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의 봉인 (The Seventh Seal, 1957)

여정의 끝이 아닌 과정을 담은 영화



그 동안 제목만 무수히 들어왔던 영화.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그 영화를 수식하는 말은 많이 들어왔던 영화.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 (The Seventh Seal, 1957)'은 내게 그런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본다하더라도 극장에서 보게 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었는데, 백두대간이 마련한 좋은 기회를 통해 2012년 개봉하게 되어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영화에 애정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레 고전이라 불리우는 예전 영화들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역시 걸작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었구나'라며 감탄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작품이 시대를 뛰어넘기 보다는 당시에만 머물러 있는 영화도 있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접한 경우도 있었다. 사실 '제7의 봉인'을 보기 전에는 신과 죽음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라는 예상 탓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보게 되었는데, 의외로 시종일관 유머가 사라지지 않는 작품이었으며 20세기 최고의 씨네아스트 답게 시대를 뛰어넘는 영화적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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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침묵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질문이 담긴 '제7의 봉인'은 그 주제 만으로도 상상하기 힘든 심오함의 무게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잉마르 베리만은 이 성찰의 여정을 오묘하게 그려냈다. 굳이 신과 관련된 질문이 아니더라도 감독의 깊은 성찰이 담긴 작품의 경우, 그 무게를 영화가 감당하는 방법에 있어 힘겨움을 반드시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영화의 능력 부족이라기 보다는 힘겨움으로서 표현해야할 주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7의 봉인' 역시 그러한 방식이 아닐까 섣불리 예상했었지만 잉마르 베리만의 방식이 오묘하다는 것은 유머러스함과 아이러니를 전면에 배치하다시피 하면서도 이 여정 속에 주제가 갖는 무게를 관객이 고스란히 받아들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극 중 등장하는 광대의 이야기가 영화의 주제에 아주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는 하지만, 이 광대의 이야기를 들어내고 죽음과 체스를 두는 기사 '블로크 (막스 폰 시도우)'와 그의 종자 '옌스 (군나르 뵈른스트란드)의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와 신의 침묵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지는 블로크의 여정은 그 나름대로의 구성을, 광대와 그 가족의 이야기는 또 나름대로의 플롯을 가지고 성립이 가능하도록 구성된 동시에 두 이야기가 하나로 만났을 때 만들어내는 메시지는 다르지 않음을 만들어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 접점을 만들어낸 방식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 연결고리가 강하지 않고 느슨한 듯 하지만 처음 부터 끝까지, 다르면서 같고 같지만 다른 두 가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매우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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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죽음으로 데려가기 위해 온 사신과 두는 체스라. 곰곰히 생각해보면 잉마르 베리만이 체스라는 소재를 이 관계 속에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한 것은, 자신의 오랜 성찰의 결과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 성찰 과정 자체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죽음이라는 것은 어차피 과정 보다는 결과라고 할 수 있고, 체스 역시 결과로 말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잉마르 베리만은 어쩌면 정해져 있는 두 가지 결과의 대화를 통해 그 과정에 담긴 수많은 질문과 성찰을 담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제7의 봉인'의 결과는 그 과정 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블로크는 단순히 자신의 죽음을 미루고자 꼼수를 부려 사신과 체스를 제안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며, 애초부터 결과(죽음)를 바꿔보려는 생각은 없었던 것 처럼 보인다. 답을 말하지 않는 영화에는 여러가지 경우가 있는데, '제7의 봉인'은 그 답이 무엇이었던 간에 그 답보다 의미있는 과정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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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신과 바닷가에서 처음 체스를 두는 그 유명한 오프닝 장면은 정말 인상 깊더군요. 그 설정이 주는 인상과 흑백의 명암이 주는 아름다움이 모두 인상적인 장면이었어요.


