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Sicario, 2015)

범죄와 현실의 가운데서



사상 최악의 마약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미국 국경 무법지대에 모인 FBI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와 CIA 소속의 작전 총 책임자 맷(조쉬 브롤린), 그리고 작전의 컨설턴트로 투입된 정체불명의 남자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극한 상황 속, 세 명의 요원들은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숨쉬는 모든 순간이 위험한 이곳에서 이들의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출처 : 다음 영화)


드니 빌뇌븨 감독의 '시카리오 (Sicario, 2015)'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역을 배경으로 거대한 마약 조직인 카르텔과 이를 소탕하려는 CIA를 비롯한 미국 정부 조직을 중심으로 한 소탕 작전을 그린다. 그리고 비밀리에 진행되는 이 작전의 한 가운데에 마약국 소속은 아니지만 현장 경험이 풍부한 FBI 요원인 케이트를 등장시킨다. '시카리오'에서 케이트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범죄 조직도 이를 소탕하려는 정부 조직도 서로의 이익을 위한 현실적인 것에 만족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일종의 이방인 격이자 아직 이상적인 바를 주장하는 케이트는, 이 현실을 다시금 바라보고 질문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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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질문은 권력이나 힘, 혹은 균형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했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팔아 넘기는 마약 범죄 조직은 잔혹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를 소탕하고자 하는 정부 조직의 행동이나 방식이 과연 그들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또한 조금 진부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참혹한 살인을 지시하고 행하는 범죄 조직원들이나 우두머리도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이거나 가족에게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상대적으로 주인공의 편에 서 있는 이들의 냉정함을 들어 이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또한 주인공 케이트에 대한 시선 역시 냉정함을 유지한다. 그녀가 꿈꾸는 합법하고 이상적인 방법들이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 다는 것. 법과 이상대로 범죄 조직을 어떤 피해나 시간이 들더라도 모두 소탕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또한 가능한 것인지를 묻고, 결국 소탕하지 못한다면 관리 하에 두는 일종의 타협안을 수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영화는 답하기를 유보한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럼에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담론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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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으로 '시카리오'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단 한 순간도 놓지 않는 완벽에 가까운 범죄 스릴러다. 마치 리들리 스콧의 '카운슬러 (The Counselor, 2013)'를 연상시키는 범죄 조직과 현실의 공포와 무게감, 그리고 캐서린 비글로우의 '제로 다크 서티 (Zero Dark Thirty, 2012)' 못지 않은 작전 과정의 치밀함과 디테일한 묘사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영화를 통해 익숙하게 접하고 있는 범죄조직과 첩보조직과의 관계와 사건들을 실제하는 현실이라는 것으로 체감할 수 있게 만든다. 에밀리 블런트, 조쉬 브롤린, 베니치오 델 토로의 연기는 과장됨이 없어 더욱 섬뜩하고 현실적이며, 최근작 '스카이폴'에서 정말 멋진 영상을 선사했던 로저 디킨스의 촬영 역시 이 작품의 손꼽을 만한 매력 포인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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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비지트 (The Visit, 2015)

