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폴리스 (Cosmopolis, 2012)
직접적인 자본주의의 허상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신작 '코스모폴리스 (Cosmopolis, 2012)'를 보았다. 이 작품은 크로넨버그의 신작인 동시에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유명한 로버트 패틴슨의 주연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인데, 처음엔 '어? 크로넨버그 영화 같지 않은데?'라고 생각했다가 후반부로 갈 수록 '역시 크로넨버그 영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돈 드릴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야 알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이 영화는 당연히 근래 월가에서 일어난 1 vs 99의 시위에 영향을 받아 쓰여진 시나리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 드릴로의 원작은 무려 10년 전에 이 일을 마치 보고 쓴 것처럼 정확하게 예상했고, 크로넨버그는 이 이야기를 제한적이지만 심플하고 강렬하게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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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에릭 패커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본을 다루는 월가의 최고 부자이자 거물인데, 이 영화는 그의 짧은 하루를 그대로 따라간다. 영화의 주된 공간은 에릭 패커가 하루 종일 머무는 그의 리무진이 배경이 된다. 에릭 패커는 하루 종일 자신의 요새와도 같은 리무진 안에서 자신의 일을 맡고 있는 주요 담당자들을 만나게 된다. 회계전문가, 투자전문가, 경제전문가, 큐레이터, 보디가드 등 그가 만나는 한 명 한 명은 마치 각각의 에피소드들처럼 느껴진다. 혹은 각각의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 세계는 에릭 패커로 대표 되는 거대한 자본주의의 영향력 안에 존재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에릭 패커의 위안화 투자가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에릭 패커는 리무진 밖에서 엄청난 폭동이 일어나고, 자신의 전문가들이 사업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 혹은 조언을 하는 과정 속에서도 섹스 혹은 전혀 다른 것들에 대한 관심 뿐이다. 영화는 이렇게 에릭 패커가 놓여있는 세계와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세계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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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영화의 후반부가 너무 직접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직접적인 것으로 인해 이것이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현실이라는 점을 더 피부로 와 닿게 만들기도 하지만 (월가 시위 이후 이 영화를 영화로만 보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후반부 폴 지아마티가 연기한 캐릭터와 에릭 패커의 긴 대화 시퀀스는 어쩌면 영화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다른 면에서 보자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지만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자본주의'라는 것에 대해서 오랜 시간 기회를 갖고 논의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최상위 계급에 위치한 자와 최하위 계급에 위치한 자가 논하는 이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과연 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를 떠올려 보게 하는 흥미로운 대화 시퀀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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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크로넨버그 영화답지 않다고 여겼다가 다시금 의견을 바꾸게 된 것은 바로 그 직접적인 방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이진 않았지만 육체를 다루고 바라보는 방식에서도 역시 크로넨버그를 느낄 수 있었다. 한 동안 '폭력'이라는 것에 집중했던 크로넨버그는 어쩌면 또 다른 폭력일지도 모를 '돈'과 '자본주의'에 대해 이번에는 전혀 비 폭력에 가까운 방식들로 묘사하고 있다.


방아쇠를 당겼는가 그렇지 않는 가는 중요하지 않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건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 로버트 패틴슨의 출연 사실만 알았던 터라, 한 명 한 명 등장하는 배우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더군요. 줄리엣 비노쉬, 사만다 모튼, 폴 지아마티, 마티유 아말릭까지.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 짧게 짧게 등장하는 터라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작은 하나의 에피소드들처럼 더 느껴졌던 것 같네요.


2. 로버트 패틴슨은 차기작도 크로넨 버그의 영화에 출연이 확정되었다던데, 비고 모르텐슨 이후 크로넨버그의 페르소나로서 얼마나 성장할지도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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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2008)
외로운, 위로의 일기


