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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 (Sully, 2016)

모두가 살아남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 (Sully, 2016)'는 잘 알려졌다시피 2009년 허드슨 강에서 일어났던 항공기가 추락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얼마 되지 않은 이야기라 당시 뉴스를 통해 접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데 이 사건이 놀라웠던 건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항공기 추락 사고였음에도 승무원과 탑승객을 포함한 155명 전원이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점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인 '설리'는 당시 항공기의 기장이었던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고독한 영웅의 서사를 꾸준히 그려온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목한 건 항공기의 추락이라는 재난 영화적 성격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설렌버거라는 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설리'는 일단 일반적인 재난 영화들과 방향성을 달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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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시점은 사고 이후에 있다. 사고 이후 설렌버거 기장 (톰 행크스)과 부기장 제프 스카일스 (아론 에크하트)는 조사위원회에게 조사를 받으며 압박을 받게 되는데, 주된 요인은 허드슨강에 착륙해야만 했는가 즉, 이륙한 공항을 비롯해 주변의 다른 가까운 공항으로 착륙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나 라는 의문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서 영화는 상당히 건조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취한다. 기적을 이뤄낸 영웅이라는 미디어의 찬사를 건조하게 늘어놓는 동시에 과한 관심과 집중을 불편해하는 설렌버거와 가족들의 모습을 겹쳐 놓고, 또한 조사를 받는 가운데 혹시 자신이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고민하는 설렌버거의 모습과 더불어 이를 추궁하는 조사위원회 인물들을 그릴 때도 쉽게 나쁜 의도를 가진 악한 자로 단순화시키지 않는다. 이렇게 객관적이고 건조한 시선을 보여주게 되면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이 추락사고라는 직접적인 사건에서 멀어져 설렌버거라는 한 사람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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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감독의 의도가 어떠하였든 간에 결국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관객 각각이 어떤 경험들을 했는 가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 역시 감독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의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최근의 기억, 아니 트라우마를 떠올릴 수 밖에는 없었다. 바로 세월호 참사다.


'설리'는 여러 면에서 세월호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허드슨 강에서 벌어진 항공시 추락사고와 세월호 참사는 정반대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장 대표적이 지점은 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관제소는 데이터에 따라 다른 공항들로 회황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기장은 직관적으로 이를 거부하고 허드슨 강에 착륙하는 모험을 택했고 결론은 전원 구조였다. 즉,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부분이라면 특히 더 시스템의 선택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담겨 있지만, 세월호 사건은 이와는 전혀 다르게 시스템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정상적인 시스템을 인간들이 스스로 무시하고 은폐하는 과정 속에서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던 생명들을 앗아간 경우였다 (혹여 이것을 똑같이 시스템을 무시하고 인간의 직관대로 행동했지만 결과가 다른 경우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더 이상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리고 9.11을 겪은 뉴욕의 재난, 구조 시스템은 셀렌버거의 선택과 더불어 완벽하게 기능하여 20여분 만에 전원을 구조해 낸 반면, 세월호의 경우 인명의 구조에 앞서 다른 사사로운 것들을 눈치 보고 챙기느라 오히려 시스템 밖에서 도움을 주고자 한 이들의 손길마저 차단하며 믿기지 않게도 전 국민이 그저 지켜볼 수 밖에는 없었던, 사실상 그들은 아무도 구조하지 않은 끔찍한 참사였다. (그럴 린 없지만) 마치 한국 관객 보라는 듯이 빨리 몸을 피하라는 승무원에 말에도 끝까지 남은 탑승객은 없나 위험을 무릅쓰고 확인한 뒤 맨 마지막으로 항공기에서 탈출하는 셀렌버거의 모습에서, 떠올리려고 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제일 먼저 탈출했던 세월호 선장의 모습이 기분 나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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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는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미국이라는 국가가 재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이스트우드는 이 기적 같은 사건과 셀렌버거라는 인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는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였을 텐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점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처럼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는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


155명 전원을 구조했다는 대사가 나올 때. 승무원들이 구조 과정 속에서 침착하게 자기 역할을 해내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안전하게 승객들을 피신시킬 때. 추락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구조 관련 인력들이 재빠르게 현장에 도착해 추락한 항공기를 둘러싼 장면을 보았을 때. 그 외에 많은 장면들을 보면서 왜 세월호 때는 그러지 못했나. 작은 한 두 가지만 정상적으로 작동했더라도 수많은 생명들이 그 바다에서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계속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오늘은 아무도 죽지 않아요'라는 말. 그리고 '모두가 살아남았다'라는 헤드라인들.

