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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올해의 영화


2010년 한 해도 참 많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몇 달을 고대하여 결국 보게 된 기대작들도 있었으며, 예매하기 버튼을 누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볼까말까를 고민했던 작품도 있었죠.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영화는 거의 보지 않고 어지간하면 영화의 장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성격이라 그런지, 올해도 참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다른 분들과 평이 극으로 갈려 '아, 이제 내 취향은 점점 대중과 멀어지는구나'라는 쓸쓸함과 쾌재를 동시에 누렸던 작품도 있었고, 반면 많은 분들의 동의하에 서로 누가 더 이 영화를 사랑하는 지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발산하게 되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2010년 올 한해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이른바 '올해의 영화'를 꼽아보게 되었습니다. 뭐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 작성된 리스트이며, 순서는 순위없이 개봉순서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찰리 카우프만 감독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를 걱정했던 것처럼, 공드리 없는 카우프만도 그 걱정의 정도는 조금 덜했으나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결과는 대만족, 아니 대압도된 느낌이었습니다. 카우프만은 항상 인간 존재와 마음의 심연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본인이 감독을 맡게 된 이 작품에서는 드디어 그 심연의 끝까지 가보려 합니다. 영화란 무릇 이야기가 주는 감동도 있지만 본인만의 것으로 느껴질 때 더 큰 감동이 오기 마련인데, 카우프만의 심연에서 나를 발견하는 동시에 이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 중 한편으로 꼽을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사실 분석해볼 만한 거리가 참 많은 작품임에도, 완전히 카우프만의 세계에 공감한 탓에 굳이 분석할 필요성을 못느낄 정도였죠. 찰리 카우프만의 작가적 야심이 정말 대단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내 안을 카우프만이 훤히 다 꿰뚫어보고 있는 듯해 한없이 위로받고만 싶었던 작품이기도 했구요.




(500)일의 썸머 ((500)Days of Summer)
마크 웹 감독

조이 데샤넬의 열혈팬이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이긴 했지만, 그녀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던 좋은 드라마였죠.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일들을 진부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방식, 알콩달콩 하지만 현실적이고 씁쓸함과 희망을 동시에 주는 이 작품은, 몇 년간 본 로맨스 영화들 가운데 손꼽을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내게도 있었던 '썸머'를 떠올리게도 했구요. 앞으로도 조이 데샤넬과 조셉 고든-래빗의 배우로서의 매력을 보고 싶을 때 만큼이나, 연애에 관해 떠올려야 할 때면 이 작품을 찾아보게 될 것 같네요.






밀크 (Milk)
구스 반 산트 감독

구스 반 산트의 2008년 작 '밀크'는 동성애자로서는 미국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되었던 하비 밀크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구스 반 산트가 언젠가는 만들었어야 할 운명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아직도 몇몇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단순히 동성애 영화라고만 생각하기도 하는데, '밀크'야 말로 보편적인 정서와 동성애적 의미를 모두 완벽하게 감싼 경지에 이른 작품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과거를 살았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구스 반 산트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와 공감할 수 있도록 영화를 구성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를 추억하는 것은 곧 현실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작품이기도 해요. '밀크'를 보고 느꼈던 가장 큰 생각이라면, '과연 나는 이 만큼 뜨겁게 살고 있는가?'라는 거였죠.

(2008년 작이지만 국내에는 2010년 2월 개봉했기에 포함했습니다)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마틴 스콜세지 감독

'셔터 아일랜드'는 올 상반기 가장 뜨거웠던 작품 중 하나였죠.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결말의 방향성의 여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나서 이것저것 이야기해볼 것이 많은(그러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디카프리오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스콜세지가 만든 미장센에 감탄했는데, 올 상반기 호불호가 가장 크게 갈렸던 '셔터 아일랜드'에 대한 저의 견해는 물론 '호' 입니다. 나중에 블루레이가 출시되어 다시 보게 된 영화는, 스토리 자체 보다는 스콜세지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 무엇을 이루려고 했는지에 더 반응하며 보게 되더군요. 






시리어스 맨 (A Serious Man)
코엔 형제 감독

'파고'를 비롯한 코엔 형제의 예전 영화들도 물론 좋아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의 작품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번 애프터 리딩'도 좋았었는데, 이런 취향에 정점을 찍은 작품이 바로 '시리어스 맨'이었죠. 이 작품을 보면 볼 수록 '아, 진짜 코엔 형제는 천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이렇게 삶이라는 것에 대해 유머와 진지함의 완벽히 조화를 이뤄가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영화적 재미마저 주는 이들의 영화기술은, 날로 대단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많이 배웠던 작품이었어요. '주차장을 보세요!'는 올해 최고의 대사 중 하나.






