구나!' 싶다.


3. 가장 격렬한 격투 액션을 보여주었던 '본 얼티메이텀'에 비하자면 이번 영화는 격투 액션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이미 레전설이 된 제이슨 본 답게, 직접 격투를 최대한 피하면서도 추격 장면만으로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설득력이 없지 않다. 격투 액션 얘기가 나온 김에, 아무리 본이 최정상급 가운데서도 손에 꼽을 만한 특수요원이라지만 같은 C.I.A.요원들이 본에게 거의 한 방에 다 기절하고 마는 장면을 보면, 이것이 진정한 C.I.A.의 위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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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이슨 본의 과거 찾기 이야기와 더불어 영화에는 C.I.A.와 거래를 한 거대 IT회사 대표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나 흥미로운건, 보통 이런 첩보 액션 영화에 등장하는 위협이나 음모 등의 경우 현실성이 있는 수준의 가까운 미래 혹은 아직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는 공포에 대한 것이 대부분인데,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감시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 비지니스의 이야기는 이미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스노든의 폭로를 비롯해 많은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피부로 느껴지는 수준의 공포, 더 나아가는 과거의 위협으로까지 볼 수 있던 점이라 공포감이 덜했다고나 할까. 영화의 메인 테마가 제이슨 본 한 사람의 과거와 정체성 찾기에 맞춰져 있다보니, 이 거대한 위협은 비교적 축소되고 또 영화적으로 매력은 덜했던 측면이 있다. 차라리 이 이야기를 제외하고 본의 이야기에만 집중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


5. 스노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무래도 서브 테마의 이야기의 성격이 성격이다보니 스노든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데, 미정부 그리고 C.I.A.에게 스노든의 폭로가 얼마나 큰 상처이자 걸림돌이었는지 (마치 영화 속 제이슨 본의 존재처럼)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었다. 참고로 에드워드 스노든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다큐멘터리 영화 '시티즌포'를 권하고 싶다. 



시티즌포 _ 다음 사람들을 위한 프로파간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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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줄리 스타일스도 참 오래 버텼다.


7. 아마도 이 영화가 제이슨 본 이야기의 마지막 편일 가능성이 높지만, 특성상 하려고만 하면 충분히 계속 시리즈를 이어가는 것이 가능은 할 것이다. 제목에 '영원히 고통받는..'이라고 쓴 것처럼, C.I.A.국장이 바뀌고, 담당자가 바뀌고, 조직이 개선되고, 프로그램이 완전 패기 된다하더라도, 그 자체가 실패한 프로그램의 상징인 제이슨 본을 가만히 둘리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 게임은 제이슨 본이 죽어야만 끝나는 얘기이기 때문에, 그가 죽지 않는 이상 영원히 고통 받으며 시리즈를 이어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


8.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정말 매력적인 배우지만 이 영화에서는 캐릭터의 한계가 있어서 그녀의 본래 매력을 다 뽐내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뭐 그건, 뱅상 카셀도 마찬가지고.


9. 마치 아쉬운 점들만 늘어 놓은 것 같지만, 2시간을 쉼 없이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딱 기대했던 본 시리즈의 새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던 관람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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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The Martian, 2015)

다시 우주를 꿈꾸게 만드는 휴먼드라마



리들리 스콧이 다시 한 번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돌아왔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화성을 배경으로 한 아주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드라마로 돌아왔다. 맷 데이먼이 또 한 번 우주비행사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기존 리들리 스콧이 우주를 다뤘던 영화들과는 조금 성격을 달리 한다.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2012)'를 통해 근원에 대한 연구를 스릴러의 방식으로 풀어냈다면, 이 영화 '마션 (The Martian, 2015)'은 '에이리언' '프로메테우스' 등과는 달리 아주 철저하게 과학적이고 또한 현실적, 개인적인 시점으로 화성이라는 공간과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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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의 '마션'은 일종의 생존 드라마다. 홀로 화성이라는 공간에 남게 된 과학자가 살아 남기 위해 어떤 일들을 겪게 되는 지에 관한 보고서 혹은 일기와도 같은 내용인데, 여기서 이 영화가 다른 생존 영화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바로 그 홀로 남게 된 주인공이 과학자 (식물학자)라는 점이다. 많은 SF영화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설정이나 전개를 펼쳐 나가곤 하는데, 직접 검증을 다 해볼 수는 없지만 (아마도) '마션'은 다른 무엇보다도 과학적 근거가 드라마에 바탕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걸 알 수 있었다. 즉, 실제 과학적 이론에 근거한 내용 등이 영화의 전개 과정을 위해 근거 정도로 존재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적인 대사나 설정을 통해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입증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지독한 장인인 리들리 스콧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여러 이야기 가운데 이론적으로 타당하면서도 드라마가 가능한 원작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 것으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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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배경으로 홀로 남게 된 주인공을 다뤘다는 점에서 '그래비티 (Gravity, 2013)'를 연상케 하는데,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마션'은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캐스트 어웨이'와는 달리 '마션'의 주인공 마크 (맷 데이먼)는 적극적으로 지구와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것 역시 지극히 과학자 적인 입장에서 현실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는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철저하게 계산해 생존 가능한 확률을 높이거나 더 나은 선택을 하고자 하는 행동에서 말미암은 최선의 선택이 바로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곳과의 연락을 통해 그 확률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있어서도 이론적으로 가능한 방법과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매끄럽게 설명하는 데에 영화는 많은 공을 들인다. '마션'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이 같이 과학적 이론에 근거한 장면들을 묘사할 때 최대한 '왜?'에 대한 답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주면서도 그것이 결코 지루하거나 딱딱하지 않게 유머와 음악을 가미한 드라마로서 유려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즉, 화성에 홀로 남은 주인공을 묘사하는 전반적인 방식에서 공포와 외로움이 주가 된 것이 아닌, 희망적이고 논리적이며 유쾌함마저 느껴지도록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존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 그 와중에도 유쾌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확률이 낮기는 하지만 가능한 확률도 분명 존재한다는 과학자로서의 믿음 (신앙적 믿음이 아닌) 때문일텐데, 영화 역시 바로 이 주인공의 심리와 분위기를 같이하며 이 외로운 싸움을 희망적이고 가능한 이야기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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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의 가장 큰 매력 중 또 다른 것은 바로 영화에 삽입 된 기가 막힌 노래들이다. 이미 너무도 익숙한 록과 팝 넘버들이 정말 거푸 기가 막히다는 표현을 써야할 정도로 완벽하게 녹아 들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신의 한수는 역시 데이빗 보위의 'Starman'을 들 수 있겠다. 단순히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완벽하게 영화의 리듬과 맞물리는 곡인 'Starman'은 또한 내용적으로 보나 이 곡을 부른 데이빗 보위로 보나 우주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나중에 이 영화가 블루레이로 출시된다면 이 곡이 등장하는 시퀀스를 반복적으로 자주 보고 싶을 정도로, 멋진 영화 음악이었다. 이 밖에도 단순한 삽입곡이 인물의 설정과도 자연스럽가 녹아있는 아바의 'Waterloo'도 흥미롭고 다른 곡들도 영화의 유쾌하고 가벼운 리듬과 잘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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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화성이라는 공간의 묘사다. 이미 여러 작품들의 제작 과정을 통해 리들리 스콧이 평소 영화를 만들 때 최대한 실제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만들고자 함은 잘 알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마션'에 등장하는 화성 역시 로케이션 촬영으로 착각할 만큼 실제하는 듯하고 무엇보다 몹시 아름다운 풍광을 담고 있다. 이것은 조금 의도적인 것일지 모르나 영화가 그린 아름다운 화성의 모습은 확실히 '꼭 한 번 가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두려움과 미지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꼭 한 번 탐험해보고 싶은 욕망을 (오랜만에) 다시 불러 일으킨다. 다시 말해 다시 우주를 꿈꾸게 만든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와 마찬가지로 리들리 스콧의 '마션' 역시 이제는 아무도 우주 탐험을 꿈꾸지 않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 하며 만든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인터스텔라'가 낭만적 가족드라마였다면 '마션'은 좀 더 유쾌한 과학적 수필같다. 벌써부터 블루레이로 출시 될 '마션'이 기다려진다. 매번 그렇듯 이번에도 영화 만큼이나 제작 과정이 궁금해지는 리들리 스콧의 매력적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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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작 소설도 잘 나온 것 같아 빠르게 구매해서 읽어봐야 겠어요.

