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까지는 의외로(?) 연말에 영화부분은 베스트를 정리하지 못하고 음반에 관해서만 쭈욱 정리를 해왔었는데,
올해는 음반을 그만큼 듣지도 못한 것도 있고 영화를 워낙 많이 본 것도 있어 본격적으로 올해를 정리하는 포스트를
작성해 보기로 했습니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부분을 나누어 선정해 보았는데, 한국영화는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산해보니 의외로 그리 많이 보지는 못했더군요. 그래서 베스트 10을 작성할만한 작품들을
소화하지 못해 부득이하게 베스트 5로 조정하게 되었습니다(외국영화는 넘쳐나서 베스트 15로 최종 결정하기로 했고,
다큐나 음악영화는 수가 많아서 아예 따로 섹션을 두어 선정할까 하다가 그냥 총 15편으로 선정하게 되었네요).

이미 연말이라 많은 블로거 분들과 전문가 분들이 2008년 베스트 리스트를 작성하셨는데,
한국영화 부분에서 가장 많이 베스트 1위로 선정된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이나 전도연, 하정우 주연의 <멋진 하루>를
개인적으로 끝내 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이 두 작품 외에도 은근히 보려고 했던 한국영화들을 놓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네요. 못 본 영화들은 다음 달에 DVD로라도 감상을 해야겠네요.

한국영화 베스트 5로 선정된 작품들 간에 순위는 따로 정하지 않았으며, 개봉한 순서대로 정렬하였습니다.
각 영화의 이미지나 아래 리뷰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영화의 리뷰로 이동합니다.






나홍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추격자>는 처음 본 순간부터 이른바 '물건'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 이렇다할 잘 만들어진 장르 영화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데뷔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시나리오의 짜임새와 극적 긴장감을 잘 컨트롤하는 연출력은 봉준호 감독의 걸작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으며,
주로 조연으로 출연해 오던 김윤석이라는 배우에게 집중 조명을 가져다 주기도 했으며, 하정우라는 신인 아닌
신인배우를 발견할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18세 관람가로서 녹녹치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대중적으로
이 정도의 흥행을 거두었다는 것도 놀랍고, 장르 영화가 한국에서 이 정도로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에
반갑기도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4885 번호를 갖고 계신 분들은 조금 섬찟하셨을듯 ^^;







<다찌마와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어찌보면 <추격자>보다도 더욱 지독한 장르 영화라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연한 기회에 영화의 공식블로그에 필진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 류승완 감독님은 물론,
임원희 씨와도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올해 잊을 수 없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단편의 코믹스러움과 한국고전 영화들에 대한 비틀기, 그리고 류승완 만의 액션에 대한 애착이 묻어났던 이 영화가
생각보다 더 많은 대중들에게 어필하지 못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한 편으론 너무 아쉽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한국영화 베스트 5에 꼽게 된 작품임에도 두 번의 인터뷰에(특히 감독님과의 인터뷰에)
모든 정성을 쏟아부은 탓에 따로 리뷰를 작성하지 못했던 케이스이기도 하네요. 감독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무려 감독님이 이전부터 제 블로그를 알고 가끔 들러주신다는(dp의 닉네임도 기억하고 계셨다는 ㅠㅠ)
믿을 수 없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되어 심히 떨기도 했던 바로 그 영화 <다찌마와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입니다.