킥 애스 (Kick-Ass)
매튜 본 감독

'힛 걸' 이라는 인기 캐릭터와 더불어 이를 연기한 클로 모렛츠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작품 '킥 애스'. '다크 나이트' 이후 힘을 잃었던 (아니 겁먹었던) 히어로물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동시에, 기본적인 것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기도 했죠. 웃어 넘길 수 없는 것과 그냥 웃어 넘겨도 괜찮은 것이 같은 것일 때에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어린아이가 폭력적으로 묘사되는 것에 논란을 갖기 이전에, 그렇담 '왜? 아이여야만 했나?'를 떠올려본다면 좀 더 작품을 이해하는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시 (Poetry)
이창동 감독

21세기에 영화를 통해 시를 쓸 수 있는 감독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적어도 국내에서 이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내공을 갖고 있는 감독은 이창동 감독 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사실 그의 대표작들로 꼽히는 '박하사탕' '오아시스'등은 너무 자극적이고 과한 느낌이 있어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시'를 보고나서는 '아, 이 사람 정말 차원이 다른 시를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요. 현재까지 개인적으로 이창동 감독 작품 중 베스트는 단연 '시' 입니다.





인셉션 (Inception)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올해 영화 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린 작품이라면 단연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 '인셉션'의 맹점은 꿈의 단계별 구조 분석과 그 상관관계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관객이 바로 그 구조를 분석하고 싶게 끔 만드는 구조의 특성에 있다고 생각되네요. 예전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썼을 때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느 것이 정답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정답이 되는 구조적 특성을 가졌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놀란 스스로 말했거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 답이 아닌 그 외의 답들도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구조를 잘 '설계'했다는 거죠. 설계 자체에 대한 영화인 동시에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했으며,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으로도 코브의 감정선에 공감할 수 있어서 감동적이기까지 했던 영화였어요.




토이 스토리 3 (Toy Story 3)
리 언크리치 감독

사실 영화를 보기 전 부터 울거라고 생각은 했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예상되는 줄거리를 가졌더라도 관객을 100% 울리고 마는 픽사인데, 아무렴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난감들 이야기의 마무리를 그냥 적절히 정리할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죠. 사실 100% 마음에 드는 마무리는 아니었지만 전편들로부터 이어져온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눈물은 또 한 번 어쩔 수가 없더군요. 






옥희의 영화 (Oki's Movie)
홍상수 감독

올해 홍상수 감독은 '하하하'와 '옥희의 영화'라는 이른바 '홍상수 월드'의 영화 두 편을 내놓았죠. 두 편은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또 전혀 다른 작품이기도 했는데, 둘 모두 리스트에 올리려고 하다가 어렵게 어렵게 '옥희의 영화'를 택했네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수 많은 명장면 중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폭설 후의 강의 실 대화 장면이었어요. 뭐랄까 이 장면은 마치 판타지에 가까운 장면이었는데, 나도 저런 순간을 만나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치는 한 편, 홍상수 월드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장면이라 절로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는 장면이기도 했죠. 어쨋든 저는 홍상수 월드의 신봉자입니다. 예전에는 아니었지만요.






엉클 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발음하기도 어려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이라는 이름은 씨네필들 사이에서 요 몇해 가장 뜨거운 이름 중 하나였죠. 사실 그럼에도 저는 그의 전작들을 거의 보질 못했었는데, 이 작품 '엉클 분미'가 되어서야 비로서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어요. 첫 느낌은 물론 '어렵다'였어요. 지금 생각해도 이 작품은 결코 쉬운 화법의 영화는 아니에요. 간단히 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보기엔 굉장히 깊은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는 동시대의 감독 가운데 보기 드문 화법을 가진 감독을 만난다는 경험과 '엉클 분미'에서 보여주었던 공존에 대한 경험, 그리고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고차원'의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웠던 작품이었어요.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데이빗 핀처 감독

데이빗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는 국내에서는 마치 최연소 억만장자의 성공담 처럼 홍보되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그리고 페이스북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로 여겨지는 바람에 생각보다 큰 바람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페이스북'에 대한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하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데이빗 핀처의 놀라운 연출력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데이빗 핀처의 작품들은 모두 좋아하고 특히 '조디악'을 좋아하는 편인데, '소셜 네트워크'는 '조디악'과는 또 다른 지점의 경지에 있는 작품이었어요. 트렌스 레즈너의 음악은 올해의 사운드트랙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었구요. 아, 참고로 원제는 'The Social Network'로 별로 쿨하지 못하지만, 국내 제목은 '소셜 네트워크'로 매우 쿨한 편입니다.





그 밖에 아쉽게 리스트에 들지 못한 작품들로는 올해 가장 인상깊게 본 다큐멘터리 형식(하긴 이 작품을 완벽한 다큐멘터리로 보긴 좀 어렵죠)의 '맨 온 와이어'도 있고, '예언자' '인 디 에어' '하하하' '골든 슬럼버' '소라닌' '검우강호' '부당거래'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검우강호'는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갈 수록 또 보고 싶었지는 작품이고, '소라닌'은 개인적으로 올해의 청춘 영화였으며, '골든 슬럼버' 역시 이사카 코타로와 나카무라 요시히로 콤비의 신작으로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구요.