2. 사운드트랙은 무조건x10 구매입니다.

3. 3D로 감상하였는데 3D로 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아이맥스로도 개봉하면 좋을 텐데 개봉할런지 잘 모르겠네요;;

4. 그저 맷 데이먼 혼자만 나오는 (마치 '더 문'처럼)영화 같지만 유명한 배우들이 정말 여럿 등장합니다. 제시카 차스테인, 제프 다니엘스, 케이트 마라, 세바스찬 스탄 (윈터솔저), 치웨텔 에지오포 그리고 숀 빈까지. 숀 빈이 죽는지 안 죽는지는 비밀로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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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를 사랑한 남자 (Behind the Candelabra, 2013)

이토록 아름다운 엔딩



사실 이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 '맷 데이먼 말고 다른 주인공이 참 마이클 더글라스를 닮았네' 라고 생각했었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암 진단을 받아 활동이 어렵지 않을까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초 적인 연기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라고 보기에는 너무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이클 더글라스라는 존재를 분명히 확인하지 못한 채 보게 된 '쇼를 사랑한 남자 (Behind the Candelabra, 2013)'는 그냥 퀴어 영화로 불리기엔 참 좋은 영화였다 (뭐 하긴 대부분의 퀴어 영화는 '그냥 그런' 영화로 머무는 경우가, 그러니까 게이 라는 그 자체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거의 없긴 하다). 참 좋은 영화인 동시에,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엔딩 장면을 선사한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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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포스터 속 주인공이 마이클 더글라스인지 잘 몰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난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이 영화 같은 이야기가 사실은 실화라는 것 자체가 주는 감동이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실화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관객을 흔들어 놓는 감동이 존재한다. 아, 만약 실화라는 것에 가까운 외부적인 감동 포인트가 있다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실제로 암을 극복하고 다시 이토록 멋진 연기를 펼친 마이클 더글라스라는 배우의 이야기일 것이다. 본래 연기를 잘하는 베테랑 연기자이긴 했지만, 실제 암 투병을 겪은 이후 만나게 된 '리버라치'는 캐릭터를 연기함은 분명 이전과 달랐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마이클 더글라스가 복귀 작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정말 더할 나위 없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겪었던 실제의 경험이 더 극적인 요소로 과장되어 표현될 수도 있었지만, 리버라치의 삶은 어쩌면 그런 아픔들이 겉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더 농도 짙은 캐릭터를 표현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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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쩌면 참 뻔한 사랑이야기다. 리버라치 (마이클 더글라스)와 스콧 (맷 데이먼)의 관계에는 다양한 평범하지 않은 환경들이 존재하지만, 영화는 그 특별함 보다는 이 두 사람의 애정에 더 집중한다. 그 보편적 감성은 이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사실 이 영화에서 거부감이 들 수 있는 부분은 이들이 게이라는 이유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 일텐데,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과 닮길 원하는 이나 역시 사랑한 나머지 상대의 요구대로 성형을 하는 이의 모습, 그리고 더 나아가 서로가 연인이자 부자 관계인 모습은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전반적으로 담고 있는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정서의 표현으로 인해, 이들의 특별할 수 있는 관계와 행동들조차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담고 있어, 조금도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까지 영화가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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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가끔 영화를 보다 보면 감독이 어느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영화 전체를 만들었겠다 싶은 순간들이 있는데, 이 영화의 경우는 엔딩 장면이었다. 이 영화의 엔딩 장면만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하는데, 그냥 슬퍼서 울컥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아름답고 한 편으론 행복해서 울컥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러닝 타임 내내 들려주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아름다운 엔딩이었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이 작품과 '사이드 임팩트'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런 결정은 번복해도 좋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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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움 (Elysium, 2013)

