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 Docu 강정 (2011)

미안해 강정 그리고 힘내!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이유 가운데는 단순히 영화적인 호기심과 재미에서 보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관심있는 사안에 대한 정보 혹은 의견으로서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평화의 섬 제주의 강정마을에 정부가 해군기지를 세우려고하는 문제에 대해, 8명의 감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즉흥연주(Jam)를 펼친 작품 'Jam Docu 강정'은,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이유와는 조금 다른 이유와 감정으로 보게 된 작품이었다. 사실 이 작품을 대하는 내 마음을 상당히 불편했다. 불편하다는 것이 작품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강정마을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 때문이었다. 보통 잘 알지 못하고 관심없던 문제를 영화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경우는, 그 사안에 대해 오히려 더 적극적인 비판이나 강한 어조로 의견을 피력하는데에 문제가 없지만, 제주 강정마을에 대한 내 입장은 사실 조금 미약한, 아니 미안한 것이었다. 정치/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강정마을이 처한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고,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마을을 어떻게 만들어버렸는지에 대한 내용들을 대략적으로 알고는 있었으나, 그것에 그친 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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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정마을이 처한 정의롭지 못한 처우에 대해 알고 있었음에도 할 수 있는 일 혹은 한 일이라고는 그저 지난 여름휴가를 제주도로 가려다가 차마 그러지 못한 것과 SNS를 통해 관련 소식을 리트윗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휴가지 선택의 문제는 어찌보면 정말 '우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뻔히 강정마을이 처한 상황을 알면서도 더 적극적으로 돕지는 못할 망정 휴가를 '즐기러' 제주도로 가는 것은 차마 할 수 없어 제주도를 가지 않은 것이 내 미안함 표현의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안함은 이 작품을 보면서 더욱 깊어졌다. 수년을 거듭한 싸움에서 해군기지 설립이 결정된 이후 제주로 찾아온 활동가들과 외부인들에게 강정마을 사람이 던지는 한 마디, '그 때는 뭐하고 이제서야 왔느냐'는 한 마디는 뼈저리게 돌아왔다. 아예 몰랐다면 상관없었겠지만 알고 있었던 자로서의 미안함은, 이렇게 말을 꺼내는 것 조차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고개를 들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아주 이기적인 마음으로 이 작품을 보게 되었다. 고작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해보자는 취지였다. 더 많은 이들이 강정마을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이 작품에 대한 글을 남기는 것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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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가 정말 강정에 필요한가 아닌가의 정치/사회적 맥락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냥 이 사안을 알게 된 외부인으로서 강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오히려 단순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이었다. 환경파괴와 개발의 논리는 항상 부딪히게 되는데 개발의 논리가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부분은 환경파괴의 위험성을 감수할 정도의 개발 논리가 수긍되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구럼비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왜 정부의 해군기지 건설이 문제인가?'라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변하는 것보다는, 그냥 강정마을과 구럼비를 보여준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이것이야 말로 다른 어떤 논리보다도 강한 설득력을 보여준다. 구럼비의 천연 해안에서 마을 사람들이 바위 위에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이나, 강정마을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생각하고 있는 강정마을에 대한 모습은,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에 대해 수많은 어려운 말보다 강한 인상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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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 아름다운 강정마을에 군사적이고 전쟁과 관련된 해군기지를 굳이 세워야 하는 논리가 절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사안을 두고 마을 사람들 간에 찬성과 반대로 편이 나뉘게되 결과적으로 더 큰 상처를 남긴 것이 가장 커다란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작품에도 담겨있지만 피를 나눈 형제 간에도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이제는 서로 말조차 섞지 않는 관계가 되었거나, 정확히 마을이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서로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현실을 만든 것이야 말로 강정마을에 가장 큰 상처일 것이다. 누가, 왜 이런 상황을 조장했는지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과 관계를 통해 형성된 '마을'과 '사람들'의 가치를 단순한 논리로 대응하는 모습은, 강정마을의 가치는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개발 논리만 내세우는 것과 그대로 겹쳐진다. 이 상처는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해군기지가 건설되든 그렇지 않든 이미 깊어진 강정마을 사람들 간의 상처는 과연 아무렇지 않게 치유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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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강정마을 문제의 핵심은 그 자체에도 있지만, 정부나 권력이 사안을 바라보는 수준과 시선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강정마을의 문제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이것이 단순히 제주도의 어느 마을에만 국한 된 문제였다면 아마도 이렇게 영화화 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 정도의 관심을 갖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강정마을을 더, 더 응원할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어쩌면 나를 대신해 정의롭지 못한 일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보낼 수 있는 것이 고작 응원이라면, 응원이라도 먼저 해야겠다.

