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보고 싶은 괴물 같은 영화 '올드보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블루레이가 드디어 출시되었다. '올드보이'라는 영화가 한국 영화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의미만큼이나 이번 블루레이 출시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가장 큰 이슈라면 역시 출시 연기와 관련된 부분인데, 물론 처음 출시를 알렸던 시점에 비해 수년이 흐른 뒤에야 실제 출시가 된 점은 이유를 막론하고 아쉬운 부분이지만, 10주년을 맞아 전면적인 디지털 리마스터링 및 국내 영화계에서는 전무후무한 (후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단순한 메이킹 다큐멘터리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올드 데이즈'라는 제작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까지, '올드보이'라는 영화에 걸맞은 이번 블루레이의 장점들이 미처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는 점 역시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블루레이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간단하게라도 영화 '올드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미 많이 조명되었던 것처럼, 2003년 한국영화는 그야말로 르네상스 시기였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비롯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그리고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등 (이 밖에도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까지) 작품성과 상업성을 겸비한 각각의 다른 색깔과 뚜렷한 개성을 가진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2003년을 비롯해 이 즈음 발표되었던 한국 영화들의 10주년 재상영 및 평가 등이 요 몇 년 사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올드보이'가 갖는 지점은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가장 큰 표면적인 차이점이라면 200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이라는 수상 경력 및 해외 영화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한국 영화를 알린 작품이라는 점일 텐데, 이후 '올드 데이즈'에 담긴 내용을 소개할 때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런 대외적 평가 및 수상 경력이 갖는 명예와 성공 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영화 제작에 참여했던 스텝, 배우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이런 영화를 또다시 만들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는 영화라는 점이 바로 '올드보이'가 특별한 작품이라는 이유라고 말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좋은 영화들은 세월을 두고 다시 보기를 반복할 때마다 다른 감동과 인상을 남기곤 하는데, 개봉 10주년이 지나 다시 보게 된 '올드보이' 역시 그랬다.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땐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최민식이 연기한 오대수 역할이 주는 강렬함과 영화의 독특한 미장센에 매혹되었었는데, 10년이 지나 다시 보니 오대수의 이야기와 충격적인 반전은 여전히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이우진의 이야기가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즉, 15년 동안 갇혀 지냈던 사람의 이야기보다, 누군 가를 15년이나 감금해야 했던 사람의 사연이 더 강렬했다는 얘긴데, 이유도 모른 채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이의 분노보다는, 어쩌면 15년이 넘는 세월을 복수로 보내버린 한 남자의 슬픔이 더 쓰라리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전에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던 대사들이 와 닿았는데, '아무리 짐승 만도 못한 놈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니냐'는 식의 대사와, '그냥 잊어버린 거예요'라는 대사는 이번 재 관람에서 비로소 발견한 중요한 포인트였다. 우진이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 주된 사건은 누군 가의 인생을 통째로 앗아갔음에도, 다른 누군 가는 정말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잊어버린 일이기도 했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우리도 살면서 스스로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지나 치는 일들 가운데에는 누군 가 (그 누군 가가 설령 짐승 만도 못한 이 일지라도)의 인생을 빼앗아 갈 정도로 커다란 일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 지를 떠올려 보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진의 마지막이 더 슬프고 더 쓸쓸하고 더 무기력했다. 오대수의 입장에서 보면 '올드보이'는 강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로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이우진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미 시작할 때부터 끝이 보이는, 죽음의 그림자와 무기력함이 내내 동행하는 그런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오대수는 15년 간 갇혀 있다 풀려 났지만, 우진은 이미 학생일 때부터 자신의 삶으로부터 갇혀 버린 것이 아닌가. 



이우진의 심리에 더 공감하게 되는 변화만큼이나 다시 보게 된 '올드보이'는 날 것 같이 폭주하는 에너지와 과감한 영화적 시도(아니, 도전이라고 하는게 맞겠다)들을 또 한 번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감독, 배우, 스텝 모두 젊고 혈기 왕성하던 그때가 아니었다면 감히 도전하지 못했을. 다시 말해 만약 동일 인물들이 기술적으로 더 성장한 지금에 와서 다시 만들고자 하면 오히려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지금은 이성적으로 시도할 수 없을 다양한 순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간혹 거칠고 정제되지 않고 혹은 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그런 한계들을 모두 예상할 수도 피해갈 수도 없었던 당시의 에너지 (혹은 결의)가 만든 괴물 같은. 하지만 다시 보고 싶은 괴물 같은 영화가 바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아닐까.


# 올드 데이즈 - 올드보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가장 완벽한 대답

 

메이킹 다큐멘터리 성격 영화에 대한 글 제목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나'는 너무 뻔하고 전형적이라 최대한 피해보려 했지만, '올드 데이즈 (Old Days, 2016)'는 '올드보이'가 어떤 과정과 일들을 겪으며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가장 완벽한 대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올드보이' 블루레이에 부가영상으로 처음 기획된 이 다큐가 전주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정도로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이건 분명 과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해보고 싶었던 작업, 그러니까 좋아하는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긴 호흡과 디테일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 성격의 영상이 우리 영화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는 늘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블루레이 부가영상이 애초 기획이었던 것에서 확장된 버전으로 발전된 것은 조금 무리가 되지 않을까, 과잉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보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걱정 외에 다른 의미로 보자면, 과연 메이킹 다큐를 만드는 데에 한 편의 영화와 동일한 수준의 규모나 의미 부여가 필요한 가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올드보이'라는 영화가 10주년을 맞아 재상영도 할 만큼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고 또 해외에서 특히 인정받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냉정하게 보자면 당위성보다는 영화의 명성에 기댄 다큐 제작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올드 데이즈'를 다 보고 나니 왜 그래야만 했는지, 왜 굳이 '올드보이'의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블루레이에 수록 될 부가 영상에 그치지 않고 영화화까지 발전시켜야 만 했는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즉, '올드 데이즈'는 단순히 '올드보이'라는 작품의 명성을 더하기 위해 기념 적으로 제작되고 기획된 작품이 아니라, 역으로 말해 '이런 제작과정을 통해 탄생된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하고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제작과정 자체가 하나의 역사이자 놀라움 그리고 시대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2003년 '올드보이'에 참여했던 감독과 배우, 스텝들은 지금은 각 분야에서 모두 주역을 맡고 있는 마스터들이지만 당시엔 완전 신인들이 대부분이었고, 경력이 많은 스텝들은 그리 많지 않았었다. '올드 데이즈'는 바로 그들이 어떻게 현장에서 싸우고, 부딪히고, 이겨내며 '올드보이'라는 영화를 완성시켰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간혹 오래전 작업한 (특히 현재는 걸작이 된) 영화를 배우와 스텝들이 추억하며 회고하는 메이킹의 경우, 당시 어리고 미숙했던 자신들을 되돌아보며 '그때는 참 뭘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다시 하라면 아마 다를 거예요'라는 식의 인터뷰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올드 데이즈'에 수록된 당시 스텝들의 인터뷰들에서 하나 같이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현장'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영화'라는 것이었다. '올드보이'가 자신의 첫 번째 영화였던 스텝들도 있고, 나이도 비교적 어린 나이라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던 상황과 조건이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익숙하고 숙련된 지금에 와 다시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그들의 진심에서 다시 한번 왜 이 다큐멘터리가 필요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올드보이'는 내용적인 면이나 스타일, 구조 등 모든 면에서 에너지가 넘쳐나는 영화였다. 혹자는 과잉의 영화라고 할 만큼 모든 분야의 에너지가 한계 이상으로 분출되고 있는 벅찬 영화였다. '올드 데이즈'를 보고 느꼈던 건, 아마도 이 영화가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 (지금에 와서 다시 구현하려고 해도 과연 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는, 아니 불가능하다고 느낄 정도의)를 영화라는 포맷 안에 다 담아낼 수 이유가, 감독 한 명 혹은 예술적 능력이 압도적으로 출중한 몇몇 아티스트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영화여서가 아니라, 감독과 배우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스텝들이 자신들의 한계치 이상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에 기적처럼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정확히 뭐라 말하기는 어려워도 그 당시의 순간에 내가 한국 영화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하고 있다는 공기가 느껴져,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을 해보자 라는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이 영화가 원하는 수준을 내가 해내야만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만들어낸 괴물. 그런 에너지들이 마치 어떤 상자 안에 봉인되듯이 '올드보이'라는 영화 안에 봉인되는 것에 성공한, 그런 괴물 같은 우연 혹은 사건이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들었다.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 블루레이의 부가 영상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결국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 지고, 더 사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올드 데이즈'는 그렇게 익숙한 '올드보이'를 또 보고 싶게 만드는 또 한 번의 놀라운 영화였다. 



# Video & Audio


이번 '올드보이' 리마스터링 블루레이의 본편 화질에 대해서는 먼저 (당연한 얘기지만) 사실 확인을 분명히 하고 동시에 호불호에 대해서는 넓은 범위로 수용하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감독의 의도나 영화 특유의 영상 처리 기법 등을 감안하여도 다른 일반적인 블루레이 영상들과 비교하기에는 확실히 필름 그레인이 (특히 일부 장면들의 경우) 심한 편이기 때문에 쨍하고 시원한 화질을 더 선호하는 대부분의 시청자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화질이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 반면 이런 거친 입자의 화질은 감독이 의도하고 또 최고의 리마스터링 기술을 통해 그 의도를 최선으로 구현해 낸 현존하는 최고의 화질이라는 사실이다 (DVD 출시 당시에도 이러한 의도를 담아낸 화질 - 정확히 말하자면 촬영과 영상 -에 대한 감독과 촬영 감독의 추가 설명이 있기도 했다).



이번 블루레이의 화질과 디지털 리마스터링 과정에 대해서는 부가영상으로 수록된 정정훈 촬영감독과 박진호 디지털 리마스터링 슈퍼바이저의 인터뷰를 통해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보자면 일단 '올드보이'는 '블리치 바이패스 (bleach bypass)'라는 현상 기법을 활용한 작품이라는 점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블리치 바이패스'란 필름 현상 시 은입자를 씻어내는 표백 과정을 건너 뜀으로서(bypass) 콘트라스트는 더 강해지고 그림자는 더 어둡고 채도는 감소시켜 영상의 몰입도를 더 강조하게 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콘트라스트를 더 강조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레인 역시 강조가 되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쨍한' 화질보다는 필름 그레인이 도드라지는 화질을 갖게 된다. 이번 블루레이 리마스터링은 이러한 느낌을 더 제대로 살리기 위해 오리지널 네가를 스캔받아 DI를 하는 방식이 아닌 MP (Master Positive)를 스캔하여 '올드보이' 특유의 룩을 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즉, 그레인을 지우고 쨍한 화질을 만들기 위한 리마스터링이 아니라 오히려 감독이 원했던 그레인과 거친 입자, 색감을 더 제대로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리마스터링이라는 얘기다.



