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火車, 2012)

삭막한 사회 속 잊혀져 가는 존재에 대한 연민



변영주 감독의 신작 '화차'를 보았다. 이 작품은 버블 경제 붕괴라는 사회적 문제를 겪고 있던 일본의 1990년대를 배경으로 신조 교코라는 여성의 삶을 미스테리한 방식으로 풀어낸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미야베 미유키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그 원인을 주로 사회로부터 찾는 작가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그런 측면에서 변영주 감독의 작품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느낀 변영주 감독의 '화차'는 미스테리와 그 속의 인간성 그리고 이를 만든 사회의 문제에 대한 직간접 은유까지 적절한 조화를 이룬 무게감 있는 작품이었다.



ⓒ 필라멘트픽쳐스.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결혼은 앞둔 문호(이선균)와 선영(김민희)이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집으로 내려가던 중 들린 휴게소에서 선영이 갑작스레 실종되면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실종의 미스테리를 풀어가기 위해 전직 형사인 사촌 형 종근(조성하)까지 합류하면서 조금씩 실마리가 잡혀가지만, 알아가면 갈 수록 미스테리의 깊이도 마음의 상처도 더 깊어만 간다.


단순히 형식적으로만 보자면 갑작스레 사라진 선영을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선영의 존재에 대한 미스테리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화차'를 본격적인 미스테리 스릴러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화차'는 미스테리가 포인트인 작품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풀어가는 일종의 도구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원작에서는 형사인 사촌 형이 사건을 풀어가는 시점에서, 문호와 선영, 종근의 삼자 구도로 각색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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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종일관 차갑고 어두운 색감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거의 웃을 겨를이 없을 정도로 상처가 깊어만 가는 얼굴을 하고 있다. 문호가 선영을 쫓는 과정 속에는 기본적으로 선영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있다. 자신이 결혼을 결심했을 정도로 사랑했던 연인으로서의 애정은 물론이고, 점점 미스테리가 풀릴 때마다 인간적인 실망과 분노가 일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더 나아가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인간적 연민의 마음까지 도달한다 (특히 마지막 용산역 에스컬레이터 에서의 그 대사는, 애정으로 기인했을지 몰라도 분명 인간적 연민이 나타난 대사였다). 이렇듯 단순한 로맨스의 감정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적 연민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좋았다.


이렇게만 보면 김민희가 연기한 극중 선영이라는 캐릭터가 이 사회가 만든 어쩔 수 없는 피해자임만을 강조하여 연민이 들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만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꼭 그렇지 만은 않다. 관객이 선영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을 수 있도록 한 것은 맞지만, 그녀로 인해 또 다른 피해를 받은 인물들 (여기에는 문호도 포함)과 혹은 선영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는 중에 간과될 수 있었던 인물들에 대한 묘사들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관객에게 선영에 대한 연민 외에도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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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감독은 '화차'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삭막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직접적으로는 김민희가 연기한 선영이 자신으로 살아오지 못한 현실을 묘사하면서, 사람하나 죽거나 어찌되어도 아무도 관심조차 없는, 무관심과 단숨에 무너져 버리기 쉬운 낱알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즉, 더이상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도록 내몰린 사람과 내몰고 있는 사회, 또 그 사람이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각박한 사회와 어쩌면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 살기에 바뻐서 역시 내가 당하기 전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이들로 구성된 사회에 대한 씁쓸한 자화상이자, 그 사회를 살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연민을 담으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용산역, 용산 이라는 장소를 선택한 것은 더욱 의미 깊게 느껴졌다. 하루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용산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세 주인공들의 교차는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했고, 마지막 용산역 옥상 위에 선 선영의 모습에서는 자연스럽게 같은 장소인 용산에서 철거민으로 내몰려 망루 위에 올라야만 했던 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변영주 감독의 작품이라 더더욱 연관 지을 수 밖에는 없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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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를 보면 누구나 발견하게 되는 동물병원 간호사 역할의 배우 김별 님. 좋았습니다.