2. 막스 폰 시도우의 젊은 모습은 아무래도 적응이 안되더군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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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2010)
공존을 경험하다


'엉클 분미'를 보았다. 아니 경험했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겠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엉클 분미'는 한편으론 굉장히 복잡하고 난해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자면 (그리고 정치적인 메시지마저 제외한다면) 의외로 단순한 구성의 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쨋든 '엉클 분미'는 개인적으로 단 번에 글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작품이었다. 특히 '엉클 분미' 만으로 이 작품을 평가하기보다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다 본 이후에야 연장선상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리고 극중에서 비교적 노골적으로 묘사된 태국의 정치적 배경을 알고 있어야만 비로소 '엉클 분미'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보았다'라기 보다는 차라리 '경험했다' (몸을 맡겼다)라고 보는 편이 더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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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들판에 묶여 있던 소 한마리가 줄을 풀고 정글로 도망갔다가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시 잡히는 과거의 시퀀스로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는 주인공 분미 아저씨와 인물들이 등장해 얼핏 전생의 이야기를 흘리는 것으로 보아, 이 오프닝 시퀀스인 소의 이야기 역시 누군가의 전생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한참 분미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춰 가려 할 때쯤, 영화는 죽은 그의 아내와 원숭이에게 홀려 역시 원숭이가 되어 나타난 아들 분쏭과의 이상하지만 자연스러운 공존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면 이 이상한 만남을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만남을) 영화 속 인물들은 전혀 거리낄 것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죽은 아내가 갑자기 귀신으로 저녁 식사 자리에 나타나고 아들 역시 원숭이의 모습을 해 나타나지만, 분미를 비롯한 이들의 반응은 그저 '오랜만이네' 라는 식일 뿐이다. 이 이후에도 영화는 이런 이질적인 (적어도 현실적, 일반적으로는 이질적인) 만남과 공존에 대해 매우 자연스러운 시각으로 임하고 있다. 

이런 영화적 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적어도 관객은 '아, 이런 공존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구나'라는 간단한 사실을 서서히 인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다음부터는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이라는 감정이 더해지게 된다. 그러니까 더이상 귀신이나 원숭이가 아니라 아내이자 아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물론 왜 원숭이가 되어야 했는지 등에 관한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과 메시지를 떠나서 적잖은 감동을 준다. '내가 죽어서 당신을 못찾으면 어떻하지?'라고 말하며 아내를 꼭 껴안는 분미의 장면을 볼 때면, 찰나이긴 하지만 다른 모든 복잡한 요소를 재쳐두고 이 한 마디의 대사가 주는 영향력의 범주에만 오롯이 머물 수도 있다. 따지고보면 죽은 아내를 본인이 죽기 전에 이렇듯 만날 수 있는 공존의 기회야 말로 누구나 꿈꾸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엉클 분미'는 신파적인 요소가 1%도 없음에도 이런 애틋한 감동마저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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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후에도 갑자기 한 공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이상한 시퀀스 역시 누구의 전생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 대상이나 주체가 명확하지는 않다. 이렇게 꿈 혹은 전생의 주체를 명확히 하지 않은채 이야기를 들려주던 영화는 후반부에 가서는 매우 노골적인 정치적 시퀀스를 삽입하는데, 태국의 정치적 배경을 잘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갑자기 군복을 입은 요즘의 청년들이 등장하는 스틸컷 형식의 시퀀스는, 형식적인 이질감으로 인해 더 직접적인 느낌을 준다. 그 이전에 분미가 '예전에 공산주의자들을 많이 죽여서 업보를 겪는거야'라는 대사 역시 매우 노골적인 부분이었다. 