세월호도 그래야 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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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나라 (Cruel State, 2015)

미약한 촛불이 불꽃으로 타오르길



여기 나쁜 나라가 있다. 극장에서 흔히 보게 되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모 기업의 자랑스러운 나라. 생명이라는 존재 앞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먼저 계산하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나라가 있다. 기업의 광고처럼 차라리 그 자랑스러움을 잊고 있었던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리고 냉정하게도 그 나라는 바로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을 갔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같은 배를 타고 있던 일반인들까지, 수 많은 생명들을 깊은 바닷 속에 묻어야 했던 세월호 사건은 지금까지 내가 현실에서 겪었던 어떠한 사건들 보다도 충격적이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아팠던 참사였다. 그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지 이제 2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 관련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쁜 나라 (Cruel State, 2015)'를 만나게 되었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가 제작한 '나쁜 나라'는 세월호 참사 이후 소중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어떤 현실과 싸워야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다시 생각해도 기가 차지만, 자식 잃은 부모가 거리로 내몰려 단식하고 더위와 추위와 싸우며 목이 터져라 울부짖고, 삭발하고, 무릎 꿇어야 했던 슬프지만 현실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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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두 번의 대통령을 겪게 되면서 이 말은 결코 통용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모르는 것은 죄고, 알고자 하지 않은 것 역시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일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모기업의 비리나 일부 선원들의 잘못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만약 거기서 끝났더라면 어쩔 수 없었던 참사로 기억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참사가 벌어진 그 순간부터 국가가 국민들을, 그것도 생명을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대했는가에 대한 것 때문에 세월호 참사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잊어서도 안 될 더 참혹한 참사가 되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배우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알 수 있는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의견이 다를 수는 있어도 틀린 것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정치라는 것이 서로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싸우는 과정이라 할 지라도, 인간의 생명이나 죽음 앞에 섰을 때는 그 어떠한 정쟁도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는 것. 더군다나 그 모든 과정의 기회를 이미 스스로 놓쳐버린 세월호 참사의 경우라면 모두가 한 마음으로 유가족들,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사고의 정상적인 수습에 만전을 기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나쁜 인간이라도 인간이라면 응당 그래야 할 행동이라는 것은 솔직히 양심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될 만큼 아주 기본적인 상식 중의 상식, 국가가 국민에게 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 나쁜 나라의 정부에겐 정말 최소한의 무엇. 양심이라고까지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아주 기본적인 것을 하지 않고 슬픔에 아파하는 이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상처를 짓누르는 더 큰 고통마저 주었다. 오죽하면 가만히 있으라 라는 말이 나왔을까. 국가가 나서서 바닷 속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구해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죽하면 부모들이 내가 직접 바닷 속으로 뛰어드는 걸 막지만 말아달라고 했을까. 잘못돼도 너무 잘못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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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것은 죄다. 모든 눈과 귀가 막혀버린 현실에 진실을 알고자하는 길을 더 번거로워졌지만, 번거롭다는 사사로운 이유로 외면하기엔 이건 너무 명핵히 우리, 아니 나에 관한 이야기다. 아직도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건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 광화문에 수십만명이 모여도 그건 맨날 데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건 그냥 그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건 그냥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또 그냥 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과연 이들의 이야기가 그들 만의 이야기일까.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은 다 운동권이고 (요새 운동권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본래 사회 불만 세력이고, 정부나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사람들이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그랬던 시절도 있었을지 모른다. 국가의 횡포가 일부에 한했을 때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일로 인해 거리의 투사가 되는 현실. 나는 이 같은 점이 가장 슬프다. 그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시위라는 것 근처에도 가본 적도 없는 것은 물론, 시위로 인해 불편을 겪게 되는 것이 오히려 불만이면 불만이었던 사람들. 뉴스에 시위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건 남의 얘기라고만 생각했던 사람들. 그저 수학여행 간다는 아이한테 용돈 더 못 챙겨줘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한 사람의 엄마가 어쩌다가 짧은 머리로 수십만명이 모인 광장에서 그 어떤 투사보다 강하고 큰 목소리로 투쟁을 외치게 되었을까. 내가 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이런 과정의 일들을 모르는 것은 죄다. 내가 이렇게 되고 나서는 이미 늦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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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나라'는 그런 의미에서 꼭 알아야 할 진실이다. 기록이다. 사람들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실제로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보낸 500일 넘는 시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가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유가족이 아닌 이들이 보낸 500일이라는 시간과 그들이 겪어야 했던 시간의 깊이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 한 줄 기사로만 보았던 일들의 이면에는 얼마나 깊은 고통과 인내의 쓰디쓴 시간이 있었는 지를 이 영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 


