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쇼트 (The Big Short, 2016)

안일한 자본주의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대표되는 2008년 미국에서 시작 된 세계 금융 위기의 원인과 과정을 다룬 아담 맥케이의 '빅쇼트 (The Big Short, 2016)'는, 이 금융 위기의 전조를 미리 발견하고 오히려 거대한 수익을 낸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렇게만 봐도 그렇고 실제로도 이 영화는 홍보 방식에 있어서 '금융 위기의 가운데 월가를 물먹이고 초대박을 터뜨린 괴짜 천재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은 이와는 전혀 다른 정서다. 즉, 천재적인 인물들이 이 금융 위기의 전조를 미리 발견하고 이를 통해 대박을 터뜨리는 과정을 통해 통쾌함과 영화적 재미를 선사하는 내용이 아니라, 아주 객관적으로 이 사태가 왜 벌어졌고 어떻게 최악으로 말미암았는지를 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빌어 설명하는 내용에 가깝다. 영화는 아주 발랄하고 리드미컬하며 오락적인 구성으로 이뤄져 있지만, 그 내용은 정말로 끔찍하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세상이 망할 것만 같았던 정도의 세계 금융위기라는 현상을 아담 맥케이는 최대한 관객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



ⓒ 영화공간.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첫 번째 느낌은 '왜 다큐멘터리로 만들지 않았지?'였는데, 그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세계 금융위기에 대해 원인과 결과를 상세하게 설명하려다보니 내용은 자연스럽게 전문적 경제용어들이 난무하는, 일반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려운 내용이 될 수 밖에는 없었다. 아마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면 더 심화 된 내용과 메시지가 강한 영화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한 편으론 더 많은 관객들에게 전달되기도, 무엇보다 제대로 이해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이미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가 있는 것으로 안다). '머니볼'을 쓰기도 했던 원작자인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동명 원작은 전문적인 경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 대중적으로도 성공했었는데, 아담 맥케이의 영화 '빅쇼트'는 여기에 한 번 더 친절한 필터링을 거친 설명서라고 보면 되겠다. 즉, 영화 '빅쇼트'는 아주 명백한 제작 의도가 담긴 작품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위기로 몰고 간 금융위기가 왜 벌어졌고, 어떤 과정으로 최악으로 치닫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도 모른채 집과 직장을 잃어야만 했던 평범한 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영화의 목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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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영화가 선택한 첫 번째 방법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극영화라는 장르의 선택이었을테고, 두 번째는 크리스찬 베일, 브래드 피트,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배우들의 캐스팅이었으며, 세 번째는 친절한 설명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크리스찬 베일이나 브래드 피트 같은 배우들의 이름에 낚여서 갑자기 의도하지 않았던 경제 공부를 하게 된 관객들도 많겠지만, 어쩌면 이 낚시 아닌 낚시는 영화의 의도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조연급의 유명한 배우들 외에도 마고 로비, 셀레나 고메즈 같은 셀러브리티들은 물론 세계적 셰프인 안소니 브루댕이나 경제 학자 리차드 탈러 박사 같은 이들이 등장하여 스크린에서 관객을 똑바로 보면서 알기 쉽게 소개하는 방식은, 다시 한 번 이 영화가 어떤 목적성을 갖고 있는 지를 알게 한다. 또한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자레드 베넷 캐릭터는 스크린 밖의 관객을 인지하면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 같은 설명 방식은 실제로 상당히 유효했다. 나 역시 경제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CDO, CDS 등 전문 적인 경제 용어들과 내용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영화는 아주 낮은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설명하고 있어서 적어도 단순화 하여 이 문제를 파악하는 것에는 다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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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이토록 설명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이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문구들은 이 2시간 넘는 일종의 공부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하는데, 이 문제로 처벌 받는 금융인은 단 한 명 밖에 없으며, 무엇보다 이 엄청난 규모의 사태를 일으켰던 일종의 금융 상품이 이름만 바뀌어서 다시 2015년에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 안일하고 멍청한 자본 주의 사회에서는 모르는 것은 약이 아니다. 아는 것이 힘이기 이전에 생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걸 영화는 전하고자 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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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워 Z (World War Z, 2013)

진정성 있는 재난 영화



그냥 브래드 피트 주연의 좀비 영화 정도로만 알고 보게 된 '월드 워 Z'는 일단 좀비 영화는 아니었다. 그리고 '007 퀀텀 오브 솔러스'와 '네버랜드를 찾아서' 등을 연출한 마크 포스터의 작품이기도 했다. 정말 큰 기대 없이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월드 워 Z'는 흔한 재난 영화들 사이에서도 제법 괜찮은 진정성을 담은 영화였다. 그리고 거기에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는, 자신이 배우로서 갖고 있는 아우라를 최대한 발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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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좀비 영화라기 보단 재난 영화에 속할 것이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한 가족이 대 재난을 만나 겪게 되는 이야기이고, 그 재난의 종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한 좀비화 이기 때문이다. 물론 좀비라는 특성이 아주 활용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몇몇 장면은 그 특성으로 인해 가능한 장면들도 있었을 만큼), 좀비가 아니어도 충분히 가능한 내러티브였기에 오히려 이 영화는 좀 더 집중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최근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를 다시 보며 재난 영화로서의 성격을 생각해볼 시간이 있었는데, '월드 워 Z' 역시 일반적인 헐리웃 블록버스터가 재난을 다루는 방식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누군가 얘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롤렌드 애머리히의 영화들 보다는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에 더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좀비, 액션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웠을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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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장 좋았던 건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제리 레인의 한계였다. 보통 이런 재난 블록버스터의 경우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최고의 액션 영웅이던 주인공이 재난으로 인해 다시 호출되어 어쩔 수 없이(?) 재난을 모두 돌파하는 내용인데, 결과로만 보자면 이 영화 속 제리 레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일단 액션의 측면에서 한정적인 능력으로 그려진 것이 더 현실적이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다 보니 액션의 비중은 자연스럽게 좀 줄었고, 가족의 이야기가 더 전면에 나서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 영화가 다른 재난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 서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만약 제리 레인이 람보나 제이슨 본처럼 엄청난 액션 영웅이라 좀비들을 격퇴하는 모습과 여기에 앞장서는 것으로 그려졌다면 아마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특수부대와 제리 레인이 함께 등장할 때를 보면 제리의 역할은 한정적으로 그려지고 있고, 이후 혼자 좀비들과 상대하게 되었을 때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전개 방식이라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 것과는 분명 다르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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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런 방식의 엔딩을 좋아하기도 한데 (많은 분들이 엔딩 때문에 싫어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비전은 정확히 거기까지가 아니었나 싶다. 즉 과한 욕심을 부려서 그 이후의 해결에 관한 이야기를 그릴 수도 있었겠으나, 영화는 딱 제리 레인 가족의 이야기 해결에서 멈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전 지구적 재앙의 시작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제리의 가족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가 더 큰 진정성을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주연을 맡은 브래드 피트의 역할이 상당히 컸다. 즉, 대 재앙과 맞서는 더 큰 이야기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단 한 가족의 작은 이야기를 더 와 닿게 묘사해야 하는 기능을,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의 진정성과 연기력으로 커버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드 워 Z'는 브래드 피트의 필모 가운데 특별히 돋보이는 영화는 아니지만, 반대로 브래드 피트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작품이 가능했을까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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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우주의 가운데 나를 느끼다 - <트리 오브 라이프> 블루레이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를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은 그 어떤 스릴러 영화의 반전 못지 않았다. 아니, 반전 영화들에서 얻는 충격과는 차원이 다른, 말로 표현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압도 당한다는 느낌을 보는 내내 받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는데, 그 압도됨은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황홀한 이미지들의 향연과 신(God)과 관계 된 거대한 담론 때문 만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탄생 그리고 진화,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담론에 주눅들어 버리거나 할말을 잃어 압도되었다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그 경이로운 우주의 가운데 (여기서 우주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문학적 우주 뿐만 아니라 무한한 시간과 만물, 끝없는 공간 등 존재하는 모든 것의 총체를 가리킨다) 바로 나 자신이 느껴졌기 때문에 보는 내내 압도 당할 수 밖에는 없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더 명확히 이야기하자면 '트리 오브 라이프'는 우주의 탄생, 생명의 진화, 인간의 삶과 죽음 등 범우주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체험'하는 영화라는 얘기다.





블루레이 발매로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 총 세 번째 감상이었는데, 이전 두 번의 감상에서 놓쳤던 부분들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 놓친 부분들은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다기 보다, 놓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을 뒤늦게 인정하게 된 경우라고 해야겠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썼던 글의 제목도 '경이로운 우주 가운데 나를 느끼다' 였는데, 이번 역시 같은 제목이지만 그 감상의 주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첫 감상에서 느꼈던 경이로운 우주는 그 자체로 놀라운 것이었다.


아무런 대사 없이 이미지로만 표현되는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탄생, 진화는 놀라우리만큼 완벽한 내러티브가 존재했으며 얼핏 보면 긴 시간인 듯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굉장히 함축적인 방식의 전개였다. 그리하여 인물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우주의 탄생을 거쳐 지구가 탄생되고 그 뒤 공룡이 등장해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전개였는데, 그 가운데 내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큰 아들 '잭'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였다. 





앞서 신과 우주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영화는 본격적으로 소우주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삶을 비춘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새로울 것 없는 갈등 구조와 시간에 흐름에 따른 보편적인 서사구조를 갖고 있었음에도, 치명적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사실상 잭의 시점에서 진행이 되는데, 잭이 커가면서 부모와의 관계, 형제들 사이에서의 관계, 세상을 받아들이는 과정 그리고 자아의 갈등을 겪게 되는 과정들이, 한 수 한 수 놀라운 디테일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와중에도 영화가 전반적으로 갖고 있는 메시지의 기반에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놀라웠다.


잭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과 심리적 변화 들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매우 익숙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보편적이지만 미묘한 시간들을 '트리 오브 라이프'는 완벽한 줄기로 그려내고 있다. 앞선 시퀀스에서는 형용하기 힘든 경이로움을 느꼈다면, 이 시퀀스에서는 공감이라는 이름의 경이로움과 인생의 무게 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잭'의 이야기가 놀라운 또 다른 이유는 그 속에서 너무 쉽게 '나'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처럼 디테일 한 묘사를 했음에도 반대로 가장 보편성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그리고 '잭'의 이야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와 나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완전히 솔직하도록 만드는 압도적인 힘이 있었는데, 이 에너지가 '잭'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전에 영화가 들려주었던 거대한 우주의 이야기로부터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내러티브 측면에서 그러했다는 뜻이 아니라, 보는 나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미 신과 우주,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부터 나의 경계는 무너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놀라운 체험의 영화다. 이 작품은 평소 삶에서는 미처 체험할 수 없었던, 또 안다고 해도 절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었던 수 많은 간극들을 영화적 체험을 통해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다시 말해 '트리 오브 라이프'의 메시지는 인간이란 존재와 이를 둘러싼 우주와 자연의 섭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간극이 '있다'라고 마무리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간극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우리의 삶과 이를 둘러싼 모든 것들 간에는 유한한 거리로 설명되지 않는 '무한의 것'이 있다 (여기서 '있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앞선 '있다'와는 다르다)라는 것이다.