또한 '올드보이'는 촬영 당시 제한된 조명과 고감도 필름을 과감하게 사용한 작품이라는 점도 화질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올드보이'는 박찬욱 감독이 원했던 특유의 분위기와 색감을 구현하기 위해 그린 톤의 실험적 조명 등이 적극 활용되고 또 고감도 필름이 일부 실내 장면 촬영에 사용되었는데, 그렇다 보니 거친 입자의 화질을 갖게 된 경우다. 다시 말하자면 감독이 원했던 특유의 분위기와 색감을 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친 입자와 그레인이 도드라지는 화질을 수용 해야만 했던 것이 아니라, 그 거친 입자와 그레인이 바로 박찬욱 감독이 의도라는 점이다. 



쨍한 화질을 자랑하는 최신 블루레이 영상들과 객관적 비교를 한다면 분명히 그레인이 심하고 암부 표현력이 떨어지는 '올드보이'의 화질이 더 낫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감독을 비롯해 영화를 만든 이들이 원했던 바를 충족시켜주고 있는가 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비교한다면 '올드보이' 블루레이의 화질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최상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현존하는 최선인 동시에 절대적 측면에서 최상급의 화질(감독이 직접 승인한 점이 그것)이라 결론 지을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올드보이' 본편 화질에 대한 감독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덧붙이자면, 영화 후반부 우진의 펜트하우스 장면 가운데 우진의 얼굴 옆으로 과감하게 오대수의 얼굴로 클로즈업이 진행되는 장면이 있는데 촬영 감독 및 스텝들은 조명 등 여러 여건들 때문에 화질이 무너지는 것을 우려했지만 (일부는 못 견뎌했지만), 박찬욱 감독은 오히려 바로 그게 본인이 원하는 것이었다며 최종적으로 OK사인을 주기도 했었다.



DTS-HD MA 5.1과 2.0 채널의 사운드는 준수한 편이다. 대사 전달력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균형이 잡힌 사운드를 들려주며, 특히 액션 씬이나 다른 씬에서의 멀티채널 활용도 보다 스코어가 흐르는 장면의 음장감이 체감하기에 더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 Special Features


3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이번 '올드보이' 블루레이는 각 디스크마다 부가영상을 나눠서 빼곡히 수록하고 있는데, 첫 번째 디스크에는 리마스터링 된 영화 본편과 함께 총 6개의 음성해설 트랙과 약 48분여의 인터뷰 영상이 수록되었다. 음성해설의 경우 기존 DVD에 수록되었던 5개의 트랙 외에 박찬욱 감독의 특별 추천한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의 음성해설이 독점으로 새롭게 추가되었다. 음성해설은 그 엄청난 분량도 분량이지만 각 트랙마다 참여자들의 분야에 따른 다른 시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만약 DVD에 수록되었던 음성해설을 아직 들어보지 못한 이들이라면 한 번쯤 감상해 보기를 추천한다. 특히 박찬욱 감독과 정정훈 촬영 감독이 참여한 음성해설은 왜 이 영화가 이런 거친 질감과 특유의 색감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인터뷰 영상의 첫 번째는 박찬욱 감독이 전하는 일종의 인트로 영상인데, 예전 '반지의 제왕' 확장판을 보았던 이들이라면 영화 시작 전 피터 잭슨이 등장해 간단하게 확장판과 추가된 장면들에 대해 소개하는 영상을 떠올리면 될 듯하다. 


 

두 번째는 디지털 리마스터링에 대한 부분인데, 이번 블루레이의 화질과 관련하여 왜 이번 버전이 감독이 승인한 버전인지 또 어떤 기술적 과정을 통해 이번 리마스터링이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정정훈 촬영감독과 박진호 디지털 리마스터링 슈퍼바이저의 인터뷰를 통해 상세히 들려준다. 이번 블루레이에 화질에 대해서는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심하게 나뉠 수 있을 텐데 호불호를 떠나 정상 비정상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촬영감독과 리마스터링 슈퍼바이저의 설명이 담긴 이 인터뷰는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영상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박진호 슈퍼바이저의 인터뷰는 이번 블루레이 화질에 대한 기술적인 내용이나 이해의 측면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인터뷰로 어떤 과정이나 의도, 방식으로 이번 화질 리마스터링 작업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술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올드보이'가 선택한 특수 현상 방식인 '블리치 바이패스 (bleach bypass)' 방식에 대한 상세한 소개 및 이 방식을 선택함에 따라 얻게 되는 것과 잃게 되는 것들 그리고 이번 리마스터링 작업의 목표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평론가들이 말하는 '올드보이'에서는 오동진, 이동진, 달시 파켓, 크리스 후지와라 이렇게 네 사람의 인터뷰를 통해 각기 이 작품이 갖는 의미와 미친 영향에 대해 들려준다. 감독들이 말하는 '올드보이'에서는 당시 주연 배우 캐스팅 오디션에 함께 심사를 보기도 했던 김지운 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 출신으로 당시 '주먹이 운다'를 촬영하고 있었던 류승완 감독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다. 해당 인터뷰 영상은 모두 이번 블루레이를 위해 새롭게 촬영된 것으로 HD의 선명한 화질로 만나볼 수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앞서 별도로 소개했던 '올드 데이즈' 본편이 수록되었고, 이 외에 기존 DVD에 수록되었던 SD 화질의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었다. 기존에 수록되었던 영상들이라 여기서 더 자세한 리뷰는 하지 않겠지만 혹 기존 UE를 꼼꼼히 감상하지 못한 이들이나 소장하지 못한 이들이라면 SD 화질 영상이라 하더라도 꼭 한 번 감상하기를 권한다. 특히 ‘Autobiography of Oldboy’라는 제목의 3시간 29분 분량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는 러닝타임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뒷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박찬욱 감독의 단편 영화 ‘심판 (28분, SD)’도 빼놓을 수 없겠다.



세 번째 디스크에는 '올드 데이즈' 본편을 위해 촬영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본편에는 수록되지 않은 추가 인터뷰 영상들이 수록되었다. '못다 한 이야기'라는 제목이 어색할 정도로 총 183분 분량으로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인데, '올드 데이즈'에 수록된 영상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HD 화질로 만나볼 수 있다. 이 인터뷰들은 각 인물별로 감상이 편하게 챕터가 나뉘어 있으며, '올드 데이즈'에는 미처 다 수록되지 못한 후반 작업과 관련 된 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롭다. '올드 데이즈'가 하나의 영화로서 편집된 버전이라면 ‘못다 한 이야기'에 수록된 인터뷰들은 좀 더 인터뷰 중심으로 골라서 선택적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유익하다. 참고로 ‘올드 데이즈' 및 관련 인터뷰 영상들은 캐논 C300 메인 카메라와 캐논 C100, 파나소닉 GH3, 캐논 5DMK3 등의 서브 카메라를 통해 촬영되었다.


새롭게 촬영된 인터뷰 영상 외에 한세준 스틸 작가가 당시 현장에서 찍었던 미공개 사진 1만 4천여 컷을 모두 스캔하여 엄선한 스틸 사진들을 인터뷰 중간에 영화 속 장면들과 함께 삽입시키면서 좀 더 인터뷰 내용을 흥미롭게 즐길 수 있도록 다채롭게 전달하고 있다 (즉, 인터뷰 내용과 관련이 있는 스틸컷이나 영화 장면들이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다).



각 인물별 약 10분 안팎으로 인터뷰 내용이 추가 수록되어 있다.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판단에 추가 수록분에 포함된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워낙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인 만큼 이 못다 한 이야기들에 수록된 인터뷰 내용들도 상당히 흥미롭고, 특히 각 스텝들의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이야기들이 관심을 끈다. 인터뷰들이 각 스텝들의 전문 공간 (혹은 관련된 공간)에서 진행되었다는 점도 은근한 디테일. 새삼스럽지만 블루레이 부가영상을 위해 총 40명이나 되는 영화의 스텝과 배우들을 일일이 한 명씩 찾아가 몇 시간씩 인터뷰한 정성과 노력은 글의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과연 앞으로 또 가능할까 싶다.




# 총평 

 

이번 플레인에서 출시한 '올드보이' 블루레이는 여러 가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의미는 역시 한국 영화 블루레이, 아니 블루레이 부가영상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시도가 또 언제 가능할까 싶은 도전이었던 '올드 데이즈'의 존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출시 지연 및 화질에 관한 점이 더 이슈가 되어서 그렇지 '올드 데이즈' 만으로도 이번 블루레이 제작과 출시는 대단하고 놀라운 사건이었다. 


또한 10주년을 맞아 박찬욱 감독이 승인한 유일한 버전이자 리마스터링 화질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것이 현존하는 최고의 버전이라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올드보이' 블루레이는 작품에 대한 호불호나 완성도 여부를 떠나, 한 편의 영화가 어떤 이야기들과 정서 그리고 추억들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담고자 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던 아주 소중한 기회였다. 왜 우리는 영화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변 모두가 담겨 있는 선물 상자 같은 (DVD때 같은 상자 패키지는 아니지만 ^^;) 타이틀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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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데이즈 (Old Days, 2016)

올드보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메이킹 다큐멘터리 성격 영화에 대한 글 제목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나'는 너무 뻔하고 전형적이라 최대한 피해보려 했지만, '올드 데이즈 (Old Days, 2016)'는 박찬욱 감독의 2003년작 '올드보이'가 어떤 과정과 일들을 겪으며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그대로의 작품이라 피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올드보이' 블루레이에 부가영상으로 처음 기획된 이 다큐가 전주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정도로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이건 분명 과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해보고 싶었던 작업, 그러니까 좋아하는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긴 호흡과 디테일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 성격의 영상이 우리 영화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는 늘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블루레이 부가영상이 애초 기획이었던 것에서 확장된 버전으로 발전된 것은 조금 무리가 되지 않을까, 과잉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보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걱정 외에 다른 의미로 보자면, 과연 메이킹 다큐를 만드는 데에 한 편의 영화와 동일한 수준의 규모나 의미 부여가 필요한 가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올드보이'라는 영화가 10주년을 맞아 재상영도 할 만큼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고 또 해외에서 특히 인정받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냉정하게 보자면 당위성보다는 영화의 명성에 기댄 다큐 제작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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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올드 데이즈'를 다 보고 나니 왜 그래야만 했는지, 왜 굳이 '올드보이'의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블루레이에 수록될 부가 영상에 그치지 않고 영화화까지 발전시켜야 만 했는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즉, '올드 데이즈'는 단순히 '올드보이'라는 작품의 명성을 더하기 위해 기념 적으로 제작되고 기획된 작품이 아니라, 역으로 말해 '이런 제작과정을 통해 탄생된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하고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제작과정 자체가 하나의 역사이자 놀라움 그리고 시대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2003년 '올드보이'에 참여했던 감독과 배우, 스텝들은 지금은 각 분야에서 모두 주역을 맡고 있는 마스터들이지만 당시엔 완전 신인들이 대부분이었고, 경력이 많은 스텝들은 그리 많지 않았었다. '올드 데이즈'는 바로 그들이 어떻게 현장에서 싸우고, 부딪히고, 이겨내며 '올드보이'라는 영화를 완성시켰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간혹 오래전 작업한 (특히 현재는 걸작이 된) 영화를 배우와 스텝들이 추억하며 회고하는 메이킹의 경우, 당시 어리고 미숙했던 자신들을 되돌아보며 '그때는 참 뭘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다시 하라면 아마 다를 거예요'라는 식의 인터뷰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올드 데이즈'에 수록된 당시 스텝들의 인터뷰들에서 하나 같이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현장'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영화'라는 것이었다. '올드보이'가 자신의 첫 번째 영화였던 스텝들도 있고, 나이도 비교적 어린 나이라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던 상황과 조건이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익숙하고 숙련된 지금에 와 다시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그들의 진심에서 다시 한번 왜 이 다큐멘터리가 필요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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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는 내용적인 면이나 스타일, 구조 등 모든 면에서 에너지가 넘쳐나는 영화였다. 혹자는 과잉의 영화라고 할 만큼 모든 분야의 에너지가 한계 이상으로 분출되고 있는 벅찬 영화였다. '올드 데이즈'를 보고 느꼈던 건, 아마도 이 영화가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 (지금에 와서 다시 구현하려고 해도 과연 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는, 아니 불가능하다고 느낄 정도의)를 영화라는 포맷 안에 다 담아낼 수 이유가, 감독 한 명 혹은 예술적 능력이 압도적으로 출중한 몇몇 아티스트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영화여서가 아니라, 감독과 배우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스텝들이 자신들의 한계치 이상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에 기적처럼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정확히 뭐라 말하기는 어려워도 그 당시의 순간에 내가 한국 영화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하고 있다는 공기가 느껴져,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을 해보자 라는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이 영화가 원하는 수준을 내가 해내야만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만들어낸 괴물. 그런 에너지들이 마치 어떤 상자 안에 봉인되듯이 '올드보이'라는 영화 안에 봉인되는 것에 성공한, 그런 괴물 같은 우연 혹은 사건이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들었다. 