사실 <고고70>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금 아쉬웠던 영화이긴 했습니다. 국내에서 음악영화를 만든다면(특히나 라이브를
직접 소화해야만 하는 음악영화라면) 남자 배우가운데 이견 없이 가장 첫 번째로 고려될 배우인 조승우가 출연하고 있고,
현재 '문샤이너스'로 활동하고 있는 기타리스트 차승우가 배우로서 출연하고 있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음악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최호 감독의 작품이었기에 기대치가 평소보다 높았던 것이 사실이긴 했죠.
<고고70>은 조승우의 여전한 연기와 차승우의 실제 무대 위 모습을 영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장점, 그리고 신민아라는
여배우를 다시 보게 된 것만으로도 괜찮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영화 내내 만나볼 수 있었던 'Soul' 가득한 음악도
만족스러웠구요. 한가지 아쉬운건 좀 더 흥행이 될 수 있었을텐데, 영화 외적인 소송 문제들이 더 커져 영화를 보기도 전에
미리 판단해 버린 관객들이 많아, 의외로 금방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린 것 같아 아쉬운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베스트 5를 꼽으면서 순위는 따로 정하지 않기로 했지만, 한국영화의 경우 한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미쓰 홍당무>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경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었던 이 영화는 한국영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들과 개성 강한 유머코드로 무장한 시나리오로 불쑥 등장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한국영화에서 '캐릭터'가 살아있는 영화를 만난 것 같아 몹시도 반가웠던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공효진이 연기한 '양미숙'이라는 캐릭터는 <추격자>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지영민'과 더불어 올해 한국영화 최고의
캐릭터였으며, 공효진 외에 서우, 황우슬혜 등이 연기한 다양한 캐릭터들이 유기적으로 살아 숨쉬고 있었던
생동감 넘치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 역시 굉장히 코드가 강한 작품이었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절로 뿌듯해지는 영화이기도 했구요. 이런 영화라면 언제든 대 환영입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과속스캔들>은 예정에 없던 의외의 영화였습니다.
뻔할 것 같은 제목과 뻔할 것 같은 인물들로 도배되어진 영화일 것이라는 무서운 선입견으로 볼 계획이 없던 영화였으나,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호평들에 이끌려 보게된 <과속스캔들>은 과연 좋은 가족영화였으며, 괜찮은 성장영화 더군요.
특히나 한국영화를 따져보면 온가족이 볼만한 가족영화나 드라마가 실제로 많지 않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연말에 온가족이 부담없이 볼만한 코미디이기도 했고, 캐릭터들도 과하지 않았던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박보영이라는 여배우에게 단번에 큰 관심을 집중시킨 영화이기도 했으며, 차태현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된 영화,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지만 영화를 선택할 때 선입견은 반드시 버려야할 요소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영화였습니다.




2008년 저의 한국영화는 이렇게나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가장 기대했었던
영화이긴 했지만 베스트 5로 꼽기엔 조금 아쉬움이 남았던 영화였네요. 역시 베스트 5까지 꼽기엔 부족했지만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느날, 그 길에서>도 인상깊었던 작품이었구요.

내년 한해도 기다려지는 작품들이 너무 많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비롯해, 봉준호, 홍상수, 장준환, 장진 등
다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감독의 작품들이 내년에 찾아올 예정이라, 2009년도 바쁜 한해가 될 것 같네요.
(이 가운데는 제 지인 중 한분의 입봉작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쁜 놈이 더 잘잔다>가 바로 그 영화!>

2008년 한해도 좋은 영화 많이 만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2009년에도 부탁할께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국내 영화시상식 이라는 것이 어차피 주최하는 신문사나 주요 스폰서에 구미에 맞게 진행되는 터라 크게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니지만, 도대체 내가 보았던 영화들 가지고 상을 주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상했던 '청룡 영화제'가 워낙에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대한민국 영화대상'을 보는 마음은 한결 편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아카데미도 그렇고, 사실상 모든 시상식이 주최측에 입맛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국내 시상식의 경우 그 주최측에 판단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 항상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작은 영화들이나 소외된 영화들에 특히 관심이 많기 때문에 어차피 주목 받는 영화들만의 잔치인
국내 영화 시상식이 취향에 맞지는 않지만, 최소한 대중적인 면이라던가 여러 사람이 공감할 만한 수상이라면
크게 불편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의지도 없는데, 그러면에서 제 7회 대한민국 영화대상은 대부분 수긍할 만한
수상이었던 것 같다. <추격자>의 스윕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바. 그럼에도 불안했던 것은 <추격자>라는 영화가
이른바 나이 많은 심사위원들에 구미에는 그리 땡기는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혹시나...하는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는데(뭐 이미 이런 불안감이 현실로 들어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남우주연상, 신인감독상, 각본/각색, 편집, 조명 등 대부분의 주요상을 <추격자>가
휩쓸고 말았다. 김윤석의 수상 멘트는 이미 여러번 들었던 것이긴 했지만, 말미에 아내나 가족 등이 아닌
파트너였던 '하정우'를 언급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여우조연상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우.생.순>의 김지영 수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이 영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
실망했던 것이 작용했다고 봐도 되겠다. <놈놈놈>의 경우 MBC와는 사이가 별로인지 주요상의 노미네이트도
되지 않았으며, 방준석은 <고고 70>으로 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여러가지 수상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누가 뭐래도 여우주연상 부분이었다.
사실 올해 여우주연상은 모조리 <미쓰 홍당무>의 공효진이 수상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한해였는데,
역시나 이 영화나, 그녀의 연기나, 심사위원들이 좋아하는 취향이 아닌터라 철저히 외면 당했었고,
이 날도 예쁘게 차려입은 손예진을 보면서 '설마.....'하는 걱정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뭐랄까, 배우의 수상 소감을 들으며 심하게 공감해 눈물 마저 글썽거렸던 적은 아카데미에서 포레스트 휘태커가
주연상을 수상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공효진의 경우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여자 신인상을 받은 서우와 감독인 이경미는 정말로 펑펑 울었는데, <미쓰 홍당무>를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 중
한편으로 꼽는 나로서도, 왠지 모르게 공효진의 수상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무언가 금단의 벽을 넘는 듯한
승리가 엿보여서였달까.

