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시절 (2009)
그 아름답고, 다웠던 한 때


이 작품 <호우시절> 때문에 기억을 더듬어 보았더니, 특별히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허진호 감독의 장편들은 한 작품도 빼놓지 않고 보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타 장르에 비해 로맨스 영화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는 내 인생의 영화 중 한 작품일 정도로 좋아했던 작품이라 VHS테잎으로도 소장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허진호 감독이기는 하지만 그의 전작들이 모두 내 취향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봄날은 간다>는 여전히 좋았지만 <외출>은 정말 계속 허진호 영화를 기대해야 할까 할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었고, <행복> 역시 크게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깊은 인상을 주지는 못했던 작품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의 2009년 신작 <호우시절>은 또 한 번 가슴 설레게 하는 작품이었다. 영화에 대한 정보라고는 출연배우와 포스터 이미지가 고작이었지만, <호우시절>에게 기대한 것이 분명 <8월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것은 애초부터 아니었던 것 같다. 뭐랄까 그냥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약간의 먹먹함과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갈 만한 미소 정도랄까. 이런 기대를 하고 있던 나에게 <호우시절>은 딱 어울릴 만한 영화였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괜찮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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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미국에서 함께 유학생활을 했던 남자주인공 '동하(정우성)'과 '메이(고원원)'이 우연히 중국에서 오랜 만에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다. 이 두 남녀의 이야기는 그리 자세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아마도 한 때 사귀었던 것 같고, 오랜만에 만난 지금에도 서로에게 감정이 남아있는 듯한 정도. 이후에도 영화는 이 둘의 관계에 대해 아주 조금씩 풀어놓지만, 확실히 이 영화에서 이 둘의 과거와 현재 자체가 그리 중요한 요소는 아닌듯 하다. 좀 더 본격적이고 신파에 가까운 로맨스였다면 더 많은 사건을 만들어서 극적인 효과를 끌어내려고 했겠지만, 허진호 감독의 <호우시절>은 분명 이런 것과는 지향점이 다른 영화라고 하겠다. 고원원이 연기한 메이 라는 캐릭터에 비하인드 스토리는 영화 초중반부터 후반부를 위해 조금씩 그 의도를 드러내기는 하지만, 이 사건이 결정적이거나 영화에 큰 영향은 주지 않는 듯 하다(적어도 나에게는;; 만약 이 것으로 무언가 극적인 효과를 내려한 것이었다면 이 영화는 정말 심심한 영화가 된다).

영화의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해보자면, 영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쓰촨성이라는 특수성은 역시나 줄거리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꼭 필요하지 않은 에피소드 들도 여럿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김상호가 연기한 동하 회사의 지부장 역할은 이야기 구조로만 보았을 때는 없어도 되는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을텐데(물론 의미심장한 대사 한마디를 하긴 하지만;), 아마도 이 캐릭터와 부수적인 장면들은 줄거리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영화의 리듬과 전체적인 '분위기'를 위해 배치된 것으로 생각된다. <호우시절>은 굉장히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영화인데, 마치 두보 사원이 있는 중국 쓰촨성에 관한 대형 홍보 영상으로 느껴질 정도로 시원시원한 외모의 정우성과 고원원이 더해져서 보기만해도 기분 좋아지고 편안해지는 영상과 이미지가 가득하다. 좀 오버해서 얘기하자면 영화에 내용은 다 재쳐두더라도 그 편안하고 감성적인 영상들 만으로도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영화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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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작품이 그냥 허진호 감독의 쉬어가는 작품이냐고 물을 수도 있을텐데, 개인적으로는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호우시절>은 화법을 달리 했을 뿐이지 허진호 감독이 계속 추구해왔던 로맨스에 대한 미묘한 감정들과 삶과 죽음의 테마가 여전히 공존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미묘한 감정들에 대해 많은 대화와 사건들로 풀어가는 방식도 좋지만, 이 작품처럼 단편 적인 대화들과 절제된 표현 그리고 이를 이미지로 감싸는 방식이 영화의 주제가 되는 '그 아름다운 한 때'를 표현하는데는 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영화의 조명과 촬영이었는데, 의도적으로 피사체를 잡을 때 아웃 포커싱을 강하게 한다거나 혹은 인물과 인물 사이에 포커싱을 강하게 대비시키는 방식도 인상적이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자연광을 잘 살려낸 조명도 참 인상적이었다(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 햇살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조명과 장면이었다).