2. 누가 이 영화가 16억 예산의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가격대비 매우 훌륭한 때깔이었습니다.

3. 영화 음악도 은근히 좋았어요.

4. 이 영화를 용산 CGV에서 봤으면 어쩔 뻔 했는지;;;;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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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스토리 (ブレイブ スト-リ-: Brave Story, 2006)

이 애니메이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해 한참 HMV에서 블루레이를 사기 위해 기웃기웃 거릴 때,
잘 알지 못하는 애니메이션이 있어서 관심있게 표지를 보았던 것이 처음이었다.
2006년작으로, 일본에서는 이미 블루레이로 발매가 되었지만, 국내에는 이번에야 CGV단독 개봉으로
소개가 되었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아서인지, 아니면 영화의 스타일과 맞게 내가 원래 RPG게임을
좋아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동심이 남들보다 강해서인지...뭐 언급한 이유 전부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매우 인상적이었던 애니메이션이었다.



이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미야베 미유키는 실제로도
RPG게임 광이며, 게임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적도 있다고 하던데, 과연 그런 그의 특징이
그대로 표현된 작품이 바로 <브레이브 스토리>가 아닐까 싶다.
이런 작가의 배경을 모르더라도, RPG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이 애니가 RPG게임과
너무도 닮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등장하고, 보석을 5개 얻는 등 아이템을 모아야하며,
중간중간 사연이 있는 동료들을 얻어 파티를 이루게 되고, 보스를 깨면 아이템을 얻고, 최종 보스 즈음에
가서는 자기 분신을 만나게 되는 등등 딱 봐도 RPG스타일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RPG게임을 좋아해서 인지(그리고 최근 XBOX360 게임인 '로스트 오디세이'를 재미있게
플레이해서인지), 너무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브레이브 스토리>의 이야기가 그저 단순하다고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면을 보았다.
이 애니메이션은 분명 아이들을 타겟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어른들에게 주는 메시지도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이 애니를 만든 어른들은, 영화 속 주인공이 왜 이런 곤경에 처하게 되며,
왜 이런 모험을 해야되는지의 이유를 바로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다.
주인공 와타루를 비롯하여 미츠루도 그러하고, 이 둘은 운명을 바꾸기 위해 환계로 와서 모험을 하게 되는데,
자신들이 원해서, 즐거운 여정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이혼, 자살, 살해 등 부모들이 만들어낸
운명의 짐을 결국에는 아무 죄없는 아이들이 고스란히 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왜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서 아이들이 고통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근본적으로는
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주인공들이 고생을 하며 돌리고자 하는 운명은, 그 자신의 개인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바로 '가족'에 있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있는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다.



2D와 3D를 적절히 섞은 영상도 인상적이었다.
정말로 최근 게임들에서 보았을 법한 배경들과 건물, 캐릭터 디자인들도 돋보였고,
일부 액션 장면에서 등장한 3D애니메이션과의 싱크로율도 나쁘지 않았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최근에 와서는 캐릭터를 굉장히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묘사하기 보다는, 배경을 좀 더
디테일하게 연출하고 캐릭터는 단순하지만 특징만 잡아주는 정도로 묘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으로 느껴졌다.



판타지 장르를 유치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재미가 있을 수 없다.
RPG스타일을 답답하게 느낀다면 역시 이 애니메이션은 재미가 있을 수 없다.

반대의 경우인 나는 아주 재미있었던 오랜만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었다~


1. 후반부에 마족들이 하늘을 뒤덮는 장면은 마치 <매트릭스 : 레볼루션>의 센티넬무리 같았다.
2. 역시 마지막에 가서 와타루가 결국 선택을 하게 되는 시퀀스는 역시 <매트릭스>의 네오를 연상시켰다.
3. 게임으로 제작되어도 아주 좋을 듯 하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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