2010년 한 해도 참 좋은 영화들을 극장에서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2011년 한 해도 극장에서 만날 새로운 영화들에 벌써부터 두근두근 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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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는 천재다. 뭐 새삼스럽겠느냐 만은 그들의 신작 ‘시리어스 맨’을 보고서는 삶을 꿰뚫는 통찰력과 이를 영화로서 어떻게 표현해 내는가에 대한 기법, 그리고 무엇보다 탁월한 이야기 꾼인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는 없었다. 그들의 작품은 사실 거의 실망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모두 인상 깊게 보았었는데, 최근 작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 나서는 코엔 형제의 영화가 한 단계 더 성장하여 장인의 경지에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번 애프터 리딩’을 통해서는 녹슬지 않은 그들의 재치와 블랙코미디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감히 따라올 자가 없음을 역시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번 애프터 리딩’을 보고는 코엔 형제의 쉬어가는 작품 정도로 생각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코엔 형제만이 할 수 있는 블랙 코미디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런 코엔 형제의 시작이었음에도 ‘시리어스 맨’에 대한 기대는 사실 그들의 네임 벨류에 비하면 조금 덜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어쩌면 ‘번 애프터 리딩’을 보러 갈 때의 기대와 비슷한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난 ‘시리어스 맨’은, 아니 보는 내내 ‘시리어스 맨’은 참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엔 형제는 또 어떤 걸작을 만들고야 만 것인가?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타이틀롤 이전에 독립적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슷한 이디시 설화를 쓰려고 했던 코엔 형제는 마땅한 이야기를 찾지 못해 그냥 자신들이 그럴 듯한 진짜 이야기를 하나 짧게 쓰기로 한다. 이 이디시 설화는 뒤에 등장하는 본격적인 이야기와는 직접적으로 전혀 연관이 없지만, 이 도입부를 통해 ‘시리어스 맨’은 더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 역할을 서두에 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을 설화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야 말로 코엔 형제 만의 번뜩이는 재치이자 기발함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영화의 주인공인 래리 (마이클 스털바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는 곧 대학의 종신 재직권 심사를 앞두고 있고, 아들은 성인식을 치르게 될 예정이며, 옆집 사는 남자가 자꾸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침범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이고, 사회화가 부족한 동생이 조금 걱정거리이긴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런데 영화는 래리의 소개를 다 마치기도 전에 그의 주변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하나씩 꺼내어 놓는다.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은 한국 학생은 낙제만은 면하게 해달라며 슬쩍 돈봉투를 남기고 가버리고, 아내는 오랫동안 이웃으로 살아왔던 '싸이 에이블맨'과의 관계 때문에 이혼을 요구하며, 동생은 도박 혐의로 경찰들이 주목하고 있고, 큰 문제없이 해결될 것만 같았던 종신 재직권 심사에 악영향을 미칠 만한 악의적 편지들이 도착하는 등 너무 갑작스럽게 많은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정작 래리는 아무것도 '잘못 한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래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마치 그를 둘러싼 주변은 모두 래리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 냥 그를 둘러싸고 조여온다. 래리는 여기서 심각해(Serious)진다.




래리가 처한 상황과 그의 캐릭터를 간접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그의 집 안 구성과 디자인 적인 요소다. 이 집안의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의상 컨셉이 있는데, 딸은 항상 화려한 꽃무늬 잠옷을 입고 나오고, 방안의 벽지 역시 모두 다른 화려한 무늬를 가지고 있고, 집 안의 커튼 역시 방 마다 모두 다른 각각의 화려한 무늬를 하고 있다. 아내 역시 매번 다른 체크 무늬 의상을 입고 있다. 이런 이미지는 일종의 강박에 관한 암시다. 또한 여러 가지 패턴들 속에 살아가는 한 인물에 대한 강박이기도 하다. 관객들에게 강박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매사에 진지한 주인공과는 정반대되는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패턴으로 뭉쳐있는 집 안의 이미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래리라는 캐릭터에 공감지수를 드높여 준다.

(이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래리가 처한 이 갑작스럽게 닥쳐온 재앙은 하나같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아내는 '싸이'와의 관계 때문에 래리와 이혼하기를 바라지만 싸이를 사랑해서도, 싸이와의 관계가 깊어 져서인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냥 위자료를 받아내려는 속셈으로 받아들이기에도 허술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 아내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아내 스스로도 '내 말이 말은 안되지만 이혼은 해야 돼'라고 느껴질 정도다. '싸이'는 또 어떤가. 그의 태도는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싸이는 마치 래리를 아들처럼 감싸 안으면서 래리에게 왜 이혼을(서약서를)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편안하게 느껴진다. 싸이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그의 말이 다 옳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의 말만 놓고 보자면 이건 전혀 설득이 될 리 없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논리들이다.




낙제점을 면하게 해달라며 돈을 놓고 갔던 한국 학생 '클라이브'의 논리도 말이 되지 않는다. 돈을 두고 간 것을 놓고 래리와 클라이브가 벌이는 대화는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다. 그런데 더 나아가 클라이브의 아버지는 자신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소송을 건다고 집으로 찾아온다. 이 아버지 역시 클라이브와 래리의 아내의 말처럼 스스로가 '내 말엔 논리가 없다'라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래리가 항상 불편하게 생각하던 옆 집 남자는, 클라이브의 아버지가 자신을 협박하는 것이 아니냐며 도움의 한 마디를 건 낸다. 래리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맞다. 래리 뿐만 아니라 모든 관객이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래리는 매사에 '진지한 (Serious)' 남자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한 래리는 랍비를 찾아가 도움을 받기도 한다.