샤말란의 완벽한 코믹호러스릴러



M.나이트 샤말란이 돌아왔다. 다들 샤말란을 이야기 할 때 '식스센스'를 가장 많이 언급하기는 하지만, 내가 그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언브레이커블'이나 '싸인' 쪽에 가깝다. 많이들 샤말란의 이후 작품들에 대해 대부분 아쉬워 하는 것이 중론인데, 특히 호불호가 갈렸던 (그렇다기 보다 대부분 별로라고 했던) '해프닝'은 인상 깊게 본 편이지만, 나 역시도 '라스트 에어벤더'나 '애프터 어스'는 큰 실망을 했던 작품이었다. 이 두 작품에서 실망했던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샤말란과는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었다는 점이 가장 큰 포인트다. 샤말란은 한정된 공간과 인물들을 배경으로 미묘한 심리와 그 안에서 서서히 조여드는 이야기의 긴장감을 잘 다루는 감독인데,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은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좀 과한 배경과 스케일이었다. 그럼에도 샤말란을 (아직까지) 지지하는 입장에서 그의 신작은 여전히 기대하고 있었기에 이번 2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조금 먼저 선보인 '더 비지트 (The Visit)'를 놓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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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비지트'는 명확한 컨셉 영화이지 장르영화다. 샤말란은 마치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의 타이틀서부터 이 영화가 명확한 장르영화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전형적인 룰 안에서 충실히 룰을 따르며 자신의 장기를 펼쳐낸다. 이런 장르 영화에 익숙한 이들에게 '더 비지트'는 종합 선물 세트에 가깝다. 한정 된 (혹은 고립된) 공간, 한정 된 인물, 정해진 시간, 페이크 다큐멘터리 방식 (그로 인한 핸드 헬드 촬영방식까지), 고전 공포영화에 딱 어울리는 영화 음악까지. 공포 스릴러 영화의 고전적인 방식으로 샤말란은 오히려 이 전형적 요소들을 더 고전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깔끔하고 무엇보다 몹시 재미있다. '더 비지트'가 재미있다고 이야기할 땐 두 가지의 다른 포인트가 있는데, 하나는 아역 배우들이 실제로 재미있는 장면과 대사들을 연출하는 것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공포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시원한 쾌감의 재미다. 전자의 경우 남동생으로 나온 아역 배우는 자칭 랩 뮤지션을 꿈꾸고 있는데, 이 캐릭터가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 안에서 펼치는 랩 뮤지션으로서의 자세가 촌스럽지 않고 제법 수준있는 재미를 준다. 확실히 대중적인 측면에 있어서 이 캐릭터의 성격이 없었다면 '더 비지트'는 더 심심하거나 조금 더 평범한 공포 스릴러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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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재미 포인트는 조금 성격이 다른데, 공포의 요소가 커가면 커질 수록 웃음이 동반된 재미가 더해지는 경향이 있다. 약간의 B급 정서랄까. 로드리게즈의 영화처럼 의도 된 잔인함 혹은 촌스러움을 볼 때 처럼, 혹은 샘 레이미의 '드래그 미 투 헬'이 준 재미처럼 공포가 가중 될 수록 그 의도 된 장면이 끝나고 난 뒤에 땀이 한 번 스윽 지나가면서 시원한 쾌감이 느껴지는 특유의 재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더 비지트'는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언급하지 않겠지만 이 영화 속에 등장한 거의 모든 무서운 설정과 행동, 장면들은 거의 모두 다 이런 성격의 재미를 담고 있어서 하나 같이 눈을 질끈 감는 동시에 웃음이 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 이건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아마 이런 류의 공포 영화를 즐겨 본 이들이라면 무슨 경험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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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비지트'는 이 장르 영화 속에 가족 드라마까지 삽입하였는데, 나는 오히려 조금의 감동 포인트도 없이 완전한 컨셉 장르 영화로 남는 편이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가족 드라마의 테마 역시 전체적인 장르 영화의 완성도를 해칠 수준으로 포함되어 있지는 않고, 한 편으론 이 테마가 매우 중요한 테마로 낮은 곳에 깔려 있기 때문에 영화 속 내러티브가 가능해진 측면이 있어 오히려 보는 이에 따라서는 더 풍성해지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영화의 호불호나 샤말란 감독에 대한 선호도를 떠나, 단순히 러닝 타임에 가장 충실하고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를 현재 고르라면 주저 없이 '더 비지트'를 추천하고 싶다. 아,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 재밌다는 표현을 많이 쓰기는 했지만 많이 무서운 영화이기도 하다. 깜짝 놀래키고, 가슴 떨리고, 반전도 있고. 단지 그것들이 장르라는 놀이터 안에서 충실히 활용되고 있다 뿐이지, 무섭다. 깔끔하게 한 번 또 보고 싶다.