‘시공간적 크기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것들에 비하자면 한 가족의 삶과 고통은 얼마나 보잘것없이 작은 것인가’ 라는 근거로 ‘신(절대자)을 이해할 수 없음에 그저 순응하는 것이 섭리이다’ 라는 결론이 아니라, 한 인간, 한 소년의 삶의 깊이와 고통 역시 헤아릴 수 없는 다른 의미의 우주라는 위로와 경이로움을 전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앞서 한 인간의 삶을 '소우주'라고 표현한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 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가장 직접적인 메시지였으나 다른 담론에 가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주제 역시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바로 자녀 혹은 가족을 잃은 남겨진 이들에 대한 사려 깊은 위로가 그것이었다. 사실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에게 신의 섭리를 논하는 것 자체가 와 닿기 쉽지 않은데, '트리 오브 라이프'는 그 섭리에 대해 순응하라는 무력함 혹은 복종의 메시지가 아니라, 기원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섭리를 진정성 있게 담아내고 있기에 허울뿐 인 위로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소중한 이를 잃은 이에게, 더 나아가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 내 아이를 잃어버린 이에게 진실된 위로를 전하려면, 이 정도의 진정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얼마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 아마 그 때쯤이면 지금의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더 솔직해진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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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 시각적 언어로 쓰여진 영화를 빛내는 궁극의 화질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는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곧 내러티브로 연결되는, 즉 영상미가 그 어떤 작품보다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테렌스 맬릭은 그의 그 어떤 전작들보다도 시각적인 측면에 큰 공을 들였으며, 인위적인 것들을 최대한 배제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부분적으로나마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하기도 했다.(물론 이 영화의 시각효과 대부분은 더글러스 트럼블이 가세한 아날로그 기법이 대부분이다) 그 만큼 이 작품에서 시각적인 부분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바로 그 중요함을 놓치지 않도록 블루레이의 화질은 가히 역대급이라 할 수 있을만큼 최고 수준이다. <다크 나이트> 블루레이의 IMAX 시퀀스 화질이 두시간 내내 이어지는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의 촬영 감독으로 유명한 엠마뉴엘 루베즈키는 ‘트리 오브 라이프’의 많은 장면을 IMAX 레디의 65mm 필름을 사용했으며, IMAX 카메라, 파나비전 65 하이레졸루션, 레드원, 팬텀 HD 등 최고의 화질을 보장하는 장비들로 촬영하였다. 감독의 의도나 촬영에 사용된 장비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트리 오브 라이프’는 자칫 철학적인 영화로만 비춰질 수 있지만 시각적인 영상미가 바로 그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도구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하다.


블루레이의 화질은 바로 이러한 영화의 영상미를 전달하기에 최적의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극장에서 볼 때 영상미 자체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면, 블루레이 감상 시에는 여기에 화질의 우수함이 주는 놀라움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블루레이의 화질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하드웨어 적인 퀄리티와 그 퀄리티를 체감할 수 있는 영화적 요소, 이 두 가지를 들곤 하는데 ‘트리 오브 라이프’ BD는 바로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만족시키는 타이틀이다. 화질의 하드웨어 적 퀄리티야 근래 발매된 타이틀 가운데 최고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이런 레퍼런스급 화질을 체감할 만한 다양한 구성과 성격의 영상이 담겨 있기 때문에 체감하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좋다고 느껴지는 화질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수치적으로도 음성파일을 제외한 영상파일의 용량만 35기가에 달하며 평균 전송 비트레이트 또한 36.8Mbps에 달하는 등 한마디로 '슈퍼비트'급이다.

음향 - 압도하는 스코어가 인상적인 사운드





위 문구는 블루레이로 영화를 최초 재생 시 본편 영상에 앞서 나타나는 안내 문구로, 화질과 더불어 음향 또한 '트리 오브 라이프'라는 영화에게 있어 기능적인 면에서나 미학적인 측면에서나 대단히 중요함을 실감케 한다. 특히 앞선 시각적 측면과 마찬가지로 테렌스 맬릭은 이 영화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내 음악이 존재하기를 원했을 정도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영화 음악은 주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글은 소책자에 실리는 김세윤 작가의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칼럼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극장에서 관람했을 때에도 우주의 기원을 다룬 경이로운 시각적 체험을 더 강렬하게 표현하는 클래식 곡과 영화 음악에 압도되었었는데, 48kHz/24Bit 고사양의 DTS-HD MA 7.1 사운드는 그 압도적인 감흥을 손실 없이 안방으로 가져왔다.





스코어가 들려주는 웅장함 못지 않게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가정의 이야기를 그릴 때에는, 아주 미세한 생활 소음과 새소리,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풀잎들의 디테일한 사운드까지 7.1채널의 풀 서라운드 음장을 통해 놓치지 않고 들려준다.




전반적으로 스코어의 비중이 높은 작품이기는 하지만, 한 편으로는 전혀 스코어 없이 자연의 소리들로만 채워져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의 스코어로 활용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와 같은 블루레이 사운드의 디테일 함은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더 풍부하게 전달해 준다.


스페셜 피처 #1 : 메이킹 다큐멘터리 - Exploring The Tree Of Life


‘트리 오브 라이프’ 블루레이의 유일한 아쉬운 점이라면 부가영상의 수록 양이 많지 않다는 점일 텐데, 국내 타이틀뿐만 아니라 북미에서 출시된 타이틀 역시 동일한 구성이므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필요는 없겠다. 더군다나 디스크를 BD-ROM에서 읽어보면 본편 데이터만으로 41기가를 채우고 나머지 용량을 5기가의 메이킹 다큐멘터리 외 기타 예고편 및 BD메이킹 크레딧으로 꽉꽉 눌러담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편을 최고 화질과 음질로 수록하는 것에 전력을 다한 타이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분야의 스필버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로렌트 보제로'가 연출을 맡은 훌륭한 메이킹 다큐멘터리 'EXPLORING THE TREE OF LIFE'(1080p, 29:56초)에서는 이 작품에 참여한 제작자, 배우는 물론 테렌스 맬릭을 존경하는 크리스토퍼 놀란과 데이빗 핀처의 인터뷰 등을 통해 ‘트리 오브 라이프’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테렌스 맬릭의 작품관에 대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테렌스 맬릭의 작품을 처음 보고 감탄과 더불어 커다란 매력을 느꼈던 크리스토퍼 놀란과 데이빗 핀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맬릭의 영화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그를 더 알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매개체가 된다. 또한 이 작품을 기점으로 최근 헐리우드에서 가장 주목 받는 여배우로 성장하고 있는 제시카 차스테인의 인터뷰와 그녀의 오디션 장면도 만나볼 수 있으며, 브래드 피트는 본래 제작자로만 참여할 예정이었다가 본래 출연 예정이었던 남자 배우가 출연이 어렵게 되면서 후에야 출연이 확정되었다는 사실도 전해 들을 수 있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배역이라면 세 명의 성인 배우들 보다, 세 명의 아역 연기자라고 할 수 을 텐데, 이 아이들의 오디션 영상과 영화 개봉 이후 다시 촬영장에서 만난 아이들이 당시를 추억하며 나누는 이야기도 수록되었다. 테렌스 맬릭은 더 자연스러운 장면을 위해 아이들에게는 거의 대본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 들도록 유도하거나, 촬영 중간 아이들끼리 장난 치는 순간을 몰래 촬영에 영화에 담기도 했다는 후일담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 속 우주의 기원을 다룬 장면들의 비밀에 대해서도 전해 들을 수 있었는데, 단순히 컴퓨터 그래픽만으로 이뤄진 장면들이 아니라 감독의 지인이자 천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던 더글러스 트럼블의 작업으로 화학 약품이나 페인트 등을 이용한 다양한 실험과 회전판, 조명, 고속 촬영 등의 기법의 변화를 통해 발견하고 만들어 낸 장면이라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30분에 달하는 이 메이킹 다큐멘터리에는 정작 감독인 테렌스 맬릭은 은둔자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그답게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매릭의 영화 세계와 그의 연출력에 더 큰 관심과 매력을 느끼게 되는 다큐멘터리다.


메이킹 다큐멘터리 외에 HD 화질의 오리지널 극장용 예고편과 더불어 '가족애'를 강조한 한국 시장에서의 마케팅 포인트를 엿볼 수 있는 한국용 예고편(SD), 그리고 라이프랩스미디어의 차기작이자 역시 기대되는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작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블루레이 예고편(HD)이 추가로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디피 컬렉션 만을 위한 것으로 DP010 ‘트리 오브 라이프’ 블루레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DP회원분들의 크레딧을 수록한 영상을 이스터 에그(찾기는 정말 쉽다)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데, 미리 공지가 된 것처럼 DP회원이자 일렉트로닉 밴드 W&Jas의 멤버 한재원님 (DP닉네임 W)이 작곡한 음악 'In The Flow'와 함께 수록이 되어 더욱 뜻 깊다.






실제로 이런 크레딧을 끝까지 감상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영화 속 장면들과 함께 작품의 컨셉 및 분위기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한재원 님의 편안하고 감각적이며 독창적인 개성의 음악까지 곁들여져, 말 그대로 5분여의 메이킹 크레딧을 기분 좋게 ‘감상’할 수 있었다.


스페셜 피처 #2 - 컬렉터스 가이드북


지난 ‘멋진 하루’ 블루레이를 통해 76페이지에 달하는 컬렉터스 가이드북으로 또 다른 형태의 스페셜 피쳐를 제공했던 LIFE LABS MEDIA는, 이번 ‘트리 오브 라이프’ 블루레이에도 영화를 더 재미있고 풍요롭게 하는 다양한 읽을 거리와 볼거리를 수록한 소책자를 함께 제공할 예정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아직 가이드북이 완성되기 전이라 실물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대략적으로 어떤 내용들이 수록될 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이 작품과 관련해 영화감독 정윤철 님(‘말아톤’, ‘좋지 아니한가’의 그가 맞다!)과 DP 영화게시판 및 재개봉관 게시판을 통해 통찰력 있고 깊이 있는 영화 글을 써오고 있는 홍준호 님, 그리고 아쉬타카까지 총 세 명의 각기 다른 시각으로 다가간 ‘트리 오브 라이프’에 대한 리뷰글이 수록되었다.