내 인생의 영화인 <이터널 선샤인>은 감독을 맡은 미셸 공드리만의 것이라보긴 어려운 작품이었다. 사실 찰리 카우프만은 <이터널 선샤인> 개봉 당시에도 워낙에 유명한 각본가였기 때문에 미셸 공드리의 작품이라는 것 외에 그가 각본을 썼다는 이유만으로도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었는데(이렇게만 써놓으면 은근히 공드리를 무시하는 듯도 하지만, 나는 공드리를 카우 프만 보다 더 좋아하면 좋아했지....), 카우프만의 각본과 공드리의 마술이 더해진 <이터널 선샤인>은 정말 수많은 시네필들을 감동에 빠지게 한 걸작이었다. 찰리 카우프만의 각본은 항상 독특했다. <존 말코비치 되기>를 본 사람들은 '이 영화가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했었지?' 라는 것은 기억하지 못할 지언정 그 기이한 세계관과 .5층의 이미지는 잊지 못한다. <휴먼 네이처 (Human Nature, 2001)>와 <어댑테이션 (Adaptation, 2002)>을 기억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찰리 카우프만은 '천재 각본가'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창의적이고 놀라운 이야기를 매번 들려주었지만, 그의 연출 데뷔작은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의 작품보다 어쩌면 더 걱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기대와 걱정이 공존했던 찰리 카우프만이 첫 번째 연출작은, 참으로 복잡하고 많은 분석할 거리가 있고 무엇보다 너무 나를 들켜버린 것만 같은 깊디깊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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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출자 케이든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항상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불안한 듯 했지만 겉으 로는 표현하지 않으려고 했던 그의 삶은, 어느 날 화가인 아내 아델(캐서린 키너)이 어린 딸을 데리고 떠나버리면서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내가 떠난 뒤 그 동안 자신을 사모해 오던 극장 매표원 헤이즐(사만다 모튼)과 관계를 이어가려고 하는 한편, 거금의 기금을 받게 되면서 평생 꿈꿔오던 연극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된다.

<시네도키, 뉴욕>은 카우프만의 야심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공드리와 함께 했던 작품의 분위기를 풍긴다. 이야기보다는 소품같은 단편적 이미지들을 여기저기 배치하는 한 편, Jon Brion의 음악과 함께 몽상적이고 회화적인 이미지를 뮤직비디오처럼 펼쳐놓는다. 이 단편적인 몇 가지 것들은 얼핏 보아서는, 아니 집중해서 보아도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쉽게 유추하기 어렵다. 계속 노인이 주인공의 뒤를 따라오는 것 (혹은 귀신처럼 장면 장면에 등장하는 것)을 어렵게 발견했지만 이것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감을 잡기 어렵고, 변의 색깔을 두고 벌어지는 대화들이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단번에 분석이 되기 보단 무언가 소스를 늘어놓는 듯한 느낌이 강한 서두다.

연극 연출가인 주인공 케이든을 통해 새로운 작품에 대한 창작의 고통 (<8과 1/2>과 같은)을 이야기하려는 것인가, 혹은 개인적인 고뇌를 좀 더 확장시키려는 것인가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러닝타임이 지속될 수록 찰리 카우프만의 이 거대한 야심에 조금은 두려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카우프만은 지금까지 전작들에서 항상 개인의 심리상태를 기본으로한 다양한 이야기를 해왔었지만, 어쨋든 소박한 그릇에 담겨 펼쳐진 경우가 많았었는데, 이번 작품은 본인이 연출을 맡은 첫 작품이라는 것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두려움 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아마도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거대한 담론을(하지만 결국은 개인의 심리묘사인 이야기를) 주저하지 않고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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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든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제유법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펼치고 있는 카우프만의 이 놀라운 이야기는, 그 세계를 다층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을 반복했다가 다시 모든 거풀을 벗어내고 처음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케이든은 맥아더 제단으로부터 기금을 지원 받아 연극을 제작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간단하게 시작했던 이야기가 점점 확장되고 진실된 것을 투영하려는 의지가 뒷받침되며 본격적으로 자신 본연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그대로 올리게 된다. 이 자체가 제유법이라 할 수 있지만 카우프만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나타난 남자는 케이든을 쭈욱 지켜보았고 자신이 케이든보다도 케이든을 더욱 잘 이해하고 있다며 그의 역할을 하기를 자청한다(이 남자는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기 이전부터 영화 시작부터 계속 화면 어딘가에 등장했었다). 이 남자 새미 (톰 누난)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제유법의 세계로 깊게 빠져든다.


