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 (Room, 2015)

우리는 타인의 상처를 진정 배려하고 있는가


7년 전, 한 남자에게 납치돼 작은 방에 갇히게 된 열일곱 살 소녀 ‘조이’. 세상과 단절된 채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던 중, 아들 ‘잭’을 낳고 엄마가 된다. 감옥 같은 작은 방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던 엄마와 아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잭은 다섯 살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태어나 단 한번도 방 밖으로 나가 보지 못한 잭을 더 이상 좁은 방안에 가둬 둘 수 없다고 생각한 조이는 진짜 세상으로의 탈출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들의 극적인 탈출과 충격적인 과거 때문에 세상은 두 사람을 또다시 보이지 않는 방안에 가두려 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엠마 도노휴의 아마존 베스트셀러 '룸'을 원작으로 한 레니 에이브러햄슨의 영화 '룸 (Room, 2015)'은 영화 속 이야기와 영화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모두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소녀 시절 작은 방에 납치되어 7년 간을 살아가게 된 조이와 이 곳에서 태어난 조이의 아들 잭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갇혀버린 공간으로부터의 탈출에 관한 내러티브를 전개한다. 보통 공간과 탈출이 주된 목적인 이야기라면 이 작은 공간 밖의 세상과 이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고통을 더 부각 시키기 마련인데, '룸'이 이 갇힌 공간을 다루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한 편으론 자발적 감금을 의심할 정도로 이 작은 방 안에서 모자의 생활은 비슷한 다른 영화 속 감금 된 주인공들보다는 우울하지 않은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 우울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영화가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어린 잭의 시선처럼 이 작은 방 안에서도 자신 만의 우주를 만들고, 적응해 살아가는 모습을 더 부각시키면서 이 감금의 상황을 더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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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정적으로 보통 같았으면 탈출과 동시에 끝나 버렸을 이야기를 그 이후에도 한참이나 더 이어간다. 일반적인 감금의 스토리라면 감금 기간 동안 그 고통과 답답함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관객 역시 어서 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증폭시킨 뒤, 결국엔 아주 극적으로 탈출하고 구조되는 것으로 안도의 한 숨과 함께 영화가 끝나는 것이 대부분 일텐데, '룸'은 오히려 극적인 탈출 이후의 이야기에 더 주목한다. 아니, 탈출 이후의 이야기에 주목했다는 것 보다는 인물이 진짜로 이 상황에서 벗어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고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고 그 사건이 일차적으로 종료되었을 때 제3자의 시선에서 안도와 함께 당사자의 삶도 함께 일단락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어쩌면 철저히 제3자의 시선일 것이다. '어떻게 저런 끔찍한 일이...' '와, 정말 구조되서 다행이다', '이제 됬네'로 마무리 하는 것은 사실 당사자들을 많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자기 만족에 가까운 판단이라는 것이다. 그 판단 속에는 당사자들이 겪은 일들을 결국 100% 공감할 수는 없는 한계와 더불어 그들이 실제로 완전히 회복하기까지 견뎌야 할 지리한 시간들은 지켜볼 엄두가 나지 않거나, 지켜볼 생각이 없다는 심정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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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룸'은 바로 그 지리한 시간, 마치 모두가 그들 만을 위하고 안도하는 것 같았던 난리통이 다 지나간 뒤의 시간까지 차분히 기다려준다. 그리고 실제로 오랜 감금 생활에서 벗어난 모자가 그 오랜 감금의 시간으로 인해 쉽게 회복하지 못하는지, 그런 시간들로부터 회복한다는 것이 당사자인 그 두 사람에게는 물론, 그들을 아끼는 가족들에게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인지를 한 발 물러나 바라본다. 보통 재난 영화 같았으면 탈출과 구조의 시점에서 모두 행복함과 안도감만 남기고 끝나 버렸을 그 이후의 시간들을 말이다. 그리고 조이와 잭이 스스로 이 사건과 오랜 심적 감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 영화를 조심스럽게 끝낸다. 완전히 벗어 났을 때야 끝을 낸다 라고 말하지 않은 건, 영화가 끝을 내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영화 '룸'에서 발견한, 모정이나 탈출의 극적인 요소보다도 더 인상적인 점, 바로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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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잭이 룸을 탈출해서 바깥 세상을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은 올해 최고의 명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그 눈빛이 정말 모든 것을 말해주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2. 영화를 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보고 나니 제이콥 트렘블레이가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것을 두고 평론가들이 불만을 얘기했는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냥 아역으로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여우주연상을 모두 휩쓴 브리 라슨 보다도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거든요.