여기에 촬영, 미술, 시각효과, 음악 감독 등 이 영화의 각 스태프들에 대한 칼럼들이 추가되었는데, 특히 현 방송작가이자 전 FILM2.0 기자 출신의 인기 작가 김세윤 님이 작성한 음악감독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에 관한 칼럼은 이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한 이로서도 특히 기대가 되는 글이니,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또한 영화 현장의 고화질 스틸컷 갤러리가 약 10페이지 분량으로 수록되었고, DP블루레이 게시판을 통해 응모를 받았던 이 작품과 어울리는 순간을 담은 DP회원들의 사진들을 담은 코너 'Moment in Life'(아래 사진 참고)도 수록될 예정이라고 하니 LIFE LABS MEDIA의 전작 ‘멋진 하루’보다 도 더 기대되는 소책자라고 할 수 있겠다.




사족을 달자면 본 리뷰에서 소제목을 굳이 '부가영상'이 아닌 '스페셜 피처', 즉 '부록'의 의미로서 두 섹션으로 나눈 까닭은 바로 '컬렉터스 가이드북'의 제공 때문이다. 이 책은 마치 디스크 용량 부족으로 인해 미처 블루레이에 못담아냈을지도 모를 영화의 후일담을 정성스레 기획된 양질의 글들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스페셜 피처'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 리뷰의 스페셜 피처 평점은 디스크에 수록된 부가영상뿐만 아니라 '컬렉터스 가이드북'을 종합하여 매긴 것이다.


더불어 어느새 열번째라는 이정표에 도달한 의미 깊은 디피 컬렉션인 DP010 <트리 오브 라이프> 역시 전 세계 어느 판본에서도 제공하지 않는 충실한 컨텐츠의 가이드북을 제공함으로써, 다시 한 번 '세계 최고의 판본'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결코 과장이 아니게 된 셈이다.

총평 : 작품-AV퀄리티 모두 최고점의 소장용 타이틀





먼저 그 해 가장 뛰어난 작품이자 보면 볼수록 그 이해의 깊이가 깊어지는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를 DP시리즈를 통해 국내에서도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게 되어서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영화를 표현하는 데에 어쩌면 필수라고 할 수 있는 화질과 사운드에 주저 없이 최고 점수를 줄 수 있는 퀄리티로 발매된 블루레이 타이틀에, 다행을 넘어서 이 작품의 팬으로서 적지 않은 감동을 받기도 했다.





만약 아직 ‘트리 오브 라이프’를 만나지 못한 영화 팬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 영화를, 그리고 DP시리즈로 출시된 이 블루레이를 추천하고 싶다. 혹자에겐 그저 지루한 영화일지 모르지만 이 영화의 매력에 빠진 이들에게 ‘트리 오브 라이프’는 분명히 두고두고 볼 작품이다. 그런 측면에서 소장가치 높은 이 블루레이 타이틀 만한 건 없을 것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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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 (Moneyball, 2011)

야구에 빗대어 전하는 삶의 위로



'카포티'를 연출했던 베넷 밀러가 연출하고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은 영화 '머니볼'은 실제 MLB팀인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단장을 1998년부터 지금까지 맡고 있는 빌리 빈의 실화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스포츠 영화가 주로 선수나 감독의 입장에서 바라봤던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구단을 실제로 이끌어 가는 단장(GM)의 입장에서 전개된다는 점이 다른 스포츠 영화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수가 아닌 단장의 입장에선 이야기 전개로 인해 그 어떤 영화보다 특별한 스포츠 영화가 되었지만, 동시에 스포츠 영화 이상의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베넷 밀러의 '머니볼'이 아니었나 싶다.




ⓒ Michael De Luca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일단 이 영화의 배경이 된 2001~2년 당시 메이저리그를 한창 열심히 보던 이들이라면, 영화 속 등장하는 MLB의 트레이드 관련 뉴스들이나 선수들의 이름들, 그리고 기록적인 연승을 이어가던 애슬래틱스의 활약상 등이 기억에 생생할 것이다.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제이슨 지암비, 이슬링하우젠, 조니 데이먼 등은 물론, 이후 재정비 된 애슬래틱스의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데이비드 저스티스와 팀 허드슨 등까지... MLB팬들이라면 작은 기록지, 전력분석 영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실제 선수들과 경기 장면에 반가움을 느낄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 말을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 영화는 이 당시 MLB에 관심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빌리 빈이 뽑은 선수들이 앞으로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되는지, 애슬래틱스가 연승 기록을 새로 쓰게 될지 말지 등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 자체가 그다지 극적인 요소로는 받아들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머니볼'이 인상적인 이유 역시 바로 이 부분이다. 당시 MLB를 빠삭하게 다 알고 있는 이들이 보아도 빌리 빈과 애슬래틱스의 이야기는 충분히 짜임새 있고 흥미로우며 심지어 긴장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이런 부분은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셜 네트워크'와 비슷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작품 역시 아론 소킨이 각본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 Michael De Luca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거나 스포츠를 주제로 한 영화 가운데 명작들을 살펴보자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경우 실화를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신선함을 전달함은 물론 이미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 역시 지루하지 않은 흥미로움을 선사한다는 것이고, 스포츠 영화의 경우 경기의 룰이나 관련 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즐길 수 있고 깊이가 있는 작품인 동시에, 아는 사람이 보아도 디테일과 완성도가 높아 스포츠 이상의 극적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이다. '머니볼'은 바로 이 지점에 정확히 위치한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묘사함에 있어서 대중들이 쉽게 다가가기 힘든 단장이라는 자리를 중심으로 MLB라는 전체적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구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이 이 세계에 그리 어렵지 않게 빠져들 수 있도록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야구와 MLB에 관심이 많은 팬들에게도 머니볼 이론이 실제 야구에 적용되는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그리는 것은 물론, 아마도 팬들이라면 한 번쯤 호기심을 가졌을 단장의 입장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FM이 괜히 마약같은 게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머니볼'은 이렇듯 두 가지 상반된 측면을 모두 만족시키는 흔치 않은 '물건'이다.



ⓒ Michael De Luca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극중 주인공 빌리 빈은 그 어느 곳 보다 오랜 전통이 중시되는 곳 중 한 곳인 MLB에서 파격적인 머니볼 이론을 도입해 주변으로부터 많은 질타와 걱정을 동시에 받게 된다. 이 작품이 '좋은' 작품인 이유는 머니볼 이론의 성공 여부나 애슬래틱스의 월드시리즈 진출 여부를 가리키지 않고 더 넓은 의미의 위로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을 위해 영화는 애슬래틱스와 빌리 빈 간의 거리를 둔다. 즉, 애슬래틱스의 단장으로서 팀과 운명을 같이 하는 빌리 빈도 묘사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끊임 없이 싸우고 홀로 외로움을 겪는 인간 빌리 빈의 삶을 더욱 비중있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앞서 말한 일들의 결과가 궁금해지고 이에 따라 기쁨과 탄식도 겪게 되지만, 그 보다는 그 가운데 남겨져 있는 빌리 빈의 등 뒤의 모습에 더욱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만약 이 영화의 내용을 애슬래틱스의 다른 선수 위주로(페냐나 제레미 지암비 등) 전개했거나 기존 팀의 스카우트를 맡았던 수뇌부들 혹은 감독의 입장에서 그렸다면, 빌리 빈은 그야말로 독선적이고 자기 맘대로인 악역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 영화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거나 혹은 좀 더 극적인 요소로 본다면, 데이터가 아닌 오랫동안 업계를 지켜온 장인들의 '감'에 의존하여 승리를 거두는 편이 훨씬 더 일반적이고 정의롭기까지 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가 선택한 빌리 빈의 이야기는 어쩌면 예상하지 못했던 위로를 전해준다. 이건 말로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이다. 유명한 Lenka의 팝 넘버 'The Show'의 가사 내용을 이토록 완벽하게 이야기에 녹여버린 이 영화의 마력은 마지막 장면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말로 이루다 표현 못할 위로로서 말이다.



ⓒ Michael De Luca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1. 박찬호 선수가 영화 속에서 스쳐 지나갑니다.

2. 이 영화에서 빌리 빈 역할을 맡은 브래드 피트는 정말 로버트 레드포드 같더군요.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해왔지만 이 역할은 정말 싱크로율이 90%이상이더군요.

3. Lenka의 'The Show'는 이미 익숙한 곡이었는데, 앞으로는 이 곡을 듣게 되면 이제 '머니볼'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될 것 같네요. 이제는 정말 가사가 들려요 ㅠ



4.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Michael De Luca Productions 에 있습니다.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2011)

경이로운 우주 속 나를 느끼다



테렌스 맬릭의 신작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2011)'는 한 마디로 경이로운 작품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신과 인간, 생명의 탄생과 죽음, 우주의 탄생과 진화 등 거대하기만한 담론들을 모두 담고 있는데, 한계를 두고 소박한 방식으로 풀어내기 보다는, 이 담론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메시지들을 용감하게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2시간이 조금 넘는 한정적인 시간 속에서도, 이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의 힘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얼핏 설명만 들어도 굉장히 거창한 부가설명이라고 느낄 수 있을텐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테렌스 맬릭은 이 거창할 수 밖에는 없는 담론을 굳이 소박한 것이나 개인적인 것으로 대체하지 않고 정공법으로 메시지를, 그리고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거창해 보이는 것이, 아니 실제로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거창한 것이 맞다. 이런 논리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이 작품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삶과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인지,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크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는 나와 삶, 나와 우주의 간격을 이 영화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 River Road Entertainment . All rights reserved


'트리 오브 라이프'를 종교적인 영화로 규정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결코 종교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종교가 있기 이 전에, 아니 인간이 만든 종교라는 것은 한없이 미치지 못하는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기원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종교적인 면을 들자면 '신(God)'의 관한 것일 텐데,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신은 종교의 범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적 의미로서 혹은 모든 질문에 답을 갖고 있는 존재로서 그러하기 때문에, 이 작품을 단순히 종교적 영화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영화 속 우주의 탄생 (지구의 탄생으로 볼 수도 있지만, 영화가 말하려는 담론이 지구에 국한된 것 같지는 않다)을 묘사한 부분은 경건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장엄하게 펼쳐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시퀀스가 그 어떤 자연과학 교제 보다도 더 깊고 교육적으로 느껴졌다. 즉, 감정적으로 뿐만 아니라 지식, 정보 적인 측면에서도 유익한 시퀀스라고 느껴졌다는 얘기다. 그냥 말로만 듣는 다면 브래드 피트와 숀 펜이 나오는 철학적인 드라마에 공룡이 등장한다는 사실이 매우 어색하고 뜬금없이 느껴질 수 밖에는 없을 텐데, 이 영화에서는 이 두 가지가 공존하지만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러티브에 있어서나 감정적 선에서 보나 큰 틀에서 연장선에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공룡은 단순히 신비하고 호기심을 갖게 하는 존재가 아닌 이 같은 흐름으로 인식하게 되고, 이후 인간의 이야기로 넘어오는 것에서도 무리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 River Road Entertainment . All rights reserved