1.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방영했던 코미디 프로인 임하룡, 이홍렬씨가 연기한 '귀곡산장'이 떠올랐어요. 왠지 그런 컨셉으로 보면 더 재밌는 영화 ㅋㅋㅋ '망태망태망망태 망구망구망망구 ㅋ'


2. 어디 이래서 자식 있는 분들 명절 때나 방학 때 시골 부모님 집에 애들 보낼 수가 있을지 ㅋ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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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Gone Girl, 2014)

결국은 시선에 관한 영화



데이빗 핀처의 신작 '나를 찾아줘 (Gone Girl, 2014)'를 보았다. 핀처의 작품이라면 아무런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의 최근 작이었던 '소셜 네트워크'와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워낙 좋았고 완성도가 높았었기 때문에 이 작품 '나를 찾아줘 (원제를 따르자면 '사라진 소녀'가 적당하겠다)' 역시 아무런 주저 없이 선택하게 되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개봉 전 어디에선가 핀처의 최고 작품 중 하나인 '조디악 (Zodiac, 2007)'과 비교하는 평들이 있었기에 더더욱 큰 기대를 앉고 극장을 찾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를 찾아줘'는 '조디악'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으며, 스릴러 이기는 하지만 스릴러 본연의 재미와 요소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를 둘러싼 이야기와 시선에 더 관심이 많은, 조금은 다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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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아무런 정보를 얻지 않고 보는 편이 최적의 관람 방법입니다)


기본적인 시놉시스는 대략 이러하다. 어느 날 닉은 잠시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은 사고가 난 것처럼 어질러져 있고 아내 에이미는 사라져 버렸다. 아내 에이미를 찾기 위한 노력은 언론 등에 노출되며 더 큰 사건으로 퍼져 나가는 가운데, 닉과 에이미의 이야기는 플래시백을 통해 관객에게 조금씩 이 둘의 결혼 생활에 이미 균열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까지만 해도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핀처의 전작인 '조디악'과 스타일이 유사한, 그러니까 실종된 아내를 찾기 위한 아주 치밀하고 긴장간 넘치는 추리극 일 줄로만 알았다. 에이미가 처음 실종되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싶었지만 영화는 관객에게 단서를 던지고 이른바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실종 사건을 두고 주인공 닉 던 (벤 애플렉)을 바라보는 언론과 주변의 시선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영화는 어느 순간 부터 이 영화의 또 다른 부제라고 할 수 있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 맞아 떨어지는 놀라운 에이미 던 (어메이징 에이미)의 활약상(?)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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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는 노골적으로 실종 사건을 두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고 마녀사냥에 빠져드는 언론과 움직이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조금 연출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언급했다시피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한 편으론 정말로 사라진 소녀를 찾아가는 과정의 스릴러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이건 그런 영화가 아니야'라는 의도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더 노골적으로 표현해야 했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은 형식적으로 표현되는 주변과 언론의 반응들은 그야말로 어메이징 한 에이미라는 캐릭터에 비해 굉장히 단편적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물론 아주 단편적이고 형식적인 모습을 통해 더 바보스럽고 멍청해 보이도록 의도했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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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로자먼드 파이크가 연기한 에이미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벤 애플렉이 연기한 닉 던에 대해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겠다. 극 중 닉 던이라는 캐릭터는 참 묘한 느낌을 주는데, 치밀한 에이미와 같은 레벨로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다면 관객들로 하여금 '불쌍하다'라는 생각에 공감대 혹은 동정심이라도 얻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도 멋대로 인 부분이 있어서 100% 부합하지는 않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극 중 많은 장면에서 닉 던이라는 캐릭터와 벤 애플렉이라는 배우가 겹쳐지면서 의도치 않았던 (그 중 반은 의도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이 의도되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영화 전체가 이 사건을 약간의 조롱기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심각한 사건 속에서도 당사자들은 황당할 정도로 허술하고 초라한 행동을 하게 되는 인물들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으로, 아마 영화가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극 중 대중들처럼 오해했을 관객들에게 '자, 현실은 이럴 때도 있어. 쉽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선 안되'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튼 농반진반 이지만 이 작품은 벤 애플렉의 필모그래피에 있어서 연기력이 최고조로 발휘 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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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애플렉 이야길 하긴 했지만 누가 뭐래도 '나를 찾아줘'는 에이미 역을 연기한 로자먼드 파이크의 영화다. 이 영화는 그녀의 다양한 매력을 모두 담고 있는 영화로, 초반에는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은 물론 마치 중간계의 갈라드리엘을 연상시키는 신비스러운 보이스의 내레이션으로 묘한 매력을 선보이는 한 편, 후반부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의 모습은 극장 내 관객들이 모두 무서워서 치를 떨 정도로 소름 돋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나 역시도 올해를 통 틀어 무서워서(이것도 공포긴 공포다) 소름 돋기는 거의 처음이었다. 