솔직히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팬으로서 '올드보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가라는 질문엔 선뜻 답하기는 어렵지만, 흥미로운 건 지난 10주년 상영회 (리뷰 : 올드보이 10주년 - 다시 보니 완벽한 우진의 영화더라)에서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느꼈던 것처럼 '올드보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하게 되는 영화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올드 데이즈'와의 만남은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여러 번을 보고, 수 없이 영화 음악을 듣고, 여러 버전의 타이틀을 갖고 있는 작품임에도 '올드 데이즈'를 보는 내내 속으로 '아... 빨리 올드보이를 다시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 블루레이의 부가 영상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결국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 지고, 더 사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올드 데이즈'는 그렇게 익숙한 '올드보이'를 또 보고 싶게 만드는 또 한 번의 놀라운 영화였다. 

곧 블루레이로 다시 만나게 될 '올드보이'가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1. 플레인 아카이브는 (본인들은 쑥스럽겠지만)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네요. 박수쳐주고 싶습니다!

2.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있었던 상영회 후 GV 자리도 참 좋았습니다. 특히 '올드 데이즈'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웠던 조영욱 음악감독님의 얘기들이 흥미로웠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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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The Handmaiden, 2016)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 (The Handmaiden, 2016)'는 압도적인 미장센과 진취적인 이야기 그리고 감독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캐릭터가 위태롭고 매혹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총 3부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부는 숙희의 입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2부는 히데코의 어린 시절을 비롯해 그녀의 입장으로 1부 벌어졌던 이야기를 다시 소개하고, 3부에서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종결지으며 두 여인을 비롯해 백작과 코우즈키의 이야기도 모두 마무리 한다. 트위터에서 누군가가 '1,2부의 제목은 아가씨고 3부의 제목은 아저씨'라고도 했는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1부의 이야기는 숙희의 입장으로 전체적인 이야기와 캐릭터를 소개하고 2부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히데코와 백작 캐릭터를 중심으로 보여주는데, 반전의 요소가 있지만 결코 반전을 위한 구성이나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진실이 무엇인지 2부를 통해 소개한 뒤 영화는 3부를 통해 4명의 주요 캐릭터들을 각각 마무리 한다. 즉, 3부는 종결, 해결의 측면 혹은 목적이 강한 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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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는 동성애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근래 동성애를 다룬 좋은 영화 중 하나였던 토드 헤인즈의 '캐롤'과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캐롤'은 말 그대로 동성 간의 사랑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미묘한 감정 선을 유려하게 그려낸 작품이라면, 박찬욱의 '아가씨'는 동성애를 다루고는 있지만 동성 간의 사랑이 중심에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남성 중심의 세계 관을 풍자하고 여성 캐릭터가 독립적으로 향하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즉, 박찬욱에겐 동성애라는 소재가 더 이상 사회 통념 하에 극복해야 할 과제라기 보다는 이미 극복한 다음의 이야기, 즉 '동성애가 더이상 그렇게 특별한 일이야?'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듯 다음 스텝으로 건너 뛴 듯한 느낌이다. 다시 말해 히데코와 숙희의 관계와 감정을 '캐롤'의 그것과 1:1 비교를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히데코와 숙희가 서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서로가 자신의 삶의 굴레를 깨고 나아가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구원자의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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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측면에서 보아도, 그러니까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두 여자 인물들에 비해 두 남성 캐릭터인 백작과 코우즈키의 모습은 직접적인 형태로 풍자되고 하찮게 묘사되고 마무리 되는 구조를 담고 있음에도,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부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페미니즘 영화를 추구하지 않는 다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영화가 표현한 방법에 있어서 페미니즘 영화라고 하기엔 여전히 애매한 측면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데코와 숙희의 베드씬은 수위 만을 놓고 보자면 제법 파격적인 수준이었으나 감정적으로는 전혀 야하지 않은, 그러니까 두 인물의 감정 선이 녹아들어 있지는 않은 베드씬이라 다른 동성 간의 (이성 간도 마찬가지고) 베드씬과는 다르게 성적 흥분이 들지는 않는 건조한 장면이었다. 이를 바꿔 말하자면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히데코와 숙희의 베드씬은 과연 그 정도의 묘사와 비중으로까지 필요했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3부는 두 여성 주인공의 해피 엔딩만큼이나 두 남성 주인공의 배드 엔딩(?)의 비중이 큰데, 마치 이 마지막 베드씬은 두 여성 캐릭터를 위한 (그녀들이 원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두 남성 캐릭터의 배드 엔딩을 더 가혹하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도구로 활용된 측면이 더 크게 느껴졌다. 1,2부에 비해 3부는 전체적으로 극이 고조되거나 클라이맥스에 이른다는 느낌보다는, 풀어 놓은 매듭을 모두 정리하는 완결(해결)의 느낌이 더 강한데, 그 보다는 두 여성 캐릭터의 해피 엔딩의 깊이나 감정선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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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단락에 조금만 더 보태자면, 그렇게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것이 바로 박찬욱 스타일의 영화가 아닌가도 싶다. 감정적으로 공감대가 넓고 보편적인 방식 대신, 가지 않은 길을 택하고자 많이 고민하고 자신의 취향을 영화 속에 녹여 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것. 그래서 모두가 그를 주목하던 시점에서도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같은 영화를 낼 수 있는.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3부의 전개와 묘사는 1,2부 보다도 더 박찬욱 스러운 모습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스텝들의 결과물도 연출 만큼이나 큰 기대를 갖게 하는데, 류성희 미술감독이 만들어 낸 미장센은 '아가씨'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히데코가 살고 있는 코우즈키의 대저택은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자체가 캐릭터의 성격을 대변하는 가장 훌륭한 매개체인 동시에 스스로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낭독회가 진행되는 공간은 특히 그 거리감과 구도가 예술이었는데, 좌우로 보았을 땐 인물들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띄엄 띄엄 앉아 있는 구도가 매력적이었으며, 앞뒤로 보았을 때도 히데코와 남성 캐릭터들의 거리 (가까이 있을 때 보다도 더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거리)가 영화에 리듬과 긴장을 담아 내고 있다. 류성희 미술감독에게도 이번 '아가씨'의 디자인은 모든 것이 총망라된 몹시 모험적이고 고된 작업이었을 텐데, 그 결과물은 정말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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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미장센 만큼이나 눈을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히데코를 연기한 김민희와 숙희를 연기한 신인 배우 김태리의 연기다. 이제 더 이상 연기에 관해서 칭찬을 하는 것이 새삼스러워진 김민희의 경우, 연기가 업그레이드 된 것은 물론이요, 그 아름다움이 몇 배는 업그레이드 되어 버린 모습을 '아가씨'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상속녀로 그려지는 1부 속 숙희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히데코의 모습은, 깨어질 듯한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발견은 단연 김태리다. 보통 몇 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 된 배우라는 수식어는 이제 더 이상 관심을 끌지도 매력적이도 않은 것이 사실인데, 김태리의 캐스팅의 경우 새삼스럽게 '아..그 수 많은 경쟁자를 과연 물리치고 선택 될 만하구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물론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김태리라는 배우의 얼굴 만이 가진 매력이 숙희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 시켜준 느낌이었고, 애정, 애증, 행복, 모성애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 내는 데에 있어서 어색함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던, 딱 맞는 연기와 캐릭터였다. 그리고 하정우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기를 독보적으로 해냈다. 백작 캐릭터는 자칫하면 풍자의 깊이는 없이 그저 우스꽝스럽기만한 것으로 전락할 수 있었는데, 제대로 우습게 보이는 동시에 연민마저 느껴지는 백작 캐릭터를 적절한 비중으로 연기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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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박찬욱의 '아가씨'는 특유의 조소와 미장센이 시대극이라는 배경과 두 여성 캐릭터라는 매력을 통해 발산 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원작 소설을 읽어 보지 않은 입장에서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설정은 정말 매력적인 것이었다. 이것에 집중해서 영화에 빠져든다면 좀 더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극장에서 문소리 배우는 등장과 동시에 관객들이 웅성웅성 했지만 상대적으로 이동휘 배우는 관객들이 갸우뚱 하더군요 ㅎ

2. 히데코 아역으로 나온 배우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어디서 분명 본 것 같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본적이 없더군요...(이상해;;;)

3. 영화를 보고 나니 주연 캐릭터 중 몇몇은 일본 배우가 했어도 좋았겠다 싶더군요.