그리고 영화적으로 가장 환상적이었던 동굴 시퀀스. 이 시퀀스는 촬영이나 조명 등 기술적인 측면으로만 보아도 '와, 영화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었는데, 이를 떠나서 영화 내적으로도 영화의 감정선이 가장 최고조에 달했던 클라이맥스였다. 그런데 영화는 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고 난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는 에필로그 같은, 그리고 이질감마저 느껴지는 호텔방의 시퀀스를 더 보여주는데, 이 마지막 장면은 참 의미 심장하다. 장면 속 인물들이 바라보는 TV속 현실 사회의 모습과 유체이탈을 하여 이런 자신들을 바라보는 이 장면은, '바라본다'라는 측면에서 묘한 또 하나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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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아마 좀 더 '영화적'이고 영화 자체가 지닌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었다면, 동굴씬에서 끝났어야 했을 것이고 늦어도 바로 이 호텔씬에서는 마무리 되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영화적'인 성취보다 더 현실적인 메시지에 대한 성취 의도가 높았던 작품이었다. 그리하여 영화는 그 이후에도 현실에 대한 장면을 더 이어간 뒤 막을 내린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배경의 이해가 부족하다면 이 마지막 시퀀스는 아무래도 일종의 여음구나 이질감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실제로 내가 조금 그랬다). 아마도 태국이라는 나라가 겪어왔던 과거와 겪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를 좀 더 알았더라면 내게 '엉클 분미'는 더 풍부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충분한 영화적 재미와 성취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2시간이 조금 못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존재와 시간, 차원들의 공감을 경험하게 해준다. 

이것만으로도 내게 '엉클 분미'는 참 아련한 영화였다.



1. 나중에 영화를 보고나서 관련 배경에 대한 내용들을 찾아보았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 많았으나 영화를 볼 때 제가 그대로 느꼈던 (어찌보면 무지에서 나왔던) 경험적 감상을 중시하는 측면에서, 이 부분은 글에 담지 않았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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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난 글 (안녕, 씨네큐브)을 통해서 이야기했듯이 영화사 백두대간이 운영해오던 광화문의 예술영화 전용관 씨네큐브는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운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미 소식을 전해들을 지도 벌써 시간이 제법 지난터라, 씁쓸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들을 정리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마지막날 마지막 회차를 함께 하다보니 그리고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다시금 무어라 말 못할 감정이 솟아올랐다.

7시에 상영되는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작품 <제노바>를 관람하였는데, 마지막 날이라는 안타까운 이메일을 받고 극장을 찾은 씨네큐브를 사랑하는 관객들로 극장 로비는 그 어느 때보다 북적였다. 여기저기 영화 관계자 분들, 평론가 분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씨네큐브를 사랑했던 관객들은 앞으로는 (아마도) 거의 찾지 않을 극장을 아쉬워하듯 카메라로 극장 여기저기를 담기에 바빴다.

마지막 고별 이벤트로 필름을 제공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저마다 더 좋은 필름컷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분주해보였다.




마이클 윈터바텀의 <제노바>에 대한 감상기는 추후에 다시 쓰겠지만, 아무래도 날이 날이다보니 영화보다는 영화 외적인 분위기 때문에 100% 집중이 되지는 않았던 관람이었다. 보는 내내 '아, 이 영화, 이 순간이 정말 마지막이겠구나' '첫 작품을 언급할 때 <포르노 그래픽 어페어>가 언급되는 것처럼, 나중이 되면 <제노바>가 마지막을 함께 한 작품으로 회자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극장 한 구석, '씨네큐브는 9월 1일부터 새롭게 다시 시작합니다!를 비롯해 9월 1일 개봉작들 홍보와 함께 새롭게 운영을 맡게 된 곳의 홍보 포스터도 발견할 수 있었다. 꼭 탓하는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조금은 씁쓸한 뒷 맛이었다.