로자먼드 파이크는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전국민이 알고 있는 캐릭터와 평생을 비교 당해야 했을 에이미의 스트레스와 (아마도)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내적으로는 망가지고 폭력적이고 정신이상의 행동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최적화 된 행동을 하게 되는 캐릭터를 '왜 저래?'보다는 '무섭다'가 먼저 느껴지도록 이끌어 냈다. 아마도 많은 영화 팬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게 될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무서우리 만큼 소름 돋았다.


데이빗 핀처의 '나를 찾아줘'는 핀처의 또 다른 재주를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는데, 막장 드라마에 익숙해진 국내 관객들에게는 극장판을 보는 듯한 느낌이 워낙 강해 그 이면의 디테일이 다 전달되지 않는게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하긴 그게 너무 강하긴 했다.



1. 정말로 '사랑과 전쟁' 극장판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2. 핀처는 최근 작품들에서 영화 음악을 특히 더 매력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번 작품 역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어요. 영화 음악에 의도가 많이 담겨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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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너스 (Prisoners, 2013)

누가 죄인인가



휴 잭맨과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영화 '프리즈너스'를 보았다. 개봉 전에는 두 배우의 출연 사실만 알고 있었는데, 뒤늦게 알고 보니 '그을린 사랑'을 연출했던 드니 빌뇌브의 작품이었으며 두 배우 외에도 폴 다노, 마리아 벨로, 테렌스 하워드, 비올라 데이비스, 멜리사 레오 등 좋은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프리즈너스'는 2시간 반이라는 긴 러닝 타임을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로 가득 채운, 꽉 찬 스릴러 물이다. 몇 가지 기술적인 면이나 장르 적인 면에 대해 이야기할 것들은 있지만, 메시지 적으로는 생각보다는 이야기할 것이 그리 풍성하지는 않은 (직관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오히려 그 부분이 스릴러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다. 2시간 반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러닝 타임이 조금은 지리 하게 느껴졌던 건, 재미가 없거나 느슨해서 라기 보다 이 영화가 선택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도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감독은 관객이 극 중 아이를 유괴 당한 부모와 이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와 마찬가지로 진이 빠지길 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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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장르 영화적인 면에서 긴 러닝 타임과 쉽사리 풀리지 않는 사건, 그리고 범인에 대한 궁금증은 역시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했던 '조디악'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범죄 스릴러 측면에서 '프리즈너스'는 '조디악'에 한 참 못 미치기는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2시간 반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끌고 왔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스릴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리즈너스'는 '누가 범인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테마를 기반으로, 범인을 찾는 과정 중에 각각의 주요 인물들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더 직접적으로 어떤 죄를 짓게 되는 지를 주목한다. 그리고는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이 주인공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어린 내 아이를 유괴 당했고, 범인으로 의심되는 이가 내 눈 앞에 있다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영화는 이 두 시각을 이야기 속에서도 모두 드러낸다. 심하다 고는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연민은 물론, 그래도 이 방법은 잘못되었다는 시선도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인물들이 엮이게 된 이 유괴 사건이 어떤 의도치 않은 사건에서 말미암았는지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그 자체가 반전일 수도 있지만 이건 반전으로 사용되고 있다기 보다는, '왜 그럴 수 밖에는 없었는지'에 대한 질문이자 답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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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양면성을 갖고 있는 이야기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건 각본 외에 배우들의 연기가 크게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가운데 휴 잭맨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듯 하다. 사실 휴 잭맨에 대해서 한 동안은 그저 '휴 잭맨 = 울버린'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레 미제라블'을 보고 나서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장발장의 이야기에 다시 한 번 새삼 빠져들 수 있었을 정도로 그의 연기력에 매료되었었다. '프리즈너스'에서도 그의 연기가 큰 몫을 했다. 여기에는 실제로 어린 딸을 두고 있는 그의 영화 외 적인 이미지도 크게 작용했는데, 극 중 인물인 도버와 영화 외 인물인 휴 잭맨이 겹쳐지며 이 영화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인 '진정성'이 자연스럽게 발생했다. 그로 인해 도버의 행동들은 제 3자의 시선이 아니라 1인칭 시점으로 공감할 수 있어,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죄와 죄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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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오면 크게 남는 것은 없는 영화였지만, 정반대의 의미로 관람을 하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던 좋은 몰입 감을 선사한 작품이었다. 배우들의 명 연기와 고립되고 긴장되는 가운데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는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



1. 로저 디킨스의 촬영은 정말 대단하네요. '스카이 폴'에 버금가는 멋진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후반부 클라이맥스에 제이크 질렌할이 빗속을 뚫고 운전하는 장면은, 마치 다른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압도적인 영상미를 선사하더군요.


