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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정한다 (Denial, 2016)

진실은 왜 승리해야 하는가


홀로코스트 연구의 권위자 데보라 립스타드 (레이첼 와이즈)와 홀로코스트 부인론자 데이빗 어빙 (티모시 스폴)간의 소송과 재판 과정을 다룬 영화 '나는 부정한다 (Denial, 2016)'는 동명의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미 홀로코스트 연구자와 부인론자의 소송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부정한다'의 이야기는 치열하게 진실 공방을 벌일 만한 미지의 무엇의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이미 역사적으로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 이를 부정하는 이를 대상으로 입증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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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흔히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억지 주장을 펼치는 이들과 맞닥들이게 되었을 때 'x가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라는 식의 말을 하며 상대를 하지 않는 것으로 상대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일들은 상대를 하는 것 자체로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내게는 득이 될 것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럽다는 이유로 피하는 것이 더 상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역사에 관한 진실 혹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인권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그것이 단지 억지 주장이거나 상대하는 자체로 손해를 보는 것일지언정 그저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여기까지가 상식적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일 텐데, 이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바로 그렇게 피하지 않고 맞서게 되는 어떤 이의 실제 사례를 들어 간접 경험을 하게 되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과정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고통스럽고 또 냉정을 유지해야만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역시 냉정하고 담담한 말투로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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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립스타드가 처한 상황을 한 번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홀로코스트 연구의 권위자로서 이 참상과 진실을 더 널리 알리는 데에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있는 인물로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그녀에게 이를 완전히 부정하는 데이빗 어빙의 명예훼손 소송은 쉽게 무시하기 어려운 도발이었을 동시에, 무죄추정 원칙의 유무와는 무관하게 어빙의 잘못된 주장을 입증하는 데에 (이 정도의)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홀로코스트를 인식하고 있는 것 보다도 더 전문가인 그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어빙의 주장은 완전히 터무니없고 말을 섞을 가치 조차 없다고 여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판에 들어가 진실 공방이 아닌 철저한 법적 공방에 놓이게 되면서 그녀는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그녀는 유태인이자 이 문제에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모든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을 뿐더러, 자칫 자신이 이 재판에서 지게 될 경우 모든 홀로코스트 피해자들과 역사적 진실이 훼손될 수 있다는 부담은, 쉽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무게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필사적으로 이 재판에 임하게 되는데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는 없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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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감정적으로 공감되는 데보라에 비해 영화를 보다 보면 중반에 이를 때까지도 그녀를 변호하는 변호인단의 진심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게 한다. 즉, 변호인단이 쉽게 말해 너무 비즈니스 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 실제 진실이 밝혀지는 것 그 자체에는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은 듯 한 뉘앙스를 남긴다. 이후 영화는 톰 윌킨슨이 연기한 변호인 리처드 램튼의 캐릭터를 통해 이들도 정서적으로 충분히 공감을 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냉정을 잃지 않고 전략적으로 대한 것이라는 전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또 다른 변호인인 앤드류 스콧이 연기한 줄리어스의 경우 그 진심이 어느 정도 입증된 이후에도 드라마틱하게 이 부분이 표현되는 장면이나 전개는 등장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 재판의 판결이 나는 장면의 경우도 보통의 법정 영화였다면 과연 판결이 어떻게 될지 긴장감과 극적 요소를 최대로 끌어올려 클라이맥스를 연출했을 텐데, 이 영화의 판결 부분은 얼핏 연출력의 부제로까지 느껴질 정도로 아주 덤덤하게 묘사되고 있다. 변호인단의 캐릭터 묘사나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다루는 방식으로 미뤄봤을 때, '나는 부정한다'의 메시지는 승리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승리를 위해 어떤 과정을 감내해야만 하는 가에 더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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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예하게 진실을 다투는 공방이 아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거나 억지에 가까운 극단적인 주장과 진실을 다투어야 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얻는 방법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나는 부정한다'는, 아주 가깝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연스레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친일 역사와 또 일제 시대 벌어진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참혹한 인권 문제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독도 영유권 관련해서도 그렇고 우리는 당연히 우리 땅이고, 당연히 침략과 지배 과정 중에 사실로 벌어진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저 '당연하다'라고 쉽게 생각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일본과 일부 친일파 세력의 경우 이 역사를 본인들이 원하는 역사로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해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다시 한번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진실을 실제 하고 더 확고한 진실로서 후세에 전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또한 최근 가장 뜨거운 대선 판에서도 그저 웃어 넘기기엔 너무나 저급하고 모욕적이며 진실을 왜곡하는 상대를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과연 같은 땅에 살고 있는 이런 세력들을 그저 말이 안 통하는 이들이라 칭하며 무시하는 것으로 해결이 될 것인지, 또 그것이 진정 옳은 방법인지 새삼 떠올려 보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진실은 왜 승리해야 할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진실은 꼭 승리해야만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거짓들로부터 꼭 지켜내야만 할 진실들에 대해 외면하지 않는 사회와 내가 되길 바라고 또 경종을 울리게 만드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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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소 고지 (Hacksaw Ridge, 2016)

신념을 갖는다는 것, 그 고통의 의미


멜 깁슨이 '아포칼립토 (Apocalypto, 2006)' 이후 10년 만에 연출을 맡은 영화 '핵소 고지 (Hacksaw Ridge, 2016)'는 2차 세계대전 중 양심적 병역거부자임에도 참전하여 많은 생명들을 구해냈던 실존 인물 데스몬드 도스의 실화를 담고 있다. 종교적인 신념으로 인해 총을 드는 것(살인을 하는 것)을 거부했던 데스몬드가 지옥같이 참혹한 전장 속에서 수많은 생명들을 구해낸 이야기는 멜 깁슨이 평소 증오하던 히어로물의 대한 반증이자 대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핵소 고지'가 전쟁 영웅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면 물론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영웅적일 수 밖에는 없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최대한 영웅적 면모를 걷어 내고자 하는 동시에 그의 내면의 신념에 관한 갈등을 전쟁의 포화 속 보다도 더 큰 전장으로 그려낸다. 바로 그것이 멜 깁슨이 말하고 싶었던 진짜 히어로물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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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트라우마이자 종교적 이유로 인해 총기를 드는 것을 거부한 데스몬드는, 그럼에도 자신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이 모두 나라를 위해 참전하고 목숨을 바치는 현실에 홀로 참전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으로, 참전을 결심하게 된다. 물론 총기를 들고 일본 군을 향해 공격하는 것 대신 동료들을 구하는 의무병으로서 말이다. 하지만 훈련소에서부터 그의 이러한 신념은 지휘관과 동료들의 벽에 부딪히고 만다.