사실 이별하는 순간에는 잘 알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문득 어느 날 떠오르겠지. 내가 씨네큐브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를




(씨네큐브에서 보았던 작품 가운데 <브로크백 마운틴> 중에서)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디스 이즈 잉글랜드 (This is England, 2006)
그대로 응시하다


해외 영화제를 통해 호평을 받았다는 홍보문구들로 먼저 알려진 셰인 메도우스 감독의 2006년작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유난히도 영화제 수상이라던가 '평단과 관객을 모두 만족시킨..' 이런 식의 문구들이 많은 경우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흥미를 끄는 문구는 '<트레인스포팅>이후, 영국 영화의 재습격' 이라는 문구였다. 이 영화를 표현하는 설명들 가운데는 얼핏 훑어보아도 대니 보일 감독의 <트레인스포팅>이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걸 보고는 '적어도 번지르르하게 포장하지는 않겠구나'하는 믿음은 가질 수 있었다. 저 힘없어 보이는 하늘색이 이리도 강렬하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라는 걸 실감했던 포스터처럼, 영화는 1983년 영국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영화 속 장면에는 아예 대놓고 응시하는 컷이 나오기도 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영국인 감독이 자국인 영국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강렬한 두 눈으로 응시하는 영화다.


ⓒ Film4. 백두대간. All rights reserved

<디스 이즈 잉글랜드>를 100%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0년대 당시 영국의 정치, 사회적 배경과 현실들에 대한 몇 가지 정보가 필요하다. 특히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와 그녀의 정책들, 그리고 아르헨티나와 벌인 '포크랜드 전쟁'에 대한 사실들은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라 할 수 있는데, 영화는 이 같은 사안들은 아주 직접적으로 파고든 정치 영화는 아니지만, 결국 이런 정치, 사회적 요인들이 당시 영국을 살았던 사람들(소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가감 없는 솔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숀 (토마스 터구즈)'은 아버지가 전쟁에서 돌아가시고 엄마와 둘이 사는데, 가정 형편 역시 그리 좋지 못해 촌스러운 바지를 입고다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다. 그렇다고 숀이 <렛 미 인>에 나오는 오스칼처럼 소극적인 소년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그는 그럴 수록 더 달려들어서 싸우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숀이 어느 날 우연히 스킨헤드 무리를 만나게 되면서 이 영화는 서서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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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디스 이즈 잉글랜드>의 주된 이야기 방식은 주인공인 어린 소년 숀이 어떤 일들을 겪게 되면서 어떻게 변해가는 가에 대한 것이다. 숀이 처음 만난 스킨헤드들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인종차별적인 '스킨헤드'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그저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이고 약간 모자라보이기 까지 하는 고작 '비행청소년'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이들이었다. 처음 숀과 이들이 만나 전쟁 놀이를 하며 노는 장면은 한 편으론 정치적인 당시 사회의 분위기 속에 소년들의 놀이 문화마저 폭력적이고 전투적인 것들이 되어버린 현실을 엿볼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영화적으로 보았을 때 단순히 숀의 행복했던 한 때로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그런데 여기서 의미심장한 건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던 숀이 이들을 만나면서 이 무리 속에서 다른 한 명을 그들과 함께 따돌림 시키면서 해방감을 얻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나중에 콤보를 만나면서 더 확장된다.

숀이 이들을 만나게 된 것이 첫 번째 지점이라면, 두 번째 전개가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이들 무리와 예전에 함께 했었던 콤보가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다. 다소 급진적이고 우리가 현재 흔히 알고 있는 '스킨헤드'에 가까운 성향을 갖고 있는 콤보가 숀과 접촉하게 되면서, 숀 역시 급격하게 변하게 되고 그의 변화를 주목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변해가는 숀을 나무랄 수 만은 없는 현실 역시 담아내고 있다.

(이후부터는 내용에 대한 미약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 Film4. 백두대간. All rights reserved


콤보는 숀이 어울렸던 친구들과는 다르게 정치적으로 권력화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인종차별주의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데, 흥미로운건 자기 자신 스스로도 굉장히 가치관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겪는 다는 것이다. 친구들 중 흑인인 밀키 와의 장면들에 엿볼 수 있는데, 처음에는 자신의 세력에 힘을 보태기위해 밀키 역시 흡수하려는 것으로 보았으나, 결국 인종차별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던 콤보는 밀키를 인정하지 못하고 사고를 저지르고 만다. 그런데 저지르고나서 콤보가 보여주는 행동은 무차별적, 냉정한 행동이 아닌 굉장히 스스로 혼란스러움을 겪는 듯한 행동을 보여준다.