글 / 아쉬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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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아들 (Saul fia, Son of Saul, 2015)

죽음의 한 가운데 구원을 행하다


나치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시체들을 처리하기 위한 비밀 작업반이 있었다. ‘존더코만도’라 불리던 이들은 X자 표시가 된 작업복을 입고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오직 시키는 대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존더코만도’ 소속이었던 남자 ‘사울’의 앞에 어린 아들의 주검이 도착한다. 처리해야 할 시체더미들 사이에서 아들을 빼낸 ‘사울’은 랍비를 찾아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기로 결심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라즐로 네메스 감독의 '사울의 아들 (Saul fia, 2015)'은 홀로코스트의 참혹했던, 아니 지옥같았던 현실을 그려낸 작품이다. 아유슈비츠 수용소에서 벌어졌던 대규모의 유대인 학살 한 가운데서 시작하는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크게 들이 쉰 숨을 끝날 때까지 내뱉지 않는다. 4:3의 제한된 화면비와 오로지 주인공 사울의 등 뒤에서 혹은 얼굴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카메라 역시 최소한의 것들만을 보여준다. '사울의 아들'은 지옥 같았던 홀로코스트 현장을 그려내면서도 관객들에게 최소한의 것들만을 보여주고자 한다. 오로지 카메라의 포커스는 사울의 얼굴과 사울의 등, 그리고 사울이 만나는 이들의 얼굴에게 맞춰질 뿐, 참혹하게 쌓여있는 죽은 자들의 현실은 철저한 포커싱 아웃되어 묘사된다. 이것은 어쩌면 관객에 대한 영화의 배려다. 대부분의 홀로코스트 영화들이 참혹한 비극을 더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감동과 비극을 극대화 하려 했던 것과는 달리, 사울의 아들'은 오히려 많은 것들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관객에게 이 참혹한 진실을 각자의 눈으로서 어떠한 의도됨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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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극 중 사울의 행동은 한편으론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백명이 넘게 유대인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는 한 가운데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자신의 아들 (나는 이 아들이 사울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것이 더 의미하는 바가 크기도 하고)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수용소를 탈출하고자 계획을 세웠던 동료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면서까지 랍비를 찾아 동분서주하고, 이 지옥에서 빠져나가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듯한 사울의 모습은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이기적인으로 보여지는 측면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사울의 이러한 행동은 영화가 선택한 구원의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는 사울을 비롯해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라는 이들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데, 이들은 자신들도 유대인이면서 끌려온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안내하고 이후엔 시체를 치우고, 청소를 하고, 귀중품을 챙기는 등의 행동을 했던 이들로서 어쩌면 극 중 사울의 대사처럼 '이미 죽어버린'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아유슈비츠의 환경 속에서 능동적으로 기생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도 목숨을 담보로 같은 유대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에 동참할 수 밖에는 없었던 또 다른 비극의 피해자로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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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아들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 랍비를 찾아 해매는 사울의 행동은 자신만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작게는 존더코만도들에 대한 구원, 더 나아가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아야 했던 모든 유대인들에 대한 구원을 바라는 행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이 지옥같은 상황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히려 무고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에서도 거부할 수 없었던 사울이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간적인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미를 반영하듯 영화 내내 사울의 등 바로 뒤에서 오로지 사울의 행동 만을 쫓고 보여주었던 카메라는, 마지막에 가서 마치 이 지옥 속에서 모두를 구원하고자 했던 사울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신(God)이 그만의 방식으로 사울이 구원을 이뤄낸 순간 비로소 그를 떠나는 듯한 느낌으로 그의 등 뒤에서 떨어져 나온다. 사울의 아들이란 그저 그 한 아이 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구원 받지 못했던, 구원 받아야 했던 모든 이들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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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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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카데미 시상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라이브로 TV를 통해 시청한 건 이번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매번 시간이 맞지 않아서 인터넷이나 다른 중계등을 통했었는데, 이번엔 쾌적하게 시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CGV의 동시통역 환경은 그리 좋지 못했던 것 같다. 동시통역이라는 것이 본래 매끄럽기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번 처럼 현장의 소리와 통역 소리가 거칠게 겹쳐지고, 또한 대충 들어도 빼먹는 부분이 많거나 통역사의 말투가 매끄럽지 못하다면 차라리 이전처럼 자막으로 제공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듯 싶다. 내년에는 좀 늦더라도 실시간 자막으로 제공하는 편이 좋을 듯.


2. 시상식 전부터 흑인 후보가 한 명도 지명되지 않는 것을 두고 일부 보이콧 까지 벌어졌던 이번 오스카는, 이를 의식한 듯 사회자 크리스 록의 작정 멘트들과 함께 다양한 부분에서 흑인들의 배제를 역으로 이용하는 순서들이 진행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데, 단 하나 스스로 만든 논란과 그 반대의 의견을 그 스스로의 무대에서 펼치는 것이 가능한 아카데미의 환경이 조금은 부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물론 애초에 논란을 안만드는 것이 가장 좋았겠지만).