4. 아... 앞으로 김태리 라는 배우는 과연 어떤 영화를 보여줄까요. 몹시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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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 10주년 (Old boy 10th Anniversary)

다시 보니 완벽한 우진의 영화더라



2003년 극장에서 보았던 '올드보이 (Old boy, 2003)'의 강렬함은 지금도 그대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스테리와 에너지, 쓸쓸함에 휘둘리며 마지막 미도의 왈츠가 나오며 막이 내릴 땐 좌석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만큼 '올드보이'는 강렬한 영화였고 박찬욱 이라는 이름을 전세계에 널리 알린 작품이기도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도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점에 놓여 있는 '올드보이'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올드보이'는 10주년을 맞아 단순 재 개봉이 아닌 디지털 리마스터링 (색보정 및 일부 장면 보정)을 거쳐 다시 선보이게 되었는데, 좋은 기회에 초대를 받아 박찬욱 감독님의 GV까지 더해진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일단 리마스터링 된 부분은 전반적으로 색보정을 감독님이 원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고, 개봉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몇몇 장면의 실수들을 바로 잡았다고 했다. 개봉 당시는 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의 장면들을 이번 기회에 수정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감독님이 말한 이번 리마스터링의 가장 큰 의의는 '올드보이'라는 영화 자체가 여러 해외에서 상영되는 등 필름의 보존 상태가 좋지 못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업데이트 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블루레이 리뷰어로서 본 '올드보이' 리마스터링 버전은 확실히 10년 전 영화라 세월의 흔적이 아주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 된 화질이라고 (현실적으로 보자면 더더욱) 할 수 있을 것 같아 블루레이가 정식 발매된다면 화질 측면에서 좀 더 나은 환경이 갖춰 졌다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렇게 다시 보게 된 '올드보이'는 예상은 했지만 완벽한 우진 (유지태)의 영화로 받아들여 졌다.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땐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최민식이 연기한 오대수 역할이 주는 강렬함과 영화의 미장센에 매혹 되었었는데, 10년이 지나 다시 보니 오대수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이우진의 이야기가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즉, 15년 동안 갇혀 지냈던 사람의 이야기보다, 누군 가를 15년이나 감금해야 했던 사람의 사연이 더 강렬했다는 얘긴데, 이유도 모른 채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이의 분노 보다는, 어쩌면 15년이 넘는 세월을 복수로 보내버린 한 남자의 슬픔이 더 쓰라리게 다가왔다.


그런 측면에서 이전에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던 대사들이 와 닿았는데, '아무리 짐승 만도 못한 놈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니냐'는 식의 대사와, '그냥 잊어버린 거에요' 라는 대사는 이번 재 관람에서 비로서 발견한 중요한 포인트였다. 우진이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 주된 사건은 누군 가의 인생을 통째로 앗아갔음에도, 다른 누군 가는 정말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잊어버린 일이기도 했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우리도 살면서 스스로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지나 치는 일들 가운데에는 누군 가 (그 누군 가가 설령 짐승 만도 못한 이 일지라도)의 인생을 빼앗아 갈 정도로 커다란 일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 지를 떠올려 보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진의 마지막이 더 슬프고 더 쓸쓸하고 더 무기력했다. 오대수의 입장에서 보면 '올드보이'는 강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로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이우진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미 시작할 때부터 끝이 보이는, 죽음의 그림자와 내내 무기력함이 짙게 깔린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인지 이번 재 관람에서는 한 없는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오대수는 15년 간 갇혀 있다 풀려 났지만, 우진은 이미 학생일 때부터 자신의 삶으로부터 갇혀 버린 것이 아닌가.





극장에서 DVD로. 몇몇 버전의 DVD가 업데이트 될 때마다. 그리고 블루레이로. 여러 번을 본 '올드보이'였지만 10주년을 맞아 극장에서 다시 본 '올드보이'는 또 달랐다. 새삼스럽지만 확실히 좋은 영화란 세월이 흘러도 좋은, 각 시기에 따라 다른 의미와 감흥을 전하는 것이라는 걸 또 한 번 깨닫기도 했다.


영화가 끝난 후 박찬욱 감독님과 주성철 기자님이 함께 한 GV는 예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최근 화제가 된 유연석 씨의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까지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분의 GV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중화권 배우와 '올드보이'의 연관성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도 주성철 기자님 GV만의 특징이었고 ㅎ







10년 전 극장에서 혹은 다른 매체로 이미 '올드보이'를 인상 깊게 보았던 이들이라면, 10주년을 맞아 재 개봉한 '올드보이'를 극장에서 다시 관람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누군 가에게는 또 다른 영화가 되어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블루레이] 스토커 (Stoker)
거역할 수 없는 악마의 탄생


곧 개봉을 앞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와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와 함께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Stoker, 2012)'는 우리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으로 더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미아 바시코브스카와 니콜 키드먼, 매튜 구드 같은 좋은 배우들 혹은 재료를 가지고 박찬욱 감독이 어떤 요리를 해낼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평소 자신이 제일 잘 하는 요리를 해낼지 가 가장 기대되는 점이었는데, '스토커'는 헐리웃에서의 첫 작품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우울함과 우아함, 그리고 기괴함까지 엿보이는 미장센과 분위기는 누가 봐도 박찬욱 영화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영화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연출해 내는 이안 감독 같은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색깔과 스타일을 견고히 하고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감독들이 더 많은데, 박찬욱의 '스토커'는 그런 점에서 자신의 색깔이 분명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대사가 주를 이룬다기 보다는 이미지와 정서가 극을 이끌어 간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미아 바시코브스카 연기한 '인디아' 스토커의 성장 영화가 있다. 하지만 이 소녀의 성장기는 결코 예사롭지 않다. 박찬욱 감독은 소녀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보다는 소녀가 악마로서 탄생하는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웬트워스 밀러의 각본을 선택한 이유로 구체적이지 않고 비어 있는 공간, 여지가 많아서였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 공간에서 인물들의 악마 성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는 다른 모든 부분은 만족스러웠지만, 오히려 소녀의 성장 드라마 측면에서는 그다지 큰 공감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블루레이를 통해 다시 보게 된 '스토커'는 확실히 한 소녀가 악마로 태어나게 되는 아프고도 매혹적인 이야기였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는 인디아가 아니라 어쩌면 그 주변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매튜 구드가 연기한 찰리와의 관계를 그리는 방식은 '스토커'의 백미이자,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과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설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디아와 찰리는 경쟁 관계인 동시에 스승과 제자이며, 연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마치 그의 전작 '박쥐'에서의 상현과 태주의 관계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 미묘한 관계를 그리는 데에 있어서 동떨어진 저택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따듯함과 차가움이 계산되듯 매치되어 있는 집 안의 이미지 그리고 내러티브 상의 반전 포인트는(반전이라는 말은 빼도 무방하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를 감싸고 있는 불안함과 우아함의 원인이자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불러도 좋을 정도의 비중을 차지 한다.






이렇듯 '스토커'는 내러티브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이미지가, 분위기가 앞서는 영화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극중 인디아의 심리에 100%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인디아의 집 내부 공간이 주는 분위기, 인물들 간의 대화나 시선이 교차될 때 흐르는 긴장감은 그 자체로도 '불안함'을 만들어 내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영화 내내 흐르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안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커'에서 어떤 사건이 직접적으로 일어나거나 밝혀질 때 보다는 오히려 그 이전에 무언가 불안한 그 상태를 묘사할 때가 더 매력적이고 집중도가 높았던 것 같다.






웬트워스 밀러의 각본이 히치콕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상당히 고전적인 우아함과 영화적 구도, 장치들로 채워져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각 캐릭터들을 어떤 공간에 넣어두고 그 공간과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이미지로 녹여버리는 부분이었는데, 류성희 미술감독도 함께 참여했나 하고 생각될 정도로 기존 박찬욱 영화에서 보여주던 분위기를 거의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한 폭의 이미지가 되어버린 배우들의 연기와 외모는 탁월한 캐스팅과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찰리 역을 연기한 매튜 구드의 매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왓치맨'에서 오지맨디아스 역할을 맡아 강한 인상을 주었던 그는, 불안함과 그 분위기 자체가 핵심인 이 영화에서 바로 그 표정과 실루엣 만으로 우아함과 동시에 공포스러움을 탁월하게 표현해 낸다. 개인적으로 '스토커'하면 앞으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은 바로 매튜 구드의 그 미소가 아닐까 싶다.





또한 '스토커'는 여백을 다루는 솜씨가 능수능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공간과 인물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바로 그 공간과 인물, 인물과 인물 사이에 발생한 여백을 두고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해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리듬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는 데에 또 다른 공로자는 바로 영화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 박찬욱 감독이 헐리웃에 진출했다고 했을 때 가장 반가웠던 스텝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었는데, 역시 그 기대에 맞게 불안하고 우울하면서도 우아하고 슬픈 음악으로 영화 전체를 표현해 내고 있었다. 또 하나 '스토커'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편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비교적 많은 장면에서 교차 편집을 통해 인디아의 심리를 복합적으로 표현해 내려 했으며, 직접적인 표현 없이도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해 냈다.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와 동시에 걱정도 되었던 작품이지만, 작품만을 놓고 따져보았을 때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한 자리를 차지할 만한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벌써부터 그의 헐리웃 두 번째 작품은 어떤 작품일지, 또 누구와 함께 하게 될지 가 기대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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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스토커'를 보았을 땐 화질이 특별히 좋다는 느낌까지 받지는 못했었는데, 블루레이로 보니 확실히 더 특유의 색이 잘 살아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스토커'의 색은 원색적으로 강렬하기 보다는 조금씩 톤이 다운 된 컬러가 주가 되는 편이라 오히려 더 화질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 밖에는 없는 부분인데,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색감임에도 흐릿하거나 불분명함 보다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만족스러운 화질이었다.







대부분 실내에서 벌어지는 장면이 대부분인데, 실내 장면에서는 각 캐릭터의 방과 공간에 따라 각기 다른 컬러가 잘 살아나고 있으며, 적지만 집 외부의 장면에서는 블루레이 만의 디테일한 화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배우들의 피부는 물론 파란 빛을 띄는 눈동자까지 아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어두운 장면들도 많은데 특별히 암부의 표현이 탁월하게 뛰어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음영에 있어서는 역시 블루레이 다운 화질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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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에 대한 첫 인상은 비주얼 적인 것만 남았었는데, 블루레이로 다시 보니 이 영화는 소리에 굉장히 민감한 작품이었다.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사운드 효과와 기술들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오히려 극장에서 보다 작은 공간인 가정에서 블루레이를 통해 이 점을 더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집 안에서 인물들이 대화를 나눌 때도 어느 위치에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울림이나 사운드의 공간감을 다르게 가져가고 있었는데, 바로 그 공간감을 블루레이를 통해 더 효과적으로 만끽할 수 있었다. 일부러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려고 삽입한 소리들은 더 날카롭게 들려주고 있으며, 대사들은 작은 소리들을 캐치해 내는 인디아의 능력에 맞춰, 지나칠 만한 작은 볼륨으로 섬세하게 다뤄지고 있다. 만약 '스토커'를 블루레이를 통해 다시 보고 싶다면 그 첫 번째 이유는 사운드 적인 측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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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영상의 첫 번째로는 '삭제장면'을 만나볼 수 있는데, 총 3개의 삭제 혹은 확장 장면이 수록되었다. 찰리와 인디아가 처음 만나 계단 위에서 대화를 나누는 시퀀스는 확장된 버전을 만나볼 수 있으며, 진 고모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본편에는 없던 추가 대화 시퀀스를 만나볼 수 있다. 세 번째 장면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여기서 설명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 다음은 부가영상의 메인 피쳐라고 할 수 있는 '스토커 : 감독의 여정'인데, 일반적인 제작과정 영상이라기 보다는 연출을 맡은 박찬욱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담긴 부가영상이라고 보면 되겠다. 약 28분여의 영상을 통해 이 작품으로 처음 헐리웃 데뷔를 치른 박찬욱 감독에 대한 배우, 스텝들의 찬사와 존경의 메시지를 만나볼 수 있는데, 여부를 떠나서 국내 팬들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뿌듯한 장면이 아닐 수 없겠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 세계가 '스토커'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에 대한 측면에서 여러 인터뷰가 등장하는 한 편, 영어를 못하는 외국 감독과의 작업을 두려워했던 스텝들이 그와의 작업을 통해 결론적으로 어떤 점을 느끼고 경험했는지도 전해 들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프로덕션 디자인에 관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현지 스텝들과의 첫 작업이었음에도 평소 본인 작품의 성격과 색깔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었던 현장의 분위기를 만나볼 수 있어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이자 역시 정정훈 촬영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으로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 부가영상에서도 정정훈 촬영 감독을 빼놓지 않고 소개하고 있다. 참고로 이 부가영상은 국내 버전에 맞춰 수록된 것이 아니라, 북미 버전에도 동일하게 수록되어 있는 부가영상으로서, 이 타이틀을 구매하는 전 세계의 팬들에게도 박찬욱 감독과 정정훈 촬영 감독을 소개할 수 있다는 것에 더 뿌듯한 부가영상이기도 했다.