사실 군에서 데스몬드에게 강조하는 논리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또 합리적이다. 일본군이 너에게 총을 겨눌 때, 더 나아가 자신의 가족을 해치려 할 때에도 총기를 들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에 공격을 하지 않고 죽음을 맞을 것이냐 라는 질문에, 데스몬드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데스몬드의 신념은 합리적 계산이나 논리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양심에 따른 믿는 바이기 때문이다. 그저 살인을 할 수는 없다는, 설령 그것이 모두가 죽고 죽이는 것이 암묵적으로 동의되는 지옥의 전쟁터라 하더라도 그럴 수는 없다는 그의 신념은, 결국 우여곡절 끝에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로까지 이어진다. 


데스몬드가 핵소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 이후부터는 좀 더 전형적이고 그야말로 영웅적인 전쟁 영화의 전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가 참전을 허락받기까지의 과정이 있었기에 이 참혹한 전장 속에서의 그의 영웅적 면모가 더 특별하게 다가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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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라는 지휘 체계의 예외가 되는 순간부터 데스몬드는 모든 이와 자신의 신념을 두고 싸워야 했는데, 영화는 이 과정을 어쩌면 후반 부의 전쟁 보다도 더 큰 전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스몬드의 반대편에서 그를 내몰고자 했던 이들을 그저 신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억압하는 나쁜 이들 정도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에는 데스몬드를 그저 정신 나간 놈 정도로 여겼던 지휘관과 동료들은 그의 영웅적 활약이 있기 전에도, 그의 신념을 이해는 하지 못해도 인정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진심으로 그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선에서 모두가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되는 그의 제대를 권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데스몬드도 정확한 답을 하지 못했던 것처럼 관객 역시 쉽게 답할 수 없는, 더 나아가 데스몬드의 신념을 과연 현실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가 하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너의 신념 때문에 네 동료와 가족의 목숨을 지킬 수 없다고 해도 끝까지 신념을 지키겠는가 혹은 고집하겠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실화로 존재해 세상에 알려지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거의 다 그러한 신념을 끝까지 지켜내 일종의 증명을 해낸 인물들일 것이다. 그들 역시 대부분은 스스로 자신의 신념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무엇인가로 증명해 내기 전에는 (대부분은 죽음으로 증명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다)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고통받고 본인 스스로도 내적으로 엄청난 갈등으로 더 큰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핵소 고지'의 주인공인 데스몬드의 이야기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가 전장에서 보여준 기적 같은 활약상이 없었더라면 과연 그의 동료들은 물론 후세에 이들이 그가 가졌던 신념에 대해 지금처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하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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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으로 말해 모든 억압하는 것들을 이겨내 기적 같은 일을 해내는 것으로 스스로 증명해야만 자신의 신념을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참담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마치 예수가 제자들에게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예수조차 증명이 필요했던 신념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갖기 어려운 것인지 또 지켜내기 어려운 것인지를, 반대로 신념을 끝까지 지켜내 세상에 증명해 낸 데스몬드의 이야기를 보며 곱씹어 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멜 깁슨의 '핵소 고지'는 전쟁 영화로서의 미덕도 충분히 갖고 있는 영화다. 핵소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벌어지는 전장의 묘사는 그 어떤 전쟁 영화에도 뒤처지지 않는 공포감과 현실감 그리고 참혹함을 전달한다. 고지 위에서 쉴세 없이 빗발치는 적군의 총알들이 주인공과 동료 사이를 관통하고 또 빗겨 나가는 장면들의 몰입감은 적당한 핸드 헬드와 압도적인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완성된다. 새삼스럽지만 '핵소 고지'는 극장에서 꼭 봐야만 하는 영화다. 그것도 사운드 환경이 우수한 극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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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 핵소 고지의 높이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보다는 3분의 1 정도의 높이더군요. 영화적 효과를 위해 일부러 3배 정도 높이를 높였다고. 그리고 실제 데스몬드 도스의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더군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히려 영화 속 데스몬드가 극적 현실감을 위해 더 덜어낸 느낌.


2. 메가박스 M2관을 일부러 찾아가서 본 보람이 있었어요. 전장의 표현에 있어서 사운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이 영화는 꼭 사운드가 좋은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작품입니다.


3.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 곳곳에서 젊은 멜 깁슨이 보이더군요. 특히 그가 바보처럼 환하게 웃을 땐 멜 깁슨의 그 환한 미소가 겹쳐지더군요. 사실 이 캐릭터에 앤드류 가필드가 과연 어울릴까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는 좋은 연기였어요.