3. 개인적으로 촬영상과 더불어 가장 주목했던 부문이 바로 여우조연상이었는데, 다섯 작품을 모두 관람한 결과 '대니쉬 걸'의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연기가 가장 손꼽을 만 했으나, '캐롤'의 루니 마라는 물론, '헤이트풀 8'의 제니퍼 제이슨 리와 '스티브 잡스'의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도 충분히 좋았고, '스포트라이트'의 레이첼 맥아담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나 이변이 나지는 않을까 흥미로웠던 부문이었다. 수상은 예상대로 비칸데르가 가져갔다. 루니 마라는 뭐, 칸에서 주연상도 받았는데 뭐. 차라리 주연상 후보에 루니 마라와 케이트 블란쳇이 동시에 올랐다면 더 흥미진진 했을 듯.


4.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초반 기세는 대단했다. '매드 맥스가 아니네요'라는 수상 발표 농담이 나올 정도로. 하지만 오히려 감독상이나 작품상의 주연 부문에서는 수상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작품성이 몹시 뛰어난 작품으로, 경쟁작들을 재치고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수상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오히려 한 편으로는 받았어야 할 작품이기도 하다.


5. 주제가상 후보로 오른 '유스'의 더 심플송의 공연이 되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아쉬웠다. 근데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곡이 주제가상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떠올랐던 생각이 '과연 이 곡을 어떻게 공연할 것인가'였는데, 역시나 시간 상 공연이 어려워 취소된 것이 아쉬웠다.


6. 음악상은 쟁쟁한 후보들을 재치고 엔니오 모리꼬네가 '헤이트풀 8'로 수상했는데, 공로상을 먼저 받고 아카데미를 그 후에 수상하는 경우가 또 있었나 싶다. 레오의 남우주연상도 그렇고, 스콜세지의 감독상도 그렇고, 모리꼬네도 '헤이트풀 8'로 수상하는 건 아이러니랄까.


7.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부문은 아마 촬영상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런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엠마누엘 누베즈키가 만든 '레버넌트'의 촬영이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혹시라도 그가 수상하지 않았더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엠마누엘 누베즈키와 만난 다른 후보들이 몹시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시카리오'의 로저 디킨스는 그저 눈물 ㅠㅠ





8. 이렇게 긴장되는 시상식이 또 있을까. 아마 나중에 우리나라 배우나 감독이 아카데미의 유력 수상 후보로 올라간다 해도 이보다 더 걱정되고 긴장되지는 않을 듯 하다. 골든글로브를 비롯해 여러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모든 예상이 디카프리오의 수상을 점칠 때마다 '혹시...'하는 걱정은 더 커져만 갔다. 그의 팬으로서 상을 꼭 탔으면 하는 것 보다도, 빨리 이 굴레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심정이 더 컸던 것이 사실 ㅋ '레버넌트'보다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로 수상하는 것이 더 적절했겠지만서도. 눈물이 날 법도 한데, 초연한 듯 환경 문제에 대한 수상소감을 힘있게 얘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후광마저 느껴졌다 @@ 다음 작품은 좀 덜 고생하고 가벼운, '캐치 미 이프 유 캔' 같은 영화 하나 했으면 좋겠다.


9. 나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작품들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지만, 감독상을 누구에게 줘야 하냐고 묻는다면 이번에는 조지 밀러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레버넌트'는 감독을 비롯한 배우, 스텝들의 영화적 야망이 아주 강렬하게 묻어난 작품이었는데, 아무래도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보다는 좀 더 아카데미 취향의 영화였던 것은 분명하다.





10. 맨 마지막 작품상 수상작으로 '스포트라이트'라고 모건 프리먼이 짧게 외쳤을 때, 혹시 일종의 페이크는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예상 못할 수준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의외의 결과였다. 좋은 영화였고,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극 중 마크 러팔로가 연기했던 실제 인물이 함께 자리를 한 것도 의미있었다.


11. 이렇게 이번 아카데미도 막을 내렸다. 뭐 상을 받고 못 받고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레오에게는 아닐 듯), 그보다는 인상 깊게 봤던 영화들의 장면들과 배우, 감독, 스텝들을 한 자리에서 만난다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후보작들 가운데 아직 못 본 '룸'이나 '사울의 아들', '트럼보', '브루클린' 등도 어서 봐야겠다.



* 이번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주요 작품들의 리뷰들.