그렇게 신과 우주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영화는 본격적으로 소우주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삶을 비춘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새로울 것 없는 갈등 구조와 시간에 흐름에 따른 보편적인 서사구조를 갖고 있었음에도, 치명적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사실상 장남의 시점에서 진행이 되는데, 이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와의 관계, 형제들 사이에서의 관계, 세상을 받아들이는 관계 그리고 자아의 갈등을 겪게 되는 과정들이, 한 수 한 수 놀라운 디테일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와중에도 영화가 전반적으로 갖고 있는 메시지의 기반에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놀라웠다. 장남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일들과 심리적 변화 들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매우 익숙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보편적이지만 미묘한 시간들을 '트리 오브 라이프'는 완벽한 줄기로 그려내고 있다. 앞선 시퀀스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다면, 이 시퀀스에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공감과 인생의 무게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 River Road Entertainment .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 '트리 오브 라이프'는 찰리 카우프만의 '시네도키, 뉴욕'과는 다른 의미로 완전히 압도 당해버린 작품이었다. '시네도키, 뉴욕'이 자아를 파고들어 결국 정말로 끝까지 도달하여 정신적으로 엄청난 압박감과 함께 내 속을 누군가에게 다 속속들이 들켜버린 듯한 허탈감과 무력함을 느끼게 해주었다면, '트리 오브 라이프'는 평소 삶에서는 미처 체험할 수 없었던, 또 안다고 해도 절대 다 안다고는 말할 수 없었던 수 많은 간극을 영화적 체험을 통해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끼게 해준 경우라 하겠다. 다시 말해 '트리 오브 라이프'가 말하는 방식은, 인간이란 존재와 이를 둘러싼 우주와 자연의 섭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간극이 '있다'라고 마무리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간극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우리의 삶과 이를 둘러싼 모든 것(자꾸 '둘러싼 모든 것'이라 얘기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얘기하는 담론이 천제적 측면의 우주라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신과 생명의 범주까지 모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들 간에는 유한한 거리로 설명되지 않는 '무한의 것'이 있다 (여기서 '있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앞선 '있다'와는 다르다)라는 얘기다.

직접 쓴 이 단락에서 느꼈다시피, 이것은 결코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님도 알 수 있다 (봐야 한다!).



ⓒ River Road Entertainment . All rights reserved


거짓을 보태지 않고, '트리 오브 라이프'를 보고 나오는 길에 다시금 바라본 세상은 분명 달라져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 아무 느낌 없던 그 세상이 분명 아니었다. 이렇듯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그러했던 광대한 우주의 존재를 느끼게 하는 작은 선물 같은 영화였다. 그리고 그 안에 '나'라는 존재 역시 느낄 수 있어 형용할 수 없는 위로와 떨림마저 고스란히 전해졌던 경험을 선사했다.



ⓒ River Road Entertainment . All rights reserved


1. 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만약 나중에 제 아이가 생기게 되, 우주와 인간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이 영화를 소개해주고 싶어요. 물론 아이에겐 어렵겠지만, 아니 더 쉬울 지도 모르겠네요.

2. 아름답다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영상과 함께 했던 영화 음악도 참 좋았어요. 국내에는 사운드트랙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결국 아마존으로 가야할 것 같네요 ㅠ


 



3. 극 중 브래드 피트의 둘째 아들로 나온 아역 배우는 실제 피트의 아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닮았더군요. 이 아이의 표정 연기가 참 좋았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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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으로 희망을 얘기한 로드 무비


흔히들 여성영화를 꼽거나 로드 무비를 꼽을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리들리 스콧의 1991년작 '델마와 루이스 (Thelma & Louise)'일 것이다.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 두 배우의 인상적인 연기와 영화사에 남을 마지막 장면으로 더욱 유명해진 이 작품은, 사실은 전형적인 로드 무비 혹은 버디 무비의 전개를 따르고 있지만 두 명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개봉 당시와 지금까지도 특별한 인상을 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2011년 지금에 와서 다시 본 '델마와 루이스'는 델마와 루이스가 여성이어서 느껴지는 바는 조금 덜했지만, 1991년 당시만 하더라도 스튜디오에서는 주인공인 두 여성이 총을 들고 강도 짓을 벌이고 엔딩 마저도 유쾌하지 않은 이 영화를 결코 반기지 않았었고, 이 영화로 인해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는 타임지의 표지 모델로까지 등장하는 등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작품이었다.


당시 논란이 되었던 것은 여성의 남성살해에 관한 것이었다.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당시의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를 새삼 떠올려 보게 된다


'델마와 루이스' 역시 프리 프로덕션 기간에 많은 것이 변경되었는데,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쓴 캘리 코우리가 직접 연출을 맡고 싶어했으나 스튜디오 측은 리들리 스콧을 제안, 코우리도 이를 받아들여 최종적으로 그가 연출을 맡게 되었으며, 델마와 루이스 역에도 처음에는 미쉘 파이퍼와 조디 포스터를 염두에 두었었고 이후에는 골디 혼과 메릴 스트립도 물망에 올랐으나 제작이 지연되면서 결국 모두 이 프로젝트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 당시 이름있는 배우이기는 했으나 슈퍼스타는 아니었던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가 캐스팅되게 되었다. 이런 뒷이야기를 듣고 나니 물망에 올랐던 다른 배우들이 출연했더라면 어땠을까 궁금증이 들게 되는데, 미쉘 파이퍼와 조디 포스터는 조금 겹치는 감이 없지 않지만, 골디 혼과 메릴 스트립이라면 지금의 델마와 루이스 만큼이나 멋진 영화가 나올 수도 있었겠다 싶다 (참고로 이 둘은 '델마와 루이스' 대신 '죽어야 사는 여자'에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두 주연배우 외에 눈에 띄는 배우는 단연 'J.D'역할을 맡은 브래드 피트일 것이다. 브래드 피트는 이 역할로 인해 단숨에 가장 섹시한 남자로 주목 받게 되었다.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J.D'역할로 출연한 브래드 피트의 경우 이 작품을 실질적인 헐리웃 데뷔작으로 볼 수 있을 텐데, 지금 보면 그 풋풋함과 어린 목소리에 몸서리칠 정도로 간드러지지만 델마가 넋을 놓고 빠져들 만한 매력은 남자가 봐도 느껴질 정도니 역시 브래드 피트는 브래드 피트다. 그의 최근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델마와 루이스' 시절의 풋풋한 모습을 잠시나마 즐길 수 있었다면, 이 작품은 CG없는 진짜 그를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참고로 'J.D'역할은 조지 클루니를 비롯해 많은 배우들이 오디션을 보았으나 결국 브래드 피트가 배역을 따낸 경우. 시나리오를 쓴 캘리 코우리 조차 브래드 피트를 처음 보는 순간 완벽한 'J.D'다 라며 이 캐스팅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브래드 피트 외에 그간 악역을 주로 맡았던 하비 케이틀이 이 작품에서는 선한 역을 맡은 것도 흥미로운 점이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두 주인공이 타는 자동차라고 할 수 있을 텐데 1966년산 초록색 썬더버드 (Thunderbird)는, 세월이 흐를수록 이 영화가 클래식이 되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하고 있다.

'델마와 루이스'가 진정한 로드 무비로서 인정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정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리들리 스콧이 얘기하는 것처럼 '델마와 루이스'의 이야기는 사실 돌아갈 곳이 없는 이들이 결국 자신들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은 세상을 등지고 떠난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당시의 관객들도 그렇고 지금까지 이 영화를 기억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영화를 결코 비극으로 기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희망을 그린 작품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야말로 비극으로서 희망을 이야기한 진정한 로드 무비이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도 강한 인상을 남긴 마지막 장면은 마치 '내일을 향해 쏴라'의 부치와 선댄스의 마지막 장면과도 같은 깊은 여운을 남기면서, 이 비극을 비극 아닌 희망으로서 받아들이도록 하는 영화적 경험을 가능케 했다.


Blu-ray : Menu



메뉴 디자인은 폭스 타이틀의 기본적 디자인을 채용하고 있으며, 모두 한글화 되어 있다.


Blu-ray : Pictures Quality

MPEG-4 ACV 포맷의 1080p 화질은 작품의 제작연도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장면에 따라 조금의 편차는 있는 편이지만, 몇몇 장면에서는 최근 개봉 작에 가까운 우수한 화질을 보여주기도 하며, 블루레이 특유의 날카로운 맛도 확인할 수 있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깊은 블랙 레벨로 인해 전체적으로 색감이 잘 살아나고 있으며, 뭉개져 버릴 수 있는 장면들에서도 선예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강렬한 태양아래 노출된 배우들의 얼굴 피부 표현에 있어서도 블루레이의 장점이 잘 드러나고 있는데, '모피어스' 로렌스 피쉬번 정도의 감흥은 아니지만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의 생얼에 가까운 피부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Blu-ray : Sound Quality


사운드 적인 측면에 대해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는 제법 임펙트 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한스 짐머의 스코어를 비롯해, 후반 부 추격장면에서는 각종 효과음들과 썬더버드와 여러 대의 경찰차가 만들어 내는 소리들이 삽입된 배경음악과도 잘 분리되어 수록되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을 감상할 때 가끔씩 영어 외에 다른 언어로 진행되는 더빙들을 확인해볼 경우가 있는데,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스페인어나 헝가리어, 타이어 등은 모두 해당 언어로만 수록이 되었지만 러시아어의 경우 영어 더빙 위에 그대로 겹쳐져 두 가지 언어가 모두 들린다는 점이다. 뭐 러시아어 더빙으로 이 작품을 볼 이는 없을 테지만.