4. 아, 그리고 간혹 2차 세계대전을 그린 미국 영화들이 범하는 실수에는 일본군을 그저 짐승이나 악마로 그려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신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영화로서, 일본군 역시 그들이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참전한 이들이라는 점을 말미에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우려를 잘 피해 가고 있어요. 너무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이 정도로 신념의 개념으로 각각 묘사해 내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이었다고 생각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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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 (Sully, 2016)

모두가 살아남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 (Sully, 2016)'는 잘 알려졌다시피 2009년 허드슨 강에서 일어났던 항공기가 추락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얼마 되지 않은 이야기라 당시 뉴스를 통해 접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데 이 사건이 놀라웠던 건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항공기 추락 사고였음에도 승무원과 탑승객을 포함한 155명 전원이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점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인 '설리'는 당시 항공기의 기장이었던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고독한 영웅의 서사를 꾸준히 그려온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목한 건 항공기의 추락이라는 재난 영화적 성격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설렌버거라는 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설리'는 일단 일반적인 재난 영화들과 방향성을 달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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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시점은 사고 이후에 있다. 사고 이후 설렌버거 기장 (톰 행크스)과 부기장 제프 스카일스 (아론 에크하트)는 조사위원회에게 조사를 받으며 압박을 받게 되는데, 주된 요인은 허드슨강에 착륙해야만 했는가 즉, 이륙한 공항을 비롯해 주변의 다른 가까운 공항으로 착륙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나 라는 의문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서 영화는 상당히 건조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취한다. 기적을 이뤄낸 영웅이라는 미디어의 찬사를 건조하게 늘어놓는 동시에 과한 관심과 집중을 불편해하는 설렌버거와 가족들의 모습을 겹쳐 놓고, 또한 조사를 받는 가운데 혹시 자신이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고민하는 설렌버거의 모습과 더불어 이를 추궁하는 조사위원회 인물들을 그릴 때도 쉽게 나쁜 의도를 가진 악한 자로 단순화시키지 않는다. 이렇게 객관적이고 건조한 시선을 보여주게 되면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이 추락사고라는 직접적인 사건에서 멀어져 설렌버거라는 한 사람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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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감독의 의도가 어떠하였든 간에 결국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관객 각각이 어떤 경험들을 했는 가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 역시 감독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의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최근의 기억, 아니 트라우마를 떠올릴 수 밖에는 없었다. 바로 세월호 참사다.


'설리'는 여러 면에서 세월호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허드슨 강에서 벌어진 항공시 추락사고와 세월호 참사는 정반대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장 대표적이 지점은 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관제소는 데이터에 따라 다른 공항들로 회황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기장은 직관적으로 이를 거부하고 허드슨 강에 착륙하는 모험을 택했고 결론은 전원 구조였다. 즉,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부분이라면 특히 더 시스템의 선택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담겨 있지만, 세월호 사건은 이와는 전혀 다르게 시스템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정상적인 시스템을 인간들이 스스로 무시하고 은폐하는 과정 속에서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던 생명들을 앗아간 경우였다 (혹여 이것을 똑같이 시스템을 무시하고 인간의 직관대로 행동했지만 결과가 다른 경우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더 이상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리고 9.11을 겪은 뉴욕의 재난, 구조 시스템은 셀렌버거의 선택과 더불어 완벽하게 기능하여 20여분 만에 전원을 구조해 낸 반면, 세월호의 경우 인명의 구조에 앞서 다른 사사로운 것들을 눈치 보고 챙기느라 오히려 시스템 밖에서 도움을 주고자 한 이들의 손길마저 차단하며 믿기지 않게도 전 국민이 그저 지켜볼 수 밖에는 없었던, 사실상 그들은 아무도 구조하지 않은 끔찍한 참사였다. (그럴 린 없지만) 마치 한국 관객 보라는 듯이 빨리 몸을 피하라는 승무원에 말에도 끝까지 남은 탑승객은 없나 위험을 무릅쓰고 확인한 뒤 맨 마지막으로 항공기에서 탈출하는 셀렌버거의 모습에서, 떠올리려고 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제일 먼저 탈출했던 세월호 선장의 모습이 기분 나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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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는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미국이라는 국가가 재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이스트우드는 이 기적 같은 사건과 셀렌버거라는 인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는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였을 텐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점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처럼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는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


155명 전원을 구조했다는 대사가 나올 때. 승무원들이 구조 과정 속에서 침착하게 자기 역할을 해내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안전하게 승객들을 피신시킬 때. 추락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구조 관련 인력들이 재빠르게 현장에 도착해 추락한 항공기를 둘러싼 장면을 보았을 때. 그 외에 많은 장면들을 보면서 왜 세월호 때는 그러지 못했나. 작은 한 두 가지만 정상적으로 작동했더라도 수많은 생명들이 그 바다에서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계속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오늘은 아무도 죽지 않아요'라는 말. 그리고 '모두가 살아남았다'라는 헤드라인들.

세월호도 그래야 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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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Joy, 2015)