2. 제이크 질렌할이 설정한 '로키'라는 캐릭터도 흥미로웠어요. 연기로 표현되는 성격 외에 의상이나 움직임 등에서도 확실히 캐릭터를 잡았다는 걸 인식할 수 있어서 좋더군요.


3. 폴 다노는 이제 이런 역할만 하는 듯;; 뭔가 천재 아니면 외톨이 혹은 정신이상자 -_-;;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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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알고나서 다시보기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데니스 르헤인의 원작소설을 스콜세지는 깊이 있는 질감과 시각적인 효과,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에게 공감하도록 만드는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원작 못지 않은 훌륭한 영화화를 이루었다. '셔터 아일랜드' 개봉 당시 흥미로웠던 점은 이 이야기의 반전을 두고 양측이 제법 대등하게 의견을 겨루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완벽하게 정해지고 짜여진 한 쪽의 이야기, 그러니까 너무 명확한 일방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지만, 그와 반대의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설을 들어보아도 '제법 이야기가 되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당시 영화 평에도 썼듯이, 당시에 보았던 영화들 가운데 극장을 나오며 가장 뜨거웠던 작품 중 하나였으며, 누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영화를 본 사람에게 자신이 궁금한 점을 묻게 되고, 또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설득하고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 '인셉션'은 모두가 정답이 되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이야기라면, '셔터 아일랜드'는 정답은 분명 한가지이지만 오답 역시 설득력을 갖을 수 있도록 연기와 연출이 섬세하게 다룬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아, 그리고 이 작품은 '인셉션'과 여러모로 비교할 만한 구석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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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 개봉 당시 글에서는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메시지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었지만, 이번 글에서는 그런 점보다는 다시 보면 더욱 분명해지는 영화의 이야기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을 해보려고 한다. 극장에서도 두 번을 관람하였었는데, 이런 영화의 특성상 두 번 이상 보게 될 경우,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일 수 밖에는 없으며, 그저 스쳐 지나쳤던 장면들이나 인물들의 행동들이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게 된다. 이 글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보기'의 방식으로 끄적여 보았다.