미국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를 떠올린 SF



전작 '디스트릭트 9'으로 전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게 된 닐 블롬캠프의 신작 '엘리시움 (Elysium, 2013)'은 단연 화제작일 수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타이밍의 작품들이 늘 그렇듯, 전작과의 비교 선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엘리시움'은 '디스트릭트 9'의 영향력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조금은 아쉬운 (단순한) 작품이었다. 닐 블롬캠프가 단편 시절부터 추구해 오던 극과 극으로 나뉘어져 있는 두 계급에 대한 이분법적 세계관은, '엘리시움'에서도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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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움'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소년은, 어린 시절 함께 자란 한 소녀와 동경의 대상(엘리시움)을 꿈꾸며 언젠 가는 그 곳에 대려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소년이 어른이 된 현재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영화가 처한 두 가지 세계와 어린 시절에 약속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엘리시움'이 간과한 것은 이 작품이 SF영화라는 점인데, 물론 깨알 같은 디테일이 필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작품은 좀 그 과정에서 생략이 많은 편이라고 해야겠다. 관객들이 호기심을 가질만한 세계관과 장비들이 등장하는데 얼핏 봐도 복잡하고 많은 이야기가 있을 법한 요소들이 너무 단순하게 '뚝딱'하고 진행되거나 결정되어 버리는 경향이 좀 심한 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있어서 반드시 논리적이거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들만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에 좀 관대한 편인데 (예를 들어, 아니 어떻게 저렇게 쏘는 데 주인공은 한 대도 안 맞을 수가 있어 라던지, 저 정도로 고도화 된 시스템이 저렇게 허무하게 해킹 되는게 말이 돼? 처럼), 그런 측면에서 봐도 이 작품은 좀 너무 그 과정을 생략하거나 쉽게 생각한 부분이 분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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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닐 블롬캠프가 좋아하는 얘기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스스로 원치 않는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가 그 이분법적 세계관을 관통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엘리시움' 역시 주인공 '맥스'의 이야기는 사적이고 영웅 심리가 없어서 마음에 들었지만, 반대로 얘기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전체적으로 힘이 부족한 경향도 없지 않았다. 그 영웅적 면모가 없다면 개인 사에 대한 공감대가 깊게 깔려야 할 텐데, 그 부분이 어린 시절의 짧은 플래시백과 작은 약속에 그친 것이, 긴장감이 고조되어야 할 후반부에 생각보다는 심심한 이야기가 된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는 미국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에 대한 너무 직접적인 비유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은 의료보험이 정부를 통해 관리되지 않고 시장경제 상황에 맡겨진 형태인 터라, 의료보험의 가입자 수가 많지 않아 대부분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수 역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는 정부 주도의 보조금이 없기 때문에 엄청나게 비싼 보험료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를 해결하고자 오바마 정부가 내놓은 일명 '오바마 케어' 정책이 있으나, 이 역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여튼 '엘리시움'을 보며 자연스럽게 미국 내의 의료보험과 관련된 사회문제를 연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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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본 이가 반 농담 조로 '이거 약 타러 가는 영화 잖아'라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어찌 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방사능으로 인해 오염된 지구에 살고 있는 이들이 지구 밖 엘리시움을 꿈꾸는 이유는, 부나 윤택한 삶 등의 이유가 아니라 오로지 '치료'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즉, 현재 지구는 부를 갖고 있는 이들과 상류 지배 층이 모두 엘리시움으로 떠난 상황이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병을 제대로 치료하려면 엘리시움에서 제공하는 치료 기기 (뭐든지 척척 고치는 만능 기계) 밖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려면 엘리시움으로 가야 하는 데, 이 곳은 시민권 자격을 통해 철저히 관리되고 있기에 여기서부터 허들이 발생하게 되고, 이 과정이 영화에 주된 배경이 되고 있다.


여기서 시민권이란 현재의 의료보험이나 다름이 없다. 보험 가입자만 의료 서비스를 (사실상) 받을 수 있는 현실은, 시민권 자로 인식된 이들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영화 속 현실과 겹쳐진다. 더 흥미로운 건 이 이분법적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인데,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지구의 도시는 '디스트릭트 9'처럼 남아공이 아닌 미국 L.A다. 하지만 이곳에 남겨진 이들은 하나 같이 라틴계 혹은 흑인들이 대부분이며 백인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 점은 현재 미국 내에서 의료보험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빈민 측인 이민자들과 저소득 층인 히스패닉 계열의 사람들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엘리시움의 시스템을 관리하고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델라코트 (조디 포스터)를 비롯한 이들은 전형적인 백인들로 묘사되는 반면, 대통령이긴 하지만 힘없이 휘둘리고 있는 이는 흑인이자 히스패닉으로 묘사된 점은, 묘하게 현실과 겹쳐져 흥미를 유발하는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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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엘리시움'이 너무 노골적인 비유의 영화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사회적인 의도를 갖고 만들어 졌는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비유가 노골적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인 메시지를 반드시 품었다고 하기에는 역시 간과 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전작 '디스트릭트 9'에서도 SF에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녹여냈던 그이기에, 이 작품 역시 자연스럽게 현실과 연관 지어 볼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전작에 비해 '엘리시움'은 확실한 판타지다. 영화 속처럼 모든 것을 리셋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은 누가 봐도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엘리시움'의 결말이 '디스트릭트 9' 못지 않게 씁쓸한지도 모르겠다.



1. 이 작품은 청소년 관람불가 인데, 그 이유의 대부분은 잔인함 이더군요. 미래의 무기들도 그렇고, 몇몇 장면에서 잔인한 신체 훼손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야한 장면은 한 장면도 없어요.


2. 샬토 코플리는 전작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바로 그 캐릭터를 '엘리시움'에서 연기하고 있군요. 본인 스스로는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ㅎ


3. 이런 설정은 오히려 긴 호흡의 드라마로 만들었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배틀스타 갈락티카' 정도로. 영화 속에서 엘리시움에 대한 묘사는 굉장히 제한적이었죠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만).