래리가 만나게 되는 세 명의 랍비에 관한 이야기는 섹션으로 정리되어 보기 좋게 제공되는데, 이 세 명의 랍비에게서 듣게 되는 말들 (처하게 되는 상황) 역시, 다들 불확실하고 이상하기 짝이 없다. 본래 보기로 했던 랍비가 자리를 비워서 대신 만나게 된 젊은 랍비는 래리의 말을 다 듣고는 그럴 땐 그저 주차장을 보라' 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두 번째 랍비는 이빨의 관한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는데, 무언가 명쾌한 해답을 들려줄 것만 같았던 이 이야기 역시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만다. 무언가 답을 찾으려던 래리는 이 두 번째 랍비 와의 만남에서도 이를 찾지 못하고 결국, 최고의 랍비인 마르샥 과의 만남을 어렵사리 시도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결정적인 만남은 결국 이뤄지지도 않는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왜 래리는 랍비를 만나려고 했느냐'라는 점이다. 앞서 물리학자이지만 수학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불확실성의 이론을 엄청나게 긴 수학적 공식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래리의 성향으로 미뤄봤을 때, 래리라 랍비를 찾게 된 이유는 역시 '정답'을 얻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겠다. 마르샥을 간절히 만나려고 했던 것은 본인 스스로 마르샥 개인을 원해서가 아니라, '마르샥 = 정답'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래리에게 마르샥과의 만남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대했던 정답을 마르샥이 갖고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현실은 이렇듯 생각대로, 단계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돌려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글에서는 미처 다 언급을 못했지만 래리의 아들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그의 이야기 역시 무언가 인과응보는 일어나지 않고 반드시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 필요한 순간에서 또 한 번 생각지도 않은 요인으로 인해 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마되는 것을 겪게 된다. 즉, 래리의 아들의 이야기도 '정답은 없다'라는 것과 '생각한대로 되지 만은 않는다' 라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스포일러 끝)




프롤로그에 사용된 이디어 시퀀스처럼, 영화는 내내 이 언어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통해 주제를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국인 학생 클라이브의 너무나 외국인스러운 딱딱한 발음과 억양은 그를 이해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었으며, 아들 대니가 친구들과 사용하는 언어가 대부분 욕설로 이루어져 있는 것 역시 래리와 대니의 관계의 거리를 보여주는 장치이며, 래리가 아내와의 이혼을 위해 이혼증명서라는 뜻의 랍비 언어를 매번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 역시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서로간의 불확실성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안테나를 바로 잡으러 올라간 지붕 위에서 예상 못한 상황을 만나게 되는 것 역시 우연을 가장한 불확실성이다.




사실 영화는 보는 중간에는 키득 거리며 보는 시간이 더욱 길었지만 (마치 홍상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볼 때와 비슷한 경우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삶의 대한 깊이가 더 와 닿는 작품이 ‘시리어스 맨’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 래리는 너무 진지한 사람이라 (영화가 말하는 진지함은 '잘못됨'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임' 이다), 젊은 랍비의 말처럼 그저 관조하지 못했지만, 코엔 형제가 이 영화를 그리는 방식은 분명 관조다. 시리어스 맨인 래리를 주인공으로 두고 래리에게 '그냥 주차장을 한 번 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주차장을 보세요'라는 대사는 이 영화의 명대사다 (웃음에서나 깊이에서나 말이다)

DVD 메뉴






DVD Quality

‘시리어스 맨’을 극장에서 보았을 때의 느낌은 ‘와, 디지털 상영도 아닌데 상당히 화질이 좋구나’라는 것이었는데, DVD의 화질에서도 그런 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본래의 촬영 소스가 훌륭하다 보니 마치 얼핏 얼핏은 HD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들 정도다. Super 35 소스를 디지털 4K로 마스터한 영상의 장점이 DVD에서도 조금이나마 확인된다고 볼 수 있겠다 (블루레이였다면 아마도 훨씬 더 좋은 영상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작품의 성격으로 미뤄봤을 때 국내 블루레이 출시는 어렵다고 봐야겠다)





돌비 5.1채널을 지원하는 사운드의 경우, 특별한 효과음이나 사운드 적인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는 작품은 아닌지라 큰 메리트는 없지만, 카터 버렐의 사운드 트랙들과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곡들의 전달 시에는 의외(?)로 괜찮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특히 ‘시리어스 맨’은 개인적으로 사운드 트랙을 해외주문을 통해 구매했을 정도로 인상적인 음악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DVD에 수록된 사운드 퀄리티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DVD Special Features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DVD에는 비교적 간단한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양에 비해서는 질적인 면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Becoming Serious‘는 제작과정 영상을 담고 있는데, 코엔 형제의 인터뷰 및 배우들이 생각하는 영화에 대한 생각들이 담겨 있어, 코멘터리의 부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해 준다.





‘Creating 1967‘에서는 영화의 배경이 된 1967년을 재현하기 위해 사용된 미술적인 요소들을 중심으로, 당시의 의상이나 사회 배경으로 인한 설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나면 1967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그 무엇보다 의상을 통해 표현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앞서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영화의 메시지적인 부분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Hebrew And For Goys’에서는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히브리어 용어들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수록되었는데, 대략 감으로만 인지하고 넘겼던 히브리어 용어들에 대한 자세한 풀이를 확인할 수 있다. 3가지 부가영상에는 모두 한국어 자막이 지원된다.