Blu-ray : Special Features

'델마와 루이스' 부가영상 가운데 가장 먼저 손꼽을 만한 것이라면 역시 음성해설을 들 수 있을 텐데, 리들리 스콧 단독 음성해설과 수잔 서랜든, 지나 데이비스 그리고 시나리오를 쓴 캘리 코우리가 함께한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다. 리들리 스콧의 음성해설의 경우 역시나 그답게 장면 장면에 대한 디테일 한 설명은 물론이고, 델마와 루이스 각 캐릭터에 대한 부가 설명과 배우들의 연기 지도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그냥 스쳐 지나가지만 사실은 더 큰 의미가 있는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빼놓지 않고 들려준다. 확실히 이 음성해설이 있어서 좀 더 타이틀이 풍성해진 느낌이다. 허나 이와는 반대로 두 번째 음성해설은 한국어 자막이 지원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음성해설도 그렇지만 이 외에 수록된 부가영상들 역시 DVD에 수록된 것과 동일한 내용과 화질(SD)로 수록되었다. '델마와 루이스' DVD를 감상하지 않은 이들이라면 화질과는 상관없이, 감독을 비롯한 스텝들과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메이킹 영상인 'Thelma and Louise: The Last Journey''를 보길 권한다. 또한 15개가 넘는 삭제 & 확장 장면을 통해 이 장면들이 있었다면 더 풍부한 작품이 되었을지 아니면 더 군더더기가 느껴지는 작품이 되었을 지를 직접 판단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특히 확장된 엔딩 씬의 경우 감독을 비롯해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렇게 느끼겠지만, 영화 속에 수록된 엔딩이 훨씬 더 위대한 결과를 낳았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총평] '델마와 루이스'는 버디 무비, 로드 무비 그리고 여성 영화로서 영화사에 큰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장르 영화의 법칙에 매우 충실하여 장르 영화로서도 인정 받지만, 그 주인공이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여성 영화로 오히려 더 오래 회자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보게 된 '델마와 루이스'는, 더 이상 여성 영화로 불리지 않아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작품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점이 이 작품을 처음 기획했던 사람들이 바랬던 진짜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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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 (Inglourious Basterds, 2009)
블루레이 서플먼트 다시보기 (Blu-ray : Special Features)


본래 블루레이나 DVD를 구입하게 되면 다시 한번 썰을 쭉 풀어 놓게 되는 것이 보통인데,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의 경우는 개봉 당시 리뷰를 통해 나름 이야기를 풀어 놓았던 기억이 얼마 되지 않은 것도 있고, 다시금 돌이켜보자니 일이 커질 것 같은 우려(?)도 있는 관계로, 간단하게 블루레이에 수록된 서플먼트들에 대한 소개를 하고 넘어가려 한다. 참고로 내가 블루레이나 DVD 리뷰를 지속적으로 쓰려고 나름의 안간힘을 쓰는 이유는, 2차 영상물이 영영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적어도 국내에서는), 그리 멀지 만은 않은 암울한 앞날을 막기 위함이다. 그냥 내가 쓰는 블루레이나 DVD의 리뷰를 보고 몇 사람이라도, '와, 블루레이는 화질이 정말 짱이구나, 이거 나도 사고 싶은데'라던지, 'D감독의 음성해설이라는거 몹시 듣고 싶은데?' '제작영상 같은건 서플에서나 볼 수 있는건가봐'라고 관심을 갖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리뷰는 지난 개봉 당시 썼던 글로 대체하고, 이번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블루레이 서플먼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바스터즈 _ 타란티노가 말하는 내 생애 최고의 걸작
http://www.realfolkblues.co.kr/1127

바스터즈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_ 타란티노와 모리꼬네라면 아쉬울 것 없어라
http://www.realfolkblues.co.kr/1138

이번 구매한 블루레이는 프랑스판 스틸북으로서 한국어 자막이 본편과 서플먼트에 모두 지원이 된다. 참고로 국내에도 라이센스로 정식발매 되었다(스틸북이 아닌 일반판으로). 케이스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스틸북이라는 것은 컬렉터들을 위한 하나의 포맷으로서 블루레이로 넘어온 이후에도 계속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이긴한데, 이 작품 <바스터즈>와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이 현재까지 내가 소유한 유일한 스틸북이다. 스틸북의 세계는 그야말로 빠지면 모두 스틸북으로 컬렉션을 재수집 해야하는 재정적 어려움이 있으므로, 가능하면 섣불리 빠지지 않는 것이 좋다. <바스터즈> 블루레이 스틸북은 해외 배송시의 찌그러질 수 있는 위험만 넘겨낸다면 마감이나 프린팅 모두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Universal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유니버설을 통해 출시된 블루레이는 기존 유니버설 BD의 기본 메뉴 포맷을 역시 수록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프랑스판이지만 본편과 서플먼트에 모두 한국어 자막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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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만나볼 수 있는 서플먼트는 확장과 다른 버전의 추가 장면들인데, 쇼사나가 괴벨스와 식당에서 시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퀀스의 확장 버전을 만나볼 수 있다. 본편에 실린 버전보다 훨씬 긴 호흡의 대화들이 수록되었는데, 다른 언어가 발생시키는 장면들과 수다가 주는 흥미를 가득 담고 있는 <바스터즈>답게, 확장된 대화 시퀀스에서는 좀 더 타란티노스러움을 엿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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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확장 장면은 지하 술집에서 벌어지는 카드 게임 장면이다. 위장한 주인공 들이 술집에 들어오기전 독일군 병사들이 카드 게임을 즐기고 있는 장면의 확장버전이 수록되었는데, 본편에 수록된 내용과 그리 큰 차이는 없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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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추가 장면은 '조국의 자랑' 시사회 장의 시퀀스인데, 상영이 시작되기 바로 전부터 시작될 때까지의 추가 장면이 담겨 있다. <바스터즈>는 언어에 관한 영화인 동시에 영화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데, 이 추가 장면을 보면 타란티노가 이런 부분을 얼마나 신경쓰고 있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히틀러를 암살하러 온 이들도, 전세의 불리함을 계몽 영화 한편으로 일으켜 보려는 히틀러도, 영화에 특별한 애정이 있던 괴벨스도, 상영관이 어두워지고 영화가 드디어 시작될 때에는 모두 하나로 집중하게 되는 시퀀스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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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터즈>에는 영화 속 영화가 한 편 등장하는데 바로 '조국의 자랑 (Nation's Pride)'가 그것이다. 블루레이에 수록된 서플먼트를 통해 이 '조국의 자랑'의 풀버전을 만나볼 수 있다. 풀버전이라고 해서 1시간이 넘는 긴 분량은 아니고 약 6분 분량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조국의 자랑'에 관한 서플먼트는 한 가지가 더 있는데, 이 때 더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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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만나볼 서플먼트는 이번 타이틀에 수록된 서플 가운데 가장 유익한 영상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엘비스 미첼이 진행하는 KCRW의 '트리트먼트 쇼'에 출연한 쿠엔틴 타란티노와 브래드 피트의 인터뷰가 그것이다.
약 30여분 동안 진행되는 인터뷰에서는 브래드 피트가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서부터, 타란티노와 작업하며 느꼈던 그만의 작품세계에 대한 느낌, 그리고 타란티노가 말하는 브래드 피트와 이 작품에서 말하려는 것들(언어에 관한 이야기들)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다. 별도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인터뷰 영상이 어느 정도 이런 부분을 해소해준다고 볼 수 있겠다. 역시나 수다스러운 타란티노는 자신의 만든 영화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어 안달난 것을 얼핏 봐도 쉽게 느낄 수 있는데, 그 만큼 영화의 기획서 부터 메시지와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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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부가영상 가운데는 영화 속 영화 '조국의 자랑'에 관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다름아닌 이 작품에 메이킹 필름이다. 그런데 단순한 메이킹 필름이 아닌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로서, 극중 인물들이 진지하게 이 영화에 대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실제 <호스텔> 등을 연출한 감독이기도한 일라이 로스는 이 메이킹 영상에서, '조국의 자랑'을 연출한 감독 '알로이스 폰 아이히베르크'로 분해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데, 어찌보면 극중 맡은 '도니 도노윗' 역할보다 더 잘 어울리는 듯 하다. 괴벨스 역시 이 작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전하는 한편, 주연을 맡은 졸러는 물론 괴벨스의 정부인 프란체스카 몽디노의 인터뷰도 수록되었다. 전체적으로 타란티노의 장난끼를 다시 한번 맛볼 수 있는 부가영상으로서, 보는 이도 정색하고 봐주면 되겠다. 참고로 괴벨스의 정부로 나온 여자배우는 타란티노의 전작 <킬 빌>에서 오렌 이시이의 부하로 나와 마지막까지 고생했던 그 언니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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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의 <바스터즈>의 직접적인 영감을 준 엔조 카스텔라리 감독의 1978년작 'Inglorious Bastards'(스펠링을 보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는 제목부터 언어유희를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의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원작에도 출연했던 보 스벤슨은 이 작품에서도 '조국의 자랑' 속에 출연하고 있으며, 원작의 감독이었던 엔조 카스텔라리 역시 까메오로 작품에 함께 하고 있다. 1978년작 '바스터즈'에 관한 이야기들을 물론 약 4분여의 원작 영상도 만나볼 수 있다. 타란티노의 <바스터즈>를 인상 깊게 본 이들이라면 엔조 카스텔라리의 원작도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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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극중에서 '윈스턴 처칠' 역할을 맡은 로드 테일러의 인터뷰가 비중있게 담겨 있는데, <지옥의 용병들 (1968)>, <새 (1963>) 등에 출연했던 그를 타란티노가 어떻게 설득해서 <바스터즈>에 함께 하게 되었는지는 물론, 타란티노에게 감동 받을 수 밖에는 없었던 에피소드들을 들려준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신이 좋아하고 존경 하는 것들에 대해 오마주나 존경을 표할 때 그 방법이나 절차를 제대로 알고 있는 몇 안되는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 로드 테일러의 인터뷰를 듣고 나니, 더더욱 그의 이런 정성과 영화 팬으로서의 됨됨이가 느껴졌다. 그리하여 존경 받는 대상으로 하여금 오히려 타란티노를 존경하게 만들어 버리는 그의 정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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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만나게 되는 서플먼트는 슬레이트 치는 장면에서의 개성있는 한 마디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단순히 씬넘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 감독, 유명인사들의 이름은 물론, 욕설, 장소, 음식 이름 등등등 매우 다양한 종류의 것들을 나열하고 있어서, 이것들을 하나하나 듣는 것 만으로도 색다른 재미가 있다. 이후 소개할 편집에 관한 서플도 그렇지만, 영화 촬영 환경 자체를 재미와 즐거움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어내는 타란티노 월드의 모습을 또 한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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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Sallys'는 타란티노의 작품을 오랫동안 편집을 맡아온 셀리 맨케에게 보내는 일종의 선물이라고 볼 수 있는 영상인데, 배우들이 대사 말미나 컷이 끝날 때마다 나중에 편집실에서 이 영상을 보게 될 셀리를 위해 한마디씩 전하는 따스한(?) 영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셀리 맨케 (Sally Menke)는 타란티노의 전작 <저수지의 개들 (1992)>, <펄프 픽션 (1994)>, <재키 브라운 (1997)>, <킬빌 1,2 (2003,2004)>, <데스 프루프 (2007)> 등의 편집을 맡았을 정도로 타란티노와는 오랜 기간 함께 해온 편집자이다. <바스터즈> 타이틀 외에 <킬빌>이었나 <데스 프루프>였나 DVD에서도 이와 똑같은 서플먼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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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개봉 당시 이 작품을 리뷰하면서 '아, 당시 독일 영화에 관한 여러가지 재미있는 설정들과 이야기들이 담긴 것 같은데, 이를 정보가 없어서 다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 부분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줄 만한 서플먼트가 바로 'Film Poster Gallery Tour with Elvis Mitchell'이다. <바스터즈>는 영화에 관한 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특히 당시 독일 영화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배경에 깊게 깔려 있는데, 타란티노는 자신의 영화광적인 지식을 동원해 영화 곳곳에 당시의 에피소드들을 끄집어 낼 수 있을 만한 장치들을 준비해 놓았다. 소샤나의 극장에 걸려 있는 영화 포스터들이 갖는 의미나 당시 독일과 괴벨스의 영화 관련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는데, 영화를 보면서 100%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들을 채워주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극중에서 괴벨스가 '릴리언 하비'의 이야기가 나오자 호통을 치며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릴리언 하비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면 의아할 수 밖에는 없는 장면일 것이다. 이런 사전적 정보에 대한 내용을 바로 이 서플먼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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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비록 음성해설까지 수록되지는 않았지만, 몇가지 인터뷰와 부가영상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서플먼트를 수록하고 있어 만족스러운 타이틀이었다. 특히 맨마지막에 살펴본 당시 독일 영화계에 관련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Film Poster Gallery Tour with Elvis Mitchell' 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보람이 컸다.