어쨋든 '단상'이라고 했으니 여기서 마쳐야 겠다.



1. 윤정희씨는 등장할 때마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2. 우리나라는 정말 제대로 된 시상식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상을 타는 사람만 참석을 하고, 못타는게 확정되면
    식이 끝나기도 전에 집에 가버리는 일들이 언제까지 반복될지.
3. 신성일씨의 파마는 조금 쇼킹했다.
4. 박철민씨의 시상 소감은 나름 신선했다!
5. 이제 '비'와 여배우들을 오가는 카메라 워크는 식상하다.


미쓰홍당무 여우주연상/신인여우상 수상 기념 리뷰 다시보기!



미쓰 홍당무 (2008)
궁상이라 욕해도 좋다!


개봉 전 부터 제법 화제가 되었던 <미쓰 홍당무>를 오늘 드디어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는지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시다시피, 박찬욱 감독 제작작품이라는 점 때문이었죠. 일반관객들에게는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작품이다라는 걸 마케팅 측면에서 강조하여 홍보하고(전 근데 아직도
박찬욱 감독이
대중적인 홍보 포인트가 된다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만 느껴집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흥행 실패한 이유는
관객들이 박찬욱이라는 감독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가 전혀 달랐음으로 벌어진
현상이라고 생각되거든요. 
<복수는 나의 것>이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올드보이>보다는 더 박찬욱스럽다고 생각되는데, <올드보이>의 엄청난 성공이 그를 너무 대중적인 감독으로 많은 이들이 오해하도록 만든것이 아닌가 싶거든요 ㅎ),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역시 박찬욱 감독이긴 하지만 그 이름 자체가 아니라, 박찬욱 감독이 오랫동안
숨겨왔던 비밀병기를 드디어
꺼낸다는, 신인 이경미 감독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목을 받았던 영화였죠.

개인적으로는 처음에는 아주 큰 기대를 가졌었다가 막상 포스터 등이 공개되던 시점에서는 그저 그런
코미디인가 보다,
즉 안면 홍조증이 주가 되는 코미디인가 보다 해서 살짝 기대를 접었었는데, 이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안면 홍조증은
마치 주인공이 안경을 썼다 안썼다 정도의 차이일뿐 그저 캐릭터를 소개하는 하나의
소재일 뿐이더군요.
<미쓰 홍당무>는 정말 오랜만에 대한민국에서 만나는 캐릭터가 빛나는 영화이며,
 마치 우디 알랜의 영화처럼 수다에서 오
는 재미도 느낄 수 있고, 찰리 채플린의 영화처럼 슬랩스틱
코미디서부터 결국엔 유쾌한 웃음과 씁쓸한 웃음마저
동시에 느껴지는 보석과도 같은 2008년
한국영화의 수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장면에서 두 배우의 슬랩스틱 코믹연기는 정말 빛이 나더군요. 왠지 '허걱'이란 통신용어를 몸으로
시각화 하는
 느낌이었달까요)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공효진의 인상적인 표정으로 떡하니 채워져있는 포스터가 인상적인 <미쓰 홍당무>는
정말 리얼한
캐릭터 영화입니다. 일단 공효진이 연기한 주인공 '양미숙'의 캐릭터는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캐릭터이자, 오
랫동안 기다렸던 본격적인 캐릭터랄까요. 안면 홍조증으로 인해 시도때도 없이 붉게
변하는 얼굴 빛을 재쳐두더라도,
그녀의 다양한 표정연기와 표정연기에 가려 도드라지진 않지만 몸을 쓰는
연기에서도 '양미숙'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그
 자체로 독보적인 존재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미숙'은 캐릭터 영화의 주인공 답게 마치 히어로 영화의
히어로처럼 의상도 거의 저 회색 코트의 단벌로
등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양미숙'이라는 캐릭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바로 그녀의
대사에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연상
시킬 만큼
(실제로 이경미 감독은 우디 앨런의 영화와 찰리 채플린의 영화 같은 분위기를 염두에 두었었다고 합니다),