평화가득 강정마을, 응원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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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愛 (No Name Stars)

우리의 오월은 끝나지 않는다



내게 있어 5.18 광주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사실이다. 나는 광주 사람도 아니고 당시를 치열하게 겪은 세대도 아닐 뿐더러, 직접적으로 가까운 이들이 피해를 입거나 한 것도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좋은 부모 아래서 그 어떤 슬프고 참혹한 역사보다도 많은 자료와 이야기들을 전해들었던 터라, 5.18 광주는 결코 낯설지가 않았다. 처음 광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당시의 참혹한 참상이 그대로 담겨있는 사진들과 책들을 통해서 였는데, 이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너무 어렸었기 때문에 어떠한 감정이 들기 보다는 그저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다. 그 이후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광주와 그 배경에 있는 정치적인 이야기, 그리고 그 곳에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스러져간 광주시민들, 더나아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보고 알아갈 기회를 갖을 수 있었다. 이제와 새삼스레 드는 생각은, 이런 기회들이 내 인생에 가치관을 형성하는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광주의 진실을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이후 정치적인 잣대를 세우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너무 이 진실 속에서 살아온 삶을 당연하게 여겨왔지만, 언제부턴가 진실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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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1년 5월. 나는 또 하나의 오월 광주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오월愛'를 보게 되었다. 사실 처음 이 작품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5.18 광주의 한 가운데에서 투쟁했던 이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보이지 않게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아주머니들, 어머니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오월애'에 그런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집중을 하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1980년 5월 광주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의 말들을 통해, 2010년 광주를 다시 돌아보는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이미 광주와 관련된 여러 다큐, 인터뷰, 영상들을 접해왔던 나로서는, 익숙한 얼굴들도 있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새롭게 접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 과거사에 왜 눈물을 흘리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한 마디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의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 번째로 이것은 우리의 역사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다. 현 정권에 들어서서 다시금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아진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에는 1980년대 피흘려 싸운 광주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즉, 이것은 결코 남의 일,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우리의 일이며, 현대를 사는 모든 이들은 적어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따른다면 오월 광주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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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아야할 과거나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가 관련된 나의 일이라는 점에서 5.18 광주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살아가는 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참으로 부끄럽고 화가 나는 일이지만, 아직도 오월 광주의 슬픔과 희생이 치유받거나 존중받지 못한 채 잊혀져야할 과거사로 점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5.18은 혁명으로 인정받고, 희생자들은 민주투사가 되었지만 아직도 참혹한 일들을 저질렀던 범죄자들은 죄값을 치르기는 커녕, 사과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슬픔을 고스란히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과는 다르게 부유한 삶을 살고 있으며, 이들은 놀랍게도 아직까지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감정적으로 보자면 그들이 한 짓은 절대 용서받기 어려운 일들이겠지만, 이렇다하더라도 이 '용서'라는 것은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고개숙여 사죄할 때나 가능한 일일텐데, 오히려 시간이 갈 수록 가해자가 자신의 가해사실을 점점 지워가고 있는 지금에서 어떻게 '용서'라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부끄럽고 화가나지만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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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광주의 슬픔과 눈물은 아직도 흐르고 있다. 당시를 살았던 이들은, 함께 싸우다 먼저 자신을 던져 희생했던 이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보답하고자, 자신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오월 광주를 끌어 안은 채 또 다른 투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흘릴 눈물마저 남아있지 않은 이들에게, 이 작품을 보며 흐르는 내 눈물조차 죄스러울 정도로 현대를 사는 우리는 아직도 이들에게 너무 소홀했고, 사회와 정부는 또 다시 이들을 폭도로 내몰 궁리만 하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들의 영령을 위로하기는 커녕, 분노하게 만드는 일들만 자행하는 현실이 과연 제대로 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 흐르는 눈물을 조심스럽게 감출 수 밖에는 없었다.


