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고양이처럼 (The Future. 2011)

미란다 줄라이의 사실적 미래



미란다 줄라이가 돌아왔다. 2005년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위 노'을 통해 강한 인상을 주었던 감독이자 비디오 아티스트인 그녀가 2011년 신작 '미래는 고양이처럼 (The Future)'로 돌아왔다. 미란다 줄라이라는 브랜드가 국내에서는 그리 대중적이지 못한 탓에 씨네큐브 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에 뒤도 돌아볼 것 없이 예매해, 일찌감치 (혹은 사실상 마지막일지도 모를) 극장에서 만나보게 되었다. 'The Future'로 돌아온 미란다 줄라이는 여전히 이상했고, 또한 여전히 그 겉으로 보여지는 이상함과 낯선 가운데 공감대가 느껴지는 진심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도 여전히 그러했다.



ⓒ Razor Film Produktion GmbH . All rights reserved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오래된 커플인 제이슨과 소피는 입양을 하지 않으면 안락사를 당할 운명에 놓인 병든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바로 집으로 데려갈 수 없고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꾹꾹이'와 함께 하는 날을 기다리는 한 달의 시간을 다르게 살아보기로 결심하고, 다니던 직장들도 관두고 인터넷마저 끊고는 새로운 생활을 시도한다.


바로 이 한 달 동안 제이슨과 소피에게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 일들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이상함을 대변할 수 있겠다. 사실 일반적인 내러티브로 따지자면 이 둘이 겪는 일들은 굉장히 이상한 일일 수도 있는데, 미란다 줄라이의 세계라는 것을 가정한 탓인지 영화 속 제이슨과 소피가 겪는 이상한 일들에 크게 흔들릴 것 까지는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이상한 일'로 통칭하고 있는 일들이, 다른 영화들처럼 본의아니게 닥친 일들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자의적 일들이라는데에 차이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영화의 포인트는 이런 이상한 일들을 겪으며 이들이 어떻게 변해가는 가에 대한 것 보다는, 왜 제이슨과 소피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 가를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그들이 꿈꾸던, 꿈꾸었던 미래(The Future)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끔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이상한 것들 가운데서도 전해졌던 미란다 줄라이의 진심이었다.



ⓒ Razor Film Produktion GmbH . All rights reserved


확실히 미란다 줄라이는 감독으로서도 좋지만 비디오 아티스트와 작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때 좀 더 장점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을텐데, 이 작품에서 역시 그녀만의 상상력과 감성을 덜어내지 않고 담아낸 후반부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특히 '미래'라는 영화의 제목 답게 시간과 공간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다루는 장면에 있어서는, 이 영화가 단순한 소품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채팅 장면처럼 이후에도 그녀를 떠올릴 때 연상될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무언가 전하려는 메시지나 감성 없이 단순히 이질감이 느껴지고 특이하다 라는 것만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그 곳에 머물렀겠지만, 미란다 줄라이의 '미래'에는 그 이상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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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란다 줄라이는 참 파마머리를 좋아하는 듯 싶어요. 전작에서도 그랬었고 유독 주요 인물들이 동그랗게 머리를 말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죠.


2. 영화 속 꾹꾹이의 대사는 역시나 그녀가 맡았더군요. 이런 녹음을 하면서 혼자 얼마나 재미있어 했을까요? ㅎ


3. 계속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영화처럼 글을 썼지만, 사실 굉장히 현실적이라 쓸쓸하기까지한 작품이었어요. 특히나 연인 사이를 묘사하는 것에 있어서는 말이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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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몰랐던 순간