속사포 같은 대사들과 굉장히 잡다한 대사들이 가득한데,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다'라는 것의 미덕은 단순히 그 양이 많아서 좋은 것이라기 보다는, 그 쓸때 없어 보이는 많은 말들 가운데
(나름) 논리적인 바탕이 깔려있어야 한다는 것을 들 수 있을텐데, '양미숙'의 말들을 듣다보면 굉장히
많은 말들을 하고
또 반복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철저히 양미숙 만의 논리적인 바탕을 깔고 있는
대사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바로 그 '잡다함' 때문이었는데, 보통 일반적인
캐릭터의 대사에서는 좀 더 일반적이고
논리적으로 보이기 위해 생략하고 절제했던 말들을 최대한
짜르지 않고 확장한 듯한 대사라고 할까요. 시시콜콜 구차한
것을 다 들먹여가며 남들은 신경쓰던 안쓰던
자신만의 이야기를 끝내고야 마는 대사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여기에 가장 큰 공은 공효진씨의 맛깔스런 대사 연기에 있다 해야겠죠.



(<추격자>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지영민'이 올해 한국영화 상반기의 캐릭터였다면, 후반기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누가 뭐래도 공효진이 연기한 '양미숙'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양미숙'만으로도 괜찮은 캐릭터 영화가 됐을 법한 <미쓰 홍당무>에는 이 외에도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들이 몇몇
더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캐릭터는 신인 배우 서우가 연기한 '서종희'라는 인물입니다.
극중 이종혁이 연기한 서종철의 딸로 등장하는데, 기존 한국영화에서 교복을 입고 등장하는 학생 캐릭터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아우라를 선보입니다(교복입은 학생의 대부분은 침 뱉는 불량 학생 아니면
뭔가 사연있는
아리따운 학생이었죠. 아, <좋지 아니한가>에서 황보라가 연기한 캐릭터는 열외로 해야겠군요.
하지만 이 경우는 학교
보다는 집이 주배경이 된 영화였기 때문에 정확한 비교군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신인배우 서우의 경우 기존에 몇몇 CF를 통해 코믹함과 세련된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었던
배우였는데,
일단은 이렇게 키가 작은 배우인지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극중 공효진과 키 차이가
정말 학생과 선생님처럼
나는걸 보고는 처음엔 일종의 카메라 페이크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풀샷을 보니
아니더라구요;), CF 속에서의 진한
화장을 한 모습만 보았던터라 이렇게 화장기 하나 없고 오히려 주근깨와
다크써클까지 있는 얼굴을 보니 같은 사람인가
싶기도 하더라구요.