작품 - 9.5 / 화질 - 9 / 음질 - 9 / 스페셜피쳐 - 8 / 소장가치 - 9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블루레이 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Universal Studios 에 있습니다.






번 애프터 리딩 (Burn After Reading, 2008)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

<번 애프터 리딩>은 어지간한 영화 팬이라면 도저히 관심이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라인업으로 먼저 눈길을 끄는 영화이다. <마이클 클레이튼>에서 호흡을 맞추었고 아카데미까지 수상했었던 틸다 스윈튼과 조지 클루니가 다시 한번 함께 출연하고 있고,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존 말코비치, 그리고 미드 <식스 핏 언더>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리차드 젠킨스, 여기에 아마도 '오션스..'시리즈를 통한 조지 클루니와의 커넥션으로 함께 한 듯 싶은 브래드 피트까지. 그야말로 오랜만에 보는 초호화 캐스팅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라인업을 완성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연출을 맡은 코엔 형제라고 할 수 있을텐데, 전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 무시무시한 자신들의 연출력을 새삼스레 만인하게 공표했던 그들이 이런 호화 캐스팅을 데리고 코믹 스릴러 물을 촬영했다는 소식에 어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어쩌다보니 마치 만우절 낚시글 마냥 부제목을 지어버린 꼴이 되버렸지만, 사실 저 만한 부제목도 없을 듯 하다.

'아니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


(이후부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살짝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선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아니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 는 영화의 맨 마지막 대사이기도 한데,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코엔 형제는 이 대사 한마디를 가장 먼저 떠올리고는 영화를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싶다. 맨 마지막에 이런 대사를 시원하게 넣기 위해서 100분 가까운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알차게 만들 수 있을까 하며 머리를 맞대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는 사실 맨 첫 시퀀스부터 속으로 웃음을 참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아예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정통 스릴러라기 보다는 '코믹'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는데, 위성에서 잡은 듯한 시점에서 CIA본부 건물로 시선이 잠입하여 복도를 걷는 발 밑 시점으로 옮겨가는 카메라 워킹은, 이런 '요원'이 등장하는 전형적 스릴러 물에 대한 조롱과 더불어 풍자가 담긴 오프닝 시퀀스로서, 이 영화가 기존 것들에 대한 풍자의 메시지를 들려줄 것이라는 것을 바로 짐작할 수 있는 재기넘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코미디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요소는 다름 아닌 영화 음악이라 할 수 있겠다. <번 애프터 리딩>의 영화음악은 굉장히 장황하고 장르적이다. 장르적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스릴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 그러니까 서스펜스를 고조시키기 위해 삽입된 음악들 - 코드의 음악들을 이 영화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데, 관객이 이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굉장히 장황하고 오버스럽게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가 '코믹'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긴 했지만, 만약 몰랐다 하더라도 영화 음악을 통해 눈치챌 수 있었을 듯 싶다. 그래서 음악을 맡은 카터 버웰의 전작들은 어떤 것이 있었나 살펴보았더니, 이분 완전히 코엔 형제와 콤비가 아닌가. 가장 최근작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물론이고, <레이디 킬러>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파고> <밀러스 크로싱> 등 까지 거의 모든 작품의 영화음악을 도맡았던 음악감독이었다. 코엔 형제의 영화들 외에도 브래드 피트가 출연했던 <칼리포니아>를 비롯해 <컨스피러시>, 무려 <벨벳 골드마인>,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 그리고 최근작 <킬러들의 도시>까지. 왜 그 동안 카터 버웰이라는 이름을 몰랐었는지가 의아해질 정도의 필모그래피였다. 앞으로는 스탭롤을 볼 때 카터 버웰 이라는 이름을 절대 잊지 않을 것 같다(늦었지만 ^^;).




'거대한 농담'이라고 얘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단순히 '농담'을 하기 위해 만든 영화는 아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농담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라고 해야겠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매우 다양한 캐릭터들을 배치시키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각각의 캐릭터들이 어떤 연관성과 우연성으로 얽히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다 같이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는가를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코엔 형제만의 놀라운 스토리텔링 능력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 씁쓸함이 묻어나는 풍자의 메시지도 얻을 수 있다. 일단 가장 큰 풍자는 바로 CIA나 FBI 같은 거대 첩보조직에 관한 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결국은 아무 일도 아닌, 매우 사소하고 사적인 일들을 항상 확대 해석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확대조치하는 그들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결말에 가서 이를 그냥 제거하고 입을 막는 것으로 너무 쉽게 마무리하려는 그들의 행동들을 보면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라는 대사는 그 대사를 읊은 인물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메시지로 들리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흥미로운 것은 바로 영화 속에 살아있는 캐릭터들이다. 이 캐릭터들은 어찌보면 굉장히 과장되고 별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극히 현실적인 캐릭터들 뿐이다. 부인 몰래 외도를 하고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고 나서는 반드시 조깅을 해야만 하는 집착을 보이는 해리 파러(조지 클루니)는 이야기 할 때 약간의 버릇이 있고 까탈스러운 면도 보이지만 수많은 인간 군상중의 하나일 뿐이고, CIA분석가로 일하다가 좌천되고 나서 사표를 내고 부인에게까지 이혼당할 위기에 처한 오스본 콕스 역시 또 다른 군상이라 할 수 있겠다. 스포츠센터 직원으로 더 나은 몸을 만들기 위해 전신 성형을 지상과제로 삼고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남성들과의 만남을 갖는 린다 리츠키 (프랜시스 맥도먼드), 이혼 전에 꼼꼼히 남편의 제정상태 등을 살펴보며 치밀하게 준비하는 까칠한 성격의 케이티 콕스 (틸다 스윈튼), 약간 모자란듯 하지만 순수하고 자신의 세계에 푹 빠져있는 채드 (브래드 피트), 마지막으로 같은 직장에 다니는 린다를 멀리서만 짝사랑하는 매니저 테드(리차드 젠킨스)까지.

이들 개인의 캐릭터는 사실 우리가 영화에서 만나는 다른 캐릭터들에 비하자면 굉장히 현실적인 캐릭터들이라고 할 수 있겠고, 이들이 처한 상황들도 크게 이를 벗어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작은 사건들이 하나하나 결합되게 되면서 별 것 아니었던 혹은 없었을 수도 있던 일은 커지게 되고, 의도하지 않았던 죽음과 사건이 발생되게 된다. 이 같이 작은 인과관계들이 맞물려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을 발생시킨다는 것은 이 영화가 말하려는 또 다른 풍자의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뭐 아무리 풍자와 메시지를 떠들어도 결국 이 영화는 코엔 형제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영화 내내 키득키득하며 즐길 수 있는 유쾌한 영화였다. 일단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후 정반대로 작정하고 만든 영화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코믹함을 보여주는 방식도 어찌나 코엔형제 스럽던지 보는 내내 그들의 재치를 엿볼 수 있어서 즐거웠던 영화였다. 영화 자체가 굉장히 힘을 빼고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으면서도 가볍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으며, 전체적으로 커다란 에피소드 하나를 쏙 빼내어 감상한 느낌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항상 진지한 연기들로 치자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배우들의 또 다른 진지한 연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건 여기나온 배우들이 대부분 자신의 이미지를 뒤 엎는 캐릭터들을 한 두 번씩은 이미 선보였었다는 점인데,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고 신선하기까지 했던 이유는 물론 코엔 형제가 만든 캐릭터와 이를 숨쉬게 한 배우들의 노력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가장 충격적인 캐릭터를 고르라면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채드'를 꼽을 수 있을텐데, <벤자민 버튼....>으로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캐릭터를 최근 연기한 브래드 피트의 이 영화 속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만큼 '튀는' 캐릭터였다. 그 싸보이는 헤어 스타일부터 시작해 그 저렴한 춤사위며 몸동작들은 역시 브래드 피트는 배우야 라고 새삼 느끼게 할 만큼 코믹했다. 일부 여성 관객들은 '나의 브래드는 저렇지 않아' 하며 충격의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존 말코비치는 이전 영화들에서도 비슷한 느낌의 캐릭터들을 연기한 경험이 있어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노련함을 엿볼 수는 있었다. 역시 코믹함과 진지함을 두루 갖추고 있는 조지 클루니의 연기는 박찬욱 감독의 최근 송강호를 평한 표현을 빌리자면 '영리하다 못해 영악한' 배우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고, 조엘 코엔의 아내이기도 한 프랜시스 맥도먼드 역시 그녀 아니면 소화하기 힘든 이상하게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리차드 젠킨스와 틸다 스윈튼의 경우 튄다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캐릭터를 무리없이 소화해내고 있다.