'가족'이라는 어쩔 수 없는 존재에 대해


이혼한 부모님과 전남편, 할머니와 두 아이까지 떠안고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싱글맘 조이(제니퍼 로렌스).
자신이 꿈꿨던 인생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에 지쳐가던 어느 날, 깨진 와인잔을 치우던 조이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아주 멋진 것을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겠다는 어릴 적 꿈을 이루겠다고 결심한 조이는 상품 제작에 돌입한다. 그러나 사업 경험이 전무한 조이는 기업과 투자자로부터 외면받으며 여자에게 더욱 가혹한 비즈니스 세계의 벽 앞에서 매번 좌절하게 된다. 이 때 전 남편 토니의 소개로 홈쇼핑 채널 QVC의 경영 이사인 닐 워커(브래들리 쿠퍼)를 만나게 된 조이는 기적적으로 홈쇼핑 방송 기회를 얻게 되고 5만개의 제품을 제작한다. 하지만 단 한 개도 팔지 못한 채 처참한 상황을 맞게 된 조이는 결국 빚을 떠안고 파산 위기에 처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미국 최대 홈쇼핑 채널의 CEO인 조이 망가노의 이야기를 그린 데이비드 O.러셀의 '조이 (Joy, 2015)'는 예상외로 성공 신화를 다루지 않는다. 그녀가 엄청난 성공을 이룬 이후의 이야기는 짧게 스케치 정도로만 등장하고 성공하기 까지의 우여곡절 역시 조금은 느슨하게 다루는 편이다. 그녀 역시 힘겨운 시간들을 거쳐서 만인이 바라는 부를 누리게 된 것은 맞지만, 데이비드 O.러셀이 주목한 것은 그녀의 사업적인 흥망성쇠 보다는 오히려 그녀를 둘러싼 특별한 가족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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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현실 속에 놓인 주인공과 가족의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족 역시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미약한 존재이지만 그 존재 만으로도 힘겨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로 묘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 그 힘겨운 현실을 더 힘겹게 만드는 주된 요인으로 그리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영화 '조이'는 이 둘 중 하나로 말하기가 어렵다. 이혼을 한 남편이나 이복 동생, 이혼한 부모님이 만나는 연인 등의 전통적이지 않은 가족의 구성이기는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 점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 각자의 사정이 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각자의 삶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탓에 주인공 조이의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기도 방해가 되기도 한다. 물론 방해 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영화 속 조이의 모습에서는 이미 본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존재이자 관계 임을 인정한 듯 보인다. 그래서 한 편으론 영화 속 조이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가 한 걸음 내 딛는데 까지 너무 많은 가족들의 직간접적 방해를 해치고 나와야 하는 상황들은, 어쩌면 그녀가 비즈니스 적으로 겪었던 어려움들 보다도 더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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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데이비드 O.러셀이 조이 망가노의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그녀의 가족 이야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미 전작 '파이터 (The Fighter, 2010)'에서도 이러한 가족이라는 존재를 깊이 그려낸 적이 있는데, '조이'를 보다보면 '파이터'의 가족이 절로 떠오른다. 만약 다른 감독의 영화나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면 조이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애초부터 방해 요인이 되거나 될 변수를 갖고 있는 가족들을 자신의 삶에서 분리해 나갔을 텐데, 이 영화 속 조이는 그러한 노력을 사실상 거의 하지 않는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완전하게 거리를 두거나 인연을 끊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렇게 조이를 이용하거나 해를 가하는 가족들이 마음을 고쳐 먹는 것도 아니다. 관계는 좋아졌다 나빠졌다는 반복하지만 조이는 그래도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에서라기 보다는 그저 '어쩔 수 없는 가족'이라는 측면에서 수용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도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만인이 부러워 하는 성공을 이뤄낸다. 영화는 그렇게 조이라는 인물의 성공에 있어서 그녀의 악착 같음이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어쩌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고도 볼 수 있는 가족을 말한다. 성공이라는 계산적이고 치열한 현실과 경쟁에 있어서 가족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데이비드 O.러셀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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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가 전체적으로는 조금 심심한 감이 있어요. 가족이라는 테마를 성공담에 녹여내고는 있지만 특별하지는 않거든요. 제니퍼 로렌스의 무르익은 연기를 보는 재미가 어느 정도 이런 점을 상쇄시키는 편입니다.

2. 데이비드 O.러셀 감독은 이번에도 영화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시대 배경을 피부로 와닿게 하는 동시에 인물의 감정 표현까지 음악을 통해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편이에요.




글 / 아쉬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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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Spotlight, 2015)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 내 ‘스포트라이트’팀은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한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려 할수록 더욱 굳건히 닫히는 진실의 장벽. 결코 좌절할 수 없었던 끈질긴 ‘스포트라이트’팀은 추적을 멈추지 않고, 마침내 성스러운 이름 속에 감춰졌던 사제들의 얼굴이 드러나는데… (출처 : 다음영화)


2002년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지 내 스포트라이트 팀을 통해 폭로된 가톨릭 사제들의 충격적인 아동 성추행 스캔들 실화를 다룬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2015)'는, 충격적일 수 밖에는 없었던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다시 한 번 고발하려는 것에 목적이 있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제목처럼 이 스캔들을 세상에 폭로하기 위해 스포트라이트 팀이 겪어야 했던 과정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영화다. 단순하게 성직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성추행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격적이지만, 영화는 이 충격적 사실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조명하는 것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보스턴이라는 오래되고 견고한 도시의 특성을 배경으로 보스턴에서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단순한 종교 이상의 지배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즉 이 가톨릭 커뮤니티가 가족, 동료, 학교, 회사 등 모든 영역에 근본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배경 가운데 오로지 진실 만을 위해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했던 스포트라이트 팀의 활동을 건조하지만 치밀하게, 비교적 감상적이지 않는 입장을 취하며 전개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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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명감을 강조한다. 꼭 언론과 기자라는 직업군을 이유로 들지 않더라도 여러 일 가운데는 반드시 내가 해야만 하는 일과 굳이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일이 있는데, 이 영화는 후자의 일을 전자의 일로 감수해 낸 용감한 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바로 내 가족과 동료, 그리고 내가 다닌 학교 등 나를 구성하는 많은 커뮤니티들이 묵인했던 진실, 아니 그보다는 내가 믿고 있고 나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묵인하고 부정할 수 밖에는 없었던 현실 속에서,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반드시 '내'가 해야만 했던 일을 해낸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일차적으로 요금 같이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기자라면 더욱)자신이 하는 일과 직업에 대해 사명감과 장인정신을 찾아 보기 힘든 세상에서, 기사를 내 자식처럼, 온전히 내 것이라는 인물들의 열정과 신념은 그 자체로 주는 감동이 있었다. 굳이 취재라는 것이 거의 실종되어 버린 국내 언론의 현실을 비춰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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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영화는 사명감의 이유나 목적을 추상적인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 어쩌면 앞서 언급한 상황을 무릅쓰기엔 너무 먼 개념인 추상적 정의로움이나 선의 등의 이유가 아닌, 그 아동성추행의 대상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아주 현실적인 질문을 통해, 누군가가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이 조직적이고 거대한 범죄와 고통은 결코 끝나지 않음은 물론이요, 다음 피해자는 나나 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 조언을 한다. 실제로도 현실에서 보면 뉴스에 나오는 어떤 끔찍한 사건 등을 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까워 하면서도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곤 하는데, '스포트라이트'에서는 단순히 '내가 될 수도 있었어' 수준이 아니라 '내가 선택되지 않은 것이 운이 좋은 것 뿐이야'라고 더 센 강도로 이야기한다 (놀라운 건 실제 이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수를 본다면 정말로 운이 좋아서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고 충분히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가서 만약 이들이 이 기사를 내지 않았더라면, 그들 역시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 일 없이 덮으려고 했다면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들이 그 이후로도 발생되었을 지를 단적인 자료들로 보여준다. 그 엄청난 수의 리스트는 이 스캔들의 규모를 보여주는 데이터라기 보다는 이들이 살려 낸 생존자 리스트로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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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크 러팔로는 이번에도 참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를 비롯해 이 스포트라이트 팀은 정말 다 진짜 같아요.