예전 광우병 문제로 광화문 과장에서 작은 촛불을 들고 행진에 시민들과 함께 가담했었을 때의 일이다. 그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경찰이 시민들을 향해 무참히 발포한 물대포 때문도 아니었고, 곧 죽일 듯이 달려드는 전경 들의 모습도 아니었다. 광화문에서 시청 앞으로, 시청에서 다시 명동으로 행진했을 때 명동에서 만난 현실 때문이었다. 광화문과 시청에서 촛불을 들고 모인 이들의 분위기와는 달리, 명동의 밤거리는 쇼핑을 하고 저녁 시간을 즐기러 온 또 다른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시선은 '그저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 때의 명동은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바로 옆에선 모두가 촛불을 들고 있었던 것에 반해 이 곳은 너무 평화롭고 들떠있고 즐거워 보였다. 관심 없는 이들에 대해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언가 몹시 서러웠던 기억이 난다. 난 그저 나중에 내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몇 번 촛불을 들었을 뿐이었는데도 이 날의 다른 공기는 몹시 서럽게 느껴졌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요 근래에도 느낀다.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면 지겹다고,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피로감에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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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세월호 참사에 대해 그만하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유가족과 실종자가족들 뿐일 것이다. 그들이 그만하기 전에 그만하라고 말하는 것보다 폭력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 '나쁜 나라'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세월호 참사 500일이 더 지난 지금에도 이 나쁜 나라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쁜 나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그 시간 동안 미약하나마 생겨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과 함께 슬퍼하고 내 일처럼 나서서 돕고자 하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서명 운동에 참여하고, 잊혀지지 않기 위해 기억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말하고자 한다. 만약 이 영화가 단순히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분노나 비판으로 가득 찬 작품이었다면 그 이상의 희망은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은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더 많은 국민들이 잊지 말고 함께 해줄 것을 죄송하게도 조심스레 묻는다. 그래서 미약한 촛불이 언젠가 꼭 불꽃으로 타오르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각자가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 부터 시작하면 언젠간 불꽃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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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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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2014)