사실 이런 영화에서 이런 요상한 캐릭터는 그냥 요상함만으로 내세우기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우가 연기한
'서종희'캐릭터는 '양미숙' 못지 않게 매력적인 캐릭터로서 신인배우 서우의 연기력도 엿볼 수 있기도 했습니다.
특히 앞서 언급했던것 처럼 CF속의 그 인물과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완전히 중학생스러운 그 표정들,
그리고 우는 장면에서는 정말 여배우임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완전히 표정연기함에 있어 '놔버린' 그 연기가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첨에 CF에 등장할 때만 해도 그저 요상한 춤을 추는 '무슨 녀'로 잠시
주목 받고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앞으로도 상당히 기대가 되는 신인 배우로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공효진의 열연이 예상된 수순이었다면, 서우의 발견은 <미쓰 홍당무>의 가장 큰 보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인배우인 서우의 얘기가 나온 김에 이 영화를 통해 인상깊은 연기를 펼친 또 한명의 신인배우 황우슬혜의 대한
얘기도 마저하고 넘어가야 겠네요. 극중 러시아어 교사 '이유리'역할을 맡은 황우슬혜 역시 강한 캐릭터가
버티고 있는
이 영화에서 빛을 잃지 않는 열연을 펼치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어디서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 내숭 가득한 '이유리'역할을 소화하기에 그녀의
청순한 마스크는
확실히 큰 도움이 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외에 상당히 순수함을 넘어서 어리숙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게 밉지만은 않게 표현된 것은 아마도 그녀의 모습과 연기가 큰 몫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에도 출연을 하고 있는데, 독특한 이름과 더불어 앞으로 역시 기대가 되는
신인 배우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많은 남성 관객분들은 벌써부터 '황우슬혜'라는 이름을 외우셨는지도 모르겠군요 ㅎ)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언급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것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전 사실 이 영화가 단순 코미디가 아닐까 하는 선입관이 있었는데,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씁쓸한 웃음이 동시에 드는 코미디 영화더군요. 그렇다고 본격적인 블랙 코미디는 아니지만요.
일단 영화는 이른바 '왕따'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안면 홍조증으로 주목받고
주변인들에게
비호감으로 낙인아닌 낙인이 찍혀 학생 시절이나 선생님이 된 지금이나 따돌림을 당하는 양미숙의
캐릭터를 그리는
태도나 주변인들의 시선을 그리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일반적으로 루저나 왕따(이 표현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요)가 주인공이 영화에선, 주인공이 이를 극복하고 결국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즉 루저는 끊임 없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서 1등이 되고,
왕따는 우여곡절 끝에 모든 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이런 전개는
신파극 중의
신파극 보다도 뻔하다고 느껴지기에 별다른 흥미나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더나아가
교훈적인 면에서는 더더욱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래서인지 <미쓰 홍당무>에서 이들을 그리는
방식은 참 마음에 들더군요.


사실 본래 이 리뷰의 제목도 보통 같으면 '궁상이라 욕하지 마라'라고 했겠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실히
전달하는 면에서 접근했을 때는 지금처럼 '궁상이라 욕해도 좋다'가 더 맞다고 생각되더군요.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양미숙이 이루고자 하는 바는 하나도 이루어지지도 않고 피부과를 다녔지만 안면 홍조증이 결국 낫는 것도 아니죠.
영화의 마지막에 보면 결국 자신과 비슷한 동료 한 명을 더 얻은 것 외에는 이렇다할 긍정적 변화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서종희'역시 축제 무대에 올라 공연까지 마쳤지만 그렇다고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갑자기 '절친'이
됐을리는 만무하고 계속 찐따나 찐따 애인으로 놀림거리가 됐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듯 합니다.


이 영화가 좋았던 건 포스터에 있는 '내가 뭐 어때서?!'라는 문구처럼 루저인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네들의 방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내가 뭐 어때서?!'라면서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끝까지 편견과 오해와 싸워가는 모습이 더 보기 좋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외롭게 지내왔을 그들이 왜 사랑받고
관심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겠느냐만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지지 않겠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라는 식의 오기가 발동하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영화가 씁쓸했던 건 결국 자신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사회와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사건으로 마무리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감독은 의도적으로 외모나 편견들만으로 사회가 소수를 왕따시키는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여러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집요하게 이들을 무시하는 학생들의 대사라던가,
본인들은 원하지도
않았는데 '찐따와 찐따애인'이라고 이름까지 붙여서 신청해 놓고는, 시간내에 자리에
나타나지 않자 계속 방송으로
이들을 비꼬듯 반복하는 장면에서는, 이들을 왕따로 만든 다수의 악마적 횡포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단체로 리본 달고 춤을 췄던 여학생들의 미소 띤 얼굴들이 결코 예뻐보이지 않았던 것
또한 이런 면에서 가능한
연출이었죠.