레버넌트 _ 생존 그 자체에 대한 경외 (http://www.realfolkblues.co.kr/2063)

빅쇼트 _ 안일한 자본주의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 (http://www.realfolkblues.co.kr/2068)

스파이 브릿지 _ 신념을 지켜낸 자들의 우화 혹은 실화 (http://www.realfolkblues.co.kr/2038)

마션 _ 다시 우주를 꿈꾸게 만드는 휴먼드라마 (http://www.realfolkblues.co.kr/2017)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_ 여성은 스스로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http://www.realfolkblues.co.kr/1971)

스포트라이트 _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http://www.realfolkblues.co.kr/2077)

스티브 잡스 _ 전기 영화 아닌 치열한 캐릭터 영화 (http://www.realfolkblues.co.kr/2066)

대니쉬 걸 _ 진짜 나를 찾아줘 (http://www.realfolkblues.co.kr/2076)

캐롤 _ 아름답고 확고한 사랑의 이름 (http://www.realfolkblues.co.kr/2071)

헤이트풀 8 _ 타란티노의 첫 번째 오리지널 서부 영화 (http://www.realfolkblues.co.kr/2062)

인사이드 아웃 _ 부모의 마음으로 써내려간 미안함 (http://www.realfolkblues.co.kr/1985)

시카리오 _ 범죄와 현실의 가운데서 (http://www.realfolkblues.co.kr/2049)

침묵의 시선 _ 악마와 얼굴을 마주하다 (http://www.realfolkblues.co.kr/2010)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_ 새로운 삼부작의 시작 (http://www.realfolkblues.co.kr/2054)

007 스펙터 _ 어쩌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마지막 (http://www.realfolkblues.co.kr/2041)

엑스마키나 _ 인공지능에 관한 깊은 반복의 결과물 (http://www.realfolkblues.co.kr/1988)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Dallas Buyers Club, 2013)

한 남자의 어떤 변화



아카데미를 수상한 매튜 매커너히와 자레드 레토 주연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예상 외로 조금은 덤덤한 영화였다. 이 영화가 조금은 더 극적일 거라는 예상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과 죽음을 앞둔 시한부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 그리고 주조연을 맡은 두 배우가 각종 연기상을 휩쓸고 있다는 점들 때문이었는데, 의외로 영화는 덤덤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나 실화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의 포인트를 일부러 끌어오지 않았으며, 시한부의 삶을 그릴 때 흔히 다루게 되는 경계에 대한 공포와 넘나 듬에 대해서도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으며, 연기 역시 더 메소드 연기를 펼쳤더라도 부족함이 없었을 텐데 생각보단 훨씬 절제 된 연기였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 한 번 더 보고 싶은 작품이 되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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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시한부의 삶과 에이즈라는 질병과 이를 둘러싼 FDA와 병을 얻은 이들과의 사투, 그리고 성정체성의 관한 소재 등 영화로서 매력적인 소재들이 여럿 담겨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그 어떤 소재도 끝까지 전력으로 달려가지는 않는다. 특히 이 소재들을 다뤘던 영화들과 비교하자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한 편으론 조금 심심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커다란 줄기의 이야기를 따르기 보다는 작은 범위, 하지만 이 모든 소재들을 온 몸으로 체험해야 했던 한 남자의 작은 변화에 대해 여과없이 보여준다. 어떤 면에선 영화가 관객을 별로 설득하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주인공 론 우드루프 (매튜 매커너히)처럼 쿨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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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으론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만약 이 영화가 훨씬 전에 나왔더라면 조금은 다른 형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자레드 레토가 연기한 캐릭터의 성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도 더 치닫을 수 있었을 것이고, 전형적인 마초이자 카우보이였던 우드푸르가 겪게 되는 심경의 변화도 더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을 테고, FDA와 벌이는 사회적인 이슈도 더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쭉 늘어놓고 보니 더 확연해 졌듯이 이 각각의 소재 들은 이미 너무 많이 영화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이젠 제법 익숙해진 소재이기도 하다. 즉, 실화라는 강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무엇 하나도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이런 절제와 덤덤함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레이언 (자레드 레토)의 이야기는 더 슬퍼할 시간을 줘도 될 것 같으나 그러지 않고, 우드루프의 법정 싸움은 더 치열해도 좋았을 테지만 거기서 멈추며, 그가 겪어야 했던 시한부라는 특수한 상황도 과장되어 묘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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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 내재되어 있는 깊이를 표현해 낸 일등 공신은 역시 배우들이라고 해야겠다. 매튜 매커너히는 기존 까지의 자신을 지운 듯한 연기로 더 넓은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개인적으론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의 연기가 더 좋다), 자레드 레토도 한 편으론 뻔할 수 있는 캐릭터를 부담스럽지 않게 연기해 냈다. 개인적으로 특히 마음에 들었던 배우는 이 둘이 아니라 제니퍼 가너였다. 드라마 '앨리어스' 때부터 조금은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던 터라 그랬는지 몰라도, 이 파란만장한 인생에 놓여있는 두 남자 (혹은 한 남자와 여자)를 말 없이 바라봐주는 눈빛 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 연기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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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Michael Kohlhaas, 2013)