2. 리브 슈라이버의 저런 지적인 연기는 처음 본 것 같아요 ㅎ

3. 전혀 다른 얘기로 요새 (주)더쿱 에서 수입한 영화들을 자주 극장에서 보게 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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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쉬 걸 (The Danish Girl, 2016)

진짜 나를 찾아줘



1926년 덴마크 코펜하겐. 풍경화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아이나 베게너(에디 레드메인)와 야심 찬 초상화 화가인 아내 게르다(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부부이자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파트너이다. 어느 날, 게르다의 아름다운 발레리나 모델 울라(엠버 허드)가 자리를 비우게 되자 게르다는 아이나에게 대역을 부탁한다. 드레스를 입고 캔버스 앞에 선 에이나르는 이제까지 한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날 이후, 영원할 것 같던 두 사람의 사랑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고, 그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출처 : 다음영화)


세계 최초의 성전환수술을 한 남자로 알려진 아이나 베게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원작으로 '킹스 스피치'와 '레 미제라블' 등을 연출했던 톰 후퍼가 연출한 작품이다. '대니쉬 걸'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인물의 이야기를 묘사함에 있어서 철저히 주인공의 입장에서 (편에 서서)이야기를 전개하는 동시에, 또한 제3자의 시선일 수 밖에는 없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아주 조심스럽지만 용기 있는 태도를 유지하려 애 쓰고 있는 영화다.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한 설정의 다른 영화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에디 레드메인이라는 배우의 아주 뛰어난 연기가 뒷받침되었다는 점과 혼란을 겪는 주인공 만큼이나 더 큰 혼란을 겪었을 그의 아내인 게르다라는 캐릭터를 아주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압도적일 수 밖에는 없었던 전자의 인상을 넘어설 정도로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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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첫 번째로 아이나 베게너를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신체적 고생이 겸비 된 '레버넌트'의 디카프리오의 연기와 마찬가지로 '대니쉬 걸'의 아이나 베게너라는 캐릭터는 내면의 갈등과 외면의 변화를 모두 표현해야만 하는 캐릭터인 동시에 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이른바 오스카 수상에 적합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동일한 선상에서 연기상이라는 기술적인 측면을 고려했을 때 그 누구보다 레오의 오스카 수상을 바라는 자임에도 이 영화를 본 뒤에는 에디 레드메인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는 없었다. '대니쉬 걸'에서 에디가 연기한 아이나 베게너는 남성의 몸으로 여성의 인생을 살게 되는 인물이라고 했을 때 예상되는 감정과 외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 진정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기에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 연기를 선보인다. 외향적으로는 아이나에게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표정이나 손짓, 발짓 모두 부족함이 없었으며, 내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쩌면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이라고 했을 때 예상되는 갈등과 고민의 과정을 또 한 번 보여주었음에도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그럴 수 밖에는 없었다'라는 이 영화의 근본적인 대답의 신뢰와 공감을 얻어내는 훌륭한 연기가 아닐 수 없었다. 다시 말해 만약 '대니쉬 걸'의 다른 요소들에 대해 특별한 인상을 얻지 못하더라도 단지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로 탄생시킨 아이나 베게너라는 성전환자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의미있는 영화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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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연기한 극 중 아이나의 부인인 게르다라는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이 더 인상적이었다. 성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결국 여성으로 살기 위해 수술을 감행하는 아이나의 고통(여기서의 고통이란 단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못지 않게, 가장 사랑하는 남편을 남편이 아닌 여성으로 맞아야 했던 게르다의 복잡한 심경을 도드라지지 않게 묘사하고 있다. 게르다의 이야기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는데, 얼핏 보면 게르다는 자신이 함께 했던 일종의 장난이 커져서 결국 남편이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었다고 여기는 장면들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게르다는 어쩌면 처음부터 아이나가 여성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혹은 끝까지 막을 생각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동성애나 성정체성의 혼란 등을 영화가 그리는 방식을 보면 그 당사자들이 어느 순간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조차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고치려 해봐도 되지 않자 결국 받아 들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니쉬 걸'은 이런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이나는 여성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그려낸다. 그런 측면에서 게르다가 아이나를 바라보는 방식도 이해할 수 있는데, 게르다의 얼굴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겉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아이나가 결국 여성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겠다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이나가 릴리(아이나의 여성 자아)가 되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라면 그렇게 되는 것을 적극 응원하겠다 라는 심경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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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게르다라는 캐릭터의 묘사는 '대니쉬 걸'이라는 영화가 성전환수술자의 실화 혹은 이야기를 어떤 시선과 자세로 바라보고 있는 지를 엿볼 수 있도록 한다.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의 이야기는 행여 그것이 이제는 조금 진부할 수 있는 갈등이나 혼란이라고 여겨질 지라도 그들이 다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기 보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는 반면, 그(그녀)의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게르다를 묘사함에 있어서는 조금 더 적극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서, 어쩌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성정체성의 혼란이라는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주제에 대한 묘사도 에디 레드메인이라는 훌륭한 배우를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연기한 게르다라는 캐릭터를 통해 좀 더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세심한 레이어로 이뤄진 구조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게르다라는 인물의 인상이 더 깊게 남았다. 끝까지 자신이 사랑했던 아이나를 릴리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 의심이 없었던 그녀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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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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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살인자 만들기 (Netflix _ Making a Murderer)