사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 '오월愛'는 광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이들이라면 지난해 도청건물 철거를 두고 벌어진 일들만 제외하면 거의 알고 있던 사실들을 담고 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건, 그렇다고해서 결코 이 영화가 갖는 의미가 퇴색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받아들이는 이들에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에게 '오월愛'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다시금 책임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광주 시민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나로서는, 적어도 내가 안다고 해서 여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미약한 노력이라도, 5.18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과 이를 접해볼 기회가 없었던 어린 세대들, 그리고 더 나아가 오해로 인해 잘못된 사실들로 알고 있는 이들을 위해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전해야겠다는 작은 결심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것은 결국 나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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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오월 광주가 아닌 우리의 광주. 그리고 우리의 오월은 끝나지 않는다. '끝나지 않았다'로 한정 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비관적인 미래로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의미를 담아 '끝나지 않는다'로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하겠다.


1. 보통 때 같으면 슬픔이 더 깊었을 텐데, 이번에는 사실 분노가 더 치밀어 올랐다. 이유는 단 하나. 아직도 가끔씩 TV에 등장하는 29만원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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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분식 (Shared Streets, 2009)
성장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지켜보기


태준식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샘터분식>을 좋은 기회에 시사회를 통해 먼저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영화사 시네마달에서 제작하거나 배급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몇 편은 제대로는 아니더라도 분위기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태준식 감독의 전작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그럼에도 그의 신작 <샘터분식>이 눈에 들어왔던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홍대'라는 특수성 때문이었습니다. 몇 년전 부터 홍대를 걸어서 10분이면 갈 거리에 살게 되면서, 이 거리는 구석구석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매우 익숙한 곳이 되었고, 그 문화와 그 분위기에 흠뻑 취해 앞으로도 한 동안은 살고 싶은 곳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홍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이 <샘터분식>이라는 영화에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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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은 홍대라는 지역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작게는 세 명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샘터분식'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최영임)이고 두 번째는 정치에 관련된 당원으로서 자신이 하고자 하고 믿고 있는 가치관을 운동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청년(안성민), 마지막은 힙합 레이블이자 크루인 소울컴퍼니(Soul Company)의 일원인 힙합 아티스트 제리 케이 (김진일)입니다. 얼핏 공감대가 형성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이들의 공통점은 역시 '홍대'라는 공간 그 자체입니다. 이들 모두 이 홍대 마포 일대를 자신들의 주 생활 공간으로 삼고 있으며, 어찌되었든 이 곳에서 자신이 꿈을 이루려는 인생의 도전을 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했을 때는 포스터나 홍보 문구에 나와있는 것처럼 홍대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그 거리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소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 가벼운 작품일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갖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태준식 감독은 '본래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이 작품은 본인에게 있어 조금은 쉬어 가는 의미에서 평소 관심이 많았던 홍대라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했지만(그리고 전작들에 비하자면 물론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색깔이 덜했던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저 거리 위의 소소한 이야기를 예상했던 저에게는 역시나 쉬어가려고 했어도 푹 쉬지는 못한 듯한 감독의 사회적 메시지가 넘쳐나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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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영화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읽은 것은 결코 세 명의 주인공 중 한명이 민노당원(현재는 진보신당 당원)이라서는 아니에요. 물론 평소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관객이라면 이런 주인공의 직업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따지고 보니 이 영화의 주요 테마들인 홍대, 정치, 힙합 그리고 소울컴퍼니 모두가 평균 이상의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라서 그런지 각개의 이야기가 모두 흥미롭게 다가 온 경우였습니다. 민노당이 진보신당으로 변화하기 직전에 겪었던 갈등을 아주 살짝 엿볼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영화 속에서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점점 작업 환경이 좋아진 소울컴퍼니의 변화 그리고 자주 가는 거리에 항상 있었던 샘터분식이라는 가게에 이르기까지, 하나 같이 관심사였죠.