이렇듯 영화는 계속해서 변화의 과정을 주목한다. 그냥 동네 불량배들 정도였던 이 무리가 사회적인 요건들로 인해 변화를 겪으며 각자로 나뉘어지는 과정, 그리고 이들 무리에 합류하게 된 어린 숀이 어른이 되기도 전에 겪게 되는 수많은 변화의 과정들은, 어쩌면 겪지 않았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숀은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 다시 홀로 돌아와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했던 벌판의 버려진 배가 있는 곳에 나타난다. 아버지 없이 외로움을 겪고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항상 홀로 지내던 숀은, 결국 영화의 마지막,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혼자로 돌아왔다. 숀에게는 아버지와도 같았던 잉글랜드의 국기를 스스로 던져버리는 장면은, 결국 국가가 국민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고, 오히려 빼앗아만 갔던 당시 영국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숀의 성장영화로 보긴 어렵다. 숀은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어른이 된 것이 아니다. 그는 아직도 소년이고, 소년으로서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고 만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은 이런 경우엔 불 필요할 뿐이다.


ⓒ Film4. 백두대간. All rights reserved


영화를 보고나면 누구나 주인공 '숀' 역할을 맡은 어린 배우 토마스 터구즈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가 보여주는 연기와 그 표정들은 당시의 시대상을 어린 눈으로도 잘 반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토마스의 얼굴 생김새가 폴 메카트니와 너무 닮아서 (특히 그 쳐진 눈!) 살짝 몰입에 방해가 되기도 ^^;

콤보 역을 맡은 스테판 그레이엄의 경우 <스내치>와 <갱스 오브 뉴욕>을 비롯해 TV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도 출연하여 정확히 무슨 역할인지는 기억나지 않아도 얼굴은 익은 배우였는데, 이 작품에서는 확실히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화음악과 카메라 워킹이었는데, 초반 숀이 스킨헤드 무리와 처음 어울리는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과 카메라가 이들을 비추는 앵글은 정말 감각적이고 인상적이었다. 특히 음악은 영화를 통틀어 상당히 감정선을 건드리는데 작용하고 있고, 전체적인 화면의 색감 역시 이 영화를 기억하는데 더 좋은 소스가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이지 않은 강렬함이 만족스러웠던 영화인 동시에, 사전 지식이 많지 않아도 온전히 영화 내에서 모든 것을 설명 가능했던 <그르바비차>의 경우와는 다르게, 당시 사회적 배경을 잘 알지 못한다면 좀 더 즐기기 어려운 작품이라 조금은 아쉬운 감도 없지 않았다.


1. 참고로 이 작품은 백두대간이 운영하는 씨네큐브로서의 마지막 개봉작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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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가운데는 언제나 예상치 않았던 이별들도 있기 마련인데, 일주일 전 쯤 갑작스레 듣게 된 한 소식 역시 이런 이별에 관한 이야기였네요. 광화문에 위치한 예술영화 전용관 씨네큐브와의 이별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유난히도 떠나보내는 이가 많았던 2009년, 8월의 어느 날 또 하나의 이별로 찾아왔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추억을 함께 했던 극장들 가운데 아쉽게 이별을 맞아야 했던 경우가 종종 있긴 했지만, 이번 씨네큐브의 이야기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첫 번째 이유는 그 갑작스러움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대형 멀티플렉스들도 장사가 안된다며 티켓 값을 올리고 팝콘 가격을 올리는 마당에 예술영화 전용관으로서 살아남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지요. 그래도 다른 극장들처럼 영화보러 온 사람들보다 여가 시간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많지 않아 좋았고, 각종 넘쳐나는 먹을 거리들로 부스럭 거림과 음식 냄새가 나지 않아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았었고, 그 공간에만 들어서면 절로 차분해 지는 분위기가 참 좋았었는데, 극장을 떠나 그런 공간과의 이별을 해야 한다니 먼저 아쉬움이 듭니다.