(이 글은 스포일러 투성이인 글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께서는 모쪼록 내용이 전부 들어 있는 이 글을 읽지 마시고, 영화를 감사하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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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아일랜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스릴러 라는 장르적 측면에서 두 가지를 특별히 고려하고 있다. 하나는 영화는 알고 있는 진실을 나중에 관객에게 알렸을 때 모든 것이 수긍가도록 그 과정을 세밀하게 설계해야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런 단서를 여기저기 흩어놓으면서도 관객들이 영화의 이야기와는 반대의 길을 가는 주인공의 심정에 완전히 공감하도록 (그래서 심지어는 영화가 나중에 반전을 알려주어도 쉽게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만드는 것이다. '셔터 아일랜드'는 이런 두 가지를 모두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주인공 앤드류, 아니 테디 다니엘스의 환상을 현실이라고 믿고 이에 대한 자신만의 공식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아예 확실한 결론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이것은 너무나 명확히 극중 앤드류 레디스, 그러니까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캐릭터가 테디가 아니라 앤드류이며, 영화의 마지막 닥터 코리가 이야기해준 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볼 수 있겠다. 본 블루레이에 수록된 부가영상을 보면 이것저것 고민할 것도 없이 '정신병자를 연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라는 식으로 확정지어 얘기하고 있으니 사실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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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셔터 아일랜드'는 극중 디카프리오가 앤드류 레디스라는 것을 알고 한 번 더 보게 되면 또 다른 흥미로운 작품이 된다. 그리고 앤드류 레디스라고 인정할 때만 더 확연히 보이는 디테일이나 연출, 연기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바로 그런 점들, 테디 다니엘스라고 믿었던 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앤드류 레디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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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 셔터 아일랜드에 테디 다니엘스와 그의 동료 척이 (일단 이렇게 지칭해두자) 도착하자 굉장히 삼엄한 경관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현재 위험한 환자가 탈출한 상황이고 이 연방요원들이 그냥 탐탁치 않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여겼었지만 사실은 테디가 아니라 앤드류 레디스이기 때문이다. 앤드류는 폭력적인 성향의 환자이고 경관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할 만큼 위험한 환자였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병원 밖을 활보하는 이 상황이 경관들로서는 몹시 긴장된 상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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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에 설치된 전기선을 보고는 '전에도 본 적이 있어'라고 얘기하는데, 이 대사는 나중에 나치의 수용소에 갔었던 기억 (이 기억조차 거짓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다)에서 그 때봤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았었지만, 사실은 저 말 그대로 바로 그 것을 본 적이 있는 것이다. 그는 앤드류 레디스고, 이곳의 환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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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에서도 이런 이상한 점을(테디의 이야기로 알고 있는 관객들이 이상함을 느끼게 되는)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테디와 척이 애쉬클리프에 입장하기 위해 총기를 반납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총기를 반납하려는데 연방 보안관으로 4년이나 근무했다는 척은 어찌된 일인지 허리춤에 있는 총 조차 제대로 벗어내질 못한다. 이 장면에서는 위 스크린 샷 속 테디의 시선처럼 관객 역시 척 (마크 러팔로)을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이후에도 척을 의심케 하는 몇가지 연막 작전이 등장하기도 한다. 척을 의심하는 것은 맞지만, 테디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척은 바로 닥터 시한이기 때문에 이런 연방 보안관의 행동에는 익숙하지 않을 수 밖에는 없었을 터. 하지만 영화는 아직까지는 좀 더 직접적인 단서는 제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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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더욱 그렇지만, 척은 유난히 테디에게 '괜찮아요?'라고 걱정스런 질문을 자주 던지곤 한다. 이는 물론 그가 척이 아니라 앤드류의 주치의인 닥터 시한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또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시한은 코리와 더불어 이런 방식의 치료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진보적인 의사이기 때문에 아마도 테디의 파트너인 척 역할을 자청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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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연기에 관심없는 배우들을 시한 박사가 열심히 이끌고 있는 한 연극의 장면과도 같다)

이 병원 내에는 앤드류 레디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두가 동원된 거대한 연극을 하는 것에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긍정적인 이라면 역시 코리와 시한 박사를 들 수 있겠고, 부정적인 이들이라면 막스 본 시도우가 연기한 내링 박사를 비롯해 소장과 대부분의 이곳 사람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코리 박사와 주치의인 시한은 이런 치료방법이 통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지만, 내링 박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래봤자 소용없어'라는 식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거추장스러운 연극에 그리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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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보면 유난히 앤드류 혼자서 열심히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렇다)