‘주차장을 보세요~’

총평

‘시리어스 맨’은 코엔 형제의 팬들 사이에서만 잠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긴 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같이 더 큰 화제가 된 작품들과 비교해 보아도 철학적인 면에서는 전혀 뒤질 것이 없는, 그야말로 코엔 형제다운 명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영화적 퀄리티에 비해 DVD의 가격은 몹시 매력적인 수준으로 발매되었으니, 코엔 형제의 팬이라면 무조건 소장해야 하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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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상반기 좋은 영화 결산


올 상반기에도 참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지난해에 비해 좀 더 작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볼 기회가 적었다는 것인데, 하반기라도 부지런히 챙겨보도록 좀 더 노력해야겠네요. 지금까지는 결산을 할 때 항상 '베스트'라는 표현을 쓰곤 했는데, 뭐 개인적인 베스트라는 의미이니 크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 보다는 그냥 내가 좋았던 '좋은 영화'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그렇게 선정한 상반기 '좋은 영화' 들을 한번 짧게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당연히 작품 간의 순위는 없으며 순서는 개봉 역순이며, 각각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해당 영화의 리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찰리 카우프만 감독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를 걱정했던 것처럼, 공드리 없는 카우프만도 그 걱정의 정도는 조금 덜했으나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결과는 대만족, 아니 대압도된 느낌이었습니다. 카우프만은 항상 인간 존재와 마음의 심연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본인이 감독을 맡게 된 이 작품에서는 드디어 그 심연의 끝까지 가보려 합니다. 영화란 무릇 이야기가 주는 감동도 있지만 본인만의 것으로 느껴질 때 더 큰 감동이 오기 마련인데, 카우프만의 심연에서 나를 발견하는 동시에 이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 중 한편으로 꼽을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사실 분석해볼 만한 거리가 참 많은 작품임에도, 완전히 카우프만의 세계에 공감한 탓에 굳이 분석할 필요성을 못느낄 정도였죠. 







(500)일의 썸머 ((500)Days of Summer)
마크 웹 감독

조이 데샤넬의 열혈팬이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이긴 했지만, 그녀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던 좋은 드라마였죠.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일들을 진부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방식, 알콩달콩 하지만 현실적이고 씁쓸함과 희망을 동시에 주는 이 작품은, 몇 년간 본 로맨스 영화들 가운데 손꼽을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나의 '썸머'를 떠올리게도 했구요.






맨 온 와이어 (Man On Wire)
제임스 마쉬 감독

그냥 포스터에 이끌려 보게 되었던 '맨 온 와이어'는 다큐라서 주는 흥미로움과 다큐답지 않은 극적인 요소가 완벽하게 결합한 작품이었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주는 힘과 이를 그리는 방식의 진정성이 뒷받침 하는 가운데, 마지막 그 찰나의 순간의 경험은, 실제 이를 경험한 필리페 페티에 그것에는 절대 못미치겠지만 그래도 그 찰나를 스크린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생생하게 뇌리에 남았네요.






예언자 (Un Prophète)
자크 오디아르 감독

'예언자'는 오랜 만에 본 무게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전체적인 분위기나 범죄를 다루는 방식, 그 안에 캐릭터를 넣은 방식이 회색 빛이라 좋았죠. 특히 '과정'을 그린 좋은 텍스트라고 생각되네요. 제목이 주는 강렬함, 그리고 그로 인해 유추할 수 있었던 몇 가지 것들도 이야기거리가 되었었고. 한 번쯤 다시 보아도 좋을 것 같네요.






인 디 에어 (Up in the Air)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

올 상반기 극장에서 본 작품들 가운데 취향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쉽게 권할 만한 좋은 작품을 꼽자면 제이슨 라이트먼의 '인 디 에어'를 첫 번째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주노'를 통해 평범하지만 진리를 그렸던 그답게, '인 디 에어'에서는 좀 더 깊은 삶의 얘기를 한 남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해하기 쉽게 그려냅니다. 조지 클루니라는 배우의 역량이 백분 발휘된 작품이었죠.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마틴 스콜세지 감독

'셔터 아일랜드'는 올 상반기 가장 뜨거웠던 작품 중 하나였죠.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결말의 방향성의 여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나서 이것저것 이야기해볼 것이 많은(그러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디카프리오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스콜세지가 만든 미장센에 감탄했는데, 올 상반기 호불호가 가장 크게 갈렸던 '셔터 아일랜드'에 대한 저의 견해는 물론 '호' 입니다. 






시리어스 맨 (A Serious Man)
코엔 형제 감독

'파고'를 비롯한 코엔 형제의 예전 영화들도 물론 좋아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의 작품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번 애프터 리딩'도 좋았었는데, 이런 취향에 정점을 찍은 작품이 바로 '시리어스 맨'이었죠. 이 작품을 보면 볼 수록 '아, 진짜 코엔 형제는 천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이렇게 삶이라는 것에 대해 유머와 진지함의 완벽히 조화를 이뤄가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영화적 재미마저 주는 이들의 영화기술은, 날로 대단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많이 배웠던 작품이었어요.