씨네큐브 광화문을 운영하던 영화사 백두대간이 8월을 끝으로 극장 운영을 그만 둔다는 소식을 듣고 나 니 새삼 씨네큐브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떠오르더군요. 처음 씨네큐브를 찾았던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마도 본격적으로 즐겨찾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무렵이 아니었나 싶네요. 위의 사진 속 티켓처럼 프랑소와 오종의 <8명의 여인들>도 씨네큐브에서 보았었고, <아타나주아>같은 독특한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었으며, <브로크백 마운틴> <그르바비차> <도그빌> 그리고 가장 최근 작으로는 <반두비>까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들을 바로 씨네큐브라는 공간에서 함께 했었죠.

일반 상업영화들 외에 예술영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씨네큐브 라는 극장은 자연스레 알게 되고 찾게 될 수 밖에는 없었던 극장이었고, 비슷한 예술영화전용관들 사이에서도 그 분위기 만큼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극장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일반 멀티플렉스가 젊은 연인들,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많은 반면, 씨네큐브는 나이 지긋하신 어른분들도 자주 만나볼 수 있었으며, 작가나 감독 등 직접 현업에 종사중인 예술인들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혼자서 극장을 찾는 이들이 멀티플렉스 보다는 훨씬 많은 극장이었죠. 저도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을 땐 주저없이 혼자서도 많이 찾았었구요. 그러고보니 정말 혼자서 가장 많이 갔던 극장을 꼽으라면 단연 씨네큐브 일 것 같네요.




어느새 부턴가 멀티 플렉스에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게 상영시작 시간에 정확히 영화가 시작되고, 세뇌하듯 20분 넘게 몰아치는 광고를 볼 필요도 없으며, 무엇보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크레딧이 온전히 다 마무리 되기 전까지는 극장내 불을 켜지 않은 극장. 당연한거지만 크레딧이 다 끝날 때까지 자리에 남아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 극장. 청소한다며 나가라고 하지도 않는 극장. 그래서 평소처럼 크레딧이 다 끝날 때까지 영화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던 극장이 바로 씨네큐브였죠. 사실 이런 것은 굳이 씨네큐브가 잘했다기 보다는 다른 멀티플렉스들이 잘못하고 있는 점이죠.

극장의 분위기란 사실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텐데, 좋은 영화란 무릇 여운이 남기 마련. 영화가 끝나고 나서 여운을 간직하고 싶은데 극장 문을 나서자마자 복잡하고 시끄러운 광경이 펼쳐진다면 있던 여운도 달아나기 마련이죠. 이런 의미에서 광화문 씨네큐브는 영화의 여운을 집으로 까지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좋은 분위기의 극장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극장 내 의자에 앉아서 영화의 장면들을 곱씹어 볼 수 있는 분위기도 마련하고 있었던 극장이었구요.





자꾸 분위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분위기란 그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임의로 배려해서 끌고가는 면이 분명 존재하거든요. 아무리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에 책 한권을 읽으며 여유를 즐겨보려해도, 주변에서 음료를 주문하는 소리, 여러 개의 관으로 입장, 퇴장하는 인파의 소음이 존재한다면 이런 여유를 즐겨볼 엄두조차 나질 않겠죠. 앞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광화문 씨네큐브라는 공간은 어느 정도 공간이 분위기를 조장하는 뉘앙스가 있는 경우입니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바닥에 까펫이 깔린 탓에 발자국 소리들도 들리지 않고, 상영관도 2개 뿐인 탓에 입퇴장을 통한 복잡함도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그 흔한 매점 하나 없으니 사고 먹고 하는 소리들도 들려올리 없죠. 매점이 없고 음식물이 반입되지 않으면 불편한 점도 분명있겠죠.매점이 반드시 없어야 한다거나 음식물은 반드시 반입되지 않은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이런 공간도 하나 있었으면 했고, 그것이 씨네큐브였다는 거죠. 그래서 마음에 들었구요. 자주 찾게 되었구요.