긴 호흡으로 즐기는 치밀한 다큐멘터리



최근 국내에 런칭한 넷플릭스 (Netflix)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서비스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익하고 볼 만한 작품이라면 역시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한 오리지널 작품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다큐멘터리 작품들은 기존 다른 IPTV 서비스가 제공하는 콘텐츠들 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완성도 측면에서도 만족스러운 작품들을 여럿 만나볼 수가 있어서 반가운데, '살인자 만들기'는 그 중에서도 단연 손꼽을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SBS에서 방영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즌제로 만나는 느낌인데, 긴 호흡으로 하나의 사건을 차근 차근 그리고 치밀하게 다루는 이 다큐멘터리는 그 어떤 극 영화 못지 않은 극적인 재미와 흥미 그리고 분노와 답답함을 느끼게 만드는 몰입도가 무척 높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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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만들기'는 무려 10년 이라는 시간을 들여 제작한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실화'와 '다큐멘터리'를 굳이 또 한 번 강조하는 이유는 스티븐 에이버리를 중심으로 겪게 되는 이 사건과 법정 공방의 긴 이야기가 마치 수준급의 스릴러 작가가 공들여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실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극적인 요소가 많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실화가 허구의 이야기보다도 더 허구 같은 경우는 가끔 만나볼 수 있는데, '살인자 만들기'가 그 가운데서도 첫 번째 손에 꼽을 만한 다른 이유는 실존 인물들의 모습들이 너무나도 캐릭터스럽다는 점이다. 일부러 저렇게 딱 맞는 배우들을 찾아 캐스팅을 한다고 해도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이 실존 인물들은 주인공 스티븐 에이버리를 비롯해 검사, 경찰, 변호사, 주변 인물 등 모두가 관련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만약 이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접하게 된다면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만들어진 미드라고 보는 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이 실존 인물들이 주는 극적인 몰입감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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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라는 세월을 쫓아가며 사건을 다룬 점이 바탕이 되기는 했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를 10화에 달하는 하나의 시즌으로 제작한 것과 하나의 시즌이 다 끝날 때 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연출과 편집은 '살인자 만들기'의 완성도를 보장하는 첫 번째 이유다. 아마 제작진이 가장 고심했을 부분은 무고하게 18년이라는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스티븐 에이버리가 다시 금 살인 혐의를 쓰고 재판을 받고 투옥하게 된 (진실 여부는 일단 떠나서라도)이 억울함을 시청자가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을 텐데, 긴 호흡에도 차근 차근 증거 중심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낸 방식은 억울함을 넘어서 분노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반대로 그랬기 때문에 조금은 일방적으로 스티븐 에이버리의 편에 서 있는 작품의 시선이 실제 사건의 진실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에 방해를 주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물론 이 작품에서 제공하고 있는 정보 만으로도 스티븐 에이버리가 무죄라고 판단하기에 충분하기는 하지만 이 사건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실제 사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추가로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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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완성도나 매력을 떠나서 '살인자 만들기'처럼 10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 가능한 환경에 대한 부러움도 컸다. 그리고 이를 제작한 넷플릭스라는 회사가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또 한 번 신뢰를 가질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만약 아직 넷플릭스를 결제 해 놓고 어떤 걸 봐야 할지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단, 짜증을 넘어선 분노가 일 수 있다는 점은 꼭 미리 체크하시길.


1. 무려 구스타보 산타올라야가 음악을 맡고 있다는 점!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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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 (Kumiko, the Treasure Hunter, 2014)

이 쓸쓸하고 행복한 모험



인구 3,500만명이 살아가는 대도시 도쿄.. 29살의 쿠미코는 누구보다 절박한 외로움을 느낀다. 장래가 없는 회사 생활과 모욕을 주는 상사, 자신보다 더 뛰어나고 매력적인 후배들, 그리고 결혼을 재촉하며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쿠미코는 동굴 속에서 영화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발견한다. <파고>라는 미국 영화에서 어떤 남자가 눈밭에 돈가방을 묻는 것을 보고 그녀는 그 보물이 실재한다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결국 회사 법인 카드를 훔친 쿠미코는 직접 만든 보물 지도를 들고 얼음 덮인 미네소타를 가로질러 자신의 돈을 찾기 위한 장대하고 예측 불가능한 여정을 시작한다. (출처 : 다음영화)


2001년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고니시 다카코는 여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는 잔혹한 현실과 이를 돌파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환상이라는 영화적 기법으로 응원하며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는 크게 완전한 스토리텔러의 역할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서술하는 방식이 있고, 다르게는 영화가 관객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을 돕거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영화가 있는데, 이 작품은 후자에 경우다. 이런 방식은 이야기에 오히려 더 쉽게 빠져들게 되는 효과가 있는데, 이 영화 역시 쿠미코가 처한 현실과 그녀가 이를 벗어나기 위해 선택하는 모험을 지켜보면서, 이 짧은 러닝 타임 동안 쿠미코라는 여성을 조금은 가여운 심정으로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행복을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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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독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반해 쿠미코가 처한 현실은 한 편으론 가벼운 편일지도 모르겠다. 생사가 걸려 있는 현실에 턱 막힌 인물들에 비하자면 가벼운 문제 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반대로 하자면 돈을 벌고 회사를 다니고 특별할 것 없이 살아가는 현대의 보통 사람들의 현실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쿠미코처럼 그저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과 조여오는 타인들과의 관계와 부담이 곧 벗어나고픈 현실이라는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쿠미코의 모험담은 황당할 정도로 말이 되지 않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저 '세상에 이런 일이'같은 TV프로그램에나 스쳐 등장할 법한 이야기지만, 코엔 형제의 영화 '파고 (Fargo)' 속 이야기를 믿고 인생의 모든 것을 거는 여정을 떠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무언가 말로 다 하기 어려운 쓸쓸함과 동질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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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쿠미코의 여정을 내내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던 영화의 시선과 그 결말의 선택은 쓸쓸함과 동시에 조금은 행복함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행복해진 쿠미코의 뒷 모습에서 느껴진 묘한 안도감과 평화로움은, 작지만 오래 여운으로 남게 될 듯 하다.