공기인형 (空気人形)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실 이 리스트에 추가할까 말까 끝까지 고민했던 작품 중 하나가 바로 '공기인형'이었는데, 돌이켜봤을 때 다른 작품들에 비해 남는 잔상이나 깊이는 덜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세계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서 (그리고 팬으로서) 또 한번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어서 최종적으로 리스트에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보다는 오히려 그 '공기'가 더 매력적인 작품이었죠. 







킥 애스 (Kick-Ass)
매튜 본 감독

'힛 걸' 이라는 인기 캐릭터와 더불어 이를 연기한 클로 모렛츠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작품 '킥 애스'. '다크 나이트' 이후 힘을 잃었던 (아니 겁먹었던) 히어로물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동시에, 기본적인 것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기도 했죠. 웃어 넘길 수 없는 것과 그냥 웃어 넘겨도 괜찮은 것이 같은 것일 때에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하하하
홍상수 감독

앞서 '시리어스 맨'을 이야기할 때 코엔 형제의 작품들에 대한 선호도와 비슷한데, 개인적으로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 역시 '잘알지도 못하면서'부터 훨씬 더 좋아진 경우에요. 사람들은 흔히 홍상수 영화를 이야기할 때 '먹물' '속물' 등의 표현을 쓰곤 하는데, 전 이것보다는 그 안에 홍상수 감독이 정말 얘기하려는 무엇, 그러니까 너무 순수해보여서 이게 맞나 싶을 정도의 것이 점점 확인된다는 점에서, 이제는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서 '동의'의 수준으로 발전된 것 같네요. 홍상수 월드의 공감대가 점점 확산되고 있어요~







시 (Poetry)
이창동 감독

21세기에 영화를 통해 시를 쓸 수 있는 감독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적어도 국내에서 이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내공을 갖고 있는 감독은 이창동 감독 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사실 그의 대표작들로 꼽히는 '박하사탕' '오아시스'등은 너무 자극적이고 과한 느낌이 있어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시'를 보고나서는 '아, 이 사람 정말 차원이 다른 시를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요. 현재까지 개인적으로 이창동 감독 작품 중 베스트는 단연 '시' 입니다.







드래곤 길들이기 (How To Train Your Dragon)
딘 드블루아, 크리스 샌더스 감독

드림웍스는 언제부턴가 '픽사'라는 라이벌 스튜디오의 그림자의 가려 이렇다할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었는데 (물론 그 가운데 '쿵푸팬더' 같은 작품은 제외해야겠죠), '드래곤 길들이기'는 작품 자체도 좋지만 드림웍스가 드디어 자신들만의 방향성을 잡았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작품이겠죠. 사실 이 이야기는 매우 교훈적이고 단순하고 익숙한 구조인데, 픽사가 잘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거든요. 다 아는 얘기로 울리고 감동 받게 하는것. 드림웍스도 자신들 나름대로 이런 것을 터득한 것이죠.







2010년 하반기에도 좋은 영화 많이 만나시길 바랍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각 영화사 에 있습니다.







시리어스 맨 (A Serious Man, 2009)
삶의 불확실성, 그래서 관조하다


코엔 형제는 천재다. 뭐 새삼스럽겠느냐만은 그들의 신작 <시리어스 맨>을 보고서는 삶을 꿰뚫는 통찰력과 이를 영화로서 어떻게 표현해 내는가에 대한 기법, 그리고 무엇보다 탁월한 이야기 꾼인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는 없었다. 그들의 작품은 사실 거의 실망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모두 인상깊게 보았었는데, 최근작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나서는 코엔 형제의 영화가 한 단계 더 성장하여 어떤 경지에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번 애프터 리딩>을 통해서는 녹슬지 않은 그들의 재치와 블랙코미디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감히 따라올 자가 없음을 역시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번 애프터 리딩>을 보고는 코엔 형제의 쉬어가는 작품 정도로 생각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코엔 형제만이 할 수 있는 블랙 코미디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러함에도 코엔 형제의 신작 <시리어스 맨>에 대한 기대는 사실 이 정도로 크지는 않았었다. 어쩌면 <번 애프터 리딩>을 보러 갈 때의 기대와 비슷한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보고난 <시리어스 맨>은, 아니 보는 내내 <시리어스 맨>은 참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엔 형제는 또 어떤 걸작을 만들고야만 것인가?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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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의 집 안의 구성과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는 체크 요소다. 이 집안의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의상 컨셉이 있는데, 딸은 항상 화려한 꽃무늬 잠옷을 입고나오고, 방안의 벽지 역시 모두 다른 화려한 무늬를 가지고 있고, 집 안의 커튼 역시 방 마다 모두 다른 각각의 화려한 무늬를 하고 있다. 아내 역시 매번 다른 체크 무늬 의상을 입고 있다. 이런 이미지는 일종의 강박에 관한 암시다. 관객들에게 강박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매사에 진지한 주인공과는 정반대되는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패턴으로 뭉쳐있는 집 안의 이미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래리라는 캐릭터에 공감지수를 드높여 준다)

영화는 이상한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이 프롤로그에 관한 개인적인 에피소드는 글 말미에 추가하도록 하겠다). 배경이나 정확히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이 프롤로그는,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살펴보면 상당히 의미있는 프롤로그였음을 뒤늦게 알게 해주는데, 일단 남편과 아내의 의견이 전혀 달랐다는 것 그리고 영어가 아닌 (그러니까 영어권에서 받아들이기에는 외국어로) 언어로 진행되는 시퀀스라는 점 정도만 기억해두자.