씨네큐브라는 극장을 알게 되고 이 곳에서 좋은 영화들을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는데, 1년 전부터 (아..정말 벌써 1년이 되었네요) 좋은 기회에 백두대간에서 운영하는 씨네아트 블로그에 필진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죠. 그 때부터 더더욱 애착을 갖게 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구요. 씨네아트 블로그에 참여하게 되면서 제 부족한 글을 블로그를 통해 소개할 수도 있었고, 씨네아트를 통해 열리는 시사회나 행사들에 초대되어 보고 듣고 할 수 있는 기회들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씨네큐브를 찾게 될 때 그 전과는 다르게 뭐랄까, 같잖은 주인의식이 생겼다고 할까요. 마치 내 일 같아서 더 열심히 하고 싶고 애착을 갖게 되었는데, 마음처럼 행동이 따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씨네아트 블로그로 활동한지도 이제 딱 1년이 되었네요.

그 동안 씨네아트 블로거로서 매달 '블로거 정기 상영회'라는 이름 하에 직접 상영작을 고르고 웹상에서 투표하여 상영하고, 영화가 끝나면 관객들끼리 남아 씨네토크도 하곤 하는데, 얼핏 1주년이 되었다는 생각에 그간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만 진행했던 상영회를 씨네큐브에서 영화제 형식으로 진행해 보았으면 어떨까 했었는데, 이건 이제 실행으로는 옮기기 불가능하게 되었군요.



(눈 내리던 날의 씨네큐브)

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것은, 광화문 씨네큐브가 폐관하는 것이냐 하는 것일텐데, 폐관하는 것은 아니에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10년 가까이 극장을 맡아서 운영해오던 영화사 백두대간이 더이상 운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간 지원을 해오던 흥국생명의 모기업인 태광그룹에서 직접 운영을 하기로 결정이 된 것이죠. 그러니까 8월이 지나 9월이 되어도 광화문에 씨네큐브는 그대로 존재할 것이며 해머링맨도 그대로 일 것이고, 아마도 예술영화관으로서 계약이 남아있는 내년 3월까지는 멀티플렉스 처럼 상업영화들이 자주 걸리거나 하지는 않을 듯 하구요.

그러면 극장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뭘 이렇게 이별 운운하며 난리법석이냐 할 수도 있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죠. 계약 기간이 아직 몇년이나 남았음에도 태광그룹이 백두대간을 쫓아내듯 극장에서 내몰게 된 되는 역시 수익적인 문제가 있었을 거에요. 그 큰 멀티플렉스 들도 팝콘 팔아서 이윤을 남긴다던데 매점조차 없고,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극장이 수익적으로 메리트가 있었을리 없고, 이를 지원하는 회사 측에서는 어차피 비지니스인데 이런 곳을 끌어안고만 있을 수는 없었겠죠. 그렇다해도 어차피 예술영화관으로서 엄청난 수익을 내려고 했던 것은 당연히 아닐테고, 계약기간도 아직 남아있다는데 이렇게 운영주체를 쫓아내는 모습이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들을 탓할 수도 없을 것 같아요. 말그대로 회사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이것은 수익을 내야할 사업이니까요. 태광을 탓하는게 아니라 그냥 이런 현실이 안타깝고 씁쓸하다는 거죠.