새미는 단순히 연극에서 케이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케이든 보다도 더 케이든 임을 믿고 있는(이건 분명 믿음이다) 존재라 가끔씩 케이든과 부딪히기도 한다. 케이든은 극중 자신을 연기하는 새미가 무대라는 공간을 넘어 현실에서 자신의 행세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크게 제지하지도 않는다. 새미 말고도 케이든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연극 속에서 다른 인물들을 통해 복층 구조로 등장한다. 나중에는 케이든과 연극 속에서 케이든을 연기하는 새미, 그리고 극 속에서 연출을 하는 케이든까지.. 한 명의 캐릭터를 여러 개의 모습으로(신체로) 쪼개어 놓는다. 이런 카우프만의 세계는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의 기본 이론이 되었던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을 연상케 한다. 점점 제유법의 세계가 깊어지면서 이 극을 연출하고 있는 케이든도 그 속에서 케이든을 연기하는 새미도, 그리고 그 캐릭터의 본 주인들과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정체성과 그 세계의 공간적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된다. 관객 역시 어디까지가 연극의 범주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의 범주인지 쉽게 구별되지 않아 혼란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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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복잡한 방법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제유법이라는 것이 부분으로 전체를 전체로 부분을 이야기하는 표현법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카우프만의 이야기는 항상 부분 그러니까 케이든의 심리상태를 통해 인간 본연의 대한 깊은 심연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카우프만의 이야기를 항상 귀담아 듣게 되는 것은 사실 영상 예술의 화려함과 독특함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위로 때문이었다. 사실 영화가 초반에 이르러 중반으로 진행될 때 까지만 해도, 점점 거대해 지는 세계관을 보며 첫 단독 연출작이라서 그런지 너무 욕심'만'을 내는 것이 아닌가 부담스럽기도 했었는데, 나중에 가서는 다시 본연의 이야기로 돌아올 때 눈가가 저절로 뜨거워져 버리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카우프만이 케이든을 풀어내는 방식에는 앞서 말했던 것 처럼 위로가 기본이 된다. 복잡한 제유법이니, 공드리 같은 마술같은 기법이니, 분석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다양한 장치들이니 해도, 이것들은 모두 위로와 자기반영이라는 메시지를 꾸며주는 기법들일 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카우프만은 본인 첫 번째 연출작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이 작품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영화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린 측면도 있다. <시네도키, 뉴욕>에서 제유법을 다루는 방식은 확실히 영화적인 요소에 도움이 된다. 물론 이 복잡한 구성 때문에 본질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생긴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든 카우프만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었다. 아마 본인도 작품을 완성하고나서 굉장히 뿌듯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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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위로의 메시지로 돌아와서. <시네도키, 뉴욕>이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를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곤 그 이유가 상당히 개인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번 영화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라고 얘기하는 나이지만, 이번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였던 것 같다. 개인적인 것이기에 영화는 더 많은 공감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예술이기도 한데, 이 작품은 공감대를 얻으려는 노력 측면에 있어서 확실히 다른 작품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중반까지는 카우프만이 만든 이 세계에서 몹시도 혼란스러웠었다. 그런데 오히려 인물의 세분화되고 그 세분화된 인물들이 서로의 자리를 찾아가면서 (진심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공감대는 한 순간에 폭발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라고들 이야기한다. 곁에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가 있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인간은 늘 내면의 나와 싸운다. 아니 누군가가 나를 내가 아는 것처럼 이해해주길 몹시도 바란다. 극중 케이든이 겪는 고뇌는 창작의 고통이라기 보다는 위로와 이해에 가깝다. 그래서 그는 여러 인물들에게 기대어도 보고,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극으로 만들어 보기도 하는 것이다.