1.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여 실제 이야기를 좀 찾아봤더니, 고니시 다카코라는 여성이 2001년 11월 경 미네소타 주에서 여행을 하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을 한 사건이 있었네요. 영화 속 내용 처럼 '파고'의 돈가방을 찾아 왔다는 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인데, 조사결과는 '파고'와는 무관한 사건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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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필립스 (Captain Phillips, 2013)

사건과 배경의 사이에서



본 시리즈로 유명한 폴 그린그래스의 신작 '캡틴 필립스 (Captain Phillips, 2013)'를 보았다. 폴 그린그래스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선장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다고 했을 때에는 몇 가지 기대되는 바가 있었다. 이미 '블러디 선데이'나 '플라이트 93'과 같이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룰 때 제 3자인 관객을 얼마나 그 사건 속으로 끌어들일까 하는 것과 이 사건 묘사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할까 하는 점이었다. 어쩌면 이건 기대만이라기 보다는 동시에 궁금한 점이라고 해야 할 텐데, '캡틴 필립스'는 그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해주지는 못한 작품 같았다.



ⓒ Michael De Luca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이 이야기는 실화라는 사실을 제외해도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전형적인 인질극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렇다면 관건은 역시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사건 속에 관객들을 얼마나 몰입시키느냐에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폴 그린그래스는 본인의 특기인 핸드헬드 촬영 기법과 이야기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음을 통해, 관객들이 어렵지 않게 필립스의 이야기에 땀을 쥐도록 만든다. 사실 허구로 만들어진 인질극들에 비하자면 '캡틴 필립스'의 인질극 과정은 별다른 극적인 에피소드가 없는 편이다. 아마도 일반적인 인질극 영화였다면 선택했을 몇 가지 극적인 요소들은 이 영화는 거의 선택하지 않고 있으며, 그로 인해 상당히 단순하지만 한 가지 (필립스와 소말리아 해적과의 관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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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적으로 '캡틴 필립스'를 보며 떠올렸던 건 '리더'와 그의 선택에 관한 것이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납치 사건을 맞닥들이게 되는 선장 필립스 (톰 행크스)를 중심으로, 이 납치 임무를 지휘하게 되는 소말리아 납치범의 리더의 결정과 선택에 주목한다. 단순히 보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필립스에게만 집중된 듯 하지만, 사실은 이 두 인물이 거의 대등한 비중을 가지고 극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립스는 더 직접적으로 그에게 '니가 리더잖아'라고 묻기도 한다. 따지고보면, 납치 이전이 필립스가 리더로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다뤘다면, 필립스를 납치하고 나서는 소말리아 해적의 리더가 그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을 다뤘다고 할 수 있겠다. 처한 상황만 보면 오히려 소말리아 해적의 리더가 훨씬 더 어려움에 놓인 것 처럼 보인다. 필립스는 이런 상황에 항상 준비해왔고 적절한 메뉴얼도 있는 상황이지만, 소말리아 해적은 본래 해적도 아닐 뿐더러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극도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서 더더욱 리더로서의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영화는 오히려 이 준비되지 않은 리더를 준비된 리더인 필립스가 돕는 듯한 양상을 보여주면서, 단순한 인질극이 아닌 다른 긴장감을 갖은 관계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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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필립스'의 처음 시작은 조금 달랐다. 평범한 가장인 필립스의 일상을 보여준 것 뿐만 아니라, 인질극을 벌이게 되는 소말리아 인들의 시작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시작을 보고서 나는 '아, 이 영화가 단순히 인질극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소말리아의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나 보구나!'라며 더 기대를 갖은 것이 사실인데, 결론적으로 보자면 폴 그린그래스의 의도는 조금은 모호한 느낌이었다. 분명 영화는 필립스를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소말리아 해적의 리더의 심리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리고 필립스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이 원래부터 해적이 아니라 어부였다는 사실이 강조되며, 그들 역시 어쩔 수 없이 내몰린 이들이라는 걸 영화는 직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그와 비교되는 이미지로 이 인질극을 해결하려는 미해군과 네이비실 작전팀의 모습은 기계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리된 모습이다. 즉, 네이비실이 인질극을 해결하는 장면을 보고나면 '와, 멋지다'라는 느낌 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소말리아 해적을 동정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분명 이 영화엔 두 가지 시선이 다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소말리아의 현실을, 그 배경을 더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어부인 그들이 해적이 될 수 밖에는 없었던 현실. 그것 말고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왜 없겠냐는 물음에 그저 대답하지 않았던 소말리아의 고통스런 현실을 조금만 더 보여주었더라면, 이 인질극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요소를 어느 정도 다루고 있음에도 결국엔 필립스 만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어버리는 것이 조금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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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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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미라클 (Big Miracle, Blu-ray Review)
실화에 근거해 돌 직구를 던지다


1988년. 아무 일도 일어날 것만 같지 않은 알래스카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 멸종 위기의 회색 고래 세 마리가 얼어버린 바다 속에 갇혀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빙벽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위태롭게 숨을 쉬는 고래들의 모습이 방송에 공개되자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결국 이 알래스카 고래 세 마리의 안타까운 사연은 국제적인 사건이 되어 전 세계의 주목 속에 해결책을 모색하게 된다.