'매리 앨런 마크의 사진 갤러리'와 '런던 극장 디자인'이 갤러리 형식으로 수록되었으며, '프로모션 영상'에서는 총 다섯 가지 주제로 짧은 영상 들이 수록되었다. 프로모션 영상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터네셔널 – 한정판 포스터 제작과정'이었는데, 일부는 사진 이미지를 가져다가 쓴 것으로만 생각했던 포스터 속 배우들의 이미지들이 모두 손으로 그려진 그림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바로 그 제작 과정을 만나볼 수 있으며, 그 밖에 '비밀스러운 캐릭터' '감독의 비전' '스타일 디자인' '음악 창작'이라는 주제로 각각 짧은 영상이 수록되었다.





마지막으로는 '레드카펫 프리미어'와 '영화 예고편 & TV광고'가 수록되었는데, '레드카펫 프리미어'는 생각보다는 상당히 긴 분량 (15분)이 수록되어 여의도 CGV에서 가졌던 레드카펫 행사의 요모조모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팬들에게 일일이 싸인 해주는 박찬욱 감독과 미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총평]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서 평소 볼 수 있었던 그 만의 매력이 헐리웃 데뷔작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만족스러웠던 작품이다. 그의 말대로 대사로 전달되는 내러티브 보다는 이미지로 전달하는 그의 작법이라면 헐리웃에서의 다음 작품도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깔끔하게 잘 나온 '박찬욱' 작품이었다. 마지막은 블루레이 속지에 수록된 감독의 말로 대신하려 한다.




'여럿이 함께 보아야 하는 영화관이 아닌 블루레이를 통한 가정에서의 관람이 더욱 개인적인 꿈체험과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줄 수도 있겠습니다. 모쪼록 '즐거운 악몽' 꾸시길 빕니다. – 박찬욱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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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블루레이가 출시되었습니다


출시가 된 지는 조금 되었는데 뒤늦게 소개하게 되었네요.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2011년 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블루레이가 국내에 정식 출시되었습니다. 국내 협소한 시장 탓에 하마터면 출시가 어려울 수도 있었는데 프리오더 후반부에는 더 적극적인 판매가 이뤄지면서 무리 없이 발매될 수 있었네요. 개인적으로도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라 해외 판 구매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멋진 라이센스 반으로 출시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번 블루레이에도 제가 제작에 조금이나마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 위주로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로 꾸민 전면과 영화 속 '서커스'의 문장을 담은 후면 디자인 입니다. 게리 올드만이 서 있는 저 이미지를 참 좋아하는 터라, 블루레이의 커버도 만족스럽네요. 심플하니 좋습니다.






투명 케이스로 제작된 블루레이 타이틀 내부에는 디스크와 함께 라이센스 블루레이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소책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존에 소책자를 포함했을 경우 아웃케이스를 만들어 외부에 수록하는 방식을 택했었는데, 근본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케이스의 비닐이 우는 문제가 발생하여 이번에는 내부에 소책자를 포함하는 형태로 제작이 되었습니다. 대신 소책자의 사이즈는 조금 작아진 편입니다. 오히려 좀 더 아기자기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 팅테솔 블루레이에 개인적으로 가장 뿌듯한 점은 제 글이 실린 것 보다도 두 감독 님의 멋진 추천사가 포함된 것인데, 굉장히 촉박한 일정으로 부탁을 드렸었는데 흔쾌히, 그것도 짧게 써주신다고 해서 정말 한 문장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긴 추천사를 써주신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이 자리를 빌어 또 한 번 드리고 싶습니다. 박찬욱 감독 님은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연락하게 되었는데, 처음 박감독 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을 때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ㅎㅎ 또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현재 차기 작 자료 조사 중이시라 바쁘실 텐데, 긴 추천 글은 물론 박찬욱 감독 님과도 적극적으로 연결해주신 저의 절친(?) 이고 싶은 류승완 감독 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번 '베를린' 인터뷰 차 뵈었을 때 감독 님이 팅테솔을 참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조심스럽게 부탁 드렸었는데, 바쁜 일정에도 멋진 글을 보내주셔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곧 '베를린' 블루레이가 출시될 예정인데, 그 때 '베를린' 블루레이를 들고 다시 한 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그 날이 기다려지네요~






이번 소책자는 제가 참여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 깨알 같은 읽을 거리 들이 제법 있습니다. 오히려 이미지 컷들보다도 읽을 거리가 많은 점이 좋았어요.





그리고 또 한 번 영광스럽게 제 글도 소책자에 수록이 되게 되었습니다. 국내 정식 출시된 블루레이에 제 글이 수록된 것이 이번이 아마도 일곱 번째 인 것 같은데, 모두 다 제 돈을 들여서라도 참여하고 싶었던 작품들이라 참여하는 자체가 몹시 뿌듯한 프로젝트 들이었습니다. 이번 '팅테솔' 역시 마찬가지이구요.





영화를 재미있게 보신 분들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누군 가는 이렇게도 보았구나'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씩 읽어봐 주신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번 '팅테솔' 블루레이는 화질과 사운드, 그리고 소책자는 물론 기존 극장 판에서 큰 문제가 되었던 오역이 모두 수정된 버전이라,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던 분들이라면 전혀 다른 영화를 보시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실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여러 번의 중역과 번역, 검수를 통해 탄생한 완성도 높은 자막 만으로도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는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음에 또 좋은 영화를 수록한 블루레이 타이틀 발매 소식으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스토커 (Stoker, 2012)

불안함으로 가득 찬 공간의 영화



박찬욱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 '스토커 (Stoker, 2012)'를 보았다. 미아 바시코브스카와 니콜 키드먼, 매튜 구드 같은 좋은 배우들 혹은 재료를 가지고 박찬욱 감독이 어떤 요리를 해낼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평소 자신이 잘 하는 요리를 해낼지가 가장 기대되는 점이었는데, 헐리웃에서의 첫 작품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우울함과 우아함, 그리고 기괴함까지 엿보이는 미장센과 이미지, 분위기는 누가봐도 박찬욱 영화라는 점을 알 수 밖에 없게끔 하고 있어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다. 영화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연출해 내는 이안 감독 같은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색깔과 스타일을 견고히 하고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감독들이 더 많은데, 박찬욱의 '스토커'는 그런 점에서 자신의 색깔이 분명해 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스토커'는 내러티브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이미지가, 분위기가 앞서는 영화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극중 인디아의 심리 변화나 갈등을 많은 관객이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매튜 구드가 연기한 찰리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디아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에 대해 이런 반응과 갈등을 겪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까지 볼 수 있을 텐데, 이 심리를 박찬욱은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인디아의 입장에 조금 만 더 빠져들고자 하면 더 복잡하고 슬픈 이야기가 성립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인디아의 심리에 100%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인디아의 집 내부 공간이 주는 분위기, 인물들 간의 대화나 시선이 교차될 때 흐르는 긴장감은 그 자체로도 '불안함'을 만들어 내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영화 내내 흐르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안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커'에서 어떤 사건이 직접적으로 일어나거나 밝혀질 때 보다는 오히려 그 이전에 무언가 불안한 그 상태를 묘사하는 것들이 더 매력적이고 집중되었던 것 같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웬트워스 밀러의 각본이 히치콕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상당히 고전적인 우아함과 동시에 영화적인 구도와 장치들로 채워져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각 캐릭터들을 어떤 공간에 넣어두고 그 공간과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이미지로 녹여버리는 부분이었는데, 류성희 미술감독도 함께 참여했나 하고 생각될 정도로 기존 박찬욱 영화에서 보여주던 분위기를 거의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한 폭의 이미지가 되어버린 배우들의 연기와 외모는 탁월한 캐스팅과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찰리 역을 연기한 매튜 구드의 매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왓치맨'에서 오지맨디아스 역할을 맡아 강한 인상을 주었던 그는, 불안함과 그 분위기 자체가 핵심인 이 영화에서 바로 그 표정과 실루엣 만으로 우아함과 동시에 공포스러움을 탁월하게 표현해 낸다. 개인적으로 '스토커'하면 앞으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은 바로 매튜 구드의 그 미소가 아닐까 싶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또한 '스토커'는 여백을 다루는 솜씨가 능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공간과 인물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바로 그 공간과 인물, 인물과 인물 사이에 발생한 여백을 두고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해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리듬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는 데에 또 다른 공로자는 바로 영화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 박찬욱 감독이 헐리웃에 진출했다고 했을 때 가장 반가웠던 스텝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었는데, 역시 그 기대에 맞게 불안하고 우울하면서도 우아하고 슬픈 음악으로 영화 전체를 표현해 내고 있었다. 또 하나 '스토커'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편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비교적 많은 장면에서 교차 편집을 통해 인디아의 심리를 복합적으로 표현해 내려 했으며, 직접적인 표현 없이도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해 냈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이야기 자체가 주는 강렬함까지 더해졌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박찬욱 감독이 가장 잘하는 것을 자신의 방법으로 거침 없이 표현해 냈다는 점에서 여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벌써부터 그의 헐리웃 두 번째 작품은 어떤 작품일지, 또 누구와 함께 하게 될 지 기대된다.
아마도 많은 헐리웃 영화 관계자들이 이 영화를 통해 박찬욱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느꼈으리라 의심치 않는다.



1. 각본가가 배우로 너무 알려져 있다보니 각본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 이상으로 화제가 논의가 되는 경향이 있는데, 전 이에 대해 특별한 의견은 없어요. 박찬욱 감독이 선택했고, 표현했고, 그 결과물을 본 거니까요.


2.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를 보았을 때도 그랬는데, '스토커' 역시 보는 순간 박찬욱 영화라는게 너무 확실해서 반갑더라구요. 과연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역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기대가 되네요.