말미에 케이든에게 또 다른 케이든인 새미가 진심으로 그를 이해하고 안쓰러워하며 메시지를 전할 때, 정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 순간은 분명 이 영화에 클라이맥스였다. 내가 남들에게서 듣고 싶은 말을 나의 분신(결국 나)에게서 듣게 되는 이 순간, 즉 누군가가 (하지만 타인이라고 보긴 어려운 존재에게) 나를 100% 이해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을 때의 찰나는 어떤 기분일지 잘 상상이 되질 않았었는데, 비록 영화 속 새미는 타인이라기보단 내 마음 속 외침에 더 가까운 존재였고, 영화 속에서 벌어진 간접 경험이긴 했지만 매우 소중한, 그리고 감격적인 찰나였다. 찰리 카우프만과 나는 한 번 만난적도 없을 뿐더러 내가 그를 아는 것은 그가 쓴 몇 편의 작품일 뿐인데,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뼈속까지 공감하게 만들었다니, 슬픔과 위로가 동시에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누구에게나,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아무리 가까운 이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한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결핍일 수도 있고, 부끄러움일 수도 있으며 사랑일 수도 있다. 이런 말 못할 이야기를 위로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영화에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그래서 찰리 카우프만의 <시네도키, 뉴욕>은 적어도 나에게는 <이터널 선샤인>과 더불어 가장 소중한 작품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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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너무 만족스러웠습니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아델 역할을 맡은 캐서린 키너도 그 이미지가 참 좋았으며, 새미 역을 맡은 톰 누난과 여전히 빛나는 미셸 윌리엄스 등 너무 많은 좋은 배우들이 나와 그들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흐뭇했던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에밀리 왓슨이나 제니퍼 제이슨 리, 다이안 위스트 등은 출연사실 조차 몰랐기 때문에 더욱 반가웠구요.

2.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배우를 꼽으라면 헤이즐 역할을 맡은 사만다 모튼이었어요. 사실 <마이너리티 리포트> 당시만 해도 이 배우가 이렇게 연기로서 성장할 줄은 몰랐었죠. <컨트롤>을 통해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더욱 노련한 연기의 그녀를 만나볼 수 있어요.

3. Jon Brion의 음악은 확실히 좋습니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그의 음악 때문에 공드리의 작품 냄새가 좀 더 짙어진다는 것 정도일 것 같네요. 국내에도 OST가 발매될 수 있을까요.

4. 본래는 각본만 카우프만이 쓰고 연출은 스파이크 존즈가 하려했던 작품이었는데, 그의 버전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카우프만의 연출작에 100% 만족하게 되었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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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 (Control, 2007)
흔들리는 청춘. 그리고 이언 커티스.

안톤 코르빈의 첫 장편 데뷔작인 <컨트롤>은 밴드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보컬로, 23세에 짧은 인생을 살다간
이언 커티스(Ian Curtis)에 관한 영화입니다. 롤링 스톤스, U2, 메탈리카 등 밴드들의 사진과 뮤직비디오를 연출해 오던
안톤 코르빈은, 자신의 첫 번째 장편 영화 데뷔작으로 자신이 실제로 뮤직비디오를 찍기도 했던('Atmosphere')
조이 디비전의 이야기를 선택하였습니다. 아니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이언 커티스'에 이야기를 선택한 것이라
해야겠군요. 사실 뮤직비디오 연출을 주로 해오던 감독의 데뷔작을 소개하면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감성적인 영상이
돋보인다'식의 표현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따져보면 단순히 그것 이상의 것은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을
감안했을 때, 같은 경력을 같고 있는 안톤 코르빈의 <컨트롤>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으로서의 장점은 장점대로
다 보여주면서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깊은 울림과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연출함에 있어서도
리듬을 놓치지 않는 훌륭한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밴드 '조이 디비전'이 아니라, 청년 '이언 커티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는
밴드의 결성과 공연, 음반 계약과 갈등 등 록 밴드를 다루는 영화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구성을 보여주는 듯도 하지만,
이는 이야기 진행을 위한 도구 그 이상으로는 보여지지 않습니다. 조이 디비전의 음악은 시종일관 흐르지만
'밴드' 조이 디비전에 대한 구체적인 시선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언 커티스를 제외한 다른 밴드 멤버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나 그들의 이야기도 들려주고 있지 않습니다. 밴드 조이 디비전에 관한 영화가 이미 존재하기도 했고(같은 해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조이 디비전>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답게 실제 공연 영상과 인터뷰 영상들이 수록된 작품이며,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24hour Party People'은 <컨트롤>에도 등장하는 팩토리 레이블과 토니 윌슨을 중심으로
당시의 클럽 풍경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밴드의 흥망성쇠를 주요 뼈대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들이
이미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개인적으로도 '조이 디비전'보다 '이언 커티스'에 초점을 맞춘 연출은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하긴 이언 커티스라는 인물이 워낙에 짧은 생을 살다가 불꽃처럼 산화해버린 뮤지션이기도
하지만, 밴드가 아닌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 단순히 음악 영화로 그려지기 보다는 더 포괄적인
드라마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짐 모리슨처럼 시를 쓰기를 좋아하고(영화 장면에도 나오지만 실제 이언 커티스는 짐 모리슨과 데이빗 보위를
동경했었죠), 무대 위에서는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이언 커티스이지만, 영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과연 그가
음악만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뮤지션인가 하는 궁금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컨트롤>에 등장하는 이언 커티스의
모습에서는 흔히 이런 류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순간만이 나를 살게 한다'식의 느낌은
받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뭐랄까요. 아직 어린 그의 나이처럼, 아직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낮에는 직업 상담소에서 일을 하고, 열아홉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딸을 갖고, 새로운 여성을 만나
사랑하게 되는 등, 그저 혼란스럽고 컨트롤되지 않는 청춘이 엿보일 뿐이죠.