(씨네큐브의 또 다른 상징이었던 해머링 맨)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극장은 사라지거나 하지 않는다고 해도, 3월까지는 어찌되었든 라인업에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쳐도, 적어도 그 이후에도 씨네큐브가 지금과 같은 예술영화관으로서의 존재감과 분위기를 가져갈 수 있을까에 대한 가능성은 적을 수 밖에는 없을 듯 합니다. 극장이 폐관되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해도 수익을 내기 위한 모델로 변경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다면 아예 더나아가서는 극장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 변모할 수도 있겠죠. 이를 반기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이 공간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새로운 광화문의 메카가 될지도 모르고, 극장으로서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것이 반드시 나쁘지 만은 않아요. 그리고 혹여 직접 운영을 맡기로 한 태광에서 백두대간이 운영할 때와 같은 영화들과 극장 분위기를 계속 앞으로도 지속해줄런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하긴 그럴려고 했다면 굳이 운영주체를 변경할 이유도 없었겠지만요.





사실 이 사실을 처음 듣고 확인하기 위해서 담당자분과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을 때,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목소리에 너무 힘이 없으셨는데 뭐라 딱히 드릴 말씀이 없더라구요. 사실 예술영화를 주로 수입해서 배급하는 영화사라는게 정말 영화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결코 하기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어디서 이런 비슷한 예기를 다른 분이 했더니 그 아래 너무 옹호하는게 아니냐 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던데, 저는 그래요. 옹호하는 겁니다. 옆에서 힘들게 일하시던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에 이번 운영중단이 부당하다 라는 식의 논리는 물론 아니에요. 옆에서 그래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알기에' 안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예 9월부터는 정말 극장 리뉴얼을 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 했으면 차라리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드네요. 왜냐하면 저만 같아도 이 공간에서 쌩뚱맞은 영화가 상영된다거나 아니면 다른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굉장히 당황스러울 것 같은데, 이 공간을 직접 운영하셨던 분들께는 더 이상 이 곳이 자신들의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올 것만 같아서요. 차라리 모습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면 그런 마음이 좀 덜할 것 같네요. 극장은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그대로 있는데,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한다면 아마 더 안타까울 것 같네요.




(이대 내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

다른 관련 기사를 통해 이미 알고 계시는 것처럼, 백두대간은 광화문 씨네큐브에서는 손을 떼지만, 이대 내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의 운영은 계속 해나간다고 합니다. 그 동안 씨네큐브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라인업들을 모모에서 계속 이어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며, 그간 광화문과 이대로 분산되었던 것을 마치고 아트하우스 모모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트하우스 모모는 씨네큐브에 비해 지리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조금 부족한 점이 있긴 하지만, 처음 집 가까운 극장들을 놔두고 씨네큐브를 찾아 갔던 것처럼, 좋은 영화들을 만나볼 수만 있다면 아트하우스 모모도 새로운 예술영화의 메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백두대간에서는 씨네큐브를 떠나는 것을 기억하며 기획적을 계획 중이기도 하구요.




(이제는 아트하우스 모모로!)

는 오늘 백두대간에서 상영하는 광화문 씨네큐브의 마지막 작품 <디스 이즈 잉글랜드>의 시사회에 참석하러 씨네큐브에 갑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가던 극장이지만 감회가 새로울 수 밖에는 없겠네요.  <비카인드 리와인드>처럼 공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슬픔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런데 단 순히 공간이 사라지는 것만 슬픈 것은 아니라는 걸 이번에 새삼 깨달았네요. 씨네큐브라는 공간이 사라지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결국, 어쩌면 그 분위기와, 극장과 함께한 추억은 앞으로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더불어 그 동안은 씨네큐브 덕에 광화문 역시 자주 가곤 했었는데, 씨네큐브 가는 김에 광화문 교보문고도 가고, 씨네큐브 가는 길에 근처 까페들도 가고 했었는데, 앞으로는 광화문 광장 때문에도 그렇고 더더욱 광화문 자체에도 갈 일이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안녕, 씨네큐브. 수 많은 좋은 영화들을 더할 나위 없이 즐길 수 있었던 그 곳.

2009.08.10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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