스스로 견디지 못함의 대한 울림



아르노 데 팔리에르 감독의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Michael Kohlhaas, 2013)'을 선택하게 된 것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때문도 아니고, 영화의 줄거리 때문도 아닌 오로지 주연을 맡은 매즈 미켈슨의 극 중 모습이 커다랗게 담긴 포스터 한 장 때문이었다. 이 포스터는 뭐랄까, 여러 작품을 통해 조금씩 좋아해 오다가 '더 헌트'에 와서 비로소 애정을 고백하게 되었던 매즈 미켈슨이라는 배우의 매력을 120% 발산하고 있는 이미지였기에, 아마도 이런 단계로 그를 좋아하게 된 영화 팬들이라면 보고 싶어 안달이 날 수 밖에는 없는 그런 포스터였다. 회색 머리를 휘날리며 등 뒤에 검을 매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하이랜더' 같은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는데, 솔직히 포스터의 비주얼에 압도 당해 보게 된 영화였지만 내용은 그 와는 많이 달랐다. 아주 고전적이고 조용한 방식으로 '정의'라는 거대한 뜻에 질문을 던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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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판매하는 미하엘 콜하스는 매일 말을 팔러 시장에 가는 길에 지나던 다리에 통행세를 내라는 남작의 말에, 처음에는 반대하지만 일단 말 두 마리를 맡기고 나중에 되찾는 조건으로 그냥 지나간다. 하지만 나중에 말을 돌려 받으러 가보니 윤기가 흐르던 두 건강한 말을 다치고 더러워진 상태였으며, 이를 찾으러 갔던 하인 역시 공격을 받아 다치고 만다. 이를 부당하게 여긴 미하엘 콜하스는 법적으로 소송을 걸려 하지만 공작이 손을 쓴 탓에 전해지지 않자 직접 공주에게 이를 전하려 하는데, 대신 전하려던 아내마저 죽음에 이르게 된다.


만약 이 영화가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영웅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다면 아내를 잃는 과정의 묘사는 물론, 그 이후 미하엘 콜하스의 여정 역시 훨씬 더 디테일하고 극적인 묘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불친절 하다기 보다는 일부러 디테일을 걷어낸 듯 한 느낌이다. 복수를 감행하지만 그 순간은 결코 통쾌하지 않고, 어느새 반란군이 되어 버린 그의 일당이 조직되는 과정이나 여정 역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즉, 이 영화는 부당한 것과 그것의 해결 혹은 극복에 포인트가 있지 않고, 그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갖고 오는 지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다시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되묻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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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오며 같이 본 이와 우스게 소리로 이런 얘기를 했다. '그러게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미하엘 콜하스가 조금은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 남들처럼 피해가거나 돌아갈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극 중 묘사되는 모습으로 미뤄보면 미하엘 콜하스가 꽉 막힌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조금은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그가 이 사건을 겪으며 했던 선택들은 조금은 날이 선, 그래서 본인 스스로도 어떤 의의를 두거나 정의를 행한다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그가 만약 조금 더 융통성을 발휘 했다면 아내를 잃게 된 것을 비롯해 모든 일들을 겪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을 되 묻게 되었다. 그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그렇담 과연 '융통성'이라는 건 '정의'라는 것을 논할 때 선택 가능한 옵션인가 라는 의문도 더불어 갖게 되었다. '그러느니 죽는게 차라리 낫다'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다'라는 것은 무엇이 반드시 옳다고 말하기 힘든 문제인데 (최근 본 '노예 12년'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이 작품은 국내 개봉 제목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택을 한 주인공의 이야기에 대한 답을 관객이 해야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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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 극장을 나오며 했던 '융통성'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답하자면, 영화 속 시대를 배경으로 미하엘 콜하스의 상황이었다면 그가 융통성을 부려 두 필의 말을 잃고 부당한 일을 당한 것을 그냥 넘겼다 하더라도, 결코 평탄한 삶을 영유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야 말로 조금은 비겁한 융통성의 결론인데, 어차피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계산에 그렇다면 좀 더 (상대적으로) 정의의 편에서 행하는 것이 나은 것이겠다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극 중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이 계산적이거나 비겁하지 않았던 건, 그 스스로가 계산을 통해 한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행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과 삶은 정의로운 영웅의 삶이라기 보다는, 정의로울 수 밖에는 없었던 현실적인 한 남자의 삶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하엘 콜하스의 여정이 아니라, 그가 그렇게 해야만 했던 내적 갈등과 그렇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그 '마음', 양심이라고 표현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그 마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너무 쉽게 견디는 것은 아닐까.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그 스스로 견디지 못함에 대한,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을 들려주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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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허슬 (American Hustle, 2013)