4. 그러나저러나 '디스트릭트 10'은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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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We Bought a Zoo, 2011)

이유라는 것의 무의미도 필요해



'제리 맥과이어 (1996)' '올모스트 페이모스 (2000)' '엘리자베스타운' 등을 연출했던 카메론 크로우의 신작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We Bought a Zoo, 2011)'를 보았다. 제목과 포스터 (주인공들이 모두 등장한 버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만 보아도, 이 작품은 매우 '착한영화'일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특별한 악당도 없고, 주인공들이나 주변 인물들도 모두 선한 분위기가 가득 찬 이들이고 이들이 겪게 되는 과정들도 결국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참 착한 영화말이다. 각종 범죄와 폭력, 스릴러가 난무하는 영화들을 연달아 보게 되면 가끔씩은 아무 이유없이 그냥 착한 영화들에 대한 갈증이 절로 생기게 마련인데, 그래서 극장을 찾으면서 기대했던 것은 이런 착한 영화가 줄 수 있는 흐뭇함과 안식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카메론 크로우의 신작은, 단순히 착한 것 외에도 생각해볼 만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더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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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아내를 잃고 아들과 어린 딸과 함께 남겨진 한 가장이 새로 살 집을 찾던 중, 우연한 기회에 동물원을 운영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작지만 큰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가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정서 중 하나는 바로 이 남겨진 자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이자 엄마를 잃은 한 가정이 이 빈자리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주요 테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면에서 최근 보았던 존 카메론 미첼의 '래빗 홀 (Rabbit Hole, 2010)'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다. 두 작품 모두 단순히 누군가의 '부재'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존재의 상실에서 오는 남겨진 자들의 치유의 과정과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방법면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래빗 홀'에 방법론은 이 작품의 리뷰에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의 방법론을 이야기하자면, 정반대의 길로 달려본 뒤에야 해결 방법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결국 정반대라고 생각했던 길마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는 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영화는 이 가족의 치유 과정 속에 어쩌면 착한 영화다운 메시지를 살며시 포개어 놓는다.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모험에도 적극적이고 복잡할 것이 없었던 주인공 벤자민(맷 데이먼)이 실제로 자신이 진짜로 겪게 된 모험에서는 여러가지 이유와 사정들을 들어 쉽게 전진하지 못하는 과정을 그리는 동시에, 역시 상처와 트라우마 때문에 한 걸음 더 다가가지 못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영화는 'Why Not?'이라고 되묻는다. 그리고 여기에 작은 도구로 용기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리고 그 작은 용기, 20초만 눈 딱감고 저질러 버리면 되는 그 작은 용기가 만들어낼 수 있는 커다란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준다. 혹자는 이 과정을 100% 수긍하기에는 너무 헛점이 많은 것 같다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Why Not?'을 설명하기 위해 논리적 무장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과 동물을 배경으로 그 안에 인간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눈빛과 표정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과정은 적어도 나에겐 충분했다. 맷 데이먼이 좋은 배우라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 역할로서도 이 정도의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컨테이전'에서 보여준 가능성이 이 작품에서 좀 더 꽃을 피웠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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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보통 같았으면 당연히 끝났어야 할 지점을 지나 영화는 에필로그처럼 작은 이야기 한 토막을 꺼내 스스로 마무리한다. 바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Why Not?'에 대해 정리할 부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 장면은 너무 직접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드는데, 그래도 이 장면은 너무 좋았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떤 영화든 정말 멋진 장면을 한 장면씩은 갖게 마련인데, 이 작품에는 아마도 이 장면이 아닐까 싶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장면이 있어서 이 영화가 앞으로도 더욱 기억에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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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론 크로우의 팬이라면 그의 영화를 볼 때 좀 더 기대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영화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음악에 대해서는 잔뼈가 굵은 그 답게 이번에는 '시규어 로스 (Sigur Rós)'의 메인 보컬로 더 잘 알려진 '욘시 (Jónsi)'의 음악을 선택했다. 기존 욘시의 솔로 데뷔 앨범 'Go'에서 전혀졌던 신비스러운 행복함이 이 작품에도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는데, 자연과 동물원이라는 배경 그리고 치유라는 메시지에 있어서 욘시의 음악처럼 잘 어울리는 조합도 없지 않나 생각된다. 그 밖에도 카메론 크로우가 평소에 좋아하는 밥 딜런, 윌코 등의 음악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카메론 크로우 영화의 사운드 트랙은 믿고 사도 좋다.


누군가는 이 영화에 대해 너무 쉽게,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무기가 있기는 하지만;;) 그냥 '안될 이유가 있나?'라는 무모함으로 너무 쉽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텐데, 물론 그렇지만 가끔은 하나하나 이유를 들어 설명하지 않고 그냥 '안될 이유가 있나?'라는 무모함 섞인 희망과 긍정이 담긴 영화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허무맹랑이라 하기에 이 영화가 담아낸 이야기는 충분히 감동적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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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는 'Why Not?'이라는 것과 더불어 극중 벤자민처럼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몇년 간 적지 않게 고민하고 있는 '귀농'이라는 것과 맞물려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계산하고 이유를 찾다보니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 같은데, 정말로 '안될 이유가 있나?'라는 심정으로 실행해야만 가능한 걸까요? ;;

2. 주인공이 키우는 강아지가 나오는데 이렇게 비중이 없는 영화는 거의 없을 듯. 아마도 배경이 동물원이다보니 강아지는 그야말로 찬밥인듯 ㅎ

3. 엘르 패닝은 '수퍼 8'에서는 쌀쌀맞게 나오더니 여기서는 정반대라 좀 적응이 안되기도 ㅎ 아직까지는 괜찮은 성장중인듯.