2005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상, 칸느 영화제 황금카메라상 등 해외 유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며 화제를 모았던 작품 'Me and You and Everyone and We Know' (이하 ‘미 앤 유’)는 감독이자 각본을 써낸 미란다 줄라이 (Miranda July)를 빼고는 절대 논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녀의 프로필은 그녀의 작품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스펙트럼만큼이나 다양한데, 이 작품 ‘미 앤 유’ 이전에 다섯 편의 단편영화를 만든 영화감독이자 설치 미술 작품을 뉴욕과 런던에 공개하기도 했으며, 단편 소설을 기고하기도 한, 말 그대로 아티스트이다. 이미 스무 살 무렵에 자신의 작품을 배급하고자 웹을 기반으로 배급 네트워크를 만들었으며, 웹상에서 자유롭게 다른 사람들과 작품을 공유하고 소통해가며 새로운 작업을 창조해냈다. 한 마디로 우리가 그녀를 알게 되고 인디 영화계의 슈퍼스타로 거듭나게 된 것은, 그녀의 첫 번째 장편영화 ‘미 앤 유’를 통해서였지만, 이미 그녀는 수년전부터 다양하고 창조적인 예술 작업들로 소수 마니아들 사이에서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미란다 줄라이의 최근이 궁금하다면, 그녀의 일상과 프로젝트들을 엿볼 수 있는 블로그를 들러보면 좋을 듯하다(http://meandyou/typepad.com). 아마도 이 영화를 감명 깊게 감상한 이들이라면 그녀에 대해 더욱 알고 싶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 작품 ‘미 앤 유’는 사람들 간의 관계와 소통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외 된 인물들 간의 만남과 소통의 부재, 소통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소박하지만 남다른 감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다른 영화들과 같이 이렇다 할 커다란 갈등 요소도 없으며 기승전결에 구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영화들이 정형화된 문법에 맞춰 써내려간 글이라면, 줄라이의 작품은 틀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써내려간 산문과도 같다. 오프닝 크레딧 장면부터 남다른 감각을 선보이는데, 극중 리차드가 파란 잔디가 깔린 집 앞 마당에서 자신에 손에 불을 붙인 뒤 흔드는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하며, 제목이 오버 랩 되는 인트로는 이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감 잡을 수 없는 동시에 묘한 호기심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미 앤 유’는 미란다 줄라이의 다양한 재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설치 미술에 능한 그녀이기에 가능했을 공간의 활용도와, 보는 사람이 시각 뿐 아니라 오감을 동원하여 느껴야만 될 색감과 질감이 풍부한 배경과 소품들. 너무 감정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영화 내내 유지하게 해주고 있는 사운드트랙, 너무나 아름답고 기막힌 장면 장면과 주고받는 대사의 맛과 동시에 마치 리차드 링크레이터를 연상시키는, 아니 그 보다 더욱 감각적이고 창조적인 스크립트는 놀라움을 넘어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 같은 대사의 정점은 모든 장면에 삽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특히 영화의 초반부 리차드와 크리스틴이 처음 만나 길 모퉁이에서 헤어지기까지의 시퀀스는, 줄라이 만의 감각을 잘 보여주는 단적인 얘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채팅 시퀀스에서 로비가 상대방이 한 말을 복사한 뒤(Copy) 붙여 넣는(Paste) 장면에서는 정말 그 기발함에 박수가 나올 정도였다.





그녀의 감각을 100% 표현해내는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특히 아역 연기자들의 연기는(특히 표정연기!) 경이롭기 까지 하다. 로비 역할을 맡은 브랜든 랫클리프는 단독 주인공이 없는 이 영화에서도 단연 돋보이는데, 단지 귀엽기 만한 표정들을 넘어서서 이러한 영화의 성격을 100% 파악하고 표현해내는 듯한 연기를 펼친다. 실비 역할의 칼리 웨스터먼의 연기도 놀라운 수준인데, 흡사 ‘천사들의 합창’의 ‘마리아 호아키나’를 연상시키는 외모의 실비가 만들어내는 표정 하나 하나는 마치 무표정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동안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없어서 무표정으로 느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극 중 로비와 실비가 만들어내는 표정 연기 자체만을 이 영화를 설명하는 커다란 구성요소로 정의 내려도 될 만큼, 이 두 아역 연기자가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극에 전체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친다.





이번에 출시된 DVD는 작품만큼이나 깔끔하고 심플한 디자인과 구성으로 출시되었다. 1.8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독특한 색감은 잘 살려주며 따뜻한 분위기도 잘 전달하고 있다. 영상 자체가 높은 콘트라스트비나 화질을 요하는 작품은 아님으로, 작품에 걸 맞는 최적화된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커다란 채널의 분리도나 사운드의 장점을 극대화한 작품은 아니지만, 중간 중간 수록된 스코어와 대사 전달에는 부족함이 없다. 서플먼트로는 삭제 장면과 예고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영화와 관련된 제작 다큐 등의 영상은 아니더라도, 미란다 줄라이에 대해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기본적인 프로필을 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Me and You and Everyone We Know'는 무언가 새로운 감각에 영화가 필요했던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일 것이며,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될 작품이다. 또한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통해 미란다 줄라이의 앞으로의 행보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지만, 한 편으론 그 속에서 모두가 몰랐던 순간을 잡아낸 작품이기도 할 것이다.

2006.04.04

글 / 아시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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