3. 아, 미처 정정훈 촬영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는데, 이 영화는 박찬욱의 헐리웃 데뷔인 동시에 정정훈의 데뷔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인상적인 촬영이었던 것 같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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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Night Fishing, 2010)

박찬욱과 어어부 프로젝트의 콜라보레이션



박찬욱 감독과 동생인 미디어아티스트 박찬경 감독의 프로젝트 단편 영화 '파란만장'을 뒤늦게 IPTV를 통해 관람하였다. 공개 당시에 워낙에 아이폰으로 촬영한 영화라는 사실로 화제가 되었던 단편영화였는데, 극장 상영 기회는 아쉽게 놓쳤지만 쿡TV를 통해 이제야 만나볼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었던 건 당연히 박찬욱 감독의 연출작이라는 점 때문이었는데, 홍보의 포커스는 아이폰 4였지만 개인적으로 아이폰 4 촬영은 양념일 뿐, 단편이긴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신작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갖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단순한 이런 호기심 정도여서인지 오광록 외에 이정현이 출연한다는 사실은 영화를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보게 된 박찬욱/박찬경 형제의 단편 프로젝트 '파란만장'은, '박찬욱 + 아이폰 4' 라기 보다는 오히려 '박찬욱 + 어어부 프로젝트' 가 더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 (주)모호필름. All rights reserved



일단, 그래도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다 라는 트랜드와 맞물려, 박찬욱 같은 전문가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화는 어느 정도의 퀄리티일까? 라는 궁금증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런 측면에서 '파란만장'은 마치 '봐, 아이폰 4로 이런 장면도 찍을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의도된 장면들을 여럿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마케팅과 기술적 포인트에 맞춰 작품을 만들 박찬욱 감독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런 포인트를 포함하려고 의도한 부분은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 영화와 거의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 앵글을 비롯해, 아웃 포커싱이라던가 스마트폰이라면 아마도 취약점이 아닐까 라고 생각되는 어두운 밤 장면, 더 나아가 수중 촬영에 이르기까지, 영화 촬영 카메라로서 아이폰 4가 갖는 기술적 가능성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적절히' 배치 했다는 점인데, 가끔 3D입체 영화의 경우 너무 기술을 보여주어야 겠다는 의도 때문에 본편과는 어긋날 정도의 연출이나 장면이 등장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는 점에서, '파란만장'은 이런 기술적 가능성의 노출과 작품의 분위기가 잘 균형을 이룬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한 발 더 나아가 얘기하자면, 스폰서인 올레KT와 박찬욱 감독의 팬들을 모두 적당히 만족시키는 작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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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이 재미있는 이유는 단편이라는 특성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편은 단순히 장편에 비해 분량이 짧은 것이 아니라, 단편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호흡과 분위기가 있어서 매력적이기 마련인데, 이를 모를리 없는 박찬욱/박찬경 감독은 단편만이 낼 수 있는 맛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낚시터와 밤이라는 공간과 시간의 설정, 그리고 굿을 벌이는 또 하나의 시퀀스는 기괴함과 모호함이 맞물려 관객들로 하여금 흥미를 자아내는 동시에 별다른 앞뒤 설명 없이도 어렵지 않게 단편 속 '순간'에 빠져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오광록과 이정현 두 배우의 연기를 들 수 있을텐데, 이정현이 표현한 캐릭터의 경우 얼핏보면 극중 캐릭터라기 보다는 (특히 노래할 때) 가수 이정현의 모습이 겹쳐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이질감이 '파란만장'만의 아우라를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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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두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 작품의 기괴함과 단편 맛의 맛을 내는데 가장 인상적인 재료는 어어부프로젝트의 음악이 아니었나 싶다. 평소에도 아방가르드하고 독창적인 음악과 퍼포먼스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어어부프로젝트의 음악은, '파란만장'이 더 단편스럽도록 그리고 더 기괴한 리듬을 갖도록 하는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박찬욱 감독의 전작 '복수는 나의 것'을 통해 함께 작업한 적이 있었던 어어부프로젝트는, '파란만장'을 통해 또 한번 다른 아티스트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리듬과 공기를 작품에 부여하고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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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의 저서 '김태훈의 랜덤 워크'를 읽던 중 한 문장이 하나의 글감을 제공했다. 그는 1960년대를 두고 '지미 헨드릭스와 제니스 조플린이 신보를 발표하고, 고다르와 트뤼포의 신작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시대'라
고 이야기했는데, 개인적으로도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한적이 많았던 터라 공감이 많이 되는 구절이었다. 나도 가끔,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홍콩 느와르의 전성기를 이끌던 그 당시 개봉관에서 이 주윤발을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비틀즈라는 밴드의 시작부터 마지막을 지켜볼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를 TV라이브로 즐겼다면 어땠을까, '스타워즈 - 에피소드 5'의 그 유명한 대사를 개봉 당시 실제로 들었더라면 과연 그 충격이 어땠을까 등 비디오나 후일담으로 전해들은 전설의 이야기들을 리얼타임으로 즐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해보곤 했었다.

매번 이런 생각은 이렇듯 부러움에서 그치곤 했는데 오늘은 무슨일인지, 그간 내가 살아온 시대를 돌아보게 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살아온 길지 않은 이 시대도 충분히 아름다운, 아니 후세에 누군가는 지금의 나처럼 반드시 부러워할 만한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되돌아본다면,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부작과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3부작을 모두 극장에서 즐길 수 있었으며, 앞서 부러워했던 '스타워즈' 시리즈의 프리퀄 3부작 역시 전야제라는 행사를 통해 팬들이 모여 그 유명한 오프닝롤이 등장할 때 극장에서 환호를 보내며 즐길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축복인가!). 그 뿐인가 '메멘토'부터 시작해 '인썸니아' '프레스티지' 그리고 '다크나이트'로 이어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시작과 성장을 아직도 지켜보는 중이며, 코엔 형제라는 세기의 천재 감독의 영화를 개봉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동시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소년에서 남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목격할 수 있었다. 또한 이소룡의 영화를 비록 극장에서 즐기지 못했지만, 우리에겐 성룡이라는 형님을 모실 수 있었으며,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같은 우리 감독들의 세계적인 작품도 안방에서 즐길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장국영이라는 별을 갖을 수 있었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 픽사라는 영민한 스튜디오, 에반게리온이라는 걸작을 무려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이걸 하나하나 말하자면 절대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현재에 많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 영화 팬들이라면 누구나 예전 영화들을 극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지금은 지긋한 나이의 배우들의 한창 때를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마련인데, 아마 이 다음 세대는 분명 '스타워즈의 그 유명한 테마 음악을 극장에서 들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히스 레저의 연기를 매번 극장에서 즐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요'라는 부러움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는 분명 다음 세대가 충분히 부러워할만한 시대다.




음악은 또 어떤가. 개인적으로 존 레논과 동시대에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매우 자주 하곤 하지만, 아마도 이 다음 세대는 마이클 잭슨의 문워커를 TV를 통해 볼 수 있었다면, 그의 신보를 몇년마다 들어볼 수 있었다면, 내한 공연을 볼 수 있었더라면 하는 부러움, 아니 마치 꿈과도 같은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내겐 그리고 우리에겐 마이클 잭슨이라는 세기의 아티스트가 있었다. 아마도 이건 우리 세대에 가장 큰 축복일런지 모른다. 또한 U2, 라디오헤드, 뮤즈, 레드 핫 칠리 페퍼스, R.A.T.M 등 수 많은 밴드들은 물론 bjork, beck, sigur ros, 프린스 등 개성있고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한 뮤지션들의 신보를 흔치 않게 음반샾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멀리 해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다음 세대가 부러워할 만한 자산들이 많은 세대였다. 한 앨범이 100만장 넘게 팔리던 상황을 목격한 마지막 세대였으며,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반을 사기 위해 동네 음반샾에 미리 가서 예약표를 발권받거나 발매일 음반샾 앞에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서본 마지막 세대였다. 또한 우리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레전드 아티스트의 결성부터 해체까지를 모두 확인했으며,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발하지 않는 댄스 음악을 만들었던 듀스를 TV음악 프로에서 만나볼 수 있었음은 물론, 윤종신이라는 사람을 '예능 늦둥이'가 아니라 애절한 발라드를 부르던 '가수'로서 갖을 수 있었다.  




그냥 우연히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가 누린 얼마 되지 않은 과거의 시대와 현재 누리고 있는 시대 역시 누군가는 반드시 부러워할 만한 시대라는 것. 내가 과거의 시간들을 부러워 하는 것처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시절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시절을 더 치열하게 즐겨야 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사실 이런 이벤트가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우연히 좋은 기회에 초대가 되어 박찬욱 감독과 함께하는 영화 감상과 씨네토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늦게 초대를 받아서인지 좌석이 맨 앞이었는데(티켓 전달해주시면서 '영화는 보셨죠?'하고 미안한듯 물어보시더라는;;), 정말 몇년 만에 맨 앞좌석에서 영화를 보게 된 것인지(예전 메가박스 M관에서 A열 1번에서 <한니발>을 본 뒤 처음인것 같다) 기억이 안날 정도로(기억났죠 ㅎ) 오랜만이었는데, 정말 영화를 미리 본 것이 참으로 다행인 순간이었습니다.

영화는 확실히 여러 번 볼 수록 발견하지 못했던 장면들과 감성들을 만나볼 수 있는 예술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첫 번째 관람에서는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장면들도 발견할 수 있었고, 첫 번째 감상기에서는 다 쏟아내지 못했던 내용도 추가로 정리할 수 (머리 속에서;;) 있었습니다.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말했듯이 <박쥐>관련해서는 박감독님이 거의 이런 인터뷰나 씨네토크 자리를 갖지 않고 있어서 오늘의 행사는 더욱 의미깊게 다가오기는 했는데, 관객 각자의 느낌과 감상을 연출자로서 제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도에서 가능한한 이런 자리를 비롯해 DVD의 오디오 코멘터리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씀을 들으니, 준비했던 질문을 하기가 망설여지더군요.

그래도 계속 손을 들었는데 결국 질문의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ㅠㅜ 그저 맨 앞자리에서 박감독님의 모습을 아주 가깝게 접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네요. 시종일관 감독님은 관객들의 질문 하나하나에 굉장히 신중하고 깊게 경청하시는 모습이었으며(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질문에도 매우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하려던 질문을 하지 못한 것과 씨네토크 시간이 너무 순식간에 끝나버렸다는 것을 제외하면, 흔치 않은 기회였다는 점에서 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아, 가져간 DVD에 싸인을 받지 못한것도 아쉬운 점이에요 ㅠ)


덧붙임.