4. 영화 속 동물원 개장날의 이야기는 실제 현실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판타지에 가까워서인지, 더욱 그 이후 영화가 보여준 결말이 꼭 필요했다고 생각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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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러 (The Adjustment Bureau, 2011)
참 선하고 믿음직한 로맨스


뒤늦게 맷 데이먼과 에밀리 블런트 주연의 영화 '컨트롤러 
(The Adjustment Bureau, 2011)'를 보았다. 이 작품은 잘 알려진 것처럼 필립 K.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SF영화인데, 연출을 맡은 조지 놀피는 이 작품을 SF로 그려내기 보다는 오히려 로맨스에 더 비중을 둔 작품으로 그려냈다. 만약 필립 K.딕 스타일의 SF작품을 기대하였더라면 많이 실망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이미 로맨스에 가깝다는 평들을 여럿 들어온 터라 상당히 너그러운(?) 시각으로 보게 된 '컨트롤러'는, 비교적 나쁘지 않은 로맨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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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미 상원위원인 남자 주인공과 그가 우연히 만난 한 여성, 그리고 이 만남 때문에 알게 된 미스테리한 '조정국'이 벌이는 음모와 결말을 그린다. 이 '조정국'이라는 설정은 SF적으로 매우 흥미로울 수 있는 설정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컨트롤러'는 SF적인 것에 큰 관심을 갖기 보다는 그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로맨스에 더욱 집중한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이 영화를 SF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기엔 너무 쉽게 풀려버리는 터라 부족한 측면이 많다는 얘기. 어쨋든 무언가 그럴싸하게 모든 것을 조정하는 조정국의 이야기가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결국은 맷 데이먼이 연기한 데이빗 노리스의 이야기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사람 됨됨이'가 더 든든한 배경이 된 작품이라고 해야될 듯 하다. 맷 데이먼은 많은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신뢰를 주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 이 믿음직한 이미지는 또 한 번 발휘된다. 맷 데이먼을 믿게 되면 이 작품은 제법 그럴싸한 로맨스 영화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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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데이먼이 연기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주인공 데이빗 노리스는 상원의원에 도전하는 정치인으로서 많은 시민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고, 단순히 '운명'이라는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우직할 정도로 믿음직스럽고 선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텐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선함이 영화를 전반적으로 이끄는 힘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 속 황당한 상황에 놓인 데이빗 노리스의 행동과 의지를 보고 있노라면, 내러티브의 헛점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그의 선함에 저절로 힘을 실어주게 된다. 더불어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아주 선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악당으로 볼 수 있는 조정국의 사람들에게서도 악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며 (그렇게 주인공이 골치 거리이고 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라면 깔끔하게(?) 정리하면 될텐데, 이 조정국 사람들은 그저 감시하고 일이 터질 것 같으면 막는 것 밖에는 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주인공을 돕는 인물 역시 이런 선함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필립 K.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치고는 너무 동떨어진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소스 코드'와 비교하여도 이 작품은 완전히 로맨스다.  만약 이 영화를 포장하고 홍보할 때 SF라던지 필립 K.딕이라는 설정들을 완전히 배제한채, 운명적인 두 남녀의 로맨스로만 소개했더라면 오히려 이런 SF적인 설정이 몹시 흥미로운 뒷이야기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이 영화에서 SF적인 기대치는 딱 이 정도로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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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렉스 프로야스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면 아마 훨씬 재미있는 SF영화가 되었을 것 같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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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젼 (Contagion, 2011)
21세기형 진짜 공포 영화


'체 (Che, 2008)'는 아직 보질 못했고 '오션스' 시리즈는 몸집이 커진 이후로 역시 보질 않았으니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건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걸 글 서두에 알게 되었다. 한 때는 헐리웃이 총아이자 천재 감독이라 일컬어지며 개인적으로도 아주 관심이 있었던 소더버그란 이름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게 된 작품이 바로 '컨테이젼 (Contagion, 2011)'이었다. 사실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배우들의 면면들 때문이었다. 맷 데이먼, 케이트 윈슬렛, 마리온 꼬띨라르, 로렌스 피쉬번, 주드 로, 기네스 펠트로까지, 이름만 들어도 영화 선택이 가능한 배우들이 여럿이라 이 작품도 주저없이 선택했다 (여기에 출연 사실을 몰랐던 존 호키스까지 더!).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얻지 않은 채 극장을 찾는 스타일 덕에 이번 작품 역시 배우들 말고는 아무 정보가 없었는데, '컨테이젼'은 이 배우들이 주인공이 아닌 바이러스 그 자체가 주인공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진짜 무서운 21세기형 공포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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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젼'이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운 이유는 그 현실성에 있다. 좀비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하물며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룬 전쟁 영화나 스릴러 영화라 하더라도 관객이 실제로 보면서 '아, 저건 내 얘기일 수 있겠다'라고 느끼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다르게 얘기하자면 공감대를 느끼며 영화를 내 것처럼 즐기는 것과 영화라는 것을 망각한 채 실질적인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컨테이젼'은 적어도 나에게는 후자의 경우였다. 예전에 바이러스에 관한 영화를 볼 때에는 앞서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딴 세상'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졌었는데, 직접적으로 내가 병을 앓거나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 몇년 사이에 신종 플루나 사스 등의 공포를 주변과 매스컴을 통해 실감하면서, 그와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이 작품의 내용이 몹시도 공포스럽게껴졌던 것이다. 실제로 많은 관객들이 '컨테이젼'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받아들였다는 것이 바로 그 좋은 예 일것이다.  

속수무책으로 바이러스에 당하는 인간들은 물론이고 이 재앙을 겪는 과정 속에서 무너지는 인간성과 사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제는 그냥 무섭다 정도가 아니라 실제 저런 일이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혹은 이미 발생했거나) 일이기 때문에 저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나는 어떻게 할까 라는 걸 계획하게 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컨테이젼'이 다루고 있는 바이러스와 그로 인한 사회와 인간성, 정부 및 기업의 음모 등은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새로울 것은 없는 것들이지만, 2011년이라는 시대가 만든 현실성이 이 영화를 더욱 공포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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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본 소더버그 영화. 소더버그는 여전히 이야기를 작은 조각으로 분리해 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더버그의 영화 가운데 여러 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것은 그의 이런 재능에 대한 자신감 이라고도 볼 수 있을텐데, 산만함 보다는 여러 캐릭터들의 이야기로 분리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하게 되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컨테이젼'의 여러 인물들은 각각이 맡은 역할이 확실하기 때문에 좀 더 집중하면서 각자의 얘기를 들어볼 수 있었고, 각각의 이야기가 점차 하나로 완성되어 가는 전개 방식이 아니라 매순간 서로 작용하게 되는 방식이라 더 몰입도가 높지 않았나 싶다.