진짜가 되고픈 가짜들의 이야기



최근 몇 년 사이 헐리웃에서 가장 주목 받는 감독 중 하나는 바로 데이비드 O.러셀 일 것이다. '파이터'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두 작품을 통해 급격하게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기존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과 함께 새롭게 선보이는 이 작품 '아메리칸 허슬' 역시 기대할 수 밖에는 없는 조합이었다 (참고로 크리스찬 베일과 에이미 아담스는 '파이터'에서,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호흡을 맞췄다. 제레미 레너와는 첫 작품). 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사기, 사기꾼이라는 설정은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나 국내에서는 최동훈 감독의 작품들을 연상하게 했는데, 분명 영화의 겉모습은 그러하지만 실속은 사기가 중심이 되는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진짜가 되고픈 가짜들의 이야기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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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은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어빙 로젠필드'라는 캐릭터의 아침 몸 단장으로 시작하는데,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아침부터 세심한 공을 들여 머리를 세팅하는 과정을 영화는 그 세심함 만큼이나 한참을 말 없이 들여다본다. 이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를 암시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렇듯 남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 혹은 그러기 위해 될 대로 되라 라는 식이 아니라 오히려 더 공을 들여 그 가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어빙이라는 캐릭터는 물론 영화가 이후 들려주는 이야기와 캐릭터들의 정서에도 깊게 드리워져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사기 자체의 속고 속이는 묘미가 포인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도 치밀한 사기극을 다룬 영화들에 비하면 '아메리칸 허슬'의 사기, 아니 사기극을 묘사하는 방식은 긴장감 넘치는 리듬도 반전이라고 할 만한 연출도 없는 편이다. 이 작품은 실화를 '어느 정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어느 정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사건 자체에 전후 사정과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기 보다는, 그 흥미로운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정에 서서 각자의 결핍을 그려보려 했던 영화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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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으로 살아 온 어빙이나 시드니 (에이미 아담스) 외에 브래들리 쿠퍼가 연기한 리치 디마소라는 캐릭터도 FBI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결핍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FBI이기는 하지만 조직 내에서 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승진도 못하고 있어, 자신이 주목 받을 수 있는 큰 한 건을 노리고 이 사건을 기획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가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승진이라는 형식적인 것 보다는 주목 받는 것 자체, 즉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직접적인 대사로도 나오는 것처럼 무언가 자신이 여러 인물들을 이끌고 주인공이 되면서 드디어 성공에 까지 가까워 짐에 따라, 그가 겪는 감정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 중 하나인데 브래들리 쿠퍼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이어 또 한 번 감정적이면서도 결핍이 있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고 있다. 그가 연기한 리치와 비슷한 이유로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어빙의 부인인 로잘린 캐릭터도 설명할 수 있겠다. 그녀의 행동도 일부러 남편을 골탕 먹이려고 한 것 이라기 보다는 주목 받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이렇듯 '아메리칸 허슬'은 평생을 남을 속이는 것으로 (신분까지 속여가며) 살아왔던 이들과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즉 가짜로 사는 것에 지쳐버린 이들의 진짜가 되어보려는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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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허슬'에는 특이한 리듬이 있다. 기막힌 당시의 선곡으로 순간적인 몰입 도를 선사하는 한 편, 긴장이나 불안감 없이도 한 참을 카메라가 멈춰서 인물을 바라보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보통 이런 장면을 쓸 때는 그 다음에 오는 어떤 사건을 꾸미기 위한 것이라던가, 직접적인 인물의 감정 표현을 위한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 두 가지 경우가 다 아니었다. 어떤 반전이나 장면 전환과 연결되어 있지도 않고 인물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오랜 시간 캐릭터를 다른 아무 장치 없이 바라보게 함으로서 가짜의 껍데기 속에 있는 진짜를 발견해 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조금은 이질적인 리듬 감이 존재한다.