간단히 이 날 있었던 씨네토크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테레즈 라캥'의 주인공 이름들과 영화 <박쥐>속 인물들의 이름의 유사성에 대해 확답을 들을 수 있었고(테레즈 - 태주, 까미유 - 강우 등), 쪽가위를 입안에 넣고 빼고를 반복하는 장면의 의도를 묻자, 단순히 입이라는 곳이 무언가 들어오고 나가는 통로의 이미지라고 생각해서 기획된 장면이기도 하고 더나아가 병균처럼 외부의 것이 내부로 침입하는 이미지를 생각해 삽입하였다고 한다(개인적으로는 의도적인 불편함을 유발시키기 위한 장치로서도 이해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코멘트로 들을 수 있었는데, 애초에 박찬욱 감독님의 생각은 마치 상현이 엠마누엘 연구소 벽에서 본 듯한 지네의 이미지, 이 지네가 날개도 달리고 더 많은 다리들을 갖은, 이런 이상한 지네들이 엄청난 수로 하늘을 뒤덮고 있는 이미지를 생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막판에 너무 급작스럽게 감정을 깨버릴 지 모른다는 주변의 (강력한) 우려가 있어 최대한 이 장면을 축소하였고, 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은 장면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이 장면은 죽음을 앞에 둔 상현이 마지막 환상을 보는 것으로 이해되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생각해보았던 것이지만, 결국 상현은 자신의 기도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라는 질문. 그리고 더 나아가 상현이라는 존재를 가지고 신이 마치 광야에서 시험하듯 한 것이 아니냐는 흥미로운 질문이 나왔는데, 이 영화는 분명히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점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더나아가 본래 감독님이 구상했던 시나리오에는 상현이 지금보다 훨씬 더 욕망이 강한 인물로 그려졌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덧붙임 2.

제가 원래 하려던 질문은.
'처음에는 뱀파이어가 된 상현이 자신의 욕망을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본래 좋은 일을 하려고 간 것이다. 죽기를 바라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등) 이 행위를 합리화해 가다가, 결국 자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태주를 보며 새삼 자신의 그간의 합리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자살을 하게 되는, 일종의 자살 영화로 이해했었는데, 마지막 죽기 이전에 보면 한동안 상현을 부르지 않았던 태주가 '신부님'이라고 부르는 장면과 동시에 상현이 신부로서 처음 등장 할 때 흐르던 테마 음악이 흐르게 된다. 이걸 보면 이 영화를 사제로서 상현의 순교 영화로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으로서의 자살 영화로 봐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질문이었어요.

그런데 이것인가 저것인가 라기 보다는 어느 편이 더 의도에 가깝나 혹은 관객으로서 보았을 때 어느 쪽에 더 공감이 가는가 정도로 질문하려 했는데, 아쉽게도 묻지 못했네요. 개인적인 생각은 둘 다라고 생각되요. 정답도 없고.





글/사진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예매문제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박쥐>의 용산 시사회장에서 받았던 아이템들.
폴더와 스틸컷들은 그럭저럭이지만 시나리오 북은 영화 속 대사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자, 리뷰를 쓸 때도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영화 리뷰는 곧 쓰겠지만, 역시 예상대로 <박쥐>는 박찬욱 감독의 취향이 더욱 반영된 작품이었으며, 관객들은 많이들 당황하는듯 싶었고, 개인적으로는 그 취향 속에서 다양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미쓰 홍당무 (2008)
궁상이라 욕해도 좋다!


개봉 전 부터 제법 화제가 되었던 <미쓰 홍당무>를 오늘 드디어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는지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시다시피, 박찬욱 감독 제작작품이라는 점 때문이었죠. 일반관객들에게는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작품이다라는 걸 마케팅 측면에서 강조하여 홍보하고(전 근데 아직도
박찬욱 감독이
대중적인 홍보 포인트가 된다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만 느껴집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흥행 실패한 이유는
관객들이 박찬욱이라는 감독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가 전혀 달랐음으로 벌어진
현상이라고 생각되거든요. 
<복수는 나의 것>이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올드보이>보다는 더 박찬욱스럽다고 생각되는데, <올드보이>의 엄청난 성공이 그를 너무 대중적인 감독으로 많은 이들이 오해하도록 만든것이 아닌가 싶거든요 ㅎ),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역시 박찬욱 감독이긴 하지만 그 이름 자체가 아니라, 박찬욱 감독이 오랫동안
숨겨왔던 비밀병기를 드디어
꺼낸다는, 신인 이경미 감독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목을 받았던 영화였죠.

개인적으로는 처음에는 아주 큰 기대를 가졌었다가 막상 포스터 등이 공개되던 시점에서는 그저 그런
코미디인가 보다,
즉 안면 홍조증이 주가 되는 코미디인가 보다 해서 살짝 기대를 접었었는데, 이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안면 홍조증은
마치 주인공이 안경을 썼다 안썼다 정도의 차이일뿐 그저 캐릭터를 소개하는 하나의
소재일 뿐이더군요.
<미쓰 홍당무>는 정말 오랜만에 대한민국에서 만나는 캐릭터가 빛나는 영화이며,
 마치 우디 알랜의 영화처럼 수다에서 오
는 재미도 느낄 수 있고, 찰리 채플린의 영화처럼 슬랩스틱
코미디서부터 결국엔 유쾌한 웃음과 씁쓸한 웃음마저
동시에 느껴지는 보석과도 같은 2008년
한국영화의 수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장면에서 두 배우의 슬랩스틱 코믹연기는 정말 빛이 나더군요. 왠지 '허걱'이란 통신용어를 몸으로
시각화 하는
 느낌이었달까요)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공효진의 인상적인 표정으로 떡하니 채워져있는 포스터가 인상적인 <미쓰 홍당무>는
정말 리얼한
캐릭터 영화입니다. 일단 공효진이 연기한 주인공 '양미숙'의 캐릭터는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캐릭터이자, 오
랫동안 기다렸던 본격적인 캐릭터랄까요. 안면 홍조증으로 인해 시도때도 없이 붉게
변하는 얼굴 빛을 재쳐두더라도,
그녀의 다양한 표정연기와 표정연기에 가려 도드라지진 않지만 몸을 쓰는
연기에서도 '양미숙'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그
 자체로 독보적인 존재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미숙'은 캐릭터 영화의 주인공 답게 마치 히어로 영화의
히어로처럼 의상도 거의 저 회색 코트의 단벌로
등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양미숙'이라는 캐릭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바로 그녀의
대사에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연상
시킬 만큼
(실제로 이경미 감독은 우디 앨런의 영화와 찰리 채플린의 영화 같은 분위기를 염두에 두었었다고 합니다),

속사포 같은 대사들과 굉장히 잡다한 대사들이 가득한데,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다'라는 것의 미덕은 단순히 그 양이 많아서 좋은 것이라기 보다는, 그 쓸때 없어 보이는 많은 말들 가운데
(나름) 논리적인 바탕이 깔려있어야 한다는 것을 들 수 있을텐데, '양미숙'의 말들을 듣다보면 굉장히
많은 말들을 하고
또 반복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철저히 양미숙 만의 논리적인 바탕을 깔고 있는
대사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바로 그 '잡다함' 때문이었는데, 보통 일반적인
캐릭터의 대사에서는 좀 더 일반적이고
논리적으로 보이기 위해 생략하고 절제했던 말들을 최대한
짜르지 않고 확장한 듯한 대사라고 할까요. 시시콜콜 구차한
것을 다 들먹여가며 남들은 신경쓰던 안쓰던
자신만의 이야기를 끝내고야 마는 대사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여기에 가장 큰 공은 공효진씨의 맛깔스런 대사 연기에 있다 해야겠죠.



(<추격자>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지영민'이 올해 한국영화 상반기의 캐릭터였다면, 후반기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누가 뭐래도 공효진이 연기한 '양미숙'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양미숙'만으로도 괜찮은 캐릭터 영화가 됐을 법한 <미쓰 홍당무>에는 이 외에도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들이 몇몇
더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캐릭터는 신인 배우 서우가 연기한 '서종희'라는 인물입니다.
극중 이종혁이 연기한 서종철의 딸로 등장하는데, 기존 한국영화에서 교복을 입고 등장하는 학생 캐릭터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아우라를 선보입니다(교복입은 학생의 대부분은 침 뱉는 불량 학생 아니면
뭔가 사연있는
아리따운 학생이었죠. 아, <좋지 아니한가>에서 황보라가 연기한 캐릭터는 열외로 해야겠군요.
하지만 이 경우는 학교
보다는 집이 주배경이 된 영화였기 때문에 정확한 비교군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신인배우 서우의 경우 기존에 몇몇 CF를 통해 코믹함과 세련된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었던
배우였는데,
일단은 이렇게 키가 작은 배우인지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극중 공효진과 키 차이가
정말 학생과 선생님처럼
나는걸 보고는 처음엔 일종의 카메라 페이크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풀샷을 보니
아니더라구요;), CF 속에서의 진한
화장을 한 모습만 보았던터라 이렇게 화장기 하나 없고 오히려 주근깨와
다크써클까지 있는 얼굴을 보니 같은 사람인가
싶기도 하더라구요.

사실 이런 영화에서 이런 요상한 캐릭터는 그냥 요상함만으로 내세우기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우가 연기한
'서종희'캐릭터는 '양미숙' 못지 않게 매력적인 캐릭터로서 신인배우 서우의 연기력도 엿볼 수 있기도 했습니다.
특히 앞서 언급했던것 처럼 CF속의 그 인물과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완전히 중학생스러운 그 표정들,
그리고 우는 장면에서는 정말 여배우임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완전히 표정연기함에 있어 '놔버린' 그 연기가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첨에 CF에 등장할 때만 해도 그저 요상한 춤을 추는 '무슨 녀'로 잠시
주목 받고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앞으로도 상당히 기대가 되는 신인 배우로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공효진의 열연이 예상된 수순이었다면, 서우의 발견은 <미쓰 홍당무>의 가장 큰 보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인배우인 서우의 얘기가 나온 김에 이 영화를 통해 인상깊은 연기를 펼친 또 한명의 신인배우 황우슬혜의 대한
얘기도 마저하고 넘어가야 겠네요. 극중 러시아어 교사 '이유리'역할을 맡은 황우슬혜 역시 강한 캐릭터가
버티고 있는
이 영화에서 빛을 잃지 않는 열연을 펼치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어디서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 내숭 가득한 '이유리'역할을 소화하기에 그녀의
청순한 마스크는
확실히 큰 도움이 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외에 상당히 순수함을 넘어서 어리숙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게 밉지만은 않게 표현된 것은 아마도 그녀의 모습과 연기가 큰 몫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에도 출연을 하고 있는데, 독특한 이름과 더불어 앞으로 역시 기대가 되는
신인 배우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많은 남성 관객분들은 벌써부터 '황우슬혜'라는 이름을 외우셨는지도 모르겠군요 ㅎ)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언급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것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전 사실 이 영화가 단순 코미디가 아닐까 하는 선입관이 있었는데,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씁쓸한 웃음이 동시에 드는 코미디 영화더군요. 그렇다고 본격적인 블랙 코미디는 아니지만요.
일단 영화는 이른바 '왕따'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안면 홍조증으로 주목받고
주변인들에게
비호감으로 낙인아닌 낙인이 찍혀 학생 시절이나 선생님이 된 지금이나 따돌림을 당하는 양미숙의
캐릭터를 그리는
태도나 주변인들의 시선을 그리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일반적으로 루저나 왕따(이 표현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요)가 주인공이 영화에선, 주인공이 이를 극복하고 결국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즉 루저는 끊임 없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서 1등이 되고,
왕따는 우여곡절 끝에 모든 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이런 전개는
신파극 중의
신파극 보다도 뻔하다고 느껴지기에 별다른 흥미나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더나아가
교훈적인 면에서는 더더욱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래서인지 <미쓰 홍당무>에서 이들을 그리는
방식은 참 마음에 들더군요.