영화 속 누군가를 마냥 비난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드는 것 보다도 이런 공포가 이제는 '더이상'도 아닌 그냥 현실이라는 사실이, 영화 속 바이러스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보다 훨씬 더 비중있고 공포스럽게 그려졌던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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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크나이트'에 나왔던 조연 배우들이 눈에 띄더군요. '라우'역할을 맡았던 친 한과 '라미레즈'형사로 나왔던 Monique Gabriela Curnen까지.

2. 다행히 극장에서 아무도 기침을 하지 않아 눈총 받거나 의심할 일은 없었습니다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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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브레이브 (True Grit) - 블루레이 리뷰
코엔 형제가 말하는 진정한 용기



존 웨인 주연의 서부영화 '진정한 용기 (True Grit, 1969)'와 찰스 포티스의 소설 'True Grit, 1968'을 리메이크한 코엔 형제의 'True Grit (국내 개봉명 : 더 브레이브)'은 서부 영화의 정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던 그들의 전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와는 또 다른 묵직한 서부영화인 동시에 '시리어스 맨' 이나 '번 애프터 리딩'에서 보여주었던 재기 넘치는 '코엔 형제스러움'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1880년대를 배경으로 아버지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나서는 당찬 14살 소녀 매티 (헤일리 스타인펠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매티가 여정을 위해 만나게 되는 루스터 카그번 (제프 브리지스)과 라 뷔프 (맷 데이먼)의 캐릭터가 더해져, 간단하지만 힘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코엔 형제가 이 작품을 다시 꺼내서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용기 (True Grit)'란 무엇이었을까?




(위의 두 번째 재판장 장면에서 창문으로 빛이 드리워지는 순간은 정말 아름답다 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실제 촬영장에서 배우들도 느꼈을 만큼 환상적인 구도와 조명이었는데, 이는 촬영을 맡은 로저 디킨스의 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블루레이는 이 장면의 질감을 확실히 살려준다.)

매티는 처음부터 아주 강인하고 용기있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주변 사람들이 어린 아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고 할 때, 글도 못 읽는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 밖에는 없어서 내가 나서야 한다는 이유를 대곤 하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보여지는 매티의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더라도 나서고야 말았을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다. 매티가 만나게 되는 카그번과 라 뷔프는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지만, 무언가 하나 씩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카그번은 배짱있고 노련한 보안관이지만 정의보다는 돈에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고, 너무 이런 생활을 오래 한 나머지 불한당 들과의 관계에 익숙해져 버렸을 정도다.

그의 반해 텍사스 레인저 라 뷔프는 역시 레인저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현상금을 위해 먼 길을 달려 카그번과 협력 했을 뿐 그 이상의 목적은 없는 이다. 이런 이들이 매티를 만나서 깨닫게 되는 것이 어쩌면 이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확실한 건 이 작품의 전개에 있어 복수는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듯 영화는 마침내 매티가 아버지를 죽인 톰 채니 (조쉬 브롤린)와 만나게 되는 장면을 마치 우연처럼 그리는 한 편, 이 후에도 이들의 조우에 직접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로 인해 벌어지는 카그번과 라 뷔프의 행동에 더 주목하고 있다.





이미 찌들 대로 찌든 캐릭터와 냉정하고 차가운 캐릭터가 뚜렷한 목적성으로 똘똘 뭉친 주인공에 의해 동화되는 이야기의 전개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코엔 형제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이 동화의 과정을 별로 자극적이지도, 더나아가 심심할 정도로 건조하게 그리고 있다. 만약 카그번과 라 뷔프가 동화되는 과정을 어떤 사건을 두고 감정적으로 급격하게 변하는 것으로 연출하거나, 매티의 복수에 촛점을 맞춰 톰 채니와의 긴장 관계에 심혈을 기울였다면 '더 브레이브'는 오락적으로는 더 효과 높은 작품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그저 그런 평범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묵직한 주제를 뒤에 탄탄히 받쳐두고는 마치 이 주제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려고 하면 할 수록 그 의미가 퇴색된다고 믿는 것처럼, 별다른 수식어 없이 진중하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세 인물이 서로에게 작용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이 작품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서로에게 무심한 듯 미미한 수준의 영향이 작용하는 듯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은 서로에게 (그것이 순간일지언정) 작지 않은 변화를 이끌어 낸다)

이러한 영화의 화술 덕에 영화의 마지막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히 들려주는 후일담은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찬송가의 분위기와 맞물려 종교적이기까지한 무게를 전한다. 후일담을 들려줄 때도 영화는 절대 신파나 감정의 극대화를 노리지 않는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장 가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진정한 용기란 어떤 수식어나 포장도 필요 없는, 강요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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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의 화질은 예상보다 훨씬 더 좋은 편이다. '더 브레이브'는 영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상당히 매말라 있고, 색이 많이 빠진 듯한 느낌을 주는데 블루레이의 화질은 이런 영상의 매마름이 더 큰 갈증으로 느껴질 정도로 날카로움마저 더하고 있다. 하나하나의 디테일과 샤프니스가 살아 있기 때문에 마치 화면이 물기를 가득 빨아먹은 듯한, 그래서 영상이 더 예민하게 알알이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체감하는 화질은 스크린 샷을 보는 것 보다 훨씬 더 좋은 편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작품은 촬영을 맡은 로저 디킨스가 만든 영상미가 매우 아름다운 작품인데, 자연과 사람을 하나로 담아낸 그의 멋진 풍광을 느끼기에 블루레이는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그 만큼 타이틀의 화질이 잘 빠졌다.


Blu-ray : Sound



사운드 역시 레퍼런스라 불러도 좋을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들처럼 대규모 폭발 씬이나 액션 씬은 없지만, 두 세 번의 총격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운드는 확실히 우월하다. 말을 타고 벌이는 총격씬에서는 격발음과 말발굽 소리, 그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미세한 소음들까지 귀를 기울이면 그대로 전해진다. 타이틀을 보고나면 '와! 사운드가 정말 기가 막히네!'라고 생각날 정도로 드러나는 사운드는 아니지만, 따져보면 사운드 역시 화질 못지 않은 퀄리티라는 것을 귀로 알 수 있다. 어쩌면 화질과 음질 면에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이 작품이 이렇게 빵빵 터져주니 몸둘바를 모르겠다.