영화적으로만 보자면 아카데미 10개의 부분에 후보로 오른 것과는 달리 개인적으론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더 좋았고, '파이터'와 비교해도 '파이터'가 좀 더 낫지 않았나 싶다. 확실히 '아메리칸 허슬'은 이미 감독과 호흡을 맞춰본 명 배우들이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마음껏 연기한, 연기와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몸을 불린 크리스찬 베일은 마치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연기했으면 딱이 었을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고, 에이미 아담스는 근래 그녀의 출연작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브래들리 쿠퍼는 이 작품을 통해 또 한 걸음 클래스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제니퍼 로렌스는 이렇게 빨리 어린 배우가 성장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이 명 배우들 사이에서 완전히 녹아드는 '어른스러움'과 매력을 사정 없이 발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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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론 에이미 아담스의 팬이라 더 좋았는데, 다음 작품에서는 한 번 쯤 그녀가 원톱으로 나서는 영화를 보고 싶네요.


2. 음악이 참 좋은데 아직 국내에 사운드트랙이 발매된 것 같지는 않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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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 (The King's Speech, 2010)
절제하는 치유의 영화


이번 아카데미의 주요 부분을 석권하며 큰 화제를 모았던 톰 후퍼 감독의 '킹스 스피치 (The King's Speech)'를 이제야 만나보게 되었다. 콜린 퍼스와 제프리 러쉬 그리고 헬레나 본햄 카터가 출연하는 말더듬이 왕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몇가지 예상되는 수순들이 있었다. 실제로 '킹스 스피치'는 대부분의 수순을 그대로 밟아가지만 감정적으로 과잉되거나 신파로 충분히 그려질 수 있는 부분들을 과감히 절제하고 오히려 심심할 정도로 꾹꾹 눌러담는 영국 영화의 위엄을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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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의 미덕이라면 감정적으로도 그렇고 이야기 구성면에서도 곁가지들을 과감히 다 쳐내고 조지 6세(콜린 퍼스)의 치유의 영화에만 집중한 것을 들 수 있겠다. 사실 이 이야기는 역사적인 배경 측면에서도 왕위에 대한 이야기와 2차 세계대전 등 디테일하게 풀어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 참 많은데, 이런 부분들을 그냥 배경처럼 은은히 배치하고 핵심적인 이야기는 매우 소소한 것을 내세움으로 인해 오히려 배경의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을 때와 맘먹는 효과를 일으켰다. 즉, 위의 이야기들을 배경 정도로 사용하긴 했지만 이것들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이 영화에서 매우 큰 차별점이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실화라는 점에서 그리고 말더듬이를 비롯해 결핍을 겪어온 주인공의 배경이 왕자(왕)라는 점에서 핵심의 깊이를 더해준다. 다시말해 뉴스 아나운서를 꿈꾸는 주인공이라던지, 연설이 생활인 정치인이었어도 이 이야기는 충분히 동일한 이야기였을테지만, 실제 왕이었던 조지 6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주인공이 겪는 시련과 갈등에 깊이가 더해졌고 그를 치유하기 위해 등장한 라이오넬 (제프리 러쉬)의 캐릭터 역시 상대적인 깊이를 더 풍부하게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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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는 치유에 관한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텐데,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치유되는 주인공과 그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의 면면에 모두 충실한 작품이었다. 말더듬이 왕으로 수많은 연설들 앞에서 매번 긴장하고 힘들어 해야만 했던 조지 6세의 심정은 콜린 퍼스의 완벽한 연기로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고 있는데, 물론 말더듬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연기한 장점도 분명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콜린 퍼스가 진정으로 빛나는 장면들은 말을 할 때가 (더듬거나 그렇지 않거나를 떠나서)아니라 눈빛과 표정으로 말할 때 였다. 