여기에는 음악도 크게 한 몫을 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음악이 좋기는 하지만 조금 과잉된 측면도 없지 않아 느껴졌다. 워낙에 기본적으로 이미지 자체가 가득한 영화이다보니 음악은 좀 더 절제해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음악이 조금 과해지면서 전체적으로 거대한 뮤직비디오 같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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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기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 처럼,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가벼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영화였다.  <8월의 크리스마스>만큼 가슴이 저리지 않고 <봄날은 간다>만큼 치열하진 않지만, 왠지 모를 미소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던 허진호 감독의 또 다른 선물이 아니었나 싶다.


1. 영화 대사의 90% 이상이 영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 정우성도 정우성이지만 고원원의 자태는 참 아름답더군요. 제가 봤을 땐 분명 몇몇 컷은 그녀의 아름다운 목선을 인지하고 있었어요.
3. 조명이 인상적이라 크래딧에서 특별히 챙겨보았는데, 모두 중국 스텝들이더군요.
4. 이 영화를 보면 누구나 중국에 있는 영화 속 두보초당에 가고 싶어질 듯 하네요. 이들과 같은 기럭지는 없지만 가서 대나무 숲 속에서 두보의 시 한편 읽어보고 싶네요.
5. 엔딩 크래딧 말미에 영화 속 두보의 시 한 구절이 그대로 담겨있는데, 마치 쓰촨성 지진을 미리 알고 위로하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아려오더군요.



6. 영등포 CGV 스타리움관에서의 첫 관람이 어찌하다보니 로맨스 물인 <호우시절>이 되었는데, 확실히 대형화면에 특화된 영화는 아니라 그 인상이 덜했을지는 모르나, 그 크기만큼은 정말 어마어마 하더군요. 그 어떤 사람이든 극장 문을 들어올 때 다들 '와'하고 들어오시더라구요 ㅎ 나무로 된 의자의 팔걸이도 고급스러워 보였습니다. 앞으로 좀 더 어울리는 장르가 상영할 때 다시 봐야할 것 같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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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그랜드오픈한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가봐야지 가봐야지 했었는데, 며칠 전 계획하지 않고 급작스레 가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문래역 쪽이 더 가까운지라 문래역에 내려서 예전 문래 CGV가던 길로 걸어가니 바로 그 뒷 건물이더군요. 역시 접근성이 그리 좋은 편은 못되지만 그럭저럭 걸어갈 만한 거리였습니다.







일단 타임스퀘어 내부에 들어가게 되면 그 엄청난 스케일이 절로 '와'하고 탄성을 지르게 되더군요. 원형으로 설계되어 높이를 그대로 실감할 수 있게 만들어지는 구조는, 미적으로 상당히 세련된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클라이브 오웬과 나오미 왓츠 주연의 <인터네셔날>에 등장했던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네요.







계획 없이 갔던거라 영화까지는 보질 못했는데, 그래도 한 번 구경이나 해보려고 CGV를 찾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입장으로서 이번 타임스퀘어가 가장 기대되었던 이유는 역시 CGV, 'The World's Largest Screen'라는 스타리움 관 때문이었죠. 영화를 보지 않아 들어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네요.




터치 스크린 방식의 티켓 발권기.





위 층에는 공연장인 아트 홀이 자리잡고 있는데 입구에는 주류 및 음료를 판매하는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더군요.









건물이 하도 넓어서 다 둘러보지는 못했으나 옥상 및 건물 중간중간 인테리어에 상당히 신경을 쓴 휴식공간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근처에 사시는 분들은 그냥 앉아 있을 곳이 많아 자주 찾기 좋을 듯 하네요.






똑딱이만 가져간 터라 좀 더 좋은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다음에 스타리움관에서 영화 감상과 함께 얼른 재방문을 하려고 합니다. 홍보만 더 열심히 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을 새로운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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