그런 면에 있어서 <컨트롤>의 흑백 화면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사실 몇몇 흑백영화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보고
알게 된 것이지만, 흑백 영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일반적인 컬러 영화들 보다도 오히려 더 조명에 신경을
써야하는 영화라 할 수 있는데, <컨트롤>의 흑백영상은 방황하는 이언 커티스의 삶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영화적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인 안톤 코르빈은 이를 굉장히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여러 장면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7,80년대 당시 맨체스터의 거리를 재현한 장면은 흑백이어서 더욱 돋보이는 장면이었고,
공연 장면은 마치 실제 조이 디비전의 라이브를 보는 듯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근데 재밌는건
실제 조이 디비전의 라이브를 본 건 컬러 버전이었다는 점이죠;).

개인적으로 <컨트롤>은 보면서 속으로 '와!'하고 탄성을 질렀던 장면이 여럿 있었는데, 그것은 감독인 안톤 코르빈이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던 감독이어서 라기 보다는, 사진작가로서의 그의 재능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생각은 영화의 스틸 컷들이나 정지된 장면들을 보면 더 크게 느끼게 됩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작품 사진을
찍기 위해 기획된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정도로, 흑백의 질감이나 조명의 세팅이 놀랍도록 아름답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물론(물론!) 음악도 아주 좋았지만, 흑백의 영상도 음악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영화가 바로 <컨트롤>
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컨트롤>은 이언 커티스가 쓴 곡들의 가사들처럼 약간은 일반적이지 않은 건조한 방식으로 전개가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반적인 기승전결의 구성이 아님에도 영화의 마지막 이언 커티스가 결국 자살을 결심하는 장면이
등장했을 때에 달해서는 완전히 그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갑작스러울 수 있었던 그의 죽음이었지만,
그가 자살을 결심하는 순간 '그래, 더 이상 어떻게 해야하는거야'하는 답답함과 함께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혼란과
제어(Control)되지 않은 그의 청춘이 고스란히 공감이 되더라구요.
개인적으로 또 하나 이상했던 것은, 요절한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들 가운데 이언 커티스의 경우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이유만으로 보자면)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공감을 얻을 만한 부분이 극히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과 삶에 대해
더 큰 연민이 느껴지더군요. 영화 <컨트롤>은 실제 이언 커티스의 삶이 어땠느냐를 재쳐두고 보더라도, 전혀 그의 삶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고 조용하게 조명하고 있을 뿐이죠.
극적인 감정 묘사보다는 조이 디비전의 음악과 그가 쓴 가사들로 이를 대체하고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그를 이해하는데
더 큰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화법이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관객과의 괴리감을 가져올지 모른다해도,
<컨트롤>과 이를 감상하는 관객들 사이에는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고 있다고 해야겠네요.