영화의 주인공인 래리 (마이클 스털바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는 곧 대학의 종신재직권 심사를 앞두고 있고, 아들은 성인식을 치룰 예정이며, 옆집 사는 남자가 자꾸 자신의 영억을 조금씩 침범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이고, 사회화가 부족한 동생이 조금 걱정거리이긴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큰 문제는 없어보이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런데 영화는 래리의 소개를 다 마치기도 전에 그의 주변을 둘러싼 여러가지 문제들을 하나씩 꺼내어 놓는다.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은 한국 학생은 낙제만은 면하게 해달라며 슬쩍 돈봉투를 남기고 가버리고, 아내는 오랫동안 이웃으로 살아왔던 '싸이'와의 관계 때문에 이혼을 요구하며, 동생은 도박 혐의로 경찰들이 주목하고 있고, 큰 문제없이 해결될 것만 같았던 종신재직권 심사에 악영향을 미칠 만한 악의적 편지들이 도착하는 등 너무 갑작스러게 많은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정작 래리는 아무것도 '잘못 한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래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마치 그를 둘러싼 주변은 모두 래리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냥 그를 둘러싸고 조여온다. 래리는 여기서 심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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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가 처한 이 갑작스럽게 닥쳐온 재앙은 하나같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아내는 '싸이'와의 관계 때문에 래리와 이혼하기를 바라지만 싸이를 사랑해서도, 싸이와의 관계가 깊어져서인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냥 위자료를 받아내려는 속셈으로 받아들이기에도 허술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 아내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아내 스스로도 '내 말이 말은 안되지만 이혼은 해야돼'라고 느껴질 정도다. '싸이'는 또 어떤가. 그의 태도는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싸이는 마치 래리를 아버지처럼 감싸 안으면서 래리에게 왜 이혼을(서약서를) 해야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편안하게 느껴진다. 싸이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그의 말이 다 옳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의 말만 놓고 보자면 이건 전혀 설득이 될리 없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논리들이다.

낙제점을 면하게 해달라며 돈을 놓고 갔던 한국 학생 '클라이브'의 논리도 말이 되지 않는다. 돈을 두고 간 것을 놓고 래리와 클라이브가 벌이는 대화는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다. 그런데 더 나아가 클라이브의 아버지는 자신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소송을 건다고 집으로 찾아온다. 이 아버지 역시 클라이브와 래리의 아내의 말처럼 스스로가 '내 말엔 논리가 없다'라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래리가 항상 불편하게 생각하던 옆 집 남자는, 클라이브의 아버지가 자신을 협박하는 것이 아니냐며 도움의 한 마디를 건낸다. 래리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맞다. 래리 뿐만 아니라 모든 관객이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래리는 매사에 '진지한 (Serious)' 남자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한 래리는 랍비를 찾아가 도움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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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보기로 했던 랍비가 자리를 비워서 대신 만나게 된 젊은 랍비는 래리의 말을 다 듣고는 역시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럴 땐 그저 주차장을 보라' 라는 말은 얼핏 들으면 이 젊은(어린) 랍비의 능력 부족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따져보면 우문현답일 수도 있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들을 직면했을 때 '그럴 땐 주차장을 보라'는 말은 쌩뚱맞은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인 불확실성과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대할 땐 관조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가 다 끝난 뒤에야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고, 래리는 여기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고 그 다음 다른 랍비를 찾아가게 된다.

두 번째 랍비는 이빨의 관한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이 이야기 역시 이상하기 짝이 없다. 무언가 거창하고 명쾌한 답을 내놓을 것만 같았던 이 '이빨' 이야기는 결국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무언가 답을 찾으려던 래리는 이 두 번째 랍비와의 만남에서도 이를 찾지 못하고 결국, 최고의 랍비인 마르샥과의 만남을 어렵사리 시도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결정적인 만남은 결국 이뤄지지도 않는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왜 래리는 랍비를 만나려고 했느냐'라는 점이다. 앞서 물리학자이지만 수학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불확실성의 이론을 엄청나게 긴 수학적 공식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래리의 성향으로 미뤄봤을 때, 래리라 랍비를 찾게 된 이유는 역시 '정답'을 얻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겠다. 마르샥을 간절히 만나려고 했던 것은 본인 스스로 마르샥 개인을 원해서가 아니라, '마르샥 = 정답'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같았으면 영화에서 특별히 자막까지 삽입해 가며 이 랍비와의 만남의 중요성을 이끌어 갔던 구성상, 마르샥이 모두가 공감할 만한 깨우침을 주고 (그것이 허허실실, 공수레공수거 일지라도) 래리가 이로 인해 삶이 변화를 얻는 것으로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코엔 형제는 래리에게 마르샥과의 만남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다. 고대했던 정답을 마르샥이 갖고 있다 없다를 떠나서, 현실은 이렇듯 생각대로, 단계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돌려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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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래리의 현실은 어떤가. 아내의 이혼 요구로 인해 동생과 모텔에 나와 살았었지만 싸이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어쨋든 다시금 집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아들의 성인식으로 인해 아내와 다시금 화해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고, 동생의 일도 악몽을 꾼 것처럼 끔찍한 일은 당하지 않았고, 걱정하던 종신재직권 문제도 순조롭게 풀린 듯 하다. 하지만 어쩌면 더 커다란 불안요소 일지도 모르는 일의 그림자도 존재한다. 영화 초반 검사를 받았던 의사는 전화가 와서, 검사결과에 대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한다. 뉘앙스로 봐서 아마도 삶과 죽음이 달린 심각한 정도일지도 모른다.