결국 역시 코엔 형제답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재치 넘치는 영화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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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
순간의 성장영화

F.스콧 피츠제랄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데이빗 핀처가 연출하고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처음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다('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우리말 제목에
괸해서는 조금 직접적이고 자극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원제 그대로 '흥미로운 사건' 혹은 '기이한 사건' 이라던가
아니면 그냥 '포레스트 검프'처럼 '벤자민 버튼'이라고 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던터라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었으나, 우리말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주인공 '벤자민 버튼'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것 정도 외에는 별다른 정보를 수집하지 않은채 관람하였는데(아! 2시간 40분에 달하는 긴 상영시간에 대해서도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데이빗 핀처의 스타일이나 성향 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영화도 어느 정도 이런
성향에 연장선에 있지 않을까 했지만, 의외로 이 영화의 주된 흐름은 로맨스에 있었다. 원작을 이미 읽어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원작과는 사뭇 다른 각색으로 실망도 했다고 하는데, 원작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데이비드 핀처만의
스타일리쉬하고 독특한 장면들을 만나볼 수 있는 동시에 <조디악>이후 확실히 <조디악> 이전 작품들과는 구별되는
연출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이미 스포아닌 기본 줄거리로서 알려진 바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 벤자민 버튼은 태어날 때 노인의 몸(정확히 말해서는
몸상태라 해야 맞겠다)으로 태어나 점점 시간이 흐를 수록 몸이 젊어지는 독특한 인생을 타고난 캐릭터이다. 태어나자 마자
노인과 같은 주름진 얼굴과 피부를 하고 나온 아이를 아버지인 토마스 버튼은 어느 한 집에 버리게 되는데, 이 집은 일종의
양로원 같은 공간으로 노인들이 모여사는 곳이다(원작에서 벤자민의 부모는 벤자민을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은 일반
평범한 가정이 아니라 조금은 특별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이 장소 설정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만드는 듯 하다.
이 곳을 관리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된 벤자민은 어렸을 때 부터 노인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지내게 된다. 거꾸로 시간이
간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기 어렵고 그들의 죽음을 계속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역시 의미하는데,
바로 이 점에서 노인들이 주로 살아가는 이 공간은 매우 효과적으로 적용이 되고 있다. 자신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었던 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세상을 보여주었던 이,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죽음을 하나하나 다
겪어야만 하는 캐릭터를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메시지들을 은연 중에 전달하고 있다.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었으나 이 공간과 벤자민의 나레이션들을 통해 이 '인생'에 관한 깊은 메시지는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이야기 하고 있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바로 소외된 자를 받아들이는 방법과 선입견이
없이 수용하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가 판타지스러운 것은 단순히 시간을 거꾸로 적용받는 주인공 때문 만은 아닐 것
이다. 앞서 언급한 이 공간, 이 공간은 어찌보면 매우 판타지스러운 공간이 아닐 수 없겠다. 일단 이 시기라면 완벽하게
인종차별이 없었던 시기라고 할 수 없을텐데(하긴 오바마 정부인 최근조차 완벽하게 없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사실상
흑인들이 운영하는 이 공간에 굉장히 격식이 차려진 삶을 살아온 듯한 백인 노인들이 이 공간에 아무런 불평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노인들의 헤어스타일이나 의상, 장신구들로 미뤄보아 다들 여유로운 마지막을 준비하려 이곳을 선택한
이들임을 알 수 있는데, 이들에게서는 전혀 인종차별의 낌새조차 발견할 수 없다.

인종차별에 관한 건 굳이 발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 영화에서 더 중요한 다른 시선은 바로 선입견 없이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바라보는 인물들에 모습에 있다. 벤자민의 아버지는 벤자민이 태어나자 마자 '괴물'같이 흉측한 모습이라며 아이를
버렸지만, 이를 발견한 '퀴니'는 거의 단 한번도 주저함 없이 벤자민을 겉모습이 아닌 '아이' 그 자체로만 받아들인다.
이 공간 속에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보통 같으면 퀴니가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벤자민을 공개했을 때 기겁들을 했겠지만,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노인들은 '내 죽은 남편과 비슷하게 생겼다'며 농담까지 할 정도로 퀴니가 그랬던 것처럼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벤자민을 처음 친구로 받아주었던 피그미족 남자도 그랬고, 키작고 노인으로만 보였던 벤자민을
자신의 선원으로 받아준 선장 마이크 역시 그러했고, 벤자민의 연인이었던 데이지 역시 그러했던 것처럼, 이들 모두는
우리가 쉽게 보는 벤자민의 기이한 겉모습에 전혀 편견을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있다. 현실은 이렇지 않기에
이런 구성이 판타지로 느껴지는 것이 씁쓸하기까지 한데, 이를 반영하는 캐릭터들을 노인이나, 흑인, 선원들로 묘사한 것은,
그 반대에 서있다 할 수 있는 이른바 '지식층'들에 대한 조롱의 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괴물 같다며 벤자민을 버렸다가
나중에 점점 젊어지고 번듯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의 전재산을 물려주며 가업을 잇게 하기 위해 아버지임을 밝히게 되는
토마스 버튼이 기업가(사업가)라는 점도 앞선 것들과 연관지을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케이트 블란쳇 만큼이나 좋아하는 줄리아 오몬드도 만나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영화는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데이지와 그녀의 딸 캐롤라인이 예전 일기장을 읽어내려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중간중간 계속 나레이션이 삽입되어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더더욱 마치 책
한 권을 읽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좀 더 진실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비춰
봤을 때도 그렇고, 부모가 (직간접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판타지스럽다는 측면에서,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가
연상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기이하게 태어난 벤자민 버튼의 삶을 그리고 있지만,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을 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매우 보편적
이다. 노인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벤자민은 노인들과의 생활을 통해 여러가지를 배우고, 우연히 함께하게 된 인양선 항해를
통해 마치 사춘기 소년이 그러하듯 성에 대한 첫경험과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갖게 되었으며, 데이지를 통해 이성에 대한
감정과 이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도 하나씩 배워나가게 된다. 시작은 남들과 정반대에서 시작했지만 시작점이 달랐을 뿐
같은 길을 반대방향에서 걸어간다고 보면 될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이 기이한 설정만 제외하면 완벽하게 성장영화와
맞아 떨어진다. 일단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이 데이빗 핀처라는 점이었는데, 이 기이한 설정을
컨트롤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그의 역량이 발휘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바이지만, 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로맨스와
드라마에 가까운 이 영화를, 스릴러와 강한 스타일이 장기인 핀처가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데이빗 핀처는 <조디악>이후 이렇게 느긋하게 극을 이끌어나가는 부분에 있어서 스릴러 적인 긴장감 없이도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조디악>은 물론 범죄 스릴러 라는 장르 안에 있었지만 이전 그의
작품들처럼, 장르적인 특성과 분위기에만 기대는 영화가 아니었다. 이런 장점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다시금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데, 특히 순간순간 장면을 감성적으로 그려낸 것을 보니 '과연 이 장면들이 데이빗 핀처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야기가 잠시 헛나갔는데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이 영화가 인생이라는 것을 그리는데 있어서 얼마나 순간과 지금에
중요성을 두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점은 데이지가 사고를 당하게 되는 시퀀스를 통해 아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데이지가 차에 치이게 되는 과정에 얽힌 여러 인물들의 인과 관계를 설명하면서, 이렇듯 여러가지가 제대로 정상적
으로 작용하지 못했음에도 즉 단 한가지라도 어긋났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찰나의 사고가 일어나게 된 것을 매우 직접적으로
묘사하면서,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순간과 시간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벤자민과 데이지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벤자민의 특별한 상황 때문에 일종의 '접점'을 기다려왔다고 할 수 있는데,
서로 반대의 출발점에서 시작한 둘의 나이가 서로 어느 정도 비슷한 시기에 도달했을 때, 이들은 그야말로 서로를 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정도로 이 순간에 집중한다. 얼핏보면 이 시기가 곧 '청춘'이 인생의 클라이맥스이자 만개했다
지는 꽃처럼, '한 때'를 찬양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았을 때 '찬양'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음을 인지하고 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대한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영화에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사실 조금 의외다 싶었는데, 영화를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일단 벤자민의 어린 시절(?)의 묘사를 위해 엄청난 CG가 사용되고 있다. 이부분은 모션캡쳐를 통해
브레드 피트의 얼굴 부분을 그래픽으로 완성하고, 얼굴 외 부분은 대역 연기자가 연기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진짜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호빗을 촬영했던 방식으로 촬영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키도 작고 노인의 몸을 갖고 있는
브레드 피트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재미있는건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등장한 순서대로 배우들의
이름이 나열되는데, 벤자민 버튼 역을 맡은 브레드 피트는 세 페이지가 지난 다음에야(틸다 스윈튼이 등장할 때) 등장하는
것으로 나온다).

캐릭터 묘사에 사용된 CG와 이에 따른 비용도 많았겠지만, 이 밖에도 배경 묘사나 로케이션을 대체하기 위해 엄청난 CG를
사용하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극 중 벤자민 버튼은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데 물론 실제 로케이션을 통해 촬영된 분량도
조금 있는 듯 하지만 대부분은 완벽한 CG로 채워졌으며(예전 파리 시내를 아우르는 장면은 CG이지만 상당한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브래드 피트가 인양선을 타고 간 곳 거리의 디테일도 로케이션이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묘사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 이 두 배우의 모습 묘사에도 많은 CG가 사용되었는데, 특히 브래드 피트의
경우 할아버지 분장부터 <델마와 루이스>시절 혹은 더 이전을 연상케 하는 '미소년'의 모습까지 연기하고 있어,
이른바 '뽀샵'의 효과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극중 데이지가 발레를 하는 이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장면을 보면서 데이빗 핀처도 이런 감수성이 있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고)

극중 벤자민 버튼 역을 맡은 브레드 피트는 연기를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벤자민 버튼'이라는 이 캐릭터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젊어진 다는 설정을 표현함에 있어서 그의 외모는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겠는데,
점점 젊어질 때마다 더더욱 빛을 발하는 그의 외모는 여성 관객들의 탄성을 절로 불러일으켰다. 사실 의외로 이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자체로 표현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극중 틸다 스윈튼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가 연기한
것이 아니라 모션 픽쳐를 사용한 대역 연기자가 벤자민을 연기하였고, 이후 에도 외모 적인 변화 만큼 인상적인 연기는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물론 그의 외모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스럽긴 했다;;).

그에 반해 데이지 역할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훨씬 깊은 편이다. 대부분 CG에 큰 도움을 받았던 벤자민 버튼 역할과는
달리, 죽음을 앞둔 노인 역할부터 20대의 풋풋한 발레리나 까지, 또 한번 그녀의 놀라운 연기 스펙트럼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워낙에 빛을 발하는 브래드 피트 때문에 조금 가려져 있긴 하지만, 20대의 데이지를 연기한 케이트의 놀라운 외모는
(물론 CG의 도움이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다시 한번 여신의 포스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제목이 '벤자민 버튼의 ....'라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경향이 있지만 연기면에서는 그녀의 연기가 훨씬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데이지의 딸로 등장하는 줄리아 오몬드의 경우 브래드 피트와 <가을의 전설>에서 연인으로 출연했던 터라 이 같은 관계설정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어찌보면 큰 기대에 비해 표면적으로 별로 들려주는 얘기는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 젊어진다는 설정을 좀 더 다양하게 이용하지 못한 듯한 느낌도 살짝 들지만, 개인적으론 이 설정에
국한되지 않고 본래 하려던 이야기를 단지 설정만 빌려와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비교적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2시간 40분이라는 상당히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가 단지 두 배우의 외모적 변화를
관찰하는 재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1. <콘스탄틴>등에서 잘 보여줬던 것처럼, 이번 영화에서도 워너브라더스의 로고가 멋지게 변형되어 등장한다.
이 로고를 통해 벤자민 '버튼'이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 살짝 예상해볼 수 있었다.