Blu-ray : Special Features





'Mattie`s True Grit'에서는 '매티 로스' 역할을 맡은 신예 헤일리 스타인펠드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이 작품의 중심이자 '진정한 용기'를 몸소 표현해 내는 매티 로스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는 물론, 헤일리 스타인펠드가 매티 역할 오디션을 보던 비디오 자료도 확인할 수 있으며, 코엔 형제와 작업하며 느낀 간단한 소감도 들려준다. 신인 배우인 헤일리에게도 자신의 의견을 100% 반영해주고, 두 감독이 서로에게 전혀 터치하지 않는 듯 하면서도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는 걸 인터뷰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From Bustles To Buckskin - Dressing For The 1880s'에서는 1880년대를 재현하기 위해 가장 신경을 쓴 부분 중 하나인 의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는데, 철저한 고증을 통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카우보이 모자와는 다른 조금 독특한 모양의 당시 카우보이 모자는 물론, 각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고유의 의상에 대한 뒷이야기가 흥미롭다. 특히 맷 데이먼이 연기한 '라 뷔프'의 벅스킨 소재의 의상에 대한 이야기는 라 뷔프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었고, 베리 페퍼가 연기한 '럭키 네드 페퍼'의 양모 덧바지 의상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Colts, Winchesters & Remingtons: The Guns of a Post-Civil War Western'에서는 메뉴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콜트' '윈체스터' 레밍턴' 등 영화의 배경이 된 남북전쟁 이후 시기 서부에서 사용되던 총기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재미있는 건 극 중 사용된 총기들을 새롭게 제작하기 보다는, 당시의 실제 총기와 동일한 복제품을 이베이 등을 통해 공수했다는 점인데, 최대한 당시의 느낌이 나도록 (다시 말해 오래된 느낌이 아니라 실제 당시에 사용되었을 법한 수준의;;) 의도했던 총기 담당자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가영상이었다.




'Re-Creating Fort Smith'는 작품의 배경이 된 포트 스미스를 재현한 과정과 뒷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텍사스 그레인저 지역의 마을을 우연히 발견해, 이 곳을 포트 스미스로 둔갑시키게 된 과정을 들려주는데, 거의 마을을 통째로 세트로 사용한 점이 이 영화의 현실감을 불어넣은 또 다른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마을에 본래 존재하던 건물들이 어떻게 세트로 변경, 추가 되었는지를 비교해 보여주는 영상도 흥미롭다.




''The Cast'에서는 이 작품에 출연한 환상적인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제프 브리지스를 비롯해 맷 데이먼이나 베리 페퍼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작품의 완성도를 흔들 수 있을 정도의 비중을 갖고 있던 '매티 로스'역을 맡은 헤일리 스타인펠드의 경우 데뷔작이라 걱정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헤일리가 어떠했는지는 이미 작품으로 보여주었으니 더이상의 코멘트는 필요 없을 듯 하다. 아,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코엔 형제의 전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 조쉬 브롤린의 멀쩡한(?) 인터뷰 영상을 만나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Charles Portis - The Greatest Writer You`re Never Heard of…'에서는 이 작품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 찰스 포티스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동료 작가, 영화 감독, 가수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존경하는 찰스 포티스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는 의미 깊은 부가영상이라 할 수 있겠다. 블루레이에 수록된 부가영상 가운데 가장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약 30분 분량).




마지막으로 'The Cinematography of True Grit'에서는 촬영을 맡은 로저 디킨스를 통해 이 작품이 표현하고자 했던 아름다운 영상미에 대해 들려준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급했던 바와 같이 이 작품은 영상미가 상당히 뛰어난 작품인데, 영화를 볼 때 미처 다 파악하지 못했던 장면의 숨은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부가영상은 HD영상으로 제공된다.


 


[총평] 가끔 극장에서 인상깊게 본 영화를 다시 블루레이로 보게 될 때면, 극장에서 볼 때보다 더 깊이 와닿는 작품들이 있는데, 코엔 형제의 '더 브레이브' 역시 블루레이로 다시 봐서 더 좋은 작품 중 하나였다. 여기에는 물론, 작품 본연이 갖고 있는 그 깊이가 갈 수록 깊어지기 때문임을 말할 것도 없을 것이며, 레퍼런스급의 화질과 사운드가 한 몫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히어 애프터 (Hereafter, 2010)
죽음이 세상을 사는 방식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작 '히어 애프터 (Hearafter)'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단, 좀 더 죽음과 사후세계에 관한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간 수 많은 드라마와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던 이스트우드였지만 죽음에 관한 직접적인 이야기는 거의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히어 애프터'는 한 편으론 상당히 밋밋하다. 클래이막스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이 감정적으로 울컥하는 것에 가깝지,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기승전결에 따른 절정으로 보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영화가 마지막으로 향할 수록, 그리고 극장을 나오면서부터 그 깊이가 더 느껴지는 깊이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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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거대한 쓰나미에 휩싸인 여주인공 '마리 (세실 드 프랑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또한 입양되지 않고 약물중독 엄마와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는 한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도 꺼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후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이제는 더상 이 일을 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려하는 '조지 (맷 데이먼)'의 이야기도 시작한다. 각자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이 하나의 사건 혹은 결국 연관되고 있다는 (연관된다는) 이야기는 흡사 '바벨'과 '아모레스 페로스'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작품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히어 애프터'는 인간들 간의 관계가 아닌 인간과 죽음, 더나아가 죽음이라는 것이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아주 천천히 들려준다. 

남겨진 자의 이야기, 그러니까 죽은 자를 그리워해 그들과 단 한번이라도 만나고 싶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산 자의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영화화 되어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실 '히어 애프터'도 겉모양은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쌍둥이 형을 잃고 내내 그리워하며 형과 단 한 번이라도 얘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는 뻔히 알면서도 눈물이 날 수 밖에는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분명 이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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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 영화가 다소 밋밋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히어 애프터'는 죽음이 세상을 사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세 가지의 경우를 모두 등장시켰다. 사후세계를 볼 수 있는 남자의 이야기와 사후세계를 직접 경험하고 난 뒤 인생이 바뀐 한 여자, 그리고 가장 가까웠던 형제를 잃은 한 소년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의 이야기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처럼 하나로 완벽하게 만나지도 않고, 각자 절정에 이르지도 않는다. 무언가 더 드라마틱한 전개와 결말은 없지만, '히어 애프터'는 이 세 명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통해 결국 또 한 번 새삼스레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한 편, '어떨까?'라는 단순한 호기심 대신 무언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감흥을 살며시 안겨준다.  