그런데 냉정하게 따지고보면 홍대라는 공간을 살고 있는 이 세 명 주인공의 이야기는 약간 별개의 이야기로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처럼 모두 관심사인 경우에는 조금 덜 할듯 하지만,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다던가, 힙합에는 전혀 문외한이거나, 홍대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면 이 인물들 간의 접점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으며, 자신만의 스펙트럼에서 이야기를 해오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한 공간에서 약간은 억지스럽게 만나는 듯한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에 쉽게 동화되기 어려울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세 명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을 것이 아니라 한 명만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갔어도 좋았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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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이 영화가 나쁘지 않았던 건, 이런 별개로 느껴지는 이야기가 왜 하나의 이야기로 묶였는가를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해법을 찾을 수 있을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샘터 분식>을 보고 느낀 가장 큰 인상은 바로 '성장하는 것과 머물러 있는 것, 혹은 성장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시간의 변화, 계절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설명하려하는 장면들이 많은 편입니다. 홍대 앞 도로를 사계절에 따라 촬영한 컷이나, 해가 뜨고 지고를 표현한 컷 등 무언가 계속 흐르고 있다는 배경을 설명하려 한다는 것이죠.

이런 흐름 속에 살고 있는 상반되는 두 가지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세 명의 주인공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이죠.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은 매우 정치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첫 장면부터 한창 촛불로 뜨겁던 종로 거리를 비추거나,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 그리고 대통령의 여러 활동 들, 이 외에 여러 사회 문제들로 채워지는 영화 중간 중간의 배경들은, 그것들이 정치적인 것이 불편하다기 보다는 그 만큼 불편한 현실이 너무도 우리 현실에 가깝게 와닿아 있다는 것을 달리 체감하게 합니다. 이 영화가 성장과 성장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의 차이점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제리 케이는 힘든 병을 이겨내고 녹녹치 않은 언더 힙합씬에서 자신의 솔로 앨범을 발매하였고, 꾸준히 사회운동을 하던 안성민씨는 자신이 숙원사업으로 여겼던 '민중의 집'을 드디어 열어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었으며, 샘터분식의 주인인 최영임씨에게도 큰 변화는 없었던 듯 하지만 달리 보면 그녀에게는 하루하루 아들을 키우고 가족을 부양해 가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성장이었다고 볼 수 있겠죠.

이렇게 주인공들이 모두들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은 발걸음이라도 성장한 것에 비해, 이를 둘러 싸고 있는 우리내 정치, 사회 현실은 성장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더욱 퇴화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이 사실이죠. 영화 속에 삽입된 뉴스 속 앵커의 멘트들만 들어봐도 발전하기 보다는 점점 암울해지는 사회가 현실로 느껴집니다. 아마도 태준식 감독은 은연 중에 라도 이런 것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홍대라는 하나의 지역과 단 세 명의 인물들의 삶에 국한하여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지켜보았는데도, 이렇듯 변화와 성장의 움직임이 있었는데 정작 이 거대한 사회는 이런 구성원의 변화의 속도에 발 맞추고 있지 못하다는 메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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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로 더 콰이엇을 비롯해 소울 컴퍼니의 MC들과 음악을 BGM으로 계속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평소 소울컴퍼니의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이들의 음악과 삶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흥미롭더라구요.

2. 워낙에 홍대 구석구석이 촬영된 터라 (그것도 오랜 시간) 혹시나 거리를 지나던 '내'가 나오지 않을까도 싶었는데, 다행인지(?) 나오지는 않더군요 ㅎ

3. 홍대 전철역 앞에서 옥수수 파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깜놀했습니다. 평소 모습만 보다가 영화 나오신다고 화장하신 모습은 정말 몰라보겠던데요 ^^;;

4. 정식 개봉은 11월 26일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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