사실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좀 더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바로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를 묘사하는 섬세함 때문이었다. 일단 제프리 러쉬가 연기한 라이오넬의 경우는 조지 6세에 버금가는 자신 만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캐릭터였다고 볼 수 있을텐데 (초반 연극 오디션을 보는 장면을 보고서는 그의 이야기가 제법 이어질 줄로만 알았었다),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한 것은 좋았지만 라이오넬의 이야기는 조금은 더 비중을 두었더라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즉, 대부분의 치유의 영화가 그렇듯이 일방적인 치유가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이 치유되는 동시에 그 상대마저 그 과정 속에서 자연 치유가 되는 구조말이다. 이랬더라면 좀 더 감정적으로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톰 후퍼는 어찌나 절제하는지 이 마저도 허락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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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자를 묘사하는 섬세함에 있어서 돋보였던 캐릭터는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연기한 왕비 캐릭터였다. 라이오넬의 이야기가 절제되어 조금은 아쉬운 경우였다면, 왕비야 말로 절제를 통해 완벽하게 묘사된 캐릭터였다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안쓰러워 하며 고치려고 자신의 일처럼 매달렸던 사람의 심정을 매우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보통 더 감정적인 영화였다면 마지막에 가서 펑펑 눈물을 흘렸을테지만 오히려 꾹꾹 가슴으로 삼키는 그녀의 캐릭터 묘사에 오히려 더 감정적인 동요가 일었다. 헬레나 본햄 카터가 영화 내내 보여준 따듯한 시선은 이 영화의 가장 보석같은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의 내용과 별개로 '킹스 스피치'는 요 근래 오랜만에 보는 1.85:1 화면비의 영화였는데, 그래서인지 상하의 높이를 적극 활용한 장면들과 공간의 여백을 활용한 장면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가 위엄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물론 왕과 그 주변을 다룬 탓도 있겠지만 이를 묘사할 때 상하의 높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앵글과 화면비가 준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시네마스코프가 좌우 넓이를 통해 스케일을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1.85:1 화면비에서는 상하의 높이를 통해 위압감을 전달하고 있는데, '킹스 스피치'는 이런 위압감과 스케일을 전달하는 것 외에 여백을 강조한 앵글을 통해 (초반 조지 6세와 라이오넬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 대화 시퀀스와 캐릭터 묘사에 있어 독특한 리듬감을 주고 있다. 또한 디자인 적인 측면에서도 미술적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라이오넬의 방과 왕실의 대부분의 공간들처럼 천정이 높은 공간을 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한껏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공간이 주는 미적 효과를 십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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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는 흥미로운 소재(실화)를 가지고 보편적인 흐름에 충실한 평범한 이야기였지만, 자칫 감정적으로만 흐를 수 있었던 부분들을 과감할 정도로 배제하고 또 절제함으로서 깔끔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오히려 감정적으로도 동요될 만큼 위엄있는 작품이었다.


1. 티모시 스펄은 제가 본 것 중에서는 가장 높은 직책으로 나온 영화가 아니었나 싶네요. 매번 쥐(?)나 하인 등으로 단골 출연했던 그였는데, 무려 윈스턴 처칠이라니!!

2. 짧은 분량이었지만 우리의 덤블도어 마이클 겜본의 포스는 역시 무시할 수 없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같은 영화에 출연시켜 놓고 보니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없었지만), 마이클 겜본과 제프리 러쉬가 몹시 닮아보이더군요. 그래서 처음에는 제프리 러쉬의 1인 2역인가 싶었었다는.

3. 수 많은 조연들 가운데 가장 놀랐던 캐릭터는 역시 가이 피어스였습니다. '더 로드'에서도 이런 식으로 깜짝 등장했었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에서는 멀쩡하게(?) 출연하기는 했지만 왕년에 그를 기억하는 저로서는 확실히 많이 늙어버린 그의 모습이 아직도 잘 적응이 되질 않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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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가장 마음에 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포스터 이미지.





아래의 문구가 감동적이기까지 하네요.

http://www.realfolkblues.co.kr/870





주연배우들은 없지만 어떤 장면보다 역동적인 첫 번쩨 포스터와, 영화를 통틀어 거의 유일하게 졸리의 강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던 장면을 담은 <체인질링> 두 번째 포스터.

http://www.realfolkblues.co.kr/853





그리고 <다크 나이트>.
첫 번째 포스터의 장면도 물론 좋아하는 장면이지만, 두 번째 역동적인 모습도 마음에 드네요.

http://www.realfolkblues.co.kr/696
http://www.realfolkblues.co.kr/700





최고 수준의 연기를 경험할 수 있었던 영화 <다우트>
그리고 비올라 데이비스의 마법의 10분!
http://www.realfolkblues.co.kr/878




각본상 후보에 오른 <해피 고 럭키>. 그리고 셀리 호킨스의 저 미소.

http://www.realfolkblues.co.kr/804




영화 상에서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캐릭터를 메인으로 한 <헬보이 2 :골든아미>.

http://www.realfolkblues.co.kr/752




구스 반 산트와 숀 펜의 만남 <밀크>




케이트 윈슬렛만으로도 기대되는 영화 <더 리더>




최근 <식스 핏 언더>를 보고 있는터라 더 정이 가는 포스터 <더 비지터>






아. 그저 최고 ㅠㅠ <월-E>
아카데미는 <월-E>를 작품상 후보에 올리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 지어다.

http://www.realfolkblues.co.kr/705




오늘 보게 될 예정이라 더욱 두근거리는 미키 루크의 <더 레슬러>





레오와 케이트의 재회. 그것만으로도 벅찰 듯한 <레볼루셔너리 로드>까지.



확실히 메인 포스터들과는 또 다른 감각과 느낌의 홍보 포스터들이 오히려 메인포스터 보다 더욱 마음에 드는 경우도
있는 것 같네요. 더불어 이번 아카데미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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