솔직히 '히어 애프터'를 글로 표현하기는 참 모호한 부분들이 너무 많다. 아니, 글로 표현할 만한 요소들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무언가가 분명 가슴에 남도록 한 작품이라는 것은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인정일지, 삶에 대한 위로일지 아니면 그 모두를 아우르는 위로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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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연출 외에 음악도 맡고 있는데 (이 작품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확실히 이스트우드의 음악적 성향을 파악할 수 있어요), 이 음악이 영화가 주는 담담함과 위로를 더 배가 시켜주는 것 같네요.

2.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도 출연하는데, '스파이더맨 3'에 비하면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었지만, 그 어느 영화보다 아름다운 모습이더군요;;

3. 데릭 제코비는 본인 역할로 이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데, 극중 맷 데이먼이 자기 전에 항상 듣는 오디오 북의 목소리 주인공이 바로 그였죠. 본인 역할로 출연했다는 것처럼, 데릭 제코비는 실제로 영국이 나은 명배우이자 감독 그리고 오디오 나레이션 북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죠. 최근 '킹스 스피치'에서 주교 역할로도 출연했었구요.

4. 참고로 영화 초반에 나오는 대형 쓰나미 장면 때문에 일본에서는 개봉이 취소되었죠. 저도 그 장면을 보는데 결코 영화로만 느껴지지 않아 더 안타까웠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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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브레이브 (True Grit, 2010)
코엔 형제가 말하는 진정한 용기


존 웨인 주연의 서부영화 '진정한 용기 (True Grit, 1969)'와 찰스 포티스의 소설 'True Grit, 1968'을 리메이크한 코엔 형제의 'True Grit (국내 개봉명 : 더 브레이브)'은 서부 영화의 정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던 그들의 전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는 또 다른 묵직한 서부영화인 동시에 '시리어스 맨' 이나 '번 애프터 리딩'에서 보여주었던 재기 넘치는 '코엔 형제스러움'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1880년대를 배경으로 아버지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나서는 당찬 14살 소녀 매티 (헤일리 스타인펠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매티가 여정을 위해 만나게 되는 루스터 카그번 (제프 브리지스)과 라 뷔프 (맷 데이먼)의 캐릭터가 더해져, 간단하지만 힘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코엔 형제가 이 작품을 다시 꺼내서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용기 (True Grit)'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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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티는 처음부터 아주 강인하고 용기있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주변 사람들이 어린 아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고 할 때, 글도 못 읽는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 밖에는 없어서 내가 나서야 한다는 이유를 대곤 하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보여지는 매티의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더라도 나서고야 말았을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다. 매티가 만나게 되는 카그번과 라 뷔프는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지만, 무언가 하나 씩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카그번은 배짱있고 노련한 보안관이지만 정의보다는 돈에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고, 너무 이런 생활을 오래 한 나머지 불한당 들과의 관계에 익숙해져 버렸을 정도다. 그에 반해 텍사스 레인저 라 뷔프는 역시 레인저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현상금을 위해 먼 길을 달려 카그번과 협력 했을 뿐 그 이상의 목적은 없는 이다. 이런 이들이 매티를 만나서 깨닫게 되는 것이 어쩌면 이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확실한 건 이 작품의 전개에 있어 복수는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듯 영화는 마침내 매티가 아버지를 죽인 톰 채니 (조쉬 브롤린)와 만나게 되는 장면을 마치 우연처럼 그리는 한 편, 이 후에도 이들의 조우에 직접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로 인해 벌어지는 카그번과 라 뷔프의 행동에 더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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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찌들 대로 찌든 캐릭터와 냉정하고 차가운 캐릭터가 뚜렷한 목적성으로 똘똘 뭉친 주인공에 의해 동화되는 이야기의 전개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코엔 형제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이 동화의 과정을 별로 자극적이지도, 더나아가 심심할 정도로 건조하게 그리고 있다. 만약 카그번과 라 뷔프가 동화되는 과정을 어떤 사건을 두고 감정적으로 급격하게 변하는 것으로 연출하거나, 매티의 복수에 촛점을 맞춰 톰 채니와의 긴장 관계에 심혈을 기울였다면 '더 브레이브'는 오락적으로는 더 효과 높은 작품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그저 그런 평범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묵직한 주제를 뒤에 탄탄히 받쳐두고는 마치 이 주제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려고 하면 할 수록 그 의미가 퇴색된다고 믿는 것처럼, 별다른 수식어 없이 진중하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이러한 영화의 화술 덕에 영화의 마지막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히 들려주는 후일담은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찬송가의 분위기와 맞물려 종교적이기까지한 무게를 전한다. 후일담을 들려줄 때도 영화는 절대 신파나 감정의 극대화를 노리지 않는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장 가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진정한 용기란 어떤 수식어나 포장도 필요 없는, 강요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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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연을 맡은 매티 로스 역의 헤일리 스타인펠드는 실제로도 14살의 소녀인데, 제프 브리지스, 조쉬 브롤린, 맷 데이먼을 리드할 정도로 당찬 연기가 인상적이더군요. 오늘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여우조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어 자리를 하기도 했는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라 할 수 있겠네요.

2. 럭키 네드를 연기한 베리 패퍼도 인상적이었는데, 항상 전쟁 영화나 범죄 영화 등에서 우수한 병사나 요원 중 하나로 나온 적은 많았지만, 이번 처럼 무리의 우두머리로 나온 것은 거의 처음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래서 인지 개인적으로는 뿌듯하기까지 했다는 ㅎ

3. 조쉬 브롤린은 '환상의 그대'에 이어 연속으로 찌질한 연기에도 재능이 있음을 이번 작품에서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한 동안 조쉬 브롤린 하면 날카롭고 좀 무섭기까지한 이미지였는데, 이러다가 너무 쉬워지는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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