글에서는 미처 다 언급을 못했지만 래리의 아들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첫 시간에 마리화나를 산 돈 20달러와 함께 라디오를 빼았긴 아들 대니는, 영화 내내 이 돈을 값지 못해 쫓겨다녔지만 성인식 때 랍비 마르샥을 만나 조언을 듣고 라디오와 돈을 그대로 돌려받는다 (마르샥과 대니의 만남을 보면, 만약 래리가 마르샥을 만났더라면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래서 영화는 이 둘의 만남을 성사시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드디어 돈을 돌려주려고 친구를 불렀을 때 그들의 앞에는 커다란 토네이도가 닥쳐온다. 여기서 토네이도가 이들 모두를 덮쳐 죽음이나 큰 사고에 이를 것인가 말 것인가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영화가 계속 말하는 불확실성에 대한 것처럼, 저 토네이도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확실성 그 자체에 가깝다. 내내 불편했던 돈을 드디어 값을 수 있게 된 순간에 토네이도를 만나 모두 망쳐버릴 현실에 맞닥들이게 된 것은, 역시 '정답은 없다'라는 것과 '생각한대로 되지 만은 않는다'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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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 사용된 외국어처럼, 영화는 내내 이 언어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통해 주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국인 학생 클라이브의 너무나 외국인스러운 딱딱한 발음과 억양은 그를 이해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었으며, 아들 대니가 친구들과 사용하는 언어가 대부분 욕설로 이루어져 있는 것 역시 래리와 대니의 관계의 거리를 보여주는 장치이며, 래리가 아내와의 이혼을 위해 이혼증명서라는 뜻의 랍비 언어를 매번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 역시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서로간의 불확실성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안테나를 바로 잡으러 올라간 지붕 위에서 옆집 부인의 나체를 보게 되는 것 역시 우연을 가장한 불확실성이다.

사실 영화는 보는 중간에는 키득 거리며 보는 시간이 더욱 길었지만 (마치 홍상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볼 때와 비슷한 경우였다), 글로 정리하려 되돌아보니 영화 중간 중간 느껴졌던 삶의 대한 깊이가 더 와닿는 작품이었다. 영화 속 래리는 너무 진지한 사람이라 (영화가 말하는 진지함은 '잘못됨'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임' 이다), 젊은 랍비의 말처럼 그저 관조하지 못했지만, 코엔 형제가 이 영화를 그리는 방식은 분명 관조다. 시리어스 맨인 래리를 주인공으로 두고 래리에게 '그냥 주차장을 한 번 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주차장을 봐'라는 대사는 이 영화의 명대사다 (웃음에서나 깊이에서나 말이다).


1. 프롤로그에 관한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무엇인고 하니, 상영시간에 딱 맞춰서 상영관에 입장을 해서 정신없이 앉았는데,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시대와는 전혀다른 시대와 배경의 프롤로그가 등장한 겁니다. 그런데 이 혼란을 더욱 부추겼던 건 바로 옆 상영관에서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의 <푸른 수염>이 상영중이었다는 것이죠. 옆에 앉은 분도 저에게 '시리어스맨 보러 오신거 맞죠?''라고 물어오시고, 저도 좀 더 잠자코 있어보자 하며 떨고 있었는데, 이것 참 코엔 형제에게 보기 좋게 당했습니다. 4:3화면비라 '그래 푸른 수염은 아닐꺼야'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순간 혼란스러웠다구요 ㅎ

2.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보았는데 특별히 디지털 상영이라는 말은 없었던 거 같은데, 이건 분명 필름의 화질 수준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화질이 무척이나 좋더군요.

3.


리뷰를 쓰는데 200% 도움을 주었던 사운드트랙 'Dem Milner's Trern'.
사운드트랙은 아무래도 아마존에 주문을 해야겠네요. (했습니다 -_-v)

4. 마이클 스털바그의 모습에서 은근히 톰 행크스의 모습이 연상되더군요. 아마 예전 같으면 <레이디 킬러>의 경우처럼 톰 행크스가 했을 수도 있겠죠.

5. 미드 '빅뱅이론'으로 익숙한 사이몬 헬버그의 등장에 혼자 빵 터졌네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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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orking Title Films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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