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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世界から猫が消えたなら, 2016)

지금껏 나를 구성해 온 것들에 대해


죽음을 다룬 영화는 많다. 그 가운데서도 죽음의 시점에 대해 미리 알게 되는 시한부 삶에 관한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하나의 꼭짓점을 통해 그 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구성으로, 주로 회환의 정서를 담아낸다.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 이상일의 '분노',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 등을 제작했던 프로듀서 가와무라 겐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世界から猫が消えたなら, 2016)' 역시 시한부 죽음과 회환의 정서가 담긴 작품이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세상에서 한 가지가 사라질 때마다 하루를 더 살 수 있다는 일종의 판타지적 설정이다. 그렇게 영화는 주인공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하루에 한 가지씩 사라지게 만든다. 전화를, 영화를, 시계를 그리고 고양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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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복잡한 플롯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새로운 이야기도 아닌 이 영화가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이유는 영화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과의 직간접적 연관성 때문이다.


만약 세상에서 영화가 사라진다면.


영화 속 주인공은 영화가 사라짐으로 인해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사라지는 것으로 연결되지만, 세상에서 영화가 사라진다는 설정은 내게 그 이상의 고민거리로 다가왔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에 대해 쓰기를 좋아하고 또 부업으로도 삼고 있지만, 없으면 죽는 것도 아닌 이 영화라는 것에 대해 가끔 생각해 볼 때가 있었다. 이 영화처럼 만약 영화가 사라진다면 하고 말이다. 영화가 사라진다면 아마도 꿈꾸는 것을 그만두는 것과 같은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꿈의 결과물을 보고 느끼는 것은 또 다른 꿈을 꾸게 만드는 것으로 그렇게 연결되는데, 내게 영화란 바로 그런 꿈의 연결 고리라 할 수 있기에 영화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꿈꾸는 것 자체가 턱 하고 먹먹하게 막혀버리는 듯한 심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영화, 극장, 비디오 가게 등과 관련된 즉, 영화와 관련된 삶의 모든 추억들이 사라진다고 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많은 부분 영화가 내 삶을 구성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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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이 영화를 보기로 처음 마음먹었던 건 역시 제목의 '고양이' 때문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인 미야자키 아오이가 출연한다는 사실 보다도 먼저 알게 된 이유였다. 수년 전에 옥탑방에 살면서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웠었고, 이후 녀석을 입양 보내고 몇 년 뒤부터 지금까지 유기묘였던 한 녀석과 당시 여자 친구가 키우던 또 한 녀석과 함께 하고 있는 집사 인터라, 만약 고양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이라는 궁금증은 결코 영화 속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이미 이별을 경험했거나 혹은 언제가 이별의 순간이 닥친다는 걸 천천히 준비하려 할 것이다. 흔히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정확히 말해서 가족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존재다. 뭐랄까, 고양이와 나, 나와 고양이가 서로가 서로에게 100% 의지하는 관계랄까. 나는 고양이들을 끝까지 지키고 돌봐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순간,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녀석들에게 많은 의지와 위로를 받고 있다. 이건 아마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순간인데, 문득 집에 있다가 녀석들을 보며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또 평화롭다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다. 


그런 고양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설정은 어쩔 수 없이 스크린 밖 현실의 공포로 다가올 수 밖에는 없었다. 언젠가는 닥치게 될 그 이별의 순간을 상상하게 되어 견디기 힘들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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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는 죽음이라는 존재를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되는 삶을 구성해 온 소중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 인연, 친구, 추억, 고양이 그리고 가족. 앞서 집사의 한 사람으로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하는 영화 속 가정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가족의 이야기 역시 얼마 전 한 아이의 아빠가 되는 경험을 한 나로서는 더 인상 깊게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다. 만약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이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세상에 어떤 존재일까 라는 질문과 연결이 되는데, 다시 말해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였나, 나는 내 친구들에게 어떤 친구였나, 나는 내 가족에게 어떤 아들, 아빠, 남편이었나를 떠올려 보게 했다. 


그리고 참 새삼스럽고 낯간지럽지만, 지금이라도 후회스러운 일들을 더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살아가야겠다, 살아남아야겠다 라는 다짐을 하게 했다. '살아야겠다'라는 말은 한 편으론 참 거창하고 또 허세가 느껴지기도 하는 간지러운 표현인데, 이 영화가 담아낸 이 메시지는 그럼에도 영화가 끝나면 '살아야겠다'는 맘을 먹게 하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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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좋아하는 배우들과 제목의 고양이가 있었음에도 영화를 보기 전 예상했던 건, 일본 영화 특유의 알맹이 없는 그럴듯한 분위기의 감성적인 영화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왜,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는 잘 알겠는데, 영화 스스로가 너무 앞서가고 있어서 나쁘지는 않아도 공감은 덜한 그런 영화. 


누군가에겐 이 영화 역시 그저 그런 비슷한 일본 영화 한 편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영화 속 죽음이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직접적인 내 삶과 지금껏 나를 구성해 온 것들에 대해 설령 잠시였다 하더라도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든 소중한 영화였다. 

역시 미야자키 아오이는 언제나 옳다.


1. 우리가 왜 헤어졌었지?라는 대사는 참 현실적이어서 와 닿더라는. 실제로도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때 왜 그랬었지?' 싶은 일들이 많더라는.

2. 영화 속 배경이 되는 홋카이도는 나중에라도 꼭 한 번 가봐야겠다.

3. 영화 속 미야자키 아오이의 얼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팬이라면 이 영화는 놓치면 안 되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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