(청각 자료실(?)이라고 해야되나요? 여튼 이 공간에서 이 둘이 등장하는 장면과 후에 모든 인물이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 남을 법한 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이 영화가 왜 18세 관람가를 받았는가 의아해 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폭력적이나 선정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아, 그림으로 등장하기도 하는군요 --;), 마치 영화 <클로저>의 경우처럼 음란한 채팅이나
<카마수트라>에서 인용한듯한 성적인 표현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것에 비해 실제로 시각적인 18세 관람가 장면은 없어서 아쉬운(?)분들도 있을 듯 하네요 ㅎ

개인적으로 극중 양미숙+서종희와 이유리가 채팅을 하는 장면에서는 <클로저>도 그렇고, 미란다 줄라이 감독의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역시 이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던 건 러시아어를 이용한
개그였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참 단순하지만 그 발음 때문에 웃지 않을 수 없더군요.

이 영화가 별 세 개 정도에서 별 개를 넘어 다섯에 가까운 영화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바로 그
'청각 자료실(?)'에서 벌어지는 시퀀스 때문이었습니다. 극 중 주요 모든 인물들이 드디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거침없이 의견교환을 나누는 이 시퀀스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시나리오를 맡은 작품이기 때문에 그의 전작인
<친절한 금자씨>에서의 폐교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이 시퀀스는 정말 대박이더군요.
이 공간만의 특성을 제대로 이용한 소소한 유머도 그렇고, 마치 법정에 선듯 서로가 서로를 변호하고 주장하는
이 장면은 마치 최근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비몽>에서 갈대밭 씬이 그랬던 것처럼, 단 한 장면에 굉장한 에너지가
담겨있는 멋진 장면이 아니라 할 수 없겠습니다. 특히 이 장면이 더욱 그럴듯 하고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데에는
종철의 아내 역할을 맡은 방은진씨의 포스가 크게 작용한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구요. 방은진씨가
묵직하게 무게를
잡고 있던 탓에 이 장면이 왠지 모르게 이상한 아우라를 갖게 된 부분도 분명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미쓰 홍당무>는 이 시퀀스 하나 만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공효진의 섬세한 표정연기는 그야말로 최고입니다. 저 아기자기한 눈코입과 볼이 만들어내는 표정연기는
양미숙이라는
캐릭터를 만나 120% 결과물을 쏟아냅니다)

영화를 보기 전만 해도 '올해의 한국영화다' '상반기에 <추격자>가 있었다면 후반기엔 단연코 <미쓰 홍당무>다'
라던지,
'박찬욱 감독이 밀어주는 신인 감독은 역시 다르다' 등등의 표현들에는 거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어느 영화나 그렇겠지만 개봉 전 홍보 때는 다들 조금씩 과하게 부풀리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미쓰 홍당무>도
너무 박찬욱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거대 포장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이런 표현들이 결코
크게 과장된 것 만은 아니었음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공효진을 비롯해 신인배우 서우와 황우슬혜, 그리고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보여준 방은진씨, 그리고 리뷰에도 거의
노출이 되지 않아 살짝 미안한 마음마저 드는 이종혁씨 등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도 볼만하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캐릭터 영화이자 코미디이며, 그 안에 쓸씁한 뒷 맛과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까지 넣어놓은 훌륭한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분명 마이너한 코드와 개성적인 분위기가 가득담긴 영화라 보는
이에 따
라서는 시종일관 집중할 수 없고 불편하게까지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 코드에 맞는 이들이라면 보는 내내
킥킥
거리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독특한 개성만큼 엄청난 흥행까지는 거두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개성 강한 영화가 좀 더 한국영화계에서
대접받을 수 있는 케이스를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봅니다.



1. 뭐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의 까메오 출연 이야기는 다들 너무 많이 하신터라 ^^;
2. 극중 피부과 병원에 간호원으로 나온 분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 마지막에 대모하던 사람 중에
   멀리서 오는
괴물을 한강에서 발견하고 카메라로 촬영하던 그 분이더군요.
3. 엔딩 크래딧에 도움 주신 분들에 '류승범'씨도 있더군요 ^^
4. 음악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전자음악단과 달파란이 참여하기도 했던데 너무 과하지 않은 선에서
   적절히 삽입된 것 같습니다.
5. 아마도 제가 근래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여성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6. 서우씨는 본래 서종희 역할이 아니라 이유리 역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당시 다른 촬영때문에 교복을
    입고 오디션장에 가게 되었는데, 이를 보고 아 '서종희'역할에 딱이다 라고 생각되어 급 변경 되었다고
    하네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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