위와 같은 장면에서는 아예 앤드류가 돌아서자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이 연극 놀음이 그저 재밌기만 한 한 남자 간호사의 웃는 장면마저 확인할 수 있다. 그를 비롯한 이 곳 직원들에게는 자신들이 계속 돌보던 한 환자가 연방 보안관 행세를 하며 자신들을 심문하고, 그의 주치의 역시 보안관 행세를 하는 것이 한편으론 재미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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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들은 대부분 이 상황에 비협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대놓고 테디를 우습게 깔보며 대하기까지 한다. 항상 반대로 자신들이 환자에게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그랬던 환자가 보안관이라며 자신들을 심문하는 것 자체가 우습고 불편한 것이다. 위의 두 간호사의 표정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왼편의 간호사는 못마땅의 강도가 더한 경우라 계속해서 테디에게 까칠하게 대하는 것이고, 오른편의 간호사는 그저 이 상황이 전혀 심각하게 느껴지지(그렇게 연기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않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실제 상황이었다면 지금의 간호사들처럼 이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중요한 환자가 실종되었고, 연방 보안관이라는 자가 자신들을 심문하는 떨리는 상황이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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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을 심문하는 곳에 닥터 코리가 자리잡고 이 상황을 주시하는 것을 처음 봤을 땐, 혹시 어떤 직원이 이 사건에 연루되었는지 캐내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비협조적인 직원들이 혹시라도 실수를 할까봐 혹은 앤드류가 계속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이 틀어질 경우 그 길을 조정해주기 위한 안내자이자 감시자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를 잘보면 앤드류가 직접 방향이나 행동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척이나 주변 사람들이 은근 슬쩍 앤드류의 경로를 정해주는 장면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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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해서 뭐라도 나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위의 장면도 이런 비협조적인 이들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해안가에 실종사 수색을 하러 나왔는데, 실제로 수색하는 인력들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그냥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테디는 뭔가 불편함을 느낀다. 이 경관들은 이 모든 것이 그저 연극일 뿐인 것을 알기 때문에, 즉 아무리 찾아봐도 시체나 환자따위 나올리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 연극에 열심히 참여할 동기조차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저렇게 비협조적인 모습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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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것은 바로 환자들을 테디가 심문하는 장면부터다. 이 심문 장면이 시작하기 전 아까 그 까칠한 반응을 보였던 간호사가 위와 같은 주사를 준비하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심문을 받게 되는 환자들이 발작이나 이상 반응을 보일 때를 대비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 장면 역시 다시보게 되면 이 주사가 환자들이 아니라 또 다른 환자, 가장 위험한 환자인 앤드류 레디스를 위해 준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1로 다른 환자들과 맞닥들였을 때 이상 행동이나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낼 수도 있는 앤드류였기 때문에, 아까 직원들을 심문하던 때와는 다르게 상당히 긴장한 모습으로 환자들과의 심문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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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떡하니 앉아있으니 말하기가 쑥스럽네요;;;")