이언 커티스 역할을 맡은 샘 라일리의 연기는 발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레이>에서 레이 찰스를 완벽하게 연기한
제이미 폭스와는 또 다르게, 이언 커티스를 연기한 샘 라일리는 얼핏 보면 단순히 이언 커티스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가 조이 디비전의 보컬인 이언 커티스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기에, 
오히려 그의 연기력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고 여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영화를 보고 나서 실제 조이 디비전의
라이브 클립을 다시 보아도, <컨트롤>에서 샘 라일리가 보여준 이언 커티스는 실제와는 또 다른 이언 커티스였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영화 팜플렛에 그의 필모그라피를 보니 앞서 언급했던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24hour party people'에 출연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하루 속히 이 작품을 눈으로 확인해봐야 겠군요).
샘 라일리의 저 고독한 표정이 짙게 드리워진 <컨트롤>의 포스터는 한 동안 제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자리잡을 것 같네요.

사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바로 데보라 커티스 역할을 맡은 사만다 모튼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를 처음 보게 된 것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예지자로 출연하였을 때였고, <코드 46>을 보기도 했었지만 전작의
이미지가 워낙에 강했었는데 <컨트롤>에서 그녀의 모습은 과연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그때와는 다르게 많이 몸무게가 늘은 모습도 모습이었지만, 마치 <브로크백 마운틴>의 미셸 윌리엄스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캐릭터와 연기는, 앞으로 적어도 제 기억속에서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그녀가 아닌 <컨트롤>의 그녀로
기억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컨트롤>은 샘 라일리라는 배우의 발견이 있었다면(사실 이런 전기 영화의 경우
워낙에 강한 캐릭터 때문에 배우 자체를 논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샘 라일리는 다른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나봐야 할 것
같아요), 사만다 모튼의 재발견 또한 더 큰 즐거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대사가 그리
많지 않기도 하고 워낙에 캐릭터가 독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억양을 잘 눈치챌 수 없었는데, 영국 출신인
그녀의 독특한 영어 억양도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이 밖에 더 기억나는 배우를 꼽으라면 '아닉 오노레'역할을 맡은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도 꼽을 수 있겠지만,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통해 만났었던 조 앤더슨을 더 꼽을 수 있겠네요.




확실히 데이빗 보위, 벨벳 언더그라운드, 이기 팝, 록시 뮤직 등 이런 류의 음악들을 배경으로 당시를 그린 영화들은
대부분 만족할만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시대가 한편으론 암울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얼마나 황금기였는지를 확인시켜주는 것 같기도 하구요.

처음 <컨트롤>이라는 영화를 보러 갈 때는, 물론 큰 기대가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율마저 느낄 수 있었던 인상적인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 첨언하자면, 극중 이언 커티스처럼 불안한 심리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영화를 보면서 이언 커티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던 것처럼, 힘들게 지속해온 오랜 싸움을 그만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거든요.



1. 이 영화는 이언 커티스의 아내인 데보라 커티스가 지은 그의 전기 'Touching from a Distance'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Touching from a Distance'

2. 극중 아닉이 이언에게 무슨 색을 좋아하냐고 묻는데, 그가 '맨시티 블루'라고 하죠. 
   영화에서 가끔 접하는 것이지만 확실히 맨체스터 내에서는 맨체스터 시티의 골수팬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해요.

3. 영화에 삽입된 대부분이 곡을 배우들이 직접 노래하고 연주했더군요. 여기에는 조이 디비전의 전 멤버였던
   뉴 오더(New Order)멤버들의 조언과 도움이 컸다고 하구요.

4. <맘마미아!> 사운드트랙도 어찌어찌 참았었는데, <컨트롤> 사운드트랙은 도저히 참지 못할 것 같습니다.
    데이빗 보위를 비롯해 이런 음악을 워낙해 좋아해서 말이죠.

5. 영화 속에서 조이 디비전의 공연 전에 밥 딜런을 닮은 한 사람이 나와서 랩에 가까운 이상한 시를 읊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는 John Cooper Clarke라는 펑크시인이더군요. 이 분은 실제로 맨체스터 지방에서 당시부터 유명한
   펑크시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조이 디비전 공연에 서포팅 공연을 하기도 했더군요. 영화에 등장하는 이는
   배우가 아니라 실제 John Cooper Clarke 본인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John Cooper Clarke

6. 실제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이언 커티스의 보컬도 인상적이지만, 피터 후크의 베이스 라인이 상당히
인상적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 요새 한동안 이 두 곡만 듣고 있습니다.
 

transmission & she's lost control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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