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비수사 (The Classified File, 2015)

그래도 소신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극비수사'를 보기 전 이 영화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적었다 (극비도 아니었는데...). 곽경택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도 뒤늦게 알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는 것 조차 몰랐다. 그저 김윤석과 유해진이라는 배우의 출연만 알고 있었을 뿐인데, 사실 최근 김윤석의 작품들을 보면 비슷한 이미지를 계속 이어가며 특별함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에, 이 영화 역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특히 이 포스터 이미지만 보면 또 다른 코미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해서). 그런데 결과는 근래 본 영화 가운데, 특히 기대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한다면 가장 재미있고, 인상적인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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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택의 '극비수사'는 한 편으론 순진하리 만큼 인간적인 작품이다. 아마도 이 작품을 선택하는 많은 관객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유괴 사건'이라는 점에서 스릴러 적인 요소를 기대하는 것일 텐데, 이 유괴 사건 자체에만 집중한다면 이 영화는 다소 심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직접적인 대사로 여러 번 등장하지만, 이 영화의 주된 관심사는 유괴 사건의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유괴 된 아이가 무사히 살아 부모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 차이는 영화 자체의 성격을 규정 짓는 가장 큰 기준인데, 사건을 풀어가는 두 주인공 공길용 (김윤석)과 김중산 (유해진)은 물론, 유괴 된 아이의 가족과 사건을 맡은 경찰 권력 모두 이 영화 속에서는 이 기준 안에서 묘사되고 있다. 즉, 영화의 이러한 기준과 정확히 부합하는 공길용과 김중산을 중심으로, 이 기준에 반대되는 경찰 권력과 시대 배경이 등장하고, 아이의 가족 묘사 역시 다른 부잣집 아이 유괴 사건 속에 등장하는 부모들과는 차별 되게 그려진다. 다시 말해 자연스럽고, 과장 됨이 없다. 그런 측면이 스릴러를 기대한 관객들 입장에서는 영화의 긴장감이나 몰입도를 떨어트리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극비수사'는 그 보다 더 중요한 의무 같은 것을 수행하려는 영화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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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비수사'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극 중 도사로 등장하는 김중산이 유괴범에게 전화 올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순간이나 공길용이 용의자를 근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순간이 아니라, 이 수사가 마무리 된 다음 부터다. 관객은 스크린을 통해서 직접 본 이 사건 해결의 전말과 이 두 명의 행동이, 그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부정 되는 순간, 비로소 영화가 왜 이 두 인물을 현재로 끌어 왔는 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영웅담인데, 기존 영웅담과 다른 점이라면 숨겨진 영웅은 맞지만 보통의 숨겨진 영웅담도 영화 속에서는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비해, 이 작품은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남겨지도록 둔다. 이것은 어쩌면 영화가 직접 숨겨진 영웅임을 이제라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고, 그들에 대한 진심의 예의가 담겨 있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가 영웅이 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령 그것이 백 번 옳다 하더라도 제 3자가 이를 자신의 방식대로 노출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화 자체가 그러한 부담을 갖고 있는 작업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 감독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갖췄다는 진정성은 충분히 엿볼 수 있었던 방식이라는 점에서 '극비수사'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에필로그로서 존재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 시퀀스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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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그래서 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참기 힘들 정도로 울컥이게 했다. 스스로 세상에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으면 그걸로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할 말을 집어 삼키는 걸 보았을 땐, 난 뭐가 그리 억울한 일들을 살면서 겪어 왔었는지, 공감과 동시에 미안하고 애잔한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똑같이 삼킬 수가 없었다.


이 영화가 단지 유괴 사건 자체에 집중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또 다른 곳에서 등장한다. 1978년 당시 대한민국의 상황과 어쩌면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재를 떠올려 봤을 때, 이 영화는 과거 소신을 담고 행동했던 어떤 이의 영화가 아닌 소신을 지키며 살기 쉽지 않은 현재의 영화가 된다. 그 소신이 용기와 존경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어리석고 이기적인 것으로 비춰지기 쉬운 요즈음. 그래도 소신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좋은 영화였다.



1. 실화라는 걸 영화 시작할 때야 알았는데, 영화가 끝나고 실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소름이. 실화가 더 믿기 힘들 정도로 영화 같은. 두 분의 우정과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2. 개인적으로 유해진씨가 출연한 영화 중에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이 역할을 다른 마스크의 배우가 했다면 아마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설득력이 아주 많이 떨어졌을 거에요.


3. 정말 곽경택 감독이 달리 보입니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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