영화, 그리고 영화 밖 이야기


'최종병기 활'을 연출했던 김한민 감독의 신작 '명량'을 지난 주말 보았다. 이미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명량해전을 영화 화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부터 이 영화엔 기대되는 바가 있었다. 더불어 흥행 관련해서도 어지간해서는 흥행 실패하기 힘든 소재라는 생각도 당연히 들었다. 여기에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작용해서 마치 '레 미제라블'이 그랬던 것처럼 '명량'은 최단 기간 천만 관객 영화가 되었고 (여기서 굳이 독과점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어쩌면 최대 관객 기록을 세울지도 모를 기세로 달려가고 있다. 흥행과 관련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일단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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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에 대한 중론을 모아보자면 초반 부는 지루하고,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내용 자체보다도 관객들이 더 많은 감동을 얻게 된 다는 점일 텐데, 후자는 확실히 그런 편이다. 이순신이라는 우리 역사상 가장 영웅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 만으로도, 그리고 이 이순신을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연기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없을 수가 없다. 즉 충무공 이순신은 어떻게 그려도 역사적 인물 자체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호기심과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이 있고, 최민식이라는 배우 역시 이를 오버하지 않고 최대한 내면의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 것이 더 큰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던 것 같다. 물론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표현해 내기에 '명량'이라는 작품의 틀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것 같다. 이건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순신 외에 다른 캐릭터들은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하다. 특히 일본 장수 캐릭터들을 비롯해 이순신이 휘하 장수들은 각자의 이름 소개 외에는 별다른 임팩트를 만들지 못할 정도로,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기 보다는 그저 소품으로 존재하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이 영화엔 이미 출연한다고 널리 알려진 배우들 외에도 까메오나 조연 형식으로 상당한 수의 이름 있는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활용에는 고개를 갸우뚱 하게 했다. 특히 진구가 연기한 임준영 캐릭터와 그의 아내를 연기한 이정현이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는 여러 가지로 이상했다. 한국 영화가 자주 범하는 실수인데, 관객에게 '이 장면은 감동적인 장면이야, 감동을 받아야 돼'라고 강요하는 경향이 강해 오히려 이질감이 드는 장면이 많았다 ('명량'이 갖고 있는 정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이런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다수의 관객에게 실제로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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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이야기를 한 김에 조금 더 해보자면, 이 영화는 각각 부분 부분은 그리 나쁘지 않은데 작품 전체로 놓고 보면 여러 가지로 어색하고 맞지 않은 구성이었다. 많은 이들이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한 초반 부도 개인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다지 큰 기대가 없어서였는지 몰라도 왜군의 규모나 분위기를 보여주는 초반 장면들은 음악의 힘에 기대고 있는 부분이 크긴 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내용과는 별개로 한국 배우들이 왜군과 그 장수들을 연기하는 상황과 제법 괜찮은 이미지가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고증의 문제는 별개다. 참고로 명량의 고증 수준은 그리 높지는 않은 듯 하다). 초반의 시퀀스들도 영화 전체와 마찬가지로 각각 별개로 놓여있고 유기적으로 엮여 있지 않은 부분이 분명 있지만,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순신의 이야기의 비중을 줄이고 왜군들의 이야기의 비중을 높인 것은 오히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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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 적인 이야기로 '왜 지금 이순신인가?'라는 담론은 쉽게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들의 정부를 향한 불만 들이 가득 찬 시점에서 이순신이라는 리더의 모습은 국민들이 바라는 이상향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극 중 김태훈 씨가 연기한 캐릭터의 대사 중에 '왜 대장선이 맨 앞에 있어'라는 식의 대사가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이 집약적으로 이순신의 리더쉽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보통 리더는 뒤에서 빠져 있고 지시를 하게 마련인데, 명량의 이순신은 부하들이 모두 뒤에 빠져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자신의 목숨을 걸고 홀로 맨 앞에서 맞서 싸우는 리더쉽을 보여준다. 물론 리더라면 응당 이러한 모습을 손수 보여주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있는 우리들로서는 일종의 대리 만족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어 버려서 더 씁쓸한) 을 느낄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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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명량의 초반 부는 감정적으로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영화가 지루해서, 이순신 장군이 겪는 고초가 공감 되어서가 아니다. 바로 명량 해전이 벌어진 장소가 얼마 전 참혹했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던 그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물살을 바라보며 전략을 떠올릴 때 검고 빠른 바다가 스크린 한 가득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어찌 세월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우리가 세월호 뉴스를 들을 때 수 없이 많이 듣던 조류와 물 때의 이야기가 나올 땐, 그리고 검은 바다의 이미지는 세월호 사고와 정부의 무능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가 생각나 몹시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인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클라이맥스 부분을 지나쳐 엔딩을 맞게 되어도 별다른 카타르시스는 느껴지지 않았다.

'명량'을 온전히 감상하기엔 세월호 사고의 상처가 너무 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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