'빅 미라클'이 실화라는 점을 글의 초반에 강조하는 이유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많은 영화들이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경우 너무 허구가 심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특히 더 그런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즉, 만약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라는 설명이 없다면 '에이~ 이건 너무 심하잖아' 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말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담고 있는 영화가 '빅 미라클' 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빅 미라클'이란 제목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내고 있기도 하다). 더군다나 스토리텔링의 대가 '워킹 타이틀'에서 제작한 작품이라 하마터면 또 하나의 훈훈한 (허구의)이야기구나 하고 오해할만한 근거도 다분하고.





이 영화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과연 이 실화 같지 않은 놀라운 이야기를 어떻게 관객들이 믿도록 만드느냐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일단 부가적인 장치들을 보자면, 실제 당시 보도되었던 뉴스 영상들을 곳곳에 배치하여 현실감을 높였고 (아마도 예전에 AFKN을 자주 보았던 이들이라면 익숙할 앵커들의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촬영 역시 실제 현장에서 상당 부분을 촬영한 것 등을 들 수 있을 텐데, 이러한 양념들이 전혀 없었던 것들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빅 미라클'이 취한 방식은 이른바 '돌 직구'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실화와 실화가 주는 감동의 힘을 믿고 그대로 밀어 붙인 것이다. 





▲ 차인태 아나운서 만큼이나 익숙한 그들의 얼굴 ^^


보는 사람에 따라 이 같은 '돌 직구'는 영화 전체를 너무 심심하고 평이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자연과 동물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람 (정치/경제/문화/사회적 문제)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실화를 그리는 방식으로 무식하리만큼 정직한 이 방식은 괜찮았다고 생각된다. 실화이면서도 내러티브가 부족하다고 느낄 만큼의 설정이 많았지만 이 부분을 굳이 보충하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한 영화의 정직함은, 결국 1988년 당시 고래 세 마리를 구하기 위해 모두 한 마음으로 모여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처럼, 작지만 훈훈하고 따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빅 미라클'이 말하고자 하는 건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사건을 통해 재차 확인하게 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차이와 그 차이로 인한 현실 그리고 그럼에도 기적처럼 이뤄낼 수 있다는 실화로서의 가능성 일 것이다. 이건 인간이 미처 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고래가 만들어낸 기적이었을까, 아니면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기적이었을까? 영화 속, 아니 실화 속 사람들에게 그 답이 있다.


Video


MPEG-4 AVC 포맷의 1080p 블루레이 화질은 최신작답게 준수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알래스카의 그 차가운 공기와 단단한 얼음들의 질감이 잘 표현되고 있으며, 로봇 고래이긴 하지만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 때에는 고래라는 존재에 특유의 신비감이 잘 느껴질 정도로 이질감 없이 표현되고 있다.







대부분의 장면이 하얀 얼음 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덕에 좀 더 확연한 대비가 느껴지는데, 고래의 어두운 얼굴 부분과의 대비는 물론, 주요 인물들의 의상과도 대비가 돼 (그리 화려한 색의 의상들이 아님에도) 좀 더 화질 측면에서 체감이 높다고 할 수 있겠다. 조금 아쉬운 점은 블루레이의 화질 탓은 아니지만, 드류 베리모어가 바다 속으로 들어간 장면에서 CG라는 점이 좀 도드라지게 표현돼 이질감이 살짝 느껴진 부분이었다.


Sound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수준이다. 사운드 적으로 귀 기울여 볼 만한 장면들이라면 역시 얼음 밑 바다 속에서 유영하는 고래들이 서로 대화하는 그 소리, 그 소리의 공명을 주의 깊게 들어볼 필요가 있겠다. 조금 공간감이 더 풍부했으면 좋았겠다 싶은 아쉬움도 들지만 비교적 만족할 만한 소리를 들려준다.






후반 부 등장하는 대형 해빙선 장면의 경우 거대한 빙벽과 충돌할 때 좀 더 임팩트 있는 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잔잔한 드라마 장르인 탓에 멀티 채널의 활용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의 첫 번째로는 삭제장면이 수록되었는데, 켄 콰피스 감독의 삭제 장면에 대한 소개가 곁들여져 있어 해당 장면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과 의미를 자세하게 만나볼 수 있다. 삭제 장면으로는 아담이 평소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던 여 리포터와 한 방에서 지내게 된 에피소드를 비롯해, 이 사건을 다루는 CNN 방송국의 토크쇼에 석유회사 수장이 출연하여 인터뷰를 하는 장면들이 수록되었다.






'A "Big Miracle" in Alaska'는 전반적인 제작과정을 담은 부가영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좀 더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실제 알래스카의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하게 된 에피소드와, 마치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이 프로젝트에 두 손 두 발을 걷어 붙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보여준 여주인공 드류 베리모어의 열정도 엿볼 수 있다. 단순히 영화를 영화로만 접근하고 있지 않은 드류 베리모어를 비롯해, 실제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더 풍성해지고 현실감을 갖게 된 영화의 구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Truth is Stranger than Fiction'에서는 이 믿기 힘든 실화의 주인공인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와 영화 속 이야기를 비교하여 들려주는데, 어쩌면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실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임은 처음부터 밝히고 있지만 어디까지가 정말 실화의 범위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는데, 실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로 실화를 담아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새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주는 의미와 감동을 다시 한 번 새겨볼 수 있었다.





[총평] '빅 미라클'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의 기본적인 맥락은 고스란히 갖추고 있지만, 그 평범함을 일부러 벗어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진실(사실)의 힘을 믿고 우직하게 밀어붙인 정직한 영화였다. 혹자들에게는 지루하고 뻔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실화가 갖고 있는 기적 같은 힘을 믿고 부가적인 장치 없이 그대로 담아낸 영화가 결코 나쁘지 않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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