이 심문 장면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시한 박사에 대한 묘사다. 이 장면 전에도 슬쩍 그런 분위기를 보였던 영화는 이 장면에 와서는 아주 직접적으로 척이 닥터 시한임을 연기와 컷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앤드류가 시한에 대해 묻자 여자 환자는 오른편에 앉은 시한을 흘깃 쳐다보며 이야기한다. 일반인이었다하더라도 바로 앞에 그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인척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정실질환을 겪고 있는 이들 같은 경우는 이런 연기에 아무래도 좀 더 미숙할 수 밖에는 없다. 그래서 잘 생겼다는 얘기를 할 때는 쑥스러움을 그대로 표정에 드러내기도 하고, 위의 스크린 샷처럼 저렇게 바로 앞에 시한을 쳐다보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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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영화는 아주 노골적으로 그 반대편에 앉은 척을 보여준다. 잘생겼다는 이야기를 쑥스럽게 할 때 바로 시한의 표정과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외에도 영화 속에서 시한의 이름이 언급될 때는 거의 모든 장면이 척에게로 이동한다. 즉 영화는 이때부터 척이 닥터 시한이다 라는 암시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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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에게 휴가를 허락해요? 근데 나는 왜 여기서 일하고 있는거임? -_-;;")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재미있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 같은 위급 상황에 닥터 시한에게 휴가를 주고 섬을 나가게 했다는 이야기에 바로 본인인 척이 '주치의에게 휴가를 허락해요?'라며 되묻는 장면은, 이 연극의 작은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연극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라 이런 대화들이 오갈 때의 반응을 보면, 조금씩 머뭇거리거나 쑥스러워하는 장면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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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링 박사의 위와 같은 질문도 이 연극의 측면에서 보면 흥미로운 점이다. '그 바닥 사람들은 술을 즐기지 않나요?'라고 물어보는 와중에는 약간 비꼬는 투가 섞여있는데, 환자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래, 니가 보스턴에서 온 보안관이라며?'라는 식으로 약간 비꼬면서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이 환자가 자신의 환상에 깊이 빠져있는지 일종의 테스트를 겸하고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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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레이첼'을 앤드류가 만나게 되는 이 장면은 구성자체가 너무 연극스러운 장면이기도 하다. 각 인물들의 배치자체도 마치 무대 연극을 보는 듯한 위치를 보여주고 있고, 아래에서 위로 비추는 조명은 이런 연극같은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앤드류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레이첼의 불꽃 연기에 감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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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돌변한 레이첼을 맞닥들이는 앤드류의 표정도 흥미롭다. 이 장면만 본다면 극중 앤드류는 명백한 정신병동의 환자이고 레이첼은 간호사 임이 명확히 드러난다. 저 표정은 갑자기 변한 상대에 대한 놀라움이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불안을 겪는 환자로서 공포를 느끼는 표정이라고 해야 맞겠다. 이 장면은 그래서 테디가 이 곳에 와서 이상한 일들을 겪으며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이었다는 점을 그의 반응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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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척이 테디를 눈치보는 장면은, 둘이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한다고 할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앤드류를 철썩 같이 테디로 믿고 있을 때에는 이런 시선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이런 종류의 영화의 묘미다. 그리고 다시 보는 '셔터 아일랜드'의 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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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금씩 소스를 제공하던 영화는 조지 노이스 (잭키 얼 헤일리)와의 만남 장면을 통해 매우 노골적으로 영화의 본래 이야기를 드러낸다 (여기서 본래 이야기란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메시지가 아니라, 사실관계상 본래 이야기를 말한다). 조지 노이스는 앤드류 레디스와 테디 다니엘스를 모두 잘 알고 이해하는 인물로서, 빨리 아내를 잊으라고 진심으로 부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테디를 만난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그를 테디가 아닌 앤드류 레디스로서 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테디 다니엘스라고 믿는 앤드류는 이 이야기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관객은 점점 더 주인공에 대해 의혹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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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영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주인공의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짧게 한가지만 언급하자면 세 아이를 부둥켜 안고 오열하는 저 장면은, 이 모든 이야기의 단서이자 시작이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앤드류 레디스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우울증을 겪던 아내가 아이들을 모두 익사시킨 이 사건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고, 자신의 손으로 이런 아내를 죽인 것에도 충격을 받아 결국, 자신안에 또 다른 자아를 갖게 되는 정신질한마저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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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인 척을 잃고, 동굴에서는 실제 레이첼이라는 여성과의 만남을 갖은 뒤 앤드류는 소장에게 발견되어 차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소장은, 코리 박사가 주장하는 이 거대한 연극에 결코 협조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소장은 앤드류에게 매우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건낸다. 앤드류를 완전한 환자 취급하며 그의 폭력성이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흥미로운건 앤드류, 아니 현재는 테디 다니엘스인 디카프리오가 소장의 이런 억압에 전혀 꼼짝을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테디는 더 이상 연방보안관이 아니라 이곳의 환자인 앤드류의 모습으로 변모해왔으며, 자신을 완전히 환자 취급하는 소장의 말에도 제대로 한 마디 받아치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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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코리 박사에게 모든 사실을 전해 듣고 자신이 테디 다니엘스가 아니라 앤드류 레디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앤드류는 코리 박사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는 바로 과거에도 이렇게 치료됐던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앤드류의 마지막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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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은 원작인 소설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 대사는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의미심장한 것이었는데,

'괴물로 평생을 살겠나? 선량한 사람으로 죽겠나?'

바로 이 것이다. 시한 박사를 다시 한번 척으로 부르고 이곳을 탈출해야 겠다고 한 뒤 남긴 말이 바로 위와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고는 제 발로 자신을 수술하려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로 걸어간다. 이것은 분명 테디 다니엘스로서의 선택이 아니라 앤드류 레디스로서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과거에도 이런 식으로 여러번 치료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앤드류는, 또 한번 환상에 빠지기 전 오롯한 앤드류 인 지금 선택해야 한다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극복하지 못할 트라우마 때문에 계속 정신이상과 현실을 반복하는 괴물로 평생을 살기 보다는, 그냥 앤드류 레디스로서의 죽음을 택한다. 영화는 이렇게 걸어가는 앤드류의 뒷 모습으로 끝나지 않고, 수술이 행해질 등대를 마지막 행선지로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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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는 반전을 숨기고 있는 영화로서 이야기의 양면성을 영화화로서 잘 표현해 낸 작품이었다. 영화가 이끄는 대로 테디 다니엘스의 이야기로 보는 것도 물론 흥미롭고, 그 반대로 앤드류 레디스의 이야기로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앤드류 레디스라는 것을 알고 테디 다니엘스를 보는 것도 몹시 흥미로운 감상이 아닐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블루레이 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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