사실 본래 이 리뷰의 제목도 보통 같으면 '궁상이라 욕하지 마라'라고 했겠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실히
전달하는 면에서 접근했을 때는 지금처럼 '궁상이라 욕해도 좋다'가 더 맞다고 생각되더군요.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양미숙이 이루고자 하는 바는 하나도 이루어지지도 않고 피부과를 다녔지만 안면 홍조증이 결국 낫는 것도 아니죠.
영화의 마지막에 보면 결국 자신과 비슷한 동료 한 명을 더 얻은 것 외에는 이렇다할 긍정적 변화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서종희'역시 축제 무대에 올라 공연까지 마쳤지만 그렇다고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갑자기 '절친'이
됐을리는 만무하고 계속 찐따나 찐따 애인으로 놀림거리가 됐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듯 합니다.


이 영화가 좋았던 건 포스터에 있는 '내가 뭐 어때서?!'라는 문구처럼 루저인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네들의 방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내가 뭐 어때서?!'라면서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끝까지 편견과 오해와 싸워가는 모습이 더 보기 좋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외롭게 지내왔을 그들이 왜 사랑받고
관심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겠느냐만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지지 않겠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라는 식의 오기가 발동하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영화가 씁쓸했던 건 결국 자신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사회와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사건으로 마무리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감독은 의도적으로 외모나 편견들만으로 사회가 소수를 왕따시키는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여러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집요하게 이들을 무시하는 학생들의 대사라던가,
본인들은 원하지도
않았는데 '찐따와 찐따애인'이라고 이름까지 붙여서 신청해 놓고는, 시간내에 자리에
나타나지 않자 계속 방송으로
이들을 비꼬듯 반복하는 장면에서는, 이들을 왕따로 만든 다수의 악마적 횡포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단체로 리본 달고 춤을 췄던 여학생들의 미소 띤 얼굴들이 결코 예뻐보이지 않았던 것
또한 이런 면에서 가능한
연출이었죠.



(청각 자료실(?)이라고 해야되나요? 여튼 이 공간에서 이 둘이 등장하는 장면과 후에 모든 인물이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 남을 법한 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이 영화가 왜 18세 관람가를 받았는가 의아해 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폭력적이나 선정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아, 그림으로 등장하기도 하는군요 --;), 마치 영화 <클로저>의 경우처럼 음란한 채팅이나
<카마수트라>에서 인용한듯한 성적인 표현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것에 비해 실제로 시각적인 18세 관람가 장면은 없어서 아쉬운(?)분들도 있을 듯 하네요 ㅎ

개인적으로 극중 양미숙+서종희와 이유리가 채팅을 하는 장면에서는 <클로저>도 그렇고, 미란다 줄라이 감독의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역시 이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던 건 러시아어를 이용한
개그였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참 단순하지만 그 발음 때문에 웃지 않을 수 없더군요.

이 영화가 별 세 개 정도에서 별 개를 넘어 다섯에 가까운 영화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바로 그
'청각 자료실(?)'에서 벌어지는 시퀀스 때문이었습니다. 극 중 주요 모든 인물들이 드디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거침없이 의견교환을 나누는 이 시퀀스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시나리오를 맡은 작품이기 때문에 그의 전작인
<친절한 금자씨>에서의 폐교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이 시퀀스는 정말 대박이더군요.
이 공간만의 특성을 제대로 이용한 소소한 유머도 그렇고, 마치 법정에 선듯 서로가 서로를 변호하고 주장하는
이 장면은 마치 최근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비몽>에서 갈대밭 씬이 그랬던 것처럼, 단 한 장면에 굉장한 에너지가
담겨있는 멋진 장면이 아니라 할 수 없겠습니다. 특히 이 장면이 더욱 그럴듯 하고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데에는
종철의 아내 역할을 맡은 방은진씨의 포스가 크게 작용한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구요. 방은진씨가
묵직하게 무게를
잡고 있던 탓에 이 장면이 왠지 모르게 이상한 아우라를 갖게 된 부분도 분명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미쓰 홍당무>는 이 시퀀스 하나 만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공효진의 섬세한 표정연기는 그야말로 최고입니다. 저 아기자기한 눈코입과 볼이 만들어내는 표정연기는
양미숙이라는
캐릭터를 만나 120% 결과물을 쏟아냅니다)

영화를 보기 전만 해도 '올해의 한국영화다' '상반기에 <추격자>가 있었다면 후반기엔 단연코 <미쓰 홍당무>다'
라던지,
'박찬욱 감독이 밀어주는 신인 감독은 역시 다르다' 등등의 표현들에는 거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어느 영화나 그렇겠지만 개봉 전 홍보 때는 다들 조금씩 과하게 부풀리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미쓰 홍당무>도
너무 박찬욱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거대 포장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이런 표현들이 결코
크게 과장된 것 만은 아니었음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공효진을 비롯해 신인배우 서우와 황우슬혜, 그리고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보여준 방은진씨, 그리고 리뷰에도 거의
노출이 되지 않아 살짝 미안한 마음마저 드는 이종혁씨 등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도 볼만하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캐릭터 영화이자 코미디이며, 그 안에 쓸씁한 뒷 맛과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까지 넣어놓은 훌륭한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분명 마이너한 코드와 개성적인 분위기가 가득담긴 영화라 보는
이에 따
라서는 시종일관 집중할 수 없고 불편하게까지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 코드에 맞는 이들이라면 보는 내내
킥킥
거리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독특한 개성만큼 엄청난 흥행까지는 거두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개성 강한 영화가 좀 더 한국영화계에서
대접받을 수 있는 케이스를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봅니다.



1. 뭐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의 까메오 출연 이야기는 다들 너무 많이 하신터라 ^^;
2. 극중 피부과 병원에 간호원으로 나온 분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 마지막에 대모하던 사람 중에
   멀리서 오는
괴물을 한강에서 발견하고 카메라로 촬영하던 그 분이더군요.
3. 엔딩 크래딧에 도움 주신 분들에 '류승범'씨도 있더군요 ^^
4. 음악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전자음악단과 달파란이 참여하기도 했던데 너무 과하지 않은 선에서
   적절히 삽입된 것 같습니다.
5. 아마도 제가 근래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여성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6. 서우씨는 본래 서종희 역할이 아니라 이유리 역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당시 다른 촬영때문에 교복을
    입고 오디션장에 가게 되었는데, 이를 보고 아 '서종희'역할에 딱이다 라고 생각되어 급 변경 되었다고
    하네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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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보그지만 괜찮아 (2006)
 
(스포일러조심)
뭐 박찬욱 감독의 그 동안 영화들을 모두 좋게 봐온지라 이번 작품도 많이 기대했던 작품.
정지훈이 주연을 맡았다는 것에 사뭇 걱정도 되었던 작품.
결과를 보자면 꽤 괜찮았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박찬욱 이름을 보고 극장을 찾았던 대부분의 관객들은 물론,
임수정과 정지훈을 보려고 극장을 찾았던 소년,소녀팬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관객들은
많이들 실망했음은 물론 '이게 뭐야'하는 식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뚜렷한 기승전결도 없고(특히 '결'이없다),
이렇다할 클라이맥스도 없으며 커다란 갈등구조도 없다.
그러니 더더욱 감동같은 건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았던 건 그런것들을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기때문이다.
 
사실 박찬욱 감독은 원래 이런 감독이다.
<친절한 금자씨>같은 영화에서도  머리는 최민식이고 몸은 개로 나오는 장면처럼
내용과는 조금 동떨어진 딴 세상의 장면을 삽입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 영화는 아예 그런 설정과 구조들만이 존재하고 있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친절한 금자씨>가 개봉했을 직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박찬욱이 <올드보이>로 돈벌더니
배불렀다, 배신했다 등등 평이 있었지만, 박찬욱은 원래 그런 스타일의 감독이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영화들 가운데 <올드보이>란 작품은 관객들과도(의외로 너무 많은 관객들),
공감대가 맞아 떨어진 작품이었고, 그렇지 못한 작품도 있는 것이다.
(사실 금자씨가 몇백만씩 관객이 들때도 이 영화가 그렇게 많이 볼 범국민적인 영화는 아닌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었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초반에 비쥬얼과 상상력이 결합된 오프닝신을 보면서
참으로 팀 버튼 영화가 많이 떠올랐다. 약간은 기괴하면서 미술적인 요소가 강조된
타이틀은, 이 영화가 평범한 영화는 아님을(평범한 스타일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일터.
전작 <금자씨>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심인물 2명 이외에 여러명의 조연들을 등장시키는
연극적인 스타일의 구성도 그대로 이어졌다(배우들도 대부분 전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다시금 출연하고 있다).
또한 마치 미셸 공드리의 영화를 보는 듯한 상대적인 크기의 차이로 재미를 주는
영상적인 요소들도 등장했는데, 기술적인 면에서 어설프거나 이질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또 순대를 만드는 별 거 아닌 장면에서도 조명을 벌~겋게 하여 혹시 박찬욱이라면
12세라도 뭔가 하드코어한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의도한 것도
유머러스했다.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임수정이라는 배우가 이 정도의 에너지가 있던 배우였던가 하는 것이었다.
러닝 타임 가운데 몇번씩이나 무서우리만큼 섬뜩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원래 임수정의 말투가 저랬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웠던 억양과
마음껏 소리지르며 연기할때는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 쉽지 않을 만큼 무서운 포스를 내뿜었다.
가장 위험요소였던 정지훈의 연기는 뭐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그의 대한 평가는 캐릭터 자체가 좀 이상한 캐릭터였음으로 평가보류해야 될듯하다.
 
이 영화는 박찬욱이 자신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이상한 영화 중 하나이다. 난 정지훈과 임수정의 눈물겨운 러브스토리도,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극적인 요소도 기대하지 않았던터인지,
임수정이 아톰마냥 손가락이 열리고 무자비하게 의사들을 쏴죽이고 병원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상상을 할때에도, 그저 씨익 웃음이 났다.
 
좀 오바해서 생각해본다면,
정신병 환자들의 원인에 관한것(그들이 병에 걸리게 된 사연들을 들어보면 모두들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어서, 그 염원하는 마음에 병을 얻게 된 것)이라던지,
이들을 대하는 비장애인들의 태도라던지 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볼 수도 있었지만,
이 영화는 그러라고 만든 영화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실상 마지막 대사가 된 '근데 양말만 젖은 건 아니잖아'라는 정지훈의 대사는
무언가 여러가지 생각하게 하는 대사였다.
 

 

 
글 / ashitaka

p.s/1.정지훈의 쓰고 나오는 몇 가지의 가면들, 참으로 갖고 싶더라 --;
2. 임수정의 뒷 모습, 너무 안쓰러웠음(영화재미없게 본 사람들도 이건 다 공감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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