2. 초반에 허리케인이 온다며 잠시 간호도우미가 자리를 뜨는데, 이 도우미의 이름이 도로시라는 점도 재미있었다.
참고로 영화 마지막 장면의 날짜는 뉴올리언즈가 카트리나에 피해를 받게 되었던 그 날이라고 한다.

3. 본문에도 썼지만 영화의 초중반 등장하는 벤자민 버튼은 브래드 피트의 얼굴을 모션 캡쳐하여 대역 연기자가 연기한 것이기
때문에, 등장순서대로 나오는 엔딩 크래딧에 브래드 피트는 세 페이지가 지난 뒤에야 이름을 올리고 있다.

4.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은 알렌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 <바벨>에서 부부로 등장했던 적이 있다.

5. 의외로 케이트 블란쳇과 틸다 스윈튼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많은데(비슷한 시기에 마녀 혹은 여왕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듯 하다), 이 두 배우가 한 영화에 등장한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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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The Assassination Of Jesse James By The Coward Robert Ford, 2006)


제목이 길기도 한 이 작품. 미리 접한 정보는 브래드 피트와 벤 애플렉의 동생인 케이시 애플렉이 주연한
서부영화라는 것 정도. 극장에서 개봉하게 되면 한 번 봐야겠다 하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결국 극장에서는 걸리지 못하고 바로 DVD로 직행하는 영화가 되고 말았다.
그도 그럴것이 코엔 형제의 화제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 등
무겁거나 작품성이 강하지만 제법 화제작인 영화들 조차 극히 소규모의 관에서만 개봉할 수 있었던
최근 사례만 비춰봐도 이 영화 <비겁한....>이 개봉되기에는 상업적인 논리에서 봤을 때 조금 힘에 겨운
싸움이 아니었나 싶다. 브래드 피트라는 걸출한 스타가 있긴 하지만, 국내에서는 별 재미를 못보고 있는
서부영화라는 장르와(정통 서부영화라고는 보기 어렵지만),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반전이라던지 영화적
장치가 많지 않으면서, 무려 2시간 반이 넘는 러닝타임(이게 가장 주요한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다)은
90분내로 끝이나는 킬링 타임 영화에 더 몰리는 관객들을 생각해봤을 때 역시나 개봉은 쉽지 않았던것 같다.



(스포일러 있음)

서부 영화 가운데는 <내일을 향해 쏴라>처럼 서부시대에 실존했던 무법자나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제시 제임스'라는 서부시대의 영웅을 등장시키면서 그와 그를 둘러싼
미묘한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사실 미국이 아닌 지역에서, 또한 서부극이나 그 당시의 이야기에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면 이런 소재에 좀 더 반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시 제임스'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기 보다는, 선과 악의 구분이 불분명한 한 인물과 그를 동경했으나 결국에는 죽음에 까지
이르게 만드는 한 인물의 미묘한 심리상태와 갈등의 이야기를 아주 천천히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굉장히 쿨하게만 보이는 서부의 영웅의 이면에는 아무도 믿지 못하는 불안함과 정서적인 황폐함이 존재한다는
것과 자신이 동경하는 인물에 대해 '그처럼 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가 되고 싶은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결국 갈등 끝에 그를 암살했음에도 자신에게 돌아온 기대하지 않았던 반응들과 오히려 자신이 그를 가장
그리워하게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통해, 굉장히 공허함과 무료함을 전하고 있다.

브래드 피트는 블록버스터와 이런 비교적 작은 작품에 번갈아 출연해가며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더
충실하게 쌓아가고 있는 분위기다.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연기는 이제 제법 이런 캐릭터가 어울리는
느낌을 갖게 한다. 아마도 예전 같으면 그가 '제시 제임스' 역할보다는 '로버트 포드'역에 더 어울렸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밴 에플랙의 동생으로 더 유명한 케시 애플렉은 형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는 듯 하다.
굉장히 우울해보이면서도 묘한 미소를 갖고 있는 그의 연기는 이 작품에서 최고로 발휘된 듯 하다.

감독인 앤드류 도미닉은 뉴질랜드 출신의 신예 감독인데, 첫 작품부터 아주 무거운 영화를 맡은 듯 하다.
프로듀서로는 리들리 스캇과 토니 스캇 형제가 참여하고 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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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35년 미래의 인류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99%가 멸망하고 소수의 생존자들은 지상에서의 생활을 포기한 채 지하 세계에서 생활하게 된다.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제임스 콜(James Cole: 브루스 윌리스 분)은 자원 임무를 띠고 지상으로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사자와 여러 동물들이 배회하는 것을 보며 '12 몽키즈'란 단체의 마크를 보게 된다. 탐사업무를 끝내고 돌아온 제임스에게 일련의 과학자들은 그에게 인류의 지상회복을 도와준다면 완전 사면을 해주겠다고 제의한다. 결국 그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바이러스가 퍼지게 된 1996년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어떤 착오로 인해 1990년으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경찰을 부상을 입히는 등 말썽을 피워 정신 병원에 수감된다. 그는 곧 인류가 바이러스에 의해 멸망할 것이라고 설득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의 담당의사인 캐서린 레일리(Dr. Kathryn Railly: 매들린 스토우 분) 박사는 그를 치료하면서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그리고 제임스와 같은 병동에 수감되어 있는 제프리 고인즈(Jeffrey Goines: 브래드 피트 분)라는 사람은 부친이 대단히 유명한 바이러스 연구학자로 아버지에게 연락이 닿으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고 큰 소리 친다.



TV를 통해 인간들의 폭력을 본 제임스는 혼잣말로 인류가 멸망을 자초한 것이라고 말하자 제프리는 그에 동조하며 인류는 바이러스 같은 것으로 망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임스는 제프리의 도움으로 탈주하지만 다시 붙잡혀 감옥에 수감 도중 미래로 돌아간다. 과학자들이 제시한 자료를 통해 제프리가 12 몽키즈라는 단체의 주요 인물임을 알아내어 제임스는 다시 1996년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실수로 1910년대의 프랑스 전쟁터로 떨어져 위기를 맞게 된다. 위기의 순간 그는 다시 1996년으로 보내지고 6년 만에 레일리 박사를 만나게 된다. 제임스는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았던 그녀에게 1914년 전쟁터에서 자신이 위기에 순간에 찍혔던 사진으로 진실에 대한 확신을 주지만 레일리 박사의 납치 사건으로 경찰의 추격을 받는다. 제임스가 미래에서 다시 돌아왔을 때 제프리 일당이 한 일은 동물원에 갇혀있던 동물들을 풀어놓는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이러스를 확산시킨 진짜 범인은 제임스가 어려서부터 꿈에서 보아왔던 제프리 부친의 조수라는 것을 알게 되어 공항을 탈출하려던 그를 막으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브루스 윌리스, 브래드 피트, 매들린 스트로우, 모두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고 생각된다. 그간 [다이하드]시리즈의 존 맥클래인 형사로 더 잘 알려졌던 브루스 윌리스는, 이 영화에서는 복잡한 심리 묘사와 상극의 표정연기로서 한 단계 성숙한 연기를 펼친다(하지만 감독인 테리 길리엄은 다이하드에서의 브루스를 보고 자신의 영화의 주인공으로 어울리겠다고 여기고 캐스팅 했다고 한다). 특히 6년 만에 다시 돌아와 레일리 박사의 차를 납치하였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즐거워하던 그 표정이란, 브루스 윌리스 영화사상 최고의 표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스트 모히칸]에 출연했던 매들린 스트로우도 차분하게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과거에서 제임스를 믿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자신도 모르게 비극적인 운명에 함께 하게 되는 역할을 맡았다. [12 몽키즈]에서 브래드 피트의 연기는 일단 튄다. 그는 미치광이 정신병자이자 혁명가이기 까지 한 제프리 고인즈 역할을 맡았는데, 이전까지 폼나고 뻔지르르한 역할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멍청한 표정과 심하게 집중하는 손짓, 몸짓의 연기는 그해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게 하였다. 브래드 피트는 제프리 고인즈 역할을 위해 실제로 정신병원에서 몇 주 간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대한 생각할 거리를 한 번 더 던져놓고 있다. ‘What a Wonderful World’가 슬프게 들리지 않을 때야말로, 우린 정말 잘 살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관점은 대부분의 이런 종류의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다른 SF 장르의 영화에서는 대부분, 이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미래에서 그 일이 일어나기 전의 시점으로 돌아가 커다란 재앙을 직접 차단하여 현재와 미래를 변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일단 [12 몽키즈]에서는 주인공을 과거로 보내기는 하지만, 그는 자료 수집이 주 목적이고, 바이러스를 퍼트린 당사자를 찾아내어 과거를 사는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단서를 재공하려는 것이다. 또한 결과적으로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나왔던 비극적인 공항에서의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비극적으로 그려지면서, 결코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을 빗대어 얘기하고 있다.



[백 투 더 퓨처]에서 과거를 변화시키면 미래에 사진이 변하는 등의 긍정적인 사고(?)방식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영화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첫 장면에 배치하고, 과거와 미래의 시간관념 속에 영화의 마지막 그대로 펼쳐짐을 보여줌으로써, 어쩌면 처음부터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었다는 것을 보는 이로 하여금 알리고 시작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죽어가는 제임스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어린 소년은, 어린 제임스 자신이었으며, 그는 결국에 미래에 가서는 다시 과거로 돌아와 또 그러한 결과를 맺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저 매일 마시고 공유하고 있는 공기. 오염된 미래에서 온 제임스에게는 맑은 공기만큼 기쁘고 즐거운 일은 없었으리라. 또한 라디오를 신기해하며 흐르는 음악에 너무나도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감상에 졌던 제임스. 제임스를 이해하려고 했던 레일리 박사조차도 어쩌면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흐르는 음악은 영화의 주제와 생각과도 깊게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12 몽키즈]의 엔딩 음악도 그러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를 엔딩에 배치하면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하며 감사의 마음을 되묻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극 중의 ’12 몽키즈‘란 비밀 조직은 바이러스를 퍼트린 이들이 아니었으며, 그저 동물에 대한 무분별한 실험에 항거하는 단체였음을 보여주면서, 역시 자연과 환경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한 번 더 던져놓고 있다. ‘What a Wonderful World’가 슬프게 들리지 않을 때야말로, 우린 정말 잘 살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03.